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41 서양철학09 에픽테토스의 담화록 3
[인문학 고전콘서트] 24부-에픽테토스의 담화록(3) 우주의 시민(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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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에픽테토스의 담화록 10번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11번부터 할 텐데요. 이렇게 있더라고요. 하버드에서 낸 건데 1, 2권으로 두 권으로 해가지고 에픽테토스 지금 우리가 다루는 내용이 다 실려 있으니까요. 혹시 뭐 구하실 수 있는 분은 또 원어로도 한번 보시고요. 원어랑 영어로 돼 있습니다. 한번 보시고. 서양의 논어 같은 책이니까요. 예전 어른들은 이제 재밌는 게 본인이 책을 안 쓰죠. 저도 예전 어른들 따라하려면 제가 말만 하고요 책을 안 써야 되는데 저는 책을 벌써 한 10권 내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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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는데 예수님도 책을 안 쓰셨죠. 말만 하셨죠. 제자들이 책을 써요. 소크라테스도 말만 했습니다, 책 안 쓰셨고. 공자님도 말한 거죠. 본인이 책을 내시긴 했는데 예전 경전들을 좀 다듬기만 하셨지 본인 주장을 담은 책은 안 내셨어요. 이런 게 재밌죠. 소크라테스, 또 지금 이런 분들도 말로 한 거죠. 제자들이 받아 적은 겁니다. 그래서 이게 장단이 있어요. 이 예전 어른들은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설득하고 정확히 이해시키는 거를 주로 했다 하는 점도 알 수 있고요. 예전 어른들은 글을, 대신에 이제 제자들이 글을 쓰다 보니까 이 문제점이 과연 이분의 말이 그대로 전달되는지? 요즘 TV에서도 악마의 편집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의도로 인터뷰해도 교묘하게 짜집기를 하면 엉뚱한 말이 돼버리기도 하고 듣는 사람이 못 알아들어서 단어를 바꿔버리기도 하고 이런 게 가능해요. 이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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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에 모두 이런 위험성이 있다는 거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때도 그렇죠. 부처님은 말만 하셨지 책을 내시지 않았어요. 이런 부분에서요 우리가 이렇게 육성으로 주로 진리를 전달하시다 보니까 그 당시에 녹음기가 있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뭔가 인간이 이걸 전달하다 보니까 제자들이 과연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다 이해했을까도 의문이고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좀 이해하고 글을 봐주셔야 합니다. 어떤, 본인이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요 그런 여지를 항상 인정하셔야지 “아니야 우리 거는 완전할 거야” 이런 거는 좀 욕심이죠. 자연스럽지 않은 얘기니까요. 이 에픽테토스도 제자가 기록한 거라는 거. 이런 것도 좀 아시고 한번 보십시오. 그래서 잘 전달됐을 때는 되게 생생한 얘기고요. 뭔가 또 왜곡이 있을 여지도 늘 있으니까 조심하면서 보자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11번 한번 볼게요.
[11. 그대는 ‘가장 위대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언제까지 ‘이성’에 어긋나는 일을 행할 작정인가? 그대는 이미 자기에게 수양이 되는 가르침을 듣고 또 이를 인정하였다. 이제 그대는 어떤 다른 스승을 섬기려고 하는가? … 그러므로 그대는 자기를 한 사람의 ‘완전한 인간’으로서, 또 ‘전진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라. 그대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어길 수 없는 율법으로 삼으라. … 소크라테스는 ‘이성’ 이외의 무엇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도록 모든 일에 자기를 단속하였으므로 한 사람의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 그대는 아직 소크라테스처럼 되지 못하였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생활해야 한다.]
그대는 가장 위대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여러분 얘기입니다. 여러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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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언제까지 이성에 어긋나는 일을 행할 작정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씩 이 구절을 좀 적어놓고 읽어보세요. 언제까지 이성을 어긋나게 살 것인가라고 한번 물어봐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내면의 양심이 좋아해요. 제가 항상 그립니다마는 이걸 여러분의 혼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에고고요. 여러분의 왜 혼을 에고라고 하느냐? 이건 내 마음이잖아요. 나라고 느끼는 자아, 작은 나죠. 남하고는, 왜 작은 나냐? 남하고 다른 나니까요. 그런데 우리 안에는 참나라고도 이걸 많이 부르는 이유가요 참다운 나니까요. 진짜 나가 있어요. 여러분 나의 뿌리, 이 나 참나는 우주적입니다. 사실은 이거는 우주적 나죠. 우주적 자아, 우주적 자아는 누구를 말할까요? 신입니다, 서양철학에서. 서양철학에서 이 자리는 신이에요. 신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고 했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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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동자. 아시죠? 부동, 부동의 어떤 동자. 그래서 이걸 원동자라고 합니다. 근원적인 근원 원(原)자를 써서 원, 움직일 동(動)자, 무거울 중(重)자에 힘 력(力)자입니다. 무거운 것도 힘을 쓰면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원동자. 놈 자(者)자 해서 자기는 안 움직여요. 그런데 남을 움직이게 해요. 그래서 부동의 동자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서요 혼은 움직이고 있죠. 혼은 뭐가 뭐가 혼입니까? 생각이나 감정 예 오감. 아니면 이렇게 나눠도 되죠. 지성, 감성, 의지. 이런 식으로 어떤 구분법을 쓰든지 간에 이놈들을 움직이고 있어요. 이 마음이 움직이면 또 혼만 움직입니까? 몸까지 같이 움직입니다. 육체까지 같이 움직여요. 그렇죠. 육의 세계까지 같이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는데 뭐가 있어서 이걸 움직이게 할까요? 혼과 육, 내 마음과 육신을 움직이게 하면서도 본인은 움직이지 않는, 작용이 보이지 않는 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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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에 있고 그게 신이라는 겁니다. 그걸 서양철학에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나 에픽테토스는 이거를 신이라고 부르고, 그렇죠, 신이라고 부르고 같은 말로 이성이라고 합니다. 로고스라고 합니다. 신은 왜냐? 무질서하지 않거든요. 신은요 질서정연하게 여러분 마음과 몸을, 그리고 이 세계를. 이건 한 우리 한 개인 차원에서 본 거지 이 우주적 차원에서 뭡니까? 신은 온 우주를 움직이고 있죠. 물질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모든 우주 세계를 다 움직이고 있는 그 신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여러분 마음 안에도 있다는 겁니다. 이걸 기독교식 개념으로 하면요 이 우주적인 신, 로고스를 얘기할 때는 성부, 내 마음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신의 작용을 얘기할 때는 성령 그러는 겁니다. 서양철학에서는 이런 구분이 다 있어요. 우리 안에도 신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신의 분신이다. 여기까지 정리되셨죠. 이 정도 아시면 지금 서양철학의 제일 정수를 아신 겁니다. 부동의 동자라는 거. 자기는 움직이지 않는데 남을 움직이게 한다. 이거를 동양철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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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뭐라고 표현했냐면요 무위(無爲)라고 한 겁니다. 무위. “정말 잘도 갖다 붙이네.” 이러지 마시고 같은 내용이라서 그래요. 보십시오. 부동의 동자, 자기는 안 움직이는데 남을 움직이게 해요. 이 존재의 작용은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건가요? 없다는 건가요? 현상계에서 볼 수가 없습니다. 움직이질 않기 때문에. 그래서 무위예요. 노자가 뭐라고 했어? 무위하면서 무불위(無不爲) 이거 없을 무자 약자입니다. 무인데 작용이 없는데 무불위, 못하는 게 없어요. 우주를 다 굴리는데 작용이 드러나질 않아요. 그게 신입니다. 제가 또 떨어뜨릴까요? 이제 지겨우실 텐데. 그래도 저는요 지겨워도 똑같이 또 합니다, 새 마음으로. 또 처음 떨어뜨려보는 것처럼. 이게 명상의 힘이에요. 몰라 하고 하면요 야 이거 과연 떨어질까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예요. 그런데 떨어져요. 안 보이죠. 누가 떨어뜨리고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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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동자가요. 우주에서. 똑같은 작용이 일어났는데 그 작용의 원인이 보이질 않아요. 현대과학에서도 거기까지 못 찾아냅니다. 현대과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거는 어떤 조건이 됐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더라는 것만 알지 이 로고스라는 건 그거 너머에 있는 거예요. 그것도 로고스의 작용입니다만 어떤 원인이 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 이 인과법칙, 우주를 구성하는 인과법칙을 알아내는 게 과학의 목표인데요. 철학의 목표는요 그런 인과법칙의 더 너머에 있는 근거로서의 이성이에요. 로고스. 왜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게 됐을까 하는 거죠. 근원적으로 우주에는 왜? 제가 이 펜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손을 놨기 때문에 높은 곳에 놓고 놨기 때문에 떨어졌죠. 근데 왜 애초에 이런 짓이 자꾸 일어나고 있냐는 거죠. 로고스가 그걸 원하기 때문에. 우주의 로고스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로고스의 명령은 보이지가 않고 우리 그 현상계에서 아무리 이 인과세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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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봐도 그 작용이 보이질 않아요. 그런데 우주는 칼같이 이 로고스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게 여러분 마음 안에서는요, 여러분의 육신과 혼을 움직이는 이 로고스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 안에서 일정한 이 로고스가 여러분 혼 안에,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육신도 이 혼도 이 로고스의 작용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예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여러분 우리 마음은 생각 감정 오감이 있다고 쉽게 얘기하는데요. 생각 감정 오감이 왜 있게 됐을까요? 원인을 모르시죠. 로고스의 작용입니다. 로고스가 그렇게 있으라 했기 때문에 있는 겁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생각 감정 오감이 존재하게 할 수는 없어요. 있는 생각 감정 오감을 여러분의 이제 에고의 혼의 마음을 여기다 주입해서 혼을 가지고 조작을 합니다만, 보십시오. 조작은 할 수 있어요. 이 펜을 들지 말지는 내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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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혼이 벌인 모든 일에 대해서 그 인과에 대해서 다시 로고스가 칼같이 결과를 집행하는 걸 다 받아들이셔야 돼요. 