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1호 : 분류두공부시언해-권13(分類杜工部詩諺解-卷13) 경기도박물관, 1990.09.20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712∼770)의 시(詩)를 성종 때 홍문관의 유윤겸 등이 왕의 명을 받들어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두공부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두보가 공부원외랑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이며 ‘분류’는 중국 송나라의 분문집주두공보시(分門集注杜工甫詩)를 참고하여 따온 것이다.
초인본의 조위가 쓴 서문에 의하면 성종 12년(1481) 가을에 왕의 명을 받아 한글 번역을 착수하여 그 해 12월에 완성하였고, 본권 13의 인본을 보면 을해자, 중자 및 소자 그리고 한글 활자로 찍었는데 인쇄가 깨끗하지 못한 편이다. 성종 13년(1482)에 가뭄이 심하여 『두시』를 비롯한 『춘추』, 『이백시』, 『용학구결』 등의 발행을 멈추고 그 비용을 가뭄극복에 씀에 따라 그 인쇄발행은 다소 뒤에 이루어진 듯하다. 이 『분류두공부시언해』는 한글로 표현된 유창한 문체와, 풍부한 어휘 등으로 볼 때 국문학과 국어학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1051-2호: 분류두공부시언해-권11∼12(分類杜工部詩諺解-卷11∼12) 계명대학교
제1051-3호: 분류두공부시언해권21(分類杜工部詩諺解卷二十一) 청주고인쇄박물관
제1052호 :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경기도박물관
고려의 승려 제관이 천태사상을 집약하여 정리한 것으로 이론과 실천이 같이 어울려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2권의 책 중 상권 1책이며 크기는 세로 24.5㎝, 가로 16.5㎝이다. 책 끝에 있는 목암노인이 쓴 글에 의하면, 오래된 판본이 있었는데 글자가 크고 책이 무거워 휴대하기 불편하여 굉지대선사(宏之大禪師)가 수여(水如)에게 다시 쓰도록 하여 충숙왕 2년(1315)에 기복도감(祈福都監)에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기복도감에서 다소 뒤에 찍어 낸 판본이지만, 본문이 완전하게 판독될 수 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우리나라 고승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게 평가되고 있다.
제1053호 : 진언권공(眞言勸供) 경기도박물관
이 책은 덕종비인 인수대왕대비가 승려 학조로 하여금 시식권공(施食勸供), 일용상행(日用常行) 등 불교에서 하는 여러가지 행사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연산군 2년(1496) 5월에 인경목활자로 4백부를 간행하게 한 것이다. 크기는 가로 21.2㎝, 세로 34.5㎝이다.
인수대왕대비와 정현대비는 성종이 돌아가시자, 연산군 1년(1495) 임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각사에서 대대적으로 이것을 인쇄하고 그 다음해에 걸쳐 인경자와 인경한 글자를 만들어 먼저『천지명양수륙잡문』을 찍어내는 한편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찍어내게 하였다.
궁중에서 사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들여 활자를 정성껏 찍어냈기 때문에 글자새김이 잘되어 인쇄가 매우 정교하고, 특히 한글의 표기가 여기서 완전하게 실제적인 소리로 환원되었으므로 국문학상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제1054호-제1071호, 91.1.25 지정, 조선백자 및 분청사기)
제1054호 : 백자병(白磁甁)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전기의 백자병으로 높이 36.2㎝, 아가리 지름 7.4㎝, 밑지름 13.5㎝이다.
벌어진 아가리에서 긴 목을 지나 몸통까지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벌어져 풍만한 몸체를 이루었으며, 넓고 높은 굽다리를 갖춘 안정감을 주는 병이다. 묵직한 기벽에 푸른빛이 도는 백색 유약을 고르게 발랐으며, 광택이 은은하다. 이러한 백자는 경기도 광주에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만하고 단정하며 격식있는 병의 형태와 부드러운 색이 어울리는,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병의 하나이다.
제1055호 : 백자태항<내·외호>(白磁胎缸<內·外壺>) 호림박물관
태항아리란 왕실에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를 담은 항아리로, 그 안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기록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조선시대 태항아리로 크기는 외항아리는 높이 42.5㎝, 아가리 지름 25㎝, 밑지름 25.3㎝, 내항아리는 높이 27.6㎝, 아가리 지름 10.6㎝, 밑지름 11.7㎝이다.
