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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3 토) 봄이 오는 속리산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소금강산, 자하산 그리고 속리산이다.
관음봉(982m), 길상봉, 보현봉, 묘봉, 수정봉등 8개의 봉우리와 금강석문, 추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이고,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등의 여덟대가 있다. 세인들은 볼 수도 찾을수도 없는 이산중 어딘가에 팔진도법으로 진을 친 별천지의 세계가 있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가을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는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우리 함께 한국8경 속리산으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주차장에서 잠시 걷노라면 개울의 다리를 건너는데 이제 새싹이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었으니 이번 산행기의 제목을 "봄이 오는 속리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서제일가람 이라는 일주문을 지나는데 쭉쭉 뻗은 울창한 나무들이 반긴다. 속리산은 법주사(사적 명승지4호), 문장대, 정2품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로 대표된다. 법주사 통일호국 금동 미륵 대불은 황금 80 Kg 으로 습식 전기도금을 하여 개금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 (사적 및 명승 제4호) 의신조사가 천축으로부터 장경을 싣고 이 곳에 이르러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준엄함을 보고 속세를 떠나 불법의 진리를 펼곳이라 생각하고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 했으며 신라 혜공왕 12년과 고려태조 원년 그리고 세조대왕때에 각각 중수 중창됐는데 인조2년(1624년)에 임진왜란때 전부가 소실된것을 옛것을 모방해서복원한 것이다.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법주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이 바위를 예사롭지 않게 보았다. 위의 청동관음불상 측면에 있는데 단체사진도 마다하고 이곳으로 달려가 촬영 하였다. "이분"님에 의하면 "추래암" 이라고 한다. 근데 이 추래암과 금동미륵대불 뒷편의 산이 수정봉이고 그곳에 거북바위가 있으니 그 전설을 하산길에 자세히 수록 하기로 한다. 법주사 마애여래의상은 높이 6 m 의 암각화로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보물 제 216호) 단체사진도 찍지않고 또 혼자 쏘다닌다고 아내가 나무랜다*^^ 하지만 여행이든 산행이든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이 소중한 문화재를 놓치기 쉽다^*^ 법주사 내부에는 목련이 만개를 하였는데 팔상전 저~편으로 안개낀 속리산이 다가온다. 우측의 법주사 5층 목조탑 팔상전은 현존하는 목조탑중 가장 높은탑 으로 높이가 22.7 m 이다. (국보 55호) 법주사 철확은 현존하는 무쇠솥중 가장 큰 솥이라 하며 법주사에 3000승려 가있을시에 주솥이라 한다. 팔상전 앞으로 들려서 가고 싶은데 오늘은 속리산행을 왔기에 이제 부지런히 회사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
나는 이곳이 법주사의 무슨 요사채인가 하였더니 "이분"님에 의하면 "능엄전"이라는 교육관으로 전각현판과 주련을 쓰신 분의 초청으로 다녀 오셨다고 한다. 산속에 왠 저수지인가 하였더니 상수원으로 이용하는 저수지로, 왼편 호수 저편 봉우리가 수정봉인데 하산때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하고 일단 지나친다. 법주사일주문을 거쳐 법주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줄곳 돈을 많이 바른듯한 노랗고 딱딱한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40여분쯤 가면 세심정 휴게소에 닿는다.
세심정은 현재 이정표 뒤에 보이는 쉼터이자 식당 이름 이지만 세심정에 관해서는 하산길에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한다. 복천암 앞의 다리인데 "이뭣고다리"를 건너서 본격적인 산행길을 오르게 된다. 복천암에는 목련이 곱게 피어 산행객들을 반겨준다. 계곡에는 생강나무꽃이 아직도 노랗게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있으니, 3월 22일경 광양매화산행때 만났었던 꽃이니까 이곳이 깊은 산중 인가를 말해준다. 보기 드문 진달래꽃을 소나무가 배경이 되어 곱게 받쳐주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서 부터 노송은 지나가는 행인을 지켜준다. 이곳을 조금 지나니 능선 언저리의 쉼터에서는 맛좋은 솔잎주를 한모금 맛보여 주며 하산할때 꼭 들리라고 하는데 우리는 경업대로 내려가니 돌아갈수는 없었다. 냉천골에도 흐르는 계곡 물위에 다리를 놓고 그위에 쉼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정표다. 문장대 가까히 다가오를때에 만난 암봉위의 노송 문장대가 있는 능선을 오르는 사다리에서 담은 소나무가 멀리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더욱 청초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장대는 해발 1,033m높이로 속리산의 한 봉우리이며,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이~잉?~~그럼 앞으로 한번만 더 오면 극락에?*^^ 모처럼 함께 산행한 아내와 함께 기념 한판^*^ 세조가 이곳에 올라 시를 읊었다하여 문장대라 바꿔 불렀다고 할만큼 문장대정상(1,054m)에서 내려보는 경관은 장관을 이룬다. 문장대(文臧臺) 월광태자(月光太子)라고 지칭하는 귀공자가 꿈에 나타나 동쪽으로 사오리 올라 가는 곳에 영봉이 있으니 그곳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면 신심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조가 신하들을 데리고 온 종일 올라가 보니 하늘 위에 오른 것처럼 사방이 구름과 안개 속에 가린 영롱한 봉우리가 보였다. 그러나 위태로운 바위라 올라갈 수 없어 철못을 박고 밧줄을 늘어 정상에 올라보니 널따란 반석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세조가 집어 보니 오륜(五倫)과 삼강(三綱)을 명시한 것이라 세조가 크게 감동하고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글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 그 뒤부터 이 봉을 문장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상이 언제나 구름과 안개에 가려있는 봉이라해서 운장대(雲壯臺)라고 불리기도 한다.