이해되시죠. 그냥 나는 오늘 기분이 그런다 하고 마음대로 사시다가 어느 날 이 로고스의 지배하에 육체가 병이 들면요 그 결과로 온 병에 대해서 그 결과에 대해서 감당하셔야 되거든요. 내 마음은 꼭 그렇게 해도 병이 안 걸릴 것 같았는데 걸렸잖아요. 그렇죠. 이것도 다 이 인과법칙 안에서 그 원인이 있으니까 그걸 고치면 육체를 고치는 의사가 결국 뭘 아는 겁니까? 히포크라테스 이런 분들이 고대에요 뭘 알아냈냐면 이런 육체나 마음에 결이 있다는 걸 알아낸 겁니다. 공식이. 그 공식을 가지고 고쳤더니 고쳐지더라는 겁니다. 이것도 로고스를 존중한 겁니다. 신의 로고스를 이해하지 못하면요 마음대로 해놓고 치료가 될 거라고 믿고 있을 거 아닙니까? 이해되세요? 이 우주는요. 인류가 이 우주에서 인류가 올바르게 사는 방식은요 서양철학자들이 고대 서양철학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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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는 로고스를 지키냐 못 지키냐 밖에 없어요. 인간이 온전하게 사는 건 로고스를 따를 때, 우주 법칙을 존중하고 인과법칙을 존중할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진짜 산다 하는 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걸 어겼을 때는요 불행이 따라오고 자기는 행복하다고 할지 몰라도 보십시오. 혼은 쾌락에 마취돼서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이 로고스는 불만이죠. 로고스를 위배했기 때문에. 이 한 존재가 로고스를 계속 어기기 때문에 결국 마음에 병이 생기고 몸에 병이 생깁니다. 로고스를 위배한 만큼. 이해되시죠. 이런 식으로 이 로고스가 신이고 그대로 우주의 신이자 동시에 내 영혼의 영육의 또 신이다 하는 이런 신이자 질서이다. 이런 식의 철학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셔야 오늘 또 강의도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에픽테토스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똑같은 이 철학에 기반한 겁니다. 이걸 스토아철학의 핵심인데 사실 알고 보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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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똑같이 추구했던 그 철학적 배경은 똑같습니다, 그 원리는. 그래서 이 부동의 동자가 내 안에 있느냐? 뭐가 있어서 내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가? 왜 생각을 하게 만드는가? 왜 감정을 느끼게 하는가? 왜 저런 경우에는 기쁜 감정이 오는가? 여러분이 만든 거 하나도 없지 않아요? 왜 저 아가씨를 보면 왜 가슴이 뛸까? 여러분이 만든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피해자예요. 그렇죠. 왜 저 물건을 보면 왜 손이 갈까? 왜 내 욕망은 저거에 자극받을까? 여러분이 정한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만들어낸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게 있습니다. 그렇죠. 인간이면 생명체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게 있고요. 여러분이 혼이 어떤 방향으로 또 그걸 응용해서 만들어낸 게 있고요. 이해되시죠. 근데 기본적인 깔려 있는 게 있어요. 그걸 잘 이해하시면요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근원적인 거는 우주 로고스가 원하는 대로 나는 그대로 지금 다 모든 거를 부여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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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혼이 경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결과는 달라지겠구나. 신이 모든 걸 지배한다고 할 때 그럼 신이 다 알아서 하는 거니까 나는 책임 없네가 안 되는 이유입니다. 혼이 신의 뜻을 따를 수도 있고 어길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어요. 이게 이것 때문에 말썽입니다. 인간이 말썽인 이유가 혼이 강해요. 어떤 동물들보다 이 뇌를 제대로 갖추고 태어났기 때문에 혼이 많은 작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로고스를 위배할 수도 있고 따를 수도 있고 하는 힘이 커요. 동물들은요 어길 힘이 없기 때문에 로고스에 순응하면서 삽니다. 그래도 일반 무생물하곤 다르죠. 생명체들은 뭔가 의지를 갖습니다만 그래도 크게 넘어서지는 못해요. 인간은 더 심각하게 위배할 수가 있습니다, 로고스를. 그래서 하지만 인간이, 아까 말씀드렸지만 인간이 중력의 법칙을 어길 수 없듯이 하지만 달라라도 가고 어디도 가고 해보죠. 벼랑에서도 한번 뛰어내려보고 혹시나 해서. 그러면 이 중력의 법칙에 칼같이 적용을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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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동자가 그 사람에게 정확한 결과를 주죠. 이 우주의 로고스에 따르는 결과를 줘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린 다 당해야 돼요. 마찬가지로 혼이 마음대로 여러 가지 해볼 수 있지만 남의 마음에 상처도 줘보고 남을 한번 이 전쟁을 한번 일으켜도 보고 남을 사지에도 몰아보고 다 해볼 수 있는데 혼은 뭐든지 할 수는 있는데 조금도 로고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요. 그 결과를 다 본인이 감당해야 된다는 겁니다, 본인이 저지른 짓에 대한 결과를. 이런 식으로 좀 이제 이런 철학적 사유를 좀 갖추시면 여러분 지금부터 사시는데 오늘 이 순간에도요 지금 로고스의 뜻에 따라서 여기 계십니까? 그럼 제가 뭐라고 그걸 물어보나요? 자명하십니까라고 물어봅니다. 깨어 있으십니까? 제가 두 가지 물어보죠. 깨어 있으십니까는 이거예요. 여러분이 혼에만, 혼은요 이기적이고요 자기만 알아요. 생각 감정 오감은 모두 내 마음이잖아요. 이기적이고 나만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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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랑 아집, 이걸 아집이라고 부를게요. 아집에 쉽게 빠지고 무지에 쉽게 빠집니다. 왜냐? 작은 소견으로 우주를 보다 보니까 망상이 자꾸 일어나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그냥 돈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번 해봐요. 왕창 한번 망해봐야 또 정신을 차립니다. 세상 마음하고 내 마음하고 다르구나. 우주와 인간이 살아가는 공식을 내가 너무 몰랐구나. 이 무지를 자극하게 되고 자신의 아집, 나만 생각하는 이 마음을 이제 자각하게 되면서 조금씩 철학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무지랑 아집에 너무 쉽게 오염이 됩니다, 이 혼은. 그러니까 이 혼의 말만 따르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 혼에서 깨어나서 내 안에 있는 신성을 만나는. 이 신성은요 여러분 안에서 엄청난 평온으로서 작용합니다. 이 세계는요. 혼이 아니기 때문에 욕심 낼 일이 없고 편견에 빠지질 않아요. 로고스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주에서 더 바라는 게 없고 평온하고 질서정연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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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의식 상태를 한번 봐보세요. 혼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할수록 무지와 아집이 작동하고요.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 로고스가 작동할수록, 로고스가 드러날수록 여러분 마음은 평온하고요 선명합니다. 눈도 더 밝아요, 정신이 깨어 있기 때문에그래서 여러분 무조건 첫 번째로 깨어나셔야 됩니다. 철학자가 되고 싶으시면 첫 번째로 깨어나라. 두 번째로 명심할 게, 뭐죠, 자명하라. 분명해야 됩니다. 선명해야 됩니다. 생각도 선명하고 감정도 선명하고 여러분의 언행도 선명해야 돼요. 깨어나라는 혼의 세계에서 로고스의 세계로 탈출하시라는 겁니다. 깨어나라. 자명하라는요. 로고스의 질서대로 이 혼을 경영하라는 겁니다. 혼과 육을 경영하라. 이 두 가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이 앞으로 계속 나올 겁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철학에서도 나올 거고 에픽테토스 철학에서도 나올 거고요. 그대는 가장 위대한 선, 최고의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별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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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더 잘하려고 하시면 여러분 또 사족을 붙이게 됩니다. 뱀만 그리면 되는데요 남보다 빨리 뱀을 그리니까 아쉬워서 뱀다리 그리다가 과한 거죠. 더 나가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보면 되는데 신이 원하는 걸요 우주가 원하는 걸 그대로 보시고 지금 딱 그대로만 하시면 되는데 본인이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 신의 질서를 과해서 망쳐버립니다. 부족해서 망치는 것도 망치는 거지만 과하게 신의 뜻을 과하게 해석하는 것도 망치는 겁니다. 제가 어떤 불쌍한 사람이 와서 저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딱 봤을 때 이분은 딱 로고스에 맞게 자명한 거는 100만 원 정도 도와주는 건데 “에이 그래도 사람이 선심을 좀 더 쓰자” 하고 거기다 동그라미 하나를 더 붙이면 뭔가 또 다시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우주에. 자기 마음에 자기 가정에 전체적인 일에. 이해되시죠, 그것도 그 사람의 마음에. 뭔가 균형을 깰 만한 일은 안 하셔야 돼요. 로고스에 따르는 일은요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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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는요 내 안에서 작동하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요 어떤 식으로 로고스는 맞다 틀리다 신호를 주나요? 이때 신호 줄 때요 자명 찜찜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자명하다 찜찜하다. 이 두 가지 신호만 정확히 구분하시면 여러분은 언제든지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찜찜한 거는 그날 중에 반드시 풀고 주무시면 돼요. 오늘 찜찜한 건 풀고 주무세요. 전화를 걸어서 사과를 하시든지 어떤 뭐 이렇게 참회를 하시든지 바로 잡으시든지 정확히 알고 찜찜한 거 풀고 가셔야 돼요. 개념이 잘못돼 있으면 개념을 정확히 바로잡고 주무셔야 돼요. 이 자명찜찜으로 우리 로고스는 우리한테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지금 최고의 선은요 로고스가 자명하다고 한 딱 그만큼 하는 겁니다. 이거는요 여러분이 사심으로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깨어서 마음을 비우고 냉정히 봤는데 로고스가 “그 정도면 딱 알맞다”라고 한 그거는요 여러분 의지가 아니라서요 우주 모든, 로고스는요
18:00