안쪽 항아리와 바깥 항아리가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뚜껑은 냄비 뚜껑처럼 생겼고, 꼭지에는 사방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몸통 윗부분에 있는 4개의 고리와 연결하여 뚜껑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몸통의 아가리 부분은 넓고 밖으로 말려 있으며, 넓은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어 단정하고 풍만해 보인다. 옅은 청색을 띠는 백자 유약이 고르게 퍼져 있으며 은은한 광택이 있다.
제1056호 : 청화백자철화삼산뇌문산뢰(靑華白磁鐵畵三山雷文山罍) 리움미술관
철화로 3개의 산봉우리가 있는 산과 번개무늬를 그린 높이 27.8㎝, 아가리 지름 9.5㎝, 밑지름 11.8㎝인 조선 전기의 백자제기(白磁祭器)이다. 아가리는 안으로 약간 숙인 형태이고, 어깨는 양감있게 벌어져 있다. 몸통 윗부분이 불룩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서서히 좁아지다가, 굽이 있는 부분에서 밖으로 살짝 퍼져있다. 아가리와 어깨의 경계지점에서 몸통 윗부분에 걸쳐 양쪽으로 활모양의 귀가 달려있고, 그 귀에 다시 둥근 고리가 끼어 있어, 이 항아리가 청동으로 만든 제사에 사용된 제기를 본 떠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문양은 어깨에 번개무늬를 돌렸다. 몸통은 가운데에 두 줄의 철화선을 그려 둘로 나누고 그 윗부분에 3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을 청화안료로 여섯 군데에 그려 넣었다. 이 항아리는 종묘의 제례 때 사용된 ‘산뢰(山뢰)’라는 제기로, 『세종실록』·『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 서례』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산뢰 그림이 나와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자산뢰로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경 제작된 청화와 철화를 함께 사용한 작품이다.
제1057호 : 청화백자『망우대』명국충문전접시(靑華白磁『忘憂臺』銘菊蟲文전접시) 리움박물관
전접시란 접시의 테두리 부분이 수평으로 꺾여진 키가 낮은 접시를 말한다.
높이 1.9㎝, 아가리 지름 16㎝, 밑지름 9.1㎝ 크기의 이 접시는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전접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특이하게 안 바닥 중앙에 작은 원이 얕게 패여 있어, 잔받침일 가능성이 있다. 이 원 안에는 ‘망우대’라는 글씨가 있고, 그 둘레에 간결하고 능숙한 필치로 들국화를 2포기 그렸으며, 위쪽에 꽃을 찾아 날아드는 벌을 그려 서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전이 있는 가장자리에는 작은 원들이 장식되어 있고, 순백의 질이 좋은 바탕흙에 옅은 청색을 머금은 백자유약이 고루 퍼져 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드물게 보는 깨끗하고 좋은 백자질과 조촐한 청화문양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제1058호 : 청화백자초화문표형병(靑華白磁草花文瓢形甁)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높이 21.1㎝, 아가리 지름 3.6㎝, 밑지름 7.8㎝의 크기이다. 8각의 항아리 몸체 위에 목이 긴 병이 얹혀 있는 일종의 표주박형의 병으로 조선 후기에 새로 나타난 형태이다.
한국적인 익살이 넘치는 이 병은 아래에 모를 깎은 단아한 항아리의 모습과 윗쪽의 유연한 곡선을 지닌 병이 붙어, 곡선과 각이 조화를 이루어 참신한 느낌을 준다. 문양은 밝은 청색 안료를 사용하여, 윗쪽 병의 몸체 양면에는 능숙한 솜씨로 칠보문을 그렸고, 아래 항아리에는 3곳에 활짝 핀 모양의 난초문양이 비교적 단정하게 표현되었다. 유약은 옅은 청색을 머금은 백색 유약으로 전면에 고르게 퍼져 있으며, 굽은 안정감이 있는 넓은 굽다리 형식이다.
이와 같은 표주박형의 파편이 광주 금사리 가마터에서 발견된 바 있어, 18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가 세련되고 청색문양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제1059호 : 청화백자난초문지통(靑華白磁蘭草文紙筒) 리움미술관
조선 후기 만들어진 문방구류의 일종으로 종이를 담아두는 통으로, 크기는 높이 16㎝, 아가리 지름 13.1㎝, 밑지름 12.6㎝이다.
