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0년 05월 02일
☞ 산행거리: 도상거리 24.5km + 들머리2.3km / 8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달동마을-점집-농장-임도접속-쌍달리 임도 삼거리-무명봉-안부-526.1봉(△)-쌍달리 갈림길
무성산 포토존-봉화대-안부-무명봉-578.6봉-무명봉-604.6봉-안부-쉼터-암봉
604.7봉-폐헬기장-안부-무성산성-인조대왕 후손 묘-무성산(△)-무성산성 터-홍길동굴 갈림길
572.2봉-헬기장-헬기장-대중리 갈림길-무명봉-412봉-안부-쉼터-임도-333.8봉(△)
계실마을 갈림길-영천고개-안부-335.6봉-363봉-안부 갈림길-375.1봉-갈림길
346.9봉 갈림길-346.9봉-다시 갈림길-갈림길-안부-안부-302봉-안부-유구십승지 갈림길
갈미봉-309.4봉(△)-묘지-갈림길-무명봉-갈림길-안부 삼거리-NO47송전탑-십자안부
신대말 정수장-이동통신탑-도천1교-경주정씨 양경공파 묘-무명봉-도천1교-진주강공 묘
도천2공-진주강공 묘- 83.8봉-폐가-안부-질마고개버스정류장-32번 국도 지하차도
질마고개-172.7봉-안부-채죽산 갈림길-채죽산-다시 갈림길-120.2봉 갈림길-120.2봉
안부-들목고개-해평윤공 묘- 103.4봉-장구머기-부엉산-유구천/금강 합수점
☞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사곡면, 정안면, 우성면
초파일, 노동절, 토, 일 계속되는 연휴이다
나야 자영업자라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니 방법이 없다
일요일날 제천으로 가서 분기점부터 육군 제5탄약창이 있어서 통제를 많이 받으면서 걸어야 할
매포 서(금수)지맥 첫 구간을 혼자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가 온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중산행은 자신이 없어 갑자기 변경하게 된 곳이 지난해 추석 연휴에 1구간을
끝내고 남겨둔 유구(무성)지맥을 하기로 한다
이 구간 역시 그리만만한 코스는 아니다...등로는 비교적 좋은편이지만 접속구간이 길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몇 군데 지나야하는 곳이라 자료를 준비하는데 교통편이 문제이다
예전에는 남부터미널에서 광정(공주시 정안면)가는 버스가 집에서 그리멀지 않는 남부터미널에서
06시 50분에 첫 차가 있었는데 우한폐렴 때문에 노선이 축소되어 07시 40분이 첫 차이다
그렇게 되면 산행 시작이 빨라야 10시 30분쯤 시작되기에 부득히 천안으로 가서 가기로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천안행 버스표
집을 나와 경부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05시 50분경이다...간단하게 커피한잔을 하고 버스에 오른다
06시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1시간이 채 안 된 06시 55분에 천안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신세계백화점에 있는 천안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07시 10분발 천안발 → 광정행 버스표
천안을 출발한 버스는 천안시내를 벗어나 차령고개를 넘어 예전에 이곳이 고향인 친구와 함께
라운딩을 한 적이 있는 프린세스 골프장이 우측에 보이고 정안I.C를 지나 광정 정류소에 내린다
나를 내려준 버스는 공주로 향한다
23번 국도를 넘는 차령고개는 조선시대에 한양과 호남지방을 잇는 호남대로에서 가장 큰 고개였으며
영남대로의 문경새재 위상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했던 고개였고 충청·경상·전라도 삼남의 선비와 장사꾼들이
이 고갯마루에서 아픈 다리를 쉬어갔고, 이괄의 난 때 공주로 피신했던 인조도, 마패를 품은 이몽룡이
남원으로 갈 때도 이 고개를 넘었던 고개였다.
또 차령은 고려 태조가 훈요십조 중 제8조에서 ‘차현(지금의 차령) 이남과 공주강(지금의 금강) 밖의
사람들은 등용하지마라’는 지방 차별을 한 슬픔도 간직하고 있는 고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지리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에 의해 한반도 산줄기 이름이 광물자원을 기준으로 정해질 때
‘차령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이게끔 하게 한 유래를 지닌 고개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을 벗어난 지가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리적인 부분에서는 일본에 못 벗어난 느낌이다
백두대간이라 부르는 태백산맥도 언론사나 행정기관, 심지어 방송국의 일기예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태백산맥과 소백, 차령, 노령산맥...등 언제까지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 울타리에 갇혀있을 것인가
호남정맥, 금북정맥 등 ...이렇게 멋있는 지명을 안 쓰는 이유가 뭔지...
광정버스 정류장(07:45)
이곳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정안알밤 휴게소 상행선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천안에서 07시 10분에 버스가 출발하여 광정까지 50분정도 소요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도로가 막히지 않고 손님도 별로 없어 35분만에 광정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광정리는 정안면소재지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이곳에 다 있다
예전에 광정역(廣呈驛)이 있었고, 조선 중종 때 청백리 이광정(李廣亭)이 지어준 광정(廣亭)이란
이름을 따 광정이라 하였으며, 조선말기 개화파인 김옥균의 유허지가 있는 곳이다
정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밤일 것이다. 공주시 전체1,500여 농가에서
5,000t쯤의 밤을 생산하고 있는 공주는 전국 밤 생산량의 12%, 충남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밤 생산지인데 그걸 공주밤이라고 하지않고 정안밤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이곳의 밤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다
정류장을 조금지나 택시사무실로 가니 문이 굳게 잠겨있다.
전화를 거니 한참을 있다가 전화를 받는다...그리고 20분이 넘은 후에 도착한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미터기도 꺽지않고 달동마을로 향한다
가는 길에 임도가 포장이 잘 되어 있는데 능선 윗쪽까지 갈수 있느냐고 하니까.
택시기사 왈: 택시가 소방차냐고 하면서 면박을 주는 바람에 찍 소리도 못했다.
그러고는 처음에 달동마을회관에서 내려주려 하기에 맨 윗쪽 민가가 있는 곳까지 하니
안색이 달라지더니 마지못해 가는 눈치이다...택시비를 10,000원이나 달라고 한다
왜 미터기를 안 꺽고 오느냐고 따지려다 초반부터 김이 샐것 같아 꾹 참는다
달동마을 맨 끝집(08:25)
작약꽃이 참으로 이쁘게 피었구나
산행을 시작하다(08:30)
임도옆에 신선초가 보이기에 수확을 하고...
구절양장의 시멘트 임도를 따라서 마루금 접속구간으로 올라가는데 여름철꽃인 땅비싸리가 벌써 보인다
땅비싸리(꽃말: 사색, 생각)
콩과
벌깨덩굴(꽃말:순결, 존엄)
산지의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며 높이 15∼30cm이고 향기가 나며 줄기는 사각이고 5쌍
정도의 잎이 달리며,길고 흰 털이 드문드문 나고, 꽃이 진 다음 옆으로 덩굴이 자라면서
마디에서 뿌리가 내려 다음해의 꽃줄기가 되는데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있으며 달걀 모양
심장형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잎 길이 2∼5cm, 나비 2∼3.5cm이고 잎자루는
길이 2∼3cm, 덩굴의 잎은 좀더 커서 길이 10cm에 이른다
꽃말은 순결, 존엄 이라는 뜻이 있으며 물고기인 메기가 입을 벌려 혀를 내밀고 있는 형상과
흡사하다고 하여 메기라라는 뜻도 있다...벌깨덩굴꽃은 다른 꽃들과 다른점이 자세히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꽃이 한 방향으로 핀다는 특징이 있다.
