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본과 인쇄본의 역사
제1장 구약의 사본과 인쇄본
1. 사해 사본
2. 마소라 사본
3. 구약의 인쇄본
제2장 구약의 고대역
1. 아람어 타르굼
2. 그리스어 칠십인역
3. 오리겐의 헥사플라
4. 고대 라틴어 역본
5. 불가타
6. 시리아어역
7. 아랍어 역본들
제3장 신약의 사본과 인쇄본
1. 사본
2. 초기의 번역본들
3. 그리스어 신약 편집본들
제4장 주요 외국어 역본들
1. 영어 역본들
2. 프랑스어 역본들
3. 독일어 역본들
4. 중국어 역본들
5. 일본어 역본들
제5장 우리말 번역 성서
1. 번역 초창기의 발췌 번역
2. 낱권 번역에서 완역본에 이르기까지
3. 국한문 역본들
4. 관주 성서
5. 외국어 역본 대조 성서
6. 개정 역본들
7. 새롭게 번역된 역본들
8. 점자 성서
9. 멀티미디어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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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uscripts and Printed Editions of the Old Testament
1947년 이후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의 구약 본문 단편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십계명이 기록된
기원전 2 1세기의 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였다. 이것은 1902년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그리고 신명기 6장의 '셰마'(6:4-5) 등이 섞인 본문이다.
이 본문은 성서 사본이 아니라 예배서에 인용된 본문이므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 이것보다 더 오래된 자료가 발견되었다.
1979년에 예루살렘의 케텝 힌놈에서 아주 작은 은(銀) 두루마리(minute silver roll) 조각 두 개가 발굴되었는데,
여기에는 민수기 6장 24-26절이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 있었다. 이것은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7 6 세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 역시 성서 사본이 아니고 성서 구절을 인용한 단편이므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써는 한계가 있다.
(The Biblical Texts Found in Qumran)
1947년부터 1969년까지 약 20여 년 동안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에서 '유대 광야 두루마리' 혹은 사해 두루마리로
불리는 구약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모두 열한 개의 동굴에서 「에스더기」만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옛 사본들이
여러 종류 발견되었다. 거기에서 발견된 여러 종류의 사본들은 주전 2세기로부터 주후 1세기에 속하는 사본들로서
현존하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천년 이상이나 더 옛 것일 뿐만 아니라 구약 본문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 본문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을 비롯한 발굴 문헌들 중에 해독되고 공개된 모든 자료를 마이크로휘쉬 자료에 담아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에 비치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유대 광야 두루마리의 발견은 20세기에 발견된 다른 어느 고고학적 발견보다도 성서학계에 커다란 흥미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947년 겨울의 그 엄청난 발견은 사실 우연이었다.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는 근 2천여 년 동안 아무도
정착해 본 적이 없는 불모지이다. 다만, 기원전에 한때 엣센파라고 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이 일대에서 살았을 뿐이고
지금은 아랍 유목민이 계절을 따라 옮겨 다니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아랍 유목민의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계곡을 훑다가 우연히 한 동굴에서 단지 안에 보관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사본들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 후 수많은 단편이 이 일대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1) 이사야서 사본 (1-66장)
2) 이사야서 사본 (주로 38-66장 부분)
3) 하박국서 주석(The Habakkuk Commentary)
4) 훈련 교본(The Manual of Discipline)
5)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사이의 싸움(The War of the Children of Light against the Children of Darkness)
6) 감사 찬송(Thanksgiving Hymns)
7) 외경 창세기(Genesis Apocryphon)
(Masoretic Text)
구약 성서의 경우,
1) 마소라 본문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후 895년에 모세 벤 아셰르(Moses ben Asher)가
팔레스타인의 티베리아에서 만든 카이로 예언서(Codex Cairensis)이다.
2) 그 다음은 916년에 나온 페테르스부르크 후기 예언서 코덱스(Petersburg Codex of the Prophets)이다. 이것은
벤 아셰르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티베리아 마소라 체계에 바빌로니아에서 발달된 모음 기호를 삽입한 것이다.
3) 그 다음으로 특기할 만한 마소라 사본은 소위 알렙포 코덱스(Aleppo Codex)이다.
이것은 기원후 930년경에 솔로몬 벤 버야아(Solomon Ben Buya'a)가 필사한 것으로서 아론 벤 모세 벤 아셰르
(Aron Ben Moses Ben Asher)가 수정을 가하고 모음 기호를 조정하고 마소라 주기 등을 고쳐서 만든 것이다.
본래는 구약 전체를 다 포함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예언서만 남아 있다.
4) 이 밖에 영국박물관 코덱스(British Museum Codex) BM Or 4445번으로 표시되는 950년경의 오경 사본과
5) 1008년의 것인 레닌그라드 구약 사본(Codex Leningradensis)이 중요한 사본이다.
6) 이 밖에 예언서 사본인 1105년의 코덱스 로이클리아나(Codex Reuchliana)가 있는데 이것은 모세 벤 아셰르
사본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는 모세 벤 다윗 벤 납달리(Moses ben David ben Naphtali) 사본 체계를 보여 준다.
7) 13세기 중엽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화려한 꽃무늬 장식을 한 필사본 사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러한 필사본은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당분간 더 지속된다.
일찍이 이베리아 반도의 톨레도에서 1482년에 나온 리스본 사본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사무엘(Samuel Ibn Musa)이 만든 것으로서 모두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구약이 다 들어 있다.
(Printed Editions of the Hebrew Bible)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히브리어 구약 본문은 일찍이 15세기 말 16세기 초 사이에 인쇄되기 시작하였다.
1) 최초의 인쇄본 구약은 1488년에 이탈리아의 손시노(Soncino)에서 나온 히브리어 성서이다.
2) 두번째로 나온 것은 1491/93년에 네플(Naple)에서 인쇄된 히브리어 성서이고,
3) 세번째 것은 1494년 브레스키아(Brescia)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 세 히브리어 성서는 모두 유대인들이 인쇄한 것이다.
4) 1514/17년에 알칼라(Acala)에서 인쇄되고 1522년경부터 유포되기 시작한 콤플루텐시안 폴리글롯」
(Complutensian Polyglot)은 기독교 쪽에서 인쇄한 것이다. '콤플루텐시안'이라는 말은 '콤플루툼(Complutum,
곧 Alcala de Henar-es)'에서 인쇄된 것이기 때문에 그 곳 이름을 붙인 것이고, 여러 언어를 대조한 것이기 때문에
「폴리글롯」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스페인의 추기경 프란시스코 지메네스(Cardinal Francisco Jimenes)의 감독 아래,
6권으로 편집되었다. 창세기를 보면, 보들리언도서관의 사본은 오른쪽에서부터 첫째 난에 히브리어 본문,
그 왼쪽 둘째 난에 라틴어역 불가타, 그 왼쪽 셋째 난에 그리스어 칠십인역, 칠십인역 각 행 위에 라틴어 번역
(행간 성서처럼), 그 밑으로 넷째 난에 아람어역 타르굼, 그 오른쪽 다섯째 난에 타르굼의 라틴어역이 나온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 그리고 세 라틴어역 모두 여섯 개의 번역이 실린 셈이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왈톤이 편집한 것을 보면, 제일 왼쪽 난에 히브리어 본문이 있고, 그 행간(行間)에 라틴어 번역,
둘째 난에는 라틴어역 불가타, 셋째 난에는 그리스어 칠십인역, 넷째 난에는 칠십인역의 라틴어역, 다섯째 난에는
아람어역(온켈로스의 타르굼), 여섯째 난에는 타르굼의 라틴어역, 일곱째 난에는 사마리아
오경의 본문, 여덟째 난에는 사마리아 오경 본문의 라틴어역, 아홉째 난에는 시리아어역, 열째 난에는 시리아어역의
라틴어역, 열한째 난에는 아랍어역, 열두째 난에는 아랍어역의 라틴어역이 나온다.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아람어, 사마리아어, 시리아어, 아랍어, 이상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된 본문을 대조시키고
라틴어 불가타를 제외한 여섯 언어의 번역마다 라틴어 번역을 병기해 준 것이다.
5) 이것에 이어 「랍비 성서」(Biblia Rabbinica)가 인쇄되어 나왔다. 펠릭스 프라텐시스(Felix Pratensis)가
편집하고, 베니스(Venice)에서 1516년에 다니엘 봄베르크(Daniel Bomberg)가 출판한 것이다.
6) 1524/25년에 베니스에서 「제2랍비 성서」가 나온다.
이것은 야곱 벤 하 임 이븐 아도니아(Jacob Ben Hayyim Ibn Adoniah)가 편집한 것인데, 20세기 초까지 대표적인
히브리어 구약 성서 구실을 하였다. 「제2랍비 성서」가 마소라 주기와 본문 비평 장치 등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하게도 후기의 사본들을 많이 사용하였으므로 원본과는 거리가 먼 절충 본문(an eclectic text)을 편집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매 페이지 가운데에 히브리어 본문과 아람어 타르굼이 대조되어 있고, 좌우 여백에 라쉬와 이븐
에즈라의 주석이 들어 있는 주석 성서이다.
7) 1866년에 영국성서공회가 발행한 「레테리스 히브리어 구약」이 있다.
이것은 메이르 할레비 레테리스(Meir Halevi Letteris: 1800 1871)가 편집한 것이다.
레테리스 성서는 기본적으로 야곱 벤 하임 이븐 아도니아의 「제2랍비 성서」 본문을 따른 것이다.
