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건강 이에 달렸다- 입, 음식과 건강 그리고 인생의 통로
▲ 일러스트레이션 김무니 moony5696@naver.com
어느 날부터인가 손자 손녀가 가까이 오지 않는다. 사랑스런 아이들을 꽉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제는 싫은 내색에 선뜻 손 내밀기가 어렵다. 또 입을 가리지 않고 활짝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으로 가리지 않으면 남에게 폐가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한때는 늘 들었던 동안이라는 인사치레도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이런 의구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면 거울을 보고 입부터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당장 통증이 없어도 나는 괜찮은 것 같지만, 내 몸의 작은 변화들은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늦게 알아챈다.
조선의 대표적 명의인 구암 허준을 묘사한 소설 <동의보감>을 살펴보면, 외상으로 다치는 일 외의 내부로부터 병을 앓게 되는 원인은 입을 통한 음식행위(飮食行爲) 속에서 병이 몸속으로 묻어 들어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것을 먹지 말아야 할지만큼이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조상들의 지혜다. 실제로 현대 의학에서도 씹는 행위와 구강건강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 결과는 뇌혈관 질환이나 치매와의 연관성 등 차고 넘치도록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의학 전문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가바야 시게루(蒲谷茂)는 그의 저서 <이만 잘 닦아도 비만·치매 막는다>에서, 입으로 씹고 맛보는 행위는 환자 회복 의욕에 영향을 주며,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과 삶 전체에 영향을 준다고 저술하고 있다. 이렇듯 씹는 행위, 음식을 먹는 행위는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데, 그 바탕에는 ‘건강한 치아’라는 선결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
순종의 장례일 사진에 우연히 등장했던 최초의 치과 ‘이해박는집’과 지금의 치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얼마 전까지 아말감으로 땜질을 해대던 그 모습과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그 변화에 걸맞게 우리들도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세월은 어떻게 치아에 자리 잡는지, 요즘 다들 한다는 그 임플란트는 무엇인지, 달라지는 중년을 위해 치과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장수건강 이에 달렸다- Part 2] 빳빳한 칫솔 하나가 열 의사보다 낫다
글 - 송학선(宋鶴善) 원장
요즘 ‘두 번째 스무 살’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제 2 인생을 설계하고 꾸려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희망이고 즐거움입니다. 저도 제 치과를 재개원하려 합니다. 제 2의 치과를 설계하고 꾸며보려 하는 게지요. 치료 중심의 치과에서 예방 중심의 치과로 바꾸려구요. 이 닦아 주는 치과로 평생 구강건강 전문 관리 주치의 노릇을 하려는 겁니다.
치과의원을 막 개원했을 때입니다. 하루는 러닝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머리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30대 남자가 턱을 감싸 쥐고 진료실로 들어섰습니다. 치료받으려는 사람 행색치고는 너무했다 싶었지만 무척이나 아픈가 보다 하고는 할 말을 참았습니다. 그런데 입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도대체 이를 닦는 거요 마는 거요?”
그리고는 구강 건강에 무심한 환자를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위 합쳐야 몇 개 남지 않은 이에 그나마 음식물이 잔뜩 끼어 마치 쓰레기장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참을 야단치다가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표정에 야단을 멈추고 무슨 일 하시는 분인지를 물었습니다.
“양곡 도매시장에 나락 정미해서 올려 보내는 일 하고 있구먼유.”
“기계 앞에서 하루 종일 떠날 수가 읍스유. 밥도 서서 먹구유. 잠도 쌀가마니에 엎어져서 그냥 자누먼유. 그것두 네 시간밖에는 못 자유.”
충격이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지며 목이 콱 메어 왔습니다. 식사시간도 없이 하루 스무 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이 닦으라고 야단쳤으니요. 이분에게는 건강할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루 8시간 노동과 삶의 여유가 필요한 분이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친구들과 소주도 한잔하고, 가족들과 텔레비전도 보고, 자기 전에 씻고 이 닦을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위해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구강건강이 나쁜 것은 이를 닦지 않아서이고, 입안에 나쁜 균을 없애면 구강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가진 치의사였습니다. 질병에 대한 생의학적 모델만을 교육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료 중심의 진료 체계 속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 임금님도 치통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광해군이 치통을 앓았던 기록이 있습니다. 영의정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광해군에게 문안인사를 하는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여러 부위의 열이 위에 모여들어 치통이 생겨난 것입니다.” “무릇 위(胃)에서 생겨난 병은 침으로 쉽사리 효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마음을 맑게 하고 생각을 줄여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 잘 조절하여야 상하가 서로 통해 열이 흩어질 것입니다.”
