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 2022년 10월 23일 주일 예배
본문 / 창세기 37:1-11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가 듣는 질문이 있다면 네 꿈이 뭐냐는 물음일 겁니다. 우리는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면 그 이후에는 꿈이 뭐냐는 질문을 아마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업하기 전까지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에 집요하게 받는 것입니다.
저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곤란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도 평범해서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릴 때 제 또래 아이들의 꿈은 대통령이나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통령이나 장군이 꿈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능력도 소질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학교나 교회에서 꿈을 강요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꿈이 없는 자는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요셉에 관한 말씀으로 꿈에 관한 설교를 많이 합니다. 꿈꾸는 소년, 꿈쟁이 요셉, 꿈은 이루어진다는 등 요셉하면 꿈의 대명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요셉의 꿈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요셉과 그의 꿈에 관한 말씀입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린 히브리 소년이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2인자 총리가 된 이 꿈같은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꿈을 꾸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으로 포장되어 전해지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인신매매로 미국에 팔렸는데 세계 최고인 미국의 대통령까지 되었다고 해보십시오. 이것은 완벽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을 할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도전을 받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비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을 꾸던 요셉이 노예로 팔렸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이 이루어졌다는 이 스토리를 통해서 사람들이 감동하는 꿈과 비전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어떤 목사님이 개척하여 단지 몇 년 만에 수천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를 만들면 꿈과 비전과 드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합니다. 그 사람은 유명한 강사가 되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큰 교회를 만든 그 목사님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비전과 꿈은 무엇일까요? 세상에도 꿈과 비전은 난무합니다. 창업을 하여 단시간에 엄청난 돈을 번 청년 사업가는 꿈을 이룬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디에서 나처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을 성취한 그 노하우를 팔아 자신의 꿈을 견고히 할 때 꿈을 이루지 못한 자들은 그 욕망과 불안을 지불하여 소위 꿈을 이룬 자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스템이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룬 한 사람의 그 꿈을 위해 여러 사람들은 그 사람의 꿈이 되는 구조인 겁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팔백만 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팔백만이 다 일등을 꿈꾸지만 한 사람만이 그 꿈을 이룬다면 나머지는 그 한 사람의 꿈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칠백 구십 구만 구천 구백 구십 구명의 꿈은 악몽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꿈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악몽을 꾸는 겁니다. 요셉의 꿈이 과연 수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이 세상에서 인생의 목표와 소원과 꿈과 비전을 성취하라는 도전과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저는 오히려 요셉을 보면서 인간은 꿈을 꿀 수 없는 자라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지금도 교회는 요셉의 꿈을 보며 이 세상을 향한 네 인생의 꿈과 비전을 가지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타락한 인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을 숭배하는 자로 태어납니다. 누구나가 자신을 높이기 위한 야망을 갖고 세상에 옵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꿈과 인생을 통하여 자아숭배자로 타락한 죄인들에게 세상에서 자신을 위한 꿈을 가지라고 말씀하실 리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맞지 않는 십자가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풀지 않으면 다른 하나님과 다른 복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과 인생을 소원성취와 성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자아숭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정욕과 탐심으로 요셉의 꿈과 인생을 보면 이 세상에 대한 도전과 의지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셉의 꿈과 인생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요셉의 꿈과 인생만 오해한 것이 아니라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깨닫지도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인생이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자신을 위해 무슨 꿈을 꿀 수 있습니까? 우크라이나에서 죽은 수많은 러시아 청년들의 꿈은 힘없고 무고한 이웃나라를 쳐들어가 파괴하고 살인하고 약탈하다가 죽는 것이었습니까? 독재자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까? 그들은 푸틴의 악몽에 희생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나를 위해 좋은 꿈을 꾸어도 어떤 악한 자의 악몽에 꿈이 깨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교통공사의 한 여직원은 같은 동료의 스토킹에 희생되었습니다. 그 여직원도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을 겁니다. 합격하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소용없는 말이지만 차라리 공부를 못해 시험에 떨어진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직업군인을 꿈꾸던 한 건장한 군인이 휴가를 나와 한 가게 앞에서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그 가게 주인이 시끄럽다며 이 군인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이 군인은 그 주먹에 맞고 그대로 쓰러져 의식을 잃고 죽고 말았습니다. 의대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는데 어느 날 속이 안 좋아 검사를 하니 위암 말기인 겁니다. 어렵게 배운 의술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죽는 겁니다.
