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왕과 제후와 장수와 대신이 씨가 있는 것은 아니다는 뜻으로, 사람의 신분은 운이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王 : 임금 왕(玉/0)
侯 : 제후 후(亻/7)
將 : 장수 장(寸/8)
相 : 서로 상(目/4)
寧 : 편안 영(宀/11)
有 : 있을 유(月/2)
種 : 씨 종(禾/9)
乎 : 어조사 호(丿/4)
출전 :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
1️⃣
왕과 제후 그리고 장수와 정승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는 말로 사람의 신분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사기(史記)진섭세가(陳涉世家)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진(秦)나라 때 최초로 난을 일으킨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한 말이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죽고 호해(胡亥)가 즉위 하였으나 그는 환관 조고(趙高)의 손에 놀아나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문(里門) 왼쪽에 살고 있는 빈민들을 변방 근처의 어양(漁陽)땅에 옮겨가도록 하였는데 진승과 오광이 이들을 통솔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들이 대택향(大澤鄕)에 이르렀을 때 큰비가 쏟아져 도로가 무너져 기한 내에 간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기한 내에 가지 못하면 참수(斬首)를 당하게 되었으므로 달아나거나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도망가다가 잡혀 죽느니 차라리 난을 일으켜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장위(將尉)를 살해하고 농민들을 주축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비를 만났으므로 모두 기한을 어기게 되었다. 기한을 어기면 마땅히 죽음을 당해야 한다. 만약 죽임을 면한다 해도 변방을 지키다 죽는 사람이 본래 10명 가운에 6,7명에 달한다. 하물며 남아로 태어나 쉽게 죽지 않는다 했는데 만약 죽으려면 세상에 커다란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소.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평소 폭정에 시달려온 사람들이라 이 말을 듣고 모두 이들을 따랐다.
2️⃣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2세 황제 호해(胡亥)가 즉위했으나, 그는 어리석은 임금이어서 환관 조고(趙高)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러니 정치가 제대로 시행될 리가 없었고, 국정 문란은 백성들의 고난으로 이어져 그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골칫거리인 빈민들을 멀리 변방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그 지휘 통솔을 맡은 사람이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란 자였다. 그들 역시 미천한 출신으로 이주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대택향(大澤鄕)이란 곳까지 갔을 때 큰 비가 와서 길이 막히는 바람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는 형편에 빠져 버렸다. 따라서 관에서 정해 준 기한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만약 기한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법에 따라 참수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가도 죽고 가지 않아도 죽을 판이니, 차라리 큰일 한번 저질러 보는 게 어떻겠나?'
진승이 묻자, 오광도 찬성이었다. '그래. 기왕 죽을 목숨이라면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 버리자구.'
이렇게 의논을 모은 그들은 암암리에 동조자를 모았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감시역으로 따라가는 장위(將尉) 두 명을 처치하고 나머지 병사들을 꼼짝 못하게 제압했다.
다음 일행들에게 호소했다. '우리가 이제부터 아무리 밤낮없이 부지런히 간다 해도 기한 안에 목적지인 어양(漁陽)에 도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거요. 그러니 가 봤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참수형뿐이오. 설령 참수의 칼날을 면한다 하더라도 그 척박한 변경을 지키다 보면 열에 일곱 여덟은 얼마 안 가서 황야에 해골을 굴려야 할 운명이외다. 기왕 죽을 목숨이라면 한번 큰일을 도모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이 어디 씨가 정해져 있소?' 누구든지 세상을 얻으면 다 될 수 있는 것이오.'
그렇잖아도 술렁거리던 군중 심리는 그 열변 때문에 불이 당겨졌다. 그리하여 진나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민중 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3️⃣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
진승이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며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왕후장상 즉 임금이든 제후든 장수든 재상이든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진시황이 죽고 그의 아들 호해가 환관 조고의 계략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진나라는 조고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무렵 진승과 오광은 강제 노역에 차출된 고향 사람들을 인솔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큰 비가 내려 대오는 지체되었고, 결국 기한 내에 도착하기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자 진승은 오광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기한 내에 당도하지 못하면 인솔 책임자는 사형이다. 그렇다면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니 세상을 한번 뒤집고 죽는 게 어떠냐?'
이렇게 해서 진승과 오광 무리는 순식간에 반란군이 되었습니다. 진승은 수백 명을 모아 놓고 '왕후장상의 씨앗이 어찌 따로 있단 말인가? 우리 같은 농민도 왕이 되지 말란 법이 없소. 자, 이 썩어 빠진 세상을 한번 뒤집어 봅시다'고 하였고,
탐관오리들과 국가의 강제 노역에 힘겹게 살아가던 농민들은 일제히 호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진승과 오광은 얼마 가지 않아 내분으로 죽습니다.
하지만 진승과 오광이 내건 새로운 세상의 깃발은 결국 유방에 의해 빛을 보게 되어 진나라의 멸망과 한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집니다.
