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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 ||||
통계에 의하면 미국 인구가 2억 8천만 명이고, 교회수가 29만 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례로 보면은 미국은 사람 1000 명당 교회가 하나꼴로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교회 숫자적으로도 최고요 인구 비례적으로도 최고입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우리나라는 교회가 3만 6천 개 가량이 있는데 인구는 4천 3백만에 이르니까 우리나라는 인구 1200명당 교회가 하나씩 있는 셈이고 미국에 이어서 세계 두 번째로 교회가 인구비례적으로 많은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교포교회를 보면은 더합니다. 로스엔젤레스에 보면 LA의 인구가 60만 명 정도 되는데 교회가 1000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6백 명당 교회가 하나씩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100년이 조금 지났는데 교회가 흥왕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교회 역할이나 숫자가 많은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100년만에 흥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큰 축복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이지만 이 세계의 역사, 특별히 신약 2천년의 역사를 보면 교회를 따라 복이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로마로 들어가면서 로마는 세계최대의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그 복음이 로마에서 기울고 유럽으로 특별히 영국으로 가게되더니 그 복음이 영국에서 꽃을 피우면서 영국은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세계 최대 최강의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그 복음이 영국에서 기울고 그 복음이 미국으로 저 아메리카로 넘어갔는데, 그 미국이 200년을 넘자마자 300년도 되지 못해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한 파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눈을 떴고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기적과 똑같은 보조 속에 이루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는 이 축복을 바로 감당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이 민족에게 교회와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끝없이 부어 주는 이 축복을 성도들과 모든 세상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죄짓는 데에 이 축복을 사용하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서 교회 부흥이 정체되더니, 1996년, 즉 재작년에 교회가 정말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재작년을 보면 전주만해도 매년 20∼30개씩 불어나던 교회수가 12개가 줄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정말 교회들은 눈에 띄게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와 함께 우리에게 무서운 경제적 파탄 IMF라는 경제적 파탄이 오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교회와 경제를 나란히 얘기한다면 이것은 우연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 복을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2천년 신약 역사를 통해서 명명백백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신 것 교회를 흥왕케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요 또 그 교회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다른 축복도 내려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저는 바로 이 교회가 오늘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 지금의 이 현실을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고 있고 하나님의 복이 떠나고 있다는 안타까운 자각을 할 수 있고 우리가 교회를 얼마나 더 사랑하고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받들어야 되는가를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자, 교회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정의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우리는 오늘 우리가 택한 본문을 통해서 교회에 대한 아주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의 표현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땅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경이 저들 가운데 너희를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 속에 귀한 교회에 대한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주고 사신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얼마나 필요한 것이면 피를 주고 이 교회를 샀겠습니까? 