원통형을 하고 있으며 겉모습은 간결하면서도 당당하다. 아랫부분 굽 위에 한줄의 푸른색 선을 두르고, 그 위로 세 곳에 활짝 핀 난초 한 포기씩을 소박하고 세련된 필치로 그려 놓았다. 난초문양은 밝은 청색으로 더욱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 유약은 옅은 청색을 띠는 흰색 유약으로 전체에 고르게 발라졌다.
유약의 형태나 청색문양으로 보아, 18세기 전반에 광주 금사리 가마나 이 보다 조금 늦은 시기의 분원리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경기도 광주지방에서 제작된 종이를 담아두는 통 가운데에서 형태나 문양, 유약을 바른 모양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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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0호 : 백자철화승문병(白磁鐵畵繩文甁)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백자로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줄무늬를 그려 놓은, 높이 31.4㎝, 아가리 지름 7㎝, 밑지름 10.6㎝인 술병이다.
아가리가 나팔처럼 밖으로 벌어지고 말려 있으며, 목은 잘록하고 가늘다. 몸통은 서서히 넓어져 아랫부분이 볼록한 형태를 하고 있다. 문양은 푸른색으로 먼저 목에 끈을 감고, 그 가닥이 밑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둥글게 말린 모습을 그렸다. 그 위에 검은색 안료을 유연한 필치로 농담을 섞어가면서 운치있게 표현하였다. 굽은 높고 넓으며 굽의 안쪽 바닥에는 한글이 새겨 있다.
조선시대 철화백자는 15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졌으나, 15∼16세기에는 그 예가 드물다. 이 병은 16세기 후반경의 것으로 귀할 뿐 아니라, 끈을 목에 매고 밑으로 늘어뜨린 특이한 문양으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 작품이다.
제1061호 : 백자철채각배(白磁鐵彩角杯) 국립중앙박물관
소뿔 모양의 잔으로 뿔 끝을 검은색으로 자연스럽게 채색하여 사실성을 강조한, 길이 17㎝, 아가리 지름 5.3㎝의 뿔잔(각배)이다.
원래 이러한 뿔잔은 삼국시대의 가야, 신라 무덤에서 발견되는 우각형도기배라는 종류의 그릇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후 고려 시대에도 청자우각형배와 같은 예가 있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순백의 바탕흙에 묽은 청색을 띠는 백자유약을 전체에 곱게 칠한 것으로, 광주 번천리, 관음리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는 드물며,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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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2호 : 분청사기철화당초문장군(粉靑沙器鐵畵唐草文장군) 호림박물관
장군은 물·술·간장·오줌 따위를 담는 그릇의 하나로, 크기가 작은 것은 물이나 술 따위를 넣고 큰 것은 오줌을 담는 용기로 사용하였다.
이 그릇은 높이 18.7㎝, 아가리 지름 5.6㎝, 길이 29.5㎝로, 고려 후기 쇠퇴기에 접어든 청자에서 기원하여, 조선 전기에서 임진왜란 전까지 만들어진 분청사기의 하나이다. 아가리 부분은 몸통 중간에 약간 벌어져 부착되었고, 굽다리는 반대쪽에 타원형으로 만들어 붙였다. 그릇 측면 한쪽에 굽다리가 있어 옆으로도 세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전면에는 솔을 이용해 백토를 발랐다. 그 위에 자유분방하게 생략된 덩굴무늬를 산화철 안료를 이용해 그렸으며, 측면의 둥근 몸체에는 十자를 그렸다. 두껍게 바른 백토와 그 위에 자유로이 농담을 넣어 표현한 덩굴무늬는, 조선시대 분청사기 특유한 모습으로 그 특징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제1063호 : 청화백자매월십장생문팔각접시(靑華白磁梅月十長生文八角접시) 이헌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높이 5.2㎝, 아가리 지름 13.6㎝, 밑지름 4.3㎝인 백자 접시이다.
