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번 | 산, 고개 이름 | 표고(m) | 행정구역 | 특기사항 |
| 양서종고 |
| (양평)양서 | 기맥 출발지 |
※ | 노적봉(露積峰) | 231 | (양평)양서 | 기맥 벗어남 |
| 벗고개 |
| (양평)양서, 서종 | 2차로 |
1 | 청계산(淸溪山) | 658.4 | (양평)양서, 서종 | 삼각점, 공터 |
2 | 말머리봉 | 500 | (양평)서종, 옥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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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옥산(玉山) | 577.9 | (양평)서종, 옥천 | 삼각점 |
| 농다치고개 |
| (양평)옥천 | 37번국도, 4차로 |
4 | 소구니산 | 799.9 | (양평)옥천 (가평)설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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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산(有明山) | 862 | (양평)옥천 (가평)설악 | 기맥 벗어남 |
※ | 대부산 | 742 | (양평)옥천 | 기맥 벗어남 |
| 배너머고개 | 640 | (양평)옥천 | 351지방도, 비포장 |
5 | 용문산(龍門山) | 1,157 | (양평)옥천, 용문 | 정상-군부대 우회 |
※ | 문례봉(폭산) | 992 | (양평)옥천, 용문, 단월 | 기맥 벗어남 |
6 | 단월산(丹月山) | 778 | (양평)용문, 단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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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싸리봉 | 812 | (양평)용문, 단월 | 삼각점 |
| 비슬고개 |
| (양평)단월 | 328지방도, 2차로 |
8 | 송이재봉 | 670 | (양평)단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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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배고개 |
| (양평)단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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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고개 |
| (양평)청운 (홍천)남면 | 44번국도, 4차로 |
9 | 갈기산 | 684.9 | (양평)청운 (홍천)남면 | 삼각점 |
| 발귀현 |
| (양평)청운 (홍천)남면 | 비포장도로 |
10 | 시루봉 | 504.1 | (양평)청운 (홍천)남면 | 삼각점 |
11 | 금물산 | 774 | (양평)청운 (홍천)남면 (횡성)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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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고개 |
| (홍천)남면 (횡성)공근 | 494지방도, 2차로 |
| 삼마치(三馬峙) |
| (홍천)남면 (횡성)공근 | 5번국도, 2차로 |
12 | 오음산(五音山) | 930.4 | (홍천)홍천,화촌 (횡성)공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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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마치터널 |
| (홍천)화촌 (횡성)공근 | 중앙고속국도 |
| 소삼마치(小三馬峙) | 505 | (홍천)화촌 (횡성)공근 | 임도 |
13 | 만대산(萬垈山) | 680 | (홍천)동면 (횡성)공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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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응곡산(鷹谷山) | 603.7 | (홍천)동면 | 삼각점 |
15 | 덕구산 | 652.2 | (홍천)동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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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목이 |
| (홍천)동면 | 406지방도, 2차로 |
16 | 대학산(大學山) | 876 | (홍천)동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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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수리봉 | 959.6 | (홍천)서석 (횡성)청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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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드래재 |
| (홍천)서석 (횡성)청일 | 19번국도, 2차로 |
18 | 운무산(雲霧山) | 980.3 | (홍천)서석 (횡성)청일 | 삼각점 |
※ | 봉복산 | 1,022 | (횡성)청일 | 기맥 벗어남 |
19 | 덕고산 | 1,125 | (홍천)서석 (횡성)청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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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삼계봉(三界峰) | 1,070 | (홍천)서석 (횡성)청일 (평창)봉평 | 영월지맥 분기점 |
21 | 청량봉(淸凉峰) | 1,052 | (홍천)서석,내면 (평창)봉평 | 춘천지맥 분기점 |
※ | 흥정산(興亭山) | 1,278.5 | (평창)봉평 | 기맥 벗어남 |
※ | 회령봉(會靈峰) | 1,331 | (평창)봉평 | 기맥 벗어남 |
22 | 보래봉(寶來峰) | 1,324.3 | (홍천)내면 (평창)봉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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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두령(雲頭領) | 1,089 | (홍천)내면 (평창)용평 | 31번국도, 2차로 |
23 | 계방산(桂芳山) | 1,577.4 | (홍천)내면 (평창)용평 | 최고봉, 정상석 |
24 | 뾰지게봉 | 1,358.7 | (홍천)내면 (평창)진부 | 오대산국립공원 |
25 | 호령봉(虎嶺峰) | 1,561 | (홍천)내면 (평창)진부 | 오대산국립공원 |
26 | 비로봉(毘盧峰) | 1,563.4 | (홍천)내면 (평창)진부 | 오대산 최고봉 |
27 | 상왕봉(象王峰) | 1,491 | (홍천)내면 (평창)진부 | 오대산국립공원 |
| 두로령(頭老嶺) | 1,310 | (홍천)내면 (평창)진부 | 446지방도, 비포장 |
28 | 두로봉(頭老峰) | 1,421.9 | (홍천)내면 (평창)진부 (강릉)연곡 | 백두대간 분기점 |
어느 분이 정리를 잘 해주셨네요.(비솔고개는 345번지방도라던데...)
감사한 마음으로 떼어다 붙입니다.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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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江陵市)
강원도 영동지방 중심부에 있는 시로 동해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 경계지역은 대부분 고산지를 이루고 있다. 영동지방의 행정·문화·경제·교육의 중심을 이루어 왔다. 전국 10대 관광권인 설악산권에 속해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했다. 강원도 내 지정문화재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 명주군과 통합시를 이루어, 관광산업을 기반으로 지역개발이 이루어졌다. 행정구역은 주문진읍·성산면·왕산면·구정면·강동면·옥계면·사천면·연곡면·홍제동·중앙동·옥천동·교1동·교2동·포남1동·포남2동·초당동·송정동·내곡동·강남동·성덕동·경포동 등 1개읍 7개면 13개동이 있으며, 시청소재지는 시청로이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비롯하여 그 이후의 역대 관찬 사서 및 지리지에는 삼국 이전의 강릉을 예(濊)나라, 한사군 시대에 임둔군, 고구려 때의 하서량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대동지지〉에는 본래 진한의 땅이라고 기록, 강릉을 예국·임둔군·동부여 등으로 보는 설을 부정했다. 즉, 강릉은 본래 진한의 하슬라국이었다가 뒤에 신라가 점령하여 하슬라주 군주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6세기 이후에는 신라의 영토가 되어 639년(선덕왕 8)에는 북소경을 두었고, 658년에는 말갈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고 주(州)를 만들어 도독을 파견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명주도독부로 이름을 바꾸고 9군 25현을 관할하게 했다. 이때 동제현·지산현·정선현 동산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에 들어 936년 동원경이라 했다가 940년 다시 명주로 바꾸었다. 그후에도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1012년 명주군방어사가 되어 동계에 속했으며, 이때 우계현·정선현·연곡현을 속현으로 관할했다. 1260년에는 공신 김홍취의 고향이라 하여 경흥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강릉부로 개칭됨으로써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1389년에는 대도호부로 승격했다. 조선에서도 강릉대도호부가 유지되고 영동지방의 중심역할을 계속했다. 1666~75년, 1782~90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강릉부가 되어 강릉군 등 9개군을 관할했으나 1896년 13도제 실시로 4등군이 되어 강원도에 소속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였던 대화면·진부면·봉평면이 평창군으로, 임계면·도암면이 정선군으로, 내면이 인제군으로 이관됨으로써 대관령 서쪽, 오대산 주변지역을 잃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북일리면·북이리면·남일리면 등 3개면이 군내면으로 통합되어, 1917년 강릉면으로 개칭되었고, 1931년 강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 강릉읍·성덕면·경포면이 통합되어 강릉시로 승격되었고,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개칭했다. 1995년 배후 생산지 기능의 명주군과 소비지로서의 강릉시가 통합되어 도농통합시가 되었다. 1997년 옥천동 일부를 성남동에, 포남동 일부를 옥천동·초당동에, 옥천동·입암동·초당동·송정동 일부를 포남동에, 입암동·병산동·학동 일부를 월호평동에, 견소동 일부를 병산동에 각각 편입시켰다. 이듬해 1998년에는 중앙동·임당동을 중앙동으로, 장현동·노암동·월호평동을 강남동으로, 입암동·두산동을 성덕동으로, 유천동·죽헌동·운정동·저동을 경포동으로 개편했다. 2001년 12월 명주동에 있던 시 청사를 홍제동으로 이전했다. 2006년에는 월호평동 일부를 학동으로 편입시켰고, 2007년에는 금학동·임당동 일부를 옥천동으로, 2009년에는 성산면 금산리 일부를 홍제동으로 편입시켰다. 2009년 사천면 방동리 일부를 대전동으로, 대전동 일부를 사천면 방동리로 편입시켰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해와 접하고 있다. 지세는 대체로 험준한 내륙의 고산지대(해발고도 500m 이상), 해안주변에 발달한 평야지대(100m 이하), 이들 사이의 중산간지대(100~500m)로 3분된다. 서쪽 내륙에는 이 지역의 북쪽 경계로부터 철갑령(1,013m)·두로봉(1,422m)·동대산(1,434m)·옥녀봉(1,146m)·노추산(1,322m)·석병산(1,055m) 등의 고산이 연이어 솟아 있으며, 중심시가지는 마명산(94m)·모산봉(104m)·시루봉(73m)·태장봉(108m) 등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지를 이룬다. 서쪽 경계지역과 왕산면의 대부분은 고산지대에 속한다. 구정면·성산면·사천면 및 북쪽의 연곡면과 주문진읍은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구릉지와 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해안 곳곳에 석호가 나타난다. 해안 서쪽은 중산간지대로 특히 동남부에 위치한 강동면과 옥계면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같은 서고동저형 지세로 인하여, 거의 모든 하천들이 서쪽 고산지대에서 발원하여 중산간지대를 거쳐 동해로 유입한다. 주요 하천으로는 남대천이 이 지역의 중앙을 가로질러 동해로 유입하며, 북쪽에는 오대산맥의 연봉인 동대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연곡천이 있다. 연곡천연안의 중산간지대에서는 소금강·삼대폭포 등이 절경을 이루며, 이를 벗어나면 주변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해안에 이르러서는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밖에 연곡천과 남대천 사이에는 사천천이 흐르며, 남대천 이남에는 군선강·낙풍천)·주수천 등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유입한다. 하천에 의해 운반된 백사는 해안에서 연안조류와 파랑의 작용으로 사취·사주 등을 형성하나,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주문진에서 옥계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해송으로 우거진 해안사구가 분포하며, 석호인 경포호가 있다.
