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기행]-여의주 다투는 '雙龍爭珠形' 명당
이촌동이 들어선 용산(龍山)은 산세가 용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데, 이촌 1동과 2동은 동명(洞名)은 비록 같으나 지세만큼은 같은 부모 의 자식이 아니라 약간 촌수가 먼 친척뻘에 해당하다.즉 이촌 1동은 남 산의 잠두봉에서 남서진한 용맥이 용산을 거쳐 한강으로 뻗어간 지맥 위 에 자리했고, 이촌 2동은 만리동 고개에서 효창동, 원효로를 거쳐 한강 으로 남진한 용맥에 자리했다. 따라서 이촌동은 서울역에서 한강로를 따라 남진한 계류를 사이에 두고 두 용 맥이 한강을 향해 뻗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 다투는 쌍룡쟁주형(雙龍爭珠形)의 명당이다.
여기서 남산을 주산으로 삼고 이촌 1동으로 뻗은 용맥은 땅 속으로 몸 을 감춘 후 낮은 구릉을 이루며 뻗어나가 휴식과 안정이 기대되는 편안 한 땅이다. 그러므로 이런 지룡(地龍)은 용산가족공원, 국립중앙박물관 , 그리고 아파트 같은 주택이 들어서야 지덕이 발동해 복을 준다. 따라서 이촌 1동은 주택지로 지기가 왕성한 복지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안산을 주산으로 삼고 이촌 2동으로 뻗어나간 용맥은 기세가 뚜 렷하면서 상하기복과 좌우로 꿈틀대는 모습이 매우 활발하다. 이처럼 풍 운을 타고 온갖 조화를 부리는 천룡(天龍)은 첨단전자상가와 같이 현란한 변화가 기대되는 땅이다. 그러므로 편안함과 안정이 필요한 중년 이 상의 사람은 이촌 1동의 지세와 성격이 맞고, 화려한 출세를 꿈꾸는 젊 은이라면 이촌 2동의 지세와 궁합이 잘 맞는다.
또 이촌동이 더 발전하려면 지덕이 힘차게 발동해야 하는데, 용이 하늘 로 승천해 온갖 조화를 부리려면 반드시 여의주를 얻어야 한다. 만약 여의주를 얻지 못한다면 이무기로 남아서 여의주를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촌동의 여의주는 바로 한강에 떠 있는 노들섬이다. 따라서 이촌 동이 발전하려면 노들섬이 원형대로 유지되어야 하고, 나아가 여의주는 영롱하고 신비한 빛을 내는 구슬이니 노들섬에 위락ㆍ관광시설을 유치해 밤낮으로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나도록 하면 지기가 더욱 분출할 것이다 .
[박인호의 현장 르포]- 江南 안 부럽다" 20~30년 붙박이 거주 예사
돈(물)이 감싸안고 흘러가는 곳.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싸 움터.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촌은 바로 그런 명당터다. 동부이 촌동 사람들은 강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에다 용산가족공원, 국립중앙박물관, 한강공원 등 편의시설이 워낙 풍부한 까 닭에 주거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남다르다. 한강을 따라 흐르는 거대한 '돈(물)줄기를 날마다 바라보기 때문일 까. 이곳에는 유난히 각양각색의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기업인에서 부터 고급 관료, 학자, 변호사ㆍ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유명 연예인, 일본 대기업의 고위 직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강대교 북쪽, 한강변 좌우로 펼쳐진 이촌동은 원래 광활한 모래벌판 이었다. 1956년 5월 자유당 정권시절 정ㆍ부통령 선거 때 30만명의 청중 을 수용한 바로 그 유명한 백사장이다. 60년대 후반 이 모래벌판을 매립 해 대규모 주택지가 조성되면서 공무원아파트, 외국인아파트, 한강맨션 등이 연이어 들어섰다. 이때의 이촌동 아파트가 바로 서울시내 아파트촌 의 효시다. 그것이 70년대에 여의도, 강남, 잠실 쪽으로 번져갔다. 이촌동은 1970년 한강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이촌1동(동부이촌동), 서쪽은 이촌2동(서부이촌동)으로 나뉘어졌다. 이후 동부이촌동은 풍수적 명 당요건에다 교통과 환경까지 겸비한 강북 최고의 주택단지로 부상하게 된다.