치통 때문에 광해군은 어의(御醫) 허준(許浚)에게 침을 맞고 있었습니다만 치료는커녕 쉽게 통증도 가시지 않았겠지요.
또 오성(鰲城)으로 잘 알려진 좌의정 필운(弼雲) 이항복(李恒福)이 “치통 증세는 어떠하십니까?”라고 묻자 광해군은 이렇게 답합니다.
“잇몸의 좌우가 모두 부은 기운이 있는데 왼쪽이 더욱 심하오. 한 군데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곪는 것처럼 아프고 물을 마시면 산초(山椒)맛이 나는구료.”
사실 산초나무나 초피나무의 매운맛을 내는 ‘산시올(sanshol)’ 이란 성분은 마취 작용과 살충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요법으로 치통이 있을 때 산초열매 껍질을 씹어 통증을 감소시킵니다. 서양에서도 이 방법이 사용되는지 이 나무의 영어 이름이 ‘toothache tree’ 즉 치통나무입니다. 입안이 심하게 아프면 광해군의 표현같이 마치 산초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맛의 산초 열매를 통증을 없애는 약제로 쓸 수 있다니 참 묘하지요?
왕으로 살든 신하로 살든 웰비잉(well-being)이건 슬로 라이프(slow-life)이건 건강한 삶이든 행복한 삶이든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그림에 떡입니다. 어떤 삶이든 구강건강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조건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몸의 대문 격인 입안이 건강하지 못해서야 몸도 마음도 편안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이도 오복(五福)의 하나여~”라고 말합니다. 오복이 무언가요? 새로 집을 지어 상량(上梁)할 때 대들보에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쓰고 그 밑에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 천상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세계의 오복을 갖춘다.’고 씁니다. “오복을 갖추었다”고 말하면 모든 걸 가진 행복한 삶이겠지요.
상서(尙書), 즉 서경(書經)에 오복이란 오래 사는 수(壽), 많은 재물 부(富),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강녕(康寧), 어진 덕을 닦는 유호덕(攸好德), 하늘이 내린 명대로 살다가 죽는 고종명(考終命)이라 했습니다.
중국 청나라 시대에 적호(翟灝)가 편찬한 통속편(通俗編)에 나오는 오복은 상서의 오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수(壽)· 부(富) · 귀(貴)·강녕(康寧)·자손중다(子孫衆多)로 되어 있어 두 가지가 다른데, 서민층이 바라는 오복은 오히려 이 통속편의 오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과경(因果經)의 종요(宗要)인 ‘현자오복덕경(賢者五福德經)’에서 부처님은 오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법을 설하여 다섯 가지 복덕을 얻으니 첫째는 세상에 나서 오래 사는 것이요, 둘째는 큰 부자가 되어 재물과 보배가 많은 것이요, 셋째는 단정하게 잘 생기는 것이요, 넷째는 명예가 세상에 널리 드러나는 것이요, 다섯째는 정신이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지는 것이니라.”
사실 문헌에서 찾을 수 있는 옛 사람들의 오복 중에 이[齒]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곳은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강녕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반복되는 이야깁니다만 음식을 잘 씹지 못한다는 것은 전신 건강을 유지할 첫 번째 조건이 부실하다는 이야깁니다. 동물에게 이빨의 상실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강건강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착각, 치과 기술로 또는 약물로 이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구강 건강과 관련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은, 우리 입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질병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잇몸병이나 충치는 예방으로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만성 질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동물과 인간의 가장 분명한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빳빳한 칫솔 하나가 치과의사 열 명보다 낫습니다.”
글 - 송학선(宋鶴善) 원장
서울대 문리대 치의예과와 치과대학 합쳐서 8년 다님.
1984년 송학선치과의원 개원. 청년치과의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환경운동연합, 과천시민모임, 환경재단136포럼,
6월민주포럼, 충치예방연구회 등 활동. 현재 콩세알튼튼치과 준비 중.
[장수건강 이에 달렸다 Part 3] 내 입의 젊음은 나이와 다르게 간다
흔히 구강건강, 치아건강이라고 하면 TV 속 치약 광고의 가운 입은 의사와 어금니 모형 속 충치만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구강건강이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생각보다 꽤 넓다. 특히 인상과 미소를 좌우하는 얼굴의 상당 부위를 좌우하기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거울을 찬찬히 볼 필요가 있다.