8)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영국성서공회에서 발행한 크리스천 다윗 긴즈버그(Christian David Ginsburg) 편집의 히브리어
구약이다. 「긴즈버그 구약」은 1894년에 출판되어 1908년과 1926년에 부분적으로 교정된다.
이것이 우리말 「구역」과 「개역」 구약의 히브리어 대본이다. 다윗 긴즈버그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긴즈버그 구약」의 본문은 기본적으로 「제2랍비 성서」의 히브리어 본문을 따르고 있다.
9) 그 다음으로는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이 편집한 「히브리어 성서(Biblia Hebraica)」(1909)를 들 수 있다.
키텔의 「히브리어 성서」는 처음 두 판에서 「제2랍비 성서」를 본문으로 사용하였으나, 알브레흐트 알트
(Albrecht Alt)와 오토 아이스펠트(Otto Eissfeldt)가 완성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제3판(1937)부터는
「레닌그라드 코덱스」(MS B19a)를 본문으로 사용하였다.
10) 영국성서공회가 「레테리스 구약」(1886), 「긴즈버그 구약」(1894, 1908, 1926)에 이어, 1958년에 내놓 은 것이
노만 헨리 스네이드(Norman Henry Snaith)의 「히브리어 구약」이다. 이것은 위 두 히브리어 성서의 수정이나 보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편집이다. 이것은 1482년에 리스본(Lisbon)에서 쓰여진 성서 사본 MS Or 1482인 히브리어 구약
사본(현재 영국박물관 소장), 1460년에 쓰여진 성서 사본 MS Or 2375인 「예멘 성서」, 1312년경에 쓰여진 「솀 토브」
히브리대학교 성서, 이사야(1965) The Hebrew University Bible:The Book of Isaiah(1965) 성서」(Shem Tob Bible)에
근거하여 편집한 것이다.
11) 키텔의 「비블리 헤브라이카」를 40년 만에 수정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내놓은 것이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1967/77)」이다. 본문으로서는 레닌그라드 코덱스의 마소라 본문(1008년의 MS B19a)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BHK의 오기를 많이 수정해 주었고, 마소라 주기 표기에 있어서도 BHK보다 더 상세하다.
12) 가장 최근의 것으로서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1965년 이후부터 출판해 내고 있는 「히브리대학교 성서」(Hebrew University Bible)이다. 위에서 말한 알렙포 코덱스에 반영된 마소라 본문을 예언서에 반영하고 있다
Ancient Versions of the Hebrew Bible
(The Aramaic Targum)
기원전 5, 6세기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에서 아람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팔레스타인 유대 사회와 디아스포라
(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아람어를 쓰게 되자, 유대인 회당에서는 예배 때에 '통역자
(메투르게만, meturgeman)'가 등장하여 낭독되는 율법서와 예언서에 관련된 본문 등을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두로 통역되고 전승되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서는 통역 내용이 일정한 형식으로
굳어지게 되고 드디어 그것이 기록으로 정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타르굼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칠십인역이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번역된 구약의 오경 곧 율법서 부분을 일컫는다.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모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까지는 그 후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고 본다.
기원전 1세기까지는 번역이 완료되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하여 칠십인역 성서는,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이방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전파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리스어 사본은 편의상 파피루스(Papyrus) 사본, 대문자 사본(Capital letters:uncials), 필기체 소문자 사본
(Cursive script:Minuscules)으로 나눈다. 파피루스 사본의 수는 수백 개에 이르고, 크기는 다양하며, 칠십인역이
형성되던 초기의 이른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늦은 것은 7세기 중엽의 것도 있 다.
특히 이집트에서 발견된 신명기 파피루스는 기원전의 것이다. 파피루스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양피지나 가죽에
쓰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쿰란에서 발견된 출애굽기나 레위기나 민수기의 단편 조각 사본들 그리고 나할 레베르에서
발견된 기독교 직전 직후 시대의 것인 두루마리 사본도 중요한 고대 사본들이다.
가장 중요한 파피루스 사본은 구약에 속하는 책 아홉 권의 단편을 보여 주고 있는, 열한 개의 코덱스로 되어 있는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Chester Beatty Papyri)이다. 이 사본이 만들어진 것은 2 4세기경이다.
그 후 300여 년 동안 파피루스 본문들이 급증하였고 지금은 200여 개의 파피루스 사본들이 남아 있다.
대문자 사본들은 4세기부터 10세기에 나온 것들로서 모두 코덱스(책 모양)로 되어 있다.
괄목할 만한 것들로서는 4세기의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 구약 전체), 역시 4세기의 시내 사본
(Codex Sinaiticus:구약 일부),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nus)이다.
이 셋은 본래 구약과 신약을 둘 다 포함한 것들이었다. 이 밖에도 성서의 일부만 보여 주고 있는 사본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예언서를 보여 주고 있는 6세기의 것인 마르칼리안 사본(Codex Marchalianus)은 값진 것이다.
필기체 소문자 사본은 9세기 이후부터 나타난다.
11세기에서부터 16세기까지 1,500여 개의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나 그들은 모두 같은 본문을 반영하는 사본들이다.
비록 후대의 것이기는 하지만, 좋은 본문을 간직한 대문자 사본을 베낀 것일 때에는 가치가 있다.
제일 먼저 인쇄된 칠십인역은 「여러 말 대조 성서(Complutensian Polyglot (1514 17)」이다.
이것이 1522년에야 비로소 유포되었으므로, 1518년에 베니스에서 나온 알다인판(the Aldine edition)이 실제로는
맨 처음에 나온 인쇄본이라고 할 수 있다. 1587년에 로마에서 나온 식스타인(Pope Sixtus V)판이 있고,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서 여러 가지 비평적 편집본들이 나왔다.
(Origen's Hexapla)
여러 가지 상이한 번역판을 갖게 된 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서 본문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빚는 혼란을 함께
감당해야만 했다. 기원후 230 240년경에 가이사랴에서 활동을 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Origen)이
「여섯 본문 대조 성서(Hexapla)」를 편집하였다. 1) 히브리어 본문, 2) 히브리어 본문의 그리스어 음역, 3) 아퀼라역,
4) 심마쿠스역, 5) 칠십인역, 6) 테오도션의 개정역, 이상 여섯 본문을 대조 편집하여 비교해 볼 수 있게 하였다.
오리겐의 주요 관심은 다섯째 난의 칠십인역이었다. 그는 칠십인역 본문을 히브리어 본문과 비교하여,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데 칠십인역에만 있는 첨가된 본문에는 앞과 뒤에 의구표(疑句標)를 하였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있는데
칠십인역에 그 본문이 번역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그리스어 번역에서 그 부분을 가져와서 칠십인역에
삽입시키고 앞뒤에 의구표를 붙여 놓았다. 의구표란 고사본의 의심스러운 본문이나 재생시킨 본문을 표시하던
단검표(+)나 마이너스표(-)나 나누기표( )나 별표(*) 등을 일컫는다.
헥사플라의 원본은 600년 경까지는 존속되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에는 단편만 남아 있다.
(The Old Latin Translations)
기원후 2세기 중엽에 라틴어역 구약성서가 북아프리카와 갈리아(Gaul)지방에 유포되고, 3세기 초에는 로마에서도
유포된 흔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로마 점령지에 살던 라틴어를 쓰던 유대인들이 번역한 것을 기독교가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원본도 히브리어가 아니고 그리스어역이다. 고대 라틴어 역본은 '라틴어 옷을 입은 칠십인역
(the Septuagint in Latin clothing)'이라고(J. Ziegler) 할 수 있을 정도로 칠십인역과 관계가 있다.
(The Vulgate)
신학적 토론과 예배 의식에서 사용할 통일된 본문이 필요하게 되자, 다마수스가 제롬(Jerome, 일명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Eusebius Hieronymus)에게 성서 번역을 맡긴다. 제롬은 라틴어와 히브리어 실력을 고루 갖춘 기독교인
성서학자로 알려져 있다. 제롬은 성서를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390년에 시작하여 405년에 끝냈다. 그러나 이미 서방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굳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제롬의 라틴어역은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더우기 제롬의 라틴어 번역은 칠십인역의
내용과도 다르고 고대 라틴어역과도 다른 곳이 많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읽어오던 본문과 다르다고 하여서, 오히려 그의 라틴어역의 권위가 도전을 받았다.
어거스틴 같은 지도자는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가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를 갈라지게 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제롬의 새 라틴어역의 우수성이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번역은 '라틴어 불가타(라틴어 보통말 번역)'가 되어서, 종교개혁 때까지 서방 교회의
성서로 자리를 잡는다.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불가타」를 공인함으로써 개정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고,
거기에다가 15세기 중엽부터 발달된 인쇄술은 번역 본문을 정착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1592년에 새 개정판을 간행한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공인 「불가타」가 된다.
(The Peshitta Version)
시리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시리아어역 성서는 일명 '페쉬타(Peshitta: 단순한 번역)'라고도 알려져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누가 언제 번역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번역은 본래 기원후 1세기경에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메소포타미아의 아리아베네(Ariabene) 지역에 있던 유대인 사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한 것 같다. 현존 하는 「페쉬타」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42년에 나온 것이다.
완전한 네 벌의 코덱스는 5세기부터 12세기 때의 것이다.
