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비어슬리~>
토욜 펜쇼 첨 참석. 우와 줄 길어. 명찰로 빨리 입장. 신나신나. 슈나이더 볼펜심 득템. 오 파카51, 오로라, 펠리칸, 몽블랑 우와~. 외국사람도. 펜 거치대 멋져부러. 노트 나중에 꼭 사야지. 아참 당근가야된다. 고고 수유역. 아 판매자 왜 안와... 아고 어르신 만년필은?? 집으로 따라오게. 기연을 얻는 건가? 구양신공?? 그런 건 없고 골동품 잔뜩. 옛날 태엽 카메라가 차르르륵 돌아감. TA-312(군용 전화기) 닮은 청일전쟁 때 전화기도 보고, 80년 넘은 듯한 작은 티비도 보고, 온갖 조각품 다 보고. 아 잘 봤다..... 근데 여긴 어디 난 누구.....
펜쇼 후기 2부는 1부에 이어 번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
아니 잠깐!!!! 어르신~ 만년필은요????
"아 그렇지 내가 만년필 보여준다는 게
젊은 사람이 재밌어해서 골동품들 보여주느라 잊었네.
사람들이 원래 여기오면 시간가는 줄 몰라"
그래요. 정말 신기하긴 했으니까요.
짧은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우리의 원래 목적인
비즈니스에 관해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다른 게 전공이라 만년필은 잘 몰라.
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도 돼요~"
라고 하셨는데 나도 만년필 입문자라 보는 눈이 없긴 매한가지.
건네주신 오래된 파카 박스에는 파카45가 너무나 깨끗한 상태로 있었고
파란색 자판(어르신의 재팬 발음) 만년필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새것 상태로 있었습니다.
비좁은 방에 두 만년필이 나란히 사이좋게 누워 있었어요.
두 자루를 5만원에 주셨는데, 가격이 문제겠어요?
새 것 상태로 보이는 오래된 만년필을 구한 것 자체로 신이났어요.
'초보자들이 언제나 찾아오길 바라는 눈 먼 NOS 빈티지가 나에게도 온 걸까?'
고급이건 보급형 제품이건
오래된 세월이 담긴 빈티지 펜이 새 것이라면 품에 안을 수밖에 없죠.
그렇게 만년필을 받아 나가려고 하는 찰나,
어르신이 다급하게 붙잡습니다.
"잠깐 기다려 보게!!"
'뭐지? 결국 신장 빼가는 건가? 내가 골동품에 예를 갖추지 않아 화가 나셨나??'
라고 순간 두려움이 스쳤지만 어르신이 뭔가 내밀고 계셨습니다.
"이쁜 사람들 보면 뭐하나 주고 싶어서 그래. 이것 가져가요~"
그것은 적동으로 만든 가재였습니다.
적동으로 맨든 가재... 이건 굉장히 귀한 거죠.
황동은 많이 들어봤지만 무식한지라 적동의 존재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손에 들어보니 크기에 비해 제법 묵직합니다.
구석구석 만듬새가 진짜 가재같았어요.
갑각류 등껍질의 질감과 배 아래와 다리, 꼬리까지 굉장히 디테일합니다.
금속인데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두 집게발 사이의 촉감이 옻칠된 나무처럼 반들반들한 느낌입니다.
이상하게 마음에 쏙 듭니다.
펜 보다 마음에 더 듭니다.
어르신이 장난감처럼 책상에 올려두라고 주셨겠거니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에 두 번 세 번 인사를 드리고 받았습니다.
자 다시 서둘러 펜쇼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수유역에서 오이도행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지하철에 앉아서 가는 중에 주머니 속의 적동가재가 만져집니다.
가재의 집게발 사이에 손가락이 쏙 들어갑니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 이 녀석 만년필 거치대로 딱이겠는데.....'
갑자기 더 설레여옵니다.
가방에서 평소 가지고 다니던 만년필을 집게에 올려봤더니.....
히야~~~ 용맹하고 충직한 기사가 구릿빛(적동이니까 당연하겠지만) 몸을 뽐내며
마라톤 평원을 달려와 아테네에 승전보를 알리는 병사처럼 만년필을 높고 굳게 받쳐들고 있었습니다.
우왕 너 정말 마음에 든다아아아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 받았을 때 모양만 보고도,
아니 어르신이 만년필을 사간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면
펜을 받치는 용도라는 걸 바로 알았어야 했는데
감각이 워낙 둔해서 이제야 용도를 알아채고 두근두근 합니다.
'적동아 앞으로 나와 함께 여러 펜들을 리뷰하자꾸나.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더 즐거울 것 같구나.'
이 시간만큼은 소설 속 주인공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도 기연이 찾아오는구나.
뜻하지 않게 평생 함께할 보물을 선물받았으니 이게 기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러 만년필 써보고 사용기로 남기며 즐겨보겠다고 생각한 만린이에게
때마침 찾아온 행운이라 적동이가 보물처럼 여겨집니다.