동부이촌동이 아파트 부촌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67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한강개발계획을 세우고 '공유수면 매 립공사'를 시작했는데 이는 엄청난 이권사업이었다. 사실 당시 우리나 라의 많은 건설업체가 이 사업을 통해서 크게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 동부이촌동 매립면적은 총 12만1827평이었다. 가장 먼저 68~69년 공무 원 아파트가 지어지고 이어 70년에 한강맨션, 외국인아파트가 들어섰다 . 한강맨션은 가구당 27~55평형이었으나 당시로 봐서는 지나치게 호화로 운 것이어서 국영기업체에서 사치를 조장한다는 사회적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한강맨션은 70년대 이후의 아파트 대형화를 주도했다. 동부이촌동은 90년대 들어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낡은 모습을 벗 어던지고 새로운 강변 부촌으로 변모한다. LG한강자이는 현재 동부이촌 동의 대표 아파트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이 아파트 54평형의 경우 분양가는 4억1081만~6억8087만원에 불과했으나 현 시가는 배 이상인 11억 ~13억원에 이른다. 인근 삼성 리버스위트, 동부 센트레빌 등도 평당 매 매가가 높게 형성돼 있다.동부이촌동 부촌 아파트를 얘기하자면 바로 옆동네인 서빙고동 신동아 단지(1326가구)를 빼놓을 수 없다.이곳 부자들은 강남으로 옮겨가기보 다는 한강맨션에서 신동아단지를 거쳐 최근 들어 다시 LG한강자이로 U턴 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동부이촌동은 60년대 말 70년대 초 당시 신진 정치세력과 부자들, 그리고 연예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곳이 다른 부촌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징은 정착성이다. 실제 당시 유력인사들 가운데 20~30년씩 그대로 눌러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동부이촌동에서 30년을 거주한 오세철 용산 구의원은 "정치인이나 교수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부이촌동 한 아파트 에서 20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며 "또 이주를 하더라도 이곳을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고 들려줬다. 원로급 정치인으로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LG한강자이로 이사해 거주 하고 있으며,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신동아아파트에 살고 있다. 전ㆍ 현직 국회의원으로는 이성재, 유흥수, 설송웅, 이학원, 양문회, 봉두완 , 이도선, 양순직, 오유방, 강신성일 씨 등을 들 수있다. 최병렬 한나라 당 총재도 동부이촌동을 거쳐갔다. 고위 관료들도 대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전 고위 공직자로는 노신영 국무총리, 권이혁 문교부ㆍ보사부 장관, 이범준 교통부 장관, 김재춘 중 앙정보부 부장, 윤동윤 체신부장관 등이 있다. 동부이촌동은 소위 방송ㆍ연예계 인사들의 안식처로 잘 알려져 있다. 거리를 걸어가거나 음식점에 들러보면 어김없이 연예인 한두 명은 만나게 된다. 한 때 브라운관을 누볐던 가수 남진을 비롯해 태진아, 이선희 등 가수들과 탤런트 김창숙, 태현실, 김자옥, 선우용녀, 이훈, 탁재훈 등이 살고 있다. 최근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박 원숙 씨도 여기에 살았었다. 이 외 개그우먼 이경실, 축구감독 차범근 등이 이곳 거주자들이다.