잎 모양이 깻잎을 닮았으며 꿀이많아 벌들이 많이 모여 들어서 ‘벌깨’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꽃이 지고나면 윗부분 줄기 끝이 덩굴로 뻗어 나가는 모습에서 덩굴이라고 붙혀졌으며
들깨+덩굴이 합쳐져 벌깨덩굴이라고 부른다
둥글레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구나
약사용궁기도도량(08:45)
쌍달리 임도를 따라서 계속 올라간다
병꽃나무(꽃말:전설)
흰털이 밀생하지 않고 산생하는 점 등에서 속 내의 다른 분류군들과 구별되며 생활 민속적 관련사항이 있는
병꽃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나무로 꽃 모양이 병 모양을 닮았기 때문에 부르게 되었다.
목재는 화력이 좋아 숯으로 많이 쓰였으며, 음지식물이라 그늘에서 잘 자란다
추위에도 강해 숲 그늘이나 계곡 부근에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소금기가 강한 해안가에도 자주 볼 수 있다.
병꽃나무는 지리산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채집된 등가기준표본(syntype)을 근거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에 의해 신종으로 발표되었고, 후에 베일리(L.H.Bailey)에 의해
병꽃나무속으로 재조합되었다
흐미~아까운 넘 두릅이 다 피어 버렸네
악어입 바위(?)
농장 갈림길(08:53)
이곳에서 구절양장으로 된 임도를 버리고 농장 가운데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택한다
농장안에는 곤드레 나물도 보인다
농장 안에는 아무도 없지만 두릅나무 엄나무순 등 나물들이 수두룩하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마라’ 했던가 오해를 사지않기 위해 눈길도 안 주고 오른다
머위나물도 많이 보이고...
엄순이(엄나물순)은 너무 커서 먹기에는 힘들 정도가 되었다
고사리밭을 지나 치고 오르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가 다시 나온다
임도(09:02)
농장을 가로질러 오는 바람에 700m 정도 거리를 단축했다
도로를 따라서 마루금으로 향한다
임도에서 바라본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공주시 정안면 쌍달리 달동마을의 모습
달이 밝은 날은 푸른숲이 낮과 같이 보인다 해서 달이 밝은 마을이란 뜻에서 달월이라 부른다
쌍달리 임도 삼거리(426m:09:05)
달동마을을 출발하여 임도를 따라서 2.3km의 거리를 35분에 걸려 마루금에 도착한다
쌍달리 임도 삼거리 이정표
마루금에 접근하여 본격적인 유구(무성)지맥 2구간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무성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무쟈게 좋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12)
벌목지 맨 윗쪽인 삼각점이 있는 521.6봉을 향해서 걸어간다
붓꽃도 이제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산행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정표
안부(09:13)
외롭겠구나
고비나물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숨을 한번 돌리고...
또 다시 오르막으로 치고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공주시 사곡면 월가리(月珂里)의 모습
월가리는 옛날에 명정승(明政丞)이 이곳에서 탄생하여 명가울이라 불리었고, 명개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명가울·명가리 또는 명가동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월하동(月下洞)과 명가리(明珂里)에서 ‘월(月)’자와 ‘가(珂)’자를 따 ‘월가(月珂)’가 되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 걸었던 1구간길의 갈미봉 모습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좌측 사면길로 빠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길로 오른다
526.1봉(09:24)
526.1봉 삼각점(△전의 447 / 78.7재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등로 우측 아랫쪽으로는 조금전 쌍달리 임도 삼거리에서 갈라진 월가리쪽 임도가 보인다
등로는 지맥길이 아닌 대간길 수준이다
산으로님의 흔적
안부를 지나 올라서니 쌍달리 갈림길이 나온다
쌍달리(雙達里) 갈림길(09:28)
하늘과 같이 푸르러서 달이 뜨면 하늘과 땅에 쌍달이 뜬다는 뜻에서 쌍달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달원리(達院里)와 달동리(達洞里)에서 두 이름을 따 ‘쌍달(雙達)’이
되었으며 무성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에 정자앞들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달동, 마실골, 중뜸 마을 등이 있다.
달동 마을은 달미 동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마실골 마을은 달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중뜸 마을은 달동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중뜸 마을이라 불린다.
심심찮게 아기자기한 암릉구간이 많이 보인다
매화말발도리꽃(꽃말:애교)
매화말도리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산 기슭의 바위틈에서
1m쯤의 낮은키로 자라는 특이한 식물로 꽃이 진 뒤에 달리는 열매가 발발굽에 끼는
편자(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어 붙이는 쇳조각 )처럼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꽃이 만개하며 참으로 아름다우며, 전 세계적으로 60여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매화말발도리, 말발도리, 만첩빈도리, 빈도리 등 1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
암릉위에 핀 매화말발도리의 모습
무성산 포토존(537m:09:32)
포토존에서 바라본 평정저수지
공주시 정안면 평정리(平正里)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평리(平里)와 중정안리(中正安里)에서
‘평(平)’자와 ‘정(正)’자를 따 ‘평정(平正)’이 되었으며, 마을 남쪽으로 화봉천이 흐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느진모기, 동막골, 사직골, 정안골 마을 등이 있다.
느진모기 마을은 평전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느진목고개 밑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동막골 마을은 사직골 북서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고 사직골 마을은 평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정안골 마을은 기와점 안쪽 긴 골짜기에 위치한다 해서 점안골이라 불리다 후에 개칭되었다
포토존에서 등로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 능선의 돌무더기가 보이는 봉화대로 올라간다
오름길에는 족도리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족도리풀(꽃말:모녀의 정)
아직은 꽃이 피지않아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옛날 우리 조상(여자)들은 의식 때 머리 위에 족두리를 썼는데 꽃이 족도리를 닮았다고 하여
족도리풀이라고 하며 쌍떡잎식물 쥐방울덩굴목 쥐방울덩굴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중국과 일본에 분포되어 있다.
깊숙한 산지의 나무그늘에서 자라며 뿌리줄기는 많은 마디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이 뿌리 줄기는 비스듬하게
자라며 각 마디마다 뿌리가 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4월이 되면 홍자색의 꽃이 피고 잎사이에서 꽃대가 나와 끝부분에 한 개의 꽃이 옆을 향해 달려 있으며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족두리풀의 뿌리를 세신(細辛)이라 하였으며, 발한·거담·진통·진해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하며 주로 두통·소화불량 등에 사용해 왔다고 한다.
봉화대(烽火臺:566m:09:39)
예전에 봉화를 올렸다는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에는 봉화가 망가지고 돌들만 어지럽다
백제의 고도 공주라고 홍보하는 공주시는 문화재 관리는 엉망(?)이다
다시 봉화대를 내려와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무성산으로 향한다
안부(09:40)
무명봉(09:41)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갔다가...
편안한 등로를 만나서 맥길을 이어간다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철지난 진달래를 만난다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578.6봉(09:45)
이 분의 산 이름은 당체 믿음이 가지 않는다.
