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황여정 (소설가)
이상한 일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못내 그립다. 인간은 모든 걸 파괴하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는 존재들이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힘도 가지고 있다. 저자의 눈과 귀와 마음을 입고 국경과 언어와 인종을 넘어 시원을 품은 오래된 선율들을 누리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인간은 본디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확신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박종우 (사진가)
남태평양의 사라져가는 전통음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세상의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떠나기 전날, 이 원고를 받았다. 밤비행기에서 펴들었다가 좌충우돌 이어지는 음악여행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다 읽었을 때는 솔로몬제도 상공에 먼동이 트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올곧게 이어지던 전통음악의 명맥이 하나둘 끊어져가는 이 시대, 역사로만 남게 될 세상 끝 숨겨진 음악가들을 찾아나서는 멋진 여행에 찬사를 보낸다
황우창 (월드뮤직 전문가, 라디오 DJ)
신경아 작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부럽다. 탁월한 소통 능력,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그만의 뛰어난 관찰력, 이제는 가보려야 갈 수도 없는 특별한 지역에 대한 경험까지. 부러움은 잠시 시샘으로도 변하지만,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김수홍 (시골책방지기)
정직하게 발로 쓴 여행기다. 오지든 분쟁지역이든 기어이 가서 전통음식을 나누고 흔치 않은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들었다. 베르베르인의 마을잔치라든가 불가리아 시골 할머니들의 고음합창단이라든가 터키 산악의 늙은 목동이라든가 쿠르드인 공동체의 소리꾼들을 찾아가 음악을 기록한 누군가가 있었던가? 좋아서 즐기며 음악을 한다는 말리의 싱어송라이터처럼 좋아서 즐기는 노마드가 세상 끝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 쓴, 여태껏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여행기다
책 속으로
우리의 발길이 멈추는 곳은 끼니때마다 방아를 찧어 밥을 하고,갓 짠 우유로 버터와 치즈를 만들고, 장작을 때서 빵을 굽고, 양털이나 목화로 실을 자아 베를 짜고 카펫을 짜고, 잔칫날이 되면 온종일 노래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는 곳들이다. 그런 곳들은 가이드북에 없는 길로 찾아들었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15쪽)
드디어 점심밥이 나왔다. 커다란 플라스틱 함지에 토마토소스로 양념한 불그레한 볶음밥을 담고 그 위에 고기 한두 덩이와 피망, 호박, 양파 등을 얹은 것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마다 툭툭 던져놓으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오른손으로 먹는다. (…) 고깃덩어리는 가장 용감한 사람이 먼저 찢어서 자기 몫을 가지고 가면 다른 이들도 조금씩 찢어서 가지고 가는데,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두 조각을 가져와 내 몫도 챙겨주었다.(62~63쪽)
연주에 자신 있는 명인들은 늘 이런 식이다. 세계적인 명인이라는 연주자들의 공연장에 갈 때마다 번번이 당하는 일이다. 그들은 무대에 올라 박수소리가 채 잦아들기 전에 훅 들어오며 본 연주를 시작하고 관객들은 미처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일순간 당황하지만 순식간에 무장해제당하며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239쪽)
노래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주름 가득한 얼굴, 늘어진 턱, 풍성한 몸매, 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연배의 분들이다. 그러나 노래하는 할머니들은 참 예뻤다. 불가리아의 20세기는 한 세기 내내 격변의 시절이었다. 여든 넘은 분들은 어린 시절 제2차세계대전을 겪었고, 불가리아왕국의 몰락과 공산 독재정권을 지나왔으며, 그들의 몰락도 보았을 것이다. (…) 만만치 않은 굴곡을 지나왔지만 작은 시골도시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삶 속에서 일평생 이웃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왔다면 각자의 인생에 이런저런 삶의 애환이 있다 하더라도 축복받은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304~405쪽)
음악여행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아무리 멋진 유적들이 즐비해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여행지에서는 음악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여러 문명이 거쳐갔거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잃지 않은 곳,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섞이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꽃피운 곳, 깊은 음악전통을 품고 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 그리고 어떤 시련도 그들의 흥과 끼를 잠재우지 못할 아프리카의 나머지 지역들도 가보고 싶다.(442쪽)
출판사 서평
지도 밖으로 향하는 발길
신경아가 찾아간 곳은 누구나 찾아가는 익숙한 장소가 아니다. 말리는 북동부 사막지역을 점령한 분리주의자 반군들 때문에 꽤 위험한 지역이 되어, 론니플래닛이 수년째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었다. 타르티트 그룹과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도 전란을 피해 부르키나파소로, 모리타니 난민촌으로 피해 있곤 했다. 낙타에 금과 소금을 싣고 하늘의 별을 나침반 삼아 오가던 사하라가 어느 사이 노예와 상아를 내다파는 길이 되더니 21세기에는 마약과 무기를 싣고 누비는 길이 되었다. 한편 최근에는 미국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하며 터키가 쿠르드족의 지역을 침공했다. 음악은 국경 없이 흐르는데, 세계정세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곳도 어떤 사람들에겐 고향이고, 삶을 일구는 터전이다. 다정한 현지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에 힘입어, 그들은 조심스레 여정을 이어나갔다. 불확실하고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계속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는 곳마다 음악이 흘러 넘쳤기 때문이다. 전쟁중이어도, 밥을 넉넉히 먹지 못해도 그들은 삶을 즐겼다. 덕택에 가는 곳마다 잔치에 초대되었고, 그들의 살아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사하라사막의 한복판, 그리스의 한가로운 해변, 터키의 외딴 산골마을…
세상의 모든 곳에 음악이 있었다
전통음악은 그것이 태어난 땅에서 들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된다. 제아무리 대단한 음악이라도 TV나 라디오, 음반을 통해서 듣는다면 그 현장감이 떨어져 흘려듣기 쉽다. 그래서 신경아의 여행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들이 사는 모습이 좋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일부러 스타 음악가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찾아가 노래와 연주를 청하면, 그들은 놀랍게도 프로 못지않게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춤을 추기 위한 음악도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하면서도 절대 경박하지 않았고, 단순한 신세타령이나 사랑노래 같은 것들에도 나름의 깊이가 있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낯선 이를 편안하게 맞이했고, 때때로 맛있는 음식까지 후하게 대접했다.
한편 어떤 곳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통음악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다니는 거리와 카페에서는 하나같이 힙합과 팝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들이 어렵게 찾아낸 귀한 현지의 민속음악은 일부 케이블 채널에서만 겨우 버티고 있기도 하다. 가는 곳마다 음악이 흘러넘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몇 날 며칠을 살피고 다녀도 아무런 음악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노래를 즐기지 않는 곳도 있었고,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노래하는 풍습을 잃어버린 곳도 있었다. 저자는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는지,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은 오늘날 인류의 의무다”라는 빌헬름 몸젠의 말을 인용한다. 인터넷망이 거미줄처럼 깔리며 온 세상의 음악이 점점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일되어가고 있는 이때, 잊혀가는 전통음악을 찾아 나선 신경아의 여정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끝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일을 하고, 끼니때마다 밥을 먹고, 노래하고 또 춤을 춘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에 관한 기록이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신경아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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