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쯤에 나는 TV를 보고 있었고, 오빠는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등은 꺼지고, TV도 같이 꺼졌다. 아마 정전된 것 같았다. 오빠는 집에 있던 손전등으로 초를 찾았고, 식탁에 초를 놓고 불을 켰다. 오빠랑 나는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평소에 말을 안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오빠."
"왜?"
"불 언제 들어와?"
"몰라."
짧은 대화를 끝내고 우린 다시 침묵을 했다. 초는 점점 녹아가고, 나는 너무 심심했다. 오빠는 핸드폰을 식탁에 놓고 엎드려 있었다.
"오빠."
"왜?"
"오빠는 고3이니까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
"어."
"힘들겠다."
다시 침묵을 하고,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야!"
"왜?"
"너 공부 잘하냐?"
"그럭저럭."
"열심히 해라."
"응. 고마워."
오빠도 심심해서 자꾸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십 분 정도 지났고 오빠가 먼저 침묵을 깼다.
"야."
"왜?"
"우리 옛날에도 이렇게 조용했냐?"
"아니, 어렸을 때 자주 놀았잖아."
"그렇지……."
오빠는 오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가 생각하는 동안 나는 초를 관찰했는데, 촛불이 오래 있을수록 초는 점점 녹아 작아졌다.
"야!"
"또 왜?"
"너 내일 시간 있냐?"
"아니, 내일은 일요일이어서 시간 무지 많아."
"그럼 우리 내일 영화보러 갈래?"
"왜? 갑자기 영화를 봐?"
"그냥. 이대로 가다가 커서 연락 끊고 지낼 것 같아서……."
오빠는 우리가 너무 서먹해서 신경 쓰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 재밌겠다."
그렇게 약속을 정하고 있을 때, 불이 들어오고 다시 전등은 켜지고 TV도 켜졌다.
오빠는 촛불을 끄려고 했지만, 내가 끄지 말라고 해서 끄지 않았다. 오빠는 왜 끄면 안되는지 물어봤고, 나는 그냥 끄기 싫어서라고 말했다.
촛불이 초를 녹인 것처럼, 오빠와 나의 어색함도 녹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촛불이 초를 완전히 녹이기를 기다렸다.
<제28회 새얼백일장 중학교 시 부문 장원>
나방과 촛불
신송중학교 3학년 박경일
나방이 있고
촛불이 있다
나방은 촛불에 달려들고
촛불은 나방을 안아준다
그리고 나방은 자유롭게,
너무나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간다
내가 있고,
촛불이 없다
나는 길을 잃고
어둠속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슬프게
너무나도 슬프게
저 하늘을 날고 싶다
<제28회 새얼백일장 고등학교 산문 부문 장원>
벽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조성호
"불쌍한 아이들이니까 따뜻하게 대해 줘."
보호소 실장이라는 파마머리 여자가 가리킨 건 우글거리는 개들이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개 냄새에 내 표정은 저절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실장이 일러준 대로 나는 사료 그릇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개들이 일제히 내 발밑에 모여들어 왕왕거렸다. 몇 마리는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고, 두 발로 서서 내게 매달리기도 했다. 나는 정신없이 밥을 주다 멈칫했다. 저 구석에서 늙은 개 한 마리가 힘없이 앉은 채로 내가 있는 곳을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없는지, 밥을 먹으러 오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늙은 개.
"고생하시는 네 할머니 얼굴을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되지 자식아. 강제전학을 갈래, 사회봉사를 할래?"
짜증을 탄식처럼 내뱉던 학생부장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담배 몇 번 피운 게 무슨 대수라고. 교무실 알림판에는 나와 친구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흡연, 수업태도 불량 등의 몇 단어 또한 괄호 안에 들어 있었다. 김현석 자퇴, 황준호 사회봉사. 그리고 나는 개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쉬지 않고 짖는 똥개들 때문에 귀가 아픈 유기견보호소에서 일주일간 봉사를 하기로 했다.
보호소 여자 실장을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기겁을 했다. 꼬불거리는 파마머리만 없다면 학생부장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까만 뿔테 안경을 집게손가락으로 추키는 것까지 똑같았다. 하지만 실장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온순했다.
겨우 밥을 주고 밖으로 나와 몰래 담배를 피우려고 한 개비를 꺼내는데 뒤에서 실장이 소리쳤다.
"학생! 담배 피우면 애들한테 안 좋아! 사람이나 개나 다 똑같다고!"