교통은 1960년대에 영동선과 태백선이 완공되었고, 1975년 영동고속도로와 1979년 동해고속화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여객·화물수송이 편리해졌으며, 영동지방 교통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그밖에 속초로 연결되는 7번 국도가 있으며, 주문진에서 오대산으로 연결되는 6번 국도, 강릉에서 임계로 이어지는 35번 국도가 있다.
* 평창군(平昌郡)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군으로 백두대간과 한강기맥 분기점에 위치해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고랭지채소 재배가 주로 이루어지며 옥수수·감자·배추 등이 생산된다. 횡계리 일대에는 목축업이 활발하다. 또한 오대산과 대관령, 용평 스키장 등 관광자원을 중심으로 동해안과 연결된 관광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평창읍·대화면·대관령면·미탄면·방림면·봉평면·용평면·진부면, 계촌 출장소 등 1개읍 7개면 1개 출장소 89개 동리가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군청길이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어 산간지역인 이 지역에서 사람의 거주가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예맥국의 영역이었다. 삼국시대에 들어 고구려(또는 신라라고도 함)의 영역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백오현(白烏縣)이 되었다. 고려초에 지금의 이름인 평창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초인 1392년(태조 1)에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의 비 효경왕후 이씨의 고향이라 하여 평창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평창의 별호는 노산(魯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충주부 평창군, 1896년에 강원도 평창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동면을 정선군으로 이관하고, 강릉의 두입지였던 대화면·진부면·봉평면을 합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북면·남면·북면이 군내면으로 통합되었다. 1917년에 군내면이 평창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정선군에서 도암면이 편입되었으며, 1934년에는 대화면이 대화면과 방림면으로 분리되었다. 1979년에 평창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에 진부면에서 용평면이 분리되었다. 1960년대 이후 고랭지채소농업의 증가, 1970년대 이후 산지개발정책의 전개에 따른 축산업 발달과 목장의 증가 및 영동고속도로 개통, 1980년대 용평지역의 대규모 관광지 개발과 관광에의 관심 고조 등으로 지역의 변모가 촉진되고 있다. 1998년 면온·수항·유천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07년에는 도암면의 명칭이 대관령면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평창올림픽은 아시아에서는 3번째,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이다.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의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는 동북쪽의 오대산(1,563m)을 비롯해 1,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의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험한 산들이 군내 전역에 남북으로 연이어 있으며, 남부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약간 낮은 편이다. 백두대간이 뻗어내린 동쪽에는 선자령(仙子嶺, 1,157m)·고루포기산(1,238m)·장군바위(1,140m)·노인봉(老人峰, 1,338m)·발왕산(發旺山, 1,458m)·옥녀봉(玉女峰, 1,146m)·박지산(博芝山, 1,394m)·가리왕산(1,561m)·청옥산(靑玉山, 1,256m) 등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으며, 대관령(832m)이 위치하고 있다.
한강기맥이 지나는 북쪽과 서쪽에는 보래령(寶來嶺)·회령봉(會靈峰, 1,309m)·흥정산(興亭山, 1,277m)·태기산(泰岐山, 1,261m)·청태산(靑太山, 1,200m)·계방산(1,577m)·사자산(獅子山, 1,120m)·백덕산(白德山, 1,350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도암면 횡계리 주변을 비롯한 군의 일부 중앙부에는 고위평탄면이 발달해 고랭지농업과 축산업이 이루어져 주민의 생활근거지가 되고 있으며, 백석산(白石山, 1,365m)·백적산(白積山, 1,141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무동산(舞童山, 633m)·노성산(魯城山, 400m)·옥녀봉(玉女峰, 590m)·삼방산(三芳山, 980m) 등의 1,000m 이하의 산들이 솟아 있다.
계방산에서 발원하여 군의 남북을 관류하여 남한강에 합류하는 평창강은 속사천으로도 불리며 남류하다가 봉평면에서 흥정천, 대화면에서 대화천, 방림면에서 계촌천과 합류하여 평창읍에 이르러 심하게 곡류하며 영월군에 흘러든다. 두로봉(1,421.9m)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진부면을 지나 명주군에 흘러가며, 군의 동북부를 흐르는 송천은 황병산(黃柄山, 1,407m)과 선자령의 분수계를 기점으로 심하게 곡류하면서 도암면을 관류하여 정선군으로 유입한다. 군내를 흐르는 대부분의 하천들은 감입곡류하천으로, 주변에는 좁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부에는 석회암지층이 분포하여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했다.
* 홍천군
강원도 중서부에 있는 군으로 홍천강을 끼고 있으며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연봉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지세가 동부는 높고, 서부로 갈수록 점차 낮아진다.도내에서도 특히 산이 많고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다. 홍천읍·화촌면·두촌면·내촌면·서석면·동면·남면·서면·북방면·내면 등 1개읍 9개면 105개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석화로이다. 홍천잣이 특산물로 유명하며 대추 밤 송이버섯도 생신된다. 산이 높고 물이 맑아 피서지로 적합하나 관광사업 개발이 부족한 편이다.
