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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와 열반 35강 - 유식삼십송 제2송, 제3송(48:57)
0:07 <유식학의 변계소집성>
유식학 어떠세요? 좀 유식해지시는 것 같으세요? 이 30송을 그중에 14개를 이제 우리가 읽어볼 건데 이 14토막 이해가 되신다면 30송을 지금 꽤 깊게 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뿌듯해 하셔도 됩니다. 유식30송이 어려워요. 쉬운 경전이 아니에요. 짧기는요 30송이 A4 한 장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풀이하기가 난해한, 상당히 짧지만 난해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개론도 듣고 우리처럼 지금 원문도 풀어봐야 돼요. 원문 한 귀퉁이만 맛을 정확하게 봐도 전체를 맛본 게 됩니다. 전체 중에 한 귀퉁이거든요, 그냥 한 귀퉁이가 아니라. 그 한 귀퉁이만 잘 이해하면 전체에 대한 감각이 생겨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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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런 느낌으로 공부하시면 되고요. 근데 사실 아까 의타기성·변계소집성 얘기했지만 유식학은 변계소집성을 없애자는 거예요. 그걸 없애야 청정무구식(淸淨無垢識)을 복원해요. 그러니까 이게 다른 겁니다. 기본적인 현재 법상종의 유식학, 기본이 되는 유식학 이론이 이 8식은 오염식이라는 거죠. 그런데 본질은 청정하다는 거예요. 그 본질의 청정함을 우리가 무분별지의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만나요. 원성실성을 만나서 견성을 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견성은 할 수 있어도 우리 아뢰야식이 지금 오염돼 있기 때문에 업보로.. 업보를 다 비워야만 청정무구식을 얻어서 부처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 원성실성을 깨닫고 무분별지를 깨닫고 청정광명심을 우리가 깨달아도 아뢰야식 자체는 오염돼 있다는 게 포인트고요, 그리고 아뢰야식(阿羅耶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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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정광명심을 하나로 보려는 겁니다.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 그랬죠. 이게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든요. 그래서 8·9식을 찢어버리자는 게 나온 겁니다. 9식, 언제든지 우리가 각성해 가지고 9식을 계속 만나서 청정광명심을 계속 명상을 통해 만나고, 한편 8식의 우리 무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초의식이죠. 그냥 무의식은 아닙니다, 8식은. 왜냐하면 업보 관리라는 건 원래 모든 종교에서 신이 하는 영역이에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은요 우리가 무의식이라고 해도, 생멸한다고 말할지라도 여기는 초의식의 세계입니다. 초의식의 작용이 무의식으로 작용한다. 무기(無記)의 의식으로 작용한다, 이렇게만 이해하시면 되고요. 그래서 사실은 이 자체가 사실은 초의식의 작용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전체를 아뢰야식을 초의식으로 보자는 주장도 맞는 거예요. 근데 지금 우리가 볼 때는 이제 구분하고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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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30송을 읽어야 되니까 여기서의 아뢰야식은 초의식의 작용으로서의 어떤 무의식입니다. 그래서 생멸하고 있어요. 생멸하는 의식 세계에 들어와요. 그래서 변계소집성·의타기성의 영역에 있고 그러니까 현상계에 있고 지금 원성실성과는 또 이게 구별되는 것처럼 설명돼 버린단 말이에요. 이상하죠. 이 책이 그래요. 이분들은 논리 세계에서 세친(世親)도 논리의 세계에서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이 그렇게 원활하게 꿰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는 거죠. 아까 송나라 때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는 이게 원래 세친의 의도일 거다 하고 일체를 참나로 보자고 주장했지만, 청정광명심으로 보자고. 이분들은 지금 논리적인 어떤 그런 걸 피하고 싶은 거예요. 왜 불변에서 변화가 나오느냐? 이거는 석가모니 때부터 힌두교를 공격할 때 쓰던 논리예요. 힌두교들이요, 영원불변의 어떤 브라만에서 우주가 나온다니까, 석가모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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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불변한 곳에서 어떻게 변화하는 게 나오냐? 라고 지적했어요. 상대방이 대답을 못 했어요. 그럼 이거 석가모니가 이제 상대방 비판할 때 주로 쓰던 논리인데 이게 그대로 불교에 내려오다 보니까 이게 그냥 상대방을 비판할 때 쓰는 방편인지, 자기들의 학설을 주장할 때 기본적인 진리 체계인지 이게 좀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이제 왜냐하면 석가모니 때는 형이상학을 건립하려고 안 했거든요, 석가모니는. 상대방들의 한계만 지적해주고 형이상학을 건립하려고 안 했는데, 이제 후대에 내려오니까 유식학에 오니까 이제 형이상학 체계를 건립해야 되잖아요. 할 때 이제 그 말에 또 자기들이 걸린 거예요.