깜짝 놀라 재빨리 담배를 주머니에 꾹꾹 눌러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뭔 상관이람. 약간 비틀어진 담배를 다시 원래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피웠다.
개들이 있는 곳을 청소하다 보니, 어느덧 그 늙은 개가 있는 케이지까지 왔다. 늙은 개가 들어있는 케이지는 똥오줌이 묻어 더러웠다. 새끼손가락만 써서 문을 열고 어서 비키라며 녀석을 빗자루로 툭툭 쳤지만, 녀석은 일어날 힘도 없어 보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녀석을 살짝 들어 밖에 꺼내놓았다. 살펴보니, 뒷쪽 벽에도 똥오줌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빡빡 문질러가며 청소를 하는데 늙은 개가 내 다리에 몸을 기댔다. 그러다가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꼬리를 천천히 흔들기도 했다. 옆에서 같이 청소를 하던 실장이 피식 웃으며 다가와 녀석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 늙은 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이상하게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면 환장을 하더라고. 아마 주인이었던 사람이 학생 비슷한 나이였나 봐."
교복을 좋아하는 늙은 개, 그 말을 들어서인지 나는 일을 하다가도 가끔씩 녀석에게 눈길이 갔다. 그럴 때면 녀석은 무료하게 누워 있다가 나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청소를 끝내고 철창 문을 닫으니, 녀석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늙은 개는 나를 잘 따랐지만, 가끔 내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올 때면 캑캑거리며 숨쉬기 괴로워했다. 가뜩이나 집에서도 폐가 안 좋은 할머니 때문에 못 피우는데. 언제부터인지, 고통스러워하는 늙은 개를 보면서 나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보호소에는 종종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케이지를 찬찬히 둘러보다가 한 마리를 가리켰다. 손님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건 주로 멀쩡하고 활발하게 뛰어노는 개들이었다. 다친 곳이 있거나 힘이 없는 개들은 선택받지 못했다. 늙은 개도 마찬가지였다. 유기견을 데려가려는 손님에게 실장은 항상 강조했다.
"이미 한 번 버려졌던 아이들이에요. 아낌없이 사랑을 주셔야 해요, 꼭!"
봉사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 나와 한참을 서있었다. 문득 내가 유기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할머니와 같이 사는 건, 이혼할 때 나를 서로 맡기 싫다던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서로 싸울 때, 조용히 내 손을 잡았던 할머니였다.
유기견들을 돌보는 실장처럼 갈 곳 없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돌봐주는 할머니. 나는 일부러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녔다. 담배를 피우며 잔뜩 폼을 잡았다. 하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엔 언제나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갈 곳 없는 나를 맡아 돌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할머니도 버림 받은 사람이었다. 한 푼도 도와주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때문에 늘어난 식구 하나를 더 먹여 살리려고 새벽 찬 공기에 밭은기침을 해가면서 시장에서 푸성귀를 팔아야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내낸 늙은 개는 유난히 나를 따랐다. 나도 잘 움직일 수 없는 녀석을 위해 일부러 사료를 따로 그릇에 담아 주기도 했다. 늙은 개는 밥을 먹고 나서 내 손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늙은 개의 뜨거운 숨이 내 손에 느껴졌다.
마지막 봉사하는 날, 실장은 카메라로 열심히 늙은 개와 다른 개들의 사진을 찍었다. 웬일로 사진을 찍느냐고 물어보자 실장은 책상 서랍을 열고 수북하게 쌓인 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들을 기억하려는 거야. 아이들을 언제까지 여기서 키울 수는 없으니까. 그 동안 수고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도 돼."
시간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나를 보내주는 실장에게 이유를 묻자, 실장은 개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오늘은 2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날이거든. 주사로 편안히 눈을 감겨준 다음에 화장해줄 거야. 학생한테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실장은 안쪽에 있는 개 한 마리를 케이지에서 꺼내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보호소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꺼내 물며 중얼거렸다.
"그깟 개, 늙었으니 어차피 죽는 거지."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꾸만 기진맥진해 잠에 빠진 할머니를 내버려둔 채 방문을 닫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제대로 한 모금 들이키지도 않은 담배를 확 구겨버렸다.
"죽지 마! 나 이제 담배 같은 거 안 피우고 할머니 말 잘 들을 게!"
나는 미친 놈처럼 엉엉 울면서 늙은 개에게로 달려갔다. 늙은 개와 나 사이를 가로막은 철창 문을 열고 늙은 개를 안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