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2022년 1월 13일
급격하게 몰아닥친 한파 벌써 한달째, 나의 작은 텃밭은 꽁꽁 얼어있다,
어린시절 겨울이면 꽁꽁 언 손을 호호불며 엄마에게 달려가면 따뜻한 손으로 꼭 잡아
녹여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나는 꽁꽁 얼어있는 텃밭을 녹여주지 못한채 따스한 햇살을 품고 찾아올 봄을 기다릴 수밖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텃밭을 둘러보며 “애들아 많이 춥지? 땅이 온통 꽁꽁 얼어붙었네 조금만 참아라 이제 햇님이 하늘로부터 열을 충전해 오시어 어머니 햇님이 너희를 따뜻이 품에 안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추운 날씨를 통해 그간 너희를 그렇게도 귀찮게 굴었던
벌레들도 죽게 하는 기회가 된다니 조금만 참거라.”
1월 18일
작년 5월 그동안 텃밭일을 도맡아 하던 미카엘라 수녀님이 갑자기 에콰돌 모원으로 소임 받아가게되어 그동안 수녀님을 잠깐씩 도와주던 내가 그 일을 자청하여 전적으로 맡게되었다 나는 유럽형 체형탓? 무릎관절? 때문에 쭈구리고 앉아 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 기에 풀매기 작업은 피해 다니거나 다른 일들로 대처하곤 해왔었다. 그런 내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자청해서 텃밭일을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저 씨 뿌리고 물주고 거두기만 하면 다 되는거라 생각하고 겁 없이 나선 것이다.
1월 20일
연작을 피해야 한다는 책, 인터넷 가르침을 바탕으로 금년에 심어야 할 야채 배열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오늘도 텃밭을 둘러보면서 종이에다 그려가며 해남땅끝 공소신자분께 전화를 걸어 안부겸 감자농사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뜻 밖에 지금 해남에서는 감자심을 준비에 분주하다며 감자 심는 방법과 주의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셨고 남은 씨 감자를 보내줄테니 그걸로 심으라 하셨다. 순박함과 나눔이 몸에 배어있는 이들의 삶에서 땅심 만큼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를 느껴본다.
2월 1일 고유명절 <설>
음력 설을 맞으면서 올 한해도 건강하게 땅과 더불어 기쁘게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릴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설과 추석등 명절이면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되살아 났다.
18세 되던 해 음력 설 전날이었다. 큰언니 산후조리를 도우려 서울에 가셨던 어머니가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시지 않았다. 전화도 없던 그 시대 이렇다할 편지한장 없었다. 다른 집 에서는 설 빎을 하느라 분주하고 기름냄새들이 물씬 풍겨오고 아이들의 함박 웃음소리가 집집마다 피어나는 하루였지만 어머니가 안 계신 우리집은 썰렁하고 을씨년 스러웠다.
이런 우리집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지는게 싫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엄마는 나는 안중에도 없으신가봐 설인데도 내려오시지 않고 ... ”엄마가 안계신 명절맞이는 웬지 초라하고 서럽기까지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간에 막내 딸 혼자 남겨둔게 맘에 걸려 큰 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내려오신 어머니는 방이며 부엌 어느것 하나 정돈하지 않고 그저 이불속에서 뒹굴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셨던는지“ 아이구 철딱서니 없는 것아 명절이 돌아오면 그래도 집 안팍 청소도 하고 빨래라도 해 둬야이지 이게 뭐냐 엉? ” 벽에 걸려있던 빗자루를 집어들어 몇 차례 때리시며 호통을 치셨다.
막내로 자란 나는 명절에 집 안팎 청소나 음식 장만은 늘상 어머니와 언니들의 몫으로만 봐왔었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른 집들은 명절 분위기가 물씬나는데 어머니가 안계셔 썰렁하고 기가 죽어 방에 틀어 박혀 서럽기만 했던 내 맘을 이해해 주시기는커녕 야단도 맞고 매도 맞고 나니 너무 서러워 엉엉 울다 잠들었다,
다음날 서울에서 준비해 오신 떡국과 나물과 과일로 아침상을 차려주신 어머니께서 한없이 부드러운 말씨로 “아가! 명절 전 에는 떡하고 음식준비는 못 하더라도 집 안팎은 꼭 깨끗이 청소를 해야 한다 이담에 시집가더라도 이 말은 꼭 명심하거라” 하셨다, 어머니의 사랑 가득한 훈계와 따뜻한 떡국 한 그릇에 내 맘은 눈처럼 녹아내려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며 “ 다른 집들은 다들 설이라고 북적대는데 우리집만 썰렁해 밖에 나가기도 싫었단말이야 그래도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엄마 말씀 명심할께요” 하며 눈물이 뚝 뚝.. 어머니는 치맛자락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시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이 추억은 70이 넘은 나이가 되도록 명절이 돌아오면 구석구석 청소며 빨래를 하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다
아 ~ 오늘은 유난히도 어머니가 그립다.
책상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며 지금의 내 나이가 되기도 훨씬 전에 내 곁을 떠나신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다 우리민족의 명절 정서느 이런것인가 싶다.
2월 14일
유트브의 <텃밭농부> 선생님 께서 작물을 심기위한 첫 준비로 토양준비를 해야 하는데 석회고토를 뿌리고 그것이 땅 속에 스며들도록 2-3주 동안 매일 물 주가는 필수라고 하셨다. 배운대로 모종, 파종 한 달전이라면 이때 쯤이겠지 싶어 얼어있는 땅에 덥석 석회고토 를 뿌렸다. 그런데 문제는 물 주기 였다.