(The Arabic Versions)
최초의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본은 사아디아 벤 요셉(Sadia ben Joseph 892-942)이 번역한 것으로 히브리어에서
번역되고, 히브리어 글자로 쓰여진 아랍어 역본이다. 이 번역은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아부 알-하산(Abu al-Hasan)이 이것을 대본으로 하여 오경을 번역하였으며, 11 12세기에 아랍어역 사마리아 오경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다른 아랍어역 사마리아 오경은 아부 사이드(Abu Said)가 13세기에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다른 여러 번역들 중에 10세기에 야핏 이븐 알리(Yaphith ibn Ali)가 번역한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다.
946년에 스페인 코르도바의 기독교인이었던 발라드 케즈의 아들 이삭(Isaac son of Velasquez)이 복음서를
라틴어에서 번역하였다. 아랍어역 신 구약 전서 사본으로는 16세기에 번역된 것이 레닌그라드에 보관되어 있다.
파리와 런던에 있는 19세기의 것인 「여러 언어 성서(Polyglots)」에 아랍어역이 보존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랍어역 사본들은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것들과,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과, 시리아어와 콥트어와
라틴어 중에서 번역된 것 등이 함께 전해져 오기 때문에 번역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19세기와 20세기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번역한 현대 아랍어역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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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script and Printed Editions
(Manuscripts)
1) 파피루스 사본들(The Papyri)
이집트의 사막에 보관되어 있던 파피루스 사본들은 2 8세기의 신약 사본들이다.
금세기 최근 20여 년 동안에 발견된 신약 파피루스 단편 사본들이 출판되었다.
76개의 신약 단편 사본들 중에 반 이상이 2 4세기의 것이다. 파피루스 사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
125년 경의 것으로서 현존하는 신약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 쪽 면에는 요한복음 18장 31-33절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 쪽면에는 18장 37-38절이 기록되어 있는 코덱스형 사본 조각으로서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와
비슷하다. 현재 맨체스터의 존 라일렌스(John Rylands)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30년대 초 영국의 채광 기술자 체스터 비티(A. Chester Beatty)가 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 셋을 이집트에서 취득했다.
이것이 1934 37년에 출판되었는데, ,,로 분류된 것으로, 더블린에 있는 그의 개인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다.
.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일부는 비엔나에 있음) 사본은 30쪽이나 되 는데, 3세기 초나 중엽의 코덱스로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의 본문을 보여 준다. 복음서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워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가 주로 나타난다. 전(前) 가이사랴 본문 형태로 생각된다.
.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I'(미시간대학교의 파피루스 222를 포함하여)는 86쪽이다. 3세기 초(200년)의 코덱스로서,
바울서신이 로마서, 히브리서,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어떤 부분은 많이 지워져 있으나, 은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반영한다.
.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II'은 3세기의 사본이며, 요한계시록 9장 10절부터 17장 2절까지의 본문이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계시록 사본이기는 하지만 가장 좋은 사본은 아니다.
이 밖에도, , , , , 등이 있다. 은 146쪽이나 되는데, 파손된 부분이 더러 있는 요한복음 사본이다.
제21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코덱스는 기원 후 200년에 쓰여진 것이다. 원본보다 100년 뒤의 것이다.
본문은 처럼 혼합 본문이지만, 초기 알렉산드리아 본문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과 다른 보드머 파피루스들은 스위스의 고본 수집가 마틴 보드머(Martin Bodmer)가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156 61년에 출판되었다. 제네바 근교 콜로니에 있는 보드머 개인 도서실에 보관되어 있다.
은 3세기의 사도행전 사본으로 플로렌스의 한 도서실에 있다. 사도행전 23장 11-17절, 23-29절 본문을 가지고 있다.
('파피루스 보드머 XIV 와 XV')는 2 3세기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사본이다.
본문은 B와 일치하는 곳이 많으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의 전신인 , 등과 유사한 점이 많다.
('보드메르 파피루스 XVII')는 6 7세기의 사도행전과 공동서신 사본이다. 사도행전은 S, A와 유사하다.
2) 언셜 대문자 사본들(The Uncials)
17세기와 18세기에 알려진 대표적인 언셜 글씨체 사본들은 A, D, Dp, Ea, C 사본 등이다.
(1) 알렉산드리아 사본(A) (Codex Alexandrianus)
이것은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5세기 초의 사본이다. 이것은 162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영국의 찰스 왕에게 증정한 것으로서 1751년 이래 지금까지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D) (Codex Bezae Cantabrigiensis)
이것은 5세기의 사본으로서, 그리스어 본문과 라틴어 번역문의 대조판 사본이다.
4복음서, 사도행전, 요한3서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많이 다르다.
사도행전의 경우는, 다른 사본에 비해 1/10이나 길다. 이 사본은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가 1562년
프랑스 리용의 한 수도원에서 얻은 것이다. 그가 이 사본을 1581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켄터브리지언)대학교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이라고 부른다.
(3) 클라로몬타나 사본() (Codex Clarmontanus)
이것은 6세기의 사본이다. 여기에는 바울서신과 히브리서가 들어 있다.
위의 사본을 얻을 무렵과 같은 시기에 취득하였다. 그러나 를 얻은 장소는 클레어몽 수도원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클라로몬타나 사본이라고 하며, 이 사본은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4) 라우드 사본() (Codex Laudianus)
이것은 6세기의 사본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조 사도행전인데 영국의 대주교 라우드(Laud)가 1636년에
옥스퍼드의 보들레이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5) 에프라임-시루스 재생 사본(C) (Codex Ephraemi Syri Rescriptus)
이것은 거듭 쓴 양피지 사본이다. 본래 쓰여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이다.
본래 쓰여 있던 것은 5세기의 신약 사본인데, 12세기에 그것을 지우고, 지운 본문 위에, 4세기 시리아 교회의
교부였던 에브라임 시루스의 조약과 설교를 썼다.
1700년경에 프랑스의 설교가이자 학자인 삐에르 알릭스(Pierre Allix)가 발견하였다. 티셴도르프는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본래 거기에 쓰여 있던 5세기의 신약 본문을 60퍼센트까지 해독하여, 1843년에 출판하였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19세기까지 발견된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다. 이런 사본들은 본문 비평에 큰 자료를 제공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새로운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 더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6) 시내 사본(S)(Codex Sinaiticus)
이것은 1859년 티셴도르프가 시내 반도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한 것이다.
구약의 일부는 빠져 있지만 4세기의 신약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티셴도르프는 이 사본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하고
나서 그 사본을 러시아의 짜르 황제 알렉산더 2세에게 증정하였다. 이 사본은 1933년까지 레닌그라드에 있다가
1933년에 옛 소련 연방이 이것을 영국박물관에 10만 파운드에 팔았다.
(7) 바티칸 사본(B)(Codex Vaticanus)
이것은 4세기 중엽의 사본으로서, 1475년 이래 바티칸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약에는 히브리서 9장 14절 이후가 없고, 목회서신, 빌레몬서, 계시록이 없다. 아무런 장식이 없으므로 학자들에
따라서는 시내 사본보다 약간 고대의 것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강하게 반영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둘 다 같은 때에, 곧 콘스탄틴이
성서 50부를 제작하도록 명령하였을 때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8) 워싱턴(또는 후리어) 사본(W) (Codex Freerianus)
이것은 5세기의 4복음서 사본이다. 4복음서가 마태, 요한, 누가, 마가의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미국인 사업가이며 자선가인 후리어(C. L. Freer)가 1906년에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지금은 워싱턴 시의
스미소니안 인스티튜션의 예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명 '후리어 복음서(Freer-Gospels)'라고도 한다.
다른 사본과 비교하여 볼 때 특이한 것은 마가복음의 '긴 끝(16:9-20)' 안에서 14-15절이, 다른 사본과는 달리
더 길게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다.
(9) 코리데티 사본(O) (Codex Koridethianus)
이것은 9세기의 4복음서 사본으로서, 그것이 발견된 카스피아 해 부근 코카사스 산 속에 있는 수도원의 이름
코리데티(Koridethi)를 따서 부른다. 이 사본은 전 소련 연방 조지아의 수도 티플리스(Tiflis)에 있다.
3)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The Minuscules)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은 대다수가 9세기 이후부터 나온 것이다. 교회에서 낭독되는 그리스어
성구집(Lectionaries)에 인용된 성서 본문도 대다수는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을 반영한다.
(The Early Versions of the New Testament)
신약이 쓰여지던 무렵, 지중해 동반부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가 통용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로마가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였을 때,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갈리아(일명 골), 스페인 등에서는 라틴어가
새 언어로 등장하였다(3세기경). 그리하여 고대 라틴어 곧 이탈라(Itala) 번역 신약이 나오기 시작한다. 신약성서의 경우,
제롬이 고대 라틴어역과 그리스어 사본들을 참고하면서 라틴어 복음서 개정 작업을 했다.
4세기에는 신약전서 라틴어 번역 불가타가 나온다.
시리아의 에뎃사와 서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사용되지 않고, 시리아어
(아람어와 관련된 셈어 중 하나)가 사용되고 있었다. 2세기에 나온 「디아테사론(Diatessaron)」의 원어는
시리아어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고대 시리아어역 사본은 단편만 남아 있다. 「페쉬타(쉬운 보통말) 시리아어역」
은 4세기에 이루어진 번역이다. 신약 27권 중 22권이 들어 있는데 번역 본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필록세니아판(Philoxenian)과 하클리판(Harclean)은 6 7세기의 것으로서 신약 27권이 다 들어 있다. 팔레스타인
시리아어역(Palestinian Syriac)은 5세기에 번역된 것이지만 지금은 11 12세기의 성구집을 통해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집트에서는 3 6세기에 콥트어 번역이 나왔다. 남쪽(상 에집트)에서는 사히딕역이, 북쪽 (하 이집트)에서는
보하이릭역이 나왔다. 둘 다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엄격한 직역이다.