시원스런 웃음이나 미소가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다.
나의 심리상태나 기분을 상대에게 전달해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해 주기도 하고, 상대에게 적의가 없음을 표현하는 사회적 기능도 갖고 있다. 흔히 우리가 처음 만난 상대와 악수를 할 때 치아를 보이며 미소를 짓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 총기문화가 발달된 곳일수록 낯선 이와의 눈인사가 일상이 되는 것도 미소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소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나이 등을 가늠해 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미소를 통해 어떤 위치의 치아가 보이는지, 치아의 상태나 색은 어떤지에 따라 상대의 젊음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치의학 중 심미치료학, 아름다운 외모를 고려한 치료를 연구하는 분야에선 ‘스마일 라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스마일라인은 윗니들과 아랫니들이 만나는 선을 이야기하는데, 젊어 보이려면 이 곡선이 평평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웃음을 잃는다는 표현은 다소 문학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실제로 웃음을 잃은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치아나 구강상태에 자신이 없다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열어 자신의 것을 활짝 내어 보이는 행위를 쉽사리 할 수 없는데, 그야말로 웃음을 잃은 셈이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신감으로 우울증 앓기도
진료 현장의 치과의사들은 외모는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 예방할 것을 추천한다. 흔히 말하는 안티에이징이 치아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세대치대 이장열 외래교수(스마일어게인 치과의원)는 “구강 부위의 변화를 늙는다는 것의 기준으로 여겨 우울증으로 연결되는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고민만 하다가 증상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교정 등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제 2의 인생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중년층의 교정을 생애전환기 교정으로 규정하고 보다 전문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이 교수는 “특히 노화가 시작되면 안면근육의 근력이 약해지면서 웃을 때 윗니 대신 아랫니가 노출됩니다. 그런데 이 앞쪽 아랫니가 세월이 지나면 어금니의 미는 힘 때문에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아 콤플렉스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교정 장치가 보이지 않도록 치아 안쪽으로 넣는 설측교정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사회활동이 중요한 중년들의 교정이 더욱 용이해졌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년 교정 환자들이 늘면서 진료실 안의 풍속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부산 예쁜미소바른이치과 정주혜 실장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두 번째 새 인생을 준비하는 중년들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무척 늘었습니다. 대학 진학이나 사회 진출을 앞둔 자녀와 함께 나란히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미백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 미백은 원래의 색을 잃고 어둡게 된 치아를 다시 하얗게 만드는 치료를 말하는데, 미백이 필요한 이유는 대부분 흡연이나 식습관 때문이다.
치아의 희고 단단한 부분인 에나멜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대와 같은 얇은 관들이 빽빽이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얇은 관 안으로 흡연으로 인한 침전물이 채워지거나, 한국 음식 특유의 색소들이 자리 잡으면서 치아의 색을 어둡게 한다고. 특히 최근에는 치아 변색의 주범으로 커피가 지목되고 있다.
칫솔질과 입 체조로 젊음 유지 가능
입 주위 안면 부위 노화는 몇 가지 증상만 체크하면 스스로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치과의사가 지적하는 일반적인 노화현상은 다음과 같다.
칫솔질과 입 체조로 젊음 유지 가능
입 주위 안면 부위 노화는 몇 가지 증상만 체크하면 스스로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치과의사가 지적하는 일반적인 노화현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침의 분비가 줄어들어 입 안이 마르기 시작한다. 침은 입 안에서 살균작용을 돕기 때문에 구강건조증이 찾아오면 잇몸에 염증이 생기기 쉽고, 충치와 구취에도 영향을 준다. 또 치조골이 낮아지면서 치아 사이가 벌어진다. 이 역시 치주염과 관계가 있다. 틈이 생긴다는 것은 음식 찌꺼기가 쉽게 끼고, 썩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외부에서 발생하는 변화는 근육의 이완. 안면의 근력이 떨어지게 되면 인중이 길어지게 되면서 사람의 인상을 다르게 만들고, 웃을 때 윗니가 보이는 젊은 사람들과 달리 아랫니가 보이게 만든다. 치과의사들이 아랫니의 배열이나 색상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치아와 입 주변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입 체조나 와타나베 칫솔질과 같은 치아세정술을 추천한다. 입 체조는 말 그대로 입 주변과 혀의 근력을 강화하기 위한 체조로, 입술과 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발음을 소리 내어 말하면서 하는 운동. 제대로 된 효과를 보려면 올바른 교육을 받고 시도하는 것이 좋다.
