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0931713_thumb.jpg)
조계산에 자리 잡은 명찰, 송광사에 도착하다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이곳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도모하였다. 원래 팔공산의 거조사(居祖寺)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뒤에 송광사로 장소를 옮겼다. 그 뒤 그의 제자였던 혜심(慧諶)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가 연이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여 승보사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조계종이 지눌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종파이기 때문에 송광사가 위치한 조계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36821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51729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808278_thumb.jpg)
승보사찰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지만, 삼보사찰 중 송광사만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법보사찰인 해인사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있고, 불보사찰인 통도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는 반면, 송광사는 스님이 상징인 승보사찰이라 앞의 두 사찰만큼 상징적인 문화재는 없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당시에 승보사찰답게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도왔던 터라 숱한 고난을 겪어 전각들이 많이 사라졌다. 이후 전쟁으로 인해 건물 몇 채가 더 불에 타면서 1920년대 송광사의 모습은 현재와 많이 달라져 그 옛 모습을 잃고 말았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43 - 송광사 (松廣寺)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867년(경문왕 7)에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폐허화되었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영천(靈泉)의 물을 마셨다. 그는 영천으로 인하여 뒷날에 큰 절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여 샘 주위에 돌을 쌓아두었다가 제자를 시켜 뒷날 그 자리에 절을 중창하도록 당부하였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30696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23687_thumb.jpg)
그러나 오랫동안 그 뜻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다가 1622년(광해군 14)에 응호(應浩)·승명(勝明)·운정(雲淨)·덕림(德林)·득순(得淳)·홍신(弘信) 등이 이극룡(李克龍)의 시주를 얻어서 중창하였다. 중창 후 벽암(碧巖)을 초빙하여 50일 동안 화엄법회를 열었는데, 이때 전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시주하였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27587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19678_thumb.jpg)
이로써 1636년(인조 14)에 각성(覺性)이 약사전과 칠성각을 중창하기까지 계속 큰 불사를 벌여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 대웅전은 2층 건물이었고 일주문은 절 남쪽 3㎞ 지점에 있는 만수교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 뒤 1813년(순조 13) 정준이 관음전을 중수하고 대웅전을 단층으로 개축하였다. 1814년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34년 극인(克仁)이 나한전을 중수하였다. 1993년에는 대웅전 삼존불상을 개금 하였는데, 이때 다수의 복장(腹藏) 유물이 나왔다. 1996년 포교당을 지었고, 1998년 지장전과 오층석탑을 세웠다. 1999년에는 석조 미륵대불입상을 봉안하고 첨성각과 옛 명부전을 이건 하였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02919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713424_thumb.jpg)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오백나한전·약사전·관음전·삼성각·십자각·천왕문·금강문·일주문 등이 있다. 이 중 1996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1857년(철종 8)에 제봉(齊峰)이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 팔작지붕이며, 조선 후기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624226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624161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638509_thumb.jpg)
대웅전 안에는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벽과 천장에는 선이 매우 활달하여 생동감을 가지게 하는 19세기 작품 비천(飛天)이 그려져 있다. 또, 십자각은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십자각이라는 이름은 건물의 평면구성이 十자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12개의 기둥을 사용하여 2층 누각형태를 갖춘 건물로서 고건축물 중에서 찾아보기 드문 예이다. 이 십자각 내에는 1716년(숙종 42)에 주조한 범종·법고(法鼓)·목어(木魚) 등이 있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611773_thumb.png)
일주문은 원래 만수교 앞에 있던 것을 1814년(순조 14)에 조계교(曹溪橋)가 있었던 곳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극인(克仁)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절 입구 동쪽에는 벽암·호일(虎一)·자수(子秀)·유문(有文)·자찰(自察)·서봉(西峰)·성심(性心)·한계(寒溪) 등 고승 20인의 부도가 있다. 또, 1636년에 신익성(申翊聖)이 찬한 송광사개창비를 비롯하여 목각칠층다보탑판(木刻七層多寶塔版)·조계교비·석조(石槽) 등이 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송광사의 건물들
선암사에서 네 시간을 걸어 굴목재를 넘은 뒤 송광사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오후 4시 40분이 되어 있었다. 계곡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에 송광사의 전각이 나온다. 사찰 내로 들어가고 싶어도 계곡물이 가로막고 있어 다리가 나올 때까지 걸어야 한다. 송광사로 진입하는 다리 옆에는 송광사에서 가장 멋진 건물이라 예찬받는 침계루라는 누각이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누각인 침계루지만 현판은 '사자루'라 걸려있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침계루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송광사의 상징적인 건물로 생각하고 있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55442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55397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611773_thumb.jpg)
침계루의 왼쪽에는 사천왕문으로 진입하는 우화각이라는 다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해우소를 앞에 둔 다리가 있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송광사 경내로 진입이 가능하다. 경내로 들어가면 좁은 공간에 밀집된 선암사의 건물들에 비해 대웅보전 앞에 엄청난 크기의 마당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마당을 둘러싼 건물 중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네 개가 있지만 넓혀진 마당으로 인해 원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38656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1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38757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39657_thumb.jpg)