고트어역은 4세기에 선교사 울필라스(Ulfilas)가 그리스어역에서 번역한 것이다.
5세기의 아르메니아어역은 시리아어역에서 거듭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어 본문에서 번역되었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아르메니아 번역이 4 5세기에 나온다. 5세기에는 조지아역이 나오고, 6세기에는 누비아역이
나온다. 6 7세기에는 에티오피아역이 나온다.
(Editions of the Greek New Testament)
최초로 인쇄된 성서는 라틴어 불가타를 구텐베르크가 42행 성서로 인쇄한 것이었다.
그리스어 신약이 최초로 인쇄된 것은 1514년 1월 10일에 나온 「여러 번역 대조 성서 (Complutensian Polyglot)」에
실린 신약이다. 그 후 1516년 3월 1일에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그리스어 신약」
이 바젤에서 나온다. 그런데 에라스무스는 신약 전체가 포함된 신약 사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그리스어
신약은 어느 한 본문 전승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본을 반영한다. 그는 12세기경의 서로 다른 세 사본
(복음서 사본, 사도행전과 서간 사본 및 요한계시록 사본)을 합쳐서 그리스어 신약을 만들었다.
특히 계시록의 경우에는, 사본 마지막 쪽이 떨어져 나가, 계시록의 마지막 여섯 절은, 에라스무스가 제롬의 라틴어역
불가타에서 그리스어로 되번역하여 삽입시킨 것이다. 이 밖에도 여기저기에 에라스무스가 라틴어역 불가타에서
그리스어로 재구성하여 넣은 본문이 많이 발견된다. 그가 재구성한 그리스어 본문은 사실상 어느 그리스어 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그가 만들어 넣은 본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재구성을 포함한 본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위 '수용본문(受容本文 Textus Receptus)'이라고 하여 전승되고 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독일어역 신약(1522)과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1551)Greek NT edited by Stephanus(1551) 틴들(William Tyndale)의 영어역 신약(1525)은
둘 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2판(1519)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에 이어 여러 편집자들과 인쇄업자들이 여러 형태의 그리스어 신약을 편집해서 출판하였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다수가 후기 비잔틴 지방 본문의 사본에 반영된 것과 같은 형태의 본문을 재생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주목할 만한 편집 은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이다. 1550년에 나온 그의 그리스어 신약 제3판은
본문 비평 장치를 갖춘 것으로서, 역사상 최초의 비평적 편집이다. 그 이듬해 1551년에 제네바에서 나온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4판은 숫자로 절 구분이 되어 있는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으로 유명하다.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도 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그리스어 신약을 출판하였고,
1611년에 나온 제10판은 그의 사후에 나온 것이다. 베자가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은 소위 '텍스투스 리셉투스'라고
하는 개념을 일반화시키고 고정시키는 일에 한 몫을 하였다. 1611년의 영어 「제임스왕 역본(King James Version)」
의 신약 번역 대본이 되었던 것도 바로 베자가 1588 89, 98에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이었다.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말은 '모두가 받아들이는 본문'이라는 말로서, 본래는 인쇄업자들인
보나벤투라 엘제비어(Bonaventura Elzevier)와 아브라함 엘제비어(Abraham Elzevier) 형제가 그리스어 신약 제2판
(1633)을 인쇄할 때 서언에서, 자신들이 인쇄한 그리스어 신약을 두고, 독자들에게 "이제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께서는 아무런 변경도 가하여지지 아니하고 와전됨이 없는, 모두가 받아들이는(Receptum) 본문(Textum)을
가지게 되었습니다(Textum ergo habes, nunc ab omibus receptum in quo nihil immutatum aut corruptum damus)"
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좀 허풍이 있는 광고 문안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는 에라스무스와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신약의 이 '수용본문'이란 후대의 첨가가 많은 본문, 곧 본문 비평 이전 시대의 산물이다.
비록 '수용본문'이라 했고, 실제로 널리 유포되고 있기도 했으나, 비잔틴 지방 본문의 사본들은 수세기 동안 본문에
가해진 본문 변경의 축적으로 사본들 중에서는 열등한 사본으로 분류된다.
고대의 사본들에 근거한 비평적 편집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1831) 칼 락흐만(Karl Lachmann)부터였다.
이어서 티셴도르프(Constantin von Tischendorf)의 그리스어 신약 8판(1869 1872), 케임브리지의
두 학자 웨스트콧(B.F.Westcott)과 호르트(F.J.A.Hort)의 그리스어 신약(1881)
등이 나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 고대의 사본들을 발견하여 보다 더 원문에 가까운 그리스어 신약 편집을
하게 되었다.
지금 세계의 120여 곳 각 나라 성서공회 번역실에서는 신약의 번역 대본으로 주로 두 가지를 쓰고 있다.
하나는 네슬레-알란트의 「그리스어 신약」(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이고 (이하 NTG),
다른 하나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그리스어 신약(The Greek Testament)」이다(이하 GNT). 이 두 비평적 편집은
그리스바하(Griesbach)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대의 노작이다.
네슬레(Eberhard Nestle)가 NTG를 처음 편집하여 출판한 것은 1898년이다.
그것은 독일의 비르템베르크성서공회의 지원으로 출판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소위 '수용본문'이라고 하는 것이
아직 우세하게 유포되고 있던 무렵이었지만, 19세기 말의 신약학계에서 종래의 '수용본문'은 이미 가장 빈약한
신약 본문으로 판정을 받고 있던 터였다. 종래의 '수용본문'의 약점을 극복하여 보려고 시도된 것이 티셴도르프(Tischendorf 1841, 1869-72), 트레겔레스(Tregelles 1857-1872), 웨스트코트과 호르트(Westcott-Hort, 1881) 등의
비평적 편집 활동이었다.
네슬레의 NTG는 19세기 신약 본문 연구의 결실들인 티센도르프, 웨스트코트-호르트, 웨이머트
(Weymouth, 1886; 1901년 이후부터는 바이스, Bernhard Weiss) 등이 편집한 본문을 기본 본문으로 삼았다.
네슬레는 이들 세 종류의 그리스어판을 비교하여 가면서 다수의 사본들이 일치하는 다수결 본문(majority text)을
만들었다. 세 가지 그리스어판을 비교하여 두 본문이 같고 한 본문이 다를 경우는 두
네슬레-알란트의 그리스어 신약 25판, 26판, 27판
Novum Testamentum Graece 25th., 26th., 27th. Edition edited by Nestle-Aland 본문을 다수결 본문으로 택하고,
나머지는 난외의 본문 비평 장치에 넣었다.
세 가지 그리스어판이 다 다른 본문을 보일 때에는 조정하는 해결책을 쓰곤 하였다.
그 후 에버하트 네슬레의 아들 어빈 네슬레(Erwin Nestle)가 1927년에 NTG 13판을 낼 때에 사본 비교, 번역판 비교,
교부들의 신약 인용구 비교 등이 첨가되면서, 본문 비평 장치가 더 확대되었다.
쿠르트 알란트(Kurt Aland)가 네슬 레의 NTG 편집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NTG 21판부터였다.
특히 1963년의 25판은 여러 번 반복되어 인쇄되었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네슬레판 그리스어 신약은 네슬레-알란트판으로 불리면서, 비평적으로 편집된 그리스어 본문
자체와 본문 비평 장치의 우수성 때문에, 신약학계에서 새로운 '표준 본문'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네슬레-알란트의 NTG 25판(1963)은 1930년대 이후, 새로 발견된 주후 200년경의 파피루스 사본들을 본문 재구성에
반영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NTG 26판 자체는 아직 예비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서, 편집자인 알란트 자신은
25판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새로운 형태의 본문(text)과 본문 비평 장치(apparatus)를 준비하였다.
이 작업의 결과가 반영된 것이 바로 GNT 1판(1966)과 NTG 26판(1979)이고, GNT와 NTG는 그 후 계속 수정,
증보되어 GNT 4판(1993)과 NTG 27판(1993)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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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Versions of the Bible
(The English Versions)
1) 「위클리프역」(Wyclif's Version, 1382)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영어번역 성서는 「위클리프역(Wyclif's Version)」이다(1382년).
이것은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성서(the complete Bible)이다.
영국에 기독교가 들어간 지 실로 천여 년 만에 번역되어 나왔다. 위클리프(John Wyclif)가 번역했기 때문에
「위클리프역」이라고 한다. 그는 일반 신도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성서를 번역하였다.
그를 일컬어 종교개혁의 새벽별(the morning star of the Reformation)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을 맡았으나 후에 추방되었다. 위클리프는 1380년에 신약을 번역해 내었고, 구약까지 완역된 것은 1382년이었다.
이것이 최초의 완역 영어 성서이다. 그러나 아직 이것은 인쇄된 성서가 아니고 손으로 쓴 성서이다.
위클리프는 1384년에 죽는다. 그런데 44년 후인 1428년에 그가 성서를 번역했다는 이유로 교회는 그의 묘를 파헤치고
그의 시신을 꺼내어 화형에 처한다. 위클리프가 번역한 성서는 나온 지 33년 밖에 안되어 1415년에 불태워지고 만다.
당시 교회는 신도들이 성서 읽는 것을 금했다
2) 「틴들역」(Tyndale's Translation, 1525)
틴들(William Tyndale)은 먼저 신약번역에 착수하여 1525년 콜론(Cologn)에서 그것을 인쇄하여 4절판(a quarto edition)
으로 출판하였다. 이것은 최초의 영어번역 신약 인쇄본(first printed English New Testament)이다.
