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와서 ([은나빈 정모] 부산 연산로타리 해암뷔페 식당)
날씨가 조았따.
이웃 집의 영희는 화왕산 갈대 보러 간단다.
우리 집은 아무 데도 안 간다. 둘째 딸은 중학교 마지막 학년말 시험 대비 공부해야 하고 첫째 딸은 대학편입시험 대비 관계로 서울에서 학원에 가야하고, 옆지기는 피곤하다고 할 거 같기 때문에 아예 놀러가자는 말도 못 꺼낸다.
10시 쯤에 어려운 말을 꺼냈다.
그 시간까지 6년 전에 가입한 [은나빈 정모]에 간다고 말을 할까 말까?로 망설이는 중이었다.
한 달 전부터 [은나빈 정모]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까지 갔다가 온다는 일이 51세 넘은 내게는 부담이 된다.
나이는 51세지만 경북 북부 지방 안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부산은 도시이고, 크고, 어리한 촌 사람은 살 곳이 못되는 곳이었다. 부산까지 거리 감각이라든가, 지명에서 오는 위협(도시와 시골 촌 - 촌에서 도시가면 무조건 소매치기 당하고, 손에 낀 반지도 빼 가고, 목걸이는 이란는동 안 이란는동 며칠 지나야 알고 등등), 결정적인 촌티 내기(사투리 몇 마디만 딱 들어보면 단번에 촌 사람인 거 아는 기라. 서울 가서 빌딩이 하도 높아서 몇 층인가 궁금해 층수 세다가 돈 냈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남?) 등등으로 마음 졸였던 도시에 대한 선입감은 항상 초등학생 때 가졌던 멈춰버린 생각뿐이다. 게다가 어떤 분의 한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다.
"촌 돈은 도시 가서 휘발유 냄새 몇 번 맡으면 다 휴지 되는기라."
그래서 참석을 하겠다고 분명하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카페지기님의 결정적 한 마디에 꼬랑지 내리고 - 어개골님 겁쟁이세요? - 보름 전에 정모 참석 마감 기한을 넘겨 회비를 내고 은근히 기다리고 있던 [은나빈 정모]에 대한 이야기를 무슨 비밀인양 옆지기에게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어제(10월 27일) 아침에서야 겨우 꺼냈다.
"오늘 어디 안 가나?"
"이따가 영화나 한 번 보러 가입시더."
낚시로 따지면 입질이 엄청 있는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말도 안 꺼낸다. 단 두 글자로 적을 수 있다.
"안 가."
이 말만 들으면 나도 더 이상 [말 안 해]이다. - 경상도 머스마가 두 글자하고 여학생이 세 글자 한다꼬 미인약속님이 캤는데...이건 아니잖아. 오늘 날짜로 바낀나?
해봤자 하는 말이 뻔하기 때문이고 그만 집에 있지 뭘 어디 가냐고 튀박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쩌다가 하는 말이지만 영화보러 가자 하면 '뭐 재미있는 거 하나?' 그러다가 어쩌다가 구경하고 오면 '다시는 00000같은 영화 같이 보러 가자고 하지 마라이. 다시는 안 간다.'라고 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수준이 낮은 영화라는 것이다. [상사부일체]가 정말 볼 가치가 없는 영화였니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장도 봐 와야 되고, 낮잠이나 좀 자고, 목욕도 해야 하고, 쓰레기도 좀 내 놔야 하고, 텔레비전 재방하는 드라마 좀 보다가 낮잠도 자야하고, 조금 있으면 밥도 차려야 하고....'
하지 않은 말은 안 들어도 뻔하다.
'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맨날 나 혼자 해야 하나? 남자로 태어나서 한다는 꼴이 겨우 그거냐? 하루 종일 누워 가지고 오른 손 왼 손 리모콘이나 돌리다가 밥 때 되어 3시 3때 모두 달라하고, 잠이나 자고, 놀러갈 생각이나 하고...누구는 가기 싫어서 안 가나? 맘이 편해야 갈 생각이나 하지.'
