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원(元)씨 유래
원씨(元氏)는 중국 하남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주(周)나라 양왕(襄王 : 재위 : 기원전 651∼619) 때의 위(衛) 대부(大夫) 원훤(元喧)의 후예로 전한다
元氏(원씨)의 得姓(득성)은 서기 기원전 633년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처음으로 원훤(元 )이라는 성명(姓名)을 내렸으며 이것이 원씨 창세(元氏創世)의 근원이 된것이다. 원씨는 위(衛)나라 종실(宗室)원훤(元 )대부(大夫)의 후손(後孫)이며 그 선조(先祖)가 원(元)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姓)을 원(元)이라고 한 것이다. 원주 원씨는 운곡계(耘谷系), 원성백계(原城伯系), 시중공계(侍中公系), 충숙공계(忠肅公系)의 네 파로 나뉘어 있다. 각 계통의 의견이 달라 합보간행은 못하고 있지만 원경을 시조로 하는 단일본임은 일치를 보았다. • 운곡파(耘谷派)의 원경(元鏡)는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에 파견된 8학사 중의 한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한국 원씨의 시조가 되었다. • 원성백파(原城伯派)의 원극유(元克猷)는 고려를 개국할 때 공을 세워 통합 삼한벽상(統合三韓壁上) 개국익찬일등공신(開國翊贊一等功臣)으로 정의대부 병부령을 지냈으며 원성백(原城伯)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원균은 원성백파 후손이다. • 상호군을 지낸 원충갑(元沖甲)을 시조로 하는 충숙공계(忠肅公系)가 있었으나 원성백계 원극유(元克猷)의 11세손임이 밝혀져 합보가 되었다. • 시중공파(侍中公派)의 원익겸(元益謙)는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시랑(宇侍郞)을 역임하여 원주를 본관을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조선시대 좌의정을 지낸 원두표는 원익겸의 후손이다.
后稷(후직)은 周나라 발상 鼻祖(비조)로써 15세손 開國 聖祖(성조) 이신 文王(성은 姬희)씨 이름은 昌 諡號(시호)는 西伯(서백))은 殷(은)나라 폭군 紂王(주왕)을 討滅(토멸)하여 岐山下(기산하)에 새나라를 創業하셨는데 이때에 功이 큰 長子 武王(이름 發)을 天子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국호를 周나라로 칭하여 太公望(태공망) (본명 呂尙(여상)) 에게 巧智한 사사를 받아 선정을 베풀으셨다. 건국이래 837년간 왕통을 계승하고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周公은 文王의 아들이요 武王의 아우(이름은 旦(단) 諡號는 元)중국고대 4대 성인중 한분(伏羲,文王,周公,孔子)인 周公은 武王께서 成王의 나이 겨우 13세에 崩(붕)하니 周公은 어린 성왕을 도와 왕실의 기초를 세우셨다. [주건국기 기원전1,116년][추호지;容德] 叔(숙)을 司寇(사구)로 봉하니 康에서 살았다. 成王이 殷(은)나라의 남은 땅을 叔(숙)에게 더하여주니 三監(삼감)을 통괄하여 孟候(맹후)가 되었으며 그를 衛伯(위백) 이라고 하였다. 그 後孫이 北宮(북궁)씨. 史(사)씨 . 石(석)씨. 承(승)씨. 孫(손)씨. 孔(공)씨. 縣(현)씨. 求(구)씨. 康(강)씨. 衛(위)씨. 戚(척)씨. 元(원)씨. 常(상)씨. 商(상)씨. 凌(능)씨. 南(남)씨. 林(임)씨. (영)씨. 등 18개 姓으로 되었다 [氏族大全제6권 서기1574년 明나라 徐湯(서탕)지음]
• 원훤(元)대부(大夫)는 衛나라의 정경(正卿;首相)이시었는데 학문과 덕망이 높고 영명하였으며 또한 무력(武力)이 용맹 하였다. • 원씨의 계통(系統) 근본(根本)을 거슬러 살펴보면 주나라(周國) 문왕(文王) 의 제9남(九男)이요 무왕(武王)의 아우이며 위나라 임금된 康叔(강숙)의 지손(支孫)이다. • 원현(元縣)은 은(殷國)나라 때에 대명부(大名府)의 소속이었으며 주(周)나라 때에는 위(衛)나라 땅으로 된것이다