4:40 <아뢰야식의 변화>
불변에서 변화하는 세계가 나오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변화의 설명, 변화하는 세계의 설명은 아뢰야식까지밖에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뢰야식도 변화하는 의식으로 설명이 돼야 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변화해야 돼요, 아뢰야식도. 왜? 변화하는 것만이 변하는 걸 낳는다고 본 거예요. 논리적 한계에, 함정에 안 빠지려면 모순에 안 빠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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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러면서 동시에 아뢰야식은 변화하면서 동시에 본질은 불변이어야 된다는 이제 이런 논리를 편 거예요. 지금 억지죠. 좀 억지예요. 이 부분 설명 들으실 때 좀 클리어하지 않은 이유는 이게 좀 억지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대승기신론식으로 아뢰야식의 본체가 진여요, 작용이 생멸심(生滅心)이다. 딱 이렇게 끝내야지 딱 좋아요. 그래서 다만 아뢰야식은 오염돼 있다. 종자가 오염돼 있어서 오염돼 있다. 아뢰야식 자체는 무부무기(無覆無記)라고 했죠. 오염성은 없어요. 다만 선악에 대해서 중립적이다. 악의 종자도 받아준다. 선의 종자도 받아주고. 중립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의식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런데 본래의 초의식 자체는 순수의식은 선 그 자체여야 되니까 청정광명심은 악을 받아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청정광명심이 악을 관리하기 위해서 8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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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으로 나퉜다. 이렇게 설명해버리면 성종(性宗)식 설명, 대승기신론식 설명이고. 이쪽은 그렇게 설명을 못하니까 변화하는 세계를 담보하고 있는 오염된 아뢰야식이 우주를 낳았다. 단 아뢰야식의 본질은 진여요, 청정광명심이요, 무분별지다, 이렇게 원성실성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 설명이 뭔가 명쾌하지는 않다. 결국은 우리가 그런데 이분들은 주장이 마지막에 변계소집성을 다 날리고 오직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성만 존재하는.. 진여(眞如) 그 자체거나 나투면 8식·7식·6식이 펼쳐지지만 오염성이 하나도 없는 지혜로 전변되거든요. 아뢰야식 8식은요, 오염성이 사라지면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돼요. 7식, 에고의식 7식은 자타를 둘로 보지 않는 평등성지(平等性智)로 변해요. 이 현상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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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별(了別)하는 6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변해요, 신묘한 관찰하는 지혜로. 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변해요. 지난 시간에 했었죠. 뭐든지 원하는 걸 만들어내는 전지전능한 의식으로 다 바뀌어버리는 거예요. 그냥 다 합치면 전지전능의 의식이에요. 그래서 개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변계소집성이 사라져버렸다는 건 아와 법이 사라진 거죠. 개체성이 사라진 그 부처의 의식은 8식·7식·6식이 전변(轉變)된 전지전능한 의식을 딱 갖고 있다가 온 우주의 자유자재로 나투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신이 돼버리는 이론으로 바뀌어요. 이게 이제 힌두교의 브라마, 비슈누, 시바의 경지에 들어가 버립니다, 신의 경지. 그래서 온 우주의 아바타를 나퉈서 구제하는.. 하지만 개체성은 없는.. 뭔가 좀 이상하죠. 결국 이거는 모순에 빠져요. 왜? 끝까지 개체성이 있어요, 여러분. 8식이라고 해도 부처는 자기가 닦아놓은 업을 갖고 있는 거죠. 개체성이 안 사라집니다. 저는 그래서 모순이라는 거예요. 그것마저 날려야죠. 자기 계정까지 다 날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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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닦아놓은 거는 갖고 있고 개체성을 상실했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말이 됩니까? 여러분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으로만 살 수 있어요? 의식과 대상, 어디까지가 나인지 모르고 지금 이거 먹을 수 있어요? 깨어서 통의식으로 살아도 분별을 해주니까 지금 살지, 변계소집성이 없으면 못 살아요. 그래서 저는 유식학하고 반대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절대 없앨 수 없다. 탐진치는 없앨 수 없다. 의타기자성만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변계소집성도 의타기자성 안에 집어넣어서 이해해야 될 부분이 있다. 변계소집성도 그게 인연이 돼 가지고 우리가 현상계를 살아가고 있다. 변계소집성의 영역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것들도 그 의타기자성으로 껴안아서 이해해야 되는. 크게 봤을 때는. 그래서 변계소집성 자체를 간단하게 말하면 그것도 의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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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작용으로 굴러가는 거고 그것 또한 우리가 부정할 수 없다. 갖고 가야 된다. 나와 남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 탐진치 없이는 못 산다. 저는 그런 입장이고요, 그래서 영원한, 완전히 개체성을 상실한 부처도 불가능하다. 이런 거는 제가 유식학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에 대해서도 제가 반대하고요. 그런 거.. 그래서 그 화엄경 체계, 개체성을 소멸시키지 않은 10지보살이 그대로 부처가 되는 화엄경 체계를 저는 존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얘기 늘 드렸던 얘기고요. 혹시 이제 오해하실까 봐 또 얘기하고.. 자, 2송 가볼게요.
[제2송
‘이숙식異熟識’과 ‘사량식思量識’ 그리고 ‘요별경식了別境識’을 말한다. 1번째 능변식은 ‘아뢰야식’(자상自相)이며, (인상과 과상이 별체라면 자상은 총체이다. 아뢰야식은 ‘장식藏識’이니 일체의 종자를 저장한다.) ‘이숙식’(과상果相)이고 (‘선 또는 악의 업인’을 저장하고 있다가 시간을 두고 ‘무기無記의 결과’로 익게 하여 산출하는 식을 의미한다.) ‘일체종자식’(인상因相)이다(뇌야삼상賴耶三相). 일체 만법의 원인인 일체의 종자를 집지執持하여 잃어버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謂異熟思量 及了別境識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첫 번째 능변식(能變識)은 능변식이라고 하는 게 이제 전변하는 의식이요. 첫 번째 능히 전변하는 의식인 아뢰야식, 능변식은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이름을 이제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 아까 이숙식(異熟識)이라고 했던 것, 그거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이게 아뢰야식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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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이 또 이숙식이라고 하고 또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고 한다. 이게 지금 핵심이고 제가 가로 열고 써놓은 건 제가 주(註)를 달아놓은 겁니다.
[5) ① ‘이숙식’(8식)은 ‘선 또는 악의 업인’을 저장하고 있다가 시간을 두고 ‘무기無記(무부무기無覆無記)의 결과’로 익게 하여 산출하기 때문에 ‘다르게 익게 하는 식’이라고 한다.
② ‘사량식’(7식)은 늘 ‘나’라고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기에 ‘사량하는 식’이라고 한다.
③ ‘요별경식’(6식)은 제6식과 전5식이 ‘각각의 경계’(色聲香味觸法)를 식별하기에 ‘경계를 식별하는 식’이라고 한다.]
