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의 꿈 (隨筆)
影園 / 김인희
찰나였다. 삼백육십오 개의 동그라미를 안고 뒹굴었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품에 안는 거룩한 의식은 아주 짧았다.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을 헤매고 있다. 무엇을 잊었는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온종일 두 문장을 되뇌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2023년은 단 하루 만에 작년이 되었다. 더러 자조의 미소를 깨물면서 반문할 때가 있다. 시간의 연속선에서 초와 분을 나누고 스물네 시간을 묶어 하루라고 명명한 이는 누구인가. 진리라고 믿어 왔던 것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지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사람이기를 거절한 참담한 사람이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두 손을 확성기처럼 입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휴대전화 카톡방은 온종일 새해 인사를 배달하느라 호외를 외치는 신문팔이 소년과 다름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의 끈으로 매듭지은 사람들이 축복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차곡차곡 당도했다. 이국의 별들이 보내오는 글에 전율하면서 따뜻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랬지, 그랬었지. 내게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다.
내게 작년 한 해는 다사다난했다. 연초에 C문학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막중한 임무가 추가되었다. 가히 기라성 같은 대문호들 속에서 호흡조차 삼가면서 살얼음판을 걸었다. 공중에 매달아 놓은 외줄을 타는 어릿광대의 등줄기는 흥건한 땀으로 흠뻑 젖었다. 외줄에서 떨어질 듯 위태위태한 순간, 지금도 악몽처럼 오싹해진다. 한 해를 마감하는 순간 착지점에 도착하여 안도할 겨를도 없이 그 착지점이 곧 새해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전율한다.
처녀작 수필집 『지금은 사랑할 때』를 출판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만난 들꽃의 사연을 엮고 별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독자들이 보내온 독후감이 나를 살게 했다. ‘자손들에게 돌아가면서 읽으라고 했다.’,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선물하고 작가처럼 살라고 하고 싶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있다.’, ‘상당한 문장력이다. 심사위원으로 초빙하겠다.’, ‘시내 모 상점에 들러서 책에 서명해 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으로 울었다.’······. 물론 뒷면의 사연도 있으리라 짐작하고 겸허한 자세로 지내고 있다.
별의 경지를 향하여 당차게 등반을 시작했다. 정상을 향한 노선을 선택하기 전에 거룩한 의식인 양 몸살을 앓았다. 여러 개의 노선 중에서 두 개의 노선으로 좁혀지고 다시 한 노선을 정한 후에 묵묵히 전진했다. 박경리 작가의 역작 대하소설 『土地』를 끼고 동고동락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土地』 열여섯 권을 펼치고 문화문법에 관한 어휘를 찾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의미를 찾아 표기하고 다시 『土地』에서 예문을 찾아 권·쪽·행을 표기하는 작업이 더디기만 했다. 이른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쓰기 시작하여 새벽 두 시까지 꼼짝하지 않았던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산비탈 밭을 멍에 매고 쟁기를 끄는 소처럼 말없이 고된 노역을 감수했다.
내가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가 처절하게 깨달았다. 쉬운 길로 가라는 달콤한 조언에 미소 짓고 험산준령을 자처했다. 시간이 저만치 나앉아 있게 되었을 때 기력이 소진하였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고 되돌릴 수 없었던 두려운 순간이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심장을 누르는 바위가 되고 아픈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고 돌아오는 길은 교차하는 만감으로 울컥했다.
가난한 농부 아버지! 아들 하나 딸 다섯을 키우면서 대학 간 아들 학비 뒷바라지에 여력이 없다고 상고(商高)를 보내셨다. 내가 상고를 진학하게 된 것을 알고 최초의 별 국어 선생님께서 ‘수불석권(手不釋卷)’을 교훈으로 주셨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늦은 학업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 수불석권의 실천이었다. 팔순의 아버지께서는 여식을 볼 때마다 ‘내가 후회하는 것이 너를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이다. 너는 대학까지 가르쳤어야 했는데··· ’라는 말씀을 고해성사처럼 하셨다. 별 중의 별 북극성을 생각했다. 내가 우물 안에서 뛰쳐나올 수 있도록 넓은 세계를 보여준 은혜는 하해와 다름없다. 별의 경지를 향하여 오를 수 있는 사닥다리를 놓아주었다.
참으로 동분서주가 따로 없었다.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몇 올 뽑아서 나를 더 만들고 싶었다. 동시다발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밀물이 되어 덮쳐오는 순간에 ‘나는 할 수 있어. 우선 급한 일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하자. 차근차근 성실하게 해내자.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독백하면서 차곡차곡 해냈다. 단체 임무를 신실하게 수행하면서 수차례 지역사회 행사 요청으로 시낭송을 하고 하늘이 준 축복으로 여러 개의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다시 침묵의 시간이다. 이것을 끝냈고 그것을 멈추었다. 초조와 불안이 교차로 도돌이표를 연주하고 있다. 작은 별이 되어 꾸는 꿈. 맑은 모습으로 밝은 빛을 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천애의 위에 드리운 외줄에 오르는 어릿광대가 되어 오싹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등줄기 땀으로 범벅이 되는 외줄에 발을 내딛는다.
새해 인사로 받은 글귀가 꿈틀거린다. “23년은 원 없이 실력을 펼친 한 해이셨지요? 감축드립니다. 제가 보기에 인생의 황금기를 맞으신 것 같습니다. 이 좋은 시절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송구영신!!!”
하늘을 향하여 엎드린다. 진인사(盡人事) 후 대천명(待天命)이다. 하늘이여! 어찌하시렵니까. 좌하라시면 좌하고 우하라시면 우하겠나이다. -끝-
첫댓글 작은별의 꿈이 이뤄지시길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샬롬
감사합니다.
작은 별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하여 주시니
힘이 납니다. 샬롬~~!!
고맙습니다 굿밤되세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