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의 추억 / 박 성웅
흐드러지게 핀 하얀꽃
향기 가득한 숲길 걸으며
하얀눈처럼 쌓인 꽃잎 밟으며
아득한 추억에 잠긴다.
그 옛날,
보리고개로 먹을 것 없던 시절
씨감자 몰래 훔쳐 뒷동산에 올랐는데
저멀리 언덕배기에서 흰쌀밥 먹고있는 형
잘못봤나 싶어 눈비비고 다시봐도 흰쌀밥,
다른식구 풀죽도 없어 굶고 있는데
혼자 먹는구나! 생각에 씩씩거리며 달려갔지
알고보니 아카시아꽃잎 따서
시장끼 때우고 있었던것을....
아카시아 꽃내음은 바로 꿀냄새,
학교 다녀와 아무도 없는 집 다락에 올라
허기진 배 안고 엄마 몰래 떠먹던 꿀 한숫갈,
그 단맛에 몇숫갈 거푸먹고 속이다려
뒷동산 무덤뒤에 숨어 누워
노랗게 보이는 하늘보며
가슴 부여안고 괴로워 뒹굴었었지.
아련한 옛추억에 눈시울이 더워진다.
다시갈 수 없는 옛시절.... 그립다
아카시아나무에 손내밀어
꽃줄기 훑어내려 손에 담아쥐고 입에 가져가 보지만
향기만 진동할 뿐 옛 맛은 나지않네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은 파란데....
* * * * *
5월의 숲은 더없이 아름답다. 신록이 짙어가는 가운데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새들이 노래한다.
아까시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조팝나무, 함박꽃나무 등은 흰 꽃을 달았고 철쭉은 연분홍 꽃을 피웠다.
나리꽃이 꽃대를 올리는 것을 보면 곧 여름이다.
아까시꽃이나 찔레꽃을 보면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이 생각난다.
* * 백두대간 2기 41구간
삽당령 - 석두봉 - 화란봉 - 닭목재 - 고루포기산 - 능경봉 - 대관령(도상거리 27km)
새벽 4시경, 삽당령
버스에서 내려 '딸깍!' 헤드랜턴을 켜자 화들짝 놀란 어둠이 황급히 피하면서 빛의 길이 생긴다.
구름 속인듯 안개 자욱한 고갯마루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회원님들 서둘러 불러모아 출석사진을 찍는다.
오늘 총원은 23명인데 사진에 찍힌 숫자는 16명 뿐..
나머지는 사진이나 거울에도 비치지않는 귀신들 ?.. (^&^)
삽당령(揷唐嶺 670m)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 이기도하다.
<강릉 사지>에 따르면 이 고갯길의 지세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되어 있다하여 '삽당령'이라 불리운다.
<산경표>에도 '삽당령(揷當嶺)'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대동여지도>엔 '삽운령(揷雲嶺)'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그러나 1530년(중종 25년)에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정선 가는 길에 있는 삽현(鈒峴)은 강릉부 서남쪽 60리에 있다.'고
적고 있는 것으로 봐서 '삽현'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삽(揷)은 농기구의 하나인 가래를 뜻하고, 삽(鈒)은 무기인 삼지창을 말한다.
강릉과 정선을 잇는 삽당령은 비록 대관령과 백봉령의 명성에 뒤지기는 했으나 조선시대엔 제법 큰길에 속했다.
오지 마을인 임계 주민들은 이 고개를 이용해 소금과 해산물은은 물론이요, 곡식도 많이 나는 강릉과 교류했을 것이다.
- '백두대간 가는 길' 中에서 _
진표씨 앞세우고 들어선 숲 속,
어제 내린비로 바닥에 깔린 흙과 낙엽들이 젖어 있어 길이 미끄러운지 '미끄덩'하며 진표씨 비틀댄다.
그런데 시작부터 내리막 ? 잠시 후 대간길이 아님을 알고 뒤돌려 세운다.
오늘은 앞에 설려고 왕년의 알바대장님 진표씨 뒤따랐는데 또 꽁지.... ^ㅋ^
바람이 분다. 옷깃을 여미게 만들던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아니다.
피부를 간질이는 기분 좋은 봄바람이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숲을 적셨고 지금도 안개비에 젖은 이파리들이 '후두둑~ 툭 툭'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어둠과 안개로 그저 모든 것이 아스라해 보인다.
그 아스라함 때문이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지나간 시간들이 가슴 속에 되살아난다.