그는 보름즈(Worms)로 쫓겨 간 다음에 거기서는 신약을 8절판(an octavo edition)으로 출판하여 3천 부를 몰래
영국으로 들여 보낸다. 일반 신도들은 그것을 읽으려고 사고, 워햄(Warham) 대감독은 불태워 버리려고 그것을 사
들였다. 신약번역을 마친 틴들은 곧바로 구약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번역을 완료하지 못한다.
드디어 1536년 10월 6일 틴들은 화형을 당한다. 처형을 받으면서, 그는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 성서(King James Version)」의 80퍼센트가 틴들의 문체라고 한다.
그의 평생의 목표는 평신도들에게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를 주는 것이었다.
3) 「카버데일역」(The Coverdale Version, 1535)
이것은 1535년 10월에 나온 최초로 "인쇄된" 영어 신 구약 성서(the first complete English Bible in Print)이다.
번역자 마일즈 카버데일(Miles Coverdale)은 함부르크에서 틴들을 알게되었다.
그의 번역은 유럽 대륙에서 인쇄된다. 취리히였으리라고 짐작된다. 그것을 헨리8세에게 봉헌한다.
그는 독일어와 라틴어에서 성서를 번역했다. 틴들의 신약과 오경도 참고하였다고 한다. 「카버데일역」은 틴들의
번역에 크게 의존하면서 아직 틴들이 완성하지 못한 부분을 독일어와 라틴어에서 거듭 번역하여 완성시켰다.
4) 「토마스 매튜역」(Thomas Mattew Version, 1517)
이것은 「틴들역」의 또 다른 교정판이다. 유럽 대륙에서 인쇄된 것이다.
1517년 안트워프(Antwerp)에서 인쇄된 것으로 생각된다.
5) 「큰 성서」(The Great Bible, 1539)
이것은 카버데일이 맡아서 펴낸 것으로, 위에 언급한 「틴들-토마스 매튜역본」(1537)의 재교정판이다.
이것을 「큰 성서」라고 하는 까닭은 그 크기가 가로 9인치, 세로 15인치로 유난히 컸기 때문이다.
1539년에 완성되어 성직자들에게 배포된다.
6) 「제네바 성서」(The Geneva Bible, 1560)
제네바는 신학학자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와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의 고향이다.
칼빈의 동서 윌리엄 위팅햄(William Whittingham)이 존 녹스(John Knox)에 이어 제네바 영국교회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제네바 성서」 발행에 있어서 공헌이 컸던 인물이다.
이 성서가 나오기까지 위팅햄을 도왔던 인물이 바로 1553년까지 「카버데일역」을 냈던 카버데일이다.
「제네바 성서」는 「큰 성서」(1539)의 교정판이다. 틴들의 공헌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구약은
히브리어 본문과 라틴역 본문에 따라 철저히 교정된 것이다. 신약은 주로 「틴들역」의 교정이다.
이 성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봉헌된다. 엘리자베스는 1558년에 즉위하였고, 개신교 편을 강하게 들던 왕이었다.
「제네바 성서」가 당시 교회에서 「큰 성서」를 대신하지는 못했지만, 일반 신도들 사이에서는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 「감독성서」(1568)가 나올 때까지 이 두 성서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제임스왕역(KJV)」(1611)이 나올 때까지 「제네바 성서」는 140여 회나 판을 거듭하면서 출판되었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장군과 그의 군대가 바로 이 성서를 읽었고,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
북아메리카로 간 필그림 조상들과 존 번연, 세익스피어 심지어는 「제임스왕역」(1611)을 낸 제임스왕도 바로
이 「제네바 성서」를 읽었다. 「제네바 성서」의 신약은 1557년에 나온다. 신 구약 전서가 다 번역되어 나온 것은
1560년이다. 이것이 로마자로 인쇄되고 절 구분이 된 최초의 영어 성서인 「제네바 성서」 초판이다.
7) 「감독성서」(The Bishops' Bible, 1568)
교인들 사이에서는 「제네바 성서」(1560)가 읽히고, 교회의 강단에서는 「큰 성서」(1539)가 읽히고 있었다.
「제네바 성서」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던 대감독 파커(Archbishop Parker)는 「큰 성서」를 교정하여 이것으로
기존의 두 번역 성서를 대치하고자 했다. 교정 작업에 대거 참석했던 이들이 감독들이었으므로 이것을「감독성서」
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약 본문은 「제네바 성서」 그대로이고, 신약 본문은 파커 대감독 자신이 많이 교정하였다.
8) 「듀아이-랭스 성서」(The DouaiReims Bible, 1582/1610)
이것은 로마 가톨릭 쪽에서 번역해 낸 일상어로 된 번역이다.
프랑스의 랭스(Reims) 지방의 알렌 추기경이 시작하였고, 본격적 작업은 듀아이(Douai) 대학의 히브리어 교수였던
그레고리 마틴(Gregory Martin)이 맡아서 하였다. 신약이 1582년에 나왔고, 구약도 곧 이어 완역되었으나 출판 비용이
없어서 지연되다가 대학이 라임에서 듀아이로 옮긴 다음에 1609/10년에야 출판되었다.
그래서 신약은 랭스 신약으로 알려졌으나, 신 구약 전서는 듀아이 성서로 불린다.
라틴어 불가타에서 번역되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한 번역이다.
9) 「제임스왕역」(The King James Versions, 1611)
엘리자베스의 오랜 통치가 1603년에 끝난다. 여왕이 통치하는 동안에,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이 크게 진전되었다. 1604년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제임스 1세로 등극한다.
즉위하던 첫 해에 그는 원전에 근거한 새로운 성서 번역을 지시한다. 1604년 6월 30일에 제임스왕은 학자 54명을
임명하여 새 번역에 참여하게 했다. 현존하는 기록에는 실제로 번역에 참여한 학자가 49명으로 나오고 있다.
번역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611년 에 이 번역이 완성되었다.
칠십인역 이후 두번째로 왕의 지원으로 번역된 성서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틴들과 카버데일 번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라틴역본, 랭스 신약, 루터의 독일어역 성서의 영향도 받고 있다.
비록 왕의 후원으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했다.
거의 40여 년 동안이나 반대자들과 싸워야 했다. 또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때
사용된 원본이 오늘날에 와서 볼 때 그렇게 좋은 사본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1611년에 나온 이래, 1615년, 1629년, 1638년, 1654년, 1701년, 1762년(케임브리지 성서),
1769년(옥스퍼드 성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10) 「영어개역」(English Revised Version, 1881/85)
이것은 「제임스왕 역본」의 본격적 개정작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임스왕 역본의 신약이 대본으로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은 아주 빈약한 것이었고, 그 후 새로운 권위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므로 개역의 필요성이 고조되었다.
1870년에 개역에 착수한 이래, 신약 개역이 나온 것이 1881년이다.
영국에서는 그 해 5월 17일에, 미국에서는 3일 후에 같은 신약을 출판하였다. 제임스왕 역본에서 거의 3만여 곳을
고쳤다. 그 중에 5천여 곳은 제임스왕 역본이 사용한 사본과 영어 개역 성서가 사용한 사본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이 나온 것은 1885년이었다. 신약에 비해 개정 범위가 좁았다.
11) 「미국표준역」(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영어 개역 성서」가 「제임스왕 역본」의 영국 개정판이라면, 「미국 표준역 성서」는 미국 개정판이다.
1900년에 신약이 나오고, 1901년에 구약과 함께 성서가 나온다. 이 때 외경은 제외된다.
영국식 영어 표현들이 미국식 영어 표현으로 바뀌는 것도 이 때였다.
12) 「미국 개역 표준 성서」(The Revised Standard Version)
이것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1901년에 나온 「미국 표준역 성서」의 개정판이다. 1611년에 「제임스왕 역본」이
나왔고, 그것을 영국에서 개정한 것이 「영어 개역성서」(1881/85)이고, 「영어 개역 성서」를 미국에서 다시
개정한 것이 「미국 개역 표준 성서」(1946/1952)이다. 20여 개 대학과 신학교에 적을 둔 32명의 성서학자들이 작업을
맡아 하였으며, 그 중에는 유대인 학자도 한 사람 끼어 있었다. 1957년에 개정판이 나올 때 외경도 번역되어 나왔다.
이것은 성서 번역에서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를 반영시킨 최초의 번역이기도 하다.
13) 유대교 영어 역본들(The Jewish Versions)
영어권에 살던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제임스왕 역본」과 「영어 개역」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유대교인들로서는 기독교 쪽에서 번역한 이런 성서들을 사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히브리어 본문 전승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 구약 본문에 대한 유대교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번역,
구약의 몇몇 절들에 대한 기독교 쪽의 기독론적인 해석들이 그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리하여 미국에 있는 유대교 출판협회가 1955년에 유대교 학자들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번역에 착수하여,
율법서(1962)와 예언서(1978)와 성문서(1982)를 출판하였고, 1985년에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14) 「새 영어 성서」(The New English Bible, 1961/1970)
이것은 기존 번역의 개정이 아닌, 철저한 새 번역이고, 영국식 영어 번역이다.
전통적인 "성서 영어(biblical English)"가 사라진 번역이다. 1946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961년에 신약을 출판하였고,
1970년에 구약을 출판하였다. 1970년판 성서에 합본되어 나온 신약은 1961년판의 개정이다.