거물급 기업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허창수 LG건 설 회장과 김상범 이수건설 회장이 LG한강자이 펜트하우스 등에 거주하 고 있다. 하지만 중견 기업의 사장과 임원들은 대거 포진해 있어 LG한강 자이의 경우 운전기사만 250명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상당수 학계 인사들도 명당의 기운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촌동 재력가 로 통하는 유승빈 양지학원 이사장을 비롯해 장병규 중부대 전 총장, 남 주홍 경기대 교수, 이용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동부이촌동의 이국적인 풍경 도 볼거리다. 이태원이 미국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외국인 거리라면 동부이촌동에는 '일본인 거리'가 있다. 강 촌아파트, 한강맨션 상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일본인 거리'는 3000여 명의 주한 일본인을 위한 만남의 장. 일본풍의 음식점과 주점이 늘어선 이곳은 저녁이 되면 장을 보거나 술 한잔을 즐기려는 일본 대사관 직원 이나 일본 기업들의 주재원들로 북적거린다. 일본인 거리를 중심으로 도 요타, 소니, 전일본항공(ANA) 등과 일본대사관 주재원 등 1000여가구 이 상의 일본인들이 집중 거주하고 있다. 진희용 이촌1동장은 "일본인 거 리는 65년 한ㆍ일 국교정상 이후 형성됐는데 한강변의 쾌적한 환경에다 시내 진입이 편리한 교통 여건 등이 일본인 유입을 촉진했다"며 "여기 에 일본인 특유의 '뭉치기'특성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도심 내 다른 쾌적한 주거단지도 많이 생겨났지만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은 이 곳을 고집하고 있다. 주민 박모 씨는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스티커가 붙어있 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말한다.
동부이촌동 아파트 가격은 급등락이 아니라 꾸준히 상승하는 편이다. 타 지역과는 달리 투자자보다는 실수요자가 많아 거품이 거의 없다. 하지만 추가 상승 여력은 크다는 게 현지 중개업자들의 분석이다. 한강변 에 위치한 덕에 엄청난 조망권 프리미엄을 덤으로 누린다. 현지 중개업 자들은 경부고속철과 미군기지 이전 후 공원조성 등의 대형 호재가 있기 때문에 동부이촌동 아파트는 꾸준히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돈(물)이 넘쳐나는 동부이촌동 은 또한 돈 때문에 '탈'도 많다. 정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 돈웅 전 한나라당 재정운영위원장이 SK로부터 대선자금 100억원을 건내 받은 곳이 바로 한강대우아파트 지하주차장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현대 의 수백억원대 달하는 비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자택은 인근 신동아아파트다. 병역비리의 사건으로 세인의 따가 운 눈총을 받았던 박노항 원사는 현대아파트에 몸을 숨겼었다. 어쨌든 동부이촌동을 감싸안고 도는 한강물은 오늘도 세상일을 아랑곳 하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박인호ㆍ조현숙 기자(ihpark@heraldm.com)
[대표적 문화시설]-강북의 압구정동
"왜 그거 있잖아요? 입안의 세균 소독하는 미제 구강소독제요? 약국에도 없던데 어디서 살 수 있죠?""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지하상가에 가보세요. 없는 게 없다고 들었어요." 동부이촌동의 터줏대감인 한강맨션. 이 한강맨션 바로 옆에 위치한 한강쇼핑 지하상가는 서울 장안에서도 구하기 힘든 각양각색의 외제물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다. 1970년부터 한강맨션에 알부자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데다 외국인 아파트도 건립되자 이 상가는 알짜배기 외제물건을 다량 보유한, 최고의 수입품상가로 명성을 굳혀왔다. 이곳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숙녀정장에서부터 이탈리아제 스타킹, 일제 복숭아홍차까지 없는 게 없다. 물론 최근에는 백화점 등에 밀려 그빛이 바랬지만 '짭짤한 구색' 만은 여전해 상류층인사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부이촌동은 한때 '장미의 숲'같은 '멋쟁이 카페'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일본외교관과 일본상사 주재원들이 속속 둥지를 틀면서 일어간판을 단 스시집과 우동집이 더 성업 중이다. 소규모이긴 하나 '일본인 거리'도 생겨났다. 이들 음식점은 '강남 뺨치는 수준의 가격'인 데도 불구하고 맛이 각별해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실례로 장미맨션 인근의 '하나' 같은 스시집은 정ㆍ재계 유명인사, 연예인의 단골집으로 유명하다. 또 동부이촌동에는 이경실 현미 태진아 등 스타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 배우 황신혜도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에 거주했고, 개그맨 김형곤은이촌동에서 돈가스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이촌동 일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여의도방송국이 7~8분 거리에 위치한 데다 골프연습장, 공원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강북의 압구정동' 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하겠다. 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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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부이촌동에 대한 자료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