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어 학습분투기
(생활 속의 일본어)
내가 어렸을 때인 1950년대는 웬만한 어른들은 모두 일제치하에서 일본어를 강제로 공부하였던 그런 시대였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전후세대의 아이였던 나도 생활 속에서 많은 일본어를 일본어인지 모르고 쓰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다마네기(양파), 아부라기(正: 아부라아게:유부),로 음식을 만드셨고, 다꾸앙(노란무)를 넣어 벤또오(도시락)를 싸주시고, 미장원에 고데(인두)하러 가셨다. 아버지는 지금의 마이크로버스 크기의 좌석버스인 아이노리(합승)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셨고, 저녁에는 잇빠이(한 잔)하시고 돌아오시곤 하셨다. 우리 아이들은 동네아이들을 모두 불러모아 모여 오야붕(두목), 꼬붕(부하)을 정해 전쟁놀이를 했다. 겨울에는 깡통(Can의 일본식 발음 + 筒)에 구멍을 뚫어 나뭇가지 등 마른 나무를 줗어모아 쥐불놀이를 하거나, 우리는 논에 물을 대어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간또오(간또오 오뎅의 준말: 관동지방의 어묵)를 먹으며 추위를 달래곤 했다. 목욕은, 욕조 없는 목욕탕에서 지금은 ‘다라’라고 줄여 쓰고 있는 ‘다라이(큰 대야)를 놓고 했다. 누나들은 지금은 ‘나시’라고 줄여쓰고 있는 ‘소데나시(민소매)’ 등의 옷으로 멋을 내고 싶어 했고, "시다(도제)구함"이라고 쪽지가 붙어있는 양장점에서 옷을 만들어 입고
싶어 했다. 어릴적 무덕관이라는 태권도장에 다녔는데 다리걸기를 '아싯빠리'라고 했다.
언젠가 우리 집을 개축하는데 보니 목수아저씨가 데모또(조수)를 데리고 와서 ‘하바(폭)’을 재기고 하고, 다떼(세로), 요코(세로)를 재면서 일을 했다. 어저씨들은 막일을 ‘노가다(도가타: 막노동)’라고 했다.
이런 세월을 보내면서 점점 모든 용어가 우리말로 정리되기 시작했지만, 생활 속에는 ‘앗사리(끊고 맺음이 분명함)’와 같이 여전히 알게 모르게 많은 일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 회사의 편찬업무를 하며 앤쇄소에 가보았더니 아미(망점), 시로누끼,
뻬다 등 일본어를 쓰고 있었다. 건축, 양재, 인쇄업 등 전문분야일수록 일본어의 우리말대체작업은 세월이 필요했나보다.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
내가 일본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한 대화를 들은 것이 바로 그 계기였다.
어머니 : “여보, 오까네 좀 주실래요?”
아버지 : “오까네는 왜?”
어머니 : “ 집에 고메가 떨어져서....”
그런데 그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았다. 밝은 분위기였으면 가끔 일본어단어를 섞어 쓰는 일이 있어 그러려니 했을 것이나 그날은 좀 달랐다. 도대체 ‘오까네’는 무엇이고, 또 ‘고메’는 무엇일까?
부모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었지만 통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궁금해져서 두 개의 단어를 잘 기억해두었다니 며칠이 지나서, 어머니께 물었다. 그것도 시간을 두고 따로따로.
“오까네‘가 ’돈‘, 그리고 ’고메‘가 ’쌀‘이라는 것을 알자 부모의 비밀대화의 내용을 알 수가 있었다.
우리 집에 쌀이 떨어졌구나. 형편이 안좋구나....
단 두 단어로 나는 집안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된 것이었다. 외국어 단어 몇 개가 주는 정보 수집력과 판단! 일본어는 어린 나에게 외국어라기보다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좌절과 극복)
그 후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 있게 되었다. 집에 그냥 지내기도 무료해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일본어 히라가나를 적어 벽에 붙여주셨다.
하루에 5개씩만 외우면 10일이면 일본어정복(?)이라는 야무진 계획으로 외우기 시작했다. 무슨 글자가 이렇게 꼬불꼬불하고 어려운가. 보통의 글자도 외우기 어려운데 ねれわ(네레와)의 세 글자에 이르니 도저히 안되어 포기....
그 후 3년정도는 일본어에 대해서 잊고 지냈다. 그 후 우연히 통신대학교의 일본어교재가 집안에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하여 들쳐보던 중 히라가나의 자원, 즉 히라가나가 한자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라가나 あ(아)는 한자 安(안)에서 가타카나カ는 한자 加에서... 이후 한자교육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교과서에 한자가 들어있던 그런 시절이었기에 이것은 나에게 큰 발견이었다.