그냥 원문은요 첫 번째 능변식의 세 가지 이름만 얘기해줘요. 아뢰야식과 이숙식, 일체종자식. 그게 뭔 의미인지 보죠. 아뢰야식은요 인상(因相)과 과상(果相), 이렇게 얘기할 때 지금 뭐가 인상이냐면 일체종자식을 전통적으로 인상이라고 합니다. 아뢰야식의 원인에 대한 상, 이숙식은 과보의 상, 아뢰야식은 자체의 상(自相) 3개로 나눠요. 과보를 중시해서 말하느냐? 원인을 중시해서 말하느냐? 자체를 중시해서 말하느냐?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은 자체를 중시해서 말한 거고요, 인상과 과상이 별체라면 각각의 어떤 한 측면만을 말했다면 자체상은 총체적인 아뢰야식의 모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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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은 왜냐하면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이요 번역하면 장식(藏識)이거든요. 장식, 저장식(貯藏識)이잖아요. 함장식(含藏識). 저장했다 함장(含藏)했다 그러는데요. 포함해서 이렇게 머금었다 이런 거죠. 장식이라고 하니 일체의 종자를 저장한다는 게 자체상입니다 그냥. 그러니까 아뢰야식은 저장식이에요. 장식, 줄여서. 이게 8식의 이름이고요. 이숙식이라고 할 때는 그 저장하고 있던 종자, 종자를 저장하고 있다가 과보를 낳는다는 측면을 강조한 거잖아요. 그래서 이숙식은 다르게 익게 해가지고 나툰다는 의식이니까 과상(果相)이고, 선 또는 악의 업인을 저장하고 있다가 시간을 두고 무기의 결과로 있게 하여 산출한다는 걸 의미하고요. 그러니까 과보를 일으킨다는 측면을 두고 이숙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름은요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일체종자를 갖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인상(因相), 갖고 있는 씨앗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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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을 둔 겁니다, 과보가 아니라 씨앗에. 인상의 측면을 강조해서는 일체종자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세 가지를 아뢰야의 세 가지 형상이라고 해서 뇌야3상(賴耶三相)이라고 합니다. 더 깊이 팔 건 아니고요. 뇌야3상. 그런 거 그냥 뭐 있잖아요. 4대천왕 이런 것처럼 아뢰야 세 가지 형상, 아뢰야식의 3대 형상(인상,과상,자상)
12:29 <일체 종자식의 의미>
일체종자식은 일체만법의 원인인 일체종자를 집지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아뢰야식은요 여러분이 저지른 업보의 종자만 저장하는 게 아닙니다. 본유종자(本有種子)라고요 일체만법을 낳는 종자도 갖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온 우주를 만들죠. 업이 없어도 지어내야 돼요. 그 안에 본유종자라는 게 본유종자. 아뢰야식은요 이 본체 안에 본유종자가 있어야 돼요. 본유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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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에 이 불변하는 부분이 있고 변화하는 부분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생멸하는 영역에서, 여기는요 진여의 영역에 있어야 돼요, 본유종자는 이건 불변이니까. 그리고 생멸하는 영역에 있는 여기 있는 종자들은요 끝없이 생겨나고 펼쳐지고. 그렇죠. 여기서 이것까지 그렸죠.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 종자가 또 종자를 낳아요. 이게 다르게 익어간다니까요. 이게 다르게 익어갔다가 펼쳐져요. 여기서 현행,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그렇죠. 업보를 지으면 종자로, 종자가 종자로, 종자가 현행으로.. 그렇죠. 근데 이 업보라는 게 지금 현행이잖아요. 보세요. 종자가 현행을 낳고 현행이 다시 어떻게 돼요? 이렇게 그리면 더 이해가 쉽죠. 현행이 종자로, 여기서 생이라고 안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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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훈(熏), 생(生), 여기는 생(生). 요 세 가지만 아시면 됩니다. 종자생종자가 있고요 종자생현행이 있고요 현행시키는 것, 현행 내가 업을 지었으면 이 업보가 다시 저장되잖아요, 종자로. 현행훈(熏), 훈습(熏習)한다고 해서 훈종자, 훈은 훈제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훈제하면 냄새가 배죠. 내가 한 저지른 짓이요 아뢰야식에 냄새 배게 하는 거예요. 종자를 남겨요.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 종자생종자, 종자생현행 이러면 이때의 종자는 종자가 종자를 낳고 이러죠. 이 생멸의 세계에서의 종자는요, 계속 변화하는 겁니다. DNA 같아요. DNA에서 모든 게 만들어지지만 DNA 자체도 변하죠. 변하는 존재예요. 왜? 종자가 이데아 같은 거 보면 변하면 안 되잖아요. 종자는 변합니다. 우리 업의 필름의 종자는 변해요. 본유종자(本有種子)는 또 변화하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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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건 불변의 세계죠. 불변이 변화를 낳으면 안 되잖아요, 유식학적으로. 이건 설명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본유종자에서 어떻게 만물이 나오는지.. 유식학은 자꾸 찢어놓으니까 스스로 한계에 빠져요. 그럼 종자는 계속 변해야 돼요. 그럼 본유종자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게 좀 웃기잖아요. 불변의, 진여의 세계에만 있는 종자여야 되는데. 이런 거 설명이 잘 안 됩니다, 유식학은. 이걸 그냥 넘어서버린 게 대승기신론이에요. 대승기신론은 본유종자가 바로 변화를 일으켜요. 이게 안 되니까 지금 설명이 어려워요. 이해되세요? 그러면 유식학적으로 설명하려면 이 본유종자에 뭔가 여기 영향을 받은 종자가 있어야 돼요. 변하는 세계의 종자들이 계속 변화를 일으켜야 되니까. 이놈의 영향을 받은.. 이게 태양이라면 이 태양빛을 받아 뜨거워진 놈이 한 놈 등장해가지고 그놈에서 변화가 시작돼야 되죠.
16:00 <본유종자론의 한계>
