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는 "발콘스키의 집" 을 방문 하였습니다.
"데카브리스트(Decembrist)" 의 일원이었던 "세르게이 발콘스키"는 1846년 이르쿠츠크에 그가 직접 설계하고 집을 지었습니다.
"데카브리스트"들이 유배 생활을 했던 시베리아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가장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이르쿠츠크에 있는 "발콘스키의 집" 입니다.
이 집은 1985년 11년간의 재건축 공사를 마친 후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으로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12월 당원" 이라고도 부르는 "데카브리스트(Decembrist)" 는 1825년 12월 14일 봉기를 일으킨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 입니다. 12월에 일으킨 혁명으로 12월을 가르키는 러시아어 "데카브리 (Dekabr = December)"에서 따온 말 입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 러시아가 프랑스를 점령할 때 참가했던 장교들은 프랑스 파리의 화려한 도시모습과 유럽의 자유로운
국가 체제를 경험하고 돌아와 러시아 황실의 부패와 농노제도가 존재하는 조국의 현실에 실망과 분노를 갖게되며
비밀결사대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 사망후, 장교들은 농노해방과 입헌 연방국가의 설립을 목표로 니콜라이 1세 대신 그의 형인 콘스탄틴의
즉위를 요구하며 1825년 12월 14일 무장 붕기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거사 당일 수장인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 공작이 달아나며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정권을 잡은 니콜라이 1세는 주동자
5명을 처형하고 88명은 시베리아 중노동형에,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데카브리스트"는 주로 상류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 1856년 알렉산더 2세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살아남은 사람 모두에게 완전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손발에 쇠고랑을 차고 중노동을 이겨내고 유배생활을 마친 러시아 귀족 가문의 "데카브리스트" 들은 일찍이 목격했던 유럽의
발전상을 떠올리며 이 곳 이르쿠츠크에서 못다한 꿈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사면 후에도 고향인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돌아가지 않고 젊은 시절 러시아 전쟁시 보았던 파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유럽을 닮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하나씩 채워 나갔습니다.
오늘날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 라고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시베리아로 유배온 "데카브리스트"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들 부인들은 남편을 찾아 1년이 넘는 여행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귀족신분을 포기하고, 농민 신분으로 살 것에 서명하며 남편을 찾아 떠나 왔습니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남편을 따라온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11명 중에 마리아는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19세에 결혼한 마리아는 다음해에 사건이 터졌고, 그 다음해에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닷해 후인 1826년 1월 7일,
남편과 남편의 형제, 삼촌이 잡혀가고 이후 남편은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유명한 라옙스키 장군의 딸인 마리아는 당국과 가족들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거부하고 1826년 12월 22일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로 떠났습니다. (돌도 안된 아들은 2년 후 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녀는 수 개월간의 여행 끝에 마침내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자동차나 기차도 없던 시기라 마차를 타거나 혹은 걸어서 오는 고행길 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발콘스키의 유형지 블라고닷스크 광산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족쇄에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3년 간의 중형 노역 끝에 1829년 수용소에서 해제되어 이들은 감옥에서 남편과 함께 거주하는 승인을 받았습니다.
1835년 니콜라이 1세는 발콘스키를 강제노동에서 석방시켰고 이들은 이르쿠츠크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발콘스키 박물관 앞 공원에 세워져 있는 "데카브리스트" 발콘스키의 부인인 "마리아 발콘스카야(1805 ~ 1863)의 동상 입니다.
"발콘스키 박물관"이 된 "세르게이 발콘스키( Sergei Volkonsky)"의 집
"발콘스키" 집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이 된 발콘스키의 집.
현관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고 들어 갑니다.(입장권 1인 200 R)
데카브리스트들의 전면 사면이 있은 후, 1846년 발콘스키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 입니다.
발콘스키 가문의 사람들.
러시아의 대 문호 시인인 푸쉬킨은 마리아의 집안과 교류가 깊고, 톨스토이는 발콘스키 가문의 친척 입니다.
톨스토이의소설 "전쟁과 평화"는 프랑스 러시아 전쟁과 데카브리스트의 활동상을 배경으로 한 소설 입니다.
세르게이 발콘스키 공작 ( Sergei Volkonsky,1788 ~ 1865)의 초상화
세르게이 발콘스키 공작 ( Sergei Volkonsky,1788 ~ 1865) 초상화
발콘스키 가계도
세르게이 발콘스키 공작의 집 내부
1층에 식탁이 있는 방. 거울 앞에 놓여있는 것은 차가 들어있어 따라 마실수 있는 차보관 그릇.
발콘스키의 부인 "마리아"의 의상과 소품들. 사면 후 이르쿠츠크에서 저택을 짓고 귀족에 걸맞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콘스키의 집은 유배지에서 살아남은 데카브리스트들이 모여 음악회나 시 낭송회를 열곤 하는 사교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발콘스키의 부인 마리아의초상화
오른쪽에 놓여있는 피라미드형의 포르테 피아노는 발콘스키의 아내 마리아가 쓰던 것으로 전 세계에 단 두 대 뿐인 진품 이라는군요.
오늘도 1층 거실에서는 실제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미리 예약된 단체팀을 위한 공연 같아 보였습니다. 끝 곡으로 "축배의 노래" 부르며 포도주잔을 높이 치켜 들어 올리더라구요.
1층 거실에서 열리고 있던 음악회에 참석한 성악가와 함께.
발콘스키 박물관 앞에 있는 "преображенская черковь(Church of theTransfiguration, 축일 교회)"
발콘스키 박물관 앞에 있는 "Transfiguration Church (축일 교회)"
"Transfiguration Church (축일 교회)"
"Transfiguration Church (축일 교회)"
"발콘스키 박물관" 근처에 있는 멋진 목재 건축물인 "The House of Europe"
발콘스키 박물관 근처에서 본 건물..............국가 지정 보존 건축물 인 듯 합니다.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
"Museum of urban life (도시생활 박물관)"
삼일 만에 다시 온 "도브리 코트 호텔" 객실 입니다.
3일전에 있던 방 3인실도 1,800 루블, 지금 이 방 4인실도 같은 가격에........훨씬 넓고 좋습니다.
더운물 콸콸 나오는 샤워부스 있는 화장실도 붙어 있고.................
넓고 깔끔한 주방도 있습니다.
저녁 밥은 요렇게...............장 봐서 만들어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