저는 누가 요셉의 꿈과 인생으로 우리도 꿈을 가져야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면 입 닥치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한 꿈을 꾸지 마십시오. 누가 제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떤 꿈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나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 내 인생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 꿈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을 향한 인생의 꿈과 비전이 아름답고 대단해도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부르면 우리는 그날로 꿈이고 비전이고 뭐고 다 뒤로하고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닌데 그 인생이 꾸는 꿈은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들의 생명이 코의 호흡에 있는데 그것이 셈할 가치가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내일은 이런 것을 하여 나를 섬기겠다고 꿈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은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개 같은 인생이 뭔 꿈을 꾸겠습니까? 저는 자신을 위해 꿈을 꾸는 자들에게 꿈 깨라! 네 꿈이 이루어지면 너는 망한다! 네 꿈을 이루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네 꿈과 자아를 성취하라고 인생을 주신 것이 결단코 아닌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세상에 내려와 자기 꿈을 이루고 나는 성공했다고 이 세상을 떠나는 자들은 마귀의 지식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뭔지를 모릅니다. 자신을 위한 꿈을 꾸다가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사람처럼 불쌍하고 어리석은 게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아무런 생각과 계획도 없이 되는 대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나를 위한 꿈과 비전을 이루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인생을 주시고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의 소원을 심으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이란 내 꿈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과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정하십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합니까? 대부분은 다 불행해집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판사가 되어야겠다고 꿈을 꾸고 죽어라 공부해서 판사가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음주운전 차에 치어 죽으면 고생 고생해서 고작 술 취한 사람에게 인생이 끝나는 겁니다. 그 어머니가 땅을 치며 내 아들 억울해서 어떠카냐며 울부짖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살만큼 살다가 대법관까지 하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은 겁니까? 이러나 저러나 내 인생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좋은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언제 죽으나 어떻게 죽으나 다 영원히 저주를 받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은 단 하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소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을 만들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 한다 하시고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인생과 생명을 주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소원과 뜻은 오직 하나 내 영혼의 구원입니다. 왜냐 구원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서 영원히 견딜 수 없는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까지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부자 되라고 보낸 게 아닙니다. 그 아들에게 나의 모든 죄를 다 전가시키고 나를 대신하여 아들을 심판하여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아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천국 말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이 이 중요한 진리를 알려하지도 않고 믿지 않는 겁니다. 세상에 태어나면 그저 자신의 꿈을 위해 살다가 지옥에 가는 겁니다.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꿈과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발 오해하지 마십시오. 요셉의 꿈은 인간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인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요셉의 꿈은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위한 꿈을 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꿈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그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한 것입니다. 그때 요셉도 자신의 꿈을 기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내가 애굽의 총리가 되겠다고 꿈은 고사하고 스쳐가는 생각이라도 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총리가 될 꿈을 꿉니까? 내가 형들보다 성공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절을 받겠다는 꿈이 있었습니까? 요셉은 결코 그런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이 꾼 것이 아니라 꾸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마음에 꿈을 심어놓고 꾸어지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잘 때 자기가 원하는 꿈을 마음대로 꿀 수 있습니까? 오늘 꿈에서 누굴 만나야지 하면 그게 됩니까? 저는 자기 전에 음란한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꼭 기도합니다. 가끔 그런 꿈을 꾸어 짜증이 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위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꿈을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그 꿈을 꿈으로 꾸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하나님의 꿈이 내 꿈이 되고 하나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는 것이 성도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타락한 인간들이 자신을 위해 꾸는 그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할 죄인이었던 나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말씀합니다.