지나간 순간순간들이 마치 지금인 것처럼 되살아나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가다보니 앞,뒤의 간격이 벌어지며 홍송님과 둘이서 방화선을 따르고 있다.
이 산길은 1980년대 중반에 산불확산을 막기 위해 방화선을 만든다고 숲을 갈라 놓았다.
산불이 더 이상 옮겨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낸 것이다.
밑둥치에서부터 잘려나간 그 나무들에게서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맹아지로부터 형성된 풀숲이다. 맹아(萌芽)란 나무에 새로 튼 싹을 말한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자라지 않지만 환경 등의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에는 싹을 틔운다.
밑둥치에서부터 잘려나가 생명의 위기를 느낀 나무가 껍질 속에 숨어 발아되지 않던 싹을 틔운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다. 생명의 신비이다.
길 양편으로는 신갈나무와 물푸레나무 가득하고, 큰 소나무는 잘리는 걸 면했는지 방화선에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가 삶은 견뎌내는 것이라 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온통 초록빛으로 단장한 산들을 보니 겨우내 폭풍한설을 견뎌낸 나무들이 대견스럽다.
살아있음이 축복이 되는 계절인 것이다. 오뉴월 하루 빛이라더니 산들은 그동안에 풍성해졌다.
날이 밝아오니 후미가 걱정 된다.
내게 주어진 임무도 아니지만 마음 쓰임은 어쩔 수가 없다.
홍송님에게 "앞 서 가시라" 말하고 걸음 늦춘다.
뒤에 오던 한남경씨가 내모습을 보더니 뒤돌아서서 큰소리로 "이 길이 맞다."고 소리친다.
아마 들미재에서 혼돈이 왔었나 보다. 오늘은 개념도도 나눠주지 않아 모두 눈 뜬 봉사들이다.
들미재에서 대화실산 가는 길과 백두대간 능선으로 길이 나뉜다.
이쁜이 이수경씨가 넘어지며 무릎을 다쳤다길레 빨간약과 후시딘, 밴드를 꺼내주고..
맨 뒤에 따라오는 너와나님을 이 팀이 같이 동행해 준 모양이다. 판섭씨,남경씨 고맙습니다.
오르막 빼곤 모두 강한 너와나님을 평지나 내리막에선 모습 놓치고, 오르막에선 묵묵히 뒤따른다.
숲에 드리워진 구름들은 나무들을 감싸고 있다.
그 모습이 구름의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 같다.
철쭉꽃이 피어있는 이곳이 바로 선경이라는 듯 비 내리는 숲은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외로움을 더 느낀다.
빗방울 떨어뜨리는 바람이 지나자 숲을 가리고 있던 운무가 걷힌다.
소나무들의 밑둥치마다 어린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비에 젖은 어린 참나무 잎들이 싱그럽고
그 밑에서 자라는 풀숲 속에 은방울꽃은 함초롬하고, 버섯은 새초롬하다.
둥굴래잎 밑을 들여다 보았다. 저마다 잎 둘레에 영롱한 물방울들이 달려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내 모습,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비춰질 것 같다.
저 맑고 투명한 물방울을 마시고 싶다.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도 햇살 비취면 사라지겠지.
아쉬움에 손 내밀어 나뭇잎을 만지자 잎 둘레에 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손은 이내 젖어 들었지만 물방울의 맑은 기운이 전해지는지 정신이 맑아진다.
몸도 가뿐해지는 것 같다.
숲 속의 공간은 너무도 조용하다.
다만 가끔씩 고요한 적막을 깨곤 하는 곤줄박이새의 노랫소리만이 허공을 가를뿐....
젖은 산죽을 스쳐 지나느라 바짓가랭이가 젖어든다.
이러다간 등산화 속에 미꾸라지 열마리 키우게 되는건 아닌지.. (^_^)
석두봉(982m)을 지난다.
오른 쪽에 제법 큼직한 바위가 있고, 산정에 있어 '머리頭자'를 빌려와 "석두봉(石頭峰)"이라 부른다.
조금 더가니 너와나님이 사진 찍어달라고 짝퉁 석두봉 이정표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촉촉히 젖어있는 숲에는 어린 단풍 나뭇가지가 연두와 초록빛 이파리로 새단장을 하고있고,
근육질의 서어나무도 새 순으로 피어난 푸른 이파리로 하늘을 덮으며 몸을 한껏 키우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숲 속의 길에는 고요한 평화가 고즈넉하게 깔려 있고,
몸을 맑고 상쾌하게 해주는 기운도 느껴진다.