우주에 하나죠 둘이 아닙니다. 이 로고스랑 이 로고스랑 의견이 틀리지 않아요. 우주엔 하나의 신 하나의 질서가 존재하니까 여러분 내면에 물어봤을 때 여러분 내면의 질서가 로고스가 자명하다라고 한 거는요 우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우주 전체의 균형을 돕지 깨는 게 아니다라는 결론이 난 건데 본인이 거기 뭐 하나를 더 보태버리면 균형을 깨버려요. 우주 전체에 피해를 주는 게 됩니다. 이거 이해하시겠습니까? 내 양심의 자명한 거는 이렇게 쉽게 얘기해 볼게요. 여러분 양심은요 여러분만 이해하는 마음이 아니죠. 길 가다 물에 빠진 사람 보면요 뛰어들으라고 합니다, 양심은. 내 개체적인 생명을 중시 안 해요. 전체를 중시하니까 저 사람을 살리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에요 양심은. 그러니까 양심의 자명한 거는요.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양심에 이게 맞다라는 얘기는요. 나를 포함한 이 인류 전체 우주 전체에 사실은 이득이 된다라고 양심이 인정을 해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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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양심에 맞다, 로고스에 맞다라고 한 걸 꼭 하셔야 되는 이유가 그렇게 해야만 우주 전체의 이득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도 포함한. 우주 전체에 도움을 주는 삶을 사는 거랑 우주 전체에 피해를 주게 됩니다. 양심이 찜찜하다고 한 거는요 내 혼에는 당장에 그게 되게 쾌락에 맞고 자극적인데 그 짓을 했을 경우에는 인류 전체한테 피해를 준다. 이웃한테 친구한테 가족한테 피해를 준다라고 양심이 경고를 준 겁니다. 이 로고스의 신호만 알아들으시게 되면요. 최고의 선을 살 수 있겠죠. 내가 뭐라고 최고의 선을 해? 하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요. 제 얘기를 잘 경청해 주시는 게 최고의 선입니다. 이해되세요? 그게 제일 자명하지 않으세요? 그렇죠. 안 들으실 거면 안 오셨고 오셨으면 잘 듣는 게 최고의 선이죠. 양심에 떳떳하지 않나요 그게? 이해되시죠? 최고의 선 실천하는 건 쉽다고요. 가정에 가셔가지고 가족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최고의 선입니다. 그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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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가 우주의 우리가 살아가는 거는 매 순간순간밖에 없어요. 저 5분전은 지금 없습니다. 어디에도 지금 이 순간만 여러분이 갖고 계신 거고 제가 갖고 있는 건데 이 순간에 로고스의 뜻대로 살면 행복하고, 어겼을 때는 찜찜하기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에고는요 혼의 세계는요 내 마음대로 했을 때 행복하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 내면이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경고를 보내기 때문에 불행에 빠지게 돼 있어요, 저 내면이. 결국 죄의식이 생기고 자책을 하게 됩니다. 이해되십니까? 자책감을 안 갖는 삶이 제일 행복한 삶이지 자기 혼만 만족한다고 행복하질 않아요. 근원적으로 내면에 어둠이 커져갑니다. 그게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 삶을 망가뜨려 놔요. 이상하게 난 돈 벌고 잘 사는 것 같은데요 이상한 쪽으로 자기 삶이 전개돼 가는 걸 느끼는데 막을 수가 없는 이유는요 양심이 끝없이 지금 자극을 하기 때문입니다. 너 지금 잘못 살고 있다. 우주의 질서를 깨고 있다. 너 하나로 인해 여러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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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을 잃고 있다. 불행해지고 있다라는 경고가 계속 들리는데 둔감하다는 이유만으로요 양심에 둔감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덮어지나요? 로고스의 결과를, 로고스가 이 집행하는 결과를 안 받을 수 있나요? 무시할 수 있나요? 안 돼요. 저도 치과치료 받아봤지만 여기 고름이 쌓여서 이렇게 곪아 가는데 제가 못 느낀다는 이유로요 제가 둔감하다고 이게 덮어지나요? 아니잖아요. 그렇죠. 문제가 생겼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양심에 좀 둔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요 그게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버리면요 심각한 결과가 곧 닥칠 거라는 겁니다, 그분한테도.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았나요? 독재자들 그러지 않나요? 양심이 둔감해요. 막 살아요. 백성들을 그렇게 죽이고도 아무 일 없을 줄 아는데 결과들은요? 아주 뭐 끌려가다가 죽고 그냥 돌에 맞아 죽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도 꼭 나한테는 그 일이 안 일어날 것 같아요. 이해되시죠? 그게 혼의 착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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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원인은 무지랑 아집 때문에 그래요.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욕심에 부응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싶은 이 욕심 때문에 생각 감정 오감이 오염돼 있기 때문에 양심에 보내는 신호를 못 읽어내서 지금 자기가 일시적으로 행복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지. 근원적으로 이 원리를 알면요 여러분이 마음의 의사라고 보시고 어떤 환자 상태를 한번 보세요. 환자는 지금 그렇게 살아서 너무 좋대요. 그런데 여러분이 볼 때는 다른 사람을 다 망치고 있어요, 그 삶이. 그럼 그분의 내면에 있는 신이 그 문제의 내면에 있는 신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여러분은 아시겠죠? “저렇게 먹어대다가는 위가 못 버틸 텐데” 이걸 아시는 거랑 똑같이 “어우 저렇게 살다가는 저분의 양심이 경고가 장난이 아닐 텐데 그게 현실화될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화되나요? 다른 사람들의 지적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끌어내리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듭니다. 문제를 일으켜요. 그래서 육체적으로 아니면 어떤 재산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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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이 와야 그 사람은 그 일이 온 뒤에야 이제 자기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압니다. 오기 전에 이 마음의 여러분이 마음의 의원이고 마음의 의사라면 아시겠죠? 저게 뭔 문제가 일어날지? 이게 아는 정도까지 되면요 죄를 지으라고 해도 못 짓겠죠. 그래서 소크라테스는요 로고스의 명령을 따르다 보니까 자기 육체의 죽음이 오더라도요 그렇게는 못하겠다가 되는 겁니다. 너 아테네에서 가르침 펴지 마라. 이런 얘기 이렇게 우리가 살아야 건강하게 삽니다 하는 얘기를 아테네에서 하고 다니는데 너 다 죽일 거다 하지 마라라고 했을 때 차라리 죽일 테면 죽여라. 나는 이걸 멈출 수는 없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 심정 이해되세요? 이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여러분도 이걸 조금씩 알아가시고 이런 사정에 밝아지신다면요 마음의 의사가 됩니다. 다른 분도 치료해질 수도 있어요. 자기 마음도 금방 치료해버리고 이렇게 좀 잘 생각을 해보세요. 그래서 그대는 최고의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라는 거. 여러분 안에는 로고스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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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나는 그래도 나는 못 할 거야. 나는 무지랑 아집이 너무 심해서 내가 나를 봤을 때 편견과 아집이 너무 심해서 나는 로고스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없어라고 하신다면요 그 말은 맞지 않다는 겁니다. 여러분 로고스, 여러분의 신성을 무시하는 행위예요. 여러분의 혼이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요 이 신성은요 조금도 오염되지 않고 부동의 동자로서 여러분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빛나고 있는데 자신의 로고스를 믿지 않는 이거는 가장 심각한 겁니다. 그렇죠. 여러분의 혼이 아무리 타락해도 여러분의 로고스는 여러분의 삶을 비춰주고 있고요. 바르게 살아라라고 끝없이 지시하고 있고 경고한다는 거 이걸 꼭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최고의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성에 어긋나게 일을 행할 작정입니까? 여러분 이성은 지금도 외치고 있는데 어떻게 살면 된다라고 끝없이 얘기하고 있는데 포기할 수 있는 순간은 없다는 겁니다. 내가 이 정도 망가졌으니까 나는 사실 포기해야 돼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로고스는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로고스는 바로잡으라라고 명령하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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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그 명령만 따르신다면 여러분은 최고의 선을 지금 이 순간 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대는 이미 자기에게 수양이 되는 가르침을 듣고 또 이를 인정하였다. 지금 제 말을 듣고요. 그 말 맞네라고 인정하셨다면 이 상황이죠. 그렇게 하는 게 맞겠네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제 그대는 어떤 다른 스승을 섬기려고 하는가? 왜 이걸 맞다고 해놓고 지금 로고스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아 로고스의 뜻을 따르자니까 좀 불편한데 또 다른 스승 없나 그렇게 안 살고도 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론 없나 막 살면서도 우주의 어떤 더 신성한 존재가 된다는 그런 이론 없나?” 이렇게 또 찾지 마시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자기를 한 사람의 완전한 인간으로서 또 전진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라. 그대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가톨릭에서는 뭐라고 하죠? 완덕, 완전한 덕을 이룰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기독교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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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이 로고스는 뭡니까? 성령이에요. 성령이 안에서 지금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당신 안에서 사랑하라 정의로워라 하는 가르침을 지금 주고 있는데 왜 지레 포기하냐는 겁니다. 여러분도 이 성령의 말만 듣기만 하면, 여러분 안에 있는 신성을 따르기만 하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가 있는데. 이해되시죠? 그대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어길 수 없는 율법으로 삼으라. 제가 자명하냐라고 늘 노래를 부르죠. 철학자들은 다 똑같은 얘기만 해요. 뭐 이렇게 서로 베끼는 것처럼 똑같은 얘기만 하지 않습니까? 뭐라고 하십니까 지금? 당신이 자명하다라고 인정한 그거를 율법으로 삼으라는 겁니다. 여러분 삶의 원칙으로 삼으라는 겁니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건 사실은 거짓말이에요. 알아요. 그렇죠. 남한테 죄 지으면 안 된다는 거 아시잖아요. 어떻게 살기는요? 그 원칙을 삶의 원칙으로 알고 사셔야죠. 누가 와서 나 건드는 게 싫으면 남을 안 건드는 거를 삶의 원칙으로 알고 사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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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지금 자명하다고 하는 것들을 쭉 적어보세요. 모세 10계명보다 더 될걸요? 10개 넘어갈걸요? 어떻게 살아야 자명한 삶이다 하는 걸 쭉 적어보세요. 그걸 여러분의 계명으로 삼아보세요. 그건 양심이 인정한 거 아닙니까? 여러분 로고스가 그 말 참 맞다라고 인정해준, 자명한 느낌이 들었던 그거를 여러분의 율법으로 삼으세요. 소크라테스는 이성 이외에 무엇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도록 이성이 자명하다고 한 것만 따르는 삶을 살도록 모든 일에서 자기를 단속하였다. 이걸 조선시대 선비들 용어로 쓰면 경(敬)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서 자신을 내부 검열했다. 이게 내부검열이라는 뜻이거든요. 선비들은 경했던 사람이에요. 경은 뭘 공경 경(敬)자거든요. 뭘 공경했을까요? 천리요. 조선 선비들 입으로 말하면 천리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이치, 하느님의 원리, 하느님의 법칙을 따르려고 늘 공경하면서 자신의 감정, 희노애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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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에 맞게 살려고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을 단속했던 분들이 선비거든요. 