진승의 이런 의지는 한나라에서 결실을 맺죠. 유방을 비롯한 한나라의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이 대부분 하층 계급 출신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출신이 뭐가 중요합니까? 훗날 그들이 이룬 결과가 중요하지. 한편 유방처럼 한 나라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 요즘도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진승이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며 한 말이다. 그렇다. 누구나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왕후장상 즉 임금이든 제후든 장수든 재상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비와 자식은 용모나 성질이 비슷하여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조가 떵떵거리는 집안이라도 대대로 후손들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능력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어 '씨가 따로 있나'는 속담을 낳았다.
똑 같은 말로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寧有種乎)라는 명구가 있다.
능력은 뛰어나고 포부도 큰데 주위의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뜻을 펴지 못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표현이다. 왕후장상 하유종(王侯將相 何有種)으로 쓰기도 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품팔이꾼으로 지내던 진승(陳勝)과 빈농 출신의 오광(吳廣)이었으니 더욱 와 닿는 표현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도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호해(胡亥)가 즉위한 뒤로는 간신 조고(趙高)가 권력을 좌우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빈민들을 국경으로 징집할 때 통솔하던 진승과 오광은 도중 대택향(大澤鄕)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큰 비를 만나 길이 끊기고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었다.
정해진 기한 내에 가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고 도망치더라도 잡힐 것이 뻔했다. 900여 명을 이끌던 두 사람은 죽는 게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난을 일으켜 나라를 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무리들을 소집했다.
진승이 앞으로 나서 나라의 명을 어기게 되어 꼼짝없이 모두 죽게 됐는데 앉아서 당할 수 없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목숨을 건다면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死即擧大名耳 王侯将相寧有種乎)!'
이렇게 해서 반란의 기치를 높이 들자 주위에서 크게 호응했고 지나는 지역마다 연전연승했다. 이들은 국호를 장초(張楚)로 명명하고 세력을 떨치다 진나라 장수 장한(章邯)의 조직적인 반격에 몰락하고 말았다.
반란군 우두머리 진승이 제국을 망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진섭세가(陳涉世家)에 기록했다. 세가(世家)는 제후나 왕의 기록이다.
진승은 잘 알려진 또 다른 명언을 남겼다. 바로 '참새나 제비가 어찌 고니의 뜻을 알리요(燕雀安知 鴻鵠之志)'란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의 큰 뜻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승도 세력을 잡았을 때 가까운 사람을 내쳐 마부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늘날 더 답답해할 사람들이 온갖 자격증을 갖춘 젊은이들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빈부의 차는 더 커진다. 재력가와 권력층이 자신들만의 더 탄탄한 성을 구축한다면 큰 뜻을 펴 볼 도리가 없다.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왕후장상에 무슨 씨가 있느냐?
1️⃣ 로마의 스파르타쿠스와 진제국의 진승
유럽의 로마제국과 동아시아의 진(秦)제국은 여러 모로 닮은 점이 많다. 로마는 유럽 역사상 일찍이 유례없는 대제국을 이루었고, 진제국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는 통일 전쟁의 대업을 이루었다.
로마는 그리스와 함께 유럽 문화의 기본적인 문법을 일구어냈고, 진제국은 왕조 교체에도 불구하고 2000년간 존속된 황제 지배체제의 모형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로마와 진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문명의 틀을 가꾼 제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로마와 진은 최하층의 민중 봉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로마의 스파르타쿠스(Spartacus)와 진의 진승(陳勝)은 인간 해방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제국의 질서를 뒷받침했지만 이름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반면 제국의 질서를 뒤흔들자 이름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소설, 영화, 드라마, 철학 등의 주제가 되었지만 그의 출신과 이력 등 모든 정보가 분명하지 않다.
그의 존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 있었지만 글로 기록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그의 존재는 위협적이었던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그를 닮은 추종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 정보를 종합하면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 출신으로 검투사(gladiator) 양성소에서 무예를 익혔다.
그는 BC 73년에 약 70여 명의 검투사와 바티아투스가 운영하던 양성소를 탈출했다. 스파르타쿠스 일행은 탈출 뒤에 성공을 자축하고서 그냥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처럼 로마 제국의 최하층에 있는 농노(農奴), 빈농(貧農) 등을 규합하여 한 때 12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맹위를 떨치며 진압군을 연달아 격파했다.
스파르타쿠스는 3년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를 오르내리다가 전략을 두고 내분이 발생했고, 결국 강한 진압군에 의해서 최후를 맞이했다.
진승은 스파르타쿠스보다 약 130여 년 전에 비슷한 인생행로를 겪었다. 그는 자신이 농사지을 땅을 가지지 못해서 용경(傭耕), 즉 품팔이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품팔이꾼으로 전전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가지며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꾸었다. 스파르타쿠스의 진영에 가담했을 빈농과 같은 신분인 것이다.
어느 날 그는 변경의 수자리로 징집을 당했다. 이동 중에 비가 내려서 길이 진창길로 변하자 진승 일행은 계획대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그 결과 아무리 계산을 해도 징집된 일자에 맞춰 도착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진승 일행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파르타쿠스는 알지만 진승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이 아닐까?)