앞으로 정말 이 녀석과 부지런히 함께 일(리뷰를)해보려고 합니다.
수유리 만물 어르신 감사합니다~~~
종종 찾아뵐게요~
이제 본론으로.
2024년 봄 서울펜쇼 후기 <2부>
그렇게 다시 펜쇼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적동이를 주머니에 넣고 아직 못 본 데스크들을 열심히 찾아갑니다.
가자 적동아~
도미넌트 인더스트리 데스크입니다.
이번 펜쇼의 공식 잉크 제작사이죠.
2024년 봄 펜쇼 공식 한정 잉크를 구매해 볼까요?
네 역시 매진입니다. 오전에 인구밀집도로 보아 한 시간도 안 돼 동날 것을 예상했습니다.
미련없이 관전자 모드로 구경합니다.
사실 저는 아직 잉크에는 크게 매력을 못 느끼겠어요.
정확히는 엄두를 못 내겠어요. 잉크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기본 잉크라고 생각되는 파카 큉크 외에 잉크는 딱 하나 사봤습니다.
'글입다'의 오즈의마법사 시리즈 중에서 '겁쟁이 사자'를 애인님께 선물했거든요.
요즘 2030 여성들이 만년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예쁜 잉크를 사용하는데 매력을 느껴서라고도 하는데
도미넌트의 잉크를 보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 수만 없을 뿐 예쁘지 않은 색이 없더군요.
'가난하다고 해서 색감을 모르겠는가'
잉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가 오전 일정 중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유명 유튜버 '잉크잉크'님 데스크에 방문한 일입니다.
잉크잉크님은 만년필을 콘텐츠로 다루시는 유튜버이신데
제가 처음 만년필을 찾아볼 때 감탄하면서 봤던 분이었어요.
그 분이 와 계신다는 걸 알고 달려갔으나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찍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잉크잉크님이 내신 책으로 필기체 연습 중이었기에,
저자의 사인을 받으러 가서 요렇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후후후 '연습의 흔적이 너무 멋져요~' 라고 보이시나요?
오전에 오신 분들은 다 새 책에 사인을 받아가셨다는데
연습한 책은 제가 오전 중 처음이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실물로 보니 주위까지 밝아지는 착함착함 아우라가 뻗쳐 나오는 것 같았어요.
잉크님 유튜브 더 자주 찾아가겠습니다~
<다시 오후 시간으로>
오후가 되니 그나마 사람들이 줄어서 오전에 가보지 못한 데스크를 둘러봅니다.
영웅펠리칸님의 데스크를 오후 늦게 방문.
연필도 꼭 하나 구하고 싶었는데 딱 맞게 소포장된 연필이 있었어요.
어릴 때 부터 삼남매 중 유일하게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없어서 그림에 담을 쌓고 있었는데
요즘 그림도 재미있어져서 조금씩 그려보고 있었거든요.
유튜브에서 꼭 저런 식의 연필과 지우개를 준비물로 준비하랬어요.
유튜브는 진리이니까 어쩔 수 없이 사야겠네요. 1만5천원 주고 가방에 넣었습니다.
적동이도 합리적인 구매라고 주머니 속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구경만 하세요.
압도적인 컬렉션에 그저 아득해집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지?'
'혹시 설마 내 미래가 저렇..게..... 아니야 난 달라. 난 돈이 없자나. 갠차나 맘껏 좋아해도 돼'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구경을 합니다.
그 중 가장 크고 오묘한 녀석이 보입니다. 펠리칸 미스터리 시리즈 중 피라미드라고 하네요.
여는 방법도 다릅니다. 금색 몸통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배럴 아래의 검은색을 돌리면 펜이 나옵니다.
뚜껑이 전체 몸통의 80% 길이네요.
파라오의 관 모양인가? 피라미드 2/3 지점 어딘가에 있다던 왕의 방을 암시하나. 인문학 교양이 없어 제 마음대로 헛된 추측을 해봅니다. 뚜껑에서 빠져나온 펜은 이집트 상형문자 문양이 있고, 검은색 바탕에 금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닙에는 기자의 피라미드 세개가 각인되어 있네요. 이 정도 고급펜들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금색은 순금을, 은색은 순은을 쓰더군요. 혹시 상처가 날까 고이 내려놓습니다.
수십년간 모은 펜이라고 하고 이제는 창원에서 작은 펜샵을 운영하신다고 합니다.
창원에 문구인들은 좋으시겠어요~~ 재밌게 둘러본 김에 홍보용으로 크게 사진 하나 올려봅니다.
몇 걸음 옮겨서 베스트펜 데스크를 이제야 발견.
역시 인기있는 베스트펜이라 늦은 시간에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고 베스트펜 매장 시필을 가보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시간을 못 내고 있네요.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펜 수납함을 봤습니다.
사실 베스트펜 홈페이지에 항상 팝업으로 떴지만 저는 시야를 가리는 팝업창만 보면
빛의 속도로 '현재의 메시지 창을 다시 표시하지 않음. 닫기 □' 버튼을 찾아 닫아버렸거든요.