이런 논리밖에 안 됩니다. 제가 볼 때 지금 유식학이 정확하게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거 못 봤어요. 이런 한계, 본유종자론이 갖고 있는 한계가 본유종자가 등장하면요 기존의 종자들은 다 변화하고 있는데 변화하지 않는 종자가 어떻게 변화의 세계에서 창조, 만물을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여기에 본유종자가 있다고 하면, 생멸의 세계에 본유종자가 있다고 하면 계속 변화하는 중에 일정한 정보를 계속 갖고 있는 그 종자가 있어야겠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본유종자는 불변의 세계에 있어야 맞거든요, 자기들의 설명에 봐도. 이런 걸 설명해버리는 건 대승기신론이에요. 대승기신론 쉬워요. 진여가 무명의 세계를 바로 훈습해버려요. 훈습이 이렇게도 일어나고 이렇게도 일어나고. 무명이 진여를 가리고 진여가 무명을 밝히고 이런 자유자재 훈습이 일어납니다. 그게 이제 대승기신론이고요. 대승기신론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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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런 모순을 극복하고 나온 겁니다. 대승기신론은.. 그래서 아뢰야식설이 뭔가 안 와 닿는 분들은요 대승기신론으로 가세요. 이다음 버전이에요. 상종(相宗)의 문제를, 상종은 계속 상에만 치우치지 본질과 상이 끊어져 있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이걸 통합해서 설명하는 방식이 대승기신론이에요. 다 역사가 있어요. 진여와 열반 강의에서는요 불교를 하나로 쭉 꿰어드릴 테니까 편하게 공부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뢰야식의 세 가지 이름 다 알았더니 이제 아뢰야식하고도 친해졌죠. 일체만법의 종자를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아뢰야식이 여러분 지금 아뢰야식을요 멀리 이해하시는데 지금 저 보이시죠. 여러분 지금 아뢰야식이 하는 일이에요, 제가 보인다는 것. 지금 보이시나요? 아뢰야식이 작동하고 있는 거예요. 아뢰야식이 저를 지금, 아뢰야식이 하는 일이 종자를 관리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그동안 지은 업, 종자 하나라도 어디 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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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좀 깜빡깜빡하면서 몇 개씩 지워지면 좋을 텐데요. 절대 안 지워지고 갖고 있고 종자를 관리하고, 한쪽으로는 여러분 몸뚱이를 지금 만들어냅니다. 몸뚱이가 지금 의식이 되시죠. 그다음 이 세간(世間),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내요, 세간. 이 전체가 지금 아뢰야식이 하고 있는 일이에요. 여러분 의식에서 이걸 지금 구현시키고 있어요, 매트릭스라니까요. 아뢰야식이 지금 일체 종자를 갖고 있다가 이숙식, 현행시켜요, 지금. 여러분 과보에 맞게 현행시킨 거예요. 여러분이 이 정도 우주에 살, 지금 업을 지어서 여기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팔자를 탓하세요. 왜 눈만 뜨면 계속 이 이 세계인지? 여러분이 지어놓은 업이 지금 다른 세계, 정토에 접속할 업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이 세계만 보이는 겁니다. 아뢰야식이 이 세계를 지금 계속 경험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이상한 애들이 자꾸 나타나는데 내 인생에 끼어드는 것도 아뢰야식이 계속 불러들이는 거예요. 자, 이때쯤 한 번 역경 한 번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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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딱, 한 번 딱, 그러면 딱 이때 뭐 이렇게.. 요즘 그 이빨 보이네. 그래서 살 만한가 보네. 한 번 때리고.. 이게 이걸 다 아뢰야식이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업보 관리를. 종자 관리를 총체적으로 아뢰야식이 하는 거예요. 영화 매트릭스랑 연계해서 생각해 보시면 재밌죠. 지금 왜 나는 이런 우주에 내가 접속돼 있나? 아뢰야식 때문에 그래요. 아뢰야식이 지금 마음의 VR이잖아요. 유식학은 이 일체 우주의 세계가 지금 마음의 VR이라는 거예요. 만법유식설이라는 건 만법은 VR이라는 거예요. 내 마음의 VR, 여러분 무의식의 VR로 펼쳐진 겁니다. 그래서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만 즐기면 되는데 나다 남이다, 이 몸뚱이까지가 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집·법집이에요. 그냥 VR인데 그 안에 있는 것들이 각각 별개로 따로 있는 줄 아는 것, VR에 나타난 펜인데 펜이 따로 있는 줄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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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법집이에요. 법집. 아집, 내가 또 따로 있는 줄 알아요. 그냥 VR 작용인데, VR 보는 자와 펼쳐지는 VR, 이 전체가 아뢰야식의 작용인데 그 안에서 나와 남을 또 찢고 어디까지가 나다 찢고 이게 다 아집·법집이 하는 일인데 그게 맛이라고요, 제가 주장하는 건.. 그거 빠지면 꽝이죠. 펼치기만 하고 나와 남 못 가르게 하면 뭐예요, 그게? 변계소집성이 맛이다. 중생의 맛은, 사바세계의 맛은 그거죠. 그럼 중요한 거는 이 세계를 지금 계속 바꿔가는 거죠. 내가 그러면 계속 업을 현행, 어떤 업을 현행시켜가지고 어떻게 6바라밀에 맞는 업을 계속 현행시켜버리면 종자가 뭐든지 나올 때마다 6바라밀로 계속 내가 틀어버리면 계속 공덕이 저장되겠죠. 이것만 해도요 벌써 보세요. 이것만 해도 내가 6바라밀를 현행시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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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진여에서 끌어내서 업을 지어야 돼요, 종자를 끌어내서. 무루종자를 끌어내야 돼요. 내가 지금 하는 게 다 유루종자(有漏種子) 번뇌의 종자밖에 내가 갖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 어떻게 6바라밀을 할 수 있죠? 이건 업력의 소산이잖아요. 도력에서 끌어내려면 무루종자(無漏種子)에서 바로 끌어와야 됩니다. 이해되시죠. 이런 거 하려고 6바라밀을 닦아서 끌어내는 거예요. 이 안에 있는 6바라밀의 종자를 끌어내서 현행시켜야 돼요. 이런 게 설명이 잘 돼야 되는데. 유식학에서 제가 좀 보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무루종자를 끌어낼 거냐? 그렇죠. 6바라밀이 핵입니다. 결국 이거 어떻게 바꿀 거예요? 이 종자 이렇게 생겨 먹었는데 어떻게 바꿀 거예요? 계속 청정광명심하고 각성해가지고 여기서 본유종자에서 끌어내야 돼요, 바로. 불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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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느냐? 막 이런 논리 계속 갖고 있으면 갑갑한 거예요. 여기서 바로 끌어내야 돼요. 대승기신론은 바로 끌어내요. 진여가 훈습시켜 버려요, 바로. 요 설명들이 난삽합니다, 유식학은. 요거 하나도. 6바라밀 하나 하는데도 이론적 설명이 자기들 간에 또 학설이 나뉘고. 계속 변화하는 유루종자에서는 무루 업이 나올 수가 없잖아요. 결국 무루종자에서 끌어내야 돼요. 진여에서 끌어내야 돼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도 그건 주장해요. 무루에서 끌어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명쾌하지 않다. 난삽하다. 자꾸 불변과 거기에 자꾸 막힌다. 변화와 불변에서 자꾸.. 그다음 3송 갈게요. 3송.
[제3송
‘붙잡아 수용함’(집수執受, 종자와 몸)과 ‘처함’(기세간器世間)과 ‘알아차림’(了)을 알 수 없다. 항상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의 심소와 상응하며, (5변행심소遍行心所를 말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한다.) (5수受 중 오직 사수捨受에 상응한다.)
