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새이령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고개로 대간령이라고도 한다. 해발 642미터인 이 고개를 자전거로 넘어가려면 쉽지 않다. 잘 타는 사람도 상당 구간에서 자전거를 끌고 메고 해야 겨우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MTB(mountain bike) 전문가가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이 길이 최악의 코스일 수도 있지만 자전거를 들고 메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는 최고의 MTB 코스가 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7~8년 전 자전거 동호인 카페에 새이령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곧게 뻗은 전나무 숲 사이로 호젓하게 나 있는 오솔길이 인상적이었다. 가을빛이 완연한 때 가야지 마음먹었지만 오랫동안 가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가을, 꿈꾸던 새이령 라이딩이 이뤄졌다. 수없이 건너야 하는 물길과 고운 단풍 빛깔, 낙엽이 덮여 길을 분간할 수 없는 외진 땅을 지나 마장터의 고요하고 좁은 길의 풍경은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열댓 개울 돌다리를 건너야 오를 수 있는 작은 새이령
지난해엔 진부령에서 시작해 흘리 계곡을 따라 마장터로 진입했는데, 이번엔 계곡 물이 많아서 코스를 바꿔봤다. 용대교차로에서 미시령 가는 방향에 있는 박달나무쉼터를 들머리로 해서 마장터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쉼터 옆 계곡물은 이틀 전에 내린 비로 크게 불어났다. 기존 돌다리가 물에 잠겨 있어서 건널 수 없자 쉼터 주인이 달려 나와 새 길을 안내했다. 앞에 있는 바위산 아래로 등산로가 있으니 거기로 가라고 알려줬다.
쉼터에서 도로를 따라 4백 미터쯤 지나서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등산로가 있다. 초입부터 자전거를 끌어야 한다. 칼처럼 뾰족한 돌이 흩어져 있는 너덜지대를 지나고, 300미터 정도 가니 버젓한 등산로가 나왔다. 그러나 페달 질을 몇 번 하면 이내 내려야 하는 그저 맛보기 길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작은새이령까지 수도 없이 내를 건너야 한다. 일고여덟 번째까지는 그 수를 세었는데 이후엔 까먹어버렸다. 등산객의 왕래가 잦아서 그런지 길이 빤들빤들하다. 계곡물은 저쪽 흘리 계곡에 비해선 깊지 않아서 건너기가 비교적 편하다.
열댓 개의 돌다리를 건넜을까,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나온다. 등산로는 곱다. 자전거를 끌며 앞사람을 따라 무작정 오른다. 숨이 차오른다.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쯤 앞서 나간 두 사람이 약수터에서 기다리고 있다. 호스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아래로 받쳐진 그릇에 차서 넘친다. 물이 차고 맛있다. 약수 한 잔으로 피로가 풀린다.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로 향해 다시 자전거를 끌었다. 얼마를 더 가자 파란 하늘이 보인다. 산과 하늘이 맞닿은 곳 그 아래가 작은새이령 고개다.
작은새이령 고개의 성황당
고갯마루엔 돌무지가 있다.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 성황당이 있다, 성황당은 다른 말로 서낭신을 모시는 곳으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신성한 기도처다.
성황당에는 대개 당집이 있고, 성황당 주변에 금줄이 쳐져 있다. 이곳 성황당에도 당산나무 아래 굴피 두 장으로 지붕을 얹어 앙증맞게 지은 당집이 있다. 그 안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사과 한 개, 귤 한 개가 놓여 있다. 주위로 쳐진 금줄에는 등산객들이 매달아놓은 리본이 달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성황당은 길손들의 기도처다.
일행은 보호대를 착용하며 하산 길에 대비했다. 고개 아래 마을이 마장터다. 그러나 마장터 내려가는 길은 의외로 경사가 완만하다.
쭉 내려가니 침엽수와 활엽수 숲 사이로 반듯한 오솔길이 있다. 마장터는 말 그대로 마장, 즉 말이 거래되는 장터라는 뜻이다. 예전에 내륙이나 바다에서 출발한 보부상과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이 쉬어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마장터 숲속엔 자연인이 살고 있다
마장터에는 한때 서른 집 정도가 살았을 정도로 터가 넓다. 1970년대 초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당시 화전민 정리 사업으로 소개되어 밖으로 나갔고, 그 자리엔 낙엽송이 심어졌다. 그후부터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자연의 땅이 되었다.
마장터 오솔길을 따라 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들어가면 오두막집이 있다. 지금 마장터에는 할아버지 한 분을 포함, 두 세대가 살고 있다. 오늘따라 오두막집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그 옆에 사는 다른 ‘자연인’ 한 분이 있다. 그의 집 처마 밑에는 버섯과 다래가 널려 있다. 초가집 기둥에는 펜으로 쓴 시가 걸려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시인의 시 「봄」이다.
시인이 기다리던 봄의 상징이 무엇이든 자연인에게 봄은 또 다른 어떤 의미가 있을 테지. 사랑하는 가족 혹은 연인의 해후, 건강의 회복, 어떤 꿈의 실현, 염원의 회귀…. 그런 건 아닐까.
사람들은 어떤 절박함이 없이 외따로 살지 않는 법이다. 홀로서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좌절, 현실 생활에 대한 심한 염증, 극도의 절망감, 그런 것 때문에 자연으로 들어간 사람이 많다.