더구나 텃밭에는 지하수가 흐르니까 물을 많이 주면 안된다는 수녀님들의 주장, 수도관 파열을 염려한 나머지 물통에 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했다. 그러나 토양을 준비하는게 농사의 첫 작업이고 이것이 놓사의 60%을 차지 한다는 가르침을 배우고 난 이상 물주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매일 리어커에 한말 들이 물통 2개씩을 싣고 언덕 모르 내리기를 2-3회씩,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고 지친다. 원래 고토비료는 그해 작물걷이가 다 끝나고 나면 뿌려두고 겨울 눈과 비를 맞게 한다음 로터리를 쳐 준다는것을 나는 몰랐기에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어쩔수 없는 농사초보자의 티를 내며 고생을 하고있었다.
추위에 감각이 없어진 손가락을 맛사지 하면서 농부님들의 수고에 고개숙여 존경을 표한다.
2월 15일
테오필라 수녀님께서 틈틈이 까둔 마늘 껍질을 벌래 퇴치용으로 모아두긴 했지만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다 말려서 태우면 재를 이용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밭고랑에 갖다 붓고 말린 다음 태울 생각으로 솔잎,낙엽들을 긁어 모아 덮어두었다.
꽁꽁언 땅이 언제쯤이면 녹을까?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묻기위해 퇴비 무더기를 손삽으로 살살 긁어보니 얼지 않는 부분이 조금 있었다. 물과 EM액비, 과일껍질과 부엽토를 뿌리고 뒤섞어 준다음 비닐을 다시 덮어주었다. 지금이 2월 인데 과연
밭 뒤집는 작업을 마칠 3월까지 발효될까? 인터넷으로 배운 어설픈 유기농 퇴비만들어 한해 농사를 다 망가지게 하는 것 아닐까? 농사짓는 일에 대한 한계가 느껴진다. 그러나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이 계시는데 뭘 걱정해? 하느님 빽 믿고 실전에 나서는 나의 도전 정신은 누가 뭐라해도 절대 기죽지 말고 텃밭농사에 올인 해보리라 .
2월 19일
추위가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다. 커피박과 깻묵, 낙엽과 나무태운 재, Em, 물을 배합
하여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작년 여름에 경험해봤기에 커피박 퇴비만들기는 수월했지만 겨울철 발효가 잘 될지? 실패한 퇴비를 땅에 넣었다가 작물들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 경험없이 뛰어들어 좌충우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 한테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소박하고 겸손함을 텃밭시도직의 영성이라 생각한다.
2월 22일
한창 더운 여름 텃밭 일을 할때는 힘들어 산책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지만 겨울 동안 만 이라도 하루에 40분 정도는 꼭 산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칼 바람이 불어와도 꽁꽁
동여메고 매일 논길 걷기를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드리다보니 어르신들과 거리감이 좁혀져서 인지 산책길에서 만난 엘리사벳씨 장부님께 인사를 건네며 “시메온씨 요즘 왜 혼자 산책하세요? 엘리사벳씨 어디 아프신가요? ” 라고 물었더니
“ 바쁘데요”“아니 겨울철에 또 무슨일을 하시는데 바쁘시데요?”하자 허허 웃으시면서 손바닥으로 화투치는 시늉을 하시며 밝게 웃으셨다.
“ 마을 회관에서 화투 하시나봐요? 어머 참 잘하시네요 화투놀이는 치매오는 것을 예방한다던에요, 그리고 손 운동을 열심히 해 두셔야 봄에 농사일도 잘 하시고 하니 엘리사벳씨가 참 현명하시네요 열심히 하시라고 하세요” 라고 거들어 드리며 장부님과 한참을 웃고 헤어졌다.
2월 24일
오늘은 날씨가 좀 풀리긴 했나보다 저쪽에서 김 00 할머니가 산책을 마치고 동네 어귀로 들어오고 계셨다.
김00 할머니와는 2년전 마을 회관에서 여가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친분이 있던 분이었다. 할머니께서 먼저 “ 아니 그때 농사짓던 젊은 양반은 어디갔는데 아직도 안와요?”하셨다. 작년에 농사짓던 미카엘라 수녀님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셨다.
“ 아! 네 먼나라 에콰돌에 가셨는데 아마 올 여름쯤에는 오실겁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길 위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코로나가 언제쯤 끝날지? 그래도 우리나라는 백신도 공짜로 맞게 하고 대통령님이 참으로 고맙지뭐유? ”
김 00 할머니께서는 음식물 찌꺼기와 깻묵 액비통을 가르키시면서
”저건 뭐 김장을 해둔거요?“ “ 아니요 어르신 김장통이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랑 깻묵에 물 붓고 비료를 만들었다가 봄에 식물들에게 뿌려주면 비료 값도 절약하고 식물들도 맛있는거 받아먹으니까 좋다고 해서 발효시키고 있는거에요”
“아이고 선생님이 이제 농사 박사 되겠구만요”하 .하. 하..
“그래도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 선배님 이시죠 어르신들게 묻고 배우고 있거든요 저는 농사 초년생이에요. 동네 어르신들과 이렇게 스스럼없는 수다? 는 선교를 향한 자연스런 첫발 내디딤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뿌듯했다.
3월 5일 <경칩 >
초등학교 때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 보내고 우체부 아저씨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래임으로 달력에 새겨진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야 ! 얼마나 기다렸단기
이제부터 시작이다. 메모장을 꺼내 앞으로 심을 작물들의 자리 배열등을 계획해 본다.
양파와 마늘이 잘 자라고 있는지 비닐 터널속을 들여다 봤더니 잎끝이 노랗게 병들은 것 같아보였다. 아이쿠 이거 큰일이다 싶었다.