나는 뭐 할 말이 없나?
'내가 도와 준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나? 전에 - 확실하지는 않지만 - 화장실 청소도 했고, 설거지도 했고, 거실 청소도 했고, 쓰레기도 내 놓은 적이 있고......'
말꼬리 잡기 놀이는 정말 재미있다. 그러면서 주제는 벗어나고 후에는 네 글자. [대화단절]
"나 부산 갔다 와야 하는데......"
"와요?"
"카페 모임이 부산에서 있는데 거기 가 볼라꼬."
"하이고, 그 먼 데를 어예 가요? 그냥 영화나 한 편 보고 치우지."
아이고 내 신세야!라는 뉘앙스가 하나도 없다. 어디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우리 부산 한 번 갔다 오자. 신혼 여행 때 가 보고 그 뒤로 안 가 봤잖아."
말도 없이 싱크대로 간다.
- 결혼식 후 3일 기념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근처에서 - 1985년 6월 16일 일요일 결혼
- 신랑측 하객들의 중론은 [신랑이 속았다], 신부측 중론은 [신부가 속았다]. 오늘까지 살아본 결과 유일하게 반대표 던진 신랑측 하객으로 오신 선배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어개골, 니도 결혼하나? 난 니 인물로 결혼 못할 줄 알았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 이따카디 니 참말로 땡 잡았네."
글쓴이 주 : 땡잡았네 이는 요즘 말로 봉황 잡았스....
작은 딸에게 말을 걸었다.
"니는 오늘 머 하노?"
"공부."
"우리 부산 가자."
"안 돼. 시험 공부해야 돼."
"언젠데?"
"11월 6,7,8일이야."
카페에 들어와서 정모 장소를 다시 확인했다. 인터넷 지도에서 확인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확인한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시라는 사실을 빠뜨렸던 것이다. 그냥 조금 큰 도시라고만 생각했고, 지도를 볼 줄 몰랐고, 해운대와 부산역, 광안리의 대략적인 위치도 몰랐고, 굴 몇 번 지나고 정체 몇 번 되고 나니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지명 몇 개만 알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낭패를 가져왔던 것이다.
"몇 시까지 가야 하는데요?"
"오후 5시."
여차여차하여 저차한 결과 같이 가기로 11시에 결정하고,
나들이 준비하는데 나는 1분, 옆지기는 1시간 13분이 걸려
드디어 부산 [은나빈 정모]에 참석키 위해 12시 13분에 시동을 걸었다.
출발 2분 전.
"이쁘네."
내가 앞장 서고 뒤 따라 오는 옆지기에게 무관심한 척 뒤도 안 돌아보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며 한 마디 건넸다.
우리 부부는 모선배님 집의 가칙(가칙 : 학교는 교칙, 가정에는 가칙?) 부칙처럼 산다. [부칙 1조 : 눈으로 대화한다] 결혼 한지 어느 정도 세월 지났을 무렵인가? 하루는 형수님이 이러더란다.
"우리 이야기 좀 하고 사시더."
"우리도 살만큼 살았는데 촌시럽거러 뭐 꼭 대화를 해야 하나? 눈으로 이야기하면 되지. 안 그래?"
그 뒤로 눈으로 대화한다나 뭐라나.
나는 눈으로 이야기에 덧붙여 눈치로 산다.
"민지(둘째 딸 이름)야, 밥 먹어라."
이 소리는 예전 같으면 '식사 하이소.'였는데 내게는 말이 없고 딸에게만 하는 소리이다. 우리 집 암호(?)이기도 하다. '밥 차려놨으니 먹고 싶으면 오소.'이다. 이럴 때 조금 늦으면 숨소리도 없이 밥을 먹어야한다. 밥이 정상이 아니어도, 반찬이 없어도 투정하나 못 부린지 오래다.