1970년에 완역되어 나온 성서는 일주일 만에 3만 3천 부가 매진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5) 가톨릭 역본들(The Catholic Versions)
가톨릭 쪽에서는 20세기 전반부까지는 「듀아이-랭스 성서(Douai-Reims Bible)」(1582/1610)를 사용하였으나,
중세기 후반부터는 독자적 번역을 갖게 되었다. 로날드 녹스(Ronald Knox) 번역의 신약이 1945년에,
구약이 1949년에 나왔고, 1955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936년에 기독교 교리협회(the Confratermity of Christian Doctrine)에서 새 번역 계획을 세웠다.
라틴어 불가타역을 대본으로 신약을 번역하였다(1941). 그러나 1943년에 폰티피칼 성서위원회
(the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가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 성서를 대본으로 한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여, 협회번역(Confraternity Version)이 나오게 된다(1952/61).
이것이 나중에 「새 미국 성서(the New American Bible)」가 된다.
구어체 성격의 또 다른 번역인 「예루살렘성서(the Jerusalem Bible)」(1966)는 프랑스어판
「예루살렘성서(La Bible de Jerusalem)」(1956)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16) 「현대영어역」(Today's English Version, 1966/76)
달리 「복음성서(Good News Bible)」라고도 한다. 미국성서공회가 구어체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원칙으로는 전통적인 형식일치의 문자적 번역을 피하고, 내용일치의 의역을 시도하였다. 1966년에 신약이
나왔고, 1976년에 구약이 나왔으며, 1979년 외경이 번역되어 나왔고, 199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7) 「새 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1973/78)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의 개혁교회가 연합하여 번역한 것이다. 1
973년에 신약이 나왔고, 1978년에 구약이 나왔다. 발행자와 판권 소유자는 뉴욕 국제성서공회
(New York International Bible Society)로 되어 있다. 전통적 어법과 표현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본문비평의
결과를 번역에 많이 반영시킨 것이 특징이다.
구약에는 특히, 사무엘기상 하와 이사야서 등에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18) 「새 제임스왕역」(The New King James Version, 1979/82)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역」을 현대화한 것이다.
19) 「미국 신개역 표준 성서」(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89)
이것은 미국에서 나온 「미국 개역 표준역」(1946/1951)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74년에 개정 작업이 시작되어 1989년에 출판되었다.
3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개정위원회에는 가톨릭 학자 6명과 동방정교회 소속 학자와 유대교 학자도
각각 1명씩 있었다. 구약의 경우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20) 「영어 개역 성서」(The Revised English Bible, 1989)
이것은 영국에서 나온 「새 영어 성서(the New English Bible」(1970)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89년에 나온 것이다.
(The French Versions)
처음으로 프랑스어역 완역 성서가 나온 것은 13세기였다.
파리 대학교가 중심이 되어 학자들을 동원하여 번역한 것인데, 그 대본은 라틴어 성서였다.
1487년에는 가톨릭 학자들이 성서를 번역하여 「큰 성서(La Grande Bible)」로 출판하였다.
개신교 쪽에서는 1535년에 올리베땅(Olivetan)으로 알려진 삐에르 로버트(Pierre Robert)가 성서를 번역하였다.
몇 차례 개정을 거듭하였고, 1546년판을 낼 때에는 칼빈이 서문을 썼다. 1553년에 인쇄업자 스테파누스
(Robert Stephanus, 일명 Robert Estine)가 이 번역을 제네바에서 출판할 때 원문의 장절을 구분하여 출판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세공(Louis Segond)이 프랑스어역 구약(1874)과 신약(1879)을 출판하였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와서는 1956년에 완역된 도미니쿠스회 학자들이 번역한 「예루살렘성서
(La Bible de Jerusalem)」와 1971/75년에 나온 「공동번역성서(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가 있다.
(The German Versions)
6세기에 고트어로 된 구약과 신약이 있었으며, 8세기에 와서 라틴어에서 번역된 마태복음이 바바리아
(Bavaria: 독일 남부의 주) 방언으로 번역되었다. 9세기 복음서들의 발췌 번역과 시편 번역이 나왔다.
「아우스부르크 성서(Ausburg Bible)」로 알려진 구약전서는 1389년부터 1400년 사이에 나왔다.
최초의 인쇄본 성서인 「멘텔 성서(the Mentel Bible)」가 나온 것은 1466년이고 1533년까지 18 판이 나왔다.
독일에서 성서 번역의 신기원을 이룬 것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독일어역 성서이다.
1522년에 빗텐베르크(Wittenberg)에서 신약전서가 나왔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 2 판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이다. 뒤이어 나온 구약전서는 「브레스키아 히브리어 성서(the Brescia Hebrew Bible)」(1494)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이다. 루터의 히브리어와 아람어 독해력은 제한된 것이었으나 그의 번역에는 11 12세기 프랑스의
랍비였던 라쉬(Rashi)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 있다. 루터역이 완역되어 나온 것은 1534년이다.
루터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번역을 계속 개정하였으며 1534년부터 1546년 사이에 열한 번이나 개정을 거듭했다.
마지막 판은 그의 사후에 나온 것이다.
루터의 번역은 가톨릭 번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히에로니무스
엠제르(Hieronymus Emser)의 번역은 불가타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지만, 루터역의 영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1534년에, 요한 디텐버거(Johan Ditenberger)가 마인츠에서 엠제르의 번역 개정판을 낼 때에 아나밥티스트
(Anabaptist: 개신교의 한분파)역과 1529년의 취리히 번역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가톨릭의 표준 번역이 되었다.
20세기에 와서 「그뤼네발트 성서(Gruenewald Bible)」(1956년에 7판이 나옴)는 가장 주목할 만한 번역이다.
12 13세기에 독일어로 번역되고 히브리어 글자로 쓰여진 이디쉬 역본들(Yiddish versions)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인쇄본으로서는 야곱 벤 이삭 아스케나지(Jacob ben Isaac Ashkenazi)의 「체나 우레나(Tzenah u-Rena)」 (Lublin,1616)가 있다.
유대교에서 번역한 최초의 독일어역 구약이 모세 멘델손(Moses Mendelssohn)의 번역으로 1780-83년에 나온다.
독일어로 번역된 것이지만 히브리어 글자로 쓴 것이다.
구약전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어 활자로 인쇄한 최초 번역은 곳트홀트 살로몬(Gotthold Salomon)의 번역이다(Altona, 1837). 마르틴부버(Martin Buber)와 프란츠 로젠바이크(Franz Rosenweig)가 히브리어 문체의 특성을 살린
번역을 하였다(15 vol., Berlin, 1925,37; 개역판 Cologne, 4 vol., 1954-62).
최근 번역으로서는 신 구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성서(Die Bibel Einheitsuebersetzung)」(1980),
「현대 독일어 성서 (Die Bible in heutigem Deutsch)」(1982), 「공동번역성서」에 프랑스어 「예루살렘성서」
(1956)의 해설을 함께 단 「새 예루살렘성서(Neue Jerusalemer Bible)」(1985)가 있다.
(The Chinese Versions)
중국에 기독교가 들어간 것은 7세기에 경교(景敎, Nestorian-ism)가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13세기에 가톨릭이
들어 갔고, 19세기 개신교가 들어 갔다. 본격적인 성서 번역은 개신교가 들어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초창기 우리말 번역 성서의 대본 구실을 한 중국어 문리역(文理譯) 신약(1885)과 구약(1905)의 최근판(1912)
Wenli Reference Bible(1912)
장개석 총통 성서문체
수정원고본 (蔣中正先生手改聖經聖詠譯矯,
1994)대만 천주교 신약과 시편 번역 원고를 장개석 총통이 문체를 교정한 것
The Chinese Draft of the New Testament and Psalms reviewed by the President Chiang Kai-Shek
1810년에 선교사 마르쉬만(Marshiman)이 마태복음을 번역하였다. 1822년에는 신 구약 전서가 간행되었다.
중국어 성서의 대표적인 두 번역은 「대표역본(the Delegates Version)」(1854)과
「화합역본(和合譯本, the Union Version)」이다. 「대표역본」은 "하나님"을 "신(神)"으로 표기한 "신판(神版)"과
"상제(上帝)"로 표기한 "상제판(上帝版)"으로 출판되었다. 「화합역본」은 중국의 표준 번역으로서 1891년에 시작하여
1919년에 완료된 것 으로서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 번역으로는 홍콩성서공회에서 간행된
「현대 중문역본(現代中文譯本) : Todays Chinese Version」(1979)이 있다.
(The Japanese Versions)
최근의 번역으로는 귀츨라프의 요한복음 번역이다(1837). 1880년에 신약전서가 번역되고 1888년에 구약이
번역되어 성서가 나온다. 이것이 소위 "명치역(明治譯)"이다. 1917년에 신약이 개정되어 나온다.
일본어 여섯가지 번역 대조 신약(1994)
Japanese Hexapla(1994) 1954년에는 「명치역」에 이어 두번째로 완역 성서가 나온다.
이것은 구어(口語)로 개정되어 나온 성서로서 현재까지 가장 널리 쓰인다. 1970년에 기존 번역을 개정한
「신개역」이 나오고, 1978년에는 신교와 구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 신약」이 나왔고, 1987년에는
「신공동역 성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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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Versions
(The Early Versions)
발췌 번역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성공회 쪽에서 시작된다.