바깥 측면은 아가리 부분부터 굽까지 8각으로 만들었다. 문양은 접시 안쪽 바닥에 매월문(梅月文)이 있고, 바깥쪽 전체에 십장생문을 능숙한 필치로 그려 넣었다. 유약색이나 각진 그릇 모양, 청화 문양으로 보아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례가 드문 팔각 접시에 매월과 십장생의 청화문양이 있는 희귀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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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4호 : 청화백자운룡문호(靑華白磁雲龍文壺) 리움미술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35.5㎝, 아가리 지름 14.7㎝, 밑지름 14.7㎝의 전형적인 항아리로, 수직으로 낮게 선 아가리에서 서서히 팽창되어 어깨부분에서 가장 넓어 졌다가 다시 서서히 좁아져, 밑둥부분에서 살짝 벌어진 형태를 하고있다.
몸통 3곳에 커다란 꽃무늬 모양의 창(窓)을 만들고, 각각의 창 안에는 구름 속에서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푸른색 안료로 그렸다. 용의 눈동자에는 검은색 점을 찍어 화룡점정의 효과를 냈으며, 푸른색은 흐려서 회청색에 가깝다.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광택이 있으며, 표면은 회백색을 띠고 빙렬이 그물처럼 나 있다.
다른 문양은 없이 커다란 창 속에 용만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며, 문양 구성이나 병 모양, 유약색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제1065호 : 백자태호<내·외호>및태지석(白磁胎壺<內·外壺>및胎誌石) 우학문화재단
조선시대 백자 태항아리로 외항아리는 전체 높이 35.2㎝, 항아리 높이 30.6㎝, 아가리 지름 19.7㎝ 밑지름 14.6㎝이며, 내항아리는 전체 높이 25.1㎝, 항아리 높이 21.7㎝, 아가리 지름 9.0㎝, 밑지름 9.2㎝, 태지석(胎誌石)은 21.0㎝×21.0㎝×5.7㎝이다.
태항아리란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胎)를 담은 항아리를 말하며, 이것과 그 주인공의 이름, 생년월일을 기록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외항아리는 아가리부분이 밖으로 벌어져 있으며, 위가 넓고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이며, 어깨부위 4곳에는 작은 고리가 달려있다. 뚜껑은 냄비 뚜껑과 같이 생겼고, 꼭지 4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어깨에 있는 고리와 서로 연결하여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유약이 잘 녹아 투명하고 광택이 있다.
내 항아리는 규모가 조금 더 작을 뿐 외항아리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태지석은 정사각형 모양의 검은 돌로 윗면에 항아리들의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있다. 이것으로 보아 항아리들은 1581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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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6호 : 청화백자화조문팔각통형병(靑華白磁花鳥文八角筒形甁) 리움미술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로 높이 18.9㎝, 아가리 지름 5.2㎝, 밑 지름7.3㎝의 크기이다. 통형병이란 일반적으로 몸체가 원통형이고 목과 입이 작은 술을 담아 따르는 술병을 일컫는 말이다.
8각으로 모를 깍은 몸체 위에 나팔 모양으로 생긴 아가리와 좁고 길쭉한 원통형의 목이 있다. 몸체 바닥에는 둥근 굽다리가 있다. 문양은 청색 안료(청화)로 큼직하게 화조문(花鳥文)을 앞뒤에 그렸는데, 석류나무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는 구성을 하고있다. 굽 안쪽 바닥에 유약을 칠하기 전에 가는 음각선으로 새긴 ‘관(官)’자가 있다.
모를 깍은 통형병의 모양이나 청화문양, ‘관(官)’자 들로 보아,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 통형병으로 손꼽을 수 있다.
제1067호 : 분청사기상감연당초문병(粉靑沙器象嵌蓮唐草文甁)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31.7㎝, 아가리 지름 8㎝, 굽 지름 9.9㎝인 항아리로, 목을 지나면서 서서히 팽창되어 몸체 아랫부분에서 팽배되었다가, 다시 좁아져 굽에 이르는 안정감이 돋보인다.
아가리부분은 나팔같이 벌어지고 목부분은 좁다. 전체적으로 두 세줄의 백상감 선을 넣어 그 사이사이에 덩굴무늬, 도식화된 연꽃무늬을 그려 넣었다. 몸통 중앙에는 3곳에 연꽃무늬를 그렸으며, 연꽃은 줄기와 잎이 덩굴로 연결되어 있다. 여백은 빗방울이 떨어진 자국을 무늬로 만든 우점문을 백상감하였다. 특히 연꽃과 연잎의 윤곽선은 백상감으로, 안의 표현은 흑상감으로 처리하여 장식이 돋보인다.
