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 예보가 있던 오늘 순례길이었지만, 처음으로 정단원 40명과 예비단원 3명으로 버스를 꽉 채운 은혜 가득한 순례였기에 흩날리는 빗방울이든 강한 햇살이든 뭐든 자신만만하게 이겨낼 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호기로운 우리의 발걸음에 빗방울도 순례길의 운치를 더하듯 마치 BGM처럼 낮게 깔리며 잔잔히 내리더니 오후에는 마침내 그마저도 거두어 우리의 길을 편히 인도해주었지요.
오늘은 전북 완주 천호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 성지와 되재 공소, 오두재 교우촌을 방문하였습니다. 오두재 교우촌은 희망의 순례자 책자의 25번째 여정입니다.
천호 성지
초기 한국 천주교 창설에 기여하며 호남에서 최초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의 열심한 포교 활동으로 여러 차례의 박해 시기에 호남 지역에서는 수많은 순교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7년에 걸친 가장 혹독한 박해였던 병인박해는 병인양요의 여파로 전라도에서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오늘 방문한 천호성지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네 명 -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성인,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여산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 열 분의 묘소가 자리한 성지입니다. 천호산 일대는 박해 시대에 다리실(천호)을 포함한 총 7개의 공소가 있었는데 그 중 다리실은 가장 큰 공동체로 현재도 천호 본당으로서 신앙의 진통을 잇고 있습니다. 세련되고 기품있는 성전과 정성껏 잘 관리된 아름다운 성지 조경이 간간이 내리는 비 속에서 더욱 멋져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12기 신앙의길에 봉사자로 참여하였을 때 103위 성인 중 99번째 이명서 베드로 성인을 기억하는 순례를 하였는데 오늘 천호 성지에서 이명서 성인의 묘소를 참배했을 때에는 반가움으로 콧잔등이 시큰해지기도 하였어요.
천호성지에서 우리 순례단을 맞아주시며 정성을 다해 해설을 해주신 류재현 다니엘 해설사님과 귀에 쏙쏙 박히는 알찬 강론으로 매력을 더하신 박찬희 다니엘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되재 공소
되재 공소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의 되재 부근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공소입니다. 1895년에 창건되어 2004년에 전북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된 되재 공소는 약현 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며 최초의 한옥 성당입니다. 한국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2009년에 옛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당 외부는 아담하고 정갈한 한옥으로 커다란 종탑이 성전 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당 내부는 매우 특징적인 부분이 있는데 가운데 높다란 칸막이를 두고 좌우로 남녀를 구분해 앉아 미사를 드리도록 한 점입니다. 당시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던 남녀유별이라는 유교 문화는 쉽게 극복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되재 공소 뒷산에는 본당 설립 전 고산 지역에서 사목하다 열병으로 선종한 조스 신부와 라푸르카드 신부의 묘가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흐드러진 6월의 들꽃들이 쓸쓸히 묘소를 지키고 있었네요.
오두재 교우촌
오두재 교우촌은 완주군 깊은 산골짜기 계곡 주변에 자리한 교우촌이나 현재는 주변의 터만 추정할 뿐 아무런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한 곳입니다. 전봇대에 덩그러니 오두재 교우촌의 표식만 있을 뿐입니다. 이곳은 최양업 신부님이 1858년에 르그레즈와 신부와 리브와 신부에게 각각 서한을 올린 곳으로 당시 최양업 신부의 사목 활동 이야기, 조선 사회의 어수선함 등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오두재 교우촌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의 경관이 수려하고 계곡의 물소리가 발길을 멈추게 하였는데 예전의 신앙 선조들이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고된 마음의 위안을 얻었기를 바래보았습니다.
새벽 6시30분에 순례길을 떠나는 단원들을 위해 맛있는 콩떡과 두유를 준비해주신 김성대 라파엘, 김은희 플로라 부부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매듭 묵주팀이 준비해주신 묵주는 수녀님께 잘 전달되어 바로 성물방 매대에 올려지는 감동을 누렸습니다. 수고해주신 일산성당 매듭팀(김순애 클라디스, 김광임 베로니카, 김은희 플로라와 비단원 조민정 아가다, 이영미 크리스티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제 남은 희망의 순례자 26~29번째 여정까지는 모두 경상도 지역 순례입니다. 7월 순례는 경북 칠곡으로 가게 되는데요. 모쪼록 점점 더워질 날씨에 대비해 건강 관리 잘하셔서 오늘 순례처럼 버스도 마음도 꽉꽉 채워 만나는 복된 순례되길 기원합니다.
7월 순례에서 반갑게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