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사건의 처리에 관한 小考 정성균 서울남부지법
Ⅰ. 가압류와 보전의 필요성
1. 글을 시작하며
채무자가 돈을 안 갚으면 채권자는 대개 가압류 신청부터 한 후 본안소송을 제기하는데, 이때 무조건 가압류결정이 발령되어야 할 것인가? 가압류결정은 돈을 받지 못한 채권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 2007년의 보전처분 사건이 일본은 2만250건인 반면, 우리나라는 49만1,418건(그 중 가압류사건이 42만3,103건으로 약 86%를 차지한다)에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남부지방법원만 2만2,719건이나 된다.
물론 사건수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고,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보전처분 중 가압류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가압류의 장단점
가압류결정을 받아 집행하게 되면, 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처분권을 제한하여 어느 정도 집행재산을 확보할 수 있고 임금이나 예금 같이 채무자에게 중요한 재산을 가압류하게 되면 채무자를 압박하여 굴복하도록 강요할 수도 있어서 권리실현을 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며, 특히 지급보증위탁계약체결문서(이하 ‘증권’이라 한다)를 담보로 한 가압류의 경우 채권자는 적은 비용만 감수하면 되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가압류결정을 받더라도 채권자평등의 원칙상 가압류채권자에게는 우선변제권이 없어서 다른 채권자들이 나타나지 않아야 실익이 있는 편인데 실제로 집행업무를 처리하다보면 다수의 채권자가 존재할 경우 가압류채권자가 만족할 만한 배당을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아예 배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3. 보전의 필요성
민사집행법 제277조는 ‘가압류는 이를 하지 아니하면 판결을 집행할 수 없거나 판결을 집행하는 것이 매우 곤란할 염려가 있을 경우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모든 보전처분에 있어서는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의 존재에 관한 소명이 있어야 하고, 이 두 요건은 서로 별개의 독립된 요건이기 때문에 그 심리에 있어서도 상호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심리되어야 한다(대법원 2005. 8.19.자 2003마482 결정)’고 판시하였다.
Ⅱ. 가압류사건 처리실태
1. 그동안의 개선조치
보전처분의 신속성과 밀행성을 강조하여 보전처분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재판을 운영함으로써 보전처분 남용현상이 만연하게 된 데에 대한 반성으로 2003년 전국 법원 신청담당 판사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가압류신청 진술서’ 등을 도입하였고, 2005년에는 채무자 보호를 위하여 민사집행법이 일부 개정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때의 논의가 그 후 얼마나 결실을 거뒀는지 재판에서 개정 조항들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참고로 2008년 전국 법원 신청사건의 처리실태를 보면, 처리된 총 가압류사건 43만2,227건 중 인용된 사건이 38만3,534건, 기각된 사건이 1만2,761건으로 인용률은 약 88.73%인 반면, 기각률은 약 2.95%에 불과하고(나머지는 담보제공명령이나 보정명령에 불응하여 각하되거나 이송, 취하한 사건들로 추측된다), 기각률에 중점을 두고 보면 여전히 대부분의 가압류신청이 쉽게 받아들여짐을 알 수 있다.
2. 채권자의 신청 실태
신청서는 대개 채무자와 (언제부터 언제까지) 거래를 한 결과 받을 돈이 얼마가 남았는데, 채무자가 이를 변제하지 않으므로 가압류를 신청한다는 내용이고 본안소송의 소장 내용에 ‘원고, 피고’를 ‘채권자, 채무자’로 바꾸고 추가로 보전의 필요성에 관한 정형화된 문구(확인·탐문한 바로는/조사해보니 ① 본안에서 승소해 집행권원을 받더라도 집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② 채무자의 다른 재산을 찾기 어렵고 유일한 재산이다 ③ 다른 많은 채무를 부담하고 있어서 가압류하지 않으면 집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우려가 있다 ④ 언제 처분할지 모른다 ⑤ 채무자가 변제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등)를 기재한다.