이웃집 시메온 아저씨 댁으로 달려가 “우리밭에 양파, 마늘이 병든 것 같아요 어쩌면 좋아요?”“ 심고 난 다음 고자리 병 약을 뿌렸나요?” 하고 물으셨다.
“녜 어느정도 뿌려야 할지 몰라 1.5kg 정도 뿌려줬어요” 라고 하자 “ 아 그럼 크게 걱정 안해도 될겁니다. 금년 겨울 너무 가물어 그럴겁니다. 비닐 걷고 히루 지나면 곧바로 물 주면 될거에요” 라고 하셨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자식이 병들었을 때 방을 동동거리는 엄마의 심정이 이러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농사를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창조주 하느님의 손길 없이 인간의 노력이 헛될 뿐임을 마늘밭 현장에서 신앙체험을 시켜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흠숭을 드립니다,
3월 7일
“ 벌써 나가게? 아직은 추울텐데 ” 염려해주시는 수녀님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구밖 어귀에서 만나기로 한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아가씨같이 두터운 바지와 잠바를 걸치고 텃밭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웬걸 <경칩>이 무색할 만큼 칼바람이 내 볼을 할퀴고 지나간다. 이러다간 개구리들이 다 얼어죽겠구먼 ..
한 시간도 채 못되어 돌아와 텃밭 농사에 대한 책과 인터넷으로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화학 비료와 퇴비, 음식물쓰레기와 깻묵 천연액비를 만들기, 시비하는 시기등을 자세히 읽고 적어본다. 아무리 듣고 읽고 메모를 해 보아도 햇갈린다.
공동체 수녀님들과 , 나 또한 유기농법이 생태계를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보겠다는 야무진 포부로 작년 텃밭에 화학비료 한톨 없이 농사를 지어봤는데 웬걸 잡초와의 전쟁은 물론이고 무, 당근, 채소류가 완전 벌레들의 운동장이 되고 말았다. 마치 나를 비웃듯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채소들을 보면서 수고의 헛됨이 헛탈했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를 극구 고집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땅을 살리고 먹거리를 안전하게 키워보겠다고 나 혼자 노력해도 다른 분들의 텃밭에서 화학비료를 냅다 뿌려대는 바람에 쫒겨난 벌레들과 잡초들에게 우리 텃밭은 자기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지상 천국이었음을 그래서 나도 올해는 적당히 타협하기로 맘 막었다.
오늘 동창수녀님의 영명축일인 것 깜박잊고 축하인사를 못했다, 저녁시간에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넣었다 많이 기다렸나보다 “그렇지 않아도 수녀님이 내 축일을 잊을 턱이 없는데 웬일인가 싶었다”고했다. 요즘 농사일 때문에 정신이 쏙 빠졌다고 이실직고를 하자 “아니 그 나이에 무슨 농사? 하던 일도 그만둘 때 인데” 걱정과 만류, 고맙긴 하지만 그냥 소일거리로 쬐끔만 할거라며 전화를 끊고 나서 요즘 내가 너무 농사일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 부분을 성찰할 기회가 되었다
3월 8일
남부지방에서는 벌써 감자심기를 마쳤다는데 보내주신 씨감자에서는 며칠이 지나는데도 싹이 냐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헤님 세실리아씨 에게 전화를 했더니 15일 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적당힌 난방을 유지하라는조언을 해 주셨다. 동네 어르신들게 여쭸더니 그분들은 산지에서 싹 틔운 것을 3월 중순께 주문해 심는다고 하셨다. 아! 아 왕초보는 어짤수 없이 또 고생을 사서하고 외롭고 힘든 길을 홀로 걷고있구나 ㅠ..ㅠ 맥이 빠지고 웬지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쩌랴 기왕 엎질러진 물이니 감자싹 틔우기를 한번 도전해 보자 속으로 다짐하면서 스티로폴 2상자에 감자들 담아 비누공방으로 고이모셔왔다.
수녀원 텃밭규모가 얼마인지 알리 없는 해남 세실리아씨는 수미감자와 자홍색 씨감자를
2박스 보내수졌다. 절반정도를 남기고 이웃집 할아버지와 시메온 형제님 댁에 갖다 드렸다
자홍색 씨감자는 이쪽에서 잘 심지 않는데 한번 심어보지요 하시며 반가워 하셨다.
3월 11일 <양파,마늘 비닐 터널 벗기기>
작년 처음으로 농사라는 것 시작했고 그중 첫 작품이 마늘 양파심기였다. 한겨울을 지내고 나온 마늘과 양파는 마치 첫 선을 보러나온 아가씨의 부끄러움 처럼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내 앞에 나타났다. 아 ~ 너희들 잘 자라줬구나 고맙다, 아랫밭 할아버지네 것보다는 훨씬 빈약한 모습이었지만 네게는 그 어느밭 마늘 양파보다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내 경험부족으로 더 자랄 수 없었던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
겨우네 땅에서 얻어먹을 수 있는 양분이 바닥이 났을 것 같아 음식물, 깻묵, 소금물, 오줌,잿물 액비를 물에 희석시켜 웃거름 주기를 시도했다.
“그동안 많이 목말랐지? 고생했다. 너희를 위해 작년 가을부터 준비해둔 영양가 픙부힌
엑비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거라”
조금은 찬 기운이 느껴지는 이른 봄이지만 부지런히 액비를 퍼 나르는 발걸음은 힘든걸 이겨내게 한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고생은 잊고 자식들이 많이 먹고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듯 겨울을 이겨낸 첫 작물에 대한 사랑이 여느 부모들의 자식사랑에 비기랴.
3월 12일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우리가족들의 생일은 모두 양력으로 지냈다.
오늘은 양력으로 내 생일이기도 하다.
