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계속 영하고 걸프전으로 인해 기름이 보급되지 않은 것도 오랜 기간이 되고 병력들은 하루 중 부대주변에서 나무를 해서 나르느라 꽤나 분주했다.
눈내리는 비행장을 지나 우리는 본격적인 RCT에 들어갔다. 준비태세가 걸리기전에 군단측정관이 중대에 도착해 주특기 측정을 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상급부대의 교리가 하급 제대까지 전파되지 않았고 명확한 교리가 정립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었고 군단측정 때 일어났던 도판 작성사건과 유사한 경우였다.
보병장교도 포병장교도 잘 모르는 사각지대이고 그나마 포병장교가 통제관이고 계급은 주로 소령들이고 뛰어난 실력자들이긴 한데 일선의 지원중대가 처한 현실 보다는 자신들이 정립한 교리로 평가를 하는데 잘은 모르지만 각 부대의 교리가 너무나 다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사격지휘(FDC)의 경우 정립되고 전파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무튼 병장이 되서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내모습에 자신을 잃어 버리고 준비태세와 함께 예비진지로 출동을 하고 대상륙 방어훈련에 임하였는데 그 날은 예상외로 별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전통을 무선으로 전하던 윤상병이 연대장의 감청에 걸려 지적을 받고 우리도 그 사건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근처의 초소까지 유선을 연결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웠고 무전기 부족으로 상급부대와 교신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은 계속 문제로 지적되었고 우리에게 보급되어야 할 장비를 우리가 연대로 부터 받아내지 못한 책임도 있었다.
당시 고장난 장비를 원상 복구하려면 연대와 사단 정비대를 거쳐 부산의 정비창 까지 가야 하는데 갔다오면 1년은 걸린다는 말에 함부로 맏기지도 못했고 예비량이 없어 입고에 들어가면 우린 사용할 장비가 당장 부족했다.
그렇다고 인근부대에 똑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
부족분을 신청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신청해도 중간에서 업무과중으로 취소되어 버리고 아무튼 나는 사격도판을 보급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보급수송근무대에 간적이 있었다.
계원들은 자세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림으로 된 목록표를 보고 그런것이 있느냐 물었더니 잘 모른다는 말을 했고 그러면서도 있는 것 같다는 말에 보급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신청을 하라고 계원은 답변했다. 그러나 내 군수과 근무경험으론 그렇게 보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보급선임하사을 만나 살짝 떠 봤더니 그는 있는데 줄 수가 없고 부대에 있는 것을 가지고 오면 교환해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미지수라고 했다.
나는 중대에 당장 내려가서 인사계에게 보급대 선임하사 누구 아느냐고 했는데 인사계는 사단본부대에 근무했었기에 발이 넓어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쓰던 것을 가지고 갔더니 예상외로 인사계의 몇 마디 말로 새로운 사격도판을 두개나 보급받을 수 있었다.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우리가 쓰던 것은 선형척만 반납하고 가져와 버렸고 군생활 3년 동안 있어봤자 우리에게 제대로 보급되는 물품이 우엇일까 생각했다. 고참들이 늘 사격기재 소중히 다루라는 이야기를 실감했다.
그것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주는 것도 아니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모르겠으나 장비면에 있어서는 그런 것이 많았다.
인사계가 전출을 가버리고 우린 보급이나 부대후생복지에 많은 것을 고민했었다. 그일이 90년 11월이었다.
아무튼 대상륙 방어 훈련을 무사히 끝내고 우리는 OO산을 돌아 XX대대 지역에서 차단선을 치고 방어를 하는 해안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안대대장의 지시로 진지를 정하고 중대장과 나의 부사수 이상병은 연대TEC에 가고 없어 선태를 대대 CP에 보내고 나의 인솔로 도상의 진지를 찾아 도착을 했는데 병력들은 포방열보다 밤이 막 오기 시작하자 숙영지 편성에 정신이 없었고 나는 약식 화력계획을 만들어 대대CP로 식사추진차량을 타고 출발했고 방열를 잠정적으로 해놓긴했는데 시간이 없어 FDC사격제원표를 만들지 못해 FDC를 했던 106mm사수 김상병에게 지시를 해놓고 대대CP에 들렸더니 81mm 화력계획을 조정해 달라는 해안대대장의 지시에 시간이 흐르고 그때 통제관이 우리지역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리고 차도없이 함께 왔던 1.3종계원 박상병과 산을 넘고 저수지를 둘러 진지에 도착했더니 중대장이 먼저 와 있었고 지시 했던 사격제원표는 만들어 지지 않았고 병력들은 저녁 먹기에 바빳다.
나는 관측병들을 올라가게 하고 사격제원표를 막만들려 하는데 군단통제관이 들이 닦쳤고 FDC의 조명등과 사격제원표, 사격제휘소 설치시 등화관제를 못했다고 지적을 받고 전포대와 유선을 미설치 했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전포대도 등명구 불량으로 지적을 받았다.
FTX때 보다 더 난감했고 그때는 다른 것 보다 차량에 호로가 있어 각종 훈련시 그곳에 FDC를 설치하고 등을 만들었는데 해안대대장의 지시로 야전성을 높인다며 차량 호로를 제거를 한 탓에 우린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아무튼 재빨리 텐트로 사격지휘소를 만들고 중대장은 조명등을 하나 마련해 왔다. 부대에 있을때 불편함을 몰랐던 것들이 밤이되어 느껴졌고 지적받지 않아도 될 것을 지적받고 난 할말도 없고 나의 부사수 이상병만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혼자 연대TEC에 남아 고생을 하고 있었고 중대장에게도 죄스러웠고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밤새워 화력계획을 다시 만들고 늦게 잠이 들어 기상을 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하여 해안대대 CP로 갔다.
그런데 슬픈소식이 중대에서 와 있었다 106mm분대장 이상병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있었고 우리는 훈련때문에 아버지의 임종도 못보고 집에 가는 이상병에게 돈을 거두어 주고 그는 쓸쓸하게 훈련장을 떠나 집으로 갔다.
그날 주상이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두번째로 부대원의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이 닥친 것이었다.
우리는 예상 못한 OO산 지역으로 이동을 했고 한 시간내에 모든것을 수습할 여유도 없이 그곳에 도착하자 중대장은 다음 이동이 예정된 진지에서 꽤 먼곳에 장비를 내려 놓고 연대 TEC으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