2️⃣ 진승, 밭두둑에서 말한 꿈을 실현할 때를 만나다
진승은 품팔이꾼으로 살면서 남들이 절망을 느낄 때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한참 일하다가 밭두둑에서 잠깐 쉬면서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만약 우리가 출세하여 잘 먹고 잘 살게 되더라도 서로를 잊지 맙시다(苟富貴, 無相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동료를 죽여야 살 수 있는 극악한 조건에 있었지만 서로 동료를 죽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진승도 하루아침에 확 달라질 게 없는 품팔이꾼이지만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갈망했으리라. 두 사람이 처한 삶의 조건은 다르지만 더 나빠질 게 없는 지금을 뒤집는 희망을 가꾸었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동료들은 진승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은 지금 품팔이꾼 주제에 어떻게 출세를 할 수 있겠는가(若爲傭耕, 何富貴也)?' 보통 이러한 말을 들으면 기가 꺾이기 마련이다.
진승은 자신의 미래를 믿었던 만큼 풀이 죽지 않고 정면으로 되받아쳤다. '참새(조그만 새)가 어찌 홍곡(큰 새)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鴻鵠之志哉)!'
자신을 얕보는 사람들을 향해 '참새가 어찌 기러기나 백조의 뜻을 알겠는가?'고 일갈했던 진승의 말은 역사에 남아 현재까지로 전해지고 있다.
다시 진승 일행이 징집 시간에 맞춰갈 수 없어서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진승 일행은 모두 900여 명이다.
수졸들을 인솔하는 두 명의 장위(將尉)가 일행을 진두에서 지휘하는 책임자였다.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오늘날 분대장급에 어울리는 둔장(屯長)이었다.
그들은 징집 시간을 어겼으니 늦게 도착해도 죽고 아예 지금 도망을 가도 잡히면 죽기 마련이었다. 행위는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다. 이것이 행위의 결과를 엄격하게 묻는 법가의 내재적인 결함이었다.
그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음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금 도망가도 결국 죽고 큰일을 벌여도 죽는다. 죽는 게 마찬가지라면 나라를 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은가?(今亡亦死, 擧大計亦死, 等死, 死國可乎)?'
이것은 스파르타쿠스가 애초 도망을 결행할 때 마음에 먹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검투사를 하면서 실력이 좋으면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결국 죽기 마련이다.
이렇게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거나 아예 도망을 가서 싸우다가 죽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스파르타쿠스는 자유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승과 스파르타쿠스는 100년을 사이에 두고 진제국과 로마제국에서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3️⃣ 실패의 미끄럼틀을 급히 내려가다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마음에 떠올리고 발설했을 때 그들도 놀랐다. 반란은 입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은 900여 명을 자유를 찾으려는 전사로 만들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군중의 심리를 흔들어놓을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그들은 먼저 비단에다 주사(朱砂; 붉은색 수은)로 '진승이 왕이 된다(陳勝王)'는 글귀를 써놓고 물고기의 뱃속에 집어넣었다.
다음날 수졸(戍卒)들이 뭣도 모르고 이 물고기를 사서 요리하다가 이 글귀를 발견하고서 진승이 보통 인물이 아니란 걸 눈치 채고 서로 수군거리게 되었다.
또한 어느 날 저녁, 오광이 이동 중에 임시 주둔지의 근처에 위치한 신사(神祠)에 들어가 여우 목소리로 위장하고는 '초나라가 크게 일어난다, 진승이 왕이 된다(大興楚, 陳勝王)'고 소리를 냈다. 이렇게 상황을 몰아가자 수졸들은 진승을 예사 인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아울러 오광은 평소 수졸들을 잘 대해줘서 그들의 인심을 얻었는데, 900여 명의 인솔을 책임지는 장위 두 명을 자극하자, 장위 두 명은 오광을 모욕하고 급기야 채찍으로 때렸다. 그 자리에서 이를 본 화난 군중들은 두 명의 장위를 살해했다.
이로써 진승과 오광은 900여 명 수졸의 통제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렇게 진승과 오광은 품팔이꾼에서 점차 900여 명의 군사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스파르타쿠스가 검투사에서 장군으로 변신한 것과 매우 닮았다.
지도자로 변신한 진승은 대중을 선동하는 뛰어난 연설을 펼쳤다. '여러분들은 비를 만나서 모두 징집 기일을 어기게 되었다. 기일을 어기면 모두 참수형을 당한다. 정상 참작을 받아 참수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수자리를 서다가 60~70%는 죽는다.
장사(壯士)가 죽지 않는다면 그로써 괜찮지만 죽는다면 큰 이름을 남겨야 할 것이다. 제왕이나 제후, 장군이나 재상이라고 해서 어찌 다른 씨를 가지고 태어났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
진승과 오광은 이 연설로 900명의 통제권을 장악한 뒤 주위에서 군사를 더 모집하여 자유를 찾는 반란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들은 이동 중에 연전연승을 거두며 진현(陳縣) 지역을 장악했고, 진승은 왕위에 올라 국호를 장초(張楚)라고 명명했다.