어릴적 어머니는 가끔 소띠인 내게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밭갈이를 해야하는 3월의 고달픈 소의 해에 태어난 막내딸의 미래를 염려하시면서 그나마 일을 마치고 밥 먹는 12시 <時> 복을 타고 났으니 한시름 놓는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농사일을 시작하고보니 3월은 정말 봄의 첫 문턱에서부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다
봄 작물의 첫 자리에 완두콩, 감자를 심을 계획을 세우고 그러나 아직도 수도관이 얼어있는 상황이라 실내에서 텃밭까지 물을 퍼 나르기가 무척 힘들고 가파른 언덕을 수래를 끌고 몇 차례 오르내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공동체에 한마디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내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다. 희망은 고통을 이겨내게 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험을 하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고된 육신을 위해 휴식을 취한다.
3월 21 일
논두렁 이곳 저곳에 트럭이 내려놓은 석회고토 비료가 쌓아졌다.
땅이 일년동안 온갖 작물을 생산해 내느라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화학비료를 많이 뿌린 탓에 산성화된 토양을 부르럽게 해 주기위해선 작물 심기전 석회고토를 뿌리는 것이 기본이라는 인터넷 과 책자와 어르신들의 말씀을 여러차례 들었기에 논두렁의 석회고토비료
더미가 한없이 부러웠다. 어떻게 몇 푸대만이라도 살수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으로 쌓여진 석회비료에 눈을 떼지 못하며 며칠을 지내온 터 했다.
마침 이웃에 시시는 시메온 형제님이 지나가시기에 “ 형제님 저 석회고토를 어떻게 하면 살수있나요? 한 포에 얼마씩이나 합니까? ”하고 여쭈었다.
“아 저거요 그냥 갖다 쓰세요 ”“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니 수녀가 길가의 비료를 훔쳐갔다고 소문나면 어떻게해요? 그날로 저는 수갑차고 감옥가야 할텐데 아이고 농담이라도 그러시면 안되요?” 시메온 형제님은 “허 허 ” 웃으시며 트렉타를 몰고 집으로 가셨다.
그러데 오후에 밭에 나가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10여개의 비료 포대가 돌담가까이에 가지런히 쌓여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원장수녀님께 어떻게 설명드려야 하나?
비료사겠다는 허락을 받지도 않았는데 한두 포대도 아닌 15포대나 턱 하니 겆다 놨으니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 아니라 미리 상의도 없이 동네 어르신을 통해 구입한 꼴이 되었으니 무척 당화스러웠다.
시메온 형제님 댁을 찾아갔다. “ 시메온씨 계세요?” 마침 늦은 점심을 드시던 부부가 나를 반갑게 맞으시며 “점심 아직 안 하셨으면 같이 합시다” 식사에 초대해 수셨다.
나는 지금 점심 먹자는 말씀이 귀에 들어올 턱이없다.
“ 시메온씨 저의 텃밭에 쌓아둔 비료 어떻게 된겁니까? ”
“ 하 하 이제 수녀님 큰일 났습니다. 경찰에 신고 들어가면 수갑 찰 일만 남았네요
“ ”아니 그러니까 이게 어찌된 일이냐구요” 내 표정이 거의 울상이 되었던 것 같다
시메온씨가 자초 지종을 알려주셨다, “매년 나라에서 농협 같은데 신고하고 농사짓는 이들을 위해 고토비료를 무상으로 나눠줍니다. 수녀님은 텃밭이 작아 신고할 수 없어 그런 해택을 받을 수 없으니 제 이름으로 좀더 가져다 수녀님 밭에 내려놓은것이니 염려 마세요 수갑차고 경찰에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 허 ” 나는 안도와 감사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것같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식사 맛있게 드셔요 다음에 들릴께요 ”말을 남기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수녀원에 돌아와 그 사실을 이야기 했지만 석회비료가 뭔지 왜 필요한지, 또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는 수녀님들은 흥분되어 거의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해도 반응들이 시쿵둥했다. 하긴 나도 직접 농사를 지어보지 못했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저런반응을 보였으리라 충분히 이해한다. 곧바로 15포대 정도 쌓여진 비료포대가 눈에 어른거리자 감사와 하느님께서 이렇게도 빨리 나의 소망을 채워주신다는 기쁨으로 서운한 감정이 또아리를 틀 여유가 없었다. 다시 텃밭으로 내려가 쌓여진 포애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비를 맞지 않도록 두세겹 비닐을 씌우고 돌을 눌러 놓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내가 영낙없는 농부가 되어가고 있음이 실감났다.
저녁 끝기도 후에도 시메온씨에 대한 고마움과 쌓여진 비료포대에 대한 감격으로 흥분이 좀채로 가라앉지 않았다.
3월 29일
양파와 마늘밭에 3차 액비주기를 마무리했다. 아직도 힘을 얻지 못한것인지 크게 달라진게 없어 안타깝다. 욕심같아서는 적당한 화학 비료를 줘서 하루 하루 쑥쑥 자라는 것을 보고 싶지만 농사 일은 때가 있기에 이제부터 4-5월까지는 잡초를 뽑아주고 물을 주는일 외에 그저 작물의 성장을 지켜봐야한다.
감자와 완두콩 심을 곳에 비닐 멀칭을 했다. 큰 밭이 아니기에 기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직접 땅 갈아엎기와 비닐을 씌우는 일 또한 녹녹치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녀원에서는 비닐이나 화학비료가 환경오염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사용을 극구 만류했지만 땅 기온을 높이고 수분증발과 잡초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비닐멀칭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지난해 경험했었기에 공동체희 반대에도 고집을 부려 비닐 멀칭을 시도했다. 대신 준비해둔 액비를 사용함으로 화학비료는 아주 소량만 사용하여 땅심을 살려내도록 노력할것이라 다짐해본다.