그릇의 형태와 무늬의 비례가 적당하고 짜임새가 있으며, 무늬 장식이 단정하고 정성스러워 흐트러짐이 없다. 유약은 전면에 발랐으나 고르지 않아 표면에 굴곡이 있다.
제1068호 : 분청사기상감모란당초문호(粉靑沙器象嵌牡丹唐草文壺) 호림박물관
분청사기는 고려말 상감청자가 쇠퇴하면서 백자와는 다른 형태, 무늬, 구도을 가지고 나타난 매우 독특한 자기이다. 그 명칭은 백토로 분장한 회청사기, 즉 ‘분청회청사기’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분청’이라고도 한다.
총 높이 25.2㎝, 높이 22.6㎝, 아가리 지름 8.4㎝, 밑지름 10.2㎝의 이 병은 두께가 비교적 얇으며, 바로 선 듯이 밖으로 약간 벌어진 아가리를 가지고 있다. 아가리 아래부터 굽 윗부분까지 몸통 전체에 백상감된 2줄의 선을 이용하여 문양을 3부분으로 나누었다. 윗부분에는 변형된 연꽃잎을 흑·백상감하고, 그 안에 점을 찍어 채웠다. 몸통의 넓은 부분은 모란과 덩굴을 꽉 차게 상감하였고, 아래 굽주변에는 연꽃을 백상감하였다. 뚜껑에는 원형의 꼭지가 붙어있고 윗면에는 모란잎을 흑·백상감하였다. 밑을 향해 완만히 굽어있는 아가리 주변에는 점을 찍었다. 병의 형태와 문양, 유약이 상감청자 말기에서 분청사기로 넘어오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어, 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제1069호 : 분청사기조화수조문편병(粉靑沙器彫花樹鳥文扁甁) 리움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22.6㎝, 아가리 지름 3.8㎝, 밑지름 8.0㎝의 항아리이다.
둥근 몸체의 양쪽을 잘 두들겨 타원형의 편평한 면을 만들고, 목은 약간 가늘게 표현하였다. 짙은 시멘트색의 바탕흙 위에 듬성듬성 백토 칠을 한 뒤, 각종의 조화문(彫花紋:백토로 분장한 그릇에 음각으로 선을 새겨 넣고, 백토를 긁어내어 만들어진 하얀 선으로 된 문양)을 새겼다. 어깨 위에는 한 줄의 톱날무늬 띠가 돌려져 있다.
납작한 몸통의 양쪽에는 꽃무늬를 크게 추상으로 그려 넣었다. 두 면 중 한 면에는 여섯 개의 세로선을 그어 사이사이에 부정형의 원무늬와 톱날무늬을 넣었다. 다른 한 면에는 나무 아래 한 마리의 새가 보인다. 몸체 아래에는 백토 칠이 없어 거친 바탕흙이 드러나 있으며, 굽다리는 둥글지만 약간 이그러져 있다.
분청사기 조화문 중에서 반추상적이며 분방하게 처리된 무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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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7호 | 제1068호 | 제1069호 |
제1070호 : 분청사기조화박지모란문장군(粉靑沙器彫花剝地牡丹文장군) 리움미술관
장군은 물·술·간장·오줌 따위를 담는 그릇의 하나로, 크기가 작은 것은 물이나 술 따위를 넣고 큰 것에는 오줌을 담아 지게로 운반할 때 사용하였다. 길이 34.5㎝, 측면 지름 15.4㎝, 아가리 지름 5.3㎝로 비교적 큰 크기의 장군이다. 긴 타원형 몸통에 한쪽 면은 둥글고, 다른 면은 편평하다. 몸통 윗면 중앙에 작은 아가리를 달았는데 손상이 많다. 전면에 두터운 백토 칠을 고르게 한 뒤, 음각으로 선무늬를 나타내는 조화기법과 무늬의 배경을 긁어내 무늬만을 남게 하는 박지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아가리 주위에는 좌우 사각형 안에 큼직한 꽃잎무늬를 한 개씩 넣었다. 둥근 측면에는 원안에 꽃잎무늬를 배치하고, 그 둘레에 연꽃잎 무늬를 돌렸다. 편평한 측면에는 나뭇잎무늬를 돌리고 있다. 몸통 가운데에는 모란잎과 모란꽃으로 장식하고, 바닥면에는 두 줄의 물결무늬를 새겼다. 모란잎무늬가 있는 면의 유약은 고르게 잘 녹아 있으나, 반대편은 유약이 잘 녹지 않아 불투명하다.