천석고황의 병
천석고황(泉石膏肓)의 병에 빠질 정도로 자연에 심취한 조선 후기 안동김씨 세도가문이었던 김창흡(1653~1722)의 경우가 그 예다.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이며 형 또한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으로 명문가 출신인 그는 벼슬에는 뜻이 없고 오직 산수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한때는 철원 삼부연 폭포 근처에 있는 산골짜기 마을로 들어가 그곳 경치에 반해 집을 짓고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직접 산으로 들어가진 못해도 늘 마음만은 산중으로 회귀한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요즘 어느 종편 채널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의 인기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은퇴 후 귀산촌의 로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여기서 새이령까지 또 수없이 내를 건너야 한다. 물이 깊어 돌다리를 잘못 헛디뎠다간 빠지기 십상이다. 등산객들은 스틱을 의지해 돌다리를 건너고 자전거족들은 자전거 바퀴를 의지해 건넌다.
등산로는 수백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서 그런지 길이 깊이 파져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때 물길이 자꾸 나는 바람에 길이 점점 파여진 것이다. 등산로 옆으론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숲 사이로 하늘이 트인 저곳이 새이령 고개인 줄 짐작하고 가보면 길은 또 한 구비 돌아 산으로 오르고….
“새이령은 앞으로도 한 시간은 더 가야 할 거야!”
마음을 비우고 올라가는데 저 멀리로 돌무지가 보인다. 새이령 정상이다. 희한하다. 축지법을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이령이라니.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목적지는 더 쉽게 다가온다. 다년간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다.
산바람 바닷바람이 만나는 백두대간 새이령
한자어로 대간령인 새이령은 해발 642미터 고개다. 새이령의 새는 ‘사이’의 준말이다. 이 고개가 북으로 진부령과 남으로 미시령 사이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새이령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새이령 정상에서 맛보는 공기는 유달리 시원하고 맛있다.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만나는 지점이라서 그럴까.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높은데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이상이 높아진다. 높은 하늘 아래 너른 대지를 호흡하며 얻어지는 호연지기의 기상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동해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바다까지 길은 100% 내리막이다. 가파르기 그지없는 길 오른쪽으로 낭떠러지가 천길 절벽을 이루고 있다. 흙은 산사태로 많이 유실돼 있다.
등산로 옆으로 촘촘히 박은 말뚝에 밧줄을 매서 길게 이어달아 놓은 까닭에 심리적 불안은 조금 줄어들지만 아찔했다. 갈지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등산로를 지나면 붉은 단풍잎 사이로 낙엽이 깔린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이곳을 지나는 시각은 늘 오후 녘이라 빛이 아쉽다. 그러나 응달임에도 단풍은 자태가 참 곱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비교적 너른 평지가 나온다. 옛날 주막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예전에 주막 근처에 참샘물내기가 있었다고 한다.
달디 단 샘물로 빚은 술은 맛이 어떠했을까. 고성에서 출발한 보부상이 산길을 따라 여기에 도착할 때쯤 주막에서 맛보는 그 술맛, 말해서 뭐하랴.
주막 터 아래로는 길이 좋다. 그러나 초보는 몇 바퀴 굴리기도 쉽지 않다. 요즘 올 마운틴 자전거는 앞 샥(포크)의 앵글이 66도 내외로 누워져 있고, 안장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 싯 포스트도 있어서 안장을 낮춘 상태로 타게 되면 내리막길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다.
단차가 50센터미터나 되는 계단이 나오더라도 속도를 낸 상태에서 핸들을 살짝 들어주면서 자전거를 내던지듯 하면 두 바퀴는 나도 모르게 아래쪽으로 편안하게 착지되고, 그때 몸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쾌락을 느낀다.
야호! 하면서 내려오니 도원 임도와 만났다. 길게 내려온 것 같은데 새이령 고개에서 여기까지가 고작 1.3킬로미터다. 여기서 도원리 마을까지는 왼쪽 임도를 선택하면 10킬로미터, 오른쪽 임도를 택하면 4킬로미터다,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왼쪽으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오른쪽으로 가는 게 좋다. 우리는 오른쪽 임도를 택했다. 시간이나 체력의 여유가 있으면 나는 왼쪽 임도를 추천하고 싶다. 그리로 가면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동해바다로
해를 등지며 홀로 달리는데 뒤에서 한 사람이 쏜살같이 달려온다. 동행을 위해 자전거의 속도를 서로 맞췄다. 라이더 둘의 그림자가 길 위로 길게 드리우며 동해바다를 향해 빠르게 나아간다.
도원리 저수지에서 아야진까지는 전반적으로 내리막이라 질주하기 좋다. 산을 넘으면서 속도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동해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이어서 맞이하는 아야진 해변과 청간정 앞바다, 청진 해변 그리고 영랑호 옆을 지나 속초까지 이어지는 해파랑 길! 역시 바다는 동해가 최고!
험난한 길 때문에 몹시 힘이 들었을 테지만, 아무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육체적 고통의 합보다는 기쁨의 합이 더 크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풍경, 가을바람, 그리고 함께 달리며 얻게 된 동료 라이더와 교감을 통해 얻은 이 모든 기쁨의 합이 월등하게 크다는 사실 때문이다. 결국 유쾌 상쾌한 기억만 뇌리에 남는다.
그 기쁨은 또 언젠가 내 몸을 다시 이곳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그때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행을 하고 싶다. 마장터 오두막집에도 들러 그 집 문지방에 오래 앉아서 햇살도 쫴보고 싶다. 그곳에 서식하는 온갖 산새 소리도 듣고, 숲에서 퍼져 나오는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고 싶다.
지도: 새이령 넘어 속초로 (단위 km)
백담입구 – 4.5 – 박달나무쉼터 – 3.5 - 작은 새이령 –0.6 - 마장터 오두막 – 2.5 - 새이령 - 1.5 – 도원임도 - 4 - 도원리 - 11 - 아야진 - 13 - 속초
[출처] 인제·고성 새이령 –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자출사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 작성자 김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