우리 조선시대 선비들도 딱 이 마음으로 사셨다고요. 퇴계나 율곡 글 보면 똑같다는 거 아실 거예요. 천리 그대로 생각 감정 오감이 따라가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사단(四端)이요 측은지심 천리 그대로 양심이 시키는 대로 남을 불쌍해 하고 수오지심, 잘못된 걸 부끄러워하고 사양지심 남에게 겸손하고 시비지심 옳은 걸 옳다고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 힘이 양심에서 나오는 힘이죠. 천리 그대로만 사시면 여러분 생각 감정 오감은요 그대로요 천리랑 똑같이 돼요. 이거 이거 재밌는데요. 로고스대로 사시면 여러분 호는 로고스랑 하나가 됩니다. 그때의 혼은요 무지와 아집의 혼이 아니고 반대로 뭐가 되겠습니까? 지혜와 자비의 혼이 돼요. 그래서 여러분 혼이 정화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했죠? 여러분 혼을 완전하게 하라고요. 정화시키라고요. 죽을 때도 친구들한테 얘기를 하고 가요.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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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걱정하니까 됐고 당신들 자네들 혼을 잘 바로잡아 정화시켜 자네들 혼이나 완전하게 만들어 이게 내 부탁이야. 부처님도 가실 때 그랬죠. “너를 등불로 삼고 너를 바로잡아라” 하는 겁니다. 이게 옛날 성인들의 핵심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당신들 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 요 말한 핵심 원리가 뭔지 아시겠죠? 당신들 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 나는 평생 아테네에서 이 말만 했다 이렇게 증언했잖아요. 여기 로고스 따르라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그렇게 살지 않았느냐 하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를요 지금 에픽테토스는 최고의 완전한 성인 완전한 인간으로 보고 얘기하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같은 존재가 됩시다, 우리. 하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보여줬잖아요. 로고스에 맞으면 가고 도망가자는 친구한테 그랬어요. 자네 나 알지 난 자명하면 하고 자명하지 않으면 안 하는 거. 도망가는 게 자명하다는 걸 날 설득해봐 설득 못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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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돌아가셨잖아요. 그냥 독배를 마셨죠. 도망가는 게 자명하다는 걸 친구가 설득을 했으면 도망갔을 텐데요. 이거 아셔야 돼요. 소크라테스는요 죽기를 좋아하는, 독배를 마시고 싶어서 환장한 분이 아니고요. 도망가는 게 옳으면 도망갈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자명했을 때만이요. 소크라테스는 죽는 걸 좋아한 게 아니고 로고스를 따르는 걸 좋아했던 사람일 뿐이에요. 설사 죽음이 걸려 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로고스에 맞으면 하고 안 맞으면 안 하겠다. 이제 이걸 따랐던 분이고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를 모델로 삼아라. 이성이 자명하다고 하는 거 아니고는요 안 따랐다. 이런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다. 그래서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 가톨릭식으로 완덕의 존재가 되었다 이런 뜻입니다. 그대는 아직 소크라테스처럼 되지 못하였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생활해야 된다. 소크라테스, 완전한 인간은 아니지 않냐? 소크라테스처럼 하지만 거기를 지향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단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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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보면요. 소크라테스가 어디 가 있을까요? 천국에 있을까요? 이렇게 로고스를 따랐던 완전한 인간이. 단테의 신곡에, 즉 그러니까 기독교 입장에서 쓴 글에는요 연옥에 가 있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태어나서요 기독교를 믿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리스도를. 이유가 좀 이상하죠. 이런 게 한 문화가요 집단적으로 그것만 너무 믿다 보면요 그렇게 상상하게 됩니다. 무지랑 아집의 편견에서 나오는 거예요. 소크라테스는요 로고스대로 산 사람이에요. 그렇죠. 본인도 스스로 나는 신들의 세계로 나아간다고 하고 죽었어요. 독배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로고스대로 살았는데 달리 갈 데가 어디 있느냐? 더 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그런 존재들이 사는 세계로 가겠지.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가 확신하고 가신 분한테 연옥에 가 있다. 왜냐?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나는 바람에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런 논리가 되게 황당하다는 걸 이해하셔야 됩니다. 예. 그렇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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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다음에 신과 12번이요.
[12. 신과 인간의 친족관계에 대하여, 철인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인간은 소크라테스를 닮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의 출생국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아테네라거나, 코린스라거나 말하지 않고, ‘우주’라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 그러므로 예지로 우주의 지배를 관찰하고 모든 사회 속에서 가장 강대하고 넓은 사회는, 신과 인간으로 되어 있으며, 비단 자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물(그러나 특히 이성을 지닌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이성에 의해 신과 연결되고, 신과 교통할 수 있는 힘을 자연으로부터 가졌기 때문이다)에게, 신으로부터 그 종자가 뿌려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찌 자기를‘우주의 한 시민’이요, ‘신의 아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신과 인간의 친족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신과 어떤 관계일까? 신은 로고스죠.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일까요? 혼은 인간을 상징하고 로고스는 신을 상징하니까 신의 자녀입니다. 우리 모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신의 자녀예요. 그렇죠. 이걸 받아들이셔야 됩니다. 신과 인간의 친족 관계에 대해 철인들이 철학자들이 말한 게 진실이라면 인간은 소크라테스를 닮아야 한다. 뭘 닮아야 되냐면요? 그는 사람들이 물어봤어요. 어디 출신이냐 출생국을 물어보면요. 아테네라거나 코린스라거나 이렇게 말을 안 하고요. 그 당시에 있던 지명을 얘기를 안 하고 우주라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우주. 나는 우주 출신이다. 여러분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우주에서요. 우주는 신을 상징합니다. 신한테서 태어났다. 나는 신의 자녀다 하는 이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지로 우주의 지혜를 예지라는 건 지혜죠.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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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으로 우주의 지배를 관찰하고 모든 사회 속에서 가장 강대하고 넓은 사회는 신과 인간으로 되어 있으며, 비단 자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서 태어난 모든 생물 괄호는 주석입니다. 모든 생물에게 신으로부터 그 종자가 뿌려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찌 자기를 우주의 한 시민이요. 신의 아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소크라테스 생각이 맞지 않은가 이겁니다. 말이 아주 길면서 이렇게 꼬여 있는데요. 하나하나 보시면 신과 인간으로 되어 있는 가장 넓은 사회를 상상해 보시라는 겁니다. 신과 인간으로 이루어진 이 우주, 우주는 이 신과 신에 의해서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래서 우리는 모두 신과의 자녀라고, 신과의 연결 속에서만 우린 존재한다는 거 이걸 깨달으시라는 겁니다. 이게 철학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걸 움직이는 거죠. 보십시오. 시간 공간 안에서 생각 감정 오감이 변해가는 게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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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우주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우주에 속하지 않은 게 있어요. 부동(不動) 움직이질 않아요. 그런데 이 모든 게 움직이는 질서를 부여해 주고 있는 자리가 있어요. 부동의 동자, 신 그렇죠. 이 신 때문에 우주가 굴러가니까 우주를 이렇게 봐야 된다는 겁니다. 신과 신에 의해서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 이렇게 깨달은 사람이라면요 나는 신의 자녀라고 말을 왜 못하냐는 거. 기독교적으로 보면요 도마복음에 보시면 예수님이 이런 말을 해요. 우주의 모든 걸 알아도 나를 모르면 빈곤하다. 그러면서 이 말을 해요. 나를 알아야 여러분은, 그 뭐죠, 풍족할 거다라고 얘기하는데 그 핵심이 뭐냐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아라는 건요 신의 자녀라는 걸 아시라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신을 아셔야 돼요. 신의 뿌리를 두고 있는 신의 자녀라는 걸 여러분이 아시지 못한다면요 여러분은 우주에서 제일 빈곤한 사람 고아거든요. 우주적인 고아예요. 신을 모르면 고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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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뿌리를 몰라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육체적인 부모님이 아니고요. 육체적인 부모님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 근원을 캐보면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우린 고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빈곤할 뿐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 존재의 근거를 알아야 돼요.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에픽테토스도. 여러분 존재는 신, 우주에서 여러분은 왔다. 주석에 뭐라고 돼 있냐면, 특히 이성을 지닌 존재가, 모든 생물도 다 신의 자녀라고 했는데 특히 이성을 지닌 존재가 신의 자녀라는 겁니다. 왜냐하면요 이성이 없으면요 본인이 신의 자녀라는 자각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근데 우리는 인간은 다행히 이성이 있어서 자각을 할 수가 있죠. 이런 말도 할 수가 있잖아요. “내가 신으로부터 나왔네.” 이 생각을 할 수가 있는 이 존재가 특히나 신의 자녀라는 겁니다. 신하고 통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되시죠? 그다음 이 스토아학파들은 어떻게 기도했는지 기도문을 한번 보시죠. 이 기도문이요. 이 제우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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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으로 바뀌어서 기독교에서 널리 쓰이고 했습니다. 실제로 영향을 많이 줬어요. 보세요.