대웅보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을 둘러보면 초라한 규모의 건물 두 개가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과 영산전인데 최근에 지어진 다른 건물들에 비해 그 규모가 초라해 보인다. 약사전은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서, 규모가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법당이다. 앞면·옆면이 모두 1칸으로 간결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재 있는 우리나라 법당 중 가장 작은 이 약사전은 조각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의 건물로 추정한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28286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28320_thumb.jpg)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석가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있으며, 이외에도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담은 영산대회 그림도 볼 수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에 사용한 부재의 세부 기법이 힘차고 간결하여 조선 전기 건물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15479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15274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14211_thumb.jpg)
두 건물 모두 겉으로 보면 작고 아담한 규모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지어졌을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것처럼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는 것이다. 다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답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목재가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이다. 목재 위에 그려진 그림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숨죽이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송광사의 다른 전각들보다 훨씬 작은 규모인 약사전과 영산전이 송광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 깊었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00970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501336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58564_thumb.jpg)
국보로 지정된 국사전과 또 다른 보물인 하사당은 대웅보전 뒤편에 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이라 출입을 막아놓아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면 송광사를 소개하면서 두 전각도 함께 볼 수 있을 듯하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2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26647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26790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34008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26572_thumb.jpg)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06961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407031_thumb.jpg)
하사당은 대웅전 뒤 한층 높은 곳에 세워진 승방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왼쪽 2칸이 툇마루를 갖춘 온돌방이고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장식을 겸하는 간결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부엌 지붕 위로 네모 구멍을 내고 조그만 환기구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43528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43665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50715_thumb.jpg)
송광사는 승보사찰답게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외에도 수십 개의 전각이 있다. 대웅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에서 스님들은 수행을 하면서 승보사찰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법정스님이 수행했던 공간인 불일암은 송광사 경내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턱에 있어 찾아가기가 힘들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33021_thumb.jpg)
송광사의 진면목을 보려면 성보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송광사의 또 다른 국보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을 비롯해 조선 시대 만들어진 수많은 문화재들이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송광사를 찾았을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3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20009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4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19640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4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26844_thumb.jpg)
성보박물관을 지나 송광사를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송광사 계곡을 따라 수많은 식당들이 세워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삼보사찰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절문으로 진입하는 공간에 절과는 상관없는 상업시설이 숱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송광사 또한 예외는 아니었기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8분이었다. 선암사처럼 순천 시내로 가는 버스가 많을 줄 알았는데, 버스 간격이 상당히 길어 놀랐다. 63번 버스가 순천 시내와 송광사를 연결하는 버스인데, 송광사에서 오후 5시 35분에 도착한다. 5분 정도 기다리는 것 같은데 조금만 늦었더라면 버스를 놓치고 1시간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4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15192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4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16206_thumb.jpg)
![제43화 - 승보사찰 송광사에 가다4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3%2F01%2F18%2F20230118211309293_thumb.jpg)
선암사가 목적인 여행이었지만 조계산에도 오르고 승보사찰인 송광사도 볼 수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선암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에 등재된 사찰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한 사찰이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찰은 선암사가 아니다. 가장 최근에 방문한 사찰이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대흥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