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22:58 <제3송>
알 수 없는 붙잡아 수용함과. 알 수 없다는 건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다. 아뢰야식이 하는 일은 사실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설명은 하지만, 알 수 없는 세계다. 붙잡아 수용함. 집수(執受)인데요. 뭘 붙잡아 수용하냐면요, 아뢰야식이 종자와 몸을 계속 붙잡고 있다고 보는 거예요. 아뢰야식이 종자를 안 놓치고 있고요, 내 몸에 대한 의식을, 내 몸을 이렇게 늘 펼쳐낸다는 거예요. 늘 펼쳐내고, 그다음에 내가 처한 세계, 세계를 늘 펼쳐내고요. 그러니까 알 수 없는 붙잡아 수용함과 처함과 알아차림을.. 또 알 수 없다고 했는데 그냥 앞에 '알 수 없는'을 빼세요. 붙잡아 수용함과 처함과 알아차림을 알 수가 없다. 8식이 그렇게 알아차리고 하는 걸요, 우리가 헤아릴 길이 없다. 3송이에요. 3송. 이제 8식의 의식으로서의 특징을 살펴보는 겁니다. 8식이 뭘 하냐? 종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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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아두고 몸뚱이를 현행시키고 세계를 현행시키고 하는 것. 이런 것들과 8식이 알아차리는 그 의식이잖아요. 8식도 결국은 의식인데 그 알아차리는 의식을 참 헤아릴 수가 없다. 항상 뭐랑 같이 다니느냐? 하지만 이 8식도 의식인 이상에는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생각 사자 사(思), 이런 심소와 상응한다. 이게 다섯 가지 변행심소(遍行心所)입니다. 우리 이거 한번 가볼게요. 이거는 잘 아시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자 색(色)은 유식학은요, 100법을 얘기합니다. 그 부파불교에서는 75법까지 얘기하는데 존재하는 자성을 지닌 특징을 지닌 것들, 7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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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학은 100개. 그리고 부파불교는 이 법들이 다 나름 진짜 실재한다고 믿었지만 유식학에서는 이 100법이라고 나누면서 뭐라고 해요? 이 100가지 법들은 다 의식의 작용일 뿐이다. 만법유식이니까 이게 만법유식(萬法唯識)이에요. 100가지 법이 다 유식, 식의 작용이다. 그러면 100가지 법에 뭐가 들어가냐면 색(色)이요. 그다음에 수상행식(受想行識), 요거 여기서 식(識)은 심(心)이 해당되고요, 색(色)은 물질, 물질법. 색법 하나, 심법 하나. 심법은요 심왕이라 그래요. 그러면 6식·7식·8식 이게 다 심왕이에요. 그 5식까지 포함해서요, 다. 이 식 자체가 심왕(心王)이고요, 이 식이 일으키는 마음 작용들이 이거를 뭐라고 그러냐면 다해서 심소(心所)라고 그래요. 마음이 소유한 거라고 해서 줄여서 심소법(心所法)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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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소·심소유법(心所有法)·심소법. 예전에 한 번 했어요. 색법·물질법·마음법·심법·심소법 또 뭐 있었죠? 5법, 5위, 5위100법 그랬죠? 그다음에 심이나 색 어디에도 상응하지 않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여기에는 언어나 시간 같은. 일체를 마음으로 설명하다 보니까 여기에서 안 잡히는 것들을 여기다 대충 때려 넣습니다. 행이라는 건 유위법(有爲法)이라는 거거든요. 유위법인데, 우리 물질과 마음에서 바로 못 끌어내는 것들 시간, 공간, 언어 같은 것을 여기다 다 넣었어요. 그런데 우리 마음 작용에서는 꼭 필요한 것들. 그다음 무위법(無爲法) 열반(涅槃) 이게 5위예요. ①색법(色法)·②심법(心法)·③심소유법(心所有法)·④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⑤무위법(無爲法) 이게 5위100법입니다. 여기 해놓으면요, 봐보세요. 근데 여기서 포인트 하나가 수(受)는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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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느낌이고 상(想)은 생각인데 한자 그대로예요. 마음의 어떤 상을 띄우는 생각이에요. 마음에 표상, 심상을 띄워요. 그래가지고 언어로 분별하는 작용이거든요. 생각과, 여기(수受)는 이제 괴롭고 즐겁고 아까 고(苦)·락(樂)·무기(無記), 무기를 이제 평등 사자, 버릴 사자, 사(捨)라고 하는데요, 고수(苦受)·낙수(樂受)·사수(捨受) 그러는데 여기도 무기예요. 웬만하면 무기를 써요. 선악무기, 선도 악도 아닌 것, 고도 낙도 아닌 것 할 때 다 무기라 그래요. 그러니까 뭔가 기록할 게 없다는 뜻이에요. 이 기(記)가 기록이나 기억이거든요. 무기공(無記空)이란 말도 이거예요. 이 무기예요. 명상에 들었는데 멍 때린 걸 무기공이라 그래요. 기억이 없어요. 기록, 기억이 없어요. 뭐 했지? 무기란 말이 광범위하게 쓰입니다. 여기(受)는 좀 감정적인 거예요. 이 수는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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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에서 바로 느낀 느낌하고요, 감정이요. 고·락으로 좀 더 구체화된 감정, 감정 중의 일부입니다. 고·락, 나머지 대다수 감정들은 다 어디다 넣냐? 행(行)에다 다 넣어버려요. 그러니까 여기는 고·락의 감정만 있습니다. 여기(想)는 생각이 있어요. 상(想). 행은요 모든 유위법, 유위를 다 행이라 그래요. 그중에 제일 대표가 의지예요. 뭔가를 행해야겠다는 마음, 행하게 만드는 마음 의지, 그런데 이 의지만이 아니라 모든 유위법, 마음이 일으킨 유위법은 다 행에다 넣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탐욕·분노 다 행에 들어갑니다. 고·락만 수로 뺀 거예요. 근데 심지어 수상(受想)도 사실은 다 행(行)에 들어가요, 원래. 행이 유위적 작용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보세요. 마음의 작용이라고 그랬죠. 마음의 작용이란 말은 그냥 행 하나로 받을 수 있다고요. 행(行). 근데 그중에 수·상은 워낙 중요해서 따로 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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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와 상을 따로 뺀 것뿐입니다. 이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색과 마음과, 마음이 일으킨 작용인 행과 마음의 행인 거예요. 심행. 마음의 행 안에 다 들어가는데, 웬만한 건 여기 다 들어가요. 그러니까 그 행 중에 수·상만 따로 뺀 건데 사실은 행에도 들어가요. 행을 넓게 해석하면 수·상까지 다 행이에요. 심지어 이 행은요 전체를 다 먹을 수도 있어요, 행은. 유위법이라는 의미로 색수상행식이 다 행이예요, 더 넓게 잡으면. 이해되시죠. 수·상만 따로 뺐다. 이렇게까지 아실 건 아닌데.. 근데 할 때 해놔야죠. 그렇죠. 이것 가지고 또 엄청 헤맬 수 있어요. 보세요. 색(色)이 딱 여기는 물질이잖아요. 물질을 만났어요. 왜 부처님이 색·수·상·행·식을 굳이 수·상을 행에서 빼서 따로 했겠냐고요. 중요하니까.. 물질을 딱 만났어요. 그럼 처음에 이 물질을 오감으로 느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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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 느낌하고요, 플러스 거기에서 고·락이 발생해요. 괴로운지 즐거운지 무기인지 이 무기랑 연결해서 생각할 수는 있어요. 오감에 그냥 처음 딱 봤을 때 그냥 무덤덤한 느낌. 그 느낌에서 고·락이 발생하고, 좋다·즐겁다·괴롭다까지 포함해서 다 수(受)에 들어가요. 수(受) 그다음에 상(想) 이제 지금 느낌이었는데 상, 이제 마음의 상은요, 마음에 이제 상을 잡아요. 오감정보 재료를 가지고 가공해서 뇌에서 재구성해야 되잖아요. 요즘 뇌과학적으로 봐도요 뇌에서 재구성을 해요. 눈에서 들어온 정보, 지금 귀에서 들어온 그 정보만 들어온 거예요. 그 정보에 대한 느낌이었고요, 그걸 재구성해서 상을 만들어요. 내 마음에 심상·표상을 세워요. 표상·심상 그럽니다. 요 심상을 이제 뭐 이렇게 어떻게 해요? 언어화해요. 개념화까지 해요. 이 전체적으로 상입니다. 상이 하는 일은요, 그냥 직관적으로 들어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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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해서 만든 다음에 이름을 붙여요. 뭐라고.. 그게 상이에요. 그다음에 이거에 대해서 이제 갖고 싶다. 탐욕도 일으키고 이제 보통은 이제 탐욕을 일으키죠. 애(愛) 애를 일으켜가지고 집착합니다. 자 색·수·상·행·식이죠. 그다음 이거 아셔야 돼요.
