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예린은 콘서트를 본격 준비하던 두달 전부터의 긴장이 지금 이 순간 완전히 풀려버렸을게다.
이런 자세로 잠들기에는 힘들터인데 아랑곳없이 이 여자는 이렇게 온 몸을 내게 의탁하고 긴장을 풀고 깊은 휴식을 취한다.
아내 예린은 긴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애프터로 우리의 이런 순간에 희망을 두고 맹연습에 몰두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예린이 가정과 살림에는 관심없고 예술활동과 문하생 육성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재단하기도 했지만 누가 뭐래든 예린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가정, 정확히는 남편인 나였다.
교수직 진출에 이어 문화회관 대강당에서의 아내의 화려한 성공의 순간을 두 눈뜨고 지켜보면서, 그 성공의 원천이자 이유가 나였음을 나타내는 예린의 연설을 듣고, 또 장모님과 손윗처남과의 짧은 만남에서 그간 처갓집과의 대면대면했던 섭섭함이 한꺼번에 풀리며 내가 극도로 흥분한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린과의 만남에서 20여년이 흐르는 결혼생활 속에서 굳건했던 우리의 믿음, 은근한 방해와 냉소를 보냈던 처갓집, 예린의 타고난 탈랜트와 노력으로 장인의 경지에 오른 그녀의 성공과 이를 옆에서 외조하며 때로는 그녀의 그림자로서 살아야 했던 나의 역사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순간으로 카오스처럼 빨려들어가는 극도의 흥분 상태.
샴푸향을 머금은 뜨거운 수증기가 목욕탕 안을 가득채운 것도 모자라 내 두눈까지 침투하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느덧 목욕탕안의 플라스틱 타이머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욕조안의 물은 겨우 내 몸의 절반만을 채우고 있었을 뿐일 정도로 빠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그녀가 추위를 느꼈던지 깨어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아아, 평생 요대로만 있었으면 했는데, 물이 식고 빠져버렸네요”
예린은 비누거품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몸 그대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아내 예린의 손을 맞잡고 일어나 커플샤워기를 틀었다.
소나기같은 미지근한 물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온통 적시며 서로의 몸에 덕지덕지 묻은 거품비누를 쓸어내려 버리고 있다.
머리를 감고 서로의 몸에 비누를 묻혀준뒤 샤워기를 끄고 또 한번 아내 예린을 품에 안아본다.
미끌미끌한 예린의 몸이지만 비누로 인해 미끄러운 그녀의 유방마저 내 품을 그렇다고 빠져나가거나 놓쳐버릴 것 같은 불안은 없다.
아내 예린은 싱글벙글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건다.
“여보, 오늘 연주회 끝나고 집에 와서 연습실에서 정사한거 평생 잊어버릴 것 같지가 않네요. 10년전에도 그랬듯이, 그땐 연주회 전이었죠.”
“응, 그랬지, 그것도 좋았어”
“흥! 뭐가 그랬고 그것도 좋긴요?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다 잊어버려 놓고 기억하는척 하는거 다 알아요.”
대충 넘어가려다가 호되게 걸려 버렸다.
나는 결혼후부터 내 직업 이외에 도립합주단에 소속되어 있던 아내 예린의 운전기사겸 경호원겸 수행기사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가 예술단의 일년 7~8회에 달하는 정기연주회때 늘 동행하는 것이었다.
보통 토요일 예닐곱시에 시작이 되면 한시간 일찍 집합장소로 데려갔다가 아내가 챙겨준 청중석의 S석으로 가서 합주단 연주를 관람하고 끝나면 아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그러니깐 10년전 내 나이 42살, 예린이 35살때였고 결혼 10주년여행을 다녀온지 얼마 안되서였다.
내 사업이 궤도에 안착될 무렵이었고 아내 예린은 도립예술단에서 시립예술단으로 포지션을 옮긴 직후였는데, 아내가 예술단을 옮긴 이유는 시립은 도내 소도시보다는 근거지 시내연주를 중심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와 함께 주부 일과에 시간을 더 집중할수 있다는 기특한 이유였다.
여느 연주회때처럼 나는 아내 예린이 입으라고 한 옷으로 준비를 갖추고 1층 응접실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고, 이윽고 예린은 H형태의 비교적 간편한 연주용 드레스를 갖추어 입고 내 옆에 사뿐 앉았다.
당시 35살 아내 예린은 얼핏 갓 설흔쯤 되어보였지만 그렇다고 어려보이지도 않았고 유부녀 특유의 느낌이 완전히 배어 있었다.
잠시 앉아 있다가 둘이 같이 나가야할 찰나였는데 아내의 폰에서 짧은 수신음이 들린다.
“어머? 오늘 P대학 노천극장에 다섯시반까지 모이라네요? 원래는 다섯시였는데 그전의 다른 행사 정리하는 시간 때문이라고 악단 총무님이 전체 톡을 보내 왔어요”
“미리 가 있을까, 그럼?”
“가봤자 먼저 행사한 사람들 이리저리 치우고 있는거 구경해서 뭐하게요”
“P대학 근방에 예쁜 카페 많다고 하던데?”
“오호호호호! 당신 진심이셔요? 카페 데이트를 삼십분만 하게요? 대학가라 전부 젊은 애들 취향에 맞는곳 밖에 없어요.”
“그럼 집안 데이트를 삼십분만 하지 모”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고 바로 예린의 턱을 두손가락으로 걸쳐 올렸다.