正卿大夫(정경대부)元喧公(원훤공)은 위 나라 開元(개원) 君主이신 康叔公(강숙공)14世 支孫(지손)으로 識度 尤出(식도우출)하니 마침내 公卿에 이르렸다. 造詣文豪(조예문호)하고 奮揚武藝(분양무예)하니 文武兼全(문무겸전)이라 위 나라 文公, 成公, 兩代 (기원전630년)에 列國間에 대전이 일어남에 奬勵吏兵(장려이병)하고 討破群盜(토파군도)하여 苦楚萬狀(고초만상)으로 國難打開(국난타개)에 心血을 기울여 평정한 연후에 治定 制體(지정제체)함을 根本信條(근본신조)로 遭逢際會(조봉제회)하고 硏精義理(연정의리)하여 이웃나라간에 友誼(우의)를 敦篤(돈독)히 하며 나라에 선정을 베풀어 만민이 환호하니, 위 나라 諸侯 勅命(칙명)으로 元땅에 食邑(식읍)을 賜封(사봉)하여 줌으로 후손들이 (1300여년) 國朝를 이루었고, 대대로 樊鄕(번향)을 이루어 살았음으로 이로 인하여 지명을 따라 元으로 姓을 삼으셨다. [春秋國名譜서기기원전 480년 孔子著] 元氏(원씨)가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된 것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원씨가 발상한 것은 중국 주나라 왕실의 후손 元喧公(원훤공)이 衛國의 君主가 되시어 원씨의 創世라는 문헌이 있으니 원씨가 이땅에 동래하여 귀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50여년전 고구려말이나 신라중엽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이 姓을 사용한 것은 최초에는 왕실에서, 그 다음은 귀족이 사용하다가 국가공신에게 왕이 賜姓을 하다가 일반적으로 사용한 시기가 이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로부터 1.300년동안 많은 충효와 문인, 재상, 현신과 무인, 문학으로 이름을 드높혔다. 元鏡公(원경공)은 위 나라 宗室 公族이신 正卿大夫 元喧公(원훤공) 41世孫으로 唐나라 太宗 貞觀 年間에 勳爵(훈작)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平章事)에 이르렀다. 동방 고구려 보장왕 2년 (서기643년)에 당나라와 친선을 회복키위하여 사신을 당에 보내어 道藝之學에 능한 學者를보내 줄것을 秦請(진청)하시니 唐太宗께서 道學에 明哲하신 八學士를 선발하여 파견중 한분이 平章事公 元鏡이시다. 七學士와 함께 국내를 순회하면서 禮學과 道學에 萬民을 敎化한 功績(공적)으로 고구려 佐命功臣에 策勳되시었다. 서기 645년에 소문의 난(蘇文의亂)이 일어나자 평장사공은 勅旨(칙지)를 받고 7학사와 함께 신라에 이르니 선덕왕은 導迎和樂도영화락)하여 上賓(상빈)으로 대하니 元公 일행은 선덕왕을 도와 道藝之禮樂(도예지예락)으로 萬民敎化에 盡心全力(진심전력)하여 改修以德(개수이덕)으로 國泰民安(국태민안)하니 높은 爵位를 賞賜(상사)하시었다. 동래시조元鏡(원경)은 8학사중 한분으로 康叔公(강숙공)의 14世孫인 元喧(원훤)公의 41세손인데 그의 아들 원각(元角)으로부터는 40세손이다. • 원각공(元角公)으로부터 元鏡公(원경공)까지 40세손의 기록이 없어 약1200여년간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 또한 元鏡公(원경공)으로부터 系派別 中始祖까지 공백이 문헌상으로 기록이 없거나 불분명하기 때문에 하나의 系譜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唐王 勅命으로 高句麗를 지나 新羅에 이른 一行에대하여 各 家門譜史에 약간 다른 점이 있으나 여러 文獻을 詳細히 살펴보면 八人의 身元行跡은 거의 附合 합니다. • 道士들이 우리나라에 건너올 때 唐 太宗이 道士모임 朝會에 임하여 거울을 만들어 衣冠을 바로 밝혀보고 옛일을 거울 삼아 興하고 衰하는 것을 알고 얻음과 잃음을 밝히나니 짐들이 항상 이 거울을 保全하여 나의 허물을 막고 民衆의 德을 밝게 觀察할 意志의 表彰을 삼고자 이름 稱號를 前名 이름을 八學士가 一齊히 鏡을 命名하였다 한다. [ 舊 唐書 後晋平章事 劉 撰 ]