촉촉히 젖어있는 산죽길을 따라 걸으며 많은 생각들을 메모하며 한 수님의 <홀로..>란 시를 읊으면서 간다.
숲 속에
홀로 선 나무를 본다.
드넓은 하늘
제 모양을 만들며 홀로 떠가는
구름을 본다.
푸섶 속에서
제 빛깔로 홀로 핀
풀꽃을 본다.
돌 사이를
모나지 않게 소리하며
홀로 흐르는
물을 본다.
저마다 홀로 와서
제 모습 제 빛깔로 홀로 살다가
홀로 가는 숲길을 홀로
내가 간다.
“홀로”라는 단어를 여덟 번이나 쓰며 나무, 구름, 풀꽃, 물이라는 자연물을 등장시키고 자신을 여기에 동화시키는,
그리고 홀로 왔다가 홀로 가야하는 인간의 숙명성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주체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다.
저자는 ‘이십대 후반부터 사십대 후반까지 산을 다니며 골몰해 온 배설물‘이라고 했는데 이런 글들을 쓸 수 있다는게 부럽다.
판섭씨 일행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조금 전 산수지심부부가 떠났노라" 하니 너와나님 희망을 쫓는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조릿대 늘어선 숲길은 화란봉까지 내내 편안하게 이어지고 곳곳에 늘씬한 금강송들도 많이 보인다.
2ton님이 산수지심,안희님과 같이 가고있다. 게으르미님과 함께 하는줄 알았는데..
오르막에서 산수지심님의 걸음이 이상함을 느낀다.
종아리 근육이 아파 치료 받다가 시험삼아 나선 산행이란다.
저 상태로는 후반부 고루포기산을 지나서는 어려울 것 같다.
이 걸출한 고송은 얼핏 보아도 그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오랜 나이를 먹어 늙었지만, 여전히 고고한 기품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련된 격이 있다.
오랜 세월을 살며 휘어지고 뒤틀려 품고 있는 자연스런 모습에 절로 눈길이 간다.
반대편의 대관령에서 온다는 대간꾼들을 만나 선두팀의 소식을 듣는다.
머리에 두건을 한 마른사람은 우리와 두시간 정도 벌어져 있는 것 같단다. 품새가 김대장인 것 같다.
여기서 두시간 차이라면 끝엔 너댓시간 차이가 날 것이다.
아무래도 후미팀은 닭목재에서 탈출 시켜야 할 것 같아 미리 이야기 한다.
모두 동의해 줘서 이후부터는 여유있는 걸음으로 경치를 즐기며 천천히 간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준다.
날 흐리고 안개 가득해 금방 빗방울이라도 떨어질 것 만 같다가도 살짝 비쳐드는 햇살에 숲은 빛난다.
초록 숲이 좋아 깊은 숨 들이쉰다. 산죽 무성한 완만한 오르내림길이 계속되어 걸음도 편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물고 ~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
연분홍 철쭉꽃이 떨어지고 있다. 봄날은 가고 있는 것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참으로 행복하게 걷는다.
잠시 서서 뒤돌아보면 어느새 구름이 가득하게 능선을 넘어가고
잠시 후 또 돌아보면 언제인양 구름은 사라지고, 지나온 길이 숲의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한참을 서서 꿈결같은 감상에 젖는다. 이러니 느린산행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느린산행에 눈을 떠 이런 기쁨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고행처럼, 자학처럼 힘들게 산행을 하든, 이처럼 풍광에 흠뻑 빠져 산책하듯 느린산행을 하든
내가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지금처럼 여유있는 산행은 넉넉함과 깊이를 더해준다.
거리낌 없는 자유로움으로, 내 가슴 깊숙이 주변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각인시키며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구애받음 없이 그저 여유롭고 거늑할 뿐이다.
화란봉(花蘭峰 1069.1m)
이름 그대로 꽃 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정상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다.
결국 화란봉에서 퍼져 나가는 산물결은 모두 겹겹의 꽃잎이 되는 셈이다.
지금 화란봉은 숲이 우거져있어 사방으로 펼쳐진 꽃잎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나무들이 옷을 벗는 계절에 와보면 왜 화란봉인지 그 이름을 느낄 수 있다.
화란봉 좌측 벌마을에는 용수골이라는 이름의 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 전해온다.
