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 장애인을 위한 수호천사 수화 봉사자
솔향 남상선/수필가
‛선생님… ! 선생님! … . ’
누가 뒤에서 급히 따라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갈마아파트 사시는 김종복 여사님이었다. 도로 옆에 차가 한 대 정차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농아 장애인을 태운 대형버스였다. 버스 속에서 내다보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반가워서 단숨에 달려오신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농아 장애인관광차 수화 봉사를 하기 위해 탑승했다는 거였다.
마침 도솔체육관에서 새벽 배드민턴을 치고 같이 걸어오던 이용만 형님 내외분이 곁에 계셔 인사소개를 했다. 그때 시각은 아침 7시 20분경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걸어서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 체육관이기에 올 적 갈 적 걸어다니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바쁜 일정으로 613번 시내버스를 타야만 했기에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때였다.
농아 장애인 버스를 탑승하고 봉사활동 하러 가시는 김종복 여사님이 새삼스레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이라면 열 일 제쳐놓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여사님은 갈마아파트 내가 사는 바로 옆 라인에 사시는 분인데 정말 가슴이 따뜻하고 남다른 희생정신이 몸에 배어 있으신 분이다. 진정 정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하시는 여사님이라 하겠다.
여사님은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남다른 인간애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시는 분이다. 지금껏 살아오시는 동안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 남자를 셋씩이나 입양하여 키워서 군대까지 보내신 분이다. 그뿐이랴, 보통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려하고 기피하는 농아들을 그들의 팔다리가 되다시피 사랑으로 돌보며 사셨다.
이쯤되면 김 여사님은 지상의 천사요, 살아 있는 부처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자비를 베푸시며 사시는 모습이 현대판 헬렌켈러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을 듯하다. 여기저기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니는 모습이 기림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수화를 해서 수입금이 생길 때면 장애인협회에 기꺼이 투척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알고 사시는 분이시다.
여사님은 당신이 사시는 아파트 주민들과도 온혈가슴의 정을 나누며 살고 계시다. 나라는 늙은이도 혼자 사는 사궁지수(四窮之首: 늙은 홀아비)로 딱해 보였는지 과분할 정도 사랑으로 살펴 주셨다. 우리 집 문고리에는 여사님의 사랑의 열매가 끊이질 않고 열리고 있다. 어떤 때는 맛있는 찐 만두가, 며칠 지나면 잡채가, 배추겉절이가, 사철 과일이, 삼계탕이 다투어 꼬리를 물고 문고리에 열리고 있다. 어렵게 농사지은 고구마 박스도 문고리 밑에 와서 대기하고 있다.
이런 정도라면 훈장감이 되지 않겠는가!
아니, 세상 희귀 천연기념물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겠는가?
성경 말씀에‘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를 몸소 솔선수범하는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여사님은‘주는 것’으로‘베풂’과‘나눔’의‘사랑’을 실천하는 수호천사시다.
평생을 적덕(積德)하며 살아온 분이시기에 베푼 만큼 거두시리라 생각한다.
은총의 축복이 있으시리라 확신한다.
‘베풂과 나눔’, 얘기를 하다 보니 윈스턴 처칠의 명언이 떠오른다.
‘우리는 일함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간다.’
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명언에도
‘사람의 가치는 그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는 것에 있다.’
했다. 우리는‘주는 것’만 잘 해도 출이반이(出爾反爾: 너한테서 나온 것은 너한테로 돌아간다.)’의 부메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농아 장애인을 위한 수호천사 수화 봉사자’
베풂, 나눔, 온혈가슴, 헌신봉사!
그를 대신하여 붙여 준 이름이
‘ 김종복’이리라.
나도‘베풂과 나눔’의 생활에 인색하지는 않았는가?
‘주는 걸’못하여 조소를 달고 살지는 얺았는가!
첫댓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가시는 모습이 참으로 멋지네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눔으로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종복여사님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봉사와 나눔이란 단어가 가장 어려운 단어 라고 하는데 아낌없는 나눔과 봉사를 하시는 여사님은 천성이 천사 이시군요.
큰 부자 라도 따르지 못할
그 정신 . 그 훌륭함.
세상엔 이렇게 빛과 소금이 되는 분이 계시군요.
삶의 진리를 일찌기 깨달으신 여사님.
존경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