32:24 <12연기>
12연기에서 12연기{①무명(無明) ②행(行) ③식(識) ④명색(名色) ⑤육입(六入) ⑥촉(觸) ⑦수(受) ⑧애(愛) ⑨취(取) ⑩유(有) ⑪생(生) ⑫노사(老死)}가 어떻게 진행이 되죠? 촉(觸), 6근이 만들어지면 육입(六入) 촉(觸), 6근이 만들어지면 육입(六入) 그다음 12연기에서 이거 기억하세요. 촉, 그다음 뭐가 있죠? 수(受) 그다음 애(愛), 사랑애 갈애, 그다음에요 취(取) 집착, 점점 커집니다. 유(有). 촉, 홈쇼핑에서 걔를 만나기 전까지는 평온했죠. 촉, 만났어요. 수. 색·수·상·행·식을 이렇게 만든 이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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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랑 연결돼 있어요. 12연기가요 여러분, 계속 윤회하는 그 이유가 6근이 있으면 촉이 일어나요. 색성향미촉이 만나요. 만나서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느낌을 받고 이제 이게 고·락으로 커지죠, 감정으로. 이게 처음 느낌은 스몰, 미디엄 감정, 애는 라지, 엑스라지 점점 커집니다. 더블 엑스라지.. 점점 커져요. 느낌 받았어요. 무덤덤했어요. 좋네! 이제 낙을 느꼈어요. 여기서 그다음 뭐로 이어졌게요. 12연기에 빠졌지만 촉(觸), 수(受), 다음에 애(愛) 사이에 상(想)이 있었겠죠. 언어화까지 된 거죠. 와! 이건 이래서 좋네. 어째서 좋네. 그러고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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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더 커졌겠죠. 그럼 이 애(愛)나 취(取)는 다 어디 들어가겠어요? 유(有)는. 행(行)에 들어간다고요, 행. 이해되시죠. 마음이 일으키는 행이라고요. 애, 갈애, 갈애가 점점 커져요. 취. 자, 홈쇼핑에서 뭘 봤어요. 느낌 무덤덤했는데 이제 낙으로 바뀌었어요. 처음에 무덤덤했는데 이뻐 보이기 시작했어요. 괜찮네. 어쩌고 저쩌고 이제 생각을 해봐요. 할부가 얼마인데 뭐 어쩌고 해서 생각해 보니까 애가 커져요. 취, 취하고 싶다. 내 것으로 하고 싶다. 집착이 커져요. 주문했습니다. 유는 다음 생에 업을 지었어요. 다음 생으로 전이될 업을 지어놨어요. 유까지.. 이 두 개가 같이 굴러가요, 지금. 아시겠죠? 그래서 이렇게 이 12연기와 5온. 그래서 여러분 이것만 아시면 돼요. 12연기 더 멀리 몰라도 이것만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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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실천적 명상이 가능합니다. 깨어서 호흡만 알아차리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이걸로 아라한 갑니다, 이 이론 가지고.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래서 지금 들이쉬고 내쉬고는 접촉이죠. 촉감이죠. 이 촉감에서 느낌이 처음에 무덤덤하죠. 들이쉬고 내쉬다 보면 고·락이 올 수 있죠, 지겹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 느낌을 촉·수까지는 자동인데 상, 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이 수에서 바로 정념·정지가 들어가면 돼요. 여기서 8정도가 들어갑니다. 느낌 딱 있을 때, 고·락이 있을 때 바로 정념·정지 때려가지고 딱 깨어서 상, 언어화하지 말고 깨어서 계속 알아차리면서 무상·고·무아, 이 들숨 날숨, 이 촉감이 생멸한다는 것만 계속 알아차리다 보면 깨어서, 점점 깨어서 알아차리다 보면 언어를 초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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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초월해서 깨어서 알아차리는 게 포인트입니다. 거기서 올바른 언어를 써요, 쓰더라도. 그냥 상이 아니라 이제 정견·정사유가 나와요. 딱 정확한 사유, 정념·정지에서 바른 깨어있음에서 바른 알아차림이 이루어지면서 정념·정지로 이어지면 애로 이어지는 이 모든 게 박살납니다. 갈애로 안 가버려요.
35:24 <아라한 불교>
그러면 윤회 탈출이라는 게 아라한 이론이에요. 저 이론밖에 없습니다, 근거가. 어떻게 윤회 탈출합니까? 그래서 아라한 불교는요 아라한 불교는 소승불교는 뭔가 하나 더 써요. 우리가 볼 때는 사심 같은 걸 하나 더 써요. 왜냐면 촉감에서 오는 느낌을 계속 알아차리면 깨어서 알아차리면 무상·고·무아 밖에 없겠죠. 여기서 이 그냥 에고적인 탐진치의 상이 아니라 무상·고·무아라는 상을 잡아요. 이거는 무상·고·무아다. 그 상을 잡은 다음에 무상·고·무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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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가 볼 때는 사심이 하나 들어갑니다. 왜? 윤회를 멈춰야 된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윤회를 멈춰야 된다는 마음이 없다면 무상·고·무아다라는 걸 알고 살아가겠죠, 그냥. 근데 무상·고·무아를 본 다음에 뭘 하나 더 붙이냐면 혐오감을 일으켜요. 그게 출리심이라는 건데 혐오심을 일으킵니다. 왜 일으켜야 되냐면 애(愛)를 박살내야 되거든요. 혐오심까지 일으켜야 애가 박살나요. 갈애(渴愛)의 반대는 혐오(嫌惡)죠. 갈애가 일어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 세상 것에 대해서 탐착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럼 혐오를 하게 만들어요. 혐오심을 일으켜가지고 혐오해서 어디로 떠나느냐?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서 안 나오는 방식. 이게 소승불교인데 소승불교의 부자연스러운 점은 혐오감을 일으켜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초기 불교 아함경, 이런 데 보시면 계속 강조됩니다. 6근의 세계를 악마라고 봐라든가 이렇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들이 자꾸 나오는 게 있어요. 사실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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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고·무아의 유식학적으로 보면 의타기성일 뿐인데 혐오하라고 얘기하는 게 굳이 등장하는 이유는 열반으로 들어가게 해야 돼요. 법구경에서도 뭐라고 그러냐면 “제법이 무상·고·무아라는 걸 알고 혐오하여 떠나니 열반에 도달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 부분에서 착안해 가지고 일부러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지금 남방불교 미얀마나 태국에서 특히 미얀마에서 하는 가르침들은 딱 이거예요. 혐오의 지혜를 끌어내야 돼요. 혐오의 지혜라고 그래요. 무상·고·무아를 본 다음에는 혐오의 지혜를 일으켜서 혐오심을 일으켜야만 열반에 들어가요. 이제 그래야 이 세계에 다시 안 나오게 돼요. 12연기를 끝내게 돼요. 간단하게 아라한 되는 법까지 한번 알아봤어요. 그 얘기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37:51 <유식학의 51가지 심소>
왜 이게 이제 이게 심소인지 아시겠죠. 일단 심소라고 불리는 게 뭔지 아시겠죠. 근데 밑에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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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각주 7번 보실래요?