그 중의 하나가 그 연대를 알 수 없는 필사본 「셩경직광익」이라는 것이다. 이 필사본은 모두 20여 권에 이르며,
각 권은 70장 안팎 부피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것은 17세기의 한문본 「聖經直解」(1642)와 19세기에 나온
「聖經廣益」(1866)을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필사본은 179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나온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각 주일과 주일 이외의 첨례 곧 축일(성탄 축일 등)에는 그 주제에 따라 성서 구절을 골라서 읽도록 되어
있다. 그리하여 1년의 52개 주일과 그 밖의 34개 축일에 읽게 되는 성서 내용은 각기 다르게 정해져 있다.
「셩경직」는 이렇게 각 주일과 축일에 읽는 각기 다른 성서 내용을 한 항목으로 하여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에 나온 한글 활판본 「성경직」(1892-1897)는 필사본 「셩경직광익」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聖經마두」, 「聖經말구누가」, 「聖經요안」, 「聖經슈난」 이상 네 권은 모두 1892년 이전에 나온 것으로서
, 1892-1897년에 나온 「셩경직」의 대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셩경직광익」에서 복음서의 성구들만 뽑아서
재편집한 것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된, 1890년대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고경古經」 또는 「고셩경古聖經」이라고 하는
필사본이 있다. 창세기 4장 2절부터 37장 20절까지의 내용을 간추려 번역한 것이 여기에 들어 있다.
일찍 번역된 구약의 단편을 볼 수가 있어서 흥미롭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신문인 「죠션크리스도인회보」가 창간호부터 매주 공과 공부용 성서 본문을 연재하였는데,
1897년 2월 2일자부터 같은 해 7월 14일까지 연재된 사무엘기상 하와 열왕기상의 번역이 주목할 만하다.
1898년 6월 22일부터 그 다음 해 1899년 6월 14일까지는 창세기도 번역되어 연재되었다.
1898년에 나온 피터스(彼得)의 「시편촬요」는 시편 150편 가운데에서 62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성공회 쪽에서 나온 「照萬民光」(1894), 「舊約撮要」(1899), 「聖經要課」(1902), 「聖經選要」(1906),
「聖詩選篇」(1937), 「聖詩全篇」(1961) 등도 발췌 번역들이다.
천주교 쪽에서 나온 것으로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四史聖經」(1901): 불가타에서 번역
「宗徒行傳」(1922)
「四史聖經合附宗徒行傳」(1922)
「소년셩셔」(1925)
「젊은이의 성서」(1940, 1951)
「신약성서상편」(1948)
선종완역, 「구약성서」(1958-63)
김창수, 「가정의 복음서」(1964)
김창수, 「신약성서 복음편 서간편」(1968)
최민수, 「성경의 시편」(1968)
김창수, 「구약 (창세기, 출애급기)」(1972)
백민관, 「합본복음서」(1972)
(The Complete Versions)
성서 66권 가운데서 낱권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882년부터였다.
로스 목사를 중심으로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이응찬(李應贊), 백홍준(白鴻俊), 서상륜(徐相崙),
이성하(李成夏) 등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각각 개별 낱권으로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 1882년이었다.
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가 지났다.
우리말 성서 번역의 한 세기 역사에는 성격상 몇 개의 마디와 매듭들이 있었다.
먼저 성서공회가 신 구약 성서를 완역해 낸 1911년은 우리말 성서 번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시점으로 볼 수 있다.
1882년부터 1911년까지는 '신약 낱권 번역시대'라고 특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신약 27권이 낱권으로, 또는 몇몇 낱권의 합본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열거해 보면, 로스 팀의 번역들로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1882),
「예수셩교누가복음뎨쟈」(1883), 「예수셩교셩셔」요안복음」(1883), 「예수셩교셩셔말코복음」(1884),
「예수셩교셩셔맛복음」(1884), 「예수셩교셩셔요안복음이
비쇼셔신」(1885)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하여, 1887년에는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완역 신약
「예수셩교젼셔」가 나온다.
로스 번역팀의 번역 외에도, 이수정(李樹廷)의 낱권 번역도 괄목할 만하다.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
新約聖書)로 알려진 '新約聖書馬太傳'(1884), '新約聖書馬可傳'(1884), '新約聖書路加傳'(1884), '新約聖書約翰傳'
(1884), '新約聖書使徒行傳'(1884)이다. 이수정은 이것에 이어 마가복음 번역 '신약마가젼복음셔언'(1885)를 내놓았다.
로스역과 이수정역이 중국과 일본에서 이루어진 것인 데 반하여, 국내에서도 낱권 번역이 나오기 시작한다.
로스(1842-1915) John Ross(1842-1915)
서상륜(徐相崙 1848-1926)
Sang-Reun Seoh(1848-1926)
예수셩교젼셔(1887)
Yesu Seong Kyo Jeonseo(1887)
The First Korean Translation the New Testament
상설성경실행위원회(常設聖經實行委員會, The Permanent Executive Bible Committee) 산하 성경번역자회
(聖經飜譯者會, The Board of Official Translators)에서 번역한 것으로서, '마가의젼복음셔언'(1887),
'누가복음젼'(1890), '보라달로마인셔 保羅達羅馬人書'(1890), 펜윅의 '요한복음젼'(1891), '마태복음 馬太福音'(1892),
'도젼'(1892), 펜윅의 '약의긔록로복음'(1893), '마태복음'(1895), '요한복음'(1896), '바울이갈라대인의게편지'(1897),
'야곱의공번된편지'(1897), '베드로젼셔'(1897), '베드로후셔'(1897), '마태복음'(1898), '마가복음'(1898), '누가복음'
(1898), '도젼'(1898), '로마인셔'(1898), '고린도젼셔, 고린도후셔」(1898), '필닙보인셔'
(1898), 「데살노니가인젼후셔」(1898), 「골노인셔」(1898), 「듸이모데젼셔, 듸이모데후셔, 듸도셔, 빌네몬」(1898), 「희브인셔」(1898), 「요한일이삼유다셔」(1898), 「에베소인셔」(1899), 「요한믁시」(1900) 등이다.
1900년에는 드디어 「신약젼셔」 완역본이 나온다. 이것이 나오기 전까지 신약의 경우는 거의 모든 책들이 이처럼 먼저
낱권으로 출판되어 나왔었다. 스코틀랜드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스역 번역진의 번역이나, 우리 나라에 와 있던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의 공인 번역 역시 신약의 경우 낱권 번역이 완료되는 대로 출판하였다.
구약의 경우에도 낱권 출판을 볼 수 있다.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시편촬요」(1898), 「창셰긔」(1906),
「시편」(1906), 「언」(1907), 「삼우엘젼후」(1907), 「말나긔」(1907), 「출애굽기」(1907), 「렬왕긔샹하」
(1908), 「이사야」(1908), 「삼우엘젼」(1910) 등이 나온 다음에, 1911년에 「구약젼셔」가 나온다.
구약의 경우는 39권의 개별 출판보다는 39권 합본 구약전서 출판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 같다. 1911년에
미국성서공회는 우리말 구약전서를 상(창세기-역대하), 하(에스라-말라기) 두 권으로 출판해냈다.
1882년부터 1911년까지를 달리, '성서중역(重譯)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역이라 함은 성서를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지 아니하고, 다른 번역에서 거듭 번역하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말 성서가 번역되어 나오던 초창기에는 피득(彼得 A.A.Peters)씨와 같은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 그리고
성서언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게일(S.Gale)씨와 같은 이들이 번역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어서 히브리어
원문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우리말 구약전서는 여러 면에서, 1901년에 미국에서 나온 「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을 기초 본문으로 삼고 그 밖에 주로 한문 성서를 참고한 중역의
흔적이 짙다.
번역에 참여한 이들이 그 기능에 있어서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즉 한 부류의 번역자들은 성서 원문이나 번역 대본이 되던 영 미 계통의 번역본을 번역하던 이들로서, 선교사들이
이 역할을 맡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의 번역자들은 중국어 성서나 일본어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던 이들로서
우리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던 우리 나라 학자들이었다. 번역진들이 원문이나 중역 대본의 서양 언어를 다루던 외국인
전문가들과, 한문 성서나 일본어 성서에서 번역하여 선교사들의 번역과 대조하면서 번역된 본문을 우리말로 다듬던
우리 학자들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은 성서언어와 우리말을 함께 다룰 수 있는 번역자가 없었던 당시 사정을 반영한다.
(The Mixed Script Versions)
우리말 성서 번역에 있어서 "국한문(國漢文)"〔혹은 "선한문(鮮漢文)"〕 번역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 이전에 "현토한한(懸吐漢韓)"이라는 것도 있었다. 한문 본문에 한문 글자에서 만들어진 우리말 현토를 달아
한문 본문을 읽는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번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번역 역사에서 번역의 한 예비적 단계로
활용되었던 방법이었기 때문에 번역사에서 간과할 수는 없다.
현토를 달아서 읽는 성서는 이수정의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1884)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국한문 번역은 한문 본문에 우리말 토를 달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新約全書 국한문」(1906) 요한복음서 3장 16절을 보면 "上帝가 世上을 愛샤 獨生子를 賜셧으니 誰든지 彼를 信면
滅亡지 안코 永生을 得리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은 「馬加福音 鮮漢文」(1912)과 「馬太福音 鮮漢文」
(1914)을 이어 「鮮漢文 貫珠 新約全書」(1926, 1939), 「鮮漢文 貫珠 聖經全書」
(1926)까지 이어진다. 「鮮漢文 貫珠 聖經全書」(1926, 1939) 시편 32편 8절을 보면 "我가 爾를 敎며 爾의 往路를 我가
指示며 我眼이 爾를 顧야 訓戒리로다"라고 되어 있다. 여전히 언문일치가 안되는 번역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創世記 鮮漢文 改譯」(1925), 「創世記單編」(1925), 「簡易鮮漢文新約」(1931), 에서 언문일치에 가깝게
번역을 시도하다가, 「簡易鮮漢文舊約改譯」(1937, 1939), 「簡易鮮漢文新約全書改譯」(1940),
「簡易鮮漢文聖經改譯」(1940)으로 이어지면서 언문일치로 바뀐다. 이 전통은 「簡易鮮漢文新約全書附詩篇」
(1958), 「簡易國漢文聖經改譯」(1958)을 거쳐, 「貫珠聖經全書簡易國漢文한글판」(1964)에서 완성된다.