[13. 우리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럼 나를 인도하라, 오오, 제우스여!
그대 오오, 운명이여!
그대가 나더러 가라고 명령하는 곳에 나는 가려고 한다.
이를 원치 않으면 나는 비겁한 자이다.
나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불가피한 일에는 기꺼이 굴복하는 사람이야말로
현자요, 신을 아는 자이다.
크레이톤이여, 그것이 신들의 뜻에 합당하다면, 그렇게 하라.
에니토스나 미리토스는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된다. 그럼 나를 인도하라. 오 제우스요. 제우스가 하느님입니다. 스토아파한테는 하느님이에요. 소크라테스한테는 하느님이에요. 지금 이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기도하는 걸로 이렇게 돼 있어요, 기도문이. 예수님의 주기도문처럼 소크라테스의 기도문입니다. 보세요. 그럼 나를 인도하라 제우스여. 제우스의 뜻 그대로 따르겠다는 겁니다. 그대 오 운명이여. 제우스가 신이 내 운명을 모두 주재한다는 겁니다. 그대가 나더러 가라고 명령하는 곳에 나는 가려고 한다. 이를 원치 않으면 나는 비겁자이다. 비겁한 자이다. 신이 가라고 했는데 안 가면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나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뜻에. 불가피한 일에는 기꺼이 굴복하는 사람이야말로, 신이 명령하는 것을 기꺼이 따르는 사람이야말로 현자요 신을 아는 자이다. 크레이톤이여, 친구죠. 소크라테스 친구한테 지금 하는 말입니다. 크레이톤이여 그것이 신들의 뜻에 합당하다면 그렇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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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겠다, 나. 하지만 애니토스나 미리토스는, 이건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사람들이에요. 나를 죽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해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신의 뜻에 따랐을 뿐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날 죽이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고발해서 내가 사형에 처하더라도 내 양심에 그게 맞으니까 내가 사형을 받는 거지 이 사람들이 나를 죽여서 내가 죽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내 양심에 맞으면 사형 당하는 거고, 양심에 어긋나면 사형 안 당하고 난 도망가겠다. 열어놓은 겁니다. 친구한테. 하지만 내 양심에서 신은 나더러 여기서 죽으라고 명령하신다. 아테네 법을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그래서 나는 내 이성에 따라 난 죽겠다. 그들이 날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라. 이해되세요? 이게요 소크라테스를 죽인 그 정부가 민주정부였거든요. 과도정부로 있다. 30인이 지배하던 30인이 쿵짝이 돼가지고 지배하던 그 과도정부를 물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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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 소크라테스를 죽인 겁니다, 불러다가. 한 500명 모여서 재판해가지고 다수결로 해서 죽인 겁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을 반대했다. 뭐 이런 여러 가지 그런 괴설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아니고 소크라테스는요 민주정부라는 거의 위험성이 아시겠죠? 민주정부는요 그 정치가들이요 사람들한테 지지를 받아야 유지되는데 소크라테스가 기존 권위를 자꾸 깨고 다니는 겁니다. 지금 정치인들 믿을 수 있어 하고 자꾸 얘기를 한 겁니다. 지금 정치인들 양심적이야 진리를 알고 저렇게 백성을 다스리는 거라고 자꾸 얘기를 하니까 민주정부 때 특히나 싫겠죠. 지지를 받아야 유지되는 이 정치인들이 특히나 싫은 겁니다. 소크라테스를 좀 죽이는 것보다 아무튼 아테네에서 좀 내보내고 싶어 했어요. 아테네에서 자꾸 돌아다니면서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 이 사람이. 그래서 재판을 걸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의도는 추방을 원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사형까지 가게 돼서 죽인 겁니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와 민주정부를 대립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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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으로 보는 그런 많은 이론들인데 아니에요. 소크라테스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시민이죠. 그 법을 존중했잖아요. 민주가 모여서 국민들이 다수결로 나를 사형 내렸으면 나 죽겠다. 왜냐면 나는 원래 그 국가가 다스리는 법에 의해서 나도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그 법이 나더러 죽으라면 죽겠다. 이렇게 하고 받아들였잖아요.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민주정부랑 어떤 대항하고 한 게 아닙니다. 그 뒤로 제자인 플라톤이 볼 때는 이놈의 민주정이 사람 잡았네. 철인 잡았네. 해서 다수결 못 믿겠네 해서 철학자들이 다스렸으면 하는 글을 썼지만 그것도 결국은 민주적으로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철인들이라 하더라도. 철인들이 마음대로 다스리는 세상은 아니거든요. 철인들은 훨씬 더 국민을 배려하고 더 지혜롭게 로고스에 맞게 다스리는 정치인을 원했던 거죠. 그래서 민주정과 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철학자들을 대립해서 보지 마시고요. 지금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제일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민주주의는요. 근대에 태동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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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기반을 뒀잖아요. 프랑스 혁명이 거기서 일어났는데 루소가 주장한 게 이겁니다. 그 전에 로크가 주장한 거는요 계약관계다. 백성과 군주는 계약 관계니까 지금 여러분 대통령은 여러분하고 계약을 맺었다는 겁니다. 서비스가 형편없어요, 대통령이. 그럼 여러분은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겠죠. 우리 업체 바꿀래요 그만 서비스 중단해 주세요라고 이런 식의 주장을 로크가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족이 안 되는 게 있는 겁니다. 업체만 바꾼다고 이게 해결될 일이 아닌 겁니다. 그러면 진짜 민주정이 되려면 뭐가 돼야 되느냐? 지배자는 그 공적 서비스를 담당한 사람은 어떤 각오를 해야 되고, 국민은 어떤 각오로 이 정치에 임해야 되느냐 해서 루소가 주장한 건요. 양심 복종론입니다. 우리 모두는 권위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양심에 복종해야 된다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게 소크라테스가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나는 그런 독재자의 그런 민주제도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정치인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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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종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 양심에 복종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 양심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고 살으라고 하면 살을 거라는 겁니다. 지금 민주주의 핵심은 이거예요. 국민이 계약, 보십시오, 계약해가지고 지금 계약서 쓰고 난 뒤에 지금 서비스가 형편없어서 막 뭐라고 하는데도 전혀 지금 말을 안 듣지 않습니까. 그때 국민은 왜 당신들이 지금 계약 계약을 위배했는지 뭐로 근거로 얘기를 해야 됩니까? 양심으로요. 양심 말고는 지금 계약이 올바르게 된 계약인지 아닌지도 우리가 논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 양심에 비추어 볼 때 당신이 지금 사기치고 있다. 계약 해지를 원한다. 우리도 지금 양심에 의거해서 얘기하고 있다. 또 우리가 당신 명령에 따른다고 할지라도 계약을 맺어서 군주 말을 듣는다고 할지라도 이게 당신의 권위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내 양심에 복종하는 거다. 리더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게 백성으로서 양심에 합당하니까 내가 당신한테 복종하는 거지 당신한테 복종하는 게 아니다라는 이 철학이 루소가 주장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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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도 그거를 얘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우리는요 철인들은요 예전부터 이겁니다. 양심 복종론자들이에요. 우주에 뭐에도 명령 안 들어요. 대통령 아니라 누구의 명령도 안 듣습니다. 이해되세요. 양심의 명령만 듣습니다. 대통령이 하는 말이 옳으면 따르는 겁니다. 왜냐? 내 안에 양심이 옳은 건 하라고 하니까요. 군주한테 충성을 다하는 것도 임금한테 충성을 다해라라고 내 양심이 명령하니까 따른 겁니다. 이해되세요. 로고스에 맞으니까 한 것뿐이라는 겁니다. 이의 예지 다 효도도 부모님한테 복종하는 게 아닌 거예요. 양심에 복종하는 거예요, 사실은. 부모님한테는 사랑, 사랑을 해라, 효도를 베풀어라고 내 양심이 원하니까 한 거라는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옛날 우리가 고대를 이해할 때 저때는 미개해가지고 임금이 죽으라 하면 죽고 독약 먹으라면 독약 먹었어. 어리석어서 도망도 안 가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양심에 맞으니까 한 거예요. 송시열이란 정치인이요 얼마나 그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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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문제도 있고 또 잘한 부분도 있고 못한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 당시 아주 그 노론의 영수죠. 한 당파의 최고의 수장이었는데 나이도 많은데 장희빈에 대해서 상소를 올리고 사약 먹습니다. 이거 올리면 죽는 줄 압니다. 그 상소 올리면요 사약 내려온다는 걸 다 아는데. 그 당시 그분이 정치적으로 뭐 어쩌니 저쩌니 말은 많지만 최소한 그분은 그걸 한다는 겁니다. 그때 선비들은. 내가 이때 안 쓰는 건 창피한 거라는 걸 알아요. 상소 쓰고 독약 먹고 죽었죠. 이 정도는 그냥 한다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요즘 뭐 정치인들이 어쩌니 하는 이런 각오 있는 정치인들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내 양심에 따르니까 난 한다. 내 목숨 걸고 한다. 양심의 명령을 어기면 안 된다라는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이 철학을 이해하든 지금 소크라테스가 사약 먹은 걸 이해하려고 하시면요 이걸 모르고는요 그걸 권력관계로 해석한다든가 단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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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제 과도제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어느 시대에 살건 양심을 따르는 이 삶이 진짜 삶이라는 이 철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우리가 아는 민주제도도요 그런 철학이 지지해 주니까 민주제가 지금 우리한테 인정받는 거죠. 그렇죠. 민주제가 어떠한 시스템보다 우리 국민의 양심을 존중해 줄 것 같으니까 우리가 그쪽 업체에다 계약을 한 것 뿐입니다. 이거 이해하셔야 돼요. 서비스가 너무 형편없다 보면요. 차라리 독재가 나았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또. 그 돈 떼어먹었어도 그래도 그 사람들은 뭘 고쳐주긴 했잖아. 이런 이런 황당한 생각이 일어난 이유가 뭡니까? 이해되세요? 지금 민주제니 문제니 이런 제도만 가지고 얘기할 수가 없다고요. 양심을 서비스가 만족스러우냐 안스러우냐? 즉 우리 양심을 충족시켜주냐 못 시켜주냐? 국민의 양심을 그것 때문에 국민은 업체를 바꿀 생각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민 양심을 계속 자극하다가는 계속 촛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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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하는 게 번지죠. 번지지 줄지 않는 거는요 빨리 알아차려야 됩니다. 국민들이 양심이 지금 되게 속상해하고 있다라는 걸 알면요. 빨리 거기를 대책을 세워서 양심을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자꾸 그런 게 문제가 커질 거라는 거. 이런 것도 이 철학에서 다 볼 수 있지 않나요? 사람 마음을 알면요 알 수 있는 얘기입니다. 충분히 진단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민주제라는 걸 절대시하지 마시고요. 민주제는 국민의 양심을 존중할 때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걸 더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철학자들의 사상에서 그런 것까지 좀 꺼내서 보시면 좋겠고요. 14번.
