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종 2일 ·
<마음에 꽂힌 칼 한 자루, 마음에 꽂힌 꽃 한 송이>
s1.
“시신 인수 포기합니다.”
내가 후견하던 노인이 사망했다.
주민센터에 확인해 보니 가족은 조카뿐이고 연락처가 있었다.
조카에게 연락했더니 돌아온 반응이다.
주민센터 상담일지에는 조카의 당부가 적혀 있었다.
‘사망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로도 절대 연락하지 말 것.”
S2.
“여기서 언제 나가. 집에 가고 싶어. 어머니가 기다려.”
노인은 요양원으로 찾아온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노인은 집에서 돌봄을 받다가 치매와 배회가 심해져 요양원에 입소했다.
“어머니 돌아가셨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노인은 다른 말로 응대했다.
“집에 가야 해 돈이 없어서 폐지 주워서 어머니 고기 사드려야 해.”
요양보호사들은 노인을 이렇게 말한다.
“말이 없고 조용하고, 얌전한 분이셔요.”
S3.
“삼촌과 할머니, 제가 함께 살았어요.”
“저도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해서 할머니와 살게 됐고.
삼촌은 결혼을 안 해서 독립을 안 한 상태였어요.”
“어려서 삼촌한테 많이 맞았어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때렸어요.”
놀랐다. 노인은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폭력을 행사했다는 게 연상되지 않았다.
“삼촌은 술만 먹으면 아무데서나 쓰러져서 자고 일을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 봐서라도 삼촌을 챙기려고 했는데,
돌보다 돌보다 힘에 부쳐서 지하 월세방을 얻어주고 연을 끊은 겁니다.”
“이제 와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를 마음 없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조카는 단호했다.
“조금의 유품과 유산이 있어요. 조카분이 인수하시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국가에 귀속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삼촌은 한 번도 돈을 벌지 않았는데,
지금껏 생활한 것 자체가 국가의 도움이었으니까요.”
S4.
“평소에 조카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다음 날 다시 조카에게 전화했다.
“내가 죽고 나서 남는 돈이 있다면
조카에게 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삼촌이 남긴 재산을 정리해 보니 2천만 원이 조금 넘어요.”
“삼촌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시고, 받아 주셔요.
그리고 삼촌의 마지막을 함께 배웅해 줬으면 합니다.”
“후견인님과 어제 통화하고 나서 남편하고 이야기했더니
왜 그랬냐고, 장례를 치러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장례 일정을 잡아 주시면 저와 남편은 꼭 가고요.
동생들한테도 연락해 볼게요.”
"그런데 장례식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삼촌이 남긴 돈으로 충분합니다."
S5.
무 빈소 장례를 치르고, 유골은 양재동 추모 공원에 산골하기로 했다.
노인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입관식에 참여 했다.
지역의 치매 안심센터 직원들, 후견인, 요양보호사,
조카 부부, 조카의 남동생 부부, 조카의 여동생. 노인의 형수까지.
S6.
“왜 누나가 독단적으로 처리해. 같이 상의해야지.”
“여태껏 삼촌에 대해서 전혀 신경 안 쓰던 너네가 이러는 게 이해가 안 돼”
“너네 혹시 돈 때문에 그러는 거야.”
유골을 받기 위한 대기실에서 조카 부부와 동생 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대기실에 들어가려다 소리를 듣고 자리를 피했다.
S7.
조카에게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를 건넸다.
조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입관식 때 삼촌 얼굴 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삼촌, 미안해 끝까지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도 좋은 후견인 만나서 행복했을 것 같아“
“저도 입관식때 어르신에게 말했어요.
여기 조카가 왔어요. 어르신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신대요.“
“이제 하늘에서는 멋진 삼촌이 되어 늘 조카를 지켜주시길 바래요.”
어르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조카는 소리 내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락하고 지낼 걸 그랬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삼촌에게도 그렇고.”
말은 안 했지만 우리는 안다. 만약 연락하고 지냈다면
나도, 치매센터도, 요양보호사도, 조카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으리라.
그러면 조카는 또 견뎌내지 못했으리라.
탈 가족화, 탈시설화가 초고령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의 돌봄의 방향일 것이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다.
왜 특정 후견인이 장례까지 치러 주려고 하느냐.
조카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하면
무연고 장례를 치르면 되는데, 굳이 조카를 설득하려고
노인이 하지 않은 말까지 하며 설득하느냐며 화를 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노인의 입관식에 모여서 마지막 배웅을 했다.
마음에 꽂힌 칼 한 자루 보다 마음에 꽃힌 꽃 한 송이가
더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한 노인의 죽음은 장례는 화해와 용서의 장이기도 하니까
최용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다.
왜 특정 후견인이 장례까지 치러 주려고 하느냐?"
당사자가 아닌 주변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히려 힘들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되네요.
가족과 친척도 반대하고, 심지어 주변 지인들로부터도 공감받지 못했는데 끝까지 진행하신 그 마음은 고집이었을까?
"한 노인의 죽음과 장례가 용서와 화해의 장이 되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는, 점점 홀로 사는 것이 보편화되가는 요즈음, 다시 한 번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