능선 우측 아래에 있는 월가리 구학마을 이름을 따온 모양이다
578.6봉에서 다시 등로로 내려온다
등로는 우리동네 뒷산인 대모산 둘레길보다 더 편안하다
암릉구간을 끼고 지나가니...
병꽃이 많이 피어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에 올라 무성산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09:48)
안부를 지나는데 뿌러진 소나무가 下心을 하라네요.
604.6봉(09:58)
봉우리 아래에는 묘지 2기가 보인다
604.6봉 아래에 있는 묘지
이정표가 보이고 계속해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00)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쉼터(590m:10:02)
이곳부터는 북쪽 능선으로 같이 걸어온 정안면과 작별하고 우성면으로 面界가 바뀐다
쉼터를 내려서자마자 좌측으로 한천리로 내려가는 길림길이 나온다
공주시 우성면에 속한 한천리(韓川里)는 조선 말기 공주군 우정면(牛井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우정면 한산리·영천리·구화리(九化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한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가 되었다
마을 중앙으로 도천이 흐르고 있으며,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구화, 영천,
상영천, 대추나무정이 마을 등이 있는데 구화 마을은 하영천 옆에 있는 마을이며, 상영천 마을은 영천
위쪽에 있는 마을이고 영천 마을은 무성산 동남쪽 긴 골짜기에 있는데 하천이 길게 흐른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대추나무정이 마을은 대추나무가 많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맥길을
홍길동성 방향으로 향한다
등로가 좋고 고도차가 별로없어 산행속도를 많이 줄인다
계속 이어지는 편안한 길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편하게 가다가 귀한 금붓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금붓꽃(꽃말:기쁜소식)
붓꽃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전세계 중 우리나라에만 자생하고 있는 귀한 꽃이다
땅속 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새순이 나오며 새순이 나온 자리에는 수염뿌리가 생긴다.
잎은 뿌리에서 모여 나오고 줄기 밑은 오래되어 말라 붙은 잎으로 둘러 싸인다.
위에 달리는 잎은 곧추서며 길이는15~20cm, 너비는 3~8cm이며 꽃은 4~5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지름이 2cm 정도로 줄기끝에 꽃이 한송이로만 핀다
이와 비슷한 식물인 노란붓꽃은 줄기끝에 꽃이 2송이씩 달린다
편안한 길로 가다가...
능선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넓은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암봉이 길을 가로 막는다
암봉(10:09)
암봉을 지나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119긴급 구조용무선통신시설이 있는 604.7봉이 보인다
604.7봉(10:10)
이 시설은 세종시와 공주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모양이다
다시 등로로 내려서는데 오늘의 이름있는 지명의 산과 봉우리는 한결같이 등로에서 살짝 살짝
벗어나 있어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면 놓치는 憂를 범할수 있으니 반짝 신경을 써야겠다
무성산 가는길
花無十日紅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멋진 조망처가 보인다
폐헬기장(10:14)
안부(10:16)
진달래가 핀 곳을 올라서니...
무너진 성 가운데로 등로가 나 있는 무성산성(홍길동성)이 나온다
무성산성(武城山城 :10:18)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의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산성으로서 마을에서는 홍길동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홍길동성(洪吉童城)이라고도 하고, 연성(燕城)이라고도 한다.
둘레는 525m, 높이는 4m이며, 평면은 장방형으로 서벽은 산 정상부에 가까운 반면에 동벽은 훨씬
낮은 지점을 지나는데, 다른 산성과는 달리 성벽의 굴곡이 거의 없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벽 안팎을 쌓아올리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되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다만 능선 정상부를 지나는 서벽은 비교적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편이며, 면석(面石)도 남아 있어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성문은 흔적만 남아 있고, 건물지도 평탄한 터만 남아 있으며, 관련 유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홍길동성이라 부르는 무성산성
홍길동은 허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자, 연산군 시절에 전라도 장성출신의 실존인물이다
홍길동은 조선조 명종(13대) 때의 임꺽정, 숙종(19대)때의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의적(義賊)으로
꼽히는데 이 소설을 쓴 허균은 광해군 때의 사람으로 강원도 강릉 출신이며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허난설헌이 누님이다...허균은 공주목사(公州牧使)로 재임 시절에 조선시대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연유로 이곳을 홍길동성이라 부르는가?
무너진 산성 가운데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여기는 개별꽃이 이제사 피는구나
사초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폐헬기장을 지나니...
묘지가 보인다
금북정맥이 시원하게 보이는 지점이지만 지독한 미세한 먼지로 인해 오리무중이다
인조대왕 후손 묘(10:20)
묘비에는 인조대왕 이후의 가계도(家系圖)가 그려져 있다
인조대왕은 조선조 16대 왕으로 휘(諱)는 종(宗)이고 자는 화백(和佰) 호는 송창(松窓)이었다
선조대왕의 손자로서 정원군(定遠君)의 장자(長子)였고, 광해군의 명나라와 후금과의 중립외교를
비판하여 서인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인해 왕권을 잡았으나 굴곡이 많은 多難한 세월을 보낸
임금이었다...그러나 정권을 잡으면서 일어난 공신록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난으로 곤욕을 치러면서
이곳 공주로 피난을 가야했던 수모를 겪었다
그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고, 병자호란 참패 이후 남한산성에서 삼전도로 내려와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머리를 땅바닥에 아홉 번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항복의식의 굴욕을 치렀고 ,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 인평대군도 함께 청나라에 굴복을 반대했던
척화론자들도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갔고, 그 뿐만 아니라 5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갔으며 수만 명의 군사가 희생됐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을 잘못 만나면 힘드는 건 힘없는 民草들이란 걸 그들은 왜 모를까
인조대왕 3남 인평대군의 13대손이란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면서 무성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무성산(武城山:613.9m:10:22~33)
공주시 사곡면과 정안면, 우성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무성산에 대한 특별한 지명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홍길동 전설과 산정의 성과 관련하여 이름 붙여진 것으로
추측되며, 북쪽에 갈미봉이 있고 여러 산들이 남북으로 긴 연봉을 이루며 남북으로 15㎞에
걸쳐 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공주시에서 북서쪽으로 보면 마치 한 마리의 누에가 기어가는
듯이 보인다고 한다.
무성산은 공주 북서부 산지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호상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능선에는
주빙하성 퇴적물로 구성된 성터가 남아 있고 도천천이 무성산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 충적선상지를
형성하였으며 일대는 무성산, 태화산·국사봉 등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싸여 태극 모양을 이루는
특이한 지형으로 예로부터 십승지로 알려져 있으며, 봄철에는 만발하는산수유꽃과 왕벚꽃 등이 아름답다.
숲이 울창하고 산등성이에는 집채만한 바위들이 무더기로 놓여 있다.
정상 주변에는 성곽의 흔적인 돌멩이과 10여 개에 달하는 석탑들이 있고, 충청남도 일대의 모든 명산들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나 오늘은 지독한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산 속에는 홍길동의 활동 무대로 전해지는 홍길동산성터와 홍길동굴이 남아 있다
무성산의 산봉에는 돌로 쌓은 산성이 있는데,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무성산에는
홍길동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홍길동과 그 누이동생이 장사였다고 하며 서로 그 힘을
겨루기로
하고 홍길동은 서울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동생은 성을 쌓는 것으로 내기를 했다 한다.