위의 사진은 문장대에서 조망하는 관음봉(983M)이다. 문장대 상단의 관음봉쪽 안내표지판 인데 칼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아내더러 서게하여 기념사진을 담는데 아내의 머리가 산발되어 휘날렸다.
문장대에서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을 조망한다. 예전에 겨울산행때도 문장대에서 한참을 머물렀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매서워 더이상 머물지를 못하고 내려와야 하였다. 저~ 위에 보이는것 처럼 문장대는 암봉위에 난간을 설치하고 그 안에 백여명은 넉넉하게 쉴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상단 중간 중간에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다. 3년전 이곳에 다녀갈적에 자세히 그모습까지 담아 갔었다. 문장대를 내려와 일행이 자리잡은 넓다란 암봉위에서 각기 가져온 음식을 펴놓고 산상 뷔페가 차려졌는데, 내가 가져간 닭근위와 약식이 인기가 좋았다. 떠나올적에 경상도에서 온듯한 한남자왈 : 깜빡하고 약병을 못사왔는데 혹시 약 가진것 없는냐고~~^*^
다행히 일행중 이슬이병 따지 않은것이 있어서 주었더니 대신 무엇을 드릴까요?*^^ 과일이라도 드릴까요?*^^우린 금방 들고 일어나는 길이니 염려말고 드시오~! 암튼 보기좋은 산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문수봉에서 문장대를 줌으로 담아 보았다. 신선대(神仙臺) 멀리 남쪽 능선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오르는 춤을 추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데, 그 모습은 고승이 평생 원하는 선유세계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지나 신선들과 놀고자 그곳으로 달려 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이곳을 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담소홀 하는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곳으로 달려갈 엄두도 못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신선들이 놀던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문장대를 떠난지 30여분되어 신선대에 당도해서 담은 문장대~문수봉~칠봉의 모습이다. 신선대를 조금 지나 천왕봉과 경업대 갈림길인 3거리에 있는 안내지도 이곳 3거리에서 우리는 경업대로 하산을 한다. 예전에 아내는 이길로 오르는데 길이 험하여 혼났었다고 하는데, 오늘은 함께 이 산길을 간다. 입석대(해발 1016m)는 법주사 동북방 5.5㎞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 암석으로,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 7년 수도끝에 세운 것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입석대에 박아 놓은 쇠말뚝을 고유제를 봉행, 이를 제거 하겠다고 당시에 밝혔었는데 지금은 어찌되었을까나~~ 신선대를 10여분 지나 경업대에 도달하여 사방을 조망 해본다. 입석대 방향을 배경으로 아내와 함께^*^ 입석대는 천왕봉에서 신선대로 오가는 길에서는 잘 보이기는 하여도 나무들이 가려서 깔끔하게 담을수가 없었다. 이곳 경업대에서 보는것이 가장 조망이 좋다고 생각된다. 허허허*^^이사람이 청산 이여^*^ 계곡의 물가엔 파릇 파릇 가지의 새싹이 움트고 맑은 물위의 다리도 어여쁘다^*^ 길가의 이 바위에는 암각화같은 무늬가 눈길을 끈다. 산장이는 쉼터든 있는곳에는 맑은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나뭇가지 드리워진 흐르는 물결을 좋아하는 나의 습성을 따라서^*^ 위의 지도 왼편 한바퀴 돌아서 세심정까지 왔다. 천년의 쉼터 속리산 세심정 세속을 떠나 마음을 씻는 정자(터)라는 뜻으로 지금의 현실문제 즉 사업,직장, 가장문제등 복잡하고 힘든 문제들을 저 산 빡에 내려놓고 이곳에서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내 앞에 보이고 느껴지느 것들을 즐기라는 뜻이다.