대학통신교재는 매우 자상하고 친절하였다. 나는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다. 특별히 공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기에 학교영어공부와 같이 했다. 영어단어장을 사가지고와 이렇게 적었다.
단어 발음기호 의미
先生 せんせい 선생님
다음은 노트에 본문을 쓰고 그 밑줄에는 해석을 써넣었다.
私(わたし)は 友(とも)たちに 贈(おく)り物(もの)を したいのですが、----
나는 친구에게 선물을 하고싶은데,.....................
교재는 신주단지처럼 깨끗이 책표지를 하여 손 때 묻지 않게 하고, 공부는 단어장과 노트만으로 했다.
나중에 괄호안의 발음없이 한자로만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책을 바로 읽으며 연습을 하였다.
(다독훈련)
교재는 나에게 성경과 같은 것이었다. 단어와 기본적인 문법사항을 알고 해석을 한 후에는 읽기에 들어갔다. 컴퓨터는커녕 녹음기도 없던 시절이라 발음이나 억양을 정확히 아는 것이 어려웠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는 그런대로 진행이 되었다. 외국어는 소리를 내어 읽어야한다고 해서 ‘正자 표시를 해가며 큰 소리로 읽었다. 소리를 내어 읽는 서당의 개도 3년 동안 듣기만 해도 풍월을 한다는데 나는 직접 소리를 내어 읽으니 그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잘 안되어 자꾸 막히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한 과를 50번쯤 소리를 내서 읽고 또 발음이 어려운 단어나 문장은 10번쯤 반복하여 읽고 나니 전체가 매끄러워졌다. 50번씩 읽은 후에는 읽는 시간을 재어보았다. 점점 읽는 시간이 빨라졌고 읽은 것도 편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단어와 문법을 알고 본문해석을 마치면 집의 기초공사가 끝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공부를 끝낸다. 오락이 없던 가난한 시절이라 나는 오락삼아 다독을 했다. 이것은 마치 기초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지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어를 배우는 학습 환경이 좋지 않았던 것이 나에게는 약이 되었다. 서울시내에 일본어학원이 두 세 곳 있었고,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기계의 매뉴얼을 읽기 위한 엔지니어가 많았다. 버스에 앉아 일본어책을 보고 있으면, 서 있던 나이 든 형들과 아저씨들이 들으라는 듯이 “쪽발이(쪽바리) 말을 배워서 어디다 쓰나?”하는 노골적으로 말하곤 했다.
암호를 연구하는 사람처럼 나의 일본어학습은 계속되었지만 나에게는 지금은 고전이 되어 버린 박성원교수의 표준일본어 1, 2권이 모두였다. 서점에 가도 일본어교재는 이 두 권뿐이었다.
기독교신자의 성경처럼, 불교신자의 불경처럼 나는 표준일본어 2권을 읽고 또 읽었다. 아침에 30분, 저녁에 30분. 그렇게 시키지 않은 일을 3년이나 했을까. 이젠 어떤 단어가 몇 과 몇 번째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있다는 것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책을 잡아 첫 단어만 보면 몇 개의 문장은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길을 가다보면 괜히 입에서 일본어교재의 문장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은 누가 일본어교재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서점에 가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대학교수들은 모두 한 권씩의 교재를 썼나보다. 최근에는 나까지 이에 가세헸으니...가로 세로 수 미터의 벽면에 채워진 진열대에는 눈으만 보기에도 많은 일본어교재가 채워져 있다. 내가 지금 일본어공부를 시작했다면 어떻게 일본어교재를 골랐을까 생각만 해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세월무상)
취미삼아 공부했던 일본어를 무기로 1978년에 국영기업에 입사한 나는 입사 3년 만인 1981년 겨울 공부할 때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런 기회는 없으리라’ 하고 생각했던 일본 도쿄 땅을 밟았다.
도쿄의 중심부 긴자와 맞붙은 유라쿠쵸의 지사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의 야간통금해제와 왓카나이 대한항공기 추락사건 등 많은 일을 경험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은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 집구하기가 어려웠던 일과 택시를 탔다가 거부당한 일이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직장상사와 우리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니 택시가 출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운전기사에게 왜 출발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손님이 말한 곳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후 묵묵부답. 이유는 설명할 것도 없었다. 한국인이 싫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상대하기 싫은 아시아의 한 후진국에 불과했는지... 그 당시는 해외여행도 자유로이 갈 수 없던 시절이어, 회의나 상용으로 일본을 오는 한국인들은 도착하면 전기밥통이나 카메라, 워크맨을 구입하느라 열심인 그런 시절이었다.