3. 신청서의 문제점
먼저 가압류라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만을 토대로 발령하는 것이므로 상대방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는 본안소송과 달라야 한다. 즉, 본안소송에서는 받을 돈이 얼마 있다고만 간략히 주장하더라도 상대방이 그에 대해 반박하면서 사실관계와 주장을 정리해가면 되지만, 가압류신청에서는 채권자가 스스로 거래의 구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령, 1,000만원의 채권을 주장하더라도 10년 동안 10억원에 이르는 거래를 하다가 최근 거래에서 1,000만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경우와 유일한 단발성 거래에서 발생한 채권 전액인 경우냐에 따라 보전의 필요성을 달리 판단할 여지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구체적인 거래의 경위, 실태를 생략하는 지금의 신청서들은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보전의 필요성에 관해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실무상 피보전권리가 인정되면 중복이나 과잉가압류가 아닌 한 비교적 쉽게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하여 가압류를 발령하였기 때문일 것인데 으레 가압류결정이 나갈 것으로 확신해서인지 대부분 위 2항과 같이 간략히 기재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정형화된 문구들을 살펴보면 ①, ②, ④의 경우에는 채무자가 부동산을 중개업소에 매물로 내놨다거나 이미 재산 일부를 빼돌렸다는 등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하려고 한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소명자료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 ③의 경우에는 사실 부동산의 경우 근저당권자들처럼 우선변제권을 가진 채권자들이 있어서, 채권의 경우 먼저 채권양수를 받거나 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채권자가 단순히 가압류결정만 받아서는 제대로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⑤의 경우 금융기관들이 많이 주장하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채무를 연체한다는 사정과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하므로 채무자가 어떠한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보전의 필요성이 있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즉, 위와 같은 형식적인 주장만으로는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압류신청 진술서가 매우 형식적으로 운용되는 문제가 있다. 고의 누락 또는 허위 진술시 불이익을 받을 것임을 명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자 본인이 신중히 읽어보고 고민해서 기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령 ① 명백히 다툼이 예상되는 사건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채무자인 상대방이 본안소송에서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다투기까지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보전권리’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청구채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단순하게 기재하거나 ② ‘보전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대법원 사이트에 게시된 양식조차도 ‘필요하면 소명자료를 첨부할 것’이라고 되어 있어 원칙적으로 소명자료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주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정형화된, 형식적인 문구를 기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는 아예 공란으로 비워놓는 경우도 있고, ③ 본안소송과 관련하여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도 제법 있거니와 본안소송 제기예정일을 공란으로 비우거나 아예 그 부분을 삭제해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본안소송 제기예정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참으로 많으며 ④ 중복가압류와 관련한 부분도 허위기재를 많이 하는 편으로써, 보전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취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Ⅲ. 개선방안
1.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엄격한 심사
공시송달로 진행되는 사건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를 생각해본다면 가압류 사건에서 피보전권리에 대해서는 아무리 엄격하게 심사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지금처럼 신청사건을 제대로 된 업무로 취급하지 않는 한 달라지기 어렵겠지만, 앞서 보았듯이 본안소송과 달리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지금처럼 가압류가 쉽게 발령되는 상황에서는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가압류를 신청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보전의 필요성에 관해 엄격히 심사한 결과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처리된 가압류사건 5,327건 중 인용 2,411건, 기각 1,922건으로 인용률 45.26%, 기각률 36.08%로 기존과 비교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경우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소명해야 하는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건대 신청사건에서 요구되는 소명의 정도는 법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가압류는 가급적이면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발령할 필요가 있고, 구체적으로는 계약서가 존재하는지(피보전권리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거래실태에 비춰 보전의 필요성 판단에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 사이의 관계, 현재 얼마의 채권이 남아있는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거래경위, 내역 및 청구채권이 발생한 과정과 이유, 채권자가 당초 거래할 때 어떤 채권확보 조치를 했으며 그동안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인적·물적 담보를 취득하였는지와 그 경우 구체적으로 얼마나 담보가치가 부족하기에 가압류가 필요한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유와 채무자를 믿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근거, 채권자의 변제요구에 채무자가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채무자가 재산을 매물로 내놓거나 실제로 빼돌린 적이 있는지, 채무자의 주소변동이 심하거나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주거지가 다른 경우, 거래를 본인의 이름이 아닌 타인 명의로 하는 경우인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채권자가 제출하는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2. 가압류신청 진술서 허위기재에 대한 제재
이의재판에서 어느 정도 불이익을 줄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정도만으로 충분한지 의문이다. 특히 신청사건은 재판절차에서 입구 역할을 하는 것인데, 여기서부터 거짓말로 법원을 속여서라도 가압류결정만 받아내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면 앞으로의 재판에 어떻게 임하겠는가? 법원도 쉽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겠지만, 진술을 보증하는 의미로 담보를 명하여 허위기재의 경우 전부 또는 일부를 몰취하는 등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재방안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현금공탁의 적극적 활용
물론 담당법관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여전히 증권에 의한 담보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이는 수수료나 채권자가 느끼는 부담, 채무자가 부담해야 하는 해방공탁금, 부당한 가압류결정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채무자가 담보권을 실행하여 현실적으로 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점 등을 감안할 때 과연 담보로써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현금성이 높은 재산이거나 채무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재산에 대한 가압류의 경우에는 채권자도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채권자는 이미 청구금액 만큼을 못 받고 있는 불이익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발령한다는 점과 사전에 채권확보조치를 하지 못한 데 대한 불이익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Ⅳ. 결론
아마도 인간의 속성상 채무자는 으레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는 점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명의신탁 등에 따른 불신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동안 가압류와 관련해서 보전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 관대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보전의 필요성을 너무 엄격하게 심사할 경우 선량한 피해자를 만들 가능성은 있지만, 정말 억울한 채권자라면 그동안 채무자와 있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소상히 밝혀 그 필요성을 인정받으면 될 것이며 가압류의 실익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에서 채권자로서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집행권원을 획득하여 집행을 완료하거나 사전에 채권확보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장에 따라서는 어쨌든 돈을 못 받은 채권자를 보호하는데 주력해야 하므로 가압류는 최대한 신속하게 발령해주고, 부당한 가압류에 대해서는 이의절차를 통해 재빠르게 구제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 재판업무의 현실상 이의절차를 통한 구제방법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서로 다툼이 심한 경우 채무자의 신속한 구제는 쉽지 않다. 게다가 피보전권리가 있으니 보전의 필요성도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또는 재산을 처분할 우려가 있으니 가압류는 일단 발령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라면 임금, 예금, 유체동산 가압류를 엄격하게 제한할 이유가 없다. 처분가능성면에서 보면 무엇보다도 가압류가 필요한 재산들이고, 채권확보 측면에서 보면 채권자평등의 원칙상 우선변제권이 없는 가압류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모든 재산에 대해 청구금액 전액을 가지고 일일이 가압류를 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청사건도 제대로 된 사건으로 취급하여 인용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사건으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채권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부족한 현실도 고민해야 하겠지만, 진정한 채권자 보호는 처음 거래할 당시 스스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다만, 가압류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대신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 강제집행면탈죄로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