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안경점
★ 김문기 작품
비행기를 날리면 휙 날아갔다가 방향을 돌리며 이쪽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번번이 그랬습니다.
"아빠, 이게 뭐야! 멀리 날 수 있는 비행기 만들어 줘요!"
꼬맹이가 징징거리며 발을 구르자 우리들의 거인은 이맛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만 집에 가 봐라."
"에이, 아빠!"
"이 녀석 혼낼 거야!"
거인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화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꼬맹이는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가게문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안경점』이라 쓰여진 간판에 부딪혀 넘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거인은 모른 체했습니다. 의자에 주저앉아 정말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시계는 오후 3시를 넘기고 있는데, 오늘 역시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습니다.
오전에 댕그랑거리며 문이 열리긴 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어서 오세요!'하며 인사를 했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구청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서울역 가는 버스는 몇 번이에요?'
정말 제기랄! 그런 사람들은 왜 안경을 안 쓸까? 안경을 썼다 하지만 왜 도수를 높이지 않을까?
거인은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4월의 햇살만 화창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문 안쪽에 행운목이 보였습니다. IMF 실직을 당하고 집에서 놀고 있다가 이 안경점을 차렸는데, 개업식 하는 날 고모님 하나 달랑 찾아와 선물로 진열해 놓은 행운목이었습니다. 꽃은 언제 필런지 모르지만, 고모님에게서 '열심히 돈 벌어 부자가 되어야지.'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일주일이 지나도록 손님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빠지게 손님을 기다리다가 의자에 앉아 졸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거인은 조리에 물을 담아와 행운목에 뿌렸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거인은 '화초든 행운목이든 그냥 자라는 거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행운목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하릴없이 손님만 기다리다가 오늘에서야 문득 배배 말라가는 행운목을 유심히 보게 된 거인!
그런데, 행운목에 물을 뿌리다 보니, 안쪽 잎사귀 위에 청개구리가 보였습니다. 희안한 일이었습니다.
"넌 누구니?"
처음부터 우연찮게 행운목에 얻혀서 온 걸까, 아니면 나중에 제발로 찾아온 걸까?
거인은 배배 말라가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히히 웃으며 물을 뿌려주었습니다.
"왜 허우적거리니?"
거인은 청개구리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냥 앉아있는 듯 싶었지만 더 자세히 보니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는 꼴이었습니다. 폴짝폴짝 뛰어 짝꿍에게도 가고, 집에도 가고, 밖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허, 녀석! 귀엽군!"
거인은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다시 청개구리를 보니 생각이 묘해졌습니다. 그래, 생각을 바꿔보자, 발상의 대전환이라 할까, 너야말로 이 안경점에 찾아온 첫 손님 아닌가!
거인은 청개구리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 치고는 작업대로 옮겨앉았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거인은 아주 자그마한 안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개업하기 전 학원에서 6개월간 배운 실력이지만, 안경 만드는 일은 자신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 예쁘고 기능도 뛰어난 안경! 청개구리에게 딱 맞는 안경! 거인이 만드는 안경은 세상 제일의 안경이었습니다.
안경을 다 만든 거인은 그것을 청개구리 눈 위에 씌워주었습니다.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허, 녀석! 난 첫 손님에겐 안경 값을 안 받는다. 무료야."
거인은 안경을 쓴 청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펴보다가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청개구리는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습니다. 허둥대는 듯 싶었지만 거인이 출입문을 열어주자 밖으로 뛰었습니다.
"첫 손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행운이 펑펑 쏟아지길 바랍니다."
거인은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부시시한 얼굴을 닦기 위해 세면대로 다가갔을 때였습니다. 수돗물을 마악 틀려고 할 때 댕그랑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아이고, 두 번째 손님! 어서 오세요."
거인이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자, 노랑머리 여학생이었습니다.
"안경테 사러 왔어요."
"아, 그러세요! 이쪽 진열된 걸 보세요. 어떤 게 맘에 드나요?"
거인이 안경테를 하나하나 들추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시 댕그랑 소리가 들리며 남학생 세 명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에, 저희들은 안경 맞추러 왔어요."
"아, 그러세요. 이리 앉으세요."
거인은 신이 났습니다. 여학생에게 은빛 안경테를 내주고 남학생 하나를 시력 측정기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마악 시력을 측정하려 하는데, 다시 댕그랑 소리가 들렸습니다. 꼬맹이가 비행기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아빠, 이젠 비행기가 잘 날아. 앞쪽을 묵직하게 바꿨거든. 자 봐."
꼬맹이가 문을 열더니 비행기를 날렸습니다. 똑바로 멀리 날아가고 있는 그 비행기를 쳐다보며 우리들의 거인은 모처럼 만에 미소를 함빡 지었습니다.
'그런데 내 첫 손님은 언제쯤 안경을 고치러 오실까? 언제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