이 교회는 하나님의 피값이 지불된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라고 표현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계시겠습니까? 자기의 피를 주시고 자기의 피값을 내고 사셨으니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 사실 제 3자적인 입장에서 보면 뭐 그렇게 중요한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우지만 커서 그놈이 훌륭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만 또 커서 세상에 짐만 되는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말하자면 남이 우리 자녀들을 돈 천만원 주고 사가라고 해도 사가겠습니까? 안 삽니다. 남이 3자 입장에서 보면 천만원이 아니라 거저 가져가라 해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아무 값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는 얼마나 소중합니까? 천만원 주고 팔라면 내 자식들 팔 수 있습니까? 팔 수 없습니다. 억을 주어도 팔 수 있습니까? 팔수 없습니다. 아니 내 생명을 다 빼앗긴다고 해도 자녀들을 팔수가 없고 줄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값이 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내가 낳은 자식 내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내게 귀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뭐 크게 잘난 것도 아닙니다. 교회가 나라보다 이 국가보다 엄청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교회가 어떤 큰 삼성이나 현대 같은 회사보다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이 나라보다 어떤 큰 회사보다도 세상의 어떤 단체나 기구보다도 하나님께 가장 귀중한 존재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보물이 하나뿐인데 그것은 교회다." 하나님께 교회는 보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는 것, 제일 아끼시는 것, 제일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무엇이냐? 교회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교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교회를 말씀 하시면서 28절에 교회를 '온 양떼'라고 양에 비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여러분들은 양들입니다. 양으로 비유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양은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목자'와 '떼'라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양은 짐승의 밥이 되고 맙니다. 오직 양은 목자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또 떼를 이탈해서 양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듯이 성도들은 목사없이는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이 무리 교회라는 이 잘나지 못한 이 무리들을 떠나서 성도들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간혹 똑똑하고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혼자 믿어도 되지 않느냐, 마음으로 믿어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고 목자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양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필수적 조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이 교회는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의 교회에 대한 묘사에 의해서 교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관심을 갖는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성도들이 이 교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생존의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교회는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고 믿음으로 천국을 갑니다. 그런데 그 거듭난 생명 그것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우리는 성숙해야 합니다. 양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양육을 어디서 받습니까? 교회에서 받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났기는 태어났는데 만약에 태어난 대로 아무도 돌보지 않고 가만히 둔다면 어린아이는 죽고맙니다. 누군가가 돌보고 누군가가 먹이고 누군가가 보호하고 누군가가 가르치고 이렇게 부단히 양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다고 그대로 두면 안됩니다. 