동북부에는 백두대간이, 동남부에는 한강기맥이 뻗어내려 해발 1,000m 이상의 전형적인 산지지형을 이룬다. 구룡덕봉(九龍德峰:1,388m)·약수산(藥水山:1,306m)·응복산(膺伏山:1,360m)·두로봉(頭老峰:1,422m)·오대산(五臺山:1,563m)·계방산(1,577m) 등이 동쪽 경계를 이룬다. 중부에 아미산(峨媚山:961m)·백우산(白羽山:895m)·공작산(孔雀山:887m), 서부에 매화산(梅花山:752m)·금확산(金確山:655m)·종자산(種子山:581m) 등이 솟아 있고, 서쪽 끝에는 영춘지맥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경기도 가평군과 자연경계를 이룬다. 하계망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홍천강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 유역과 내린천(內麟川)을 중심으로 한 동부 유역이 그것이다. 홍천강은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산에서 발원하여 내촌천이라고 불리면서 흐르다가 북부 중앙의 매봉(800m) 기슭에서 발원한 장남천(長南川)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에 유입한다. 한편 내면 명개리 망월봉에서 발원한 소양강은 계방천이라고 불리며 북서류하다가 자운천 등과 합류하여 내린천이라고 불리면서 인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하천이 일대의 기반암을 침식하여 홍천읍·내촌면·동면·북방면·화촌면을 포함하는 홍천분지를 이루었다. 분지 내에는 5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하천 연안에는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홍천강 유역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어 매우 오래 전부터 이 일대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벌력천현이었다가,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벌력천정을 설치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녹효현으로 개칭되어 삭주도독부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 940년(태조 23)에 홍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홍천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동안에도 유지되었다. 별호는 화산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춘천부 홍천군, 1896년에 강원도 홍천군이 되었다.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38°선 이남에 있던 인제군의 인제면 등 3개면을 홍천군에 편입했으나, 6·25전쟁 때 인제군이 수복됨에 따라 1954년에 남면과 인제면을 다시 인제군으로 환속했다. 1963년에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풍천리가 홍천군 북방면·화촌면으로 편입되었고,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었다. 한편으로는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에, 남면 상창봉리는 횡상군으로 이속되었다. 1983년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되었고, 두촌면 천치리는 천현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5년 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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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주차장(上院寺) → (4.7km) → 북대사(北臺寺) → (1.4km) → 두로령(頭老嶺/1,234m) → (1.7km) → 두로봉(頭老峰/1,421m) → (1.7km) → 두로령(頭老嶺/1,234m) → (1.1km) → 북대사갈림길 → (0.8km) → 상왕봉(象王峰/1,491m) → (2.3km) → 오대산비로봉(五臺山毘盧峯/1,563m) → (2.1km) → 호령봉(虎嶺峰/1,561m) → (0.7km) → 동피골갈림길 → (1.9km) → 1,314.2봉 → (0.4km) → 갈림길(헬기장/1,265m) → (1.5km) → 1,282.3봉 → (1.9km) → 활산목이갈림길(1,374m) → (0.7km) → 뽀지개봉(1,358m) → (1.6km) → 사거리안부 → (0.2km) → 1209봉 → (1.8km) → 1462.3봉 → (0.7km) → 1494봉 → (0.6km) → 소계방산갈림길 → (0.9km) → 계방산(桂芳山/1,577m)
계방산(桂芳山/1,577m) → (0.8km) → 1492봉 → (3.3km) → 운두령(雲頭嶺/1,089m) → (2.1km) → 삼면봉(三面峰/1271.8m) → (2.6km) → 1247.9봉 → (1.0km) → 보래령(寶來嶺/1,090m) → (1.2km) → 보래봉(寶來峰/1,324.3m) → (2.7km) → 회령봉(會靈峰)갈림길(1,287m) → (1.7km) → 자운치(慈雲峙/1,000m) → (2.3km) → 1,204봉 → (1.3km) → 흥정산(興亭山)갈림길(1,215m) → (1.0km) → 불발령(佛發峴/1,013m) → (1.16km) → 청량봉(淸凉峰/1,052m)
청량봉(淸凉峰/1,052m) → (1.38km) → 장곡현(長谷峙/960m) → (6.8km) → 구목령(九木嶺/950m) → (3.4km) → 삼계봉(三界峰/1,105m) → (0.86km) → 덕고산(德高山/1,125m) → (1.22km) → 1094.2봉(상봉) → (1.2km) → 봉복산(鳳腹山) 갈림길(1,031m) → (0.5km) → 봉막재 → (2.4km) → 원넘이재(698m) → (0.9km) → 운무산(雲霧山/980.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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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서 한강기맥이 갈래치는 두로봉입니다. 노인봉과 관련이 있을까요? 두로봉에서 북진하는 수풀로 들어서면 띠이띠이~ 경고 경보가 울리며 출입금지를 알리는 방송이 나옵니다. 야간에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는~
♤ 두로봉(頭老峰/1,421.9m/한강기맥 분기봉)/ 삼면봉(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강릉시 연곡면)
한강기맥을 서진(西進)하는 출발지로 이곳에서 비로봉 쪽으로 마루금을 이어가게 되어 한강기맥을 시작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분기되는 한강기맥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에 의미를 둔다. 예나 지금이나 두로봉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쪽은 '출입금지' 경고판이 건재하다. 언제나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을까.
상원사입구에서 홍천 내면 명개리로 이어지는 임도길의 정상입니다. 운두령보다 더 높군요.^^
♤ 두로령(頭老嶺/1,234m)/ 명개리에서 임도를 따라 차량이 닿는다.
두로령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사이에 있는 고개다. 동산리와 명개리 사이에는 두로봉과의 안부(鞍部 :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를 통하여 교통이 이루어진다. 오대산 안에 위치한 고개이고, 오대산으로 등반하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 지방도 제446호선이 이곳을 통과하게 지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고, 오대산 일대가 국립공원인 까닭에 노선지정이 해제되었다. 오대산의 탐방로로서 걸어서 건널 수 있지만 봄철에는 산불 방지를 위해 출입이 통제된다.
상왕봉에 이르기 전 북대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습니다.
상왕봉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구름과 벗하는 산책길입니다.
주목나무 군락지도 많이 보이는군요.
♤ 상왕봉(象王峰/1,493m)
백두대간의 줄기인 한강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동쪽에 두로봉(頭老峰/1,422m), 서쪽에 소대산(小臺山/1,270m), 남서쪽에 오대산의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1,563m), 동남쪽에 동대산(東臺山/1,434m) 등이 솟아 있다. 오대산국립공원의 중심을 이루는 봉우리로로 사방이 비교적 급경사이다. 동남쪽 기슭에는 북대사, 남쪽 기슭에 상원사·중대사·적멸보궁 등이 있다. 동쪽 사면으로는 지방도가 지나며,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서쪽이 장령(長嶺), 북쪽이 상왕(象王), 남쪽이 기린, 동쪽이 만월, 복판이 지로·풍노인데, 다섯 봉우리가 고리처럼 벌려 섰고,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현재 상왕봉이 속한 오대산에 대한 기록으로, 당시까지는 상왕봉이 상왕산이 불렸으나 언제 상왕봉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전해지는 바가 없다. 상왕봉의 높이는 1,493m이고, 제3고봉(高峰)으로 정상부위는 평평하며 시계조망이 양호하다. 2004년 조사에 의하면 상왕봉 아래의 초원지대에서 흰참꽃, 설앵초, 네귀쓴풀, 백리향, 솔나리, 구름송이풀 등의 희귀성 고산성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북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는 소양강(昭陽江)의 지류인 계방천(桂芳川)의 수원을 이루고, 남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남한강의 지류인 오대천(五臺川)의 수원을 이룬다.
상원사입구에서 임도를 따라(저는 중간에 지름길을 이용) 두로령으로 가기 전에 북대 미륵암을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편한 임도길이니 미륵암에서 물을 준비해 두로령에 놓아두고 두로봉을 다녀와야 합니다.
두로령 아래 남쪽계곡으로 내려가면 물을 찾을 수 있으나 ... 급하게 뜨느라 깨끗하지 못하고 부유물이 보여 께림찍 했습니다. 운두령까지 2.5리터면 가능합니다.
♤오대산(五臺山, 1,563.4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경계에 있는 산
한강기맥상에 있으며, 강원도 강릉시,홍천군, 평창군의 세 개 시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오대산 자락에 있는 월정사와 상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월정사의 말사인 상원사는 6.25 때 소실될 위기에 처했으나 주지의 기지로 살아남았다. 신라시대 725년에 주조한 현존 최고의 청동종인 상원사 동종과 고양이상(실제는 사자상)이 있다.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대산(東臺山: 1,434m)·호령봉(虎嶺峰: 1,1560m)·상왕봉(象王峰: 1,493m)·두로봉(頭老峰: 1,421.9m) 등 5개의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 사이사이로는 중대(中臺: 지공대, 사자암)·동대(東臺: 만월대, 관음암)·서대(西臺: 장령대, 수정암)·남대(南臺: 기린대, 지장암)·북대(北臺: 상삼대, 미륵암) 등 5개의 평평한 대지인 오대(五臺)로 둘러싸여 있어 오대산이라고 했다. 또한 중대·동대·서대·남대·북대는 각각 문수보살·관음보살·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지장보살·아라한(阿羅漢) 등이 상주하면서 설법하던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대산은 다섯개의 대가 있어 오대산이라는 설이 있고, 다섯 봉우리로 형성되어 오대산이라는 설이 있다. 1975년 국내 1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택시비 3만원입니다. 버스는 3천원인데 첫차가 09:05분에 있습니다. 45분 걸리니 10시에나 출발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월정사입구에서 입장료 5,000원 받습니다. 기사님이 시키는 대로 뒷자리에 엎드려 있었네요. ㅋ)
♤ 상원사(上院寺)
오대산의 중대(中臺)에 있다. 705년(성덕왕 4)에 창건하여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다. 이 진여원은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의 두 왕자가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에 들어간 두 왕자 가운데 형인 보천은 중대 남쪽 진여원 터 아래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北臺)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 두 형제는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고 오대에 나아가 항상 공경스레 예배를 드렸으며, 날마다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 차(茶)를 달여 1만 진신(眞身)의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공양하였다. 마침 신라의 왕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오대산으로 와서 두 왕자를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보천은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으므로 효명을 모시고 서울에 돌아와서 왕위에 추대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705년 3월 8일 진여원을 처음으로 세웠다. 그 뒤 보천은 오대산을 나라를 돕는 신행결사도량(信行結社道場)으로 만들 것을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진여원에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낮에는 《반야경》과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문수예참(文殊禮懺)을 행하게 하였다. 또, 결사의 이름은 화엄사(華嚴社)라고 하였고 복전(福田) 7원(員)을 두게 하였으며, 그 경비는 가까운 주현(州縣)에서 주었다고 한다.