(The Reference Bible)
최초의 관주 성서로서는 1910년에 나온 「부표 관쥬 신약젼셔」가 있다. 이것은 동양선교회 소속 선교사 카우만(C.E.Coeman)과 한국인
부표 관쥬 신약젼서(1910)
The Korean New Testament with symbolic icon(1910) 이장하(李章夏)가 편집한 것이다.
1906년의 「신약젼셔」를 대본으로 하여, 본문 내용의 주제에 따라 한문자 罪는 "죄"를 표시하는 부표(附表)로,
저울은 "심판"을, 화살은 "회개"를, 악수는 "사죄"를, 십자가는 "구원"을, 비둘기는 "구원에 대한 믿음"을, 등불은 "간증"을,
닻은 "보호"를, 한문자 血은 "성결"을, 왕관은 "재림"을, 나뭇잎은 "신유"를 표시하는 부표로 사용한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관주성서가 계속하여 나온다
신약젼셔 관쥬」(1912)
「鮮漢文貫珠聖經全書」(1926)
「관쥬 신약젼셔」(1930)
「관주 구약젼셔」(1950)
「관주 성경전서」(1950, 1953)
「관주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2)
「貫珠 聖經全書 簡易 國漢文한글판」(1964)
「관주 성경전서 구역한글판」(1980)
(The Diglot Editions)
「英韓對照路加福音」(1922)
「日鮮文對照路加福音書」(1927)
「영한대조신약전서」(1947)
「마가복음한영대조」(1948)
「영한대조신약전서」(1955)
「新約全書 英語改譯標準版 改譯한글판 對照」(1961)
「신약성서 한일대조 새번역/일어」(1973,1986)
「영한대조신약성서 TEV/공동번역개정판」(1978)
「신약전서 새번역/러시아어」(1991)
「한화 신약전서 새번역/네덜란드어」(1992)
「한일대조 성경전서 개역한글판/新共同譯」(1992)
「신약전서와 시편 표준새번역/독어 루터역」(1993)
(The Revised Versions)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1956년판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은 1900년에 완역되어 나온 신약과
1911년에 완역되어 나온 구약을 다시 고친 번역이다. 1911년까지 구약 번역을 완료한 선교사들 중심의 번역 위원들은
바로 그 해에 그 때까지 활동하던 '번역위원회'를 해체하고 '개역위원회'로 이름을 바꾼다.
그들은 그 동안 서둘러 번역한 우리말 성서 「舊譯」을 서서히 고치고 다듬기 시작하여 1936년에는 「구약 개역」을
출판하였고, 1938년에는 「신약젼셔 개역」을 출판하였으며, 같은 해에 「셩경개역」을 내기에 이른다. 이것을 거듭
더 손질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표기를 고쳐 출판한 첫 판이 1952년에 나온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다.
"한글판"이라는 이름이 이 때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국한문(國漢文)"판과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옛 철자법 성서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따르는 새 철자법을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 후, 번역 내용과 표기법을 더 손질하여 내놓은 「개역」결정판이 나온 것은 1961년이다.
이것의 이름이 바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표제지 연도 1956)이고, 이것이 지금 우리 나라 개신교에 널리
유포되어 사용되고 있다. 「개역」과 구별하여, 1900년의 신약과 1911년의 구약을 합친 것을 편의상 「옛번역」,
혹은 「구역(舊譯)」이라고 일컫는다.
(The New Translations)
우리말을 모국어로 쓰는 우리 나라 성서학자들이 성서원어를 배워서, 원전에서 직접 우리말로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 나라 성서번역에 새 기원이 이루어진다. 천주교 쪽에는 선종완 신부의 구약 사역이 1959년부터
낱권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개신교 쪽에서는 복음동지회 성서번역 위원회가 「새로 옮긴 신약성서
마태의 복음서」(1961)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1967년에 우리 나라 학자들만으로 구성된 성서번역 위원들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새 번역을
출판하였다. 그것이 바로 「신약전서 새번역」(1967)이다. 새 번역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원천언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전문가와 수용언어(우리말) 전문가가 따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새번역 신약전서」는 외국 선교사들이 여러 번역판에서 간접적으로 번역했거나 고친 「개역」
성서와는 다르다. 이 「새번역」은 「개역」이나 「구역」에 익숙한 기독교인들보다는, 성서에 익숙하지
신약전서 새번역(1967) The Korean New Testament, New Translation(1967)
공동번역 신약(1971) The Common Translation(1971)
않은 사람들, 특히 당시 우리 나라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던 30세 이하의 청년들을 위한 전도용으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 원칙은 "풀어쓰기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의미에서 번역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의무였으나, 누구나 읽어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초판 머리말의 진술이 보여주듯이
기계적인 축자역과 자유스러운 풀이역 둘 다를 삼가는 태도를 취하였다.
새로운 번역의 시대에 특기할 만한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나라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해낸 것이다. 대한성서공회가 「공동번역 신약」을 내놓은 것은 1971년 부활절이었고, 구약 및 외경을 완역해 내놓은 것은 1977년
부활절이었다. 이 큰 계획 때문에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쪽에서는 선종완 신부의 구약번역을 도중에서 중단하였고,
개신교 쪽에서는 「신약전서 새번역」만 출판하고 「구 약전서 새번역」은 중단했다.
특히 영 미 계통의 기독교 세계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종래 사용해오던 1611년의 「제임스왕역」(KJV), 혹은
1901년의 「미국표준역」(ASV), 1946년의 「영어표준개역」(RSV) 등에 대한 개역이나 수정을 보류하고,
「새영어성서」(NEB),「영어복음성서」(GNB), 「새국제역」(NIV) 등과 같은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였듯이,
우리 나라 성서공회 역시 이들과 때를 같이하여 그 동안 필요성을 절감해온 새로운 번역에 착수하였다.
그것을 개신교만의 단독 사업으로서가 아닌 신 구교 공동 사업으로 추진하여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공동번역 성서」(1977)이다.
이 기간에 괄목할 만한 새로운 번역은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이다.
1993년 1월에 대한성서공회는 10여 년 동안 각 교단의 신학자 16명으로 구성된 번역진이 새롭게 번역한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의 첫 판을 발행하였다. 겉으로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역」과는 달리 현대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쉬운 말로 번역되었다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원문의 뜻을 잘 전달해 보려고한 노력도 돋보인다. 번역된 본문이지만
번역 어투를 없애고 아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의 뜻을 올바로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표준 새번역」의 또 특징은 「개역」이 '여호와'라고 하고, 「공동번역」이 '야훼'라고 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네 글자(YHWH)를 '주'(主)로 번역하였다고 하는 점이다. 구약의 마소라 본문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네 글자를 '주'(아도나이)라고 읽어 왔고, 기원전 3세기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이 이름을
'주'(퀴리오스)라고 번역한 이래, 신약의 사도들이 신약을 기록할
표준 새번역(1993)
The New Korean Standard Version(1993) 때도 그 이름을 '주'(퀴리오스)라고 적었고, 제롬의 라틴어역 「불가타」가
이 이름을 '주'(도미누스)라고 하였다. 또한 루터의 독일어역도 이 이름을 '주'(헤르)라고 하였고, 대다수의 영어 성서가
이 이름을 '주'(로드)라고 해왔으므로, 우리말 「개역」의 신약성서도 '주'라고 번역했다.
따라서 히브리어 본문의 전통과 세계 교회의 오랜 전통과 우리말 「개역」 신약성서의 전통을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네 글자(YHWH)를 '주'라고 번역하였다.
이 밖에도 새로운 번역으로서 서강대학교 신학 연구소의 「200주년 성서」는 우리 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년(1784-1984)을 기념하기 위한 번역이다. 번역이 끝나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리겠지만, 1977년부터 1992년까지
구약 소예언서 대부분과 시편, 그리고 신약이 모두 완역되었다. 현재까지 낱권으로 나온 200주년 성서
「호세아 미카」(1977), 「스파니아 나훔 하바꾹 오바디아 요나」(1977), 「요엘 아모스 하깨 말라기」(1979) 등은
단순히 새로운 번역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성서 번역 역사에서는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주해 성서'이기도
하다. 성서 각 권의 번역문 제시에 앞서 각 권의 역사적 배경, 문화적 구조 및 신학적 주제 등을 고찰하는 입문이 나오고,
번역된 본문 좌우 여백에는 전후 참조 표시가 나와 있고, 본문 하단에는 독자들의 본문 이해를 돕는 여러 가지 배경
설명이 있다. 신약 번역은 더 늦게 시작되어, 「마르코복음서」(1981), 「루가복음서」(1983), 「데살로니카전후서」(1981), 「디모테오전후서 디도서」(1981),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1984) 등이 낱권으로 나오다가,
1991년에 「신약성서」로 먼저 완역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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