동생이
성을 다 쌓을 무렵 어머니는 아들이 질 것을 염려하여 딸에게 먹을 것을 주며 잠시 쉬라고 하였다.
그 사이 홍길동은 서울에서 도착하여 동생이 결국 내기에 졌고, 이 때 동생이 쌓았던 성이 아직도 4㎞ 정도 남아
있다고도 하며 6·25전쟁 후 피난민이 많이 정착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인증샷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왔고 아침을 먹지 않았던 탓인지 배가 고파온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빵과 우유하나로 아침을 대신한다
무성산 정산 2등 삼각점(△전의 27 / 1984재설)
무성산 정상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무성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에는 고찰 마곡사가 있다
마곡사 일주문(一柱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태화산(泰華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는데, 마곡사가 위치한 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祕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설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田)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자장율사가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선사(無染禪師)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
(麻谷普徹) 스님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년(명종
2)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651년(효종 2)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31본산(本山)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마곡사 대광보전 마당에서...2018년 12월 22일 성지순례길
다시 길을 나서는데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산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카메라 주위에는 고사리와 솜망방이꽃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고사리를 꽤 많이 채취한다
솜방망이와 할미꽃의 아름다운 동행
무성산성 터(공주 황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2호:10:40)
무성산성 안내판
홍길동성이라 부르는 무성산성 터에는 무너진 돌로 만들어진 10여개 돌탑이 보인다
무너진 산성을 뒤로
하고...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을
지나고...
멋진
암릉도 좌측으로 우회한다
순백의
말발도리도 외로운 산꾼을 반긴다
완만한
능선에 올랐다가...
암릉구간을
지나니...홍길동굴 갈림길이 나온다
홍길동굴 갈림길(593m:10:45)
이정표(←한천저수지 5.7km,↓홍길동성 0.1km, →무성산 0.4km)와 구조 이정목이 서 있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예전에 홍길동이 은거했다는 홍길동굴...조금을 내려가니 공사자재가 잔뜩 쌓여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굴이 막혀있고 볼 게 없다고 하여 다시 올라와 맥길로 향한다
홍길동굴
가는 길을 중단하고 되돌아
와서 다시 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572.2봉(10:48)
안부로
내려섰다가...
암릉구간을
지나 내려서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10:50)
암릉구간을
지나고...
봉우리를
넘어서 내려서니 2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10:53)
약간의
내리막길
안부로
내려섰다가...
암봉을
지난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대중리 갈림길이 나온다
대중리(大中里) 갈림길(10:56)
이곳에서 직진으로 맥길은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 내리막길에도 시그널이 보이나 조금만 조심하면 알바는 하지 않겠다
공주시 사곡면에 있는 대중리는 조선 숙종 때 이 마을 출신인 한씨(韓氏) 한 사람이 크게
출세하여 시랑(侍郞) 벼슬을 하였다 하여 한시랑(韓侍郞) 또는 대시랑(大侍郞)이라 불렀으며,
또한 난리 시절에도 마을이 평온하였으므로 중리(中里)라고도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대시랑리와 중리에서 ‘대(大)’자와 ‘중(中)’자를 따 ‘대중(大中)’이 되었다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마을 중앙에 여천 저수지가 있으며, 서쪽에 광성말들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돌고개, 무성산, 여천, 한시랑이 마을 등이 있으며, 돌고개 마을은 돌고개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무성산 마을은 무성산 밑에 위치한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고 여천 마을은 한시랑이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한시랑이 마을은 숙종 때 시랑 벼슬을 한
한씨가
살았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갈림길에
서 있는 구조이정목
반갑습니다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무명봉(10:58)
고도를
급격하게 낮추며 내려간다
산악용오토바이가
다니는지 등로가 많이 파여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구조 이정목을 지나고...
등로
좌측에 묵묘가 보인다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긴 내리막길은 계속된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이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 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님의 詩 오월
412봉(11:08)
안부(11:09)
능선에 올라섰다 내려서니 쉼터가
나온다
쉼터(11:14)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고...
구조 이정목을
지나고...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우측 아랫쪽에 무성산 임도가
보인다
임도(297m:11:21)
무성산 허리를 휘감는 임도로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에서 우성면 한천리로 연결되는 임도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좋으나 MTB 코스인지 이런 이정표가 보인다
꾸무리한 날씨가 생각보다 상당히 더워서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고...
또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33.8봉(11:35)
333.8봉 삼각점(△전의 446 /
1991재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곳도 산악오토바이가 다니는지 등로가
많이 망가져 있다
계실마을 갈림길(11:40)
우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는 계실마을과 저수지로 이어지고 맥길은 좌측 내리막이다
공주시 사곡면에 있는 계실리(桂實里)는 예전에 산소리라 칭하던 것을 계수(桂樹)나무가 많아
계실(桂室)이라 하였으며 마을 북쪽을 무성산이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 계실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계실, 너분베, 산소말 마을 등이 있다. 계실 마을은 게가 많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너분베 마을은 양지말 서쪽에 있는 마을로 넓은 바위가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산소말 마을은 계실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 감사의 산소가 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내리막으로 내려선
다음에...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영천고개(272m:11:45)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와 사곡면 화월리로 잇는 고개로 이정표(←한천저수지 3km↓마을회관 2.5km
→무성산3.0km)와 무성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데 마을회관은 한천리 마을회관을 말하며 이 고개가
무성산의 시발점이다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한천리(韓川里)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한산리(韓山里)와 영천리(永川里)에서
‘한(韓)’자와 ‘천(川)’자를 따 ‘한천(韓川)이 되었으며, 마을 중앙으로 도천이 흐르고 있으며,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자연마을로는 구화, 영천, 상영천, 대추나무정이 마을 등이 있다. 구화 마을은 하영천 옆에 있는
마을이며, 상영천 마을은 영천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영천 마을은 무성산 동남쪽 긴 골짜기에 있는데 하천이
길게 흐른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대추나무정이 마을은 대추나무가 많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영천고개에 있는 무성산 등산로 안내도
이곳이 무성산 등산의 시발점이자 깃점
역할을 하는 고개이다
안부(11:48)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우측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335.6봉(12:00)
다시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나고
이곳에서 밥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2:02~30)
다시 길을
떠난다
363봉(12:25)
363봉을 내려선 다음에...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 다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 갈림길(12:30)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MTB가
다녔는지 등로가 많이 파여있다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족보가 있는
375.1봉으로 오른다
375.1봉(12:33)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
다음에...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고...
소나무 숲길 사이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오늘은 날씨가 꽤나 덥다
갈림길(12:40)
길이 너무 좋으니 습관처럼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346.9봉
갈림길(12:45)
등로에서 50여m 정도 좌측에 벗어나
있는 346.9봉으로
향한다
346.9봉(12:46)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다시 길을
나선다
등로는 무쟈게
좋다
移葬을 한 듯한 묵묘의 흔적을
만난다
갈림길(12:48)
안부(12:49)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세종 평화의 동산이 있다고 한다
세종 평화의 동산은 피종진 목사가 원장으로 있는 기독교 시설인데 나무숲 사이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가평 설악에 있는 통일교 성전 비슷하게 생겼다
피종진 목사라는 분은 우리 동네(개포동)에 있는 남서울 중앙교회 담임 목사였는데
이 분께서 하신 대표적인 사업(?)이 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단군상을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철거를 주도하신
분이시다...멀리서 봐도 규모가 굉장히 커다는 느낌이다
우산나물도 올라오는데 지금 나물로 먹기
딱 좋을때다
등로에서 바라본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內山里)의 모습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내동(內洞)과 약산리(藥山里)에서 ‘내(內)’자와 ‘산(山)’자를 따
‘내산(內山)’이 되었으며 갈미봉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낮은 고도의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동성, 장터, 중말 마을 등이 있다.