이렇게 양육을 해야 하는데, 교회가 어머니처럼 새 생명을 양육을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9절에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것과' 20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꺼림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죽 넘어가서 3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워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훈계하며 가르쳤겠습니까? 저들을 양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들을 키우기 위해서 저들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저들이 하나님의 복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바울은 눈물로 저들을 훈계하고 설교하고 교육하고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잘못했을 때 저들이 성장하지 못했을 때 바울은 저들을 어떻게든지 키워보려고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만년 어린아이로 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가 19살, 20살이 먹었는데도 "엄마, 엄마 나 응아 쌌어. 응아 딱아줘." 20살짜리가 만일 그런다면 눈물감입니다. 자녀가 나이가 30이 되었는데도 어머니 생일날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한번 찾아오지 않는 자녀가 있다면 그것도 역시 어머니의 눈물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철없는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무엇을 맡기지도 않고 부모가 유산도 물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숙하지 않으면은 성장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장하지 않는 성숙하지 않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시지 않습니다. 무엇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도들은 성숙하고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이 보아 아주 흐뭇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바로 그렇게 성도들을 성숙할 수 있도록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대강대강 다니다가 천국 가려고 하지 마세요. 제가 그랬지요? 하나님은 우리들을 다 사랑하세요.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다 사랑하세요.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을 보고 "됐다." 기쁘게 아주 감사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도록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어떤 사람을 보고는 사랑하시는데 하나님 마음이 슬퍼요. 여러분 자식들이 정말로 부모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정말로 못된 자식들 보잖아요? 사랑해요?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러나 사랑하지만 부모의 가슴에 늘 근심과 슬픔이 되는 자식들이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사랑을 받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쁘게 사랑하겠어요? 대견스럽게 사랑하겠어요? 아니면 슬프고, 하나님께 근심거리가 되는 자녀들이 되고 있어요?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 모두 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자녀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는 자녀인가, 기쁨이 되는 자녀인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너무너무 하나님의 가슴에 근심거리가 되지 마세요. 10년, 20년이 되어도 주일성수 하나 못하고, 십일조 하나 못하고, 전도도 하나 못한 것은 하나님의 근심거리일 거예요. 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도 그 성품 하나 변하지 못하고 그 마음 하나 바꾸지 못하고 습관 하나 바꾸지 못하는 것 하나님 마음에 근심거리일거예요. 하나님 마음에 슬픈 사랑을 받고 있을 거예요. 꾸중 한번만 들어도 뺑 돌아서 삐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앞에 근심거리일거예요.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 마음에 근심거리예요. 제발 그러지 말고 우리들 다 성숙하고 성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는 고민은 우리 온누리교회에 어린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그러나 그 어린아이를 키우고 돌봐줄 성숙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중간에 그룹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전에 있던 교회는 목사님이 만 2년 동안 없었어요. 그런데 교회가 그대로 있어요. 목사님이 2년 동안 없었는데 교회에 교인들이 그대로 있어요. 우리 온누리교회에 제가 만일 2년 동안 없다면 우리 온누리교회가 그대로 있겠습니까? 그게 문제예요, 여러분. 