[14.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본유개념’을 각각의 사물에, 자연에 따라서 적용함을 가리키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서 어떤 것은 우리의 힘으로 능히 지배할 수 있으며, 다른 것은 우리 힘으로 도저히 지배할 수 없음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의지와 또 의지가 행하는 모든 일이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신체와 신체의 여러 부분, 재산, 부모, 형제, 자식, 그리고 국토이며 한마디로 우리의 반려이다.]
교육 문제 한번 볼까요? 교육을 시킨다는 건 뭐냐? 그것은 우리의 본유(本有) 개념(槪念). 본유개념이라는 어려운 말이 나왔는데 보십시오. 근본 본(本)자고요. 있을 유(有)자입니다. 개념, 걔는 이게 얼개 개(槪)자예요. 얼개라는 건 뼈대입니다. 념(念). 개념이 뭔지 한번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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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려볼까요? 개념. 개념이 뭘까요? 생각의 얼개입니다. 생각의 구조요. 개념이라는 건 이겁니다. 정의, 정의라는 개념은 뭐냐? 정의가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가 있죠. 어떤 생각을 어떤 특정 모양으로 구조물을 짜놓은 겁니다. 정의라는 거. 사랑은 또 다른 구조물이죠. 집이 틀려요. 생각으로 짓는 집들이에요. 뼈대가 틀려요. 사랑이라는 거랑 정의라는 건 그 개념이 의미하는 게 틀려요. 그래서 이 개념들이, 여러분이 근데 보통 개념은 관념이거든요. 우리가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것들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개념 말고요. 본래 갖고 태어난 개념을 말하는 거예요. 이건 이데아의 다른 표현이에요. 이데아를 본유개념이라고 불러요.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거라면. 사랑 정의 이런 건요 사실은요 언어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거는 그 문화 안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그 감각 자체는 이미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 느낌 자체는 여러분 안의 이데아로. 그러니까 태어나자마자 똑같이 인의예지가 안에서 사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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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하더라는 겁니다. 불쌍한 사람 보면 불쌍하다고 여기고 안에 개념이 있더라는 거예요, 사랑하라라는. 또 잘못된 걸 보면 이건 아니지라는 마음이 드는 건 정의로워라는 개념을 본래 갖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거 보십시오. 애들한테 이 두 개를 보여주면 다른 줄 알아요. 같고 다름이라는 개념을 이미 갖고 있더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르쳐준 적이 없을걸요? 뭘 같다고 해라 뭘 다르다고 해라라는 걸. 이거 보여주면 다른지 그냥 알아요. 그 마음속에서 같다 다르다 진리다 진리가 아니다. 맞다 틀리다 이건 옳은 거다 이건 그른 거다 하는 건요. 다 갖고 태어나요. 이건 이쁘다. 이건 안 이쁘다. 진선미를 다 갖고 태어나요 그게 본유개념이에요. 진선미에서요 진은 뭔가요? 진도를 천천히 나갈 생각을 했더니 뭐 점입가경(漸入佳境)이네요.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요. 마음이 좀 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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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를 좀 뽑는데. 진선미 한번 볼게요. 진리의 반대는 위, 거짓 위(僞)자 있죠. 선의 반대는 악(惡). 반대 개념으로 같이 이해하면, 개념들끼리 충돌을 시키면 선명하게 잘 이해가 됩니다. 추(醜) 추자 이해하기 쉽습니다. 술 주(酒)자 옆에 귀신 귀(鬼)자예요. 대충 느낌오시죠. 추하죠. 술 먹고 귀신이 된 겁니다. 술 먹으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돼요. 미추(美醜) 선악(善惡) 진위(眞僞) 진리다 거짓이다 선이다 악이다 아름답다 추하다. 이게요 이거는 이론지입니다. 이론지 맞다 틀리다만 알면 돼요. 이건 실천지예요. 한 행동이 선하다 악하다. 이거는요. 이론지 실천지 이거는 보통 제작지라고 하는데요. 작품을 만들고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는 걸 판단하는 겁니다. 알고 행하고 만들고 하는 인간의 모든 삶을 포괄한 겁니다. 그 가치 기준은 이미 갖고 태어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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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배운 적이 없어요. 1 더하기 1은 3 그러면 화를 내시는 건요. 진위에서 그게 거짓이기 때문에 그래요. 진위는요 있는 그대로 진실과 맞다 안 맞다만 판단하는 겁니다. 맞다 안 맞다. 선악은요 옳다. 모든 사람한테 이롭다. 모든 사람한테 해롭다. 선악 개념도 타고납니다. 뭔가 악을 하면 화를 내죠, 사람들이. 내가 악을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내요. 우리가 거짓말을 하면 화를 내요. 그게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팩트랑 맞으면 진(眞), 간단해요. 팩트랑 맞으면 진 어긋나면 위(僞)입니다. 1 더하기 1은 3 그러면 위예요. 근데 그게 선악은 연결돼 있어요. 그게 남을 또 해쳤을 때는 악이 돼요. 그 자체만 1 더하기 1을요 제가 3이라고 했다고 남을 해칠 의도는 없었잖아요. 좀 억울하겠지만 악의 또 악과 연결돼요. 남한테 거짓말을 한, 잘못된 걸 정보를 준 게 돼서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악이 돼요. 이해되십니까? 이게 연결돼 있어요.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는 연결돼 있어요. 그리고 악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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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 악은 좀 추해요. 보면 그렇죠. 추하다 뭘 안 했는데 작품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추하다라는 말이 나와 버립니다. 그 한 행동이 아름답다. 선한 행동, 누가 기부를 했어요. 참 아름답다. 내 마음이 훈훈하다. 미적인 감각을 느껴버린다는 겁니다. 이 행동에서 여러분 안에 이거에 대해서 정확한 본유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냐?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왜 동물을요, 제가 늘 얘기하지만 동물을 갖다가 동물 개를 털을 안 이쁘게 깎아놓으면 왜 위축돼 있을까요? 눈빛이 되게 자신감이 없어지고 추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신기하죠. 우리는 이 관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다 알아요. 어떤 반응을 보고 빨리 판단해버립니다. 내가 지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낸 겁니다, 그 개는. 뭔가 잘못됐다. 왜 개를 데리고 산책 다니는데 왜 암컷만 보면 달려들던 걔가 왜 난 암컷인데 왜 전혀, 전혀 이렇게 수컷 대하듯이 대하면서 지나갈까요? 뭔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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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모든 생명체 속에서 관찰해 보세요. 다 있어요. 우주 로고스가 관여해서 모든 생명체가 굴러가기 때문에 우주에는요 동일한 질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무수한 동물의 왕국과 동물농장을 보고 내린 결론. 저거 똑같아.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진선미를 다 느껴요. 각자대로 역량대로. 근데 인간은 뇌 용량이 크다 보니까 인간은 제일 섬세하게 느끼죠. 말도 많고요 거짓도 많고 섬세하고 예민하고 사소한 거 하나에 막 또 막 나 죽어버릴래. 막 이런 게 가능해요. 인간이니까 인간이다 보니까요. 과장도 심하고 망상도 심하고 축소 과장 이런 걸 마음대로 합니다, 생각을 가지고. 그러니까 특히나 인간은 이 정신 관리를 안 하면요 큰일 나요. 로고스를 늘 염두에 두지 않으면요 관리가 진짜 힘든 겁니다. 동물들은 관리하기가 편해요. 이 폭이 제한이 돼 있으니까. 이해되시죠? 그래서 동물도 당연히 생명체다 보니까 우울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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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고 스트레스 받고 다 똑같이 합니다. 동물, 이 본유개념은 저는 이렇게 설명드리면 제일 쉬워요. 인간이요 흑인 황인 백인 다 틀리죠. 드라마나 뭐 한번 봐보세요. 그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표정까지 다 똑같아요. 그렇죠. 백인도 똑같은 얼굴 하고 있고, 흑인도 똑같아. 여성분들 보면 뭔가 이렇게 귀여운 표정 짓는 거 다 똑같아요. 뭐 배운 게 아닐 텐데 그렇죠. 남성들도 허세 부리는 거 다 똑같아요. 이상하죠. 어디 학원 다니는 게 아닌데 왜 똑같이 표정을 지을까요? 근데 심지어 동물들에 들어가도 똑같아요. 표정도 똑같이 지어요. 동물 표정 보면 아시지 않나요? 인간 표정처럼 읽어내요. 또 개는 특히나 개는 인간 표정을 인간 마음을 읽어내요. 그러니까 데리고 살잖아요, 우리가. 잘 읽어내니까 서로. 더 섬세한 동물이 있고 둔한 동물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원리가 똑같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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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를 바로 봅니다. 뭔 원리가 있길래 이렇게 돌아가는지? 결국에 그 제일 핵심의 원리는요 인간 철학자들이 알아낸 최고의 원리는 뭘까요? 돌멩이가 떨어지더라 이런 게 아니에요. 그건 뭐 몰라도 돼요. 더 인간이면 그거 모르면 안 된다는 그 원리가 뭐냐 하면 들어가 보면 사랑과 정의입니다. 생명체 간에는 서로 도와야 된다. 사랑, 생명체 간에는 서로 피해주면 안 된다. 정의. 이걸 알아내는 건 지혜. 그리고 이거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건 예절. 인의예지가 딱 나와요. 그리고 이거는 일회성이 아니라 영원히 그래야 된다. 성실. 인의예지신. 