동성 마을은 죽계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장터 마을은 죽계 동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중말 마을은 장터와 동성리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안부(12:57)
좌측으로는 잣나무군락지도
보인다
302봉(13:00)
뚜렸한 등로는
계속되고...
딱 먹기좋은 엄순이(엄나물순)도 조금
수확한다
등로는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안부(13:05)
좌측으로 내려가면 평화의 동산 성전으로 가는 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거대한 건축물이
보인다
유구십승지 갈림길(13:07)
지난해 1구간에 걸었던 문안달 고개에서 이곳까지 유구십승지와 유구(무성)지맥이
이곳까지 같이 왔다가 유구십승지는 우측으로 가면서 맥길과 작별을 고한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이상향에 관한 민간인들의 사회적 담론이었는데 십승지 관념은 조선 중․후기에
민간계층에 깊숙이 전파되어 거주지의 선택 및 인구이동, 그리고 공간인식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십승지지는 조선후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
십승지의 입지조건은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곳이었다.
사람은 이상적인 장소를 희구하며 살고자 하는데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동서양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달랐으며 문화속성에 따라 차이가 나며 불교의 극락과 정토, 기독교의 천국과 에덴동산,
도교의 무릉도원, 삼신산, 청학동 등은 사후 아니면 관념적인 이상 세계를 일컫는 말이고,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한 말로서도 길지(吉地), 낙토(樂土), 복지(福地), 명당(明堂), 가거지(可居地) 등의
용어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승지(勝地)라는 말이다.
십승지 갈림길에서 내려와 안부에서
올라서니 갈미봉이 나온다
갈미봉(葛美峰:311.3:13:10)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와 사곡면 동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누군가가 고불산이라 적어놨다
산 우측 아래에는 성곡사란 사찰은 동양 최대의 좌불을 봉안한 곳이며 이곳의 갈미봉과 고불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갈미봉을 지나 100m 정도를 가니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에 309.4봉이 있다
309.4봉(13:13)
삼각점이 있는 이곳에 누군가가 갈미봉이란 팻말을 설치해놔서 헷갈린다
지형도상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봉우리가
갈미봉이라 표기를 해놨다
309.4봉 정상 3등 삼각점(△전의
318)
다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묘지(13:20)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3:26)
애매한 곳인데 산으로님의 시그널이 길을 안내한다
무명봉(13:29)
약간의
내리막길
좌측의 희미한 갈림이 나오나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갈림길(13:37)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는데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조그만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덜꿩나무(꽃말:주저)
덜꿩나무는 쌍떡잎식물 안동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으로 낮은 산기슭이나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로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관상수 약용 식용으로 사용되며 나무의 높이는 2m정도이고
꽃은 흰색으로 5월에 핀다
덜꿩나무는 가새백당나무 털덜꿩나무 긴잎덜꿩나무라고도 부르며, 잎은 마주나고 달걀모양에 잎
끝은 뾰족하고 밑은 둥글거나 심장밑 모양이며 5월에 흰색 꽃이 가지 끝에 피우는데 꽃모양이
가막살나무와 비슷하다
꽃잎 5장인 자잘한 꽃들이 모여서 한 덩이처럼 보이고 봄철 산에서 흔하게 보이는 나무이다
덜꿩나무는들에 꿩들이 좋아하는 열매를 달고 있어, (자주 날아와서) 들꿩나무로 부르다 덜꿩나무로
변한 것으로 추정되며 또, ‘꿩이 되려다 만 나무’, 혹은 ‘들꿩을 지칭하다’라는 설도 있지만 모두
정설은 아닌 듯하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일본이나 중국에도 분포하며, 가새덜꿩나무 , 개덜꿩나무도 있다
덜꿩나무는 가막살나무와 너무 비슷하여 구분이 어려운데, 가막살나무의 한자명(漢字名)은
탐춘화(探春花)이고, 덜꿩나무의 한자명은 소엽탐춘화(小葉探春花)이다
덜꿩나무와 헷갈리는 나무가 있는데 가막살나무인데 가막살나무는 ‘까마귀가 먹는
쌀’이라는
뜻으로 가막살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나무인데 덜꿩나무와 구분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가막살나무와 덜꿩나무는 하얀색의 아주 작은 꽃이 자잘하게 모여 핀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꽃 양이 가막살나무가 더 많으며 가을에 열매도 더 많이 맺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 다르므로 바로 옆에서 비교하지 않으면 구분이 어렵다.
덜꿩나무의 잎에는 털이 푹신할 정도로 잎 뒤로 많이 난 반면 가막살나무는 앞면에 털이 좀 적다.
확연한 차이는 가지에 잎이 붙어 있는 턱잎이 덜꿩나무는 붉은색이며 가막살나무는 없다.
덜꿩나무의 어린 순을 먹기도 하고, 열매는 술을 담가 먹기도 하나 겨울에 새들의 먹이가 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드넓은
밤나무단지가 나온다
밤나무 단지가 맥길이다(14:43)
등로에서 바라본 공주시 우성면(牛城面) 일대
공주시에 있는 우성면은 원래 북쪽의 우정면이라는 명칭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피난 중에
소에게 물을 먹였다는 소우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쪽 금강 변의 성두면이라는 명칭은 성 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정면과 성두면을 병합하고 우정면과
성두면의 이름을 따서 우성면(牛城面)이라 하였다.
우성면은 정안천·유구천·어천이 흘러 비교적 평야가 발달하였고, 남서쪽으로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다.
백제시대에는 웅천 관할에 속하였다가 신라시대 웅천주(熊川州) 웅주 관할이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관할이었고 198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쌍신리, 월미리가 공주읍에 편입되었다.
1991년 리 행정구역으로 조정되었고 1995년 도·농 통합으로 공주시에 편입되었다.
밤나무
단지에서 바라본 금북정맥 능선
계속되는
밤나무 단지로 맥길을 이어간다
공주시 우성면은 제조업의 발달은 미미하며, 소수의 관련 기능 산업체가 산재해 있고, 서비스업은
면소재지의 가촌(街村)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고 문화 유적으로는 충청남도 지방기념물인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公州
貴山里
萬頃盧氏
三義士
生家址)가
있다.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가
남북 방향으로 지나가며 남쪽으로는 봉정동에, 북쪽으로는 정안면 상룡리에
연결되고 국도 32호선도 동서 방향으로 지나며, 동쪽으로는 쌍신동에, 서쪽으로는 신영리에 연결된다.
또한 지방도 625번이 북동과 남서 방향으로 지나며 북동쪽으로는 국도 32호선에, 남서쪽으로는 청양군
목면에 연결되며 지방도 96번도 남북 방향으로 지나며, 북동쪽으로는 신풍면 입동리에, 남서쪽으로는
국도 36호선과 연결된다.