실물로 보니 지금 제가 쓰 책상에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니 딱 안 맞으면 책상을 저 수납함에 맞춰야겠어요.
하지만 언제나 걸림돌은 예산....... 몇 달 후를 기약해봅니다.
어디가지 말고 있어줘...
스티커와 스탬프를 전문으로 하신 데스크를 지나서~
이제 체력이 방전돼서 주의깊게 보질 못했어요.
데스크 주인님 죄송합니다ㅠㅠ
손뜨개로 만든 파우치 발견.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만년필이 세 타스라도 파우치가 있어야 동행이 가능합지요.
만년필에 어울리는 혹은 그 자체로 가지고 싶은 예쁜 파우치는 필수입니다.
오늘 외유를 허락해준 애인님 선물을 고릅니다.
내 꺼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 꺼 둘.
평소 좋아하는 고양이 파우치로.
선물로 드렸어요. 쓰시던 펜을 꽂아보시더니 좋아하셔서 저도 대만족.
무명노트 데스크에서 눈길을 뺏깁니다.
나도 노트야 많지만 뭔가 격이 다른 노트.
노트 자체도 멋있지만 웬지 글을 저 정도 써야 노트에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아서
구경만 하고 이번에는 패쓰~
'조금만 기다리거라. 금손이 되어 내 너를 탐하리라'
이번엔 글씨 얘기가 나왔으니
별나무체의 창시자 별나무님 데스크로.
'난 악필이다 -> 글이 쓰기 싫다 -> 안 쓰니 더 못 쓰게 된다 -> 지독한 악필이다 -> 글쓰기 싫다 -> .....'
이런 악순환의 고리 안에 갇혀 있었지만 만년필은 잡아야겠기에,
'글씨는 사람의 인격이니 잘 쓰고 못 쓰고가 없어. 내 글씨를 좋아하면 그뿐'
이라고 비겁하게 쌓아올린 방어기제가 예쁜 손글씨를 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머 글씨는 예뻐야 해!!!'
악필교정과 손글씨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주셨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알려주시고,
쓱쓱 글씨 쓰기 시범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손글씨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연습해오신 과정을 말씀해 주셨는데,
연습만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말에 저도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좋은 분께 낚여서 한동안 고생할 것 같아요. 매일 손글씨 연습 중입니다.
가을 펜쇼에서는 별나무님 옆자리에 의자 하나 놓을 실력이 됐으면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제 점점 지쳐가요~~~
다리가 아파서 힘든 나그네는 망언쟁이님의 데스크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지쳐 쓰러져가던 때에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데스크를 만났어요.
잠시 앉아서 쉬어가라시면서 펜을 보여주시고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1920년대 부터 80년대까지 대표 빈티지 만년필들을
아주 좋은 상태로 시필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계셨는데요.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저는 좋았어요.
하나하나 다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100년 된 워터맨은 알파벳과 필기체에 맞게 닙이 대각선 커팅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면서도 써보니 너무 부드러웠고, 쉐퍼의 라이프타임은 그 단단함이 역시 보석상이 평생보증을 내걸며 만년필 세계를 뒤흔들었 저력이 느껴졌습니다. 가운데 길게 생긴 밸런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필기감이 뭐라고 할까.... 쫀득함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운 것 같았어요(몇일 지났다고 손의 감각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 유명한 펠리칸 M100도 명성에 걸맞은 필기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아무거나 계속 쓰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이어서 파카51과 75였는데 앞서 훌륭한 빈티지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51과 75가 상대적으로 조금 뒤처진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망언쟁이님께서 각각 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절반도 기억나지 않네요. 메모해둘걸ㅜㅜ
펜쇼장에서 가장 편안하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펜들 잘 보고 잘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제 거의 다 둘러봤...................다고 생각했으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잠시 후 벌어진 일들로 지금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그 끔찍한 악몽의 시작과 무서운 사건에 대해서는 3부에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언제쯤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3부(마지막화)에서 계속.......
첫댓글 거 안알록님 그리 안봤는데 못되셨네요! 한참 재밌게 읽는데 끊어버리시네!! 그것도 빨간글씨로 매정하게!!! 빨리 다음거 가져오세요!!!!
곧 대령하겠습니다!!!
@안알록 오냐 라고 말하면 건방지겠죠? 오냐의 높임말을 여쭙습니다...
@칼프리스턴75 그리하거라?
@커드 예 마님?!! (이놈에 머슴본능)
@칼프리스턴75 카프리스턴75님 대답하시면 어쩌십니까ㅠㅠㅠ
@커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후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ㅎㅎ 흥미진지 합니다..
저도 별나무체 동문입니다~ㅎ
대망의 마지막화를 기다립니다.ㅎㅎㅎ
으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안알록님 시필 올려 드립니다.
가을 펜쇼에는 시필 조합을 조금 바꿔 볼테니 또 놀러 오셔요 😀
후기가 흥미진진해서 계속 읽게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