[7) 유식학에서는 늘 ‘심왕’(8식ㆍ7식ㆍ6식)과 함께하는 ‘심소’(마음작용)에는 51개(①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② 별경심소別境心所 5가지 ③ 선심소善心所 11가지 ④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20가지 ⑥ 부정심소不定心所 4가지)가 있다고 본다.
8) ‘5수受’는 5가지 느낌인 ①고수苦受(몸의 괴로움) ② 낙수樂受(몸의 즐거움) ③ 사수捨受(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심) ④ 우수憂受(마음의 괴로움) ⑤희수喜受(마음의 즐거움)를 말한다.]
유식학에서는 심왕, 8식·7식·6식과 함께하는 심소 마음 작용에는 51가지가 있다고 한다. 51개가 다 뭐냐 하면 행도 되는 거예요. 이 말도 이해하시죠? 색수상행식에서 행도 된다고요. 행 플러스 수·상일 뿐입니다, 이 51가지는. 심소법. 그런데 이 심소를 뭐로 나누는지 한번 보실래요.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그게 지금 이거예요. 변행심소, 변행(遍行)은요 언제나 항상 함께하는 두루 함께 다니는 5개. 그러니까 7식·8식·6식·5식과그 5식의 심왕, 그 의식들과 항상 함께 다니는 작용, 이 5가지는 기본이라고요 이게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기본 나가는 거예요. 기본 5가지요. 그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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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경심소, 경계가 차이가 있는 거죠. 특별할 때만 나오는 거죠. 별경심소(別境心所) 5가지, 경계를 별도로 하는 심소 5가지 그러니까 항상 함께하는 애는 아니죠. 선한심소(善心所) 11가지, 선의 마음 11가지,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6가지 번뇌가 나와요.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그 근본 번뇌고요, 번뇌심소가. 걔네들 따라다니는 지말번뇌라고 그래요. 근본번뇌 말고 가지가 되는 말단의 번뇌 20가지. 여러분 웬만한 번뇌 여기 다 들어있습니다. 부정심소(不定心所) 4가지, 그러니까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애들 4가지. 뭐 이런 거예요. 후회 이런 거. 후회는 선인지 악인지 모르겠네요. 이리도 붙고 저리도 붙고. 그거 훔쳤어야 되는데.. 아! 내가 그거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게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후회, 부정심소, 정해지지 않은 애들 한 4가지. 옛날 분들 대단해요. 우리 마음 중에 51가지 법을 만든 거예요, 작용하는 것 중에. 여기 게으름 다 있습니다. 탐욕, 분노 이런 것. 그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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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잘 되는 그런 것도 다 들어 있어요. 해탈한 마음, 탐진치가 없는 마음, 이런 것도 다 이제 그 특별한 마음 작용이잖아요. 그래서 이 51가지 중에 지금 모든 기본값으로 나가는 게 얘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8식에도 얘들이 있다는 거예요. 얘들이 붙는다는 거예요. 8식이라는 심왕과 이 심소라는 신하들이 함께 간다는 거예요. 항상 함께 다닌다는 거예요. 근데 보세요. 순서가 ①촉·②작의·③수·④상·⑤사라는 게 여기서 생각 사(思)라는 건요, 의지를 말합니다. 의지. 그럼 보세요. 이게 색수상행식과 똑같다는 거 아시겠어요? 색만 없죠, 물질이 아니니까. 물질을 접촉하는 게 있죠. 오감, 오감으로 접촉. 접촉, 그러니까 이 앞에 색이 있다면 색·수상행 앞에 이거 둘(촉+작의)이 더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거 다섯 가지는 기본이라는 거예요. 접촉, 대상에 심왕이, 심왕의 대상에 접촉해야 될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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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접촉이 일어나고 작의라는 건요 우리 주의, 유의에 해당됩니다. 유의하라. 심왕·심소가 상대방에 대해 마음이 계속 발동하게 만드는 거예요. 관심을 계속 유지해야 될 거 아니에요. 접촉이 일어나고 상대방을 유심히 거기다가 상대방에다 마음을 쏟는 거예요. 여기 한번 읽어볼게요.
[6) ‘심왕’(6ㆍ7ㆍ8식)과 늘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마음의 작용이다.
① 촉觸 : 대상과 접촉하는 마음의 작용.
② 작의作意 : 마음을 발동시키는 마음의 작용.
③ 수受 :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사수捨受를 느끼는 마음의 작용.
④ 상想 : 대상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⑤ 사思 : 선악의 업을 짓는 마음의 작용.]