그 후 30년이 흘렀다. 선진국의 언어였던 일본어가 평범한 이웃나라의 언어가 되듯이 우리나라도 발전했다. 그 전에는 비율빈 갔다온 사람을 부러워했는데 이젠 같은 의미의 필리핀이지만 우리에게 뉘앙스가 다르다. 서울역 앞의 수출1억불 목표의 탑을 세워놓고 매주 수출확대진흥회의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수출 4700억달러에 육박한다.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딴 금메달 수(13)가 일본의 7명의 선수가 딴 금메달 수(14)와 버금가는 일이 마치 삼성전자의 총매출이 일본의 7개 전자회사의 총매출을 능가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문득 ‘너 왜 일본어 공부하니?’라고 주변사람들이 물었을 때 어줍잖게 ‘적을 이기려면 적에 대하여 알아야한다’고 손자병법을 둘러댔던 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한 오늘이다.
2011년 2월11일
일본어한마당
파로스/이동희
보너스!
일본어고수가 되는 법(독본한권을 경전처럼)
외국어학습에 있어 해당언어를 마스터(Master)하는 방법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영어와 같은 언어는 학습한 역사도 길고 학습하는 인구도 많아, 「 영어! 나는 이렇게 정복했다! 」와
같은 고수들의 학습경험서를 간간이 접할 수 있습니다.
어느 언어라도 외국어로 학습을 하려고 하면 공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우선 크게 나누어 생각하면,
1. 국내에서 열심히 하기
2. 해당국으로 어학연수 가기
이상 두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어느 방법이 좋은지는 삼국시대 에
중국유학길에 올랐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중도에 귀국하여 국내파로 우뚝 선 원효대사 와 해골물을 마시고
도 유학길을 계속한 유학파 의상대사 두분을 생각하면 막상막하로 방법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국내에서만 언어를 공부해서 고수가 되기는 참으로 중도포기의 유혹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근년의 역이민과 같이 유학도 중도포기 귀국이 많은 사실을 간과할 수 없
습니다.
결국 유학(어학연수)이란 스스로의 학습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자가발전이 어려우므로 환경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강제적으로 설치함으로써 학습을 하는 방법이라면, 국내학습은 스스로 강한 동기를 부
여하여 어학연수에서 거양할 수 있는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국내학습은 말하자면
의지력으로 해외유학의 막대한 경비와 그에 따른 효과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의지력이란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는 사 실을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소생의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고수가 되는 법을 중국무협영화에서 발견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옛 중국
의 소림사의 뒷산 대나무 숲속에서 목봉을 휘두르며 연습하는 젊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
그는 끊임없이 연습을 계속합니다.
대나무를 칼로 자르자, 꺽어진 대나무마디가 가 또 공격을 해옵니다. 또 칼로 치면 또 나머지 대나무 마디가
공격해옵니다. 여기서 착안, 삼절곤을 만들어 사부와 대련을 하여 승리하기에 이릅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그 노력하는 과정의 발견 이것이 바로 언어의 왕도입니다.
어떤 이는 질문해옵니다. 한 권을 정통하게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여러 권을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소생
은 대답드립니다. 흔히 「~~의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성경이요, 불
교의 경우라면 불경입니다. 신자들은 그 바이블을 수십년씩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
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언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인 내가 오늘 하루종일 한 말을 모두 녹음해서 적어본다고 가정
해봅니다.
다 내가 만들어 쏟아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속에 새로이 창조된 말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했던 말, 아니면 누군가가 했던 말, 아니면 연속극이나 소설의 대사에
서 누군가 이미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외국어도 가능한 한 평이한 문장으로 생활 속에 다루어지는 중고급수준의 교
재를 택해서 소리를 내어 적어도 2백번이나 3백번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읽다보면 머릿글자만 보면 뒤 문장
이 자기도 모르게 입속에서 쏟아져나오는 경험을 하게될 것입니다. 외국어교과서에 흔히 보는 讀本이나 Reader
라는 글이 의미하는 것을 현명한 분들은 곧 아실 것입니다. 見本이라고 쓰여져있지않고 - - - -
결코 눈으로 보는 책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읽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음독에 의한 다독을 하면 느끼는 효과가 있습니다. 많이 읽은 문장은, 마치 항상 듣는 음악테이프나 CD의 한 곡
이 끝나면 다음 곡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러분의 귀에 맴돌 듯이 자신의 피와 살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
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물이 기억한다는 주장도 이런 것과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體液이 기억해주
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면 한가지 방법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어 읽어봅시다. 사실 이 방법은 목이 아픕니다.
