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 장로가 연예인 교회에서 하용조 목사님의 지도하에 다른 연예인들과 성경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하 목사님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계실 때, 교회등록한 지 얼마되지 않은 청년이 “처녀가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어요. 그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며, 사실이 아닌 거짓이요, 신화입니다”라며, 반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 목사님의 성경 강의가 중단되었고, 주변은 어수선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성경공부 시간의 집중이 깨졌습니다. 이로 인해, 이제껏 조용히 지켜보던 구 장로님이 그 청년에게 “야 임마, 남편인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 믿어!”라고 한마디 함으로, 청년의 반박이 중단되었고, 그 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한 바탕 대소하며, 하 목사님의 성경 강의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구 장로님의 지혜와 믿음에 감탄하였습니다. 여러분, 올 다사다난했던 올 2022년에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돌아왔습니다. 성탄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는 날이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참 메시야이심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민 24: 17절의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구절을 통해, 메시아 탄생의 예언을 믿었기에, 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밤마다 이슬을 맞으며, 별의 징조를 연구하며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기다리던 별이 나타나자 단호하게 따라나섰습니다. 성도에게는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마음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틀림없이 이방인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이러한 호칭에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는 물음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질문이요, 새로운 임금의 통치를 알리는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물음 앞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크게 소동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찾고 구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성탄을 축하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는, 예수님은 없고 축제만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기쁨으로 축하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거절하거나, 증오한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외식주의였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훌륭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방해하다가 결국,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처참한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같이 반응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하여,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하고 예물을 드렸던 것처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성탄절을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 - 2절을 보시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합니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속에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상인물도 꾸며낸 이야기도 아님을 본문이 증거합니다. 온 인류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 에,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부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의 동방박사들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고,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사렛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성도들 모두가 영적으로는 유대인입니다. 그것은, 믿음 안에서 성도된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을 비롯하여,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만나 그들이 전하는 구약의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장소가 베들레헴임을 알았고, 또, 그들을 인도하던 별이 계속하여 그들을 인도함으로, 그들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다윗이 태어난 고향이요, 다윗의 도성이었습니다. 또,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으로 생명의 떡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심을 나타내 주는 장소임을 지명으로 나타냄을 의미합니다. 또, 본문 2절을 보시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경배하려고 왔습니까? “유대인의 왕”입니다. 이방 사람인 그들이 친히,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눅 2: 10을 보시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평탄하지 않은 길을, 오직 별을 따라 온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날 때,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별이 그들을 인도했던 겁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소요하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하여 먼 거리를 왔습니다. 성탄절을 맞은 오늘 우리도 일생동안, 이방사람인 동방박사들처럼,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온 인류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을 경배하며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7 - 8절을 보시면,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합니다. 위선이 아닌 순전한 마음으로,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헤롯은 동방 박사들을 속이며, 그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합니다. 본문 7절에서 헤롯은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진정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으로 보이나, 그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본문 이하의 16절을 보시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라고 합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말을, 예수님이 자신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내는 쿠데타의 지도자로 여기고, 질투했던 겁니다. 그는 이미 약 70세였지만, 권력을 탐하는 자였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을 죽이고자 예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잔인한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자세히 대답한 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집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서, 그들의 본심은 권력을 탐했던 자들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헤롯의 왕좌가 아니며, 권력을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욕심으로 가득찬 그들은 알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들처럼, 내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나사렛 예수를 따른다면, 올바른 성도의 길, 올바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안일만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커다란 위선이 되며, 이것은, 내세에서나 금세에서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본문에서 헤롯은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알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헤롯의 목적은 전혀 달랐습니다. 헤롯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한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동방 박사들을 먼 이방에서 인도하였던 별이나,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들은 천사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겁니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님의 표적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불행 중의 불행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혹시나 이러한 헤롯과 제사장, 서기관들과 같은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베푸셨던 그 은혜를 오늘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베풀고 계심에도, 성경에 기록된 그 기적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며 불평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예전에 만났던 택시 기사 분은, 자신도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며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는 데, 예수님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하겠냐며, 목회자들은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과 행하심이 기사님의 소망과 똑같다면, 하나님이 천지의 주관자이겠습니까? 어린 자녀가 부모의 생각과 가르침을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신다면, 하나님은 이미, 기사님보다도 못한 어린 자녀와도 같을 텐데, 그러한 하나님을 믿을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라며, 사 55: 8의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는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이 천지의 주관자이심을 믿고 다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의 반열에 계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아도 홍수로 세상을 심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었고,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출애굽과 가나안으로의 인도를 이스라엘이 믿었던 것처럼, 성도인 우리도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로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1 - 12절을 보시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현실이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시면,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동방 박사들은 세 가지의 예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는 세 사람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방 박사의 수가 이 보다 많든 적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세 가지 예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소유하신 “왕권과 신성과 인성”입니다. 이 땅에 왕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며, 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의미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아뢰는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고 합니다. 어찌,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헤롯에게 다시 가지말고,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귀국길에 오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헤롯의 본심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가룟 유다와 같이, 그를 버리셨다는 겁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말입니다. 두려운 말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성도라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하나님께서 헤롯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행하신다면,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구원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위선이 아닌 순전함으로 믿고 따르는 겁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창 15: 5 - 6을 보시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합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현실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입니다. 요즘,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암담합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암담한 현실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키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