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왜? ‘텔레이오이’에 담긴 예수의 본의
어릴 적에 중국 무협 영화를 종종 봤습니다.
수십 편 보다 보니 대충의 줄거리를 알게 되더군요.
악당이 주로 주인공의 부모 혹은 스승을 죽입니다.
주인공은 혹독한 훈련 끝에 무술의 고수가 됩니다.
그리고 악당을 찾아가 원수를 갚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원수’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철천지 원수, 이런 말은 영화에나 등장하는 말로 생각합니다.
나라를 짓밟거나, 부모를 죽이거나,
역사 드라마나 무협 영화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한 ‘원수’는 그런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 있는
작은 원수를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어떻게 되나요.
내 안에서 먼저 미워하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그 감정은 주로 독기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을 쏘아볼 때,
그 눈빛에 서려 있는 독기.
그런 독기가 내 안에서 먼저 올라옵니다.
그 다음에는 그 독기를 상대방에게 쏘아 댑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그런 화살을 쏘고, 또 쏘고, 또 쏘다 보면
이상하게도 내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화살은 분명히 원수를 향해 쏘았는데,
구멍은 자꾸 내 가슴에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독화살의 유통 과정에서
우리가 빠트린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세요.
우리가 내면에서 미워하는 감정을 끌어올릴 때,
그 독기에 젖는 1차 소비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입니다.
원수를 향해 날아가기 전에,
독기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적시게 됩니다.
그래서 독기를 뿜을 때마다
내가 먼저 취합니다.
상대를 향해 날리기도 전에
나는 이미 독기에 젖게 됩니다.
그게 자꾸 반복되면 어찌 될까요.
그렇습니다.
내 가슴은 독화살로 빼곡하게 박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걸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온전해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독화살 이야기에서도
예수님 말씀에 담긴 이치를 읽습니다.
[백성호의 한줄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