나이들면서 남자의 권력이 여자에게로 넘어간다더니, 우리 집 경제권은 정확한 연월일시도 없이 옆지기 것이 되어버렸고...
나, 남자의 권력 초창기는 이랬다.
부모님 집 제일 오른쪽 끝방이 우리 집이었다. 그래봐야 방이 3개 뿐이었다. ㄱ자 집이었다. 세를 주던 방이었는데 돈도 없고 해서 더부살이로 시작했다. 방에 누워서 일단 담배불부터 붙여 놓고
"재떨이."
카면 재떨이 가지고 왔다.
그러던 것이,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안방에서 거실로, 그러다가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다가 냄새난다고 베란다로 쫓겨 났다가 이제는 거의 숨어서 뒷방 베란다에서 피운다. 옆지기 기분이 조금 나쁠라치면 뒷방 베란다에서 피운 담배 연기를 싱크대에서 맡고는
"담배 피웠제?"
0코도 아니고 어떻게 알았지?
몇 년 전에 제주도 여행 한 번 갔다가 공항면세점에서 일인당 한 보루씩 파는 면세 담배 한보루 사 준 것이 지금까지 남편의 흡연을 내조한 최대의 공적 사항이다. 안 사면 손해날 것 같아서 억지로 샀다나 뭐라나.
"뭐, 늘 입고 다니던 건데....."
"글라? 오늘 더 이쁜데?"
크크. 은나빈 공식 아부 멘트에 속아 넘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이 정도 서비스는 늘 하는 것이....아니고 오늘만 해 주는 것이다. 속아 넘어간 증거 1은 아파트 입구 거울에 옆모습 한 번 비춰보기. 증거 2는 뒷모습 보려고 고개 돌려 거울 한 번 더보기. 증거 3은 멈춰 서서 한참 거울 보기.
차는 달린다.
남안동 인터체인지를 지나 단풍이 든 산을 보며 중앙고속국도를 달린다.
전혜린님은 고등학교 시절에 창문으로 비쳐지는 저녁 놀이 하도 아름다워서 울었다는데, 이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도 말이 없다.
"단풍 이쁘제?"
"예."
뭐 이런 식의 대화이니 차 안에서의 대화는 말할 거도 없다.
어쩌다가 대구 쪽으로 가게 되면 보통 군위 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쉬도 하고 휴게소 자판기 커피도 한 잔 먹고 한다. 보통 결정은 내가 한다. 그래도 오늘은 옆지기 모시고 [은나빈 정모]에 참석하는 중인데 의견을 안 물을 수 없다. 군위 휴게소를 지날 무렵 옆을 쳐다보니 주무시고(?) 계신다. 그냥 통과하고 칠곡 휴게소를 지날 무렵
"좀 쉬었다 갈까?"
"그럴라만 그라소. 근데 난 차에서 안 내린데이."
"그냥 가지 뭐."
오늘은 남편이 아니고 사모님의 기사 수준임을 실감한다. '예, 예. 그냥 가입시더.'
칠곡 휴게소도 지나고..금호분기점에서 경부고속국도를 타고 동대구 인터체인지 근처에서 대구부산 고속국도로 달린다. 빨리 가면 더 좋지 뭐. 해운대도 가 보고, 광안리도 가 보고, 태종대도 가 보고....
부산으로 간다.
부산역 에피소드 1
대구에서 만나 데이트 하러 부산갈 때 일이 생각난다.
부산역에 내려서 어디로 구경갈까?하고 기웃거리는데, 역 앞에 야바위꾼이 있었다.
세 개의 종지 속에 빨간 딱지 하나를 넣어놓고 종지를 돌려 빨간 딱지 든 종지를 맞추면 두 배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돈으로 만 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바람잡이들이었겠지 싶다. 맞췄다며 2만원도 주고 어쩌고 한다.