한분 계시네요. 사진 찍어 드리고... 바쁠 때는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 하며 사양할 때도 있습니다.
2등삼각점으로 비로봉 정상석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편리상 조금 아래에 마련해 둔듯 합니다. 요즘 올빼미에서 탈탈 털리고 계신 산타님 리본이 자주 보이네요.^^
♤ 오대산 비로봉(五臺山 毘盧峯/1,563.4m)
금강산 毘盧봉-(밝을 비, 밥그릇 로), 치악산 飛蘆봉-(날 비, 갈대 로), 묘향산 毘盧봉, 오대산 비로봉, 소백산 비로봉 '비로'는 불교에서 '높다'는 뜻으로 쓰인다. '비로(毘盧)자나'는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의 몸의 빛을 뜻하고 '비로(毘盧)자나불'은 법신불을 뜻한다. '비로(毘盧)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말한다. 비로봉은 그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즉 최고봉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아예 그 봉우리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치악산의 비로봉 역시 최고봉이지만 (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르다.
비로봉에서 호령봉까지 1시간 걸리는데요. 국립공원 줄입금지 지역이라 원시림이 살아 있습니다. 삵도 보이고, 바로 옆에서 낮잠을 방해받은 멧돼지 콧김이 씩씩~ 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만 숲이 우거져 보이지 않으니 갈길로 내뺍니다.
호령봉 정상에 누가 우산을 놓아두고 가셨네요. 헬기장에서 둘러보는 전망이 가히 환상적입니다.
산마루에 구름이 많이 걸쳐져 있죠. 소금강이 있는 노인봉~황병산구간 백두대간 길입니다.
가야할 길이 보이네요. 정면으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계방산입니다. 기맥길은 왼쪽에서 능선을 따라 계방산을 오릅니다.
북쪽으로는 갈전곡봉 뒤로 제일 멀리 설악산이 보입니다.
♤ 오대산 서대 우통수(于筒水)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는 오대산 능선 1,200m의 서대 수정암 입구에 있는 우통수는 속리산 삼파수, 충주 달천과 함께 조선의 3대 명수이며 오랫동안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다. 빛깔과 맛이 변함이 없고 중국의 양자강과 같다하여 샘에서 발원한 강을 한강(漢江)이라 하였다 한다. 권근이 쓴 '오대산 수정암 중창기'나 홍만종이 지은 <소화시평>에는 오대산이 한강의 발원지임을 암시하는 시를 찾을 수 있다. 또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샘이며, 금강연이 발원지이고 봄, 가을에는 지방의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대목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는 물론 조선후기까지 많은 지리지에서는 우통수와 금강연이 한강의 시원지로 기록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통수와 금강연이 한강의 발원지로 규정되고 난 후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해 이이, 허목, 김창흡 등 유자(儒者)들이 오대산을 찾았다. 오대산을 유람하는 이들은 반드시 우통수와 금강연에 대한 시나 기문을 남겼다. 서대의 우통수를 비롯하여 중대의 옥계수(玉溪水), 동대의 청계수(靑溪水), 북대의 감로수(甘露水), 그리고 남대의 총명수(聰明水)가 오대천을 따라 흘러서 모이는 곳이 금강연이다. 월정사와 금강연은 잇대어 있다고 하지만 옛글에서 말하는 그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연을 두고 "오대산 월정사 곁에 있으며, 사면이 모두 반석이고 폭포는 높이가 열 자이다. 물이 휘돌아 모여서 못이 되었는데, 용이 숨어있다는 말이 전해온다"고 하였다. 미수 허목(1595~1682)의 문집 '기언'(記言)에 남아있는 '오대산기'의 마지막에 월정사 아래에 있는 금강연이 한강의 원류라고 하고 있다. 미수가 어찌 우통수를 몰랐을까 그는 오히려 우통수를 신천(神泉)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으니 굳이 그것 하나를 한강의 물줄기로 본 것이 아니라 오대의 모든 물길을 한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로 본 것이며 그 물줄기들이 모이는 금강연이야말로 한강의 발원지라고 한 것이다.
또, 조선시대 지도에서도 금강연과 우통수 표기를 찾을 수 있는데, 금강연이 표기된 지도는 11종, 우통수가 표기된 것은 5종, 우통수와 금강연이 동시에 표기된 지도는 5종이며, 이 가운데 고산자 김정호가 순조 34년(1834)에 제작한 '청구도'에는 한수지원(漢水之源) 이라고 표기돼 있다. 그러나 1987년 국립지리원에서 재 실측 결과에 따라 태백의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가 되었다.
전망대가 좋은 곳이 나오더군요. 북쪽으로 바라봤습니다. 제일 멀리 설악산이 보입니다.
계방산과 우측으로 소계방산입니다.
11:35분, 4등삼각점인데 444번호가 특이해 찍었습니다. 도엽명은 비로봉과 같은 연곡입니다.
고개긴 한데 이름이 없네요. 며칠전 올빼미에서 다녀갔는데도....
뽀지기봉 안내판에 글씨가 사라졌어요. 내면의 투시경으로 알아서 잘 가시라!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 뽀지기봉(1,358m)/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척천리와 홍천군 내면 광원리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헬기장과 삼각점(△도암 301 2005 재설)이 있다. 예전에는 공비 침투루트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지도상에는1,358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뽀지개봉/뾰루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대산에서 계방산에 이르는 능선은 동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의 복귀루트였다. 험준한 설악산을 우회하여 월북하기 위해서는 오대산에서 좌틀하여 계방산을 넘고 홍천을 지나, 인제 접경지를 통해 월경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1968년 12월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이 우리 군에 쫒기던 중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에 이르러 이승복가족을 살해하고, 1996년 강릉 안인진리에 침투한 잠수함사건의 무장공비 또한 이 루트를 이용하여 월북을 기도하다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에서 민간인 3명을 살해하였다.
♤ 방아다리약수
방아다리약수는 오대산의 상당부분이 포함된 오대산 남쪽 입구 초입인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서 북쪽으로 12㎞ 되는 곳에 있으며, 일대의 지형이 디딜방아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과 강제 징병을 피하려던 사람들의 운둔처였다고 할 정도로 까마득한 산골 오지이다. 조선 숙종 때 발견된 탄산약수터로 철 이온이 섞여 있고 속병에 좋다고 한다. 일대 계곡은 진고개를 중심으로 오대천·연곡천 계곡으로 나눌 수 있으며, 오대천계곡(五臺川溪谷)은 월정사에서 적멸보궁을 잇는 10㎞를 말한다. 우리나라 약수라 하면 강원도 춘천, 인제, 양양, 홍천, 평창, 이 지역에 대부분 있다고 보면 된다. 유명한 오색약수부터 추곡약수, 방동약수, 개인약수, 삼봉약수, 구룡약수, 방아다리약수, 신약수, 갈천약수, 불바라기약수 등 경상북도 낙동정맥 일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약수가 이 다섯 군데에 몰려 있다. 늘씬하게 쭉쭉 뻗은 전나무와 잡목들로 우거진 숲과 수려한 계곡미가 뛰어나다. 쌉쓸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강한 방아다리약수가 발견된 데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한 노인이 병으로 고생하다 꿈을 꾸었는데, 산신령이 이 곳에 땅을 파고 마시면 나을 거라고 해서 발견되었다는 전설과, 어느 화전민이 바위의 움푹 패인 곳에 곡식을 넣고 방아를 찧으려는 찰라, 바위가 갈라지면서 물이 솟았다는 전설이다.