진승은 한편으로 장초를 근거지로 삼아 전국시대의 조나라와 연나라 지역으로 병사를 파견하여 진(秦)제국에 저항하는 전선을 만들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오광을 파견해서 서쪽 제국 진의 수도 함양(咸陽)을 공략하고자 했다.
하지만 처음 기의(起義)를 할 때 진승과 오광 군의 기세가 드높았지만 상황이 뜻대로 전개되지 않자 그들은 차츰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진제국은 초기의 실수를 만회하고서 각지의 반란군과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장한(章邯)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정도로 진승의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하며 진현으로 침공해왔다.
아울러 진승이 조나라와 연나라의 옛 지역에 파견했던 장군들은 진승의 기대와 달리 왕으로 자립해 버렸다. 진승은 진현을 중심으로 군사를 사방으로 파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새나라 건설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진승은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진현에 고립되면서 멸망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다.
이는 스파르타쿠스가 이탈리아 반도를 오르내렸지만 더 이상 자신들에게 호응하는 세력을 얻지 못하자 고립되면서 자멸에 이른 상황과 닮았다.
자유를 향한 열기는 뜨겁고 진지했으나 사태가 장기전으로 진행될수록 반군은 자유의 실현을 널리 확산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4️⃣ 사마천의 '진승' 인물 분석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승을 '진섭세가(陳涉世家)'에서 다루면서 그를 제후로 취급했다. 사마천의 기록화는 훗날 '한서'의 저자 반고(班固)에 의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마천의 기록으로 인해 진승은 들판에 쓰러져간 무명의 용사가 아니라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유명의 인물이 되었다. 사마천은 진승에게 기록을 남기는 애정을 보이면서도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냉정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다시 진승이 밭두둑에서 했던 맹세를 떠올려 보자. 진승이 왕이 되자 그 소문은 빛의 속도로 널리 퍼졌을 것이다.
품팔이꾼이었던 옛 친구가 왕이 된 친구 진승을 만나러 왔다. 그는 궁문에서 진승의 이름을 불렀고 진승을 만난 뒤에도 궁정을 무시로 출입했다.
주위 사람 중 한 사람이 옛 친구로 인해 진승의 위엄이 깎인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왕은 옛 친구의 목을 베었다. 이로부터 진승의 옛 친구 중에 누구 하나 진승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고 찾았던 이들도 진승을 떠나갔다.
또 진승은 왕이 된 뒤 여러 신하들의 직무 수행을 감찰하는 사람을 두었다. 그들은 신하들이 천신만고 끝에 군공을 세워서 돌아오더라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감찰이 가혹해지자 진왕과 감찰관에게 충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처벌을 했다. 이로써 유능한 사람이 진승을 찾지도 않고 찾았던 이들도 진승을 떠나갔다.
진승은 진제국 장한의 거듭된 공격으로 진현을 벗어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마부 장고(莊賈)에 의해 살해되었다.
자유가 이념이 아니라 환상으로 느껴지면 제일 가까운 사람이 지도자의 등에 칼을 꼽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진승은 자신의 주위에 사람들을 내치면서 죽음을 자초했다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은 진승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최초의 기의를 하고서 그가 파견한 왕후와 장상에 의해 진제국이 무너진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르타쿠스는 이탈리아 반도를 오르내리다 레기움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발이 묶인 뒤 로마의 장군 크라수스의 포위망에 걸려들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지만 결국 최후의 일전에서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라수스에게 패배한 것을 1차 죽음이라고 한다면 역사에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록이 한 줄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더 처참한 2차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전과 기억이 없었더라면 그는 1차 죽음으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전하는 이야기꾼에 의해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쿠스는 혁혁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말이 전해지지 않는다. 훗날 문인의 손에서 번역된 말이 그의 말로 대신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진승은 사마천의 손을 만나서 생생한 그의 육성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진승과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전해줄 사마천도 죽은 지 이미 오래다.
우리가 모두 사관일 터인데, 오늘날 사마천이 했던 역할을 대신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지금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먼 훗날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인물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그이를 기록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이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고 있는가?'