4월 2일 감자, 완두콩 심기
그동안 실내에서 싹을 틔운 덕택으로 조금 일찍이 감자에 싹이 나오기 시작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조심스럽게 비닐에 구멍을 내고 정성을 다해 씨감자를 묻고 흙을 모아 다독여주었다, 완두콩은 약 3-4시간 정도 물에 불려 역시 멀칭에 구멍을 내고 2-3알씩 정성을 다해 땅속에 넣어주고 다시 흙을 덮어주며 잘 자라거라 다독여 주고 돌아서면서 내 생애에 처음으로 감자, 완두콩을 심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아 감격스럽고 뿌듯해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4월 7일 얼갈이 배추, 열무 파종
준비해둔 토양에 작은 텃밭이라 이정도면 물 주고 잡초제거하는데 큰 어려움 없을것이라는 생각으로 비닐 멀칭 없이 호미로 고랑을 가지런히 파고 병아리떼 종종종 한줄로 뿌려주었다, 요녀석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나올지 파종을 방금 마치고는 급한마음에 새순이 나오기를 가다라며 지금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4월 17일 부활대축일
드디어 완두콩과 감자들이 “주인장님 답답해요 어서 비닐멀칭을 벗겨주세요”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비닐을 찢어보니 와~우 드디어 보드러운 연두빛 새 순이 어둡고 답답한 흙두덩을 뚫고 3-4장의 잎을 달고 나오기 시작하는 새싹들을 어루만져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넙죽넙죽.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절절한 맘으로 넙죽 경축인사 드려보지 못한 내가 새싹들을 향해 애틋함을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쬐끔 서운해 하시지 않을지 그러나 새싹을 통헤 구체적으로 부활의 의미를 피부로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본디.
4월 20 열무 싹이 나옴
병아리 때 종종종 어미닭을 쫒아 가듯이 새순들이 졸졸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 하~~ 정말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이런 맛에 텃밭 농사를 지은가 보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걸까? 얼갈이는 싹이 쬐끔 나오고 말았다. 새가 쪼아먹었나?
며칠 더 기다려보고 다시 파종을 시도해 봐야겠다.
4월 21일
그동아 비가 오지 않아 걱정하면서도 마늘 양파밭에 물을 줘야하나? 망설였는데 한차례 비가 좀 넉넉히 뿌려지기도 했고 3월 한 달 동안 열심히 액비를 받아먹어서 인지 몰라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다. 반갑고 대견하다
작물도 역시 사랑을 많이 받으면 저렇게 변화되는구나 싶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된다. 마늘 앙파는 4월 말까지만 양분을 주고 수확 한 달 전 부터는 물만 듬뿍 자주 주라는 동네 어르신들의 조언을 들었다.
4월 24 오이, 애호박 가지, 방울토마토 모종심기
모종 심기의 시기가 좀 늦은 감이 있다. 한의원 치료갔다 오는 길에 오이 애호박,가지 모종을 5주씩 구입해왔다. 생각 같아선 10주씩 심고 싶었지만 내 건강을 염려하며 5주만 심으라는 장상수녀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맘으로 사오긴 했지만 이것들이 제대로 다 살아 열매를 볼수있을까? 작년에도 10여주씩 심었는데 열매맺기는 4-5개 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5개 구입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루를 마무리 하며 의식성찰을 통해 주님은 매사에 믿음이 부족한 나를 텃밭일을 통해 기쁘게 순종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확고한 믿음마져 부족함을 깨닫게 해 주셨다. 나는 그저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하는 농부일 뿐 햇빛과 공기와 비를 뿌려 생명을 싹틔우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 이심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수도생활 수십년을 살아왔다면서 아직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믿음이 부족한 한심하기 그지없는 수도자인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했고 주님께 실망을 끼쳐드린 것 같아 눈물이 찔끔!
“주님 부족한 제 믿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4월 29일 2차 옥수수 파종
1차 심었던 옥수수가 제법 자랐다. 액비와 북돋아주기, 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줄 메주기를 마치고 오후에 2차 옥수수 씨앗을 파종하면서 여름날 식탁에서 수녀님들과 맛있는 옥수수를 먹을 즐거운 상상하면서 씨앗 뿌린 구멍을 흙으로 덮고 토닥토닥 “아프지 말고 어서 어서 잘 자라서 우리 만나자 옥수수야“ 옥수수 1차 2차 심기를 하는 지혜도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되어 사람은 나이 들어도 배워야 할 것이 무수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5월 7일 감자 완두콩 추비
수녀원에서 올해는 탓밭용 물통과 액비통을 구압햐주고 더구나 프라스틱판넬같은 것을 마련해줘서 그위에 여러 액비통들을 올려두니 제법 텃밭 농장의 폼이 난 것 같다,
올해는 물주기가 훨씬 수월해 졌다. 공동체 배려에 감사하며 더욱 분발해야 할 것 같다,
5개의 액비통에 음식물찌꺼기, 깻묵, 한약찌꺼기, 목초액(나뭇 재)를 넣고 물과 부엽토를 넣고 일정기간동안 발효를 시킨 후 사용할 것이다. 유트브를 통해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진가를 조금씩 발휘하고 있는 듯 한다.
오늘은 작년에 준비한 음식물찌꺼기 액비를 감자와 완두콩에 엽면시비를 해 주기 위해 액비를 조심스럽게 한 바가지 한 바가지 퍼 올리면서 남들은 혹 냄새 난다 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구수하고 그윽한 냄새로 다가왔다.