당당한 모양에 어울리게 활달하게 베풀어진 조화·박지기법의 무늬가 일품인 장군으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1071호 : 조선청자호(朝鮮靑磁壺) 호림박물관
조선시대 만들어진 청자 항아리로 높이 23.4㎝, 아가리 지름 10.8㎝, 밑지름 12.3㎝이다.
항아리는 아가리부분을 둥글게 말아 붙였으며, 어깨 부위가 급격히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형태이다. 높이에 비해 몸통이 넓어 양감이 느껴진다. 뚜껑은 꽃봉오리 모양의 꼭지에 낮게 층진 모양을 하고 있고, 아가리부분이 도톰하게 되어있다. 전면에 청자유약을 발랐는데, 고르지 않아 색이 약간 얼룩져있다. 이 청자 항아리는 항아리나 뚜껑의 형태가 조선 전기의 백자 항아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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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0호 | 제1071호 |
(제1072호-제1084호, 91.7.12 지정)
제1072호 : 초조본불설우바새오계상경(初雕本佛說優婆塞五戒相經) 호림박물관
불설우바새오계상경은 우바새 즉 일반 불교신도들이 지켜야 할 불교의 5가지 가장 기본적인 계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경전으로, 죄악의 가벼움과 무거움, 참회하여 없앨 수 있는 죄와 그렇지 않은 죄를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유송(劉宋)의 구나발마(求那跋摩)가 번역한 것을 목판에 새겨 닥종이에 찍어낸 것이다.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29㎝, 가로47.3㎝이다.
제1073호 : 초조본아비담팔건도론<권제24>(初雕本阿毗曇八건度論<卷第二十四>) 호림
불교경전은 크게 경(經), 율(律), 논(論)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비담은 부처님의 지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논(論)부분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아비담팔건도론은 성불(成佛)하는데 필요한 부처님의 지혜를 체계적으로 모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승가제바(僧伽提婆)와 축불념(竺彿念)이 공동으로 번역한 30권 가운데 권 제24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8㎝, 가로 46.7㎝의 종이를 16장 이어 붙인 것이다.
제1074호 : 초조본아비달마식신족론<권제13> (初雕本阿毗達磨識身足論<卷第十三>) 호림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현장(玄장)이 번역한 16권 가운데 권 제13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9㎝, 가로 45.7㎝의 종이를 23장 이어 붙인 것이다. 현재 1장부터 3장까지는 떨어져 나가고 없다. 이 책도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 ‘장(丈)’자를 쓰고 있고 책 끝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제1075호 : 초조본아비담비파사론<권제16>(初雕本阿毗曇毗婆沙論<卷第十六>) 호림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북량(北凉)의 부타발마(浮陀跋摩)와 도태(道泰)가 공동으로 번역한 60권 가운데 권 제16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30㎝, 가로 47.3㎝의 종이를 26장 이어붙인 것이다.
제1076호 : 김천리개국원종공신록권(金天理開國原從攻臣錄卷) 성균관대학교
공신녹권(功臣錄券)이란 공이 큰 신하에게 왕의 명을 받아 공신도감에서 발급해주던 문서를 말한다. 이 「개국원종공신록권」은 태조 4년(1395)에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공로가 있는 김천리(金天理)에게 공신도감에서 발급한 공신녹권이다. 문서에 기록된 인원은 총 695명이며, 필사본으로 기재된 이 문서는 1989년 지정된 개국원종공신록권(국보 제250호)과 동일한 내용으로 인명의 수와 발급내용이 같다.
다만 국보 제250호는 목판과 활자를 같이 써 간행된 것으로 이원길에게 발급된 것이다. 이 문서에는 한 변의 길이 6.5㎝의 ‘이조지인(吏曹之印)’이라는 도장이 45군데에 찍혀있다. 문서의 끝에는 당시 녹권에 관련된 공신도감의 임원인 녹사, 판관, 판사, 이조별감 등 18명의 명단이 적혀 있으며, 이들 중 13명의 명단 밑에 수결(서명)이 있다.
