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원자탄' 故 손양원 목사 두 아들 순교 표지판 제막
“목숨은 빼앗을 수 있지만, 신앙은 빼앗을 순 없다.”
청년 순교자 손동인·동신 형제의 순교를 기리는 표지판 제막식이 29일 전남 순천에서 열렸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故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당시 21)·동신(16) 형제가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좌익 폭도들에 의해 순교 당한 지 66년 만의 일이다.
‘참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다간 순교자 故 손양원 목사의 순교 신앙은 기독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와 오페라,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소개됐지만, 두 아들의 순교에 대해 조명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표지판 제막식은 지난 29일 순천시 중앙동 황금로 패션 상가 앞에서 조충훈 순천시장, 새누리당 이정현 국회의원, 김병권 순천시의회 의장, 상가번영회원 등 순천·여수·광양 지역 교회 지도자와 성도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순교지 표지판이 세워진 순천시 중앙동 22-20번지는 본래 순천경찰서가 위치했던 곳으로, 여순반란사건 때 각각 순천사범학교와 순천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두 형제가 민애청 소속 좌익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장소이다.
순천 교계는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기독교 순례지 투어를 실시하면서 두 사람의 순교 사적을 발굴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으며, 수차례의 고증작업과 회의를 거쳐 순천시와 중앙동 상인회가 더불어 표지판 설치를 합의한 바 있다.
고증작업에는 손동희 권사 등 유족들을 비롯해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는 라재민 장로, 서울 동은교회 김양수 원로목사 등이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과 현장답사 등으로 참여했다.
순천시도 수년 전부터 미국 남장로교 순천 선교부가 활동하던 매산을 중심으로 기독교 순례코스를 조성하며 적극적인 개발 사업을 펼쳐왔으며, 이번 표지판 설치 또한 그 목적으로 추진됐다.
‘복음엑스포 네트워크’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주명수 이사장(목사)은 인사말에서 “동인·동신 형제의 순교를 기억하고 여순사건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지역의 역사성을 정립하기 위해 순교지 표지판을 제막했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꽃다운 청년들이 희생당한 순국·순교의 자리에 기념표지판을 세우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면서 “이 표지판이 후세들의 경천 애국정신을 함양하는데 큰 보탬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제막식에 참석한 손 목사의 딸이자 동인·동신 형제의 여동생인 손동희(83) 권사는 "지금도 내 마음에 오빠의 신앙이 살아 있다."라며 "일본강점기에는 이리 가도 길이 없고 저리 가도 길이 없던 때였는데도 오빠들의 신앙이 얼마나 굳건했는지, 현재와는 비교되지 않았다."라고 회고하며 순교지 표지판에 직접 헌화해 행사장을 숙연하게 했다.
故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인 동인·동신 형제는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 당시 기독학생 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다가 친미주의자로 오해받아 좌익 학생들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결국, 1948년 10월 21일 옛 순천경찰서 뒷마당 황금로(현 중앙동)에서 구타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다가 좌익학생들에 의해 총살을 당해 시신이 유기되었다.
형 동인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우리들의 목숨을 빼앗을 순 있지만 내 신앙을 빼앗을 순 없다. 나는 죽으면 천국 가지만 너희의 죗값은 어떻게 다 치르려 하느냐. 지금이라도 예수 믿고 회개하도록 하라”며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는 그해 11월 중순 두 형제와 고재춘 씨 3명을 순교자로 인정하고 중앙교회에서 추모예배를 열었다.
이후 고 손양원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강철민(가명)을 양아들로 삼고, 두 아들을 대신해 그들의 못다 한 일을 다 하라고 ‘손인신’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손 목사는 그 후 2년 뒤인 1950년 9월 28일 여수시 둔덕동에서 공산당에 의해 총살을 당해 순교했다.
사회를 맡은 순천 중앙교회 임화식 목사(복음엑스포 네트워크 사업추진위원장)는 제막식 개회사를 통해 “좌익 폭도들에 의해 순교 당하면서도 형제는 끝까지 서로를 지켜주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줬다”면서 “무관심으로 방치됐던 순교현장에 표지판을 세움으로써 형제의 거룩한 정신과 얼을 기릴 수 있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제막식은 67년 동안 묻혀 있던 청년 순교자들의 귀한 믿음의 유산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순천이 청년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성시(聖市)라는 것을 전국에 알려 순교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신앙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호남 기독교 선교의 발원지인 순천시의 종교적 정체성 확립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복음엑스포 네트워크 사업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하금석 목사는 "순교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시신 유기장소인 구 시민 다리 입구에도 작은 비석을 세웠다."라며 "순천에 순교지, 여수 애양원에는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고, 당시 과수원이던 여수 둔덕동에는 손 목사의 순교 터가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라고 소개했다.
조충훈 순천시장은 축사를 통해 "손동인·동신 형제의 순교는 순천시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유산에 또 하나의 소중한 가치를 더하는 것"이라며 "기독교 복음의 역사와 원도심 상권 활성화를 연계한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국회의원도 “손 목사와 두 아들의 순교를 통한 사랑과 희생이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큰 교훈으로 새겨지기 바란다.”라고 전했다.
표지판이 설치된 지역은 유서 깊은 선교 현장인 매산 등 스토리텔링 코스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코잇·프레스톤·크레인 가옥, 메모리얼 공원, 묵상의 숲 및 조지 와츠 기념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제막식에 이어 순천중앙교회에서 진행된 기념세미나에는 주명준 전주대학교 명예교수와 차종순 전 호남신학대 총장이 강사로 나서 두 형제의 순교에 담긴 교회사적 의의를 설명했다.
주명준 교수는 “동인·동신 형제의 순교는 좌·우익사상 갈등의 결과가 아니라, 기독교인과 무신론자인 공산분자들의 신앙을 중심으로 한 싸움의 결과”라면서 “두 사람이 흘린 순교의 피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자양분이자 교회발전의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호남과 호남인의 순교신앙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강의한 차종순 목사는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잃을 수 없어서, 생사까지 내놓고 신앙의 굳건한 자세를 취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호남지역에서 기독교 교세가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된 순천에는 기독교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현존하는 결핵 진료소를 비롯해 100년 전통의 교회가 여러 개가 있는 등 기독교 중심지의 기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