뵙고 싶은 공자님, 일견一見이 여구如舊하여, 처음 공자님의 얼굴을 마주 대했을 때 마치 어렸을 적 부모가 맺어준 정인情人을 뵈옵는 듯했습니다.
조영은 처음 한 줄을 읽다가 손이 떨렸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조영은 호흡을 멈추며 긴장된 낯으로 읽어 내려갔다.
전일의 초대는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공자님 댁에서 언니를 만난 것은, 저에겐 그리움이자 반가움이었지만, 한편으론 슬픔이었습니다. 언니는 하녀의 신분인데도 그토록 행복해 보였는데, 저는 궁 안에 갇힌 새가 되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임을 생각하노라면 나오는 게 한숨이요 들이쉬는 게 고독입니다.
어처 극시아는 자신의 슬픔을 절절히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처로운 처지가 조영의 가슴을 자못 아프게 했다.
입궁한지 수년인데도 폐하를 뵌 것은 딱 한 번뿐이라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 말을 믿으실 수 있나요? 하오나 공자님의 해맑고 늠름한 기상은 제 뇌리에 각인된 지 오래입니다. 공자님, 저는 조롱에 갇힌 애완용 새입니다. 조롱이 열려 어디론가 훨훨 날아갔으면 더 이상 원이 없겠습니다.
조영은 깊은 한숨을 쉬고 천정을 쳐다보다가 다시 읽어 내려갔다.
공자님은 고려 왕족의 후예라고 들었습니다. 당인唐人의 궁 안에서 일생을 보내시지는 않겠죠? 언젠가 뜻을 이루어 고토를 다물하고, 고려 백성들을 안위하실 때, 그 자리로 저를 함께 데려가 주실 수 없는가요?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조영은 가슴 떨림을 금할 수 없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공자님이 계신 그곳에 저도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곳이 또 다른 궁이어도 좋습니다. 이곳 당인들의 궁만 아니라면. 그 때는 이렇게 부자유스럽지도,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을 거예요. 이역만리 궁궐에서, 불태울 그리움을 발견했습니다. 읽으시고 가슴에 담으신 후 불태워버리세요. 천첩 극시아 배상拜上
조영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기가 어려웠다.
‘불태울 그리움? 이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그런데 어디서 듣던 말인데? 아, 그렇군, 여미아의 시문에 비슷한 문구가 있었지. 그리움을 불태워 어쩌고저쩌고.’
어처 극시아가 이런 대담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건 나아가도 지나치게 나아간 것이라, 아무래도 입을 다물고 있기가 어려웠다. 침묵은 묵인을 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영은 즉시 간단한 답장을 썼다.
어처마마께 문안 올립니다. 일전의 서한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저는 이곳 당인의 궁 안에서 일생을 보낼 것입니다. 신臣 고조영 엎드려 절합니다.
다시 만났을 때 이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얼마 후 어처 극시아가 답장을 보냈다.
당인의 궁에서 일생을 보낸다는 말씀은 거짓이겠죠? 저는 그렇게 믿겠습니다. 공자님이 저를 버리고 홀로 가시는 날, 저의 혼백은 저승에서 떠돌고 있을 것입니다.
갈수록 난감하기 그지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으로 조영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날더러 남의 아내, 그것도 황제의 아내를 빼앗아 달아나는 천하의 파렴치한이 되라는 건가? 날 언제 봤다고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단 말인가? 이 분은 제정신인가?’
조영은 생각할수록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해 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냥 덮어두자니 걸쩍지근하고 다시 무슨 말을 하자니, 일이 더욱 꼬일 것만 같았다. 만에 하나 두 사람의 이러한 편지 교환 사실이 탄로 나는 날에는 조영이나 극시아나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여미아는 극시아의 언니이고 지혜가 많은 것 같으니 차라리 여미아에게 털어놓고 상의할까?’
하지만 자신의 가슴 속에 성스러운 꽃으로 피어있는 여미아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유야무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하지만 조영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자 어느 날 어처 극시아는 다시 조영에게 편지를 건네었다. 바야흐로 낙양성에 추색秋色이 무르익은 때였다.
공자님께서 큰 뜻을 펴시는 날 제가 미력하나마 여기서부터 도울 것입니다. 부디 저를 환꽃 동지同志로 받아주세요.
크나 큰 비단종이에, 거두절미, 단 두 줄뿐이었다. “환꽃 동지?” 조영은 편지를 읽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환꽃은 배달겨레의 나라꽃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에 동지가 되겠다는 의미임이 분명했다.
환꽃의 숨은 뜻은 일편단심이다. 이래저래 “환꽃 동지”라는 말은 다의적多義的 어감을 풍기고 있었다. 조영은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다시 종이로 눈길을 돌렸는데, 넓은 지면의 맨 아래쪽에 다른 글이 씌어 있음을 발견하고 긴장했다.