밤나무 단지에서 바라본 가야할 172.7봉 채죽산...좌측의 연미산은 맥길에서 벗어나 있다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에 있는 연미산(燕尾山:192m)은 산세가 제비 꼬리처럼 생겼다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백제시대 공주의 지명인 웅진(熊津:고마나루)의 전설이 전해지는 산이다
아득한 옛날 지금의 곰나루 근처 연미산에 암곰이 한 마리 살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나무 하러
갔다가 그 곰에게 잡히고 말았는데 곰은 그 남자가 도망 못 가게 동굴에 가두고 사냥하러 나갈 때는
동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고 나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새끼를 두 마리나 낳았고, 그러던 어느 날 곰이 동굴 입구를
막지 않은 채 사냥을 나가자 남자는 이때다 싶어 그대로 동굴을 탈출하여 강을 건넜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곰은 새끼들과 함께 강에 빠져 죽었고 곰이 죽은 후 그곳에는 풍랑이
일어 배를 운항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곰의 원한 때문이라고 믿고 사당을 지어 원혼을 달래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풍랑이 가라앉아 배를 운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이곳을 곰나루(웅진:熊津)라 부르게 되었다.
밤나무단지
맨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12분정도 밤나무 단지를 걸어서 밤나무
단지를 빠져 나온다
숲길로 들어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안부
삼거리(13:55)
벌목지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벌목지 능선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송전탑이 보인다
NO47
송전탑(13:58)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묘지가 나온다
능선 아래쪽으로는 묘지가 보이고 재각인듯
한 조그만 기와집이이 보인다
십자안부(14:01)
조그만 능선을
넘어...
小路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 뒷쪽 능선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묘지가 나온다
묘지로 내려서니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가야할 채죽산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인데 맥길은 뚜렸한 등로의 우측 아래로
내려서야 하는데 줄기는 좌측 묘지 뒷쪽의
능선이 실해 보인다
등로 아래로 내려서 휴식을 좀 취하고 다시 길을 가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니나 다를까...묘지에다가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다시 묘지를 갔다가
온다
신대말
정수장(14:22)
정수장을 지나니 우측 아래에 묘지가
나오고 차량소리가 상당히 시끄럽다
이동통신탑(14:23)
이동통신탑을 내려서니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공주J.C가 보인다
맥길은 고속도로를 가로 질러야 하나
건널수 없어 한참을 우회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도천1교(14:27)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도천1교
아래를 통과한다
도천1교를 지나자마자 도로에서 묘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경주정씨(慶州鄭氏) 양경공파 묘(14:30)
경주정씨 양경공파는 정풍국(鄭豊國)을 시조로 하고 정붕(鄭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로 경주정씨의 원 시조는 신라 건국 초기 6촌(村)의 한 부장인
지백호(智伯虎)로서 정씨 성은 뒤에 사성(賜姓)된 것인데 30세(世)에 이르러 정풍국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32세에 이르러 후손들이 영일과 동래로 본관을 나누었으며 김천 지역의
경주정씨는 조선 개국공신으로 도총관을 역임하고 계림부원군에 봉해진 49세 정희계(鄭熙啓)의
후손으로서 양경공파(良景公派)에 속한다.
양경공파는 다시 판윤공파와 별재공파로 나뉘었는데, 김천시 감문면 남곡리는 별재공파로 분류된다
무명봉(14:31)
묘지위 무명봉에서 바라본 당진~영덕간
공주J.C의 모습
무명봉에서 내려서는데 과수원이 나오고 우성면 도천리 도고머리 마을로 내려간다
도고머리 마을은 약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도투마리(베를 짤 때 날실을 감는 틀)와
같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이곳은 고속도로 때문에 맥길이
애매하다...感 하나로 맥길을 이어간다
마을 가운데로 지나가는데 식수가 모자랄
듯 하여...
사람이 사는 민가로 들어가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혼자놀기
마을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좌측 도로 위에는 공주J.C가
보인다
도천2교(14:40)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이다
지하차도 2개를 연달아
지나간다
도천2교를 빠져 나오잠자 우측으로
꺽어진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방음벽 옆 민가
뒷쪽으로 올라간다
진주강공
묘(14:46)
묘지 뒷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한참을 돌아서 마무금에
복귀한다
수로 뒷쪽으로
올라서니...
그물망이 처져있는 무허가 건물이
나온다
능선 서 바라본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83.8봉(14:53)
직진으로
걸어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밭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東谷里)의 모습
동쪽 계곡에 위치하여 동곡이라 하였으며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동조동(東助洞)과
신곡(新谷)에서 ‘동(東)’자와 ‘곡(谷)’자를 따 ‘동곡(東谷)’이 되었고 조선 말기 공주군
우정면(牛井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우정면 동조동·상조동(上助洞)·신곡·하문동(下文洞)의
일부가 통합되어 동곡리로 개편되었으며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가 되었다.
북부와 남부로는 반촌천(盤村川)과 그의 지류들에 의해 해발 고도 60여m에 충적 평야가 있다.
하천과 그의 지류 연변의 평야 지대에는 목동·서산·운산 등의 자연 마을이 들어서 있다.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가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북동쪽로는 반촌리에, 남서쪽으로는
내산리와 월미동에 연결되며 남부로는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의 공주 JCT가 개설되어 있다
밭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채죽산이 보인다
폐가(15:00)
폐가를
지나 숲속으로 들어가니...
엄순이(엄나무손)이
엄청나게 많다...이렇게 많은 엄나무순이 많은 건 처음봤다
그런데 관리가 되지않아 다 시어버려 상품가치가 전혀없다
엄나무순밭을
지나니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가 한 눈에 보인다
묘지 위에서 바라본 우성면 상서리(上西里)의 모습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상서리는 상당리(上堂里)와 서풍리(西豊里)에서 ‘상(上)’자와 ‘서(西)’자를 따
‘상서(上西)’가 되었으며 조선 말기 공주군 우정면(牛井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공주군 우정면
상당리·하당리(下堂里)·중촌리(中村里)·노산리(盧山里)·혁치(革峙)·서주막(西酒幕)·암회리(岩回里)·
철목리(哲目里)·오산리(吳山里)·서풍리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상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가느니, 당산, 서주막거리, 질푸니 마을 등이 있는데 가느니 마을은 질푸니 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당산 마을은 당산 아래쪽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명명되었고 서주막거리 마을은
서풍거리 옆에 있는 마을로 주막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질푸니 마을은 지형이
질펀하게 되었다 해서 질푸니 마을이라 불린다.
국도 32호선이 남단을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고, 지방도 625번은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남쪽으로는
옥성리에, 북쪽으로는 국도 32호선과 시도 36번에 연결된다.
시도 11번과 시도 36번도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남쪽으로는 옥성리에, 북쪽으로는 도천리에 연결된다.
이 외에도 시도 36번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동쪽으로는 국도 32호선과 지방도 625번에, 서쪽으로는
묘지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5:05)
가야할
172.7봉과 채죽산을 바라보면서 이동통신탑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32번 국도로 내려서니 맞은편에는 질마고개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맥길은 32번 국도에서 예산군 의당면에서 공주시 우성면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와
만나는 지하차도 램프 아래로 통과해야 하는데 차량은 그리 다니지 않으나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에 무단횡단을 포기하고 우측 버스 정류장쪽으로 향한다
질마고개
버스 정류장(15:10)...예산군 의당면 방향
32번
국도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우측으로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자주보는 동양기계 중앙연구소가 보인다
32번
국도 지하차도(15:12)
32번
국도를 빠져나와 좌측으로 꺽어지니 우측에 상서리 질마(길마)마을이 보인다
질마고개(28m:15:13)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의 뱀고지 동쪽에 인접해 있는 고개로 길마의 형상에서 연유된 지명이므로
본래는 ‘길마고개’인데, 구개음화에 의해 ‘질마고개’로 변한 것이다. ‘ㄱ〉ㅈ’의 구개음화는
공주 지역의 방언에서 매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한자형인 길마치(吉馬峙)도 길마고개에서
길마를 음차하고, 고개를 훈차하였기 때문이다.