부뜰이운영자님이 고생해서 걸어둔 산패입니다. 아는 체는 해야겠고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눈까리 심벅거리게 찾다가 거의 다 포기할 지점에 있었습니다.^^
♤ 1462m봉, 1464.2m봉에서 5분 거리 아래에 있다.
♤ 주왕지맥이란
한강기맥의 운두령에서 계방산(1,577m)을 지나 6.5km 지점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산줄기는 백적산(1,142.5m), 잠두산(1,244.1m), 백석산(1,364.8m), 중왕산(1,381.4m), 청옥산(1,257m), 삿갓봉(1,054.9m), 성안산(838.6m), 십자봉(634.2m), 접산(835.3m), 발산(674.4)을 지나 영월 동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지맥에서 가장 높은 중왕산은 가리왕산의 줄기로서 주왕산이라고도 부르며 주왕산의 이름을 따서 주왕지맥이라 부르며 지맥의 총 거리는 약 86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 주왕지맥 개념도
드뎌 오대산 출입금지 지역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서 노동리 자동차극장으로 내려가는데요. 지도에 옹달샘표시가 있으니 물이 부족하다면 잠시 내려갔다 오신다면...
♤ 계방산(桂芳山/ 1,577.35m)/ 삼면봉(평창군 진부면-용평면, 홍천군 내면)/ 연방산(燕方山)
운두령에서 계방산으로의 등산로가 평창군 진부면-용평면, 홍천군 내면의 경계를 이룬다. 등산로에서 만난 안내표지판에는 ‘계방산은 계수나무 계桂자에 꽃부리 방芳을 써 계수나무 향기가 나는 산’이란 뜻이라고 돼 있지만 계수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평창군청에 문의해 보니 향토사학자 정원대씨를 소개해 준다. 정씨는 용평파출소장직을 역임하고 은퇴한 후, <평창향토 문화를 찾아서>, <평창별곡>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계방산은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강원도 홍천군 내면, 평창군 용평면ㆍ진부면에 걸쳐 있으며 백두대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겨울철 설경이 백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고개 중 함백산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운두령이 있다. 한강기맥의 고봉으로 주변에는 오대산을 비롯하여, 백적산(白積山, 1,141m), 태기산(泰岐山, 1,261m), 방대산(芳臺山, 1,436m) 등이 솟아 있다. 북으로는 설악산(1,708m), 남으로는 태백산(1,657m)을 이어주는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인근의 오대산(1,563.4m), 발왕산(1,485.8m)과 함께 이 지역 일대의 식생을 대표한다. 이 산의 일부는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의 학술조사 결과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계방산에는 칡이 자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계방산에서 산신령이 말을 타고 달리던 중 칡넝쿨에 걸려 넘어져 화가나서 부적을 써서 던진 이후부터 칡이 없어졌다고 한다. 수계는 북쪽 골짜기에서 계방천이 발원하여 내린천(內麟川)으로 흘러들고, 남쪽 골짜기에서는 남한강의 지류인 평창강(平昌江)이 시작된다.
계방산에서 운두령으로 내려서다 전망대에서 북쪽 설악산 쪽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 약간 좌측으로 방태산과 개인산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계방산에서 서쪽 방향입니다. 풍력발전기 한 기가 서있는 운두령과 가야할 방향의 보래령,보래봉 회령봉, 흥정산.....
지나온 오대산의 비로봉과 호령봉의 모습입니다. 계방산에 이르는 동안 전작권 이양의 빌미를 제공한 현리전투의 패전을 떠올렸습니다. 간신히 하진부리까지 살아 돌아온 군인들은 백마고지전투에서 대부분이 희생되었다네요. 김종오장군을 영웅으로 만들고, 백마고지 전투는 승리전이었기에 영웅화되었고, 그 앞에 오성산전투는 더 많은 폭격을 퍼부었음에도 중공군들이 개인호를 파고 들어가 숨는 바람에 결국은 뺏지 못했습니다. 그 뒤쪽으로 평강고원으로 뻥 뚫려 있으니 북쪽에서도 사력을 다해 사수를 하였겠지만...
♤ 한국전쟁 현리전투
우리 민족은 5,000년 역사 속에서 침략을 받기도 하였고 침략을 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전쟁을 했지만 7년 동안 왜군에게 국토가 유린당한 임진왜란과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항복했던 병자호란 그리고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3대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 관련 커뮤니티 등에선 고구려의 비류수전투, 임진왜란의 용인전투와 칠천량해전, 병자호란 쌍령전투와 더불어 최악의 패전 중 하나로 현리전투를 꼽기도 한다.
현리전투는 1951. 5. 17.~25. 사이에 인제 현리 지역에서 벌어진 한국국 제3군단과 중국인민해방군 9병단 6, 12군단 사이에 벌어진 희대의 패주극이다. 제2차 춘계공세 당시 중공군은 서부전선 돌파가 여의치 않자 동부전선을 붕괴시켜 서부전선의 연합군 주력을 포위하려는 작전을 시도했고, 그 목표가 된 곳이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주둔한 인제였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지였던 상남면 오마치(오미재, 500m)고개가 중공군이 공세 개시와 함께 돌파한 인제를 통해 30km를 내달려 온 1개 수색대에 의해 기습 점령 당한다. 당시 한국 육군 3군단은 오마치라는 단 하나의 고개로 후방과 이어지고 있었다. 군단장 유재홍이 군 연락기를 타고 도주하고 후방의 퇴로가 막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대로 된 전투도 없이 현리에 있던 한국 육군 전 병력은 병사부터 장군까지 지휘관들은 계급장을 떼어내고 한순간에 부대 체계고 뭐고 없는 채로 방태산 속으로 살아남기 위해 도주했다. 결국 수만명의 낙오병으로 전락해 1만 9천여 명의 장병들이 희생됐고, 중화기는 모두 빼앗겼다. 작전도 없고 지휘도 없는 발걸음이었으며 군단본부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산속 곳곳에 쌓아두고 그나마 이런 주먹밥을 얻은 사람들은 굶주림을 면하고 하염없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3군단 본부에선 홍천 내면 창촌에서 병력을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패주 행렬이 창촌에 왔을 때는 소수 중공군 부대가 이미 길을 막고 있었다. 이로 인해 창촌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사기가 떨어진 한군국 병력은 다시 후퇴했고, 결국 운두령과 오대산을 넘고넘어 남쪽으로 내려가 하진부리에서야 겨우 수습되었다. 작전개시 3일만에 70km를 도망쳐 동부전선 전체가 붕괴되기 일보직전에 달한 전투이다. 당시 3군단장 유재홍, 3사단장 김종오준장, 9사단장 최석준장이었다. 군단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로 진부면 하진부리와 속사까지 패주한 5. 20일까지 수습된 병력은 37%, 대포 등 중장비는 거의 잃어버렸다고 한다. 5. 23일부터 반격작전이 시작되자 그때까지도 쫄쫄 굶어가며 산속을 헤매고 있던 한국군 낙오병들이 대규모로 수습되었고, 그 결과 27일까지는 병력의 약 70%와 장비의 30%를 수습할 수 있었다.
운두령이 내려다보입니다.
뒤쪽으로 가야할 한강기맥 능선도 보이고요.
공평하게 오른쪽은 홍천에서, 왼쪽은 평창에서 운영한답니다. 왼쪽 평창집을 운영하시는 분은 노동리에 있는 송어횟집 '솟대와 하늘' 안사장님이라네요.
♤ 운두령(雲頭嶺, 1,089m)/ 홍천군 내면, 평창군 용평면/ 은두의령(銀豆儀嶺)
평창군이 소개해준 향토사학자 정원대씨의 말에 따라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를 확인해 보니 계방산뿐만 아니라 운두령의 명칭도 달랐다. 지도상의 한자는 은두부령銀豆付嶺이다.
계방산(桂芳山) 자락에 있는 고개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의 경계에 위치한다. 해발 1,089m로 남한에서 자동차로 넘나드는 고개 중 함백산 만항재(1,330m)와 싸리재(1,268m) 다음으로 높다. 항상 운무(雲霧)가 넘나든다는 뜻에서 ‘운두령(雲頭嶺)’이란 지명이 유래하였다. 계방산을 오르는 기점의 하나로, 해발고도가 높아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계방산을 쉽게 오를 수 있다. 31번국도가 지나며, 이승복기념관을 지나 노동계곡 입구부터 홍천 방면으로 경사와 굴곡이 심한 운두령 고개가 시작된다. 정상에는 평창군에서 마련한 쉼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홍청군 내면과 서쪽으로 회령봉(會靈峰)을 조망할 수 있다.