그것은 한 편의 시문이었다. 자세히 읽어보고 조영은 크게 놀랐다. 그건 다름 아니라, 바로 여미아가 건네주었던 것과, 글자 한자 다르지 않은 동일한 시였기 때문이다. “연연세세”라는 시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어처 극시아가 이 시를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건 여미아가 지어서 그녀에게 은밀히 준 것인가? 아니면, 나만 몰랐던, 제 삼자의 시인가? 극시아가 이 시문을 여기에 적은 이유는 또 뭔가?’
여러 가지 추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영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조영은 일절 대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라 결론짓고, 그 다음부터는 어처 극시아가 혹시 눈에 띌까 두려워 북궁으로 들어갈 때는 아예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녔다.
하지만 며칠 되지 않아 그가 북궁 안을 거닐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공자님!”
그 목소리를 듣고 조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어처 극시아였다. 우울한 표정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공자님, 왜 연락이 없어요? 이것이 피한다고 될 일인가요?”
그녀는 바른 손을 내밀었는데, 편지지였다. 조영이 망설이다가 받아들고, 가슴이 떨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보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처 극시아는 지체하지 않고 제 길로 사라졌다. 조영이 집에 와서 편지를 펼쳐보았을 때, 거기에는 다른 아무런 글도 적혀 있지 않고 단지 한편의 시만이 얌전하고 고운 글씨체로 기록되어 있었다. 조영은 그 시를 읽다가 아연했다.
血 得 天 下 揚 世 名 혈 득 천 하 양 세 명
喜 見 萬 金 似 露 生 희 견 만 금 사 로 생
千 年 光 陰 擧 一 杯 천 년 광 음 거 일 배
別 有 眞 寶 三 七 中 별 유 진 보 삼 칠 중
천하를 피로 얻어 이름을 드날리고
만금 보아 기뻐해도 이슬 같은 인생이네
천년의 세월도 한잔 술에 지나가니
삼칠 중에 따로이 참 보배가 있느니라
그 시는 예전에 고가장에 있을 때 그의 조부가 여러 군웅들이 모인 자리에서 읊어주던 시다. 아니, 그것은 그의 조상인 대부여 해모수 임금의 책 <삼극팔괘무학三極八卦武學>에도, 청동단검의 전설이나 그가 일생에 겪은 기이한 일들과 함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시문이다.
조영은 기이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여미아는 말갈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극시아도 말갈여인일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우리 가문, 고려 황가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이 시문은 단군조선 이십이 세 색불루 임금의 작품으로서, 막조선莫朝鮮 땅 삼칠성三七城에서 막대한 금은보화와 함께 발견된 것이라고, 해모수 임금의 저술에 적혀 있었다.
색불루 임금(재위 서기전 1285-1238)은, 단군왕검의 4남 부여夫餘의 후손이다. 단군조선 21세 임금까지는 단군왕검의 장남 부루의 후손이 대대로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색불루 임금 때에 정권의 혈통 교체가 이루어져, 장남의 후손들이 밀려나고 4남 부여의 후손이 이때부터 단군조선의 정권을 잡는다. 그래서 이를 후단군조선이라 한다.
대부여의 해모수 임금도 부여의 후손이다. 고구려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고주몽은 해모수의 고손자다. 그러므로 고구려 황실의 직계 조상은 고주몽, 해모수, 색불루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색불루 임금의 조부가 단군조선 임금의 오른 팔, 즉 우현왕右賢王이었던 고등왕高登王이다.
그러므로 고구려인들은 단군왕검의 4남 부여와 고등왕을 자신들의 시조와 중시조로 삼고 해마다 부여와 고등왕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중국사서 <주서> 등이 전한다.
백제황실도 고주몽의 후손들이다. 그들의 시조도 단군왕검의 4남 부여에게로 소급된다. 그래서 가문의 성姓도 부여라 칭하고, 도읍지를 부여라 하며 도성의 산은, 단군왕검의 차남 이름을 따서 부소산이라 명명했다.
백마강을 곁에 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가 바로 거기다.
고조영은 해모수 임금과 고주몽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색불루 임금은 고조영의 직계 조상인 셈이다.
색불루 임금은 각각 천명신검天命神劍, 천명영검天命靈劍이라 명명된 청동단검 한 쌍을 제작해 검집에, 보물 은닉처를 암호수로 새겨놓았었다. 그 수는 다름 아닌 삼삼오륙칠칠三三五六七七이다.
조영도 부친 고중상이 사자를 보내 전달해준 천명신검의 복제품에서 이 숫자를 발견해 읽은 적이 있었다.
청동단검의 비밀이나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숫자, 그리고 색불루 임금의 시는, 고구려 황가 종실이나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것이었으므로, 말갈 여인, 당나라 황제의 어처 극시아가 이 시문을 적어 보냈을 때 조영이 아연실색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자기도 이 시를 잘 알고 있으니, 자기를 부디 멀리 하지 말아달라는 극시아의 암묵적 요청인 것 같기도 했다. 어처 극시아가 조영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은, 보통 이상인 것 같았다.