질마고개의 모양이 길마와 모습이 흡사해서 만들어진 지명인데 즉 고개의 형상이 소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리 불렀다.
또한 이 고개에 달리는 말이 끄는 수레의 바퀴 자국이 두 개 남아 있고, 예전에 장사들이 이 고개에
질마를 벗어 두고 갔다고 하여 ‘질마고개’라고도 한다는 설도
있다
고개를 올라가니 공주시 우성면쪽의 질마고개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질마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연미산 서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질마고개라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에는
중엽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우성면 상서리에는 오생이라는 18세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힘이 장사였다.
낮에는 부인과 함께 농사를 열심히 짓고,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무예를 익혔다. 부인이 잠든
사이 집을 나와 무성산에서 용마를 타고 무예를 훈련하였다. 그의 겨드랑이 밑에는 손바닥만
한 날개가 있었고, 등뼈
부분에 용의 비늘과 흡사한 비늘이 한 줄로 가지런히 덮여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아낙네들 사이에서는 오생의 수련과 신상에 관한
이야기가 소문으로 떠돌았다.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임금은 ‘오생이
역모를 품은 역적의 씨가
틀림없으니 잡아서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오생은 이러한 정황을 알고 잡혀 죽느니 자결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고는 부인을 불러 등뼈를 덮고 있는 셋째 비늘을 떠들고 바늘로 찌르게 하였다.
부인이 남편의 말에 따라 바늘로 찌르자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을 내면서 오생의 숨이 멎었다.
이 때 오생이 타고 다니던 용마가 나타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울부짖었다.
용마는 지금의 질마고개에 길마를 벗어던진 채 바위를 들이받고는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당시 용마의 길마가 떨어진 곳을 지금은 질마고개(일명 길마고개)라 부르고, 말이 들이받았던
바위를 병풍바위라고 한다.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올라선 다음 웅진엘크 사슴목장을 지난다
사슴목장을 지나니 민가가 한 채 있는데 입구에는 쇠줄이 처져있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이 쥔장의 성질이 아주 고약하다고 한다
부딪히기 싫어서 우측의 밤나무밭으로 향한다
밤나무밭에서
뒤돌아 본 질마마을
밤나무밭에서
만난 조개나물꽃
밤나무밭을
치고 올라선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고약한 영감탱이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이곳은 사유지이니 나가라고 난리부르스이다...그렀다고 내가 나갈수는 없다
왜냐하면 윗쪽으로 꼭 가야하니까...처음에는 사정을 했지만 막무가내이다
내가 산행 짠밥이 얼마인데 이런 영감탱이보다 수가 낮아서야 되겠는가
범여: 어르신! 남의 땅에 들어온 건 미안한데 저는 산림청 대전지사 소속 직원으로
이 지역 산에 임산물 조사를 다니는데 어르신 밭에 들어온 건 미안한데
어쩔수가 없다는걸 양해해달라고 하니까. 금방 꼬랑지 내리고 말투가 고분고분해진다
쥔장: 아! 그러시군요...하도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나물을 다 뜯어가고 가을에는
밤같은 걸 줏어가는 바람에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와서는 내려갈 수 없으니 조심해서 가란다
영감탱이 진작 그럴것이지
쥔장
영감에게 거짓말한 것은 미안하지만 무사히 172.7봉으로 향한다
밤나무밭을
무사히 통과한다
172.7봉 오름길은 상당히 까칠하다...낮은 산이라 우습게 봤다가는 쌍코피 터지겠다
체력은
저하되고 힘이 들어서 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한다
휴식(15:35~45)
다시
길을 나선다
172.7봉(15:50)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인연들
우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잘 보이지도 않고, 感으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등로로 내려서니 잘 관리된 묘지 뒷쪽이다
시야가
열리면서 공주시내 아파트와 공주 의료원이 보인다
안부(123m:15:55)
다시
빡센 오르막길
채죽산
갈림길(16:07)
채죽산은
이곳 갈림길에서 왕복 300여m 정도 떨어져 있어 베낭을 벗어놓고 채죽산으로 향한다
채죽산
가는길은 오밀조밀한 암릉이 많이 보인다
채죽산(蔡竹山 :170.0m:16:05)
공주시 우성면 상서리와 평목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죽산현감(竹山縣監)을 지낸 채씨(蔡氏)의
묘가 있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지질은 북쪽으로부터 흑운모화강암·안산암질암·역암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남쪽의 산등성이가 끝나는 곳에 부엉산이 있으며, 바로 금강으로 이어지며 서쪽에는 넓은 충적평야인
우성농조들이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풍수지리상 연미산과 함께 계룡산 유구(維鳩)와
마곡(麻谷)의 관문 역할을 하는 산이라고 하며 북쪽으로 연미터널이 조성되어 32번국도가 지나가기
전까지 연미산과 채죽산 사이의 연미고개가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스틱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채죽산 갈림길(16:10)
갈림길에서
내려서니 이장한 듯한 묘터가 보이고 좌측 숲속으로 들어간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다가...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최대한
우측 능선으로 붙어서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
뚜렸한
등로를 만나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120.2봉
갈림길(16:18)
지맥길에서
30여m 떨어진 120.2봉으로 향한다
120.2봉(16:19)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벌목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밤나무단지가
보이고 계속해서 직진길로 향한다
밤나무
단지를 내려선다
시야가 열리면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유구천이 가운데로 지나가는 우성면 평목리(坪目里) 들녘이 보인다
우성면에 속해있는 평목리는 우성(牛城)의 목(目)이 되므로 들목 또는 평목(坪目)이라 하였으며 조선 말기
공주군 우정면(牛井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우정면 평목리가 되었다가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가
되었다
밤나무단지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숲 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키작은 밤나무사이를 곡예하듯이 걸어간다
안부(16:30)
능선에
올라 조금을 지나니...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좌측 아래에는 금강의 공주보가 보인다
밤나무밭을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들목고개(43m:16:45)
우성면
평목리 평나무정이 마을에 속해있는 고개로 민가 한 채가 있고 좌,우가 밤나무밭이다
밤나무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선락장군 해평윤공 묘(16:50)
선락장군(宣略將軍)은 조선시대 종4품 하계(下階) 무신의 품계로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무산계(文武散階 : 문신과 무신의 품계)가 제정될 때 무산계의 상계는
선절장군(宣節將軍),
하계는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정하져『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묘지
윗쪽 밤나무밭을 가로 지른다
차양막을
넘어서니...