채색옷은 기업을 상속하는 맏아들이 입는 옷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열한 번째 아들이었지만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의 마음에 장자는 사랑을 받는 요셉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맏아들이며 사랑을 받으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이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말씀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잘 못을 아버지께 일러바쳤다는 것이 아니라 요셉은 형제들의 죄를 거절한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가지고 아버지께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죄인들과 하나가 되겠습니까? 타락한 죄인들이 무죄하신 예수님 앞에 그들의 죄가 들어나자 어떻게 하였습니까?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한 것처럼 예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미움이 분노와 증오가 커져 요셉을 은 20냥에 노예로 팔아버린 것처럼 죄인들은 분노와 증오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십자가에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의 죄 바로 내 죄를 자기 죄로 짊어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꿈과 성취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그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는 모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과 그 성취로 십자가의 복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죄를 거절하고 미움을 받고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에 총리가 된 요셉이 자신을 팔아버린 그 원수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자신들을 구원하는 꿈을 꾸는 요셉을 미워하고 그 꿈을 없애버리기 위해 팔아버렸는데 그 형제가 베푸는 기가 막힌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자들입니다. 식량이 떨어져 굶어죽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들의 손으로 차마 죽이지 못하고 남의 손에 빌려 죽이려한 그 원수들을,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그 형제들을 다만 아버지의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용서하고 구원해 내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완전히 예수님의 십자가인 겁니다. 우리도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미워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한량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고 지옥에 떨어져 죽어야 할 죄인인 나를 구원하는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인 것입니다. 결코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한 꿈을 꾸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꿈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입니까? 나를 위한 내 꿈이 이루어지면 나는 죽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꿈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면 나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허물과 죄로 죽어야 할 죄인들입니다. 내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영원한 고통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이딴 것은 걱정하지도 말고 구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이 너희들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온 천하를 얻고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의 생명의 소유에 있지 않으니 탐심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진짜 인생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진짜 생명인 것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의 꿈을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주 불쾌하고 싸가지 없는 겁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말도 안 되는 꿈이라고 부정하였지만 그 불가능한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은 다시 살리셨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고 믿는 모든 성도들의 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다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불가능하고 놀라운 일이 내 인생 안에 이루어진 것은 나의 꿈과 비전 때문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불쌍한 내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그 소원을 내 마음 안에 심어주시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하며 일하신 하나님의 열심과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매다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며, 이루기 위해 산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이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이 십자가를 믿음을 통해서 실현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성도가 가는 길은 곧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그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육체에서 올라오는 정욕과 음란과 탐심과 탐욕과 교만과 미움과 분노와 증오와 시기와 질투와 혈기와 게으름과 나태함과 정죄함과 온갖 자아숭배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지 않으면 결단코 내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십자가 앞에서 선택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꿈이냐? 내 꿈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내 뜻이냐? 하나님의 일이냐? 내 일이냐? 결국 이 세상에서 하나님인가 나인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인 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셨습니까? 입술로 백날 주여 주여 아멘 아멘 해야 소용없습니다. 그 마음과 영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거듭나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주여 주여만 하다가 심판대 앞에 가는 갑니다. 인생이 뭔지 모르고 살다 죽는 겁니다. 자신을 위한 것인 줄 알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겁니다. 영원히 저주를 받는 그 지옥의 고통과 형벌이 어떤 것인 줄 정말 마음과 영으로 믿는다면 사람들에게 미움과 외면과 버림과 핍박을 받고 죽더라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까짓 돈과 재산이 손해를 본다고 안 가겠습니까? 인생이 뭔지를 알고 하나님의 꿈이 뭔지 믿는 자들은 죽음으로 그 길을 가는 겁니다. 그 길만이 내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죄와 싸우며 죽더라도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 십자가의 길만을 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정말 가족에게 버림을 받고 사람들에게 맞아 죽더라도 그 길을 가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온 것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 것임을 분명하게 믿으시고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