”애들아 사람들이 먹는 온갖 영양분이 가득한 음식물 보약이다 이것 먹고 병충해도 이겨내고 열매도 튼실하게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슨 주문이라도 외우는 듯 혼자서 중얼거리며 액비를 물에 희석시키는 작업은 그동안의 온갖 노고가 한꺼번에 가셔지는 듯 행복하고 뿌듯했다.
5월 9일 열무2차 파종
얼갈이 배추는 완전 실패한 것 같다, 얼갈이 심었던 땅을 조심스럽게 긁어보니 아뿔사! 텃밭 한가운데 일렬 종대로 심겨진 메타쉐콰이어 나무 잔뿌리가 지천에 퍼져있었다, 아런 악 조건의 상황에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숨막여 질식해 버린 얼갈이에게 미안한 맘이들었고 초보 텃밭농사의 좋은 체험이 되었다. 지난번에 심은 열무는 강한 햇빛을 막아주기위해 차광망까지 씌워준 노력 덕분인지 나름대로 잘 자라주어 2-3차례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아먹고 오늘은 2차 열무씨앗을 메타쉐콰이어 나무 주변 멀리 심고 새들이 쪼아먹지 않도록 그물망을 씌워주고 나니 하 ~ 제법 그럴듯한 텃밭 꼴이 갖추어 진듯 싶다.
5월 13일 완두콩 수확
연두빛 완두콩 열매를 한게 따서 조심스럽게 껍질을 밧기봤다.
어릴적 갖고 놀던 떳다 김있디 하는 예쁜 인형 눈 처럼 6-7개의 토실토실한 완두콩알들이 일제히 반짝 눈을 뜨고 ”주인님 안녕? 그동안 우리를 이렇게 예쁘게 커워주셔서 고마워요“ 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알들을 조심스럽게 두손으로 감씬체 얼굴에 부벼본다. 아 ! 어쩜 이렇게 예쁠까? 그동안 씨뿌리고 흙돋우고 김메주고 물주며 애지중지 키워낸 자식 같은 나의 완두콩! 벅찬 감정에 코끝이 찡해온다.
생각보다 많은 수확이었다. 공동체 수녀님들도 환호성을 올리며 감탄했다. 예쁘고 사랑스런 자식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싶어하는 부모의 맘이 이런것일까? 키운 수고, 예쁘게 잘 자라준 알알들의 사랑스러움을 마음으로 만끼하기보다 하얀 쌀밥에 다소곳이 앉아있을 완두콩밥을 상상하는 수녀님들의 환호성에 웬지 결혼식장에 딸의 손목을 잡고 사위에게 데려다 주는 아빠의 맘같이?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밥상에 둘러 앉은 수녀님들의 행복을 위해 나의 감상을 신속하게 떨구어 내자.. 완두콩 요리의 전문가처럼? 팔을 걷어 부친다
뜨거운 물에 소금 넣고 살짝 데친다음 다된 밥에 부어 뒤적여 콩과 하얀 쌀밥이 잘 섞이도록 휘저어준다. 하얀 흰 저고리에 연두빛 반오장을 두른 듯한 완두콩밥의 모습이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아한 지태를 뽐내며 보는이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완두콩을 보면서 생전 처음으로 내 손으로 가꾼 결실앞에서 ”온 세상 만물이여 주를 찬미하라 그분의 위대하심을 깊이 찬양하여“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몸으로 체험하게된 것을 감사드리는 시간이 되었다.
6얼 20일 양파, 마늘 수확
무려 8개월 동안의 수고에 비해 열매가 그리 튼실하지않아 약간 실망,
초보자의 실력으로 이정도를 감사하자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텃밭작물 중 가장 긴 시간을 땅속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마늘과 양파인 것 같다. 또 그만큼 손길이 많이 가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알 두알 땅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양파들은 시중에서 봐오던 그런 미끈한 자태라기보다 자유분망한 각각의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남들은 맛있고 영양듬뿍한 온갖 비료들 먹으며 자랐는데 그들과 비교할순없지 그래도 나는 너희에게 자연산 비료만 먹여줬으니 향기와 맛은 어느것에 비교햐랴?
한알 한알 캐는데 손끝이 떨려왔다. 수확하는 내내 호미나 삽에 의해 몸에 상체기가 생기지는 않을까?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6얼 23일 감자 수확
감자 역시 손길이 많이 가는 작물인 것 같다, 자주 밭을 둘러보며 감자밭의 수분증발을 확인하여 물을 주기도 하고 순을 쳐주고 꽃을 따주고 가끔씩 흙위로 하얀 얼글을 쏘옥 내밀며 세상구경을 하려는 귀여운 것들에게 ”아서라 그래도 지금은 안되“ 하며 흙을 토닥여 햇빛 막아주기를 여러차례 드디어 오늘 감자알들이 세상밖으로 탄생하는 날이다.
해남에서 지인이 보내준 빨간감자도 큰언니를 선두로 줄줄이 따라 나왔다.
감자수확은 기대했던 것 보다는 빈약했다. 줄기에 송알송알 작은 알맹이들이 맺혀있다 좀더 기다렸더라면 더 클수 있었을데네 너무 일찍 수확한걸까?
감자심을 시기에 동네 어르신들께 해남에서 보내준 빨간 씨감자를 조금씩 나눠드렸었는데 경기도에서는 빨간 감자를 보지 못했는데 신기하다고 하시며 심으시던 어르신들의 감자 수확은 역시 오랜 경험에 의해 우리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수확하신 것 같았다.
내년 봄에 심을 씨 종자를 흰것과 빨간 것을 큰걸로 골라 신문지에 싸서 햇빛을 차단하고 적당한 온도에서 내년 봄까지 보관하기로 했다.
