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 / 오봉옥
초로인생이라는 말 입에 달고 살았다
식은 밥 한 덩어리에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이었다
고개를 자빠트리고 내일을 걱정하는 건 엄니에게 미루고
짐 자전거 타고 유유자적 사람들 만나 이약이약 하며 살았다
잡상인으로 잡혀가 경찰서 조서를 받다가도
엄니가 오면 대신 좀 받으라며 벌떡 일어서 나가곤 했다
엄니에게 목구멍은 슬프디슬픈 감옥이어서
눈물을 삼키게 하는 곳이었지만
자신에게 목구멍은 염치없는 골목일 뿐이어서
밥물 끓는 냄새만 나도 문 열리는 소리를 냈다
그런 아비에게 인생의 가장 즐거운 낙은
뚝배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먼 산 바라보는 일이었다
- 오봉옥,『섯!』(천년의시작, 2018)
새벽밥 / 공광규
기내식을 주겠다는 방송이 나와
눈뜨고 전광판을 보니 새벽 네 시다
비행기는 호주대륙 북쪽 반도를 겨우 비켜가고 있다
고도 1만 미터 영하 40도
이 높고 추운 곳에서 새벽밥을 받으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새벽 밥상에 숟가락 젓가락 내려놓고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는
헛기침 두어 번 하며 사립문 밖으로 사라지던 아버지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일어난 나는
눈을 비비며 아버지가 남긴 흰 쌀밥을 먹었다
기내식 포장을 뜯으며
창밖을 내다보니
대륙 지평선이 눈꺼풀을 막 열고 있다
청양 우시장 거간꾼 완장을 찬 아버지가
코뚜레를 움켜쥐고
흥정을 막 시작했을 것 같은 시간이다
- 공광규, 『파주에게』(실천문학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