와타나베 칫솔질은 일본에서 고안된 이 닦는 법 중 하나인데, 그간 고안된 많은 칫솔질 방법 중에서 최근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방법으로, 대학에서도 정규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음엔 환자 스스로가 직접 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해 먼저 시술 받아보기를 권하고 있다.
[장수건강 이에 달렸다 Part 4] 중년 접어들면 입안은 ‘잇몸 전쟁’
조선시대 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에서 우리는 조상들 역시 구강 질환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여섯 가지 즐거움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 시에서, 그는 노인의 또 다른 즐거움은 치아가 없는 것(齒豁抑其次)이라면서, 치통이 없어 이제는 잠을 편안히 잔다(穩帖終宵睡)고 적었다.
하지만 다산(茶山)이 미처 몰랐던 것이 하나 있다. 그를 괴롭혔던 치통과 이가 빠져버리게 된 원인이 바로 그가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잇몸 때문이었다는 것 말이다.
흔히 우리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물론 은유적인 속뜻도 있겠지만, 그만큼 잇몸은 꽤 튼튼해서 치아만큼 버텨 줄 것이라는 믿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의사들은 그 믿음을 헛된 믿음이라고 단언한다.
치과질환 잇몸관련이 압도적
의료현장에서 치과의사들은 특히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치주질환과 관련한 치료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단일상병으로는 치은염과 치주질환이 8번째로 진료비가 많았으며, 치과 질환 중에서는 유일하게 발표한 순위 20위 안에 포함됐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잇몸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잇몸을 구성하는 두 가지 조직 중 어느 곳에 발병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잇몸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 잇몸에 염증을 일으키게 되면 ‘치은염’이라 부르는데, 치은염은 제때 치료만 이뤄진다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치주염은 상황이 다르다. 잇몸의 염증이 잇몸뼈까지 전이된 상태를 치주염이라 부르는데, 치주염으로 잇몸뼈를 잃게 되면 회복은 쉽지 않다.
특히 이로 인해 잇몸뼈의 높이가 낮아지게 되면 치아가 벌어지고, 음식물이 끼면서, 다시 염증의 원인이 되고 결국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또 노안(老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여기서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치근우식. 치근우식은 말 그대로 치아의 뿌리가 썩는 것을 이야기 한다. 잇몸으로 보호되고 있던 뿌리 부분이 점차 노출되면서 충치균에 감염되면 발생한다.
치근우식이 무서운 것은 진행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 일반적으로 치아를 보호하고 있는 법랑질은 성인이 되면 잘 썩지 않고, 설사 충치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 진행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하지만 치아 뿌리 쪽에 충치가 생기면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이다.
특히 이 치아우식은 지독한 입냄새의 원인이 되므로, 새로운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중년들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치주질환으로 치아 흔들리면 ‘사망선고’
치주질환에서 최악의 상황은 치아가 견디지 못하고 빠져 버리는 상황이다. 치주질환은 상태가 악화가 되어서야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치아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면 이미 살리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많다.
구로이즈치과의원 채규창 원장은 “치은염은 염증을 긁어주는 치주소파술 정도로 치료하면 되지만, 치주염까지 진행되면 잇몸을 일부 잘라내는 등의 수술이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치주질환을 예방하는 길은 아주 단순합니다. 원인이 되는 치태를 없앨 수 있도록 스케일링을 통해 치석을 제거하고, 치실이나 고압 구강세정기 등으로 치아관리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영양상태 역시 잇몸건강에 영향을 주니 이 점도 신경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치석제거를 위한 스케일링은 국민건강보험 적용대상이므로 낮은 본인부담금(1만3000원)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잇몸약에 대해서 치과의사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부분의 잇몸약이 비타민과 칼슘이 주성분인 영양제에 지혈제와 부종완화제를 더한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치주질환이 전신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이효정 교수는 최근 발표를 통해 대만 의료진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이 10년간 71만 9426건의 치료 사례를 연구한 결과, 치주질환을 방치한 환자의 경우가 치료한 환자에 비해 뇌졸중 발병이 37%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발병 후에는 반드시 치료를 받기를 주문했다.
조부모가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이 부모만큼 많아진 사회상을 반영해 건강과 관련한 습관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강릉원주치과대학 박덕영 교수는 “결국 건강한 잇몸은 본인 스스로가 평소에 어떤 습관을 갖고 관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올바른 관리방법과 습관을 익히고, 손자, 손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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