조영은 어처 극시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하다가 두 사람의 교류가 알려지는 날에는 양인의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정으로, 그는 지혜에 지혜를 짜보았으나 뾰족한 수를 찾아낼 수 없었다.
고조영은 후고구려국 고중상의 태자로서 당나라 황실에 갇힌 볼모였으니, 무태후의 시위 노릇을 자기 맘대로 그만두고 궁을 떠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가는?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극시아와의 관계가 탄로 나는 날, 모든 것은 끝장이다.
자신이 극구 피한다 하더라도 극시아가 한사코 자신에게 접근하니, 어떻게 막을 것인가? 조영은 미봉책이지만, 가급적 북궁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작심했다. 무 태후가 요청하더라도, 어떤 핑계를 대든 지금으로서는 금궁 안으로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안전했다.
그 후 한 동안 조영은 이런저런 구실을 들어 무 태후를 따라 북궁에 들어가지 않았고, 따라서 극시아와 조우하지 않았으므로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집에서 쉬던 날 조영은 극시아가 준 두 개의 시가 홀연 머리에 떠올라 두 시를 읊어보다가, 이상한 면을 발견했다. 색불루 임금의 시는 세상 영광의 허무함을 나열하고 참 보배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었다. 그 삼칠三七中에 따로 있는 참 보배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의 시였다.
“삼칠”이란, 삼삼오륙칠칠의 준말임이 분명했다. <별유진보>라는 시문과 함께 삼칠성 지하 석실에서 발굴된 금은보배 말고, 청동단검 검집 암호 속에 숨어 있는, 별도의 참 보배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여미아와 극시아가 공동으로 자신에게 건네준 그 시는, 마지막 행에서, 그리움을 불태워 세속을 씻으라고 말한다. 색불루 임금의 시에 나오는 세속 영화를 어떻게 씻어버릴 것인가? 그리움을 불태워서.
두 시를 상호 연결해 본 조영의 추론이 계속 전개되고 있었다.
그리움을 불태운다는 것은, 세속 영화에 대한 그리움을 불태워 없애버린다는 뜻인가, 아니면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불타오르게 한다는 의미인가? 전자라면 어의語義가 너무 싱겁다. 만일 후자라면?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불타오르게 하면, 세속적 욕망이 저절로 씻어진다는 것인가? 색불루 임금의 시는, 허무한 세속적 부귀공명에의 야망을 버리고 참된 보화를 찾으라고 권한다. 그렇다면, 세속을 씻고 즉 이 세상 부귀공명에의 야망을 버리고 “별유진보”를 찾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불태워야 한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가? 혹시 그리움을 불태워야 할 대상은, 색불루 임금의 그 “별유진보”가 아닐까? 하지만, 별유진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그 별유진보를 향해 막연한 그리움을 불태울 수 있단 말인가?
별유진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만, 비로소 그리움을 불태울 대상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조영의 결론이었다. 해모수 임금의 유작 부록에 의하면, 해모수의 어머니 묘고미향苗孤美香과 해모수가 잠정적으로 찾아낸 별유진보의 후보들은, 인간 자신의 영혼, 백성, 하나님의 천궁天宮(천국) 등이었다. 그 속에 답이 있는지도 몰랐다(<해와 같이 빛나리> 참조).
조영은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오랫동안 명상했으나, 고양원 대덕과 여미아에게서 들은 말 밖에는 달리 상기되는 게 없었다. 하늘의 임금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한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색불루 임금의 “별유진보”가 바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이고, 삼삼오륙칠칠은 그 존재를 가리키는 암호문이 아닐까?
하지만, 고대 근 이천년 전의 색불루 임금이 어떻게 해서, 불과 육칠백 년 전, 고려(고구려)의 유리명태왕瑠璃明太王 치세(서기전 19 - 서기 18)에 지중해변 유태인의 나라에 태어나셨다는 구세주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면 그건 우리 배달겨레 전통 신교神敎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암호수가 아닐까?
하지만 사람이 어찌, 마치 여인이 멀리 있는 낭군을 그리워하듯,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구주 예수 메시아께 대한 연모지정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도 조영에게 크나큰 난제였다.
만일 경승 고양원 대덕을 만날 수 있다면, 그에게 이런 문제를 다시 물어보리라 작심하고, 또 두 시문과 삼삼오륙칠칠 등에 대해서도 터놓고 의논해보리라 조영은 결심했다.
그가 한참 사색에 빠져있을 때, 시동侍童이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불시의 빈객에 놀란 조영은 즉시 일어나 옷매무새와 얼굴을 가다듬고 직접 대문 밖으로 나섰다.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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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2. 16. 봄정월,아직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