여러분 온누리교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이유를 발견하세요. 사명을 발견하세요. 여러분, 우리 교회 제가 보기는요 3분의 2이상은 그런 은사 있어요. 그런 사명들 있어요. 그런 축복들 받았어요. 이제 좀 하세요. 발견하고 하세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야 성숙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때 내가 성숙해요. 그렇게 하면서 성숙해 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교회는 우리를 보호하는 피난처입니다. 앞에서도 양에 대한 말을 했는데 우리는 양입니다. 그런데 양은 보세요. 성경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양이라고 했는데 양은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빨이 강한 것도 아니고 빨리 도망갈 수 있는 발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양은요, 눈까지 근시안이에요. 멀리 보지도 못해요. 그런데 그 양은 사실은 힘이 센 호랑이보다도 사자보다도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 양이에요. 어쩌면 우리들은 그 양같이 못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 양이 행복하고 안전한 조건이 있는데, 비결이 있는데 어디에 있느냐하면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고 우리 안에 들어가 있을 때 행복한 거예요. 그 양 우리 안에서 돌봄을 받을 때 행복한 거예요. 그 양 우리가 어디입니까? 여러분. 교회예요. 성경은 교회를 양 우리라고 말해요. 이 양 우리 안에 있을 때 목자가 양을 세는 거예요. 세주는 거예요. 이 양 우리 안에 있을 때 목자가 지켜주는 거예요. 이 양 우리 안에 있는 양을 꺼내서 목자가 푸른 초원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꼴을 주고 물을 주는 거예요. 이 양 우리 안에 있을 때 질병이 나면 치료해 주고 문제가 있을 때 달려가는 거예요. 그런데 똑똑한 양은 나 혼자 살겠다고 자기가 세겠다고 양에 비해서는 셀 수 있을지 몰라도 양 우리를 떠나는 순간 무서운 사자가 무서운 호랑이가 무서운 늑대가 그 양들을 기다리고 항상 양 우리를 뱅뱅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지가 똑똑한 것 같지만 지가 잘난 것 같지만 그는 금방 사자에게 짐승에게 잡혀 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밖에 나가보세요. 얼마나 우리 영혼을 파멸시키려는 무서운 이단사설이 더러운 사상이 미혹의 손길들이 가득차 있는지 아세요? 여러분, 교회가 건물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교회 밖을 벗어나면 세상에는 아주 더러운 사상이 아주 무서운 이단사설이 우리 영혼을 파멸시키는 우리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많은 이단사설들이 넘치고 있어요. 그런데 교회가 울타리가 되어서 교회가 사상의 울타리가 되어서 교회가 그 행동의 울타리가 되어서 가치관의 울타리가 되어서 그 위험들 그 미혹들 그 유혹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떠나면 교회의 울타리를 떠나면 자유스러울 것 같지만 금방 그 무서운 짐승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지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곳이에요. 세상의 더럽고 악하고 무서운 사상의 물결을 막아주는 곳으로서 우리의 영혼의 부패를 우리의 영혼의 멸망을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을 이 교회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교회에다 맡겼어요. 여러분, 진리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어요? 교회에 있어요. 대학에 있지 않아요. 박사들 머리 속에 있지 않아요. 진리는 교회에 있어요. 하나님은 그 진리를 교회를 통해서도 전달하세요. 그와 같이 하나님은 그 진리를 지키고 전달하도록 교회에 능력과 복을 주시는 거예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래서 복음을 따라서 복이 함께 따라다닌다는 것을 말씀드렸어요. 복음이 로마로 가면 축복도 로마로 갔어요. 복음이 유럽으로 가면 축복도 유럽으로 갔어요. 복음이 영국으로 가면 축복도 영국으로 갔어요. 복음이 미국으로 가면 이 축복도 미국으로 갔어요. 복음이 한국으로 오니까 이 축복도 따라왔어요. 복음이 여러분의 가정에 들어가면 축복도 여러분의 가정에 들어간 줄 믿어요. 복음이 여러분의 심령에 들어가면 축복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에스겔서 47절에 보면 에스겔의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해서 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그 환상을 보며 주세요.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나와서 흘러들기 시작하는데 점점 발을 적시더니 무릎을 적시더니 허리를 적시더니 이제 목을 적시고 머리를 적셔서 큰 강이 흐르는데 그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그 강이 흐르는 곳마다 수많은 물고기 떼들이 넘쳐나고 강물 좌우에 죽었던 나무들이 솟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거예요. 뭐예요. 