그러나 눈과 입과 귀를 사용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좌뇌와 우뇌를 다 사용하게 됩니다. 두손을 다 쓰며 달려드는
사람과 한손만 쓰며 덤벼드는 사람과 누가 승리할 수 있는가는 뻔한 이치입니다.
「단, 중요한 것은 내용 즉 단어의 뜻을 알고 문법적인 사항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 소리를 내어 읽는 것입니다.
눈으로만 보는 묵독은 효과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리 읽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단어와 문법적으로해석이 안되는 자막없는 외국영화를 원어로 수백번 들어도 영원히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
다. 」
여기서 또 하나의 보너스, 각 귀를 손가락으로 막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읽으면 소리가 입에서 나와 공중
을 통과해 귀로 들어가는데 비해, 이 경우 여러분은 언어학습실에서 마이크가 붙은 이어폰을 사용하는 효과를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발음을 할 때 두개골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노래방의 마이
크처럼 에코가 생겨 자기도취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목이 쉬도록 일본어를 한 소생 파로스(이동희)가 경험한 가장
좋은 방법을 여러분께 보너스로 드린다고 생각하고 시험하여 보십시오.
소생은 감히 주장합니다.
언어는 문학을 하지않는 이상 학문이라기 보다도 스포츠에 가깝다.
한국여류골프세계를 세계골프에 접목한 개척자 박세리선수나 일본에 한국야구를 수놓고 있는 이승엽선수에 관한
보도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루 1000번 스윙하고나서야 하루를 끝낸다고 합니다.
1000번은 아니더라도 언어도 고수가 되려면 피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본어 세계에 우뚝 서고 싶은 분은 지금부터 실행에 옮겨보시라!
바로 이것이 파로스가 제안하는 일본어의 왕도입니다!
일본어한마당 파로스/李東熙
아래는 2차 도쿄근무시절의 인터뷰기사입니다.
첫댓글 11년전 사진이네요 ^^ 역시 훈남 이십니다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옛날일입니다. 서울에서 현 상품상태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로스 10년전보다 더 중후하시리라 봅니다 ^^
파로스님 글 아침에 시간이 마땅찮아 대강 읽고 점독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정말로 감동적입니다.여행신문 기사도 돋보기 들이대서 읽었구요.
교재가 닳을까 예쁘게 포장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맨날 그자리에서 맴돌지요. 책 안아까워하며 너덜더덜 들고 다니며 길에서고 읽고 전철에서 읽고 자다가도 읽으며 공부하던 시절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일본어 동사와 형용사로 벽과 천장 찬장에 도배를 하고 재떨이 책상 달력등 온갖 생황용품에 단어를 붙이고 몇 년을 살기도 했습니다.가수 조관우는 800번을 연습하고 '늪'을 취입했다고 하더군요.대히트를 했지요. 암튼 미쳐야 합니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공부하는데는 왕도가 따로 없지요.
부족한 경험담을 정독하여 주셨다니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삼 군대3년 다녀오니 일본어가 입속에서만 돌며 버벅거려서 독본1권 1과부터 2권, 회화책 등 전체를 수십번씩 몇달이나 음독하여 복구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는 일본어는 공부이며 오락이며 생활이었나 봅니다.~~
와. 진짜 피타는 노력을 하신 결과이네요. 오늘 어쩌다 여기에 들어와서 좋은 경험담을 읽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한다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네요. 그러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고수님들처럼 일본어 정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였고 또 어디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하면 빠르고 재치있게 배울수 있을지 생각했는데 오늘보니 정말 피타는 노력으로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군요. 과문을 몇백번 읽으라고 하시니 알것 같습니다. 비록 이제 시작이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열심히 하려합니다. 좋은 경험담 감사합니다.
급하면 돌아간다는 말처럼 교재문장을 200~300회 읽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것같지만 오히려 첩경이라는 것을 십수과만 읽어보시면 느낌이 오실 것입니다. ^^
파로스님 감사합니다!! "분투기!" 감동입니다. 왕초보인 전 넘 어려워요, .........그래도 분투!
교재를 이것저것 하지마시고 본문이 충실한 교재를 선택하셔서 문법적인 사항을 잘 습득하신 후에 공부가 끝낫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300독 음독을 하여 보십시오. 소리내어 목이 아파도 참고 읽어보십시오.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