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행복한 우리 가족(한성옥 지음/문학동네어린이/2006)
2014년 12월 17일 이 현 정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조금은 밋밋한 제목의 책을 찾으러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없다. 요즘 아주 가끔 아이에게 집에 있는 동화를 읽어주는게 전부인, 무식해진 나는 '별로 안 유명한 책인가?'라고 생각했다. 이사와서 처음 가보는 시립도서관에서 두 권이나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유명한 책인가 보다. 두 권이나 있네.' 얼핏 본 표지도 빨갛게 화려하고 웃는 가족 모습에 아주 흡족해 하며 도서관을 나왔다. '행복한 우리 가족... 따뜻한 가족 이야기인가 보다. 남편이랑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 우리 가족만큼 행복한 가족인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데리러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아토피 치료중인 작은 아이와 병원에 가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표지를 너무 대충 봤나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뻥"이란다. '행복한 가족이 아닌가?' 다시 표지를 봤다. 진입금지 표시와 함께, 폭탄이 있다. 예쁜 옷을 입고 이를 훤하게 보이며 웃고 있는 가족 얼굴이 왠지 기분 나쁘게 보인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먼저 읽어볼걸...' 확인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바로 읽어주기 시작한게 후회가 되었다.
"오늘은 엄마 아빠랑 미술관으로 봄나들이를 나갔다."로 시작되는 이 그림책은 가족의 외동딸 소연이의 일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림 곳곳에 말풍선으로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소연이의 일기만을 보면 정말 단란한 가족의 봄나들이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림과 말풍선은 말 그대로 민폐가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읽고 나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도 않고 아이에게 부끄러워지는 책이었다. 나는 완전 떳떳하게 '소연이 가족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어른이어서, 재빨리 책장을 덮고는 아이에게 형식적으로 물었다. "재미있었어?" 아이는 별 반응이 없다. 다행히 재미 없었나보다. "완전 나쁜 가족이지? 우리는 나쁜 사람 되지 말자. 질서도 잘 지키고..." 더 할 말이 없었다. 이 또한 "뻥"인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림책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이 책도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구나' 많은 그림책과 동화책이 아이들만을 위해 쓴 것이 아님을 알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간단한 책이 우리 모습을 너무나 직설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어서 어디 들어갈 쥐구멍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몇 달 전에 다뤘던 「돼지이야기」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아니 그때는 그래도 내가 나쁜 일(?)을 하는 직접적인 주체는 아니어서 불쌍하다고도 하고 나쁘다고 욕도 할 수 있었고, 현명한 소비를 하자고 다짐도 할 수 있었는데...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책은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 모습이 그 가족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것에 억지로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긴 시간동안 조금씩은 내가 저절맀던 그림들임이 틀림없다. '부끄럽다, 부끄러운데 꼬집히니 기분 나쁘다. 아이 앞에서라 더 민망하다. 조심해야겠다. 완전 작가의 승리다. 그림책 작가 천재구나!' 싶었다.
작가가 하려고 한 말은 분명하다. 이해되고 반성도 된다. 이 민폐가족은 그들끼리는 행복한게 분명하다. 사랑스러운 딸과 단란한 세 식구이다. 집은 깔끔하고 엄마는 음식 솜씨도 좋고 가족의 건강을 챙긴다. 나들이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밥을 쌌을 것이다. 아빠는 건망증으로 휴대폰을 다시 찾으러 가는 엄마를 타박하지 않는다. 밥을 먹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사온다. 즐거운 나들이로 피곤해서 잠든 아내와 딸을 위해 아무 말 없이 안전하게 운전을 한다. 행복한 가족이다. 딸은 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꼬마가 제멋대로인지도 알고 얌전히 앉아 밥을 잘 먹는다. 피곤하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일기를 쓰고 잔다. 행복한 가족임이 틀림없다. 우리가 이 가족의 친구나 친척이라면 이 가족을 행복한 가족이라고 말할거다. 사람들은 대체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니, 이 가족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것도 같다. 간혹 자기 가족만을 챙기는 모습이 모이더라도 가족애가 워낙 좋아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연이는 어떻게 클까? 어떤 어른이 될까? 사랑과 귀애함을 듬뿍 받고 잘 자란 외동딸로 성장하겠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도 더 잘하는 것이니 제법 괜찮은 아가씨로 자랄 것 같다. 가끔 저만 아는 모습도 보이겠지만, '요즘 애들 다 귀하게 자라서 그렇지'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것 같다.
문득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소연이 부모와 많이 다르지 않을 거고, 내 아이도 소연이랑 많이 차이나지 않을 건데, 그래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 아이를 야단친 것도 잘못한 것 같고, 놀러온 친구 아이를 배려해준다고 장난감을 주라고 내 아이를 울린 일도 잘못한 것 같다.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당연히 주차 안하고 뱅글뱅글 돌았던 것도 겁이 많았나 싶고, 그것보다 더 불공평하다고 여겨지는 건 내 주변에는 없지만, 소연이나 내 아이들 같이 행복한 가정이 없는 아이들이... 문득 생각이 나서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이 행복한 가족의 행복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편을 담보로 얻어지는 것이고, 이기적으로 성장하는 애들의 행복도 덜 누리는 아이들의 눈물을 담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민폐로 커도 결국 행복한데... 진정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만, 내 가족만 편하고 행복하면 되나?
다시 이 책을 작가가 천재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기분 나쁜 책이 아니다. 그저 반성하게 하는 책도 아니다. 우리는 진정 행복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 언제 터져버릴 그런 행복, 내 가정이 터져버리고 이 사회가 무너져 버릴 그런 행복은 안되는 것이다. "행복"은 "함께"이다. 물론 시작은 내 가족이어야 되겠지. 내가족에서 시작된 행복이 밖으로도 넘쳐 흐르도록, 역시 「행복한 우리 가족」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무척 머리 아프게 생각하도록 하는... 어떤 가족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내 가족이 행복하고 내가 머무르는 이 사회가 행복해지는지,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해야할 것이 많다. 머리 아프다. 그저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