▶️ 王(임금 왕, 옥 옥)은 ❶지사문자로 하늘(一)과 땅(一)과 사람(一)을 두루 꿰뚫어(뚫을 곤; 丨部) 다스리는 지배자를 일러 왕을 뜻한다. 王(왕)의 옛 음은 光(광), 廣(광)과 비슷하고 크게 퍼진다는 뜻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또 王(왕)과 皇(황)은 본디 같다. ❷상형문자로 갑골문에 나온 王자는 立(설 립)자와 비슷한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대에 권력을 상징하던 도끼의 일종을 그린 것으로 금문에서는 도끼가 좀 더 명확히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다시 바뀌면서 소전에서는 王자와 玉(구슬 옥)자가 혼동되어 해서에서는 王자에 점을 하나 더해 玉자 王자를 구별하게 되었다. 그래서 王(왕, 옥)은 (1)임금 (2)지난날 중국에서, 삼대(三代) 때에는 천하를 통일한 사람을 뜻하였으나 주말에는 제후(諸侯)를 이르는 말이었으며, 진시황(秦始皇) 때에 황제(黃帝)의 칭호가 생긴 후로는 황제가 황족(皇族), 공신(功臣) 중에서 봉하는 작위로 썼음. 곧 황제보다 한 등급 아래의 칭호임.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高句麗) 건국 초기부터 사용하였으며, 이어 백제(百濟), 신라(新羅)에서도 사용했음 (3)덕(德)으로서 천하를 다스린 사람 (4)일정한 분야에서나 동류(同類) 중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세력을 잡고 있는 사람, 또는 그러한 것. 접미사적으로도 쓰임. 으뜸 (5)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임금, 천자(天子) ②수령(首領) ③으뜸 ④할아버지, 할아비 ⑤왕 노릇하다, 통치하다 ⑥왕업(王業)을 이루다 ⑦왕으로 삼다 ⑧바로 고치다 ⑨왕성(旺盛)하다 ⑩크다 ⑪(보다)낫다 ⑫(향하여)가다, 그리고 ⓐ옥(玉)(옥)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황(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좇을 종(從), 백성 민(民), 신하 신(臣), 종 복(僕), 손 객(客), 손 빈(賓)이다. 용례로는 같은 왕가에서 차례로 왕위에 오르는 왕들의 계열 또는 그 왕가가 다스리는 동안을 왕조(王朝),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 또는 임금이 어진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왕도(王道), 임금의 집안을 왕실(王室), 임금이 사는 궁전을 왕궁(王宮), 임금의 자리를 왕위(王位), 임금이 날 조짐 또는 임금이 될 조짐을 왕기(王氣), 임금의 아내를 왕비(王妃), 임금의 아내를 왕후(王后), 임금의 묘를 왕릉(王陵), 임금의 일가를 왕족(王族), 임금의 권리를 왕권(王權), 임금의 목숨 또는 임금의 명령을 왕명(王命), 임금을 도울 만한 재능을 왕재(王才), 나라의 임금 곧 왕국의 주권자를 국왕(國王), 황제나 국왕의 총칭을 제왕(帝王), 몸이 건강하고 기력이 왕성함을 강왕(康王), 임금을 도와서 나라의 큰일을 할 만한 인물을 이르는 말을 왕좌지재(王佐之材), 임금이라도 국법 앞에서는 사사로운 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말을 왕자무친(王者無親), 왕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시세를 따라 진퇴함을 이르는 말을 왕자승세(王者乘勢), 안으로는 성인이고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 곧 학식과 덕행을 겸비함을 이르는 말을 내성외왕(內聖外王) 등에 쓰인다.
▶️ 侯(제후 후, 어조사 혜)는 ❶형성문자로 帿(후), 兮(혜)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옛 자형(字形)은 후(厂+矢)로 활을 쏘아 맞히는 과녁의 뜻의 회의자(會意字)이다. 또 왕후(王侯)의 侯(후)의 뜻에 빌어 쓰여졌다. 사람인변(亻)部와 (厂+矢)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侯자는 '제후'나 '임금', '과녁'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侯자는 人(사람 인)자와 厂(기슭 엄)자, 矢(화살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기슭에 화살이 꽂혀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제후란 변방에서 일정 부분의 영토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던 군주를 말한다. 侯자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일부에서는 활을 쏘는 실력으로 제후의 지위가 정해졌다는 설이 있다. 또 제후가 다스리든 지역은 이민족이 사는 변방에 있기에 이 지역을 방어하는 역할을 표시하기 위해 영토의 끝을 의미하는 厂자와 矢자가 결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侯(후, 혜)는 (1)후작(侯爵) (2)제후(諸候) (3)솔 (4)5일간을 일컫는 말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제후(諸侯) ②임금 ③후작(侯爵: 다섯 작위 중 둘째 작위) ④과녁 ⑤오직 ⑥어찌 ⑦아름답다, 그리고 ⓐ어조사(語助辭)(혜)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조그마한 나라의 왕을 후왕(侯王), 봉건시대에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인민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제후(諸侯), 천자에게 조공을 하는 작은 나라의 임금을 열후(列侯), 천자에게 조공을 하는 작은 나라의 임금을 봉후(封侯), 제후 중에서 관위가 높은 사람을 통후(通侯), 적군의 동정이나 지형 등을 몰래 탐지하기 위하여 먼 곳으로 파견되는 일을 원후(遠侯),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르는 말을 제후국(諸侯國), 일만호의 백성을 가진 제후 곧 세력이 큰 제후를 일컬는 말을 만호후(萬戶侯),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제후를 이르는 말을 만리후(萬里侯), 제왕과 제후와 대장과 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왕후장상(王侯將相), 옛날 수나라 임금이 뱀을 도와 준 공으로 얻었다는 보배로운 구슬을 이르는 말을 수후지주(隋侯之珠) 등에 쓰인다.