난 안할 요량으로 구경만 하는데 옆지기가 조금 보더니 맞추었다.
아, 글쎄 그 분들이 맞았다면서
"얼마 거셨어요?"
한다. 팔을 붙잡고 가자는데 미련이 남는지 힐끗 돌아본다.
꾼들의 바람잡이인가 두 명이 다가온다. 모른척하고 그냥 걸어나왔다.
"내가 맞출 수 있는데 왜 그냥 가요.'
이런 이런 좋게 말하면 순진이고 나쁘게 말하면 숙맥이 있나?
부산대구 고속국도는 처음 달려본다. 대구 수성구도 빠르게 갈 수 있다. 청도 휴게소가 고속국도 마지막 휴게소란다. 더 못참겠다. 휴게소로 차를 돌린다.
일단 쉬를 하고....커피를 한 잔 먹고...
"배 고프다. 뭐 좀 먹자."
"지금 먹으면 뷔페에서 많이 못 먹잖아."
오, 우리 집의 든든한 경제권자여. 파이팅. 부부는 일심동체라. 합체 하듯이 합심!
휴게소 못 미처 청도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청도반시축제라고 한다.
반시라고 하면 완전히 익은 홍시가 아니고, 홍시가 아닌 감을 껍질 벗겨 반쯤 말린 감을 말하는데...완전 곶감 되기 전에 물렁물렁한 감.
오징어로 치면 피데기라고나 할까?
부모님 집 뒤에 감나무가 두 그루, 앞에 한 그루가 있었다.
초등 시절 점심 시간에 밥도 없는 집으로 달려와서는 감나무에 올라 생감 2개를 먹고 가곤 했다.
감꽃이 필 때는 감꽃을 주워 바로 먹기도 했고, 실에 꿰어 말려 먹기도 했다.
길에 떨어진 감꽃도 우리 것이었다.
친구들은 내 눈치를 봐가며 감꽃을 주워갔다.
어린 감은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먹었다. [침수 담가 먹는다고 했다]
반시 뜻을 사전에서 찾아봐야겠다.
반시 :
사전 찾기도 전에 고이님이 올리신 글에서 반시를 찾았다.
반시(盤枾)라는 이름은 감의 모양이 소반(小盤)처럼 납짝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반시(盤 ) [명사] 납작감.
지기님의 반가운 인사(이사빛), 정모추진 위원장과의 만남(야원), 낯익은 닉네임 [우물가의 여인]님, [호랑이 h]님, 그리고 수고하신 [미인약속]님, [오륙도]님, 그 외 기억나는 [김연태]님, [진주라천릿길]님, [연희]님, [인숙언니]님, - 기억력의 한계로 닉네임이 틀릴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엄청 즐거웠고.................
님들 모르게 부산의 정기를 쏙 빼서 까만 비니루 봉다리에 다 담아가지고 왔습니다.
부산 경남님들, 어째 오늘 아침 일어나니 힘이 많이 없지요? 그게 전부 제가 정기를 뽀바 가주왔기 때문에 그런거이께네 그리 아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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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이상이면 계속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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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댓글 7개가 아니고 777개 였네요.
오늘은 일요일.
9시 57분 집을 출발하여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여하고 21시 59분에 집에 도착하여 한 시간 째 붙들고 있습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7글자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카페에 들어와 제 글을 읽어보니....앗! 이런 실수를 고의적으로 할 사람?인데......
글 쓸 때, 할 때 한꺼번에 끝까지 쭈우욱 왕창 해 버려야 하는 건데...댓글 777개를 7개로 객기부리다가, 동창과 어울려 소주 조금 마셨더니 제 머리 속 펜티엄7, 7메가 기억 용량이 완전 포맷되어버렸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는 한데 [복구 불능]이랍니다.
그래서 이런 사과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A.S 받은 후에 경과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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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님농장 반시(납작감)이 없었던 사진이 올라와있네요,,,,,,,,감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