예린의 얼굴은 진하지만 모나지 않은 단원 화장으로 덮여 있었고 입술에는 진한 누드컬러의 립스틱이 입혀져 있었다.
“지금 삼분짜리 데이트면 할만 하네요.”
“삼분이 삼십분이 될지는 내가 정하는 일!”
나는 입술을 포갤 것이라는 예린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의 목을 입술로 물고 쭈욱 흡입하기 시작했고 예린은 거긴 곤란하다는 식으로 한손을 휘이 저었다.
외출과 연주회 복장을 한 아내는 너무나 섹시했고 특히 혀가 너무 달았다.
바깥에서는 숲속 깊은 이름모를 새소리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고 실내의 나와 아내 예린의 서로의 거친 숨소리와 예린의 안타까운 신음은 그 창문을 넘어서 자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가지 마요, 여보, 이렇게 저랑 같이 있어주세요.”
“가긴 어딜 내가 간다고? 당신 연주회장에 데려다 줘야 하지 않나?”
그때서야 예린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고 그녀는 흩어진 머릿결을 매만지며 상체를 세운다.
내가 쇼파에서 부축해주자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백을 챙겨 마루 화장실로 들어간다.
옷을 다시 입고 머리를 가다듬고 화장을 다시 손보고 나온듯했다.
차고의 HG330에는 이미 뒷좌석에 가야금을 실어두었다.
실내주차장을 빠져나와 마당 30미터를 더 앞으로 가서 철제대문을 작동시키며 파썬을 열었다.
넓은 마당에 풀어 놓은 진돗개 약돌이 녀석은 따라가고 싶은지 끙끙거리며 차 꽁무니를 쫓아왔지만 문 밖으로 따라 나오진 않았다.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 숲속길을 서행하며 중간중간에 아스팔트 위에서 뛰어놀다 차적에 놀란 청설모 한쌍이 서둘러 옆의 나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예린은 깔깔대고 웃는다.
사유지인 우리 집 앞길에는 가끔 토끼도 나오고 너구리도 찻길 위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광역버스와 시내버스가 다니는 삼거리 앞이면 대형 철문과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우리의 사유지가 끝난다.
개폐장치를 작동시키기 전에 기어레버를 중립에 놓고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돌려 동시에 입술을 맞대고 몇 번을 서로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제 삼거리 우측으로 차를 돌려 달리기 시작하며 파선을 닫고 에어컨을 작동시켰다.
조수석의 아내 예린은 치마를 한번 다시 쓸어내리고 핸드백의 메이크업 팔렛을 열고 선바이져를 열어 거울을 보고 립스틱의 손상 여부를 체크한다.
그 다음에는 물휴지를 꺼내어 내 입술에 묻어난 그녀의 루즈를 닦아주었다.
P대학 노천극장에 도착했을 때 아주 정확한 시간이었는지 반 정도의 단원들이 먼저 도착해서 서로의 음을 맞추거나 재잘거리고 있었다.
아내 예린이 무대로 올라가기전까지 가야금을 메고 있는 머슴같은 역할은 나의 임무였다.
아내 예린을 먼저 알아본 단원들이 그녀에게 손짓을 했고 그녀는 여유있는 웃음을 그들에게 보이며 자신의 자리에 가서 착석한뒤 나더러 살짝 손을 들어 관객석으로 가 있으라는 사인을 보낸다.
주변의 여성단원들은 예린을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기혼여성단원들의 남편들이 아내들을 연주회장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가고 해주는 것 자체는 흔한 일이었으나 매번 연주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라이드뿐만 아니라 관객석을 지켜주는 가정은 우리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일부 질시하는 이들에게 내가 셔터맨 소리를 듣기도 했고 아내는 힘센 돌쇠 부리며 사는 마님, 공주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예술단 내에 그녀와 사이가 안 좋은 어떤 이들은 우리가 서류상으로만 결혼하고 실제로는 매니져겸 경호원겸 운전기사를 부리는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트리기도 해서 예린이 속상해 한적도 있었다.
진실이 아니었지만 진실을 말하려 한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자신들의 지레짐작과 상상의 나래만 따르는 이들에겐 전혀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샤워기 앞에서 물벼락을 맞으면서 예린과 정면으로 끌어안고 있던 나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듬성듬성 예린에게 그때의 경험을 하나하나 다시 예린에게 이야기했다.
“당신 몇가지 빠진 것 있어요, 그래도 큰 흐름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네요. 전 그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이 기억나고 이따금씩 혼자 웃게 만들거든요, 당신이 기억도 못한다면 저 혼자만 추억을 짝사랑하는거쟎아요?”
“응, 나도 가끔 그때 생각 떠올려”
“아오! 됐네요, 10년전 일 억지로 기억할 필요없구 매일매일 그런 추억을 만들면 되죠 뭐, 오늘처럼요!”
“그래 오늘처럼!”
우리는 약속한 듯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벼락을 맞으면서 호흡이 곤란할 지경까지 서로의 입술을 맞대었다.
온 몸의 긴장이 쭉 풀리고 아주 편안한 휴식을 장기간 취한 느낌으로 아침에 눈을 떴다.
푸른색 침실 커튼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다 막아내지는 못한 듯 했다.
허전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내 예린은 내 옆에 없었지만, 테이블엔 차가운 결명자차가 하나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내가 입어야할 팬티와 가을용 실내복들이 차곡차곡 개어 있다.
아래층에서 맛있게 뭔가를 볶는 냄새와 시레기 된장국을 끓이는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즐독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