6 월 27일
서서히 날씨가 더워지자 밭고랑 여기저기서 주인님 목말라요, 벌레들이 마구쪼아데니 약좀 주세요, 잡초들이 우리 자리를 빼앗고 있으니 어서와 잡초를 뽑아주세요 하소연 하듯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채소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잡초 뽑아주기와 커피가루를 뿌려 벌레의 접근을 막아주는 정도였기에 참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하루의 일과는 땀으로 시작하여 땀으로 끝났다. 일을 마치고 언덕을 오르다 보며 손마디, 무릎이 지근거려 내일은 도저히 일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서 힘이 솟는지 다시 텃밭으로 리어커에 호미, 삽. 물통을 담아 텃밭을 향해 발걸음도 가법게 영차 영차 이렇게 몸으로 부대끼면서 봄 텃밭일은 겸손과 인내,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겨햐 한다는 자연의 법칙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체험의 시간들이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저 우왕좌왕 잡초와의 전쟁만 하다 서리가 오기전 겨우 고구마 몇박스, 무 20여개, 서리태 패트병 3병 정도의 수확으로 가을 걷이를 마무리 했다. 보잘 것 없는 소출이지만 이것들을 통해 나는 소중한 경험을 얻게되었다.
그동안 나는 땅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이었다, 심어놓은 채소들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비가오면 오는 대로 안오면 안 오는대로 작물에 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밥먹고 기도하는 시간외에는 온통 텃밭과 심어둔 채소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텃밭일이 기도이며 기도가 텃밭일이 되기 일쑤였다. 비료나 농약살포, 밑거름과 웃거름의 주는 시기와 방법등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 동네 어르신들께서 해 주신 조언. 서적, 인터넷을 뒤져 알게된 정보가 각각 달랐다. 결국 농사의 체험을 통해서 나만의 농사 노화구를 쌓아 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7월 4일 ~ 9일
농사일을 하기전에는 콩은 잔 손이 덜 가는 작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순이 돋으면서부터 순치기, 지줏대 세워 묶어주기 물주기는 기본이며 관심과 정성을 들인 만큼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순치기를 마치고 난 다음 태풍이 오기전 지줏대를 세워 2-3줄 묶어 두지 않으면 쓸어져 수확량이 절번도 못 미친다니 마음이 급해졌다.
순치기를 마치고 웃거름으로 그동안 준비해 뒀던 음식물, 깻묵, 잡초, 한약찌꺼기액비들을 물에 희석시켜 엽면시비해 주었다.
7월 21일 잡초 액비만들기
여름철에 왕성하게 돋아나는 풀들을 베어 액비를 만들어 두면 그 또한 토양에게 최상의 보약이 된다기에 두어자루 풀을 베어다 물과 부엽토한줌, 거름 한줌, EM벌효액을 넣고 휘히 저어 파리가 들어가 알을 까지 못하도록 단단히 뚜겅을 닫아 두었다.
나는 70평새 보약 한첩 마셔본적 없지만 가을에 마늘 양파심을 때 와 내년 3월 웃거름으로 두어차례 첩총와 소금물,음식물액비, 깻묵액비, 한약찌꺼기 액비를 한사발씩 먹여주면 여느 마늘밭보다 쑥쑥 잘 자라줄것이라 믿는다. 내작은 텃밭의 식물들이여 기대하시라 !!
그동안 액비를 만들면서 두어 차례 실페를 거듭해 그만 둘까도 해봤지만 가능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더구나 화학비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액비만들기와 거름만들기를 포기할수 없었다. 다행이 액비가 발효되는 기간은 여름철에는 한달 정도면 가능하기에 5월부터 시작했던 액비가 그런대로 잘 발효되있어 작물들에게 아낌없이 듬뿍듬뿍 부어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친환경 농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어느정도 농사 경험이 있어야했던걸 나는 겁도 없이 그저 화학비료를 쓰지 않겠다는 이상만 가지고 시작했기에 실수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한해 농사를 지어보니 새싹이 움터 나오는 것을 보는 기쁨과 열매맺는것들을 바라보는 흐뭇함을 어디서 얻을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텃밭일을 통해 나는 손가락 관절염이라는 병을 얻긴 했지만 흙과 태양, 신선한 공기를 매일 무상으로 공급받음에서 오는 건강회복의 은혜를 하느님께 덤으로 받았다.
8월 14일 옥수수 수확
옥수수씨앗을 땅속에 묻을때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그저 한번 경험삼아 심어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내키보다 훌쩍 큰 옥수수내에서 열매를 따는 기쁨을 어디다 비기랴?
그동안 액비를 듬뿍 먹여줘서 그런지 미끈하고 잘생긴 옥수수는 동네 어르신들도 지나가시면서 한마디씩 칭찬을 해 주셨다 ”거첨 옥수수 농사 처음이신데 잘 키우셨수“
훌륭하게 자라준 자녀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흐뭇함이 이럴까? 우쭐해지기도..
그런데 아뿔사 속이 꽉찬 것 같아 뚝뚝 꺽어 뉴수가, 소금을 넣고 삶아낸 옥수수는 보기보다 여물지 않았다. 여물이 꽉 찬 낱알은 군침일 돌 정도로 맛이 일품이었다.
와~~ 옥수수다 함성을 지르며 좋아하던 수녀님들이 옥수수 껍질를 벗기는 순간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내 탓이요 내탓이요 성미 급한 내 큰 탓이로소이다.