이래서 우리 서울에다가 각 문마다 박아놓은 게요 인간 양심의 어떤 기본 원리예요. 신이 인간한테 명령하는 최고의 로고스 요구하는 수준의 로고스도 층차가 다양하겠죠. 개념이다 보니까 여러 개의 개념이 있어요. 본래 갖고 있는 개념 중에 최고 차원의 개념은요 선이라는 개념인데 옳은 것. 진선미요. 진선미. 합쳐서 말하는 진선미 그 자체가요 우리 안에서 진리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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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면서 제일 아름다운 건 사랑과 정의더라는 겁니다. 사랑과 정의, 지혜와 예절, 성실 요 다섯 종목이 제일 높은 로고스더라 천리더라고 주장한 게 조선 선비들이죠. 이거 아셔야 됩니다. 우리는 그런 문화에 아주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렸기 때문에, 세종 때요, 세종 때 어느 시대보다 탁월한 어떤 정치를 운영할 수 있었고, 많은 국방력, 과학, 문물, 역사, 철학 모든 문화가 다 발전해요. 신기하죠. 그런 왕이 나오면요 좀 착한 왕이 나오면 군사력이라도 약하지 않을까 안 그래요 그때 국방 무기도 제일 많이 개발되고요. 발명도 제일 많이 되고 과학도 제일 높고 문화도 음악도 다 그때 다시 재정립됐고요. 농사짓는 법, 의학, 향약집성방 모든 게 다 발전해요. 이게 뭐냐면요 로고스에 맞는, 로고스에 맞는 삶을 사는 게 좋다는 군주만 리더만 오면요. 사실은요 백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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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비슷비슷해도요. 그런 리더만 오면 만나버리면요. 엄청나게 발전해 버려요, 한 사회는. 백성 임금이 이걸 찜찜한 걸 싫어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백성들이요 한문을 몰라가지고 글자를 몰라가지고 부당한 처벌을 받는 걸 봤을 때 어떤 리더는 영성지능이 떨어지는 리더는 그걸 보고 뭐라고 판단할까요? “아 임금으로 태어나길 다행이다”라고 하겠죠. “역시 조선은 사대부가 맛이다” 이렇게 할 텐데 그걸 같은 사건을 보고 “불쌍하다 안 됐다. 뭐라도 내가 도와줄 걸 찾아보자. 이 찜찜함을 못 견디겠다. 글자를 만들자”라고까지 가면 이게 리더가 되지 않습니까? 간단해요. 지금도 그러면 민주, 그땐 군주제고 지금 민주제는 다를까요? 똑같아요. 군주제건 민주제건요 그런 리더 만나면 최고의 서비스 받는 거고 그런 리더, 그런 업체랑 계약 못 맺으면요 내가 도장 찍었건 강제로 찍혔건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그것만 구분하시면 돼요. 군주제 때는 세종이 있었는데 민주대 때 세종을 지금 못 만났잖아요. 심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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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해야 될 일이라는 겁니다. 민주제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요. 또 오해하시고 “쟤는 또 군주제를 좋아하는 애구나. 봉건제를 좋아하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거예요. 서비스 형편없는 데를 만나면 뭘 해도 뺏기게 돼 있다는 착취당하게 돼 있고 서비스 이걸 아는 사람, 서비스 하는 게 뭔지 맛을 아는 사람 만나면요 최고의 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 제도 하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를 받게 돼 있어요. 이거 이해되시죠? 다 철학들이 바탕이 돼서 일어난 일이니까 이 사회에서 문제가 생긴 걸 철학 없이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꼭 철학의 도움을 받아서 양심의 명령을 따라서 이렇게 살 때만 우리 삶도 바꿀 수 있다. 이런 것도 이런 얘기하면서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본유개념 뭔지 좀 아시겠어요. 14절은 하고 제가 끝내겠습니다. 좀 쉬는 시간 가질게요. 우리 안에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길 가다가요 남성분들이 여성을 볼 때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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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가도 되는데 이쁘다 안 이쁘다 판단하고 가거든요. 이데아의 명령입니다. 이 미추를 가리라는 명령이 떨어, 뇌의 지령이 와서요 멈출 수가 없어요, 이 남성 입장에서는. 딱 미추를 판단해야 돼요. 그래서 근데 어떤 라인을 이쁘다고 할까요? 이게 본인이 정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본인 마음이 후천적으로 또 어떤 영향 때문에 어렸을 때의 경험 이런 것 때문에 덧붙여진 건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공통적인 걸 찾아보면 있어요. 예전에 그 실험을 본 게 있는데요. 흑인 블러다가 사진 보여줘요. 누가 예쁘냐? 저기 원주민들 가서요 아프리카 원주민한테 가서 누가 예쁘냐? 다 똑같은 걸 골라요. 이데아가 이런 여자가 이쁘다라고 명령하는 그게 있다. 있지 않겠어요? 우리가 그림 볼 때 그렇죠 .저 그림 이쁘다. 똑같은 겁니다. 뭐가 이쁘다라고 자기도 모르는데 그걸 봐야 이쁘다는 마음이 든다는 겁니다. 그 원인들을 캐보면요 그 우리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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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본래 타고난 개념들이 있더라는 거. 뭔가 있다라는 거 아세요. 여성분도 똑같겠죠. 이상하게 난 그게 좋더라 하는 그거. 이해되시죠? 여러분이 정한 게 아닌데, 여러분은 그걸 꼭 보고 뭔가 맞다 옳다 이쁘다 이 말을 하게 되는 그거. 나로 하여금 그 마음이 들게 내모는 그게 뭘까요? 신이요. 부동의 동자를 한 거예요. 여러분이 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요 이걸 보여주기만 했어요. 이걸 이쁘다 추하다는 어서 판정이 난 겁니까? 근원적으로. 부동의 동자한테서 판정이 난 겁니다. 부동의 동자가 맞다라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흔쾌하게 맞다라고 판단이 된 거예요. 그런데 이 혼이 판단할 수도 있겠죠. 혼이 판단하는 건 왜곡이 좀 있어요. 혼이 이쁘다고 한 건요 아주 완전하게 순선하게 이쁘다는 게 아니고요 혼한테 되게 자극적인 것들은 혼이 판단합니다, 또. 혼도 이 로고스의 작용이기 때문에 혼도 판단을 하는데 그때 저희가 학당에서 요구해 드리는 게 뭐죠? 마음을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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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을 한번 가져보시라 그래요. 모른다 괜찮다 내 이름도 모르겠다 하고 딱 평정심을 가지면요 로고스의 기준이 더 압도적으로 이제 이 내면에서 작용합니다. 그러면 로고스에 맞는 거를 진, 맞다 선하다 아름답다라고 합니다. 혼의 무지랑 편견이 작용해 가지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가 사실 더 많겠죠. 분명히 옳은 일 같아서 했는데 피해가 돌아와요. 곰곰이 자기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봤더니 그때 내가 욕심으로 했지. 그걸 분명히 알 수 있었는데도 묵과한 걸 찾아내요. 그러면 로고스는 참 살아있구나 하는 걸 압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내면을 관리하시다 보면요. 잘 조화를 이루시게 될 겁니다. 그래서 교육이란 뭡니까? 아이들이 원래 갖고 태어난 본유개념 진선미의 본유개념을 가지고 각각의 사물의 자연에 따라서 적용함을 가리킨다. 적용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원래 타고난 진선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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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최대한 발현되게 해주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진선미를 인의예지로 해볼까요? 인간이면 갖고 태어난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성실에 대한 감각을 최대한 발현되게 도와주는 게 교육이라는 겁니다. 개는요? 개의 본성을 제일 잘 발현되게 도와주는 게 최고의 훈련이고 교육이겠죠. 인간은요? 인간이 갖고 태어난 본성 중에 제일 아름다운 거를 최대한 드러나게 해주는 거. 학문은 왜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시험 봐야 될까요? 진선미 중에 진을 만족시키려고 그래요. 뭐가 진리인지 인간은 판단할 기준을 갖고 있는데 수많은 책을 보고 판단을 내려봐야 진짜잖아요. 계발이 되잖아요. 이해되세요? 여러분은요 뭐가 옳은지 그런지는 알고 계세요? “나는 진실이랑 맞는 건 옳다고 여기고 어긋나는 건 잘못됐다고 여길 거야”라고 아무리 판단하고 계셔도 공부를 안 하시고 책을 안 보시고 경험을 안 갖추시면 그 판단밖에 없잖아요. 본유개념밖에 없잖아요. 이데아밖에 없어서는 안 돼요. 이데아를 밝혀내야 돼요. 만약 이 감각을 이 기준을 갖고 계신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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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권의 책을 봤다면요 천 권의 책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 봤겠죠. 진선미가요 진선미가 엄청나게 확장합니다. 이해되십니까? 이게 혼이 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든다는 건 이런 거예요. 많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로고스에 있는 걸 끌어내가지고요 혼의 차원에서 개발하는 겁니다.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아름다운 걸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겁니다. 그러면요. 진선미를 온전하게 갖춘 그 혼은 하는 행동마다 하는 말마다 하는 생각마다 진선미가 다 갖춰져 있겠죠. 다른 사람한테 감동을 주게 되고, 맞다는 말을 끌어내게 되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을 보면 자명해지는 느낌이 들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스승이라고 찾아갔는데 말은 정말 멋진데 말은 진실이 맞는 것 같아요. 가짜가 아니에요. 근데 뭔가 불편하신다면요 그분이 하는 행동이 뭔가 위배됐을 때입니다. 언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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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치했을 때 여러분 안에서 찜찜한 게 이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뭔가 아닌 것 같은데. 