생수가 어디서 터지냐 그러면 생명의 생수는 교회에서 터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생명의 이 중요한 축복의 역사를 교회를 통해서 흘러내리는 통로로 파이프로 교회를 세우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진리를 보존하고 증거하기 위해서 그런 교회에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 가만히 한번 보세요.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들은 다 크게 부흥하고 복받아요. 그래요, 안그래요? 간단히 여기 전주에서 제일 큰 교회있잖아요? 안디옥교회를 한번 보세요. 그 교회는 헌금의 60%를 다 선교로 내보내요. 그런데 복을 받아요. 다 복을 받아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복을 받은 거예요. 하나님은 그 까닭은 이 진리를 보존하고 이 진리를 증거하도록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많은 복을 교회를 통해서 공급하시기 때문에 그러신 거예요. 하나님의 복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복은 복음 안에서 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결론으로 이 교회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각해보겠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돼요. 좋은 교회를.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언제든지 좋은 교회를 다니는 것만큼 복중의 복이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교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에요.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우리의 사명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맡기셨어요. 저는 우리 온누리교회에 대해 소망이 있어요. 여러분이 교회 잘못 만나서 한 번뿐인 인생 헛되지 않게 보내기를 바래요. 여러분 인생 두 번이에요? 한 번이에요. 한 번뿐이에요. 여러분 지금 벌써 보세요. 98년도 반이 가버렸잖아요. 인생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40이 되니까요, 어떤 사람들 그런다 그래요. 10대 때는 세월이 시속 10㎞로 가요. 20대 때는 20㎞로 가요. 30대 때는 30㎞로 가요. 40대 때는 40㎞로 간다는데 아니에요. 40대가 되니까 80㎞로 가더라고요. 엄청나게 빨라져버려요. 여러분, 인생 반짝하는 깜빡하는 인생이잖아요. 그 인생 우리가 아무리 잘살아도 하나님은 Once More 한번 더 살아라 아무리 못살아도 Again 안돼요. 한 번 뿐이에요. 일회적, 단회적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일생을 잘 살아야 돼요. 후회 없이 살아야 돼요. 정말로 정신 차려서 살아야 돼요. 그 비결이 무엇이냐? 교회 잘 만나는 거예요. 우리 인생 헛되지 않게 살려면 교회를 잘 만나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간절히 할거예요. 정말로 내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합당한 교회를 만나야 되겠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온누리교회를 여러분께서 찾아오신 줄 믿어요. 그런데, 좋은 교회 개념을 좀 잘못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뭐예요? 편하게 그냥 이름없이 아, 우리 온누리교회 오몽근 목사님은 헌금하라는 말도 안하고 율법을 강조도 안하니까 온누리교회에 가면 편하더라 그래서 그것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교회 아니에요. 그런 것은 좋은 교회 아니에요. 좋은 교회란 오히려 여러분들의 한번 뿐인 인생을 잘 살 수 있도록 이왕 불태워버릴 인생 어차피 타버릴 인생을 잘 아름답게 태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에요. 잘 희생할 수 있도록 값지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고 끌어주는 곳이 교회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께 간절히 권유하고 권고합니다. 제가 바울이 눈물을 흘리면서 권고했다고 그랬어요. 저도 어제 저녁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권고하려고 했는데 제 가슴이 메말라서 안됩니다. 그러나 애타게 정말로 애타게 권고하고 싶습니다. 그대로 교회 적당히 다니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 일할 자리 찾아서 교회에서 일하세요. 우리 찬양대 보세요. 백 명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 노래 잘 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노래방에 가서 노래 잘하시죠? 노래방에 간 사람들 다 찬양대 서세요. 여러분 노래 못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목소리만 보고 하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은 내 영혼의 소리를 들으시길 원해요. 내 신앙의 소리를 들으시길 원해요. 사실 찬양대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사람들이 듣는 것은 덤으로 듣는 것이요. 목소리 안 좋아도 좋아요. 틀려도 좋아요. 4분 음표인지, 2분 음표인지 온쉼표인지 몰라도 좋아요. 하고 싶으면 하세요. 할 데 없으면 하세요. 우리 교회 교사들 좀 보세요. 세상에 교사들, 어느 교회든지 교사 좀 해달라고, 해달라고, 해달라고 쫓아다녀요. 그러나 안 하겠다 그래요. 바빠서 못하겠다. 나는 교사 자격이 없어서 못하겠다. 자기 마음속에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교사 하세요. 여러분 구역장, 인도자들 보세요. 