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입니다. 세월 가는 것에 예민할 나이는 아니지만 거꾸로 가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생긴 숫자 세는 버릇 탓에 9월이라는 소리가 죽비(竹扉)처럼 울립니다. 앞에 어떤 부사(副詞)를 넣을 틈 없이 엄중합니다. 그 9월을 기차여행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봉하 음악회를 가는 KTX가 아닌 무궁화호 특별열차가 9월 1일 아침 11시 반에 서울역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음악회는 생일날에 기대어 열렸습니다. 예약을 받을 때 한참 비가 쏟아지고 있던 때여서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태풍이 말끔히 쓸고 간 먼지 없는 하늘에는 흰 구름이 널찍이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어 지나간 시간의 그 지독했던 폭염의 기억을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들녘에는 이제 서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벼가 들판의 색깔을 조금씩 바꾸어 가려하고 있었습니다. 아는 얼굴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출발 때부터 무너져 임종대 교수님과 황인성 대표님과 함께 조용한 소풍을 떠났습니다.
서울에서 떠난 사람은 570명이라는데 오후 4시 10분 쯤 진영역에서 내려 13대의 버스를 타고 봉하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노란 바람개비가 줄을 지어 들어오는 차와 사람을 맞아 주었습니다. 입구에서 노무현 대통령 생신 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란 떡을 먹으면서 다른 행사 때 보지 못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성이 많았고 가족단위 일행이 많았습니다. 좌석을 1800개 준비했다고 하고 채워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듯 1시간 전부터 입장을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늙은 축에 속한 우리들은 행사장을 멀리 보면서 사자바위 가는 길목의 바위 위에서 소주를 비웠습니다. 민주당 전주 경선 소식을 안주 삼아서. 그리고 예정 시간을 넘겨 입장을 하여 1800개의 자리의 두 배가 넘을 사람들 속에 서서, 나중에는 길거리에 앉아 장필순과 조관우 등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공식 행사를 빠지고 우리 편할 대로 움직인 덕분에 많은 여러 가지 사람들과 인사하는 번거러움을 면했고 그래서 여행은 소풍이 되었습니다. 미리 진양에 나와 밤 11시 55분 기차 출발까지 찻집에서 노래를 듣는 호사도 즐겼습니다. 새벽 4시 넘어 서울역에 내려서는 분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순대국을 안주로 하여 해장술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처음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담을 넘어 한진중공업 공장 안에서 하룻밤을 젊은 사람들과 보낼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런 모임은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굶주린 시대에 억압을 뚫고 일하는 운동권 문법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은 생명력을 같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하게 합니다. 이런 행사가 기존의 문화, 운동과는 “다른 문화, 다른 감수성, 다른 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9월 3일, 오전 11시에 마석 모란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빨간 띄를 두른 모자를 쓰고 같은 자켓을 입은 사람들은 바로 투쟁현장에서 온 노동자들이고 검은 신사복이나 문상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또 그만큼 무리를 짓고 있고 그밖에 옷차림의 사람들로 나뉘어 보입니다. 이소선 어머니의 1주기 추모식입니다. 노동계는 물론이고 노동자와 함께 해온 모든 분들이 오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참 많았습니다. 문득 큰 소리가 나는 것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헌화를 하려하자 해고 노동자들이 욕설을 하고 저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같은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옆으로 비껴 나오면서 문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안내 방송을 들으니 주차장에 도시락을 300개 준비했다는데 온 사람이 그 곱절은 되어 보여 더 같이 있을 엄두를 못 내고 얼른 자리를 떴습니다.
오후 6시에는 청게천 전태일 다리에서 이소선합창단이 개최한 1주기 추모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전태일 동상 앞에 어머니 영정을 놓고 바닥에 몇 십명이 앉아서 듣는 참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이소선합창단에는 정규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 예비 노동자들이 하나가 된 합창단입니다. 국립오페라단 해고 노동자들이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는 노래를 부르고 또 전체 합창단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듣고 1시간 만에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더 있고 싶고 더 있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1주기 추모 “토론회” 때 보았던 여럿을 그 자리에서 또 보았습니다.
그 추모 “토론회” 뒷풀이 자리에서 들은 곡진한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원풍모방의 박순희님이 전태삼씨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운이 없으신 어머니를 위해 밤을 삶아서 말려 가루로 만들어 드시게 하는 것을 보고 본인도 그렇게 어머님께 해 드렸더니 친척들에게서 효녀라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13살 여공시절부터 살아온 이력을 성공회대학교 석사논문으로 쓰신 분도 소개를 했습니다. 40년 넘게 어머니를 모신 장기표 선배는 자신보다 더 극진한 사람으로 이수호 위원장을 꼽았습니다. 자신은 명절 때 혼자 갔는데 이수호 위원장은 부인과 자식들까지 같이 인사드리러 오셨다는 겁니다. 전주에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분은 새누리당 경선대회장을 찾아가서 쌍용자동차를 지원하는 1인 시위를 하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40년 세월동안 그렇게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키워 가셨습니다.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간 뒤에 제 차례가 되어 “마무리”를 하라고 하셔서 시킨 대로 “마무리” 외치고 끝냈습니다. 그렇게 자리는 마무리 되었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9월 초로 정한 문제인 후보 초청 건은 진행이 없습니다. 9월 11일 광주전남시민사회가 초청한 모임은 오후 2시 광주NGO센터에서 있습니다. 시민사회연대회의의 정현곤 운영위원장이 발제를 하고 전민용 원장님이 토론을 하고 2부 사회를 정대화 교수님이 맡는다고 알려 왔습니다. 광주전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대선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이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6월민주포럼의 모임은 9월 20일인데 이날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은지 지혜를 구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딱 3개월 남은 시점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윤곽만이 아니라 내용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참석을 하실 분만이 아니라 못 오시는 분들도 의견을 주십시오. 그리고 남윤인순 의원이 민주통합당 혁신에 관하여 6월민주포럼의 의견을 들으러 오겠다고 해서 모임 뒷부분에 오시도록 연락을 할까 합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도 의견 주십시오.
그렇게 9월이 왔습니다. 이 한달 여러 가지가 형태를 분명히 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형태를 갖추어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