아름답지가 않은 거예요. 뭘로도 알아내시냐면 여러분은 표정으로도 알아내거든요. 말과 행동이 다 좋은 것 같은데도 뭔가 불쾌해진다면요 그분의 표정에서 뭔가 거짓을 자꾸 읽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뭔가 아름답지가 않다. 가식 같다. 가식 같다는 근거가 없지 않나요? 사실은. 여러분 느낌이죠. 가식 같다. 왜냐하면 표정에서 진심이 아닌 게 느껴져서 그래요. 표정을 뭔가 인위적으로 짓고 있는 것 같다. 미묘한 것까지 여러분 다 알아내요. 예전에 어떤 서양의 실험 보니까 우리 악수만으로도 알 수 있다는데요. 사기꾼인지 아닌지? 몸이 안대요. 몸의 반응이 사기꾼이랑 악수할 때랑 정직한 사람이랑 악수할 때 몸의 반응이 틀리대요. 우리 무의식은 사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신성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이 에고가 혼이 둔감해요. 더 그 정보 몸에서 오는 정보, 무의식에서 보낸 정보를 못 읽어냅니다. 그러니까 뭔가 찜찜함만 감도는 거예요. 그걸 냉정히 분석해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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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엄청난 지혜를 얻으실 수 있다는 겁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시면서 여러분 본유개념. 본래 갖고 있는 이데아들 좋은 진리들을 드러내시면요.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서 어떤 것은 우리 힘으로 능이 지배할 수 있고 어떤 거는 지배할 수 없음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적으로요. 여러분이 본유개념 진선미에 맞게 산다는 건요, 여러분한테 닥친 일 중에 에픽테토스는 그게 제일 원칙입니다. 제일 먼저 자명하게 하셔야 할 게 이 일이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냐 바꿀 수 없는 일이냐 즉 받아들여야 되는 일이냐? 아니면 내가 바로잡아야 되는 일이냐를 빨리 판단하는 것도 진선미의 원래 갖고 있는 본유개념을 제일 잘 쓰는 거죠. 빨리빨리 이걸 써가지고 여러분은 본래 알고 계시잖아요. 이건 받아들여야 된다. 내가 바꿀 수 없는지 바꿀 수 있는지 다 알고 계시거든요. 그걸 빨리 판단하셔가지고 여러분 로고스에만 있는 그 본유개념을 혼 차원에 끌어내려서 혼이 빨리 그렇게 생각을 맞추고 감정을 맞추고 언행을 맞추게 만들어줘야지 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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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상태로 되지 않겠습니까? 잠재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끌어내서 써야 돼요. 그렇게 하게 되면요 여러분은 철학자가 되는 겁니다. 로고스에 따르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로고스를. 그리고 우리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의지와 또는 의지가 행하는 모든 일이고 여러분이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은 여러분이 바꿀 수 있는 일들이고요.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는요. 신체, 여러분 몸뚱이. 요즘은 신체도 많이 바꿉니다. 그렇죠. 근데 이거 예전 얘기예요. 신체, 신체 여러 부분 뭐 여러 부분 다 바꿀 수 있죠. 재산, 왜 재산이 들어가는지 다시 얘기해 드릴게요. 부모형제 못 바꾸죠. 아무리 뭐 마음에 안 들어도 그 내 가족 내 형제 나한테 주어진 거니까 받아들여야죠. 자식, 자식도 마음에 꼭 안 드는 자식이 나올 수도 있어요. 국토 내가 어디 태어났는지는 정해져 있는 거 아닙니까. 받아들여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건 한마디로 우리의 반려자다. 그냥 우리가 함께해야 할 받아들여야 할 존재다라는 겁니다. 이거 재밌죠. 재산도요. 태어났더니 집이 중산층이다. 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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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재산에 대해서는 한마디 더 추가해야 될 게 예전 공자님도 그렇고 성인들은요 부를 다 정해져 있다고 봤어요. 우리는 그렇게 지금 많이 생각 안 하죠. 자본주의는 노력하라. 얼마든지 벌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예전 어른들은요 부는요 천명, 명이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 명을 어기면 안 된다고 봤어요. 이 감각의 차이를 아셔야 되는데 사실은 같은 얘기입니다. 자본주의랑 공자님 얘기가요 두 개는 모순된 말 같지만 사실은 하나라는 것도 아셔야 돼요. 어떻게 이걸 하나로 꿸 수 있을까요? 뭐냐면요 자본주의가 원래 태동할 때 애덤스미스가 자본주의, 국부론을 쓸 때요. 한 개인이 자기애,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이건 이기적인 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게 그 자체가 아주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그 이기심이 이제 구분하셔야 돼요. 남한테 피해를 주더라도 내가 좋다는 건지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 이건 구분해야 됩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이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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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어요. 애덤스미스는 그것만 인정한 거예요. 자기애를 가지고 자기를 자아 실현을 위해서 경제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뭔가 이익을, 시장에 도움을 줘서 정당한 부를 획득하는 게 옳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요 이 사람이 사기를 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애덤스미스가 말한 이론에 맞질 않아요. 애덤스미스는 사회와 사회의 정의는 국가가 그 정도는 당연히 보장한다고 보고 지금 이론을 전개하는 겁니다. 그래서 애덤스미스 이론은 완전경쟁시장에서만 맞는 이론이에요. 모든 게 공유돼 있고 모든 게 동일하다고 봤을 때 자기애를 가지고 시장에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은요,. 그러니까 꼭 공익에 도움을 주려고 한 게 아니에요,그냥 자기애를 위해서 했지만 시장에 공익이 될 때만 시장은 돈을 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경제가 돌아가는 게 그 아름다운 경제다라고 주장한 겁니다. 근데 지금 자본주의랑 맞지 않아요 국부론에 나온 그 시스템하고는. 이해되시죠? 지금 부정이 판을 치는데 국가가 제어를 못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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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을 땐 이미 완전경쟁시장이 아니거든요. 독점이나 독과점시장이지 소수가 정보와 독점하고서 어떤 우위를 점하고서 시장을 하기 때문에 불완전이거든요. 공정한 경쟁이 이미 아니라고요. 그렇죠. 신생업체랑 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랑은 이미 공정하다고 말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 상황은요 애덤스미스가 말한 그 경제 상황이 아니에요. 애덤스미스는 정의가 만약에 무너진다면 그건 이미 사회가 아니다라고 봤어요. 국가에서 정의를 바로잡아주지, 이 시장의 공정한 룰을 국가가 장담하지 못한다면, 담보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그건 사회가 아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그게 지금 된 겁니다. 그러니까 공자님 말과 지금 이런 에픽테토스가 재산은, 부는 하느님이 주어진 딱 그 한계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랑 뭔 관계냐면요 그러면 자본주의 시장, 애덤 스미스 이론대로 만약에 펼쳐진 자본주의라고 한다면요 여러분이 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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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할 수 있는 이익은 한계가 있어요. 사기 안 치고 벌 수 있는 그 선이 여러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부겠죠. 여러분의 재능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해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부가 한계가 있다는 거 아시겠어요? 그걸 더 넘어가려면 뭘 해야 되나요? 이제 사기를 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사기를 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 천명을 어긋난 겁니다. 내가 원래 가져야 할 부의 한계를 넘어선 거예요. 그러니까 공자님이나 모든 성인들은 다 부에 한계가 있다고 본 거예요. 내가 양심껏 살아서 얻을 수 있는 그 한계가 내 한계인 거예요. 내 몫인 거예요. 그런데 그 한계는 쉽게, 쉽게 측정은 못 해요. 내 재능을 더 개발하면 더 늘잖아요. 내 재능을 개발해서 사기 안 치고도 벌 수 있는 부부의 단위를 키울 수 있잖아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한계가 있다는 사상을 중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데 재산을 넣는 거예요, 이분들은. 이해되십니까? 그러면 자본주의랑 이분들의 사상이 하나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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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제 마음대로 본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양심이 맞대요, 이렇게 보는 게. 5분 쉬고 다시 하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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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41 서양철학09 에픽테토스의 담화록 3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