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법체계는 절묘했다. 수사권을 가진 수사기관은 여럿 있었다. 중대 사건을 수사하는 사헌부(司憲府)와 왕명 사건을 수사하는 의금부(義禁府)가 있었다. 서울시에 해당하는 한성부(漢城府)도 수사권이 있었고 서민 관련 사건은 포도청(捕盜廳) 관할이었다. 지금의 법무부인 형조(刑曹)도 수사권이 있었다. 수사권을 여러 기관에 준 것은 실체적 정의를 찾기 위해서였다.
사헌부에서 대충 수사하면 곧바로 사간원(司諫院)이 탄핵에 나서고 의금부나 형조가 재수사에 나서므로 이른바 ‘봐주기’가 있을 수 없었다. 반면 여러 수사기관의 수사 내용은 모두 사율원(司律院)에서 판결했다. 특이한 점은 수사기관엔 모두 대과(大科) 출신이 포진한 반면 사율원엔 잡과(雜科) 출신이 포진했다는 점이다. 사율원은 때로 율학(律學)이라고 불렸는데, 수사기관에서 문부(文簿·수사기록)를 보내오면 『경국대전(經國大典)』 『대명률(大明律)』 『율학해이(律學解?)』 『율해변의(律解辨疑)』 같은 법률서를 뒤져 형량을 조율(照律)했다.
조율이란 법률서와 대조해 해당 형벌을 찾는 것이다. 정확한 법조문인 정률(正律)이 없을 경우 가장 비슷한 법조항을 끌어다 안률(按律)했는데 이것이 비의(比依)다. 엘리트 사대부들이 수사한 내용을 중인 출신들에게 판결시킨 이유는 이른바 재량권을 막으려는 선조의 지혜였다. 엘리트 사대부들의 수사 내용을 중인 출신 율학인(律學人)이 마음대로 재량할 수 없었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 上)’에서 도응(桃應)은 맹자에게 “고요(皐陶)가 법관(士)으로 있는데 순(舜) 임금의 부친 고수( )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했겠는가”라고 묻는다. 맹자는 “법대로 집행할 따름이다”라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서경(書經)』 ‘우서(虞書)’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다시 범행하면 도적으로 다스린다’는 호종적형(?終賊刑)이란 말이 있다. 호는 믿는 구석이란 뜻이고 종은 재범이란 뜻이다. 믿는 구석이 있어 재범하면 사형시킨다는 뜻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것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전관예우 따위가 아직도 법원 관행에서 채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 ‘형법(刑法)’조에서, “법(法)과 이(利)는 서로 승제(乘除)가 된다”고 말했다. 법과 이는 상호모순 관계라서 이가 무거우면 법이 가볍게 되고, 이가 가벼우면 법이 무겁게 된다는 뜻이다. 판검사가 이를 중시하면 법은 갈 길을 잃는다. 사라졌는지, 원래 없었는지 알 수 없는 ‘부러진 화살’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