운두령에서 약 1시간, 비교적 수월하게 삼면봉에 올라 뚜렷한 삼거리 갈림길에서 띠지를 보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특별한 표시가 없어 여기가 삼면봉인가보다 하고 지나쳐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 삼면봉(三面峰, 1,271.8m)/ 삼면봉(홍천군 내면, 평창군 용평면-봉평면)
평창군 봉평면, 용평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라 삼면봉(三面峰/1271.8m)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흥정산갈림길까지 마루금은 서쪽을 향해 달린다.
19:51분, 헬기장도 지나고...
20:11분, 보래령 이르기 전인데 날이 어두워 갑니다.
♤ 보래령(寶來嶺/1,090m)/ 홍천군 내면, 평창군 봉평면
홍천군 내면 창내에서 평창군 봉평면 보래골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보래령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이 고개 아래로는 보래령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한적한 고개가 되어버렸다. 보래봉 남쪽에는 이 봉우리의 이름을 딴 보래골 또는 보래동이 있고 남쪽에는 덕거리 마을이 있는데 「조선지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예전엔 홍천군 내면에서 봉평장으로 가는 큰 고갯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운두령이 차도로 바뀌면서 사람의 통행이 끊어진 고개이다.
보래령에서 보래봉까지 1.2km에 고도300m 쳐올려야 합니다. 찐빵 3개로 힘든구간.... 40분 소요
보래봉, 회령봉갈림길, 흥정산갈림길을 지나며 선들바람이 부는 야간에 시원하게 걸었습니다만 한낮에 걸을려면 땀말깨나 쏟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보래봉(寶來峰/1,324.3m)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홍천군 내면으로 연결되는 봉우리로 진한의 태기왕이 신라의 침입을 받아 태기산으로 보물을 가지고 이 봉우리를 넘었다하여 보래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1,273m, 회령봉갈림길입니다. 알바하지 말라고 선답자들의 무수한 시그널이 매달려 있네요. 한강기맥길은 여기서부터 청량봉을 지나 태기산으로 갈라지는 영월지맥 삼계봉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의 경계를 따릅니다. 산밑으로 흥정산에서 발원하여 1천여 미터가 넘는 고산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깨끗한 계곡수가 흥정리, 원길리, 창동리, 평촌리, 백옥포리, 유포리에 까지 이어져 흥정계곡을 이룹니다.
♤ 회령봉(會靈峰, 1,331m)
봉평면 북단의 덕거리에 위치한 회령봉은 한강기맥 주능선 1273m봉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서 1km 남짓 뻗어가다 능선상에 솟구친 봉우리로 흥정산과 더불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꼽히지만 한강기맥 주능선 상의 보래봉(寶徠峰, 1324.3m)과 더불어 오래도록 홀대를 받아오다 최근 몇 년 사이 기맥 종주산행이 붐이 일면서 이름도 얻고 등산객들도 찾아들기 시작한 봉우리이다. 두 산 모두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강원도의 오지 산 중의 하나로 자연미 넘치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낙엽송과 잡목, 진달래와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장쾌한 조망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부드러운 육산으로서 강원도 오지의 심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산길은 대체로 뚜렷하나 숲이 짙으므로 길 찾기가 쉽지 않고 더덕이 많기로 유명하다. 회령봉과 보래봉은 높은 산이면서도 유순한 산세와 능선을 지닌 산으로 산악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오염이 되지 않은 산이다. 거기다가 전형적인 육산으로 무리하지 않는 산행을 할 수가 있어 겨울철 심설 산행코스로 아주 적격인 산이다. 흰눈으로 덮인 능선에는 설경이 압권이고 환상적인 설화는 산악인들을 감동 시키며 이웃한 계방산에 비해 찾는 사람이 드물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더욱 좋다. 맑은 날 이곳에서는 운두령으로 이어지는 지나 온 산줄기와 그 뒤로 계방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금당산과 청태산, 대미산, 덕수산이 하늘 금을 이루며 선명하게 바라보이며 남서쪽으로는 태기산과 왼쪽으로 휘닉스파크 스키장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22:28분, 봉평 411 삼각점
자운치 좌측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던데... 자운치 이르기 전에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리더군요. 자운치에서는 바빠서 찾아보지 못하고 지났습니다.
♤ 자운치(慈雲峙/1,000m)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에서 홍천군 내면 자운리 도장골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1,215m, 흥정산갈림길입니다. 여기에도 앞서가신 선배님들의 무수한 시그널이 걸려져 있네요.
♤ 흥정산(興亭山,1,279m)
백두대간 오대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가는 한강기맥이 계방산 운두령 보래봉을 거쳐 계속 서쪽으로 이어져 가다가 봉평면 흥정리에 이르러 남쪽으로 가지를 뻗어 2km지점에 솟은 산이다.
흥정산은 봉평면 소재지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둔내쪽으로 3km쯤 가다 무이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물줄기를 거슬러 8km 이상 올라야 산기슭에 닿을 정도로 오지에 위치해 있다. 흥정산에서 발원한 흥정계곡은 5km에 이르는 구간에 걸쳐 사계절 맑은 물만으로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감동받을 수 있으며 냉수성 어류인 송어, 산천어 등 다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노선버스도 무이교 입구까지만 가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고, 그로인해 찾는 이가 많지 않으며, 그런 만큼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흥정산 서남쪽 흥정계곡은 열목어가 서식하는 일급수가 흐르는 오지였으나 무이교에서 임도 차단 철문에 이르기까지 8km 길이의 흥정계곡에 펜숀이 지어지면서 펜숀촌으로 탈바꿈해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펜션촌이 되어 버렸다. 흥정산 산길은 단순하다. 흥정산 정상은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동쪽으로 산행기점으로 오는 사이 지나친 삼거리 마을(흥정분교 폐교가 남아 있는 마을)에서부터 자운치에 이르기까지 양쪽에 높은 산을 끼고 길게 이어지는 골짜기와 그 너머 우뚝 솟은 회령봉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흥정계곡쪽 조망은 정상보다는 남서릉 중간에서 바라보는 게 더 좋다. 흥정산 산행은 5시간 정도면 충분히 마칠 수 있다. 식수는 곧은골 일원의 펜션에서 구하는 것이 좋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직후에는 눈길이 뚫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곧은골 일원의 펜션에서 눈길 여부를 확인하고 산행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맑은 계곡을 배경으로 자리한 허브나라 등 흥정계곡을 찾는 방문객은 연간 5만을 달하는데, 이효석의 <메밀꽃필무렵>의 배경지인 봉평지역에서 율곡선생의 사당인 봉산서재와 양사언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팔석정 등과 함께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불발령에서 장곡현까지 임도로 우회가 가능(약 3km, 1시간 소요), 능선보다 전망이 좋다지만 청량봉을 우회할 수는 없지요. 그것도 한밤중에 야경도 아니고 전망이 있을 턱이 없으니...
미리 써놓은 후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흥정산갈림길을 올라가면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바쁜 걸음으로 불발령에 도착했네요.
불발현 정자에서 배낭에 다리를 올리고 비닐봉지로 신발을 묶어 배개로 배고, 랜턴과 핸폰을 충전기에 연결하고, 얇은 바람막이를 입고, 예비용 양말을 덧신고, 우의를 덮고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스틱으로 배를 누르고 잤는데 추워서 자는둥마는둥이었습니다. 두시간 쉬고 일어나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네요. 운두령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할 때만 하더라도 비올 확률이 자정 전에 30%, 자정 이후 20% 였는데,,, 청량봉을 걸쳐 장곡현으로 가는 산길이 2.5km로 임도보다 짧기도 하고 유명한 청량봉을 그낭 우회하기도 어려웠지만 자다 깨서 추운데 물에 흠뻑 젖는 풀숲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않아 임도를 우회하다보면 그칠 수도 있겠지 기대를 걸어보며 우회길을 택했습니다.
♤ 불발현(佛發峴, 1,052m)/ 불발령/ 초가정자
강원도 홍천군 내면 자운리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넓은 임도 삼거리가 있고 좌측 언덕위에는 최근에 산림청에서 설치한 산악기상 측정장비가 있고, 멋진 초가정자가 있으며, 박정렬 여사의 살신모자 표지판이 있다. 불발현은 아름다운 숲길이라 하여 산악자전거, 투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걸어서 넘어야 했던 험준한 고갯길이었다. 불발령은 옛 진한(辰韓)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불바래기재, 불발재 불발현(火明峴,火明嶺)등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종의 축약어인 셈인데 화공을 펴라는 뜻이었는지, 불을 밝혀 경계를 강화하라는 뜻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산 중턱 마을의 지명이 '화명동'(火明洞)인 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닌 듯하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인지 불당(佛堂)이 있어 지명이 유래했다고 "불발현(佛發峴)"으로 최근에 둔갑을 했다고 한다. 한편, 한국전쟁 전초전이라 불리는 불발령 사건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전투하는 국군들의 식사를 전담해서 이 고갯마루까지 지고 왔다고 하고 동학농민 항쟁때 동학군들도 이 고개를 넘어 최후의 격전지인 자작고개로 갔다고 하는 유서 깊은 고개마루다.