▶️ 將(장수 장/장차 장)은 ❶형성문자로 将(장)의 본자(本字)이다. 문자의 오른쪽 부분은 月(월; 肉)과 寸(촌)을 합(合)한 모양, 옛날에는 肉, 月과 人(인)을 합(合)한 모양으로나 또는 肉, 月과 手(又; 손)을 합친 모양으로도 썼다. 고기를 손으로 가지는 일이라 생각된다. 음(音)을 나타내는 爿(장)은 몸을 의지하는 침대에서 의지(依支)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將(장)은 어린아이의 손을 끌거나 노인의 팔꿈치를 잡거나 하여 걸음을 돕는 일로, 나중에 壯(장; 씩씩한 남자)과 결부되어 군대가 의지(依支)로 삼는 사람에서 군대를 이끄는 대장(大將)의 뜻으로 쓴다. 또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將자는 '장수'나 '장차'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將자는 爿(나뭇조각 장)자와 肉(고기 육)자,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將자의 갑골문을 보면 爿자에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큰 평상을 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肉자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갑골문에서의 將자는 혼자서도 평상을 들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을 뜻했다. 참고로 지금의 將자는 '장차'라는 뜻으로도 가차(假借)되어 쓰인다. 그래서 將(장)은 (1)장수(將帥), 장군(將軍) (2)준장(准將), 소장(少將), 중장(中將), 대장(大將)의 통틀어 일컬음 장관(將官) (3)조선(朝鮮) 시대(時代) 때 오위(五衛), 내금위(內禁衛)의 으뜸 벼슬 종2품(從二品) 문관직(文官職)임 (4)장기에서, 초(楚) 한(漢)자를 새긴 짝 장수를 나타내는 짝임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장수(將帥), 인솔자(引率者) ②장차(將次) ③문득 ④청컨대 ⑤무릇, 대저(大抵: 대체로 보아서) ⑥만일(萬一), 만약(萬若), 혹은(或-: 그렇지 아니하면) ⑦또한, 한편 ⑧거의, 대부분(大部分) ⑨그리고, 그리하여 ⑩오히려 ⑪원하건대, 바라건대 ⑫어찌 ⑬거느리다, 인솔(引率)하다 ⑭기르다, 양육(養育)하다 ⑮동반(同伴)하다 ⑯행(行)하다, 행동으로 옮기다 ⑰나아가다, 발전하다 ⑱가지다, 취하다 ⑲받들다 ⑳지키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장수 수(帥)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병사 병(兵), 마칠 졸(卒), 선비 사(士)이다. 용례로는 장교와 사병을 통틀어 장병(將兵), 군사를 거느리는 우두머리를 장수(將帥), 군을 통솔 지휘하는 무관을 장군(將軍), 군에서 소위 이상의 무관을 통틀어 이르는 장교(將校), 장군의 미칭을 장성(將星),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앞으로 늘어 나감이나 순조롭게 나아감을 장취(將就), 씩씩하고 왕성함을 장성(將盛)앞으로나 차차를 장차(將次), 때가 가깝게 됨을 나타내는 말을 장근(將近), 받아들여 순종함을 장순(將順), 기름 또는 양육함을 장양(將養), 우두머리 되는 장수 또는 운동 경기의 팀을 통솔하는 선수를 주장(主將), 항복한 장수를 항장(降將), 무술에 뛰어나고 군대를 거느려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무장(武將), 손님 대우를 받는 장수를 객장(客將), 늙은 장수 또는 싸움의 경험이 많아 군사에 밝은 장수를 노장(老將), 이름난 장수를 명장(名將), 용맹스러운 장수를 용장(勇將), 범처럼 용맹스러운 장수를 호장(虎將), 사납고 굳센 장수를 맹장(猛將), 저편의 계략을 미리 알고 이를 이용하는 계교를 일컫는 말을 장계취계(將計就計), 장래를 설계함을 일컫는 말을 장래설계(將來設計), 장수 집안에서 장수가 남을 일컫는 말을 장문유장(將門有將), 장수나 재상이 될 만한 인물을 일컫는 말을 장상지재(將相之材),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뜻으로 학업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함을 일컫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는 뜻으로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독불장군(獨不將軍), 많은 전투을 치른 노련한 장수란 뜻으로 세상일에 경험이 많아 여러 가지로 능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전노장(百戰老將),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으로 어떤 일에 크게 성공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을 개선장군(凱旋將軍),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 양명함을 이르는 말을 어룡장화(魚龍將化) 등에 쓰인다.