우리가 매년 구역장, 인도자 때문에 몸살을 앓아요. 교역자들이 안 하겠다는 거예요. 힘들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것이 복인 줄 아세요. 축복의 끈인 줄 아세요. 남전도회, 여전도회 모임에도 좀 나오세요. 성경 공부도 좀 하세요. 토요일 날 청소도 좀 하세요. 어제도 교회에 몇몇 분들이 와서 물이 막혀서 하루종일 고생하던데 여러분 남자들 그런 데 와서 해 보세요. 좀 하세요. 그냥 보내지 말고 주일날만 왔다가지 말고 교회를 사랑하세요. 교회는 여러분들의 영혼의 집이에요.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이 있어요. 먼저 온 사람이 텃세부린다는 사람도 있어요. 텃세 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유치한 사람이에요. 무시해 버리세요.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에요. 그리고 우리들은 그 교회 주인의 자녀들이에요. 내 집이에요. 여러분의 집이에요. 여러분의 것이에요. 누가 먼저 와서 텃세, 할 수 없어요. 목사가 뭐라 그럴 수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주인 노릇하세요. 다 주인이에요. 법적으로 굳이 말한다면 세례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주인인 거예요. 여러분, 제가 듣기 어려운 소리 또 하나 해야 되겠어요. 우리가 이번 건축 마무리 하면서 헌금하면서 제직들은 10만원씩 헌금하자 그랬어요. 여러분 제 성격 아시잖아요? 저는 기도하고, 기도하고 처음으로 그런 말 했어요. 건축할 때도, 정말 어려울 때도 헌금하라는 말 저는 정말 못해요. 천명이 할 수 있어도 한명이 시험들까봐 저는 못해요. 마음이 약해서 여러분 보셨잖아요. 저는 못해요. 그러나 기도하고, 기도하고, 조마조마하게 제가 했어요. 4천만원 정도를 예상했어요. 그런데 반도 나오지 않았어요. 안하신 분들이 많아요. 제가 알아요. 할 수 없는 분들도 상당히 많이 계세요. 그러나 할 수 있는 분도 안 하신 분들이 또한 많아요. 제가 알아요. 그런 분들 한번 생각해보세요. 자기 양복 한 벌 사 입은 것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자기 구두 한 켤레 사 신은 것보다 더 하나님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 안해요. 잊어버렸다 그래도 똑같은 거예요. 그래 놓고 어떻게 교회를 사랑한다고 그래 놓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 왔습니다 하고 서겠어요. 여러분? 저 위한 것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을 위한 것이에요. 절대 저를 위한 것 아니에요. 여러분, 교회 보세요. 저기 앞에 난간에 새시를 해야 돼요. 돈이 없어요. 준공 문제도 정화조 문제인데 저 땅 주인들이 밭 주인들이 억지를 부려서 그러는데 돈만 많이 있으면 몇 백만원만 주면 문제 없이 다 해결해요. 사택 없는 교회가 우리 교회 뿐이에요. 주일 학교 수련회를 앞으로 해야 하고, 많은 일들이 쌓여 있어요. 여러분 학교, 초등학교 중학교만 해도 다 교실마다 컴퓨터니 하는 최신 집기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자녀들 어떻게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나라 축구가 졌죠? 선수들을 원망하고 차범근 감독 잘못했다 그래요. 그런데 외국 축구 전문가가 글을 썼는데 우리 한국이 본선에 나간 것만 해도 기적이고 잘한 것이라고 그래요. 왜 그러냐? 적어도 16강, 24강에 든 선수단 나라 중에 축구 전용 잔디 구장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하나라 그래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냥 운동장 모래밭에서 연습하다가 물론 축구 잔디구장이 하나 있지만 그 잔디 구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해요. 잔디 상할까 봐서. 시합할 때만 잔디에서 하니 잔디에 익숙하지가 않아요. 준비를 안 해주고 무조건 기대만, 응원만 한다고 되는 거예요? 말도 안돼요. 외국 축구 전문가가 우리 한국이 그렇게 진 것은 당연하다 그래요. 우리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자녀들 얼마나 중요해요. 지금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여러분 컴퓨터를 합니까? 인터넷을 합니까? 여러분 인터넷에 한 번 들어가 보세요. 우리 자녀들을 끌고 있는 마귀의 손길들이 여기저기서 수없이 손길들을 뻗치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세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복음을 굳게 세우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포스트모던한 이 세상에서 마귀의 밥들이 되고, 부모들도 팽개치고 세상에서 자기밖에 모르는 냉혹한 짐승들로 살아가고 말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요. 저는 여러분, 우리 주일학교에 감사해요. 여러분, 자녀들 주일학교에 잘 안 보내죠? 보내세요. 우리 김세연 전도사, 오기영 집사, 우리 선생님들 얼마나 잘 가르쳐 놓았던지 우리 오뚝이가 텔레비젼을 보면 해석을 해요. 하나의 틀이 있는 거예요. 가치관의 틀이 있는 거예요. "아빠 저것은 어떠어떠한 입장에서 어떠어떠하게 봐야한다."고 그 드라마를 그 TV를 해석하는 거예요. 이것이 꼭 필요해요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해석할 줄 알아야 돼요.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여러분 자녀들 다 사탄에게 넘어가고 말아요. 여러분, 얼마나 교육이 중요해요? 그런데 아까워서 수박 한 덩어리 살까 말까 애들에게 카레를 먹일까 말까 이렇게 가르쳐야 되겠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헌신하세요. 