제1077호 : 근사록(近思錄)
『근사록(近思錄)』은 송나라 주희와 여조겸이 같이 쓴 책으로 성리학에 뛰어난 인물들의 글을 연구하는 개설적인 책으로서, 이론이 정연하다. 유학자들 사이에는 정평있는 역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필독서였다.
보물 제1077호 근사록은 보물 제1077-1호(1991년 지정, 서울 서초구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본, 공민왕 19년(1370) 간행 목판본)와보물 제1077-2호(2006년 지정, 서울 성북구 소재, 세종 18년(1436) 간행 활자본)가 있다.
제1078호 : 한석봉증류여장서첩(韓石峯贈柳汝章書帖) 국립중앙박물관
이 서첩은 선조 29년(1596)에 당시 명필가인 한호 석봉(1543∼1605)이 친구 몇 사람과 베푼 연회석에서 이 글을 써서 기증한 것이다.
3편으로 수록된 이 서첩에는 왕발의「등왕각서(등王閣序)」, 한무제의 「추풍사(秋風辭)」,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등 3편으로 모두가 연회석에서 즉흥으로 쓰여진 작품들이다. 한석봉은 이 서첩에서『등왕각서』라는 원래 제목 앞에 ‘추일연(秋日宴)’이라는 세 글자를 붙여 「추일연등왕각서」라 하여 보다 계절적인 감흥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한석봉은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편을 제시해 준 시구만을 뽑아 이 서첩에 담은 것이다. 서첩 첫 장에는 작은 글씨로 주인 풍산 유씨라는 소장자의 글씨가 한쪽에 쓰여있어 서첩은 유씨가문에 의해 보관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첩끝에는 당시 평소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의 연회석에 참여한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세 편의 시첩을 통해 한석봉과 그의 친한 이들과의 우정과 아울러 당시 임진왜란 직후 혼란한 시기에 사대부 사이에 팽배한 인생에 대한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으로, 당시 시대상을 실감하게 하는 자료이다.
제1078-2호 : 한호 필적-석봉진적첩(韓濩 筆蹟-石峰眞蹟帖)
이들 서첩은 선조연간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가 쓴 노년필적을 모은 것이다. 모두 3첩 1질이다.
제1078-3호 : 한호 필적-석봉한호해서첩(韓濩 筆蹟-石峯韓濩楷書帖)
이 상·하 2첩은 선조연간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가 절친했던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 1539~1612)의 시문 21편을 단정한 해서로 필사한 것이다.
제1079호 : 홍무예제(洪武禮制) 국립중앙박물관
예(禮)에 관련하여 편찬된 책이다. 중국 명나라 태조는 천하를 평정하고 당시 각지의 유학자들을 모집하여 예서(禮書)를 편찬하게 하였는데,『홍무예제』는 그 중 하나이다.
『홍무예제』는 당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태종 때까지 예조의 의식 등에 많이 활용되었으나 세종 때에 이 예제에 대해 이의와 논란이 많아 당시의 문신인 허조 등에게 제례작업을 명하자 당시 우리나라에서 관행되어 온『홍무예제』를 참작하고 그밖에 『두씨통전』, 『동국고금상정예』등 이전에 예에 관련하여 만들어진 서적을 수집하여 『국조오례의』를 제정토록 하였다. 이후 성종 5년(1474) 신숙주, 정척 등에 의해 비로소 완성, 발행하였다. 이후 『국조오례의』가 발행되자 점차 『홍무예제』는 소멸되어 갔다.
이 『홍무예제』를 통해 성종 이전 우리나라와 중국의 외교실태와 예제(禮制)를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1080호 : 대방광원각략소주경<권상>(大方廣圓覺略疏註經<卷上>) 국립중앙박물관
이 책은 당나라의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문으로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당나라 종밀(宗密)이 알기 쉽게 풀이하여 주석(註釋)을 붙인 것이다. 책 첫머리에는 당나라 배휴(裴休)가 쓴 서문(序文)이 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원래는 종이를 이어붙였던 것을 다시 종이를 잘라서 책모양으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세로 34.3㎝, 가로 19.7㎝이다.
송나라에서 만든 판본을 보고 고려시대에 다시 새긴 것이며, 인쇄 상태로 보아 처음 찍은 것이 아니라 후에 다시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출처] 대한민국 보물 36 (제1051호 - 제1080호) |작성자 김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