촉, 대상과 접촉하는 마음 작용, 작의는요 마음을 일으켰다는 뜻이잖아요. 이건요 심왕과 심소가 대상을 향해서 마음을 발동시키도록 하는 마음 작용이에요. 대상을 향하도록 만드는 마음 작용, 작의. 그다음에 수는요 대상 고수·낙수·사수 이런 마음작용. 여기에 플러스로요, 5식에서 오는 느낌도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전5식의 느낌, 전5식의 느낌.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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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감에서, 오감이 작동했을 때의 어떤 느낌들이요. 그냥 그 오감에서 오감이 작동했을 때의 어떤 느낌들이요. 그러니까 고수·낙수 이렇게 부풀려지지 않았어도 그냥 우리가 봤을 때, 딱 봤을 때도 이미 느낌이 작용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위빠사나 하는 분들이 사띠할 때 느낌에 집중하라고 할 때 꼭 고나 낙의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들이쉬고 내쉬는 것도 다 느낌이에요. 들이쉬는 느낌, 내쉬는 느낌. 그렇죠. 뭔가 오감에 접촉했을 때 다 느낌인 거예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이미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서 느낌인 거예요. 소리가 저쪽에서 소리라면 그 소리를 들은 그 느낌, 소리를 듣는 걸 알아차려라 할 때 보통 느낌에 알아차리라는 말을 써요, 위빠사나 하는 분들이.. 그때 느낌은 꼭 고수·낙수까지는 아니라고요. 그냥 느낌, 오감에서 오는 오감을 지각하는 거예요. 색이 있으면 물질을 지각했을 때 오는 그 느낌, 그 느낌까지 다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들이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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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고도 그냥 느낌인 거예요, 그게. 고, 괴롭다·즐겁다 이전의 느낌인 거예요. 상(想)은요, 아까 얘기했지만 표상. 마음에 내가 접촉한 그 대상을 시각화하는 거죠. 내 마음에 이미지화하는 거죠. 표상·심상, 그리고 언어, 언어화·개념화하는 거죠. 근데 여기서 아뢰야식은 언어·개념은 안 맞잖아요, 아뢰야식하고. 헤아릴 수도 없는 의식인데.. 근데 아뢰야식이 보면, 뭔가 분별하더라는 거죠. 대상을 분별한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대상을 분별하는 마음 작용, 뭔가 아뢰야식도 언어를 쓰지는 않지만 분별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선의 종자 악의 종자 다 분별하잖아요. 그게 우리가 언어를 써서 분별하는 것 같잖아요. 그렇게 분별해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지, 의지는요 선악의 업을 짓도록 하는 의지와 조작의 마음 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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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조작을 더 붙여서 더 써 넣으세요. 의지와 조작. 5변행심소 아시겠죠. 아뢰야식은요, 아뢰야식도 뭔가의 대상에 접촉을 하고요, 그 접촉한 대상을 마음을 쓰고요, 계속 지속적으로 마음을 쓰고요 발동시키고요, 거기서 뭔가 고·락, 우리 에고적인 고·락은 아니겠죠. 뭔가 느낌을 갖고요, 그러니까 인간적인 느낌이 아니라고 봐야 돼요, 8식에서는. 지금 에고 이전이잖아요. 에고가 없단 말이에요, 8식은. 어떤 느낌을 받고요 그 분별을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지를 일으키더라는 거예요, 8식은. 이게 사실 지금 신의 마음입니다. 8식은 신이에요, 다른 종교로 치면. 이해되시죠. 대상과 접촉하고 대상에 뭔가 정신을 쏟고, 거기서 뭔가를 느끼고 분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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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내더라. 신의 의지·신의 분별, 신의 어떤 그런 거예요. 신의 느낌, 요게 8식이 하는 마음 작용. 그러니까 이게 에고 이전의 것이라서 뭐라고 한 거예요? 아까부터. 알 수 없다고 한 거예요. 알 수 없다. 그 8식의 그 알아차림은 알 수가 없다. 항상 촉·작의·수·상·사의 심소와 상응하되 오직 그 느낌 중에서는 사수(捨受)와만 상응한다. 고·락이 없으니까요. 고·락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이 수(受)가 뭐만 있다는 거예요? 무기(無記)만 있다, 무기만. 아까 얘기했죠, 제가. 그러니까 사수, 이 무기에는 아까 ·고락으로 부풀려지지 않은 그 느낌의, 그 오감의 그냥 일반적으로 오감을 딱 접촉했을 때의 느낌도 이 사수에 넣어서 보면, 이해하시면 되겠죠. 무덤덤한 중에 우리가 알아차린 것들, 그냥 느낀 것들, 여기다 넣으시면 됩니다. 이 무기의 느낌만 있다, 지금 8식 같은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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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5수(五受) 중에 사수라고 했다는 건요, 고·락·무기 하면 3수인데 왜 5수냐? 5개로 나누면 이렇게 돼요. ①고수(苦受)는요, 몸이 괴로운 걸 말하고요. ②낙수(樂受)는 몸이 즐거운 거. ③사수(捨受)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심 상태고요. 거기에 ④우수(憂受), ⑤희수(喜受)를 더 넣습니다. 그럼 감정이 희노애락이 지금 들어가는 거예요, 일종의 희노애락이. 희노애락이랑 딱 맞지는 않지만 지금 욕망이 충족돼서 즐거운 상태랑 욕망이 좌절돼서 우울하고 괴로운 상태가 들어가잖아요. 이해되시죠. 희노애락하고 지금 통하는 부분이 생겨버리죠. 욕망이 성취돼서 기쁘고 낙(樂)하고 즐겁고. 이쪽은요, 분노하고 슬프고. 여기는 희락, 우고(憂苦)인가요? 우수(憂受)는 마음의 괴로움, 희수(喜受)는 마음의 즐거움, 즉 몸과 마음이 즐겁고, 몸과 마음이 괴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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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느낌의 대표적인 느낌으로 뽑은 거죠. 그러니까 여러 감정 중에 대표적인 감정을 지금 부처님께서 수(受)를 따로 뽑은 거예요, 행(行) 중에서. 행에 들어가야 될 여러 마음 작용 중에서 좋고 싫고만을 일단 뽑아낸 게 수(受)예요. 그래서 우리가 감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감정 전반을 말한 건 아니에요. 고·락에만 포인트를 둔 거지.. 근데 고·락도 지금 이미 부풀려진 감정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제 그 부분을 중시한 거죠, 색·수·상·행·식에서. 색(色)을 물질, 수(受)를 감정, 느낌이라고 하는 게 제일 정확한데 수를 감정, 상(想)을 생각, 또 이제 행(行)을 의지. 이렇게 번역을 많이 하는데요. 수를 감정이라고 봐도 통하는 부분이 그래서 그래요. 고·락이 감정 부풀려진 감정과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다만 감정 전반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는 거 하나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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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이 행에는 수많은 마음 작용이 들어가지만 대표가 의지다. 그래서 지금 그 대표로 사(思)를 뽑아놓은 겁니다. 행(行) 중에 사(思)만 뽑힌 거예요, 제일 대표라 이게. 대표적으로 함께하는 행의 작용입니다. 이거는 행 중의 대표다. 이렇게 행온(行蘊)이라고 해야겠죠. 5온 중에 행온(行蘊)의 대표, 이렇게 써놓으시면 좋겠습니다. 행온의 대표, 출제됩니다. 행온의 대표. 다음 중 행온의 대표는? 사(思) 근데 우리가 사를 생각 사잖아요. 불교에서는 생각 사자로 쓰고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이거는. 의지 사(思)자로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그 생각 사(思)로 읽으시면 안 돼요. 불교는 한문으로 인도 말을 번역하다 나온 거라 좀 다르게 쓰이는 부분도 있어요, 우리가 아는 한자랑. 또 10분 쉬었다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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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5강 - 유식삼십송 제2송, 제3송(48:57)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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