▶️ 相(서로 상, 빌 양)은 ❶회의문자로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木)를 살펴본다는(目) 뜻이 합(合)하여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본다는 데서 서로를 뜻한다. 나무에 올라 지세(地勢)를 멀리 넓게 보는 모습, 목표를 가만히 보다, 보고 정하는 일, 또 보는 상대, 상대의 모습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지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에 木과 目으로 합(合)하여 쓴다는 설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相자는 '서로'나 '모양', '가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相자는 木(나무 목)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相자는 마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相자의 본래 의미도 '자세히 보다'나 '관찰하다'였다. 相자는 나에게 필요한 목재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자세히 보다'를 뜻했었지만, 후에 나무와 눈의 대치 관계에서 착안해 '서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相(상, 양)은 (1)얼굴의 생김새 (2)각 종류(種類)의 모양과 태도(態度) (3)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모양새 (4)옛적 중국(中國)의 악기(樂器)의 한 가지. 흙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은 작은 북과 같음. 손에 들고 장단(長短)을 맞추어 두드림 (5)물리적(物理的), 화학적(化學的)으로 균질(均質)한 물질의 부분, 또는 그리한 상태. 기상(氣相), 액상(液相), 고상(固相)의 세 가지가 있음 (6)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그 직위(職位)가 각료(閣僚)임을 나타내는 말 (7)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서로 ②바탕 ③도움, 보조자(補助者) ④시중드는 사람, 접대원(接待員) ⑤담당자(擔當者) ⑥정승(政丞) ⑦모양, 형상 ⑧방아타령 ⑨악기(樂器)의 이름 ⑩자세히 보다 ⑪돕다 ⑫다스리다 ⑬가리다, 고르다 ⑭따르다 ⑮이끌다 ⑯점치다 ⑰생각하다 그리고 ⓐ빌다, 기원하다(양) ⓑ푸닥거리하다(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로 호(互)이다. 용례로는 서로 서로를 상호(相互),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효과를 더하는 일을 상승(相乘), 서로 어울림이나 상호 간에 교제함을 상고(相交), 서로 짝짐이나 서로 함께 함을 상반(相伴), 서로 반대됨 또는 서로 어긋남을 상반(相反), 서로 믿음이나 서로 신용함을 상신(相信),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침을 상치(相値), 서로 같음을 상동(相同), 서로 고르게 어울림이나 서로 조화됨을 상화(相和), 남녀가 불의의 사통을 함을 상간(相姦),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이나 마주 겨룸 또는 그 대상을 상대(相對), 생김새나 모습을 양상(樣相),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양상을 위상(位相),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겉에 드러나는 추한 몰골을 흉상(凶相), 서로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부상조(相扶相助), 서로 돕는 일을 일컫는 말을 상호부조(相互扶助),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애상조(相愛相助),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망(相思不忘), 뛰어난 선비도 지나치게 가난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서 활동할 길이 열리기 어렵다는 말을 상사실지빈(相事失之貧), 서로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을 이르는 말을 상망지지(相望之地),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견(相思不見), 오직 생각하고 그리워함을 일컫는 말을 상사일념(相思一念),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일컫는 말을 상애지도(相愛之道),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오행이 상생하는 이치를 일컫는 말을 상생지리(相生之理),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옳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이를 본받아서 행실이 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즉불리(相卽不離), 서로 욕하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상욕상투(相辱相鬪),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상호존중(相互尊重),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을 괄목상대(刮目相對),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을 일컫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동병상련(同病相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부자나 형제 또는 같은 민족 간에 서로 싸움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잔(骨肉相殘),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유유상종(類類相從), 수레 덮개를 서로 바라본다는 뜻으로 앞뒤의 차가 서로 잇달아 왕래가 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관개상망(冠蓋相望), 생각이나 성질이나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등에 쓰인다.