등로가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103.4봉(17:02)
정상에는
빛바랜 부산 여영님의 시그널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진으로
진행한 다음에...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좌측으로 내려서니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마을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가로질러 부엉산으로 향한다
장구머기(38m:17:10)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장구의 목과 같이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이름이다
마지막
봉우리인 부엉산 정상으로 향한다
부엉산 정상에는 멋진 주택들이 점령(?)한 개인 사유지로 올라가려 하는데 부엉산 아래
구멍가계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가지 말라고 하여 입맛만 다시고 휀스 아래 절개지로 향한다
출입이 금지된 부엉산 정상의 모습
꿩
대신에 닭이라고 주택 아래를 부엉산으로 친다
부엉산(50.8m:17:12)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에 있는 산으로 부엉산에 대한 지명에 대한 자료는 찿을길이 없다
정상은 개인 사유지로 호화주택이 자리를 잡고있어 오를 수가 없고 산 아래는 금강이 흐르고 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를 타고 가다고 보면, 강가에 섬처럼 보이는 산이 부엉산이다
공터의
축대 아래로 내려가서 텃밭을 통과하는데 쥔장인듯한 남자가 지랄을 한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웅진대고 교각 아래로 통과한다
합수점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부엉산의 모습
조경을
위한 판매용 잔디를 심어 넓은 곳을 지나간다
판매용
잔디 우측으로는...
유구천이 흐르고 있다
유구천(維鳩川)은 공주시·예산군·아산시의 경계인 봉수산(鳳首山, 534m)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여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지방 1급 하천이며, 하천 연장은 15.7㎞이고,
유로 연장은 40.13㎞이고 유역 면적은 282.6㎢이다.
유구천은 높이 약 400m 이상의 봉우리가 솟은 산지지대인 유구면을 흐르면서 유역에 좁은 하곡평야를
만들며 신풍면에 이르면 유역에 넓은 평야를 만들면서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사곡면 호계리에서
마곡천(麻谷川)을 합류하는데, 마곡천의 상류 운암리에는 유명한 마곡사(麻谷寺)가 있고, 마곡천의
하곡은 심산유곡을 이루어 기암석벽(奇巖石壁)에 청계옥수(淸溪玉水)를 곁들여 선경을 이룬 다음에
마곡천을 합친 유구천은 동남쪽방향으로 유로를 돌려 넓은 평야지대를 곡류하면서 공주시 우성면에서
금강으로 흘러든다.
우성면 일대에는 넓은 범람원과 사주가 발달하고 이것을 개간한 논이 펼쳐지며 특히, 논의 경지정리가
정연하게 이루어져 충청남도 곡창지대의 일부를 이룬다. 예로부터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의 지역은
남사고(南師古)가 선정한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로 유명한 피난처였다
유구천 / 금강 합수점(17:25)
유구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하여 유구천이 금강에 입수하고 범여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데 참으로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이제 금북정맥에 12개의 지맥중 원진지맥 2구간만 하면
금강
북쪽의 지맥길은 종료하는 셈이다
인증샷
합수점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되돌아 가는 길에서 만난 금강(錦江)
금강(錦江)은 금.호남정맥 전라북도 장수군 신무산 (897m)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호서지방을 거치며
논산시 강경읍 에서부터 충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루면서서해 로 흘러 들어가는 392km의 강이다.
금강은 한강.낙동강에 이은 대한민국3 대 강으로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무주, 진안, 금산,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 공주,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지나 군산만에서 서해로 유입된다
금강은 국가하천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가하천으로 지정된 금강의 주요 지류로는 갑천,논산천, 미호천이 있고
비옥한 호서평야가 형성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호수 같은 강
즉 호강이라고 불리기도 하였고,금산군에서 적벽강, 부여군에서 백마강, 공주시에서는 웅진강(熊津江)이라고
부르기도 , 백제는 금강을 통한 수운이 편리하고, 군사상 방어가 용이한 공주로 도읍을 옮겨왔으며 이후 중국과
백제를 잇는 교통로로서 금강을 이용하였다. 공주에서 천도한 부여 지역도 금강의 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백제는 금강을 통하여 중국 그리고 일본과 교류를 하였다. 당시 곰나루에서 출항한 선박은 한 달 쯤 후에는
오사카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 1900년대에 금강 수계를 왕래하던 배의 숫자는 매년 1만 5천 척 정도였으며군산, 강경, 공주,
부강 간에는 정기기선이 운행되었으며, 기선의 경우 군산에서 부강까지는 8시간, 그 반대는 5시간
정도가 걸렸다.
또한 범선도 운행되었는데 군산에서 공주까지
이틀, 공주에서 군산까지는 하루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아쉬운 맘에 다시한번 부엉산을 바라본다
돌아오는 길에 맥산꾼 2명을 만난다...평택에서 오셨다는 이 두분...아침 6시반에 분기점인 갈재고개에서
이곳 합수점까지 원샷으로 해결하시는 중이란다... 느림보인 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합수점으로
가시는 저 분들...호화준족에 부럽기도 하고 사람이 맞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장구머기 마을까지 걸어왔는데 금강에서 낚시를 하고 가시는 분이 있어 손을
들었더니만 공주시내에 사시는 분이라면서 터미널까지 태워 주시는 바람에 편하게 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18시 20분...표를 예매하려는데 가장 빠른 시간대가 19시 30분 차표이다
공주발 → 서울행 버스표
시간이
1시간 10분이나 남아서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근처 식당에 가서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국밥 한 그릇에 맥주 한병으로 지맥 하나 접수한 것을 홀로 자축하며 저녁을 해결하고
터미널로
향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오늘은 비가 안오고 낼 온다고 해서 미리 왔는데
뭐여?
19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막힌다면서 남천안 I.C까지 차가 국도를
달린 다음에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서울로 향하는데 밤 10시가 조금 못되어 서울에 도착한다
첫댓글 또한지맥을(해치우셨네요)?축하합니다!머지않아 고지가보일듯합니다!무탈하게 산행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감사!!! 역마살 땜에 뭔 고생인지 모르겠네요
범여님,
이젠 거리가 짧은 지맥만 남아 있는 거 같습니다.
지맥 마무리 산행기를 계속해서 볼 수 있겠네요.
항상 안전 산행하세요.
162지맥 마무리까지 응원하겠습니다. :)
회장님 감사합니다
형님
여름 삼복더위 오기전에
몸 보신 차원에서 얼굴 함 보고 식사라도 하시죠
약속 잡겠습니다.
계산은 형님 하는 것으로
에라이 나쁜 ㄴ .... 문딩이 코구멍에 마늘을 빼먹을 넘이네
이니한테 세금으로 다 털리고 연금 몇푼으로 생활하는 형한테
밥을 사라꼬...이게 산방 대장하더니 독립군 알기를 장기판에 卒로 아나
아그아! 올챙이시절 생각도 좀 해라...화령재의 촌티나는 모습
아직도 생생한데 넘 마이 컸구나...생각안나면 이쁜 시화님한테 물어봐라
니보기 삻어서 아무래도 이사가야 쓰겠다
고생많으십니다. 민간인들과 한판도 하시고,,,,건승하시고 편안하게 맥길을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ㅎㅎ
감사해요!...지난 9일에 세종은 잘 갔다오셨나이까?
여기는 산행구간이 좋아서 한번 가보고 싶네요. 형님 수고 많으셨어요
그냥 꽃길(55산)만 걸어소서...생각보다 그리 만만치는 않아요
개고생은 나하나로 끝냅시다
형님
강남 알알알 부자님께서
산방 후배님들에게 저녁 함 진행 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