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남원리 630번지(네이버 지도에서는 630번지는 없고 631번지만 나온다.)
김순희(金淳熙)는 1908년에 출생하여 1933년에 순국하였다. 그는 남원리 630번지에서 김계윤(金桂潤)의 장남으로 태어나 1929년 3월 서울중앙고보에 진학하여 열심히 수학하였다. 4학년 때 1927년 3월에 조직된 비밀결사 조선학생전위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선전부장을 맡았다. 이 동맹의 강령은 ①제국주의 반대 ②사회주의 연구였다. 중동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1929년 5월에서 6월에 걸쳐 서울 관훈동에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세포조직인 독서회를 각급학교에 결성하도록 하였다.
동년 11월 서울 봉익동 자기 집에서 정종근(鄭鍾根)·김태래(金泰來) 등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들의 즉시 석방과 식민지 교육정책을 반대하는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때 제주인으로는 월정리의 김인배와 김길수, 안성리 이원우, 북촌리 부병준, 함덕리 송건호 등이 함께 체포되었다. 가파도 출신 이정백은 피신하여 체포되지 않았다.
그는 1931년 4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사가 6년을 구형했는데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가혹한 고문후유증으로 1933년 12월 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순희 지사의 유골은 남원읍 충혼묘지에 안장되었다. 남원읍 충혼묘지는 처음(1952년 12월 15일)에는 남원1리 2339번지에 있었으나 1991년 2월 26일 수망리 산182-4번지로 옮겨졌다.(남원읍역사문화지, 제주인물대사전) 김순희 지사가 태어난 집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201225 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