달력에 잘 기록해 두고 내 기억력에 잘 간직해 두었다가 내년에는 이런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명심할 것이다. 내년에는 기필코 옥수수 알이 꽉 찰 때 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 꽉찬 옥수수를 식탁위에 올려 놓으리라
9월 8일
추석이 가까워서 인지 휘영청 밝은 달빛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젊었을때는 이런 달밝은 밤에는 감성이 우러나 한줄 글을 싸보거나 주위환경이 허락되되면 방문을 닫아걸고 풀룻이나 오카리나를 연주하면서 한껏 감성에 젖어보기도 했었다,
몇해전 이곳 수녀원에 자리를 옮기고 찾아온 행운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작은 호수가 있다. 나는 뜻밖의 행운을 누리게 되어 한껏 촉촉한 감성에 젖어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호수위로 미풍이 불어오기라도 하면 어느새 은빛요정들이 무대위로 쏟아져 나와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랄라~ 랄라라 랄라라 릴라 ... 나도 모르는 사이 축배의노래를 흥얼거려진다 미뉴엣, 폴카, 왈츠곡을 풀룻으로 연주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런데 작년 올해 사이에 한집 두집 수녀원 주변에 높은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달빛 요정들의 가무? 감상의 행복을 볼수없게되었다, 더구나 나이들어 농사일을 하다 보니 저녁에는 파김치가 된 상태로는 풀룻 연주가 쉽지 않아 악기를 장속에 묻어두었다,
추석의 풍요로움에 바해 내영혼은 바싹 마른 나뭇잎새처럼 말라가는 느낌이든다.
10월 9일 양파 마늘 심을 토양준비
땅을 잘 활용할줄 몰라 10여평 땅에 들깨, 콩을 심어두었더니 10월이 되도 수확을 할 수 없어 마늘 양파를 유기농으로 재뱌할 토양준비가 많이 늦어져 조바심이든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땅심을 준비하려면 적어도 9월 중순경에는 식회비료를 뿌리고 일주일간 물주고 그다음 거름과 액비를 뿌리고 또 2-3주간을 물주면서 땅을 준비해야 하는데 콩과 들깨 수확을 기다리다 결국 수확도, 파종 시기도 놓쳐버린 것이다. 주변 농부님들의 텃밭에는 벌써 마늘 싹이 제법 돋아나고 있어 이번에는 그냥 시간도 없는데 화학비료를 사용할까? 유혹이 스물스물 올라왔다.그래도 10월 말까지는 괜찮을거야 스스로 위로하면서 유기농법을 고수해보리라 맘먹는다.
아침부터 비가 부술부슬 내린다, 오늘은 무슨일이 있어도 석회를 뿌려야 하는데 비가오니 석회를 뿌리고 물을 주지 않아도 빗물에 녹을수 있어 일석이조 다행이다.
성당에서 돌아오자 한 걸음에 텃밭으로 내달린다. 10여평의 텃밭에 석회비료 6포를 뿌리고 땅 뒤집기를 하고 나니 비와 땀으로 옷이 온통 젖어 한기가 올라왔다.수녀님들이 걱정할까봐 살금살금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덕분에 오늘은 일찌암치 따뜻한 이불속으로 ..
10월 27 마늘 양파심기
그동안 거름과 액비를 주고 2-3일에 한번씩 물을 주고 땅 뒤집기, 토양에 비닐멀칭까지 치고 나니 나도 이젠 제법 농삿군이 다 된 듯? 뿌뜻함으로 까만 비닐멀칭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물결을 이루며 토양을 축복하고 있는 것 같다. 멀칭해둔 텃밭에 수녀님들이 공동작업으로 양파와 마늘을 심어주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미리 알림사항을 말해 두었지만 너무 깊게 혹은 얕게 심어 제대로 싹이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으로 자꾸만 목구멍으로 잔소리가 스물스룸 올라오려 한다. 농사는 하늘에계신 분께서 하신다니 마음을 비우자
작년에 마늘 양파심기를 해봤지만 그때는 땅과 종자의 분량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시작했기에 금년에도 마늘씨앗과 양파모종이 턱없이 부족했다.
내년에는 마늘밭 5평에 씨마늘 한접, 양파밭 5평에 포토에서 기른 모종 3판을 준비할 것이다, 이런 계산이 나오는것도 한 두해 경험에 얻어진 것이라는 생각된다.
10월 17일 농사 마무리
한가지 작물심고 나면 이게 끝인가 싶은데 또다른 일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크나 작으나 농사일이 모두 이런 것 같다.
양파와 마늘 심기를 끝내고 한숨 돌릴까 했는데 밭 두둑위에 얹어둔 콩대들이 빼꼼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제 껍질이 거의 말라가고 있어 콩을 털어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틈틈이 손놀림을 하면서 까둔 쥐눙이콩, 검정콩을 한줌씩 밥위에 얹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며칠 전에는 늙은 호박을 삶아 검정콩을 넣고 호박죽을 쑤어 먹었다. 호박과 콩 ! 최고의 영양가를
추위가 찾아오기전 콩을 타작해 둬야 하고 내년 봄 농사를 위해 퇴비를 뒤집고 액비통을 씻어두는일도 미룰수 없다.
작은 텃밭이나마 소중한 먹거리를 키워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동안의 수확물들을 다 먹어 남은게 없긴 하지만 땀과 수고로 얻었던 작물들을 완두콩, 감자, 깻잎,옥수수, 당근,쪽파, 양파, 마늘등 소중한 낟알들을 떠올리면서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첫댓글 ㅜ.ㅜ
모두들
삶이 너무나
바쁘신가봐요
아무도 읽지 않으셔요
이제 다시 한해가 시작되고
토양은 텃밭 농부의 발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화이팅 할겁니다.
텃밭 일기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
오랜만에 시간내어 읽었어요
감사드려요 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