♤ 홍천 서석면 동학농민항쟁 관련 기사 참고 ☞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77279
* 서석거리다: "하찮은 욕심으로 정상적 진행에 어려움을 주다" 이런 신조어가 생겨날듯~
홍천경찰서는 불법 택시영업을 단속하고,
서석면사무소는 임도를 관리하고 개인택시를 확보해야 하는데...
앞선 분들의 후기를 종합하니 주민들은 구목령 임도에 안전을 이유로 차단기를 설치해 자물쇠를 잠궈놓고, 위험천만한 트럭으로 등산객을 실어나르는 행태를 벌이고 있다네요.
♤ 홍천군 서석면(瑞石面)/ 서석면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영업용 택시가 한 대도 없다.
강원도 홍천군 중동부에 있는 면으로 백두대간 한강기맥이 면내까지 이어져 대체로 400~1,000m의 높고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곳곳에 응봉산(1,103m)·아미산(961m)·수리봉(960m)·운무산(980m)·동막산(731m) 등이 솟아 있다. 서봉사·미약골·운무산 계곡은 맑고 깨끗한 물과 깊은 계곡에 둘러싸여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미약골 계곡은 홍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홍천의 내면, 서석면 일대에는 강원도 동학농민군 최후의 항전지로서 농민군 수천명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역사적인 고장이기도 하다. 고종 31년(1894) 교조신원운동의 실패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포악한 정치가 원인이 되어, 동학접주인 전봉준이 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게 하자는 내용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홍천 지방에서도 농민 운동이 크게 일어나 농민군의 일부가 관아를 공격하고자 산에서 내려와 장야촌까지 진군하였으나, 관군 총사령관 맹영재와 싸워 동학군 30여 명이 전사하였다. 여기에서 패한 동학군은 풍암리에 집결하여 최후의 항전지인 자작고개에서 김숙현을 중심으로 관군과 싸웠으나 끝내 패하여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하고 말았다. 1976년 자작고개에서 지역 주민들에 의해 유해 더미가 발견되었는데, 당시 사망자를 800여 명으로 추정하지만 부상자를 함께 묻었다고 하니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도 풍암리 주민들은 전투에 동학교도로서 참가하였다가 전사한 사람들의 제사를 음력 10월 20일부터 수일간 많은 집이 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동학군전적기념비(지방기념물 제25호)가 있으며 매년 6월 동학문화제를 개최한다.
청량봉에서 구목령까지 약 8.5km는 오르내림 없는 편안한 길이다.
♤ 청량봉(淸凉峰/1,052m)/ 산불감시초소/ 삼면봉(홍천군 내면-서석면, 평창군 봉평면)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서석면이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청량봉은 영춘지맥 중에 춘천지맥의 갈림봉으로서 산이름을 갖지 못했었는데 한강기맥에서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이 분기하는 큰 의미를 가진 봉우리가 무명봉으로 남아있는 것을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아시고 서석면 청량리라는 지명에서 착안하여 청량(淸凉)이라는 신선한 이름을 지었고, 산객들 사이에 구전되다 홍천군에서 비공식적으로 게시판이나 이정표 등에 그 이름을 쓰고 있다. 현행 지형도에는 명칭 없으나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현재의 지점에 청량산(淸凉山)이 나온다. 이곳 청량봉은 영춘지맥 중 춘천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한 중요한 봉우리이며, 이곳에서부터 구목령을 걸쳐 삼계봉까지 한강기맥과 영춘지맥이 겹쳐지는 구간이다.
♤ 춘천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하뱃재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응복산(1,103 m),백암산(1,099m),가마봉(1,192m),소뿔산(1,118m),가마봉(925m),매봉(800m),가리산(1,051),대룡산(899m),응봉(759m),연엽산(850m),꼬깔봉(421m),봉화산(515m),새덕봉(488m)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춘천지맥 개념도
♤ 홍천강
홍천강(홍천강)은 북한강의 여러 지류 중 제일 크다. 강원도 홍천군과 춘천시, 양평군을 서류하며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옛 이름은 홍천 남천(남천)이며 고구려 때의 홍천 이름을 따서 벌력천(벌력천), 녹요강(녹요강), 화양강(화양강)이라고도 불렀다. 한강의 제2지류인 북한강의 제1지류이며 길이 143km이다.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산에서 발원해 내촌천(내촌천)이라고 불리며 흐르다가 두촌면 남쪽에서 장남천(장남천)을 합하고 남서쪽으로 흘러 야시대천(야시대천), 풍천천(풍천천), 덕치천(덕치천)을 차례로 합류한다. 홍천읍을 지나 물길을 서쪽으로 바꾸면서 오안천(오안천), 성동천(성동천), 어룡천(어룡천), 중방천(중방천)을 차례로 합친 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춘천시 남면 관천리 경계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흥정리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장곡현 바리케이드까지 올라옵니다. 왼쪽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 장곡현(長谷峙/960m)/ 불발령에서 장곡현까지 임도와 마루금이 동행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와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임도삼거리에서 왼쪽 임도차단 철문(바리케이드) 500m 아래로 내려가면 물을 구할 수 있다.
핸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걸 보니 비가 그친 모양입니다. 여명이 밝아지는 전후로 집중되어 약 세시간 정도 쏟아지네요.
멀리 삼계봉에서 갈래치는 태기산의 풍력발전기가 보입니다.
비가 막 그친터라 산아래 흥정계곡 팬션촌 일대 경관이 좋네요. 바람 불고 체감기온이 무척 낮아 우의를 벗지 못하고 구목령까지 갔습니다.
구목령에 도착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이른 시각에 구목령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석면 피리골 임도를 따라 하산을 하였습니다. 구목령 도착 이전, 먼드래미재까지 계산을 해봤는데 24.7km로 착각을 했어요. 빵도 2개뿐이 남지않았고... 16.1km였는데 아마도 비를 맞아서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나봅니다. ㅠㅠ
임도길을 따라 내려오며 후회막급이었고, 앞뒤좌우로 살펴봐도 도저히 여기서 끊을 일이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물이 막 날려고 합니다.
♤ 구목령(九木嶺/950m)/ 구나무재/ 홍천군 서석면, 평창군 봉평면
구목령은 구나무재라고도 하는데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를 넘나드는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오랜된 고목이 아홉그루가 있다고 해서 구목령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목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진행하면 흥정계곡 상류 쪽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측 피리샘터가 더 가깝다. 봉평면 흥정리 방향에는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열려있는 상태이다. 고개를 넘어 우측의 생곡2리에서 좌측의 흥정리로 임도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포장 도로로 트럭만이 운행 가능하다.
♤ 구목령 피리샘터
홀로산꾼에게는 생명수와 다름없는 구목령의 피리샘터입니다. 홍천군 서석면 생곡2리 피리골입니다. 피리처럼 골짜기가 길어서 생곡(笙谷)입니다. 그래서 피리샘터라고 했는가요. 구목령에서 생곡리쪽으로 200m 내려오면 임도가 좌로 크게 휘어지는 부분에서 우측 산길로 들어서면 보입니다. 샘이 아니라 계곡물이네요. 여기서 물 보충이 없으면 먼드래미재까지 가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운두령에서 물 공급을 예상했고, 운두령에서 피리샘을 예상하고 2.5리터를 짊어지고 왔습니다.
- 구목령에서 생곡리로 내려서는데 트랭글 궤적을 찾아보니 계곡을 따라 지름길을 선택한 분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추워서 계곡 트레킹은 어림도 없었구 그럴만한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배나무골 쉴만한물가 팬션을 빠져나와 피리골 이장집으로 보이는 트럭이 있는 농가도 지나고...
피리골은 봉평 흥정계곡으로 터널을 뚫느라 도로작업이 한창이고 시멘트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터덜터덜 생곡슈퍼까지 걸어갈 작정으로 걸어가다 도로공사 하는 관계자와 만나 생곡리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하고 물어보니 약 7km 정도 된다며 조금 후에 덤프차라도 타고 가라고 하시네요.