▶️ 寧(편안할 녕/영, 편안할 령/영)은 ❶회의문자로 宁(영)은 간자(簡字), 寗(영)은 동자(同字), 寍(영)은 고자(古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皿(명)과 心(심)의 합자(合字)이다. 음식물이 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어 안심하고 살 수 있음의 뜻한다. 뒤에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을 더하였다. ❷회의문자로 寧자는 '편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寧자는 宀(집 면)자와 心(마음 심)자, 皿(그릇 명)자, 丁(못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丁자는 '탁자'를 표현하기 위한 모양자이다. 寧자의 갑골문을 보면 탁자 위에 그릇이 놓여 있는 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집에 먹을 것이 풍족하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心자가 더해졌는데, 이는 심리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다'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금의 寧자는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寧(녕, 령)은 ①편안하다 ②편안히 하다 ③문안하다 ④친정가다 ⑤편안(便安) ⑥차라리 ⑦어찌 그리고 편안할 령의 경우는 ⓐ편안하다(령) ⓑ편안히 하다(령) ⓒ문안하다(령) ⓓ친정가다(령) ⓔ편안(便安)(령) ⓕ차라리(령) ⓖ어찌(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편할 편(便), 편안 안(安)이다. 용례로는 수확이 많은 해를 영세(寧歲), 편안한 겨를을 영가(寧暇), 편안하게 삶을 영거(寧居), 무사하고 편안한 날을 영일(寧日), 평안하고 고요함을 영정(寧靜), 편안히 쉼을 영식(寧息), 걱정이나 탈이 없음을 안녕(安寧), 몸이 건강하여 마음이 편안함을 강녕(康寧), 천하가 잘 다스려져서 태평함을 안녕(晏寧), 추측컨대 틀림이 없음을 정녕(丁寧), 친정에 가서 아버지를 뵘을 귀녕(歸寧), 어른이 병으로 편하지 못함을 미령(靡寧), 오래 살고 복되며 건강하고 편안함을 일컫는 말을 수복강녕(壽福康寧), 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많으니 국가가 태평함을 일컫는 말을 다사식녕(多士寔寧)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種(씨 종)은 ❶형성문자로 种(종)은 약자(略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重(중, 종)과 곡식(禾)을 얻기 위하여 그 씨를 심는다는 뜻이 합(合)하여 씨를 뜻한다. 나중에 種(종; 늦되는 벼)과 穜(동; 심는 일)을 나누어 생각하였으나 옛날에는 重(중)을 童(동)으로 쓰는 일이 많았다. 童(동)은 본디 노예나 종을 일컫고, 重(중)도 童(동)도 천천히 힘드는 일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種자는 '씨'나 '종자', '종류'를 뜻하는 글자이다. 種자는 禾(벼 화)자와 重(무거울 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重자는 등에 무거운 봇짐을 지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무겁다'는 뜻이 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 있는 사람을 그린 重자에 禾자가 더해진 種자는 볍씨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곡식의 종자는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種자는 종의 다양성에 빗대어 '종류'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種(종)은 (1)종자(種字) (2)종류(種類) (3)생물 분류의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 비슷한 종이 모여서 속(屬)을 이루고, 또 종의 상이(相異)에 의하여, 아종(亞種), 변종(變種), 품종(品種) 등으로 나눔 (4)종개념(種槪念) 어떤 종류를 헤아리는 단위 (5)다른 말 다음에 붙어서 종류의 뜻을 나타내는 말 (6)어떤 말 아래에 쓰이어 갈래를 나타내는 말 (7)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씨 ②종족(種族) ③종류(種類) ④식물(植物) ⑤뿌리다 ⑥심다 ⑦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씨 핵(核), 씨 위(緯)이다. 용례로는 종류에 따라 된 구별을 종별(種別), 같은 종류에 딸리는 생물 전체를 일컫는 종족(種族), 번식시키기 위한 종자로 삼는 뿌리를 종근(種根), 씨를 뿌리고 식물을 심는 일을 종식(種植), 씨앗에서 짠 기름을 종유(種油), 종류의 명목을 종목(種目), 물건의 가지가지를 종종(種種), 씨를 받으려고 기르는 돼지를 종돈(種豚), 물건을 부문에 따라 나눈 갈래를 종류(種類), 씨나 싹을 심어서 묘목을 가꾸는 것을 종묘(種苗), 여러 가지의 종류 각가지를 각종(各種), 직업이나 영업의 종류를 업종(業種), 바뀌어 달라진 종류를 변종(變種), 직업이나 직무의 종류를 직종(職種), 씨가 없어짐을 멸종(滅種), 특별한 종류 또는 특종 기사를 특종(特種), 본디 그 땅에서 나는 종자를 토종(土種), 같은 종류 또는 같은 인종을 동종(同種), 논밭에 곡식의 씨앗을 뿌리어 심음을 파종(播種), 여러 가지가 뒤섞인 종류를 잡종(雜種), 콩을 심어 콩을 얻는다는 뜻으로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말을 종두득두(種豆得豆),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난다는 뜻으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종과득과(種瓜得瓜), 보리를 심으면 보리를 얻는다는 뜻으로 인과 응보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종맥득맥(種麥得麥), 종류가 많고 그 양식이나 모양이 여러 가지임을 일컫는 말을 다종다양(多種多樣),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등에 쓰인다.
▶️ 乎(어조사 호)는 ❶지사문자로 삐침별(丿; 목소리의 올라가는 것을 뜻함)部와 兮(혜)를 합쳐 이루어졌다. 목소리를 길게 뽑아 뜻을 다하는 말의 뜻을 나타낸다. ❷지사문자로 乎자는 '~느냐?', '~지?'와 같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乎자의 갑골문을 보면 T자 위로 세 개의 획이 뻗어 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乎자는 T자를 도끼를 그린 것으로 보고 도끼 찍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乎자의 기원으로만 보면 兮(어조사 혜)자와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은 유래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문장을 연결하거나 의문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乎(호)는 ①어조사(語助辭) ②~느냐? ③~랴! ④~지?, ~겠지? ⑤~도다 ⑥~에, ~보다(=於, 于) ⑦그런가 ⑧아!, 감탄사(=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감탄을 표시하는 말을 호재(乎哉), 일단 결심한 것을 과단성 있게 처리하는 모양을 단호(斷乎), 슬프다의 뜻으로 슬퍼서 탄식할 때에 쓰는 말을 차호(嗟乎), 우뚝하게 높이 솟은 모양을 흘호(屹乎), 아주 든든하고 굳셈을 확호(確乎), 섞임이 없이 제대로 온전함을 순호(純乎), 온건한 말로 조용하고 부드럽게 이야기 함을 온호(溫乎), 너르고 큰 모양을 도호(滔乎), 동뜨게 뛰어나서 남이 따르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탁호난급(卓乎難及), 단단하고 굳세어서 뽑히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확호불발(確乎不拔)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