이 산에서 주는 글 : 눈 앞에 보이는 일부터 미루지 말고 확실히 즐겁게 하면 "생활의 도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미리 걱정하면 당신은 바보이다. 이 사진은 세심정 아래 삼거리 경업대방향으로 잘 보인는 폭포인데, 이 폭포 조금 아래로 목욕소 라는 곳이 있다.
목욕소는 조선조 7대왕 세조가 국운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하여 번주사에서 대법회를 연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세조의 피부병이 곧 완쾌 될것이라고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졌다 하여 목욕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심정 터의 유래: 속리산은 국토의 등불기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최고봉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세 물줄기는 남한강, 금강, 낙동강의 발원수로서 한반도 기운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이 터는 삼국시대부터 이 산의 기운을 알고 공부하러 찾아오는 이들에게 음식과 휴식을 제공 하였고, 지금의 세심정은 속리산의 문장대, 천왕봉, 등반의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속리의 청정수는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시원하고, 한 모금 물을 머금으면 천하를 입에 담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왼편 낮은 봉우리가 수정봉이고 그곳엔 거북바위가 있는데 그 전설을 본다.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번지 법주사 서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을수정봉이라 한다. 수정봉이라 하는 이유는 법주사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남산(南山)이 있는데 남쪽은 화기(火氣)가 있는 곳으로 법주사는 모든 건물이 목조로 되어 있어 남산의 화기 때문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 이를 우려하여 법주사 뒷산을 수성(水性)을 가진 수정으로 산 이름을 지어 남산의 화기를 눌러 법주사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수정봉이라 하였다. 이 수정봉 정상에 넓고 편편한 큰 바위가 상하 두 계단으로 깔려서 백여명이 앉아 즐길만한 곳으로서 한눈에 법주사 경내 일원이 똑똑히 보이는 명당이다. 반석 위쪽에는 거북모습을 갖춘 자연석이 있는데 이 거북머리가 중국쪽을 향하고 있는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려다가 세숫물에 큰 거북그림자가 비쳤다. 이상히 여긴 태종은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도사가 대답하기를 동국(한국)명산에 큰 거북의 모습을한 이물로 인하여 중원(中原:중국)의 재화(財貨)가 동국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며 거북모습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태종은 도사의 말대로 사람을 보내어 사방을 찾다가 마침 속리산 수정봉의 거북돌을 발견하고 돌거북의 목을 자르고서도 안심이 안 되어 돌거북 등어리 위에 10층의 석탑을 쌓아서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 한다.
그리하여 목이 끊어지고 탑에 눌린 돌거북이 되고 말았다. 목 잘린 거북은 서기1665년 충청병마절도사 민진익(閔辰益)이 속리산 수정봉에 올라 탑을 보고 또 여기에 사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탑을 헐어 버리라고 하였다. 지금도 거북등에는 탑을 세웠던 흔적이 있고 법주사 방향으로 수정봉 중턱에는 파손된 탑신들이 남아있다. 법주사 입구 개울가의 벚꽃나무는 이제야 몽우리가 맺혀서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에 있으니 이곳이 꽤나 깊은 산중이다. 일행이 점심 식사를 하였던 대형식당 앞에서 멀리 속리산을 담아본다. 노송이 지켜주는 잔디밭이 한번 굴러보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다. 아~저~기 힌구름속에 가늘게 철탑이 보이고 그 옆에 문장대가 보인다. 줌으로 담아 보았는데, 여러분은 구분이 되는가요?*^^ 정2품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년의 소나무로, 조선 세조 때, 임금님으로 부터 정이품이란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나무'라고도 한다. 정이품송 살리기에 대해서는 잘 아시리라 믿고, 오늘 하루 종일 맑은 날씨속에 힌구름이 아름다웠는데, 우리가 차량기사에게 부탁하여 이곳에 차를 정차하니 아~이게 웬 일인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속에 그래도 이사진 담으려고 몸을 숙여 디카를 보호하며 아내 기념사진 담아 주면서 이 사진들을 힘겹게 담아 왔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다행이다. 청산이 가지고 다니는 소형 컴팩트 디카는 이제껏 대한민국 산하를 누비며 수십만장을 담아온 것은 물론이요, 유럽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참으로 많고 많은 사진을 담아왔구요*^^ 아~ 어디 그 뿐인가~~!!! 각종 음악회의 모습은 물론 동영상 수백편까지~~^*^ 얼마나 소중한 나의 가보 인지 모른다. 봄이 오는 속리산 함께 해주신 여러분~! 저 흐르는 물결처럼 해맑은 날들 되세요~~!!!
