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DCCLXXII / 인물과사상사 13번째 리뷰] 1930년 미국을 관통한 사건은 무엇일까? 흔히 알고 있기로 '대공황'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29년 '검은 목요일'로 기억되는 주식 대폭락은 수많은 미국 도시인들을 실업자로 내몰았고, 금융계는 부도와 파산으로 쑥대밭이 되었었다. 그렇게 미국 경제는 10여년 간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했고, 미국이 헤롱거리던 시기에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로 대변되는 '파시즘'이 창궐했으며, 소련은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공산주의'가 약진을 하고 있었다. 이는 대공황을 맞이한 자본주의가 맥을 못추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공산주의가 대공황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었던 탓이다. 흔히 말하는 '뉴딜 정책'은 대공황에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자본을 쏟아붓긴 했지만 그것이 '실업자 구제'로 이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산주의'체제에서는 실업자가 훨씬 적었다. 그렇기에 대공황과 같은 시기에 '똑같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하더라도 자본주의는 맥을 추지 못한 반면에 공산주의는 궁여지책이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의 틈바구니에 있던 유럽은 어땠을까? 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경제를 겨우 '자력경제'로 회생할 즈음에 대공황을 맞이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말도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파시즘'이 득세하면서 '경제회복'을 맞이한 두 나라가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와 '독일'이었다. '검은 셔츠단'의 무솔리니는 혼란한 정국을 '로마진군'이라는 강행수로 돌파하며 단박에 '두체(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한편 '나치'의 히틀러는 쿠테타를 시도했다 실패한 뒤에 '평화적인 방법(?)'인 선거를 통해 정치계로 화려하게 복귀하고서 경제난으로 허덕이는 독일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며 '총통'의 자리에 당당히 오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이 '정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력으로 공포를 심어주고 총칼로 압제를 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경제난 해소'를 해내고 '국가적 자긍심'을 심어주며,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심어준 덕분이다. 대공황으로 전세계가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이탈리아와 독일은 어떻게 경제난을 극복하고 국민을 일치단결시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침략전쟁'이었다. 아니, 본격적인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이니 소규모 침략(?)이긴 했지만, 전쟁을 치룰 수도 있다는 분위기만 띄워도 '군수산업'을 바탕으로 한 경제가 되살아나는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파시즘의 독재자'들이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파시즘'이 한 몫 단단히 했다는 이야기가 솔솔했다.
아닌 게 아니라, 1930년대 미국의 후버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은 각각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파시즘'을 이상적인 통치수단이라며 대단히 호평을 했더란다. 당시 미국은 '경제대공황의 수렁'에 점점 빠져들며 위기에 봉착했었는데, 경기부양을 위해 실업자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복지정책'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었다. 왜냐면 자본주의국가에서 '공산주의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다는 반대이유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파시즘'은 공산주의(막시즘)를 악마에 비유할 정도로 맹렬하게 비난한 탓에, 미국에서도 대단히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심지어 미국내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물론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파시즘)은 공동체를 우선으로 삼고 있으니 엇비슷한 체제인 듯 싶은데도, 히틀러의 사회주의(나치즘)는 공산주의와 판이하게 다르다며 마르크스를 맹비난 했더란다. 훗날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독소 불가침선언'을 무력화하며 소련침공을 했으니 정말 미워하긴 했던 모양이다. 당시 스탈린은 그 선언만 믿고 '독일 침공'을 전혀 대비하지 않은 채 '군부 숙청'을 단행해버렸고, 때마침 침공을 한 독일군대에 모스크바가 포위되고, 스탈린그라드를 빼앗겼으니, 스탈린이 히틀러를 직접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만도 했다. 암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꽤나 다른 듯 싶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자본주의의 폐해가 정점에 다다르면 '사회주의'로 전환하게 되고, '사회주의'가 무르익게 되면 '공산주의'로 귀결된다는 사회진화적인 관점이 있는 것을 보면, '사회주의'는 완벽한 공산주의로 귀결되기 이전의 불완전(?)한 단계로 단순무식하게 볼 수도 있겠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말이다.
암튼, 미국은 경제대공황을 맞아 '파시즘'적인 면모를 확연하게 보여주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러나 '파시즘'은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했던 미국은 자연스레 새로운 차별 방법을 터득하게 되니 바로 '우생학'이었다.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은 어처구니 없게도 유럽보다 먼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그것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게 '우생학'은 미국인의 인식 저변에 파고들어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그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끔찍했다. 소위 '유전학적 질병'의 소지하였다고 판단되며 '불임수술'은 물론이거니와 '안락사'까지 시켰으며, 사사로운 폭력을 저질러도 '무죄판결'을 받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단다. 더 나아가 '골상학'이란 사이비과학에 이르게 되면 '범죄형'으로 생겼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자비한 일을 시행할 지경이었단다.
미국이 '파시즘'으로 물들어 있던 시절도 있었다니, 솔직히 잘 몰랐었다. 그리고 미국에 '우생학' 같은 사이비과학이 대유행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심각성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된 믿음'으로 저지르는 폭력의 위험성은 오늘날 우리가 '파시즘'을 경계하는 이유이지만, '파시즘'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 이를 테면 '경제위기극복' 같은 것 말이다. 그 효과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굶주림이 일상이던 시절에 배고픔을 해결해준 이에 대한 고마움이 '맹신'과 '숭배'로 이어지는 현상을 우리도 겪어봤으니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개발독재'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으로 박정희의 과오가 묻혀지고, 심지어 그의 딸까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해주는 일에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 두 나라의 국민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무솔리니와 히틀러라는 '파시즘 독재자'를 만드는 과정이 당연한 귀결로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미국조차 '대공황'이라는 위기 앞에서 '파시즘'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더냔 말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도 한순간에 위기를 맞게 되면 '이성'을 잃고, '당장의 이익'을 위해 영혼까지 내던져버리는 '비이성적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성의 밝은 빛을 잃어버리면, 끝내 '전쟁'이라는 파멸을 불러오게 되고, 그 잿더미 속에서 다시금 '이성'을 되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이미 겪었다. 그 아픔과 고난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명철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