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칠인의 용사 그리고...
세상살이의 연수가 더해 갈수록 사람을 살리고, 이롭고 유익하게 하는 일은 치열함과
공든 탑의 정성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해함과 망하게 하는 일은 순간적이고
쾌감이 동반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복마전 같은 세상살이를 누군가는 “독 속에 갇힌 게”처럼 넓은 세상인
독 밖으로 탈출하려는 이를 끌어당기는 게로 비유하였습니다.
죄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는 속성상 가시나무 같은 타인의 성장을 파괴하고
척박하게 하므로 쾌감을 누리려는 본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죽하면“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사촌이 차를 사면 교통경찰이 되고 싶다”라 전환하는 이들이 있다 할까요?
그런데 세상살이가 씁쓸한 면도 있지만 삶을 윤택하고 따뜻하게 만드려는
선한 이웃들이
우리 주위에는 상대적으로 많음을 간혹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구약성경의 역사서에 해당하는 사무엘상, 하를 읽어보면
악인이 창궐하는 것 같지만
의와 선함을 기치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더욱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23장 역시 언약 공동체인 다윗 왕가를 세워 나감에 있어서
한 축을 담당했던 용사(勇士)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총 37명 용사들의 명단을 소개하며 그들이 세웠던 전공들도 더불어 소개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냥 용사로만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23장의 말씀을 읽노라면 세상사나 영적 이치나 동일한 원리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유익함과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일은 특정한 인물들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조력자들의 헌신과 땀 그리고 피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다윗왕이 블레셋 군대와 르바임 골짜기에서 대치중 산성에 있던 다윗은 고향인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이 그리웠습니다.
아마도 무심코 속내를 드러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소리를 전해들은 세용사가
블레셋 수중에 있던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목숨을 걸고 길어오게 됩니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삼하23:16上)
이러한 세 용사의 용맹과 충정(忠情)을 대하는 다윗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6.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삼하23:16-17)
다윗왕의 반응과 세 용사, 나아가 37명의 용사들이 보여주는 충정들은, 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지역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려면 갖추어야 할 리더의 품성과
조력자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지난 주 초, 교회 승합차 타이어 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카톡 지인분들께 도움을 요청하자, 감사하게도 몇몇 분이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난 후에 타 지역에 사는 군인 가족 한분이 헌금을 보내 주셨기에,
군부대 교회 사역을 하는 민간인 사역자 세 가정과 약한 한 교회로
흘러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에 귀한 물질로 섬겨주시는 분들의 헌신과 사랑을
생각하면 참 먹먹해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삶의 자리에서 섬김으로 응답해가려고 몸부림치는
조력자분들의 사랑을 대하며 이분들이야말로 현대판 다윗의 용사들이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로마서 14;17-18)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