이런저런 이바구를 나누다가 횡성에 있는 보해건설회사라던데 작업감독 하시는 분이 승용차로 생곡슈퍼 까지 태워주십니다.^^
생곡슈퍼에서 캔맥 한잔 콘 한입 베어물고, 버스를 기다리며 피리골로 들어가는 다리를 바라봅니다.
아하! 영동고속도로 북쪽으로 기맥을 형성하는군요.
청량봉에서 구목령까지 난이도는 약하지만 찐빵이 많고, 비가오니 앉아서 쉴 수도 없고 가며서며 얼마나 졸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후기에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후답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선답자의 글이기를 바라며, 또한 저의 자료는 산을 사랑하는 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한 공유가 가능합니다.
첫댓글 한강기맥 먼길 수고 많이 하셨네요
요세 날씨도 더운데 저는 영혼 까지
아주 찰지게 털리고 있네요 ㅎㅎ
산타님도 이제 젊음을 벗어나 노숙해지는 단계에 이르신게지요.^^
그래도 즐겁지 않습니까?^^
용문산 종주 도중 중원산 알바하며 산타님 예전 띠지보고 믿고 갔다는 분이 계셔서 조금 웃었습니다.^^
그곳에서 길이 팍 꺽여지는데 말이죠..^^
젊음과 생소함 보다는 이젠 노숙함에서 오는 완숙미가 더 노련해 보이는 시기입니다. 마음껏 더 즐기세요.^^
일구(1+9)마치시고 한강기맥에 마침내 첫발을 내 디디셨네요.
산줄기 진행을 향한 또 다른 여정의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차분히 펼쳐질 멋진 추억담 기대됩니다.^^
불발현 정자에서 비박하시면서 ~
구목령 내려서시면서 먼드래재로 향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셨지만...
우리산하 항상 머물러 있기에 서둘지 마시고 쉬엄쉬엄~ 즐기면서 가세요.
문득 구목령에서 생곡마을 까지 하염없이 걷던 옛 생각이 절로 나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에이원방장님! 격려말씀 감사합니다.^^
한 30분 내려와서야 제정신이 들었는데 발걸음을 되돌리기란 이미 늦었습니다.
방장님도 구불구불 그 긴 임도를 따라 내려오셨군요. 여길 걸어올라가느니 7만원이라도 아깝진 않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홍천시내에서 피리골 끝까지 택시비+동네이장 트럭 운임비 합하면 10여만원 훌쩍 날라가네요.^^
한강기맥 입문을 축하드립니다 말만들어도 벅차는 두로봉 한강봉 계방산 운두령 춘천지맥분기점 청량봉 구목령등 눈에 선합니다 구목령 트럭도 이용하고 걸어서도 내려오고 접근이 만만치 않았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선배님 띠지 군데군데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준령고봉의 산세가 역시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세르파선배님 응원의 용기에 힘입어 꺾이지 않고 이어붙이겠습니다.^^
1대간9정맥이 마무리 되니 이제 기맥으로 마음이 향하셧네요^^
저도 한강기맥은 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냥 천천히 시간 될때
하려고 생각중입니다.^^
팁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떵꺼 쓸려서 아플때면 화장지를
살짝 끼워 둡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조금 아프다가 말짱해 지더라구요 ^^
진행하시는 한강기맥 안전하고 즐겁게 걸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약수동에서 치질수술을 받았는데도 치루인지 치핵인지 오래 걷고 뒤처리를 하면 피가 묻어납니다. 심한건 아닌데 조금 쓰린 정도로요.
다류대장님! 전수대로 담번에 생체실험을 함 해보겠습니다. 이번 중탈 원인도 그 놈이 수괴급인 중죄인입니다. ㅋ
이제사 진드기 신고합니다. 그동안 무릎 뒤쪽 오금이 따끔거려 무릎보호대를 해서 피부 발진인가보다 했는데 뭔가가 걸려 떼어내보니 진드기입니다. 장장 3일이나 붙어있었네요. 야를 어째해야 할까요?
저도 몇년 전에 호남정맥 할 때 진드기에 물렸었는데 그 다음날 겨드랑이가 이상해서 봤더니 진드기가 살 속 깊숙히 박혀 있더라구요,
집에서 파낼려고했는데 아프기만 하고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어서 집근처 대학병원 응급실( 그때가 일요일이라)에 가서 떼어내고 왔었습니다....ㅎ
저도 이제 남은 한남 과 금북만 끝내면 다 끝나는데 언제 끝날 지 모르겠네요. 정맥 끝내고 저도 한강기맥 시작하려고 생각중인데,
교통편에서부터 자세하게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아 후답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길잡이 같은 산행기입니다.
한강기맥 할 때 많이 읽고 공부좀 하고 가야겠습니다....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감악산형님! 올만에 오셨습니다.^^
외국에 사업체를 두고계신지 많이 바쁘신가 보죠.
전에 아이거북벽에 가신다고 준비하신거 같았는데~
한북 할때 철원 태봉국 궁예와 마찬가지로 이쪽은 태기산에서 신라 박혁거세와 싸운 태기왕이 자주 나타납니다.
정사는 없고 야사로 전해지는 모양 같습니다.^^
저는 헤드랜턴이 배낭 안에서 눌려서 켜지지 않도록 락앤락에 넣어다닙니다.
락엔락 무게는 어쩌구요~^^
초코파이를 락엔락에 넣고 다니고 싶어도 쓰고 버리지 못해 갈등입니다.^^
무게는 있지만 뭐든 하드케이스에 넣어야 되겠더군요. 철야산행을 밥먹듯이 하는데 헤드랜턴 하나가 아웃되면 산행을 망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헤드랜턴을 2개씩 휴대하는데 얼마 전에 야간산행 중 헤드랜턴 대가리가 똑 부러졌지만 여분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독산행에서 헤드랜턴, 안경, 휴대폰 등은 여분이 필요합니다. 소황병산 조난 때엔 여분 휴대폰이 없었으면 구조대를 못 불렀습니다.
한강기맥을 먼드래재까지 계획하셨는데 순간의 실수로 구목령으로 하산을 하셨군요.
올라갈일이 깜깜 하겠습니다.
그래도 뚜벅뚜벅 가다보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우리는 운두령에서 먼드래재까지 두구간으로 했는데 산악회를 이용해서 용달차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444번 삼각점은 한남 오두지맥에도 있습니다
원래 104.5봉에 있었는데 맞은편에 94.6봉으로 이설 되였습니다.
우측에 것이 104.5봉에 페기되여 뽐혀 있는 것이구요 좌측에 것이 104.5봉에서 94.6봉으로 이설된 것입니다.
네 부뜰이운영자님!
구목령에서 먼드래미까지 16.1km라는걸 알 수 있었다면,
구목령에서 비도 멈췄고, 시간이 오전 09시, 시속 2.5km로 잡아 6~7시간이니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피리샘에서 정신만 차렸어도 다시 돌아가는건데.... 구목령에서 여유를 가지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 되었습니다.^^
생곡리 일반산악회와 함께한 후기, 한남오두지맥 남양444번 삼각점은 도로 개설로 옮겨놓으신 후기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한강 기맥 한구간이 스토리 이렇게 책한권이네요....
국회의원들이 이런 내용들을 알까ㅓ요?
도깨비선배님 안녕하세요~^^
한강기맥을 제일 많이 차지하는게 홍천군입니다. 아시다시피 선거구는 홍천, 영월, 횡성, 평창입니다.^^
홍천 국회의원이 주왕지맥, 영춘지맥, 백덕지맥을 알고 맥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관내 한강기맥 주요 고개에 아담한 정자 하나씩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천 국회의원 뽑을때는 주왕지맥, 영춘지맥, 백덕지맥을완주한 사람을 뽑은후 투표하여 뽑으면 됩니다
퐁라라님 오늘 한강기맥 운두령에서 구목령까지 진행하였는데 불발현에서 능선을 안타시고 장곡현까지 고행을 하셨더군요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민 고민하다가 능선으로 운행했네요 산행기에 우회라고 적어두셨던데 그렇게 다니시는 분들도 실제 계시나요?
네~^^ 후기 내용에 적었다시피 새벽에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 불발령에 도착해,
잠시 쉬고 일났더니 비오는 숲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임도로 우회하다 보면 그사이 비가 그치겠거니 하고 우회했습니다.^^
특별한 이유없이 춘천지맥이 갈래치는 청량봉을 그냥 우회하기는 어려을것 같습니다만 어떤 분들은 조망이 있다며 임도길을 걷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수고 많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