지금도 그 때 자국이 용수골 너럭바위에 남아있다나 어쩟대나....
푸릇한 안개에 젖은 숲이 더 없이 상쾌하다.
길은 산죽나무 그득하고 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섞여 있다.
상수리, 갈참, 신갈, 굴참, 떡갈, 졸참나무 등을 통칭하여 참나무라 부른다.
식물학적으로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숲에는 참나무류들이 다양하게 뒤섞여 숲을 건강하게 지탱하고 있다.
닭목령으로 가는 길은 약간 내리막이다. 경사가 급한 곳은 없다.
타박타박 걸으며 숲의 피톤치드로 한껏 매연에 찌든 폐를 씻어낸다.
10시 30분경 닭목재(680m)에 내려선다.
강릉과 임계를 잇는 포장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닭과 연관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풍수가들은 여기의 지세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에 '닭목이'라는 지명이 된 것이다.
고갯마루엔 산신각이 있는데 굳게 잠겨있고, 전국 최고의 감자 채종포 마을을 알리는 현수탑이 서 있고
농산물 저장창고가 산언덕을 등지고 산신각 옆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서 술이나 마시며 택시를 부르려 했는데 가게도 없고 사람모습도 볼 수 없다.
114로 택시회사 안내받아 전화했더니 연락해 준다더니 감감 무소식,
다른데 안내받아 전화하니 보내줄 차 없다하고..
너와나님 미모에 유혹당한 지나가는 트럭의 시골 영감님 호의로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데
기다릴땐 보이지 않던 빈 택시가 지나간다.
잠시후 "닭목령에 왔는데 어디 계시냐 ?"는 택시기사의 전화
출발하면서 전화 하시지 ㅉㅉ
트럭에서 내려 택시오길 기다리는데, 또 전화
"차를 돌리다가 사고가 나서 갈 수 없으니 회사에 전화해서 다른 차 보내겠다"고 한다. ㅠ~
마침 트럭에서 내린 곳이 왕산8경중 제2경인 '잿물소'라, 덕분에 구경했죠. (^_^)
한창 물이 오르기 시작한 활엽수림대는 부드러운 산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 탄성을 자아내고,
계곡의 푸르름과 하얀 포말은 청량감을 더한다.
택시가 도착해 대관령으로 이동 하는데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옛길을 올라간다.
넘나들던 고개가 하도 험하여 “데굴데굴 구르는 고개“란 뜻에서 생겨나 “대굴령”이라 부르던 이 고개는
한자화 하면선 “大關嶺”으로 전음 되었다.
대관령( 832m)에는 오늘도 거센 바람이 불고있다.
고개의 총연장이 13km, 고개의 굽이가 99개소.
서울과 영동을 잇는 관문이며, 구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한다.
이 일대는 황병산, 선자령, 발왕산 등에 둘러싸인 분지를 이룬다.
기후는 한랭하고 비가 많은 지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지역.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연평균 기온은 6.1℃, 연강수량은 1,450mm이다.
고랭지 채소 및 씨감자의 주산지이며 목축업이 발달해 있다.
한편, 대관령에는 고갯길을 낸 죄로
두 번씩이나 죽임을 당한 고형산이란 사람의 일화가 전해져 온다.
본래 대관령 고갯길은 오솔길이었는데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란 사람이 사재로 수개월에 걸쳐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넓혀 놓아 한양과 강릉 간의 교통이 편리해졌는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군대가 주문진으로 상륙,
그가 넓힌 대관령 길을 통해 쉽게 한양을 침범하였고 이에 노한 인조가 고형산의 묘를 파헤쳤다는 것.
대관령은 "울고 넘는 고개"라고 한다.
관원들이 멀리 푸른바다가 보이자 세상끝에 당도했다고 눈물을 흘렸고
떠나갈 때는 그동안 정들었던 생각을 하며 울면서 갔다하여 생긴 이름.
반정에서는 강릉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율곡 이이'가 어머니 '신사임당'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가기 위하여 험한 산길을 오르던 모습과 지금 가면 친정에 또 언제 오려는지,
오죽헌을 향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신사임당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 * 踰大關嶺望親庭 (대관령을 넘으며) / 申師任堂 * *
慈親鶴髮在臨瀛 (자친학발재임영) 백발의 어머님은 강릉 땅에 계시는데
身向長安獨去情 (신향장안독거정) 이 몸 홀로 서울 향해 떠나는 심정
回首北村時一望 (회수북촌시일망) 때때로 고개 돌려 북촌을 바라보니
白雲飛下暮山靑 (백운비하모산청) 흐르는 구름 아래 푸른 산만 저무네.