2011. 4. 23. 토요일
봄이 오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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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산님..... 와아... 넘 놀랐어요... 자세하고 세밀하게도 담아 오셨네요...
제가 지난 달에 법주사 능인전이란 교육관이 새로 지어져 전각현판과 주련을 쓰신 서각가를
스님께서 초청하신 자리에 여러분들이랑 다녀왔어요.그리고 수정봉까지 가벼운 등산도 하고요.
마애불사진을 놓치는데 잘 담아 오셨고 그 위의 바위는 추래암인데 그 바위도 지나치게 되죠
그런데 주변의나무,풀,꽃,이정표 ,안내판, 물 속에 잠긴 돌까지 맑은 물속까지 섬세하신 눈으로 잘 담아오셨어요..
정말 다시 속리산 다녀온 것같은 자세한 영상 ,감사합니다... 베리 굿.....
모셔가도 되나요....
그 주변을 이렇게 자세하게 다녀오시려면 얼마나 바쁘셨을
이분님~! 고마워요*^^
이제 산행기는 완료 되었습니다.
추래암 위의 수정봉 거북바위 전설까지 추가하여 엮었습니다.
추래암지나 올라가서 수정봉의 목이 파손 된 거북바위를 3월에 보고 왔어요..
그곳 스님께서법주사에오면 꼭 보고가야 한다고 등산하고 사진도 찍어왔어요....
너무 오래전에 다녀와서 기억이 희미합니다.
덕분에...잘 보고 갑니다.
봄으로 오시는 님, 봄이 오는소리 (황덕식곡)가곡중에 한 곡 올리면 더욱 아름다워질것같아요...
배경음악은 이분님 추천곡으로 하였습니다^*^
네... 참 좋으네요..... 이상목 시조시인(캐나다거주)의 시에 황덕식작곡으로 < 봄이 오는 소리 > 여기 잘 어울리네요...
좋은곡 추천하여 주셔서 감사 합니다^*^
봄이 오는 속리산...........
청산님과 함께 떠나보니 참으로 즐겁네요~~~
다리도 안 아프고 ㅎㅎ
어쩌면 이리도 내 눈으로 본듯이 상세하게 그려 놓으셨나요?
늘 편안하게 구경 잘 합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어 늘 이렇게...............
청산과 함께 속리산행 하실만 하지요?*^^
눈도 즐겁고 귀도 즐거우니 명산 명곡이 따로 없지요^*^
청산이 꾸며놓고 우리님들이 즐겨주시니 흐뭇하여 집니다^*^
청산님 따라 저도 세수하고 내려옵니다.
육일 원장님도 청산과 함께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청산님 가족과 함께 즐거운 산행..모처럼 함께 하신 즐거움이 어떠하신지요...
옛날 기억이 새롭게 느껴지내요..감사드립니다..수고했어요..
재작년 봄 백암산행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하였습니다^*^
잡아주고 밀어주며 다정한 나들이 산행이 힘들지만 참 좋았어요^*^
이분님과의 합작품인가요...
산상뷰폐와 이슬이...
그리고 문장대의 아슬아슬한 모습들..
쥑여주내요..
속리산은 충청북도 제고향의 큰사찰이라 매년 초팔일 불공드리러 가는곳이였어요,,,
속세를 떠난곳이란 이름처럼 하루세차레 다니는 버스타고 굽이굽이 산속길을
돌아가 법주사에 닿으면 정말부처님을 뵈옵는 신심이들었어요,,,
청산님 덕분에 오랬만에 속리산 다시보니 너무감회가 깊음니다 청산님 감사합니다
해정이 어르신의 고향 이로군요*^^
속리산행은 두번째 다녀 왔고~~
법주사도 두번째 다녀 왔는데,
법주사 구석 구석 찾아서 담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청산님 ~사모님과의~멋진 속리산 산행~ 부럽습니다~~^*^
수없이 많이 가본 속리산이지만~정말 자세히 담아 오셧네요~수고 많으셧어요 ^*^
누구나님~! 아내와 함께 가기로는 재작년 백암산 이후 두번째 산행 입니다^*^
속리산행은 두번째 갔는데 이번에는 짧은 코스인데도 내리막길이 힘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