여기 이정석 선교사님이 왔어요. 우리 교회에서 오랫동안 집사로 계시면서 오랫동안 봉사하다가 선교사로 자원해서 영국에 가서 공부하다가 예멘으로 갈 거예요. 예멘은 회교국가예요. 어제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가 참 마음이 괴로웠어요. 우리 교회에서 선교비 조금 도와주고 있는데 이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에요? 이사람들 의사로서 세상 돈 벌려고 하면 잘 벌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우리 이정석 집사 은혜 받고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납부금이 없어서 납부금을 내지 못하고, 여비가 없어요. 이렇게 자기 자녀들 교육도 시키기 어려워요. 거기 예멘으로 가면은, 거기는 학교도 뭣도 없는 곳이에요. 그래서 학교도 못 보내고 조민아 집사가 가르친다는 거예요. 어제 같이 이야기하는데 눈물을 흘렸어요. 자식들 때문에. 우리 자식들에게 어떻게 잘 할까 그러는데, 저사람들 자기 자식들 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마음으로 가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도와야지요? 납부금이 없어서, 여비가 없어서 못하지 않도록. 우리는 뭐해요? 우리가 가지 않으면 우리가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죠? 저희가 그런 일을 해야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또 저에게는 비전이 있어요. 여러분께 말하지만 우리 교회 세울 때부터 가진 비전이에요. 제가 농어촌 교회에서 있어봐서 제가 갖는 비전이에요. 우리 교회가 농어촌 교회 교역자 선교센터를 만들자 교육센터를 만들자 우리가 농어촌 교회에다 십만 원, 오만 원 도와주는 것 별것이 없어요. 우리가 중화산동 성전에 있을 때 해봤잖아요. 그들을 불러 그들을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새로운 사명을 불러 일으켜 줘요. 그들을 쉬게 해 줘요. 그들에게 마음을 불타게 해 줘요. 그들의 자질을 변경시켜 주면은 그들이 저 농어촌에 가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킬 수 있어요. 그들 자녀들을 우리가 사관을 세워서 그들 자녀들을 먹여주고 재워줄 수 있으면 우리 교회 자원으로도 활용하고, 그 농어촌 교회 교역자들이 안심하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우리 온누리교회에서 해야 되겠다 그 말이에요. 우리 교회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똑똑한 학생들 많아요. 장학금 한푼을 못 주고 있어요. 장학금도 주어서 기독교의, 하나님의 참 아들들로 키워야 되겠잖아요? 교도소를 가봤어요.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인데 20만원을 주니까 나를 붙잡고 울면서 제가 예수 믿으라고 하니까 자기 같은 공산주의자도 예수 믿을 수 있습니까? 우는 것을 봤어요. 전주에서 우리 교회가 조금만 힘이 있다면 교도소 전임 목사 하나 파송하고 싶어요. 우리 교회에서 다 대주는 전임 목사 하나 파송해서 교도소를 꼭 복음화 하고 싶어요. 더 나아가서 할 수 있다면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교육하는 초등학교도 세우고 싶어요. 이 일을 우리 온누리교회가 여러분들의 손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세요. 죄송하지만 저는 광주의 큰 교회에서 오라고 해도 안 갔어요. 지금도 미국 보스톤에서 300∼400명 모이는 큰 교회가, 좋은 교회를 지어 놓고 저를 오라고 부르고 있어요. 안 갔어요, 여러분. 안가요. 왜 그래요? 여러분. 저는 이 일을 사명으로 알아요. 우리가 이 일을 해야되고, 여러분과 함께 해야되고 우리가 이 일을 등에 메고 교회를 사랑하면서 나아가야 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 주세요. 교회를 사랑해 주세요. 그것이 나의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겠어요. 교회와 나, 어떤 관계에 있나요, 여러분? 제가 말해 볼께요. 이중에 어떤 관계인지 교회와 나와의 관계가 나에게 취미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제가 결정할 일 아니지만 아직 예수 영접하지 못한 천국가지 못할 사람이에요. 교회와 나가 취미 정도로밖에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렇단 말이에요. 적어도 구원받은 사람은, 이것은 제 기준이에요.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가 나에게 직장 정도의 비중은 이상 되어야 해요. 그 정도 비중은 되어야 구원 얻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더 나가서, 교회가 가정과 같은 거예요, 정말 사명 있고 정말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교회와 가정을 같은 레벨에 놓고 사는 거예요. 우리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교회가 직장보다도 비중이 크고 그것이 우리 크리스천으로서의 바른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하나뿐인 인생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 교회에서 여러분의 삶을 불태울 수 있는 예수 따라 갈 수 있는 이 길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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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시선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