휴게소에서 따끈한 커피로 망중한을 즐기는데 창 밖으로 김현선씨와 조상래,문봉림씨의 모습이 보인다.
저들은 사람도 아니여 ~ (^&^) 출발한지 겨우 여덟시간 넘긴 것 같은데....
두시간에 걸쳐 차례로 도착하고, 너와나님이 준비해 온 고기 구울 곳이 마땅찮아 서울 오는 길에
자리 대여식당에 들어가 고기 굽고 술 부어 건배 !!!
오늘 완주하신 여러분 부럽습니다. 난 차후 보충 해야지요.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도 축복인데 왜 자꾸 삐딱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늘 함께하며 웃는 그런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안녕히.. ^^
닭목재에서 대관령까지 전에 다녀와 썼던 산행기로 짜집기 하려다가
소설가 박완서의 말처럼 이번에 가지않은 길을 상상으로 적는다는 것은 그것 또한 자연과 산행에 대한 모독인 것 같아
고루포기산과 능경봉의 이름에 대한 내력만 적습니다.
고루포기산(1238.3m)
닭목재를 지나서 된비알의 남사면을 따라 산정에 오르면 이름도 괴상한 “고루포기산에 도착하는데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예전에는 화전민이 살던 곳이다)에서 유래되어 소(所소)의 훈을 ”곳”으로 보고
곳은백이산~고른포기산~골포기산~고루포기산으로 변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능경봉 (1123.1m)
소우음(所于音)산에서 능정(能政)산 또는 능정봉으로 불리다 전음 된 현재의 능경봉은
아침에 떠 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라 “能政日出”이라 부르고 횡계팔경의 하나이다.
(“강릉부지“에는 ”늦어산”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소우음산은 “발왕산”을 지칭하기도 한다)
능경봉 정상의 조망을 즐기고 대관령 가는 길 안부 가지줄기에 둥그렇게 솟아 있는
제왕산은 고려우왕에 관한 일화가 담겨 있는 제왕산성이 있는 곳이다.
(김윤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글에서 인용)
첫댓글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우하하하하...... 하여든 진표형은 21세기의 진정한 Pioneer 이십니다. '알바' 라는게 겁많고 소심한 사람은 못하는 겁니다. '단무지'들의 특권 이라고나 할까요? ㅋㅋㅋ 아이고 재미있네...... ㅎㅎㅎ
함께함이 내겐 축복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역시 입니다 많이 기다려진 산행기이지만 완주하지못하셔서 늦은줄로 알고 있었지요 31일 사부작으로 끝내시길 기대해 봅니다 공부잘하고 갑니다 ^^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너와나님덕에 대간길이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산행기가 늦으셨네요...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여러가지 지리공부 잘 하고 갑니다....수고 하셨습니다.
이번 산행기는 땜빵한 후 쓰려했는데 몇몇분의 성화에 어쩔수 없어 쓰느라 늦었습니다. 땜빵구간은 41구간1/2이라고 표기해야 하나 ? (^&^)
사진이 예술입니다. 아주 신선한 장면들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뜬구름님의 서정적인 산행기에 흠뻑 매료 되었습니다.
호산님의 글만 보면 우리 모두 최고의 글, 사진작가인 것 같아요. 덕분에 더 신나게 달려가긴 하지만요. (^*^)
워~~메 다 읽기두 전에 따운입니다!!~~ 한 번 읽어 볼까나!! 얼~~쑤!!^^ 위루 올라 가야쥐!!! 낑낑~~
아무래도 밖에 내리는 비가 장맛비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제부터는 가고 싶은 백두구간이긴한데.. 여유가 없으니.. 비오는 구간에서 고생하셨습니다^^*
1기팀 겨울에 통과한 구간이라 빠진 부분들이 있을 것인데 이 참부터 같이 하시지요 1기때의 그 열정으로 (^_^) 기왕이면 바깥분도 같이....ㅎㅎ
오늘도 많은것을 배워갑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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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함께하려 했는데 뒤가 걱정되어 먼저 가시라 했지요. 같이 후미했더라면 완주 못했지요. 먼저 가신게 다행이었어요. 늘 마음 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