8학사가 고구려를 떠나 대동강을 건널때에 산천 문물이 서로 알맞게 어울어지서 아름다움과 기자의 옛 모승리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함께 읊었다. 절은 깊은산 물길이 다한 곳에 있고, 백구와 황 학은 함께 배회 하도다 . 기샌 파도가 문앞에 출렁이니 청뢰가 장관이며,모래 사장에 늘어선 집에는 만설이 쌓였구나. 녹음 속에 부는 바람은 묻 통소 소리와 같고, 빗속에 붉은 비단은 해당화가 핀것일세. 아랑이 품은 뜻은 고금에 한가지며, 경치 찾는 나그네는 돌아감을 아쉬워 하네. 계곡있고 돌 없으면 계곡은 돌이되고, 돌이있고 계곡이 없으면 돌은 신기하재 않으리. 이땅에는 계곡있고 돌이 있어, 하늘이 절경을 열있음은 나의 시를 위함일세. 높은 누각에 올라바라보니 허공에 뜬것같과, 고기잡는 어부의 생애는 나와 같지 아니하리. 뜰앞의 꽃이 지니 봄은 이미 깊어감을 알수 있고, 푸른말 사이로 비치는 푸른솔의 그림자는 더욱 쓸쓸하여라. 鯨 波 接 戶 晴 雷 壯 (경파접호청뢰장) 沙 岸 連 軒 晩 雪 堆(사안연헌만설퇴) 風 襄 綠 琴 森 發(풍양록금삼뢰발) 雨 中 紅 錦 海 棠 開(우중홍금해당개) 阿 郞 有 意 同 今 古(아랑유의동금고) 探 勝 遊 人 珍 未 廻(탐승유인진미회) 有 溪 無 石 溪 還 野(유계무석계환야) 有 石 無 溪 石 不 奇(유석무계석불기) 此 地 有 溪 兼 有 石(차지유계겸유석) 天 開 勝 地 我 爲 詩(천개승지아위시) 高 臺 臨 眺 若 氷 虛(고대임조약빙허) 漁釣 生 涯 我 不 如(어조생애아불여) 花 落 庭 前 春 思 晩(화락정전춘사만) 碧 簾 松 影 更 蕭 疎(벽렴송영갱소소)
8학사가 신라로 옮겨온 후에 제주도 御風樓(어풍루)에 올라가 世情을 살피고 다같이 한줄씩의 시를 지어 한데 묶어 七律詩(칠률시)를 지으니 모두 그 이름을 韻(운)字로 하였다. 금악에롤라바라니 아득히망망하고 첩첩마위에 올라서니 아늘이 가깝도다 구만리북극성은 신발을끄는것같고, 삼천리 동해바다는 바지를걷고 건널듯하다. 서쪽을 바라보니 인경의 황제가 보일듯하고, 남쪽을 바라보니 일본왕을 잡을듯하다. 아름다운 절경이 한없이널려있는 속에있으리, 마치수레를타고 하늘을나는 내몸과 같고나
登 登 錦 嶽 眄 蒼 茫(등등금악면창망) 信 步 層 巖 近 太 陽(신보층암근태양) 九 滿 北 辰 宜 曳 履(구만북진의예리) 三 千 東 海 可 裳(삼천동해가건상) 西 瞻 庶 激 燕 京 帝(서첨서경연경제) 南 望 將 擒 日 本 王(남망장금일본왕) 領 略 勝 區 無 限 景(영략승구무한경) 憑 虛 擬 駕 大 鵬 翔(빙허의가 대붕상)
1.한자사전 元 元 [으뜸 원] 1. 으뜸, 처음, 시초(始初) 2. 우두머리, 두목(頭目), 임금 3. 첫째, 첫째가 되는 해나... [부수]儿 (어진사람인발) [총획] 4획 • 1. 으뜸, 처음, 시초(始 初) • 2. 우두머리, 두목(頭 目), 임금 • 3. 첫째, 첫째가 되는 해나 날 • 4. 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五 官)으로 느껴지는 현상), 천지의 큰 덕, 만물(萬 物)을 육성하는 덕 • 5. 근본(根 本), 근원(根 源) • 6. 목, 머리 • 7. 백성(百 姓), 인민(人 民) • 8. 정실(正 室), 본처(本 妻) • 9. 연호(年 號) • 10. 화폐(貨 幣)의 단위(單 位) • 11. 나라의 이름 • 12. 시간(時 間)의 단위(單 位) • 13. 크다 • 14. 아름답다, 착하다 자원(字源) 회의문자 元자는 ‘으뜸’이나 ‘시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元자를 보면 人(사람 인)자의 머리 부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元자는 본래 사람의 머리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으뜸’이나 ‘시초’, ‘근본’, ‘우두머리’와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몽골의 제5대 황제인 쿠빌라이가 세운 나라 이름도 원(元)이었다. 1279년 남송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원나라도 ‘으뜸인 나라’를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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