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봉산대원사
대원사의 역사와 전통을 잠시 살펴보면, 고구려 보장왕 때 도교를 받들고 불교를 박해하면서 많은 고승대덕들이 일본과 백제 땅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수도하던 열반종의 보덕화상이 박해를 피해 전주 고달산으로 절을 옮겨 와 가르침을 베풀었다. 덕화상의 제자 되는 일승(一乘), 심정(心正), 대원(大原)이 대원사에 머물며 열반종의 8대 가람으로 발전시켰다.
고려시대에는 조계산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국사가 55세 때 대원사를 크게 중창하여 정토신앙과 참선수행을 함께하는 선정쌍수(禪淨雙修)의 도량으로 발전하였다. 그때 선문염송을 대원사에서 판각하여 참선교재로 널리 사용했으나 여순사태의 화재로 많은 전각과 함께 불타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1759년(영조35) 현정선사의 발원을 통해 극락전, 지장전, 나한전, 천불전, 사천왕문, 봉서루, 토성각, 선원, 상원암, 불출암, 호적암 등이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의 비극인 여순사태와 6.25를 지나면서 대원사는 극락전과 석조물 몇 점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리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 뒤 지금의 현장스님이 불사를 이루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원사의 특징은 태아령천도와 백일기도, 연꽃축제와 자연학습장, 템플스테이, 아름다운 벚꽃길 등을 들 수 있다. 대원사 일주문 전에 있는 문의 양쪽 주련에는 '이 세상은 한송이 꽃', '모든 생명 나의 가족' 이라 씌어 있다. 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큰 꽃을 이루고 있는 꽃잎 한 송이 한 송이 이므로 외로움과 고통속의 이웃들을 한꽃으로 보살피고 가꾸어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 '너'와 '나'가 따로 없는 것이며, 이 세상이 한 송이 꽃임을 아는 것을 지혜라 하고 모든 생명을 한 가족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을 자비라 한단다.
또한 대원사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돌탑위에 동자승들이 앉아 있다. 이곳이 죄 없이 죽어간 태아령들의 천도 기도를 드리는 곳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극락전 오른쪽 옆 태안지장보살 아래 빨간모자를 쓴 동자승들은 TV에도 방영되어 유명하다. 그리고 대원사 경내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나무들이 있다. 이 나뭇가지들은 가지마다 하나씩 차분한 글씨 로 쓴 경구들이 걸려 있다. 현장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여 네 가지 주제로 이루어진 108편의 글들을 보노라면 인생과 세상을 살아가는 불교의 지혜를 알 수 있게 된다. 사람 키 보다 큰 염주, 계절 별로 피어나는 꽃 등 정말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사찰이 대원사이다.
* 관람포인트 :
1) 벚꽃 길과 연꽃, 그리고 구품연지를 감상하기.
2) 극락전 내부의 달마대사와 관음보살의 벽화 감상하기.
3) 대원사 자진원오국사의 부도 감상하기, 또한 곳곳에 있는 아기자기한 조각상들 감상하기.
4) 태안지장보살과 그 앞의 빨간모자를 쓴 동자승들을 보며 생명의 소중함 생각하기.
5) 곳곳의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아름다운 글귀 읽기. 또한 극락전 뒤편 대숲사이로 난 오솔길을 통해 성모각 다녀오기.
창건배경 및 역사
대원사는 고려후기 원종(1259~1274년)때에 조계제5세 원오국사(圓悟國師)에 의하여 중건되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부도가 극락전 좌측에 남아 있으므로 원오국사가 대원사에 주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오국사 천영은 1215년 남원군의 양씨가문에서 태어나 1230년에 복구에게서 중이 되고, 1236年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1246년에 삼중대사가 되었으며 1250년에 왕명으로 선원사 법주가 되고 1256년에 조계산의 제5세가 되어 1286년 그가 입적할 때까지 무려 30년 동안 송광사에서 종풍을 크게 떨쳤다. 원오국사가 송광사에 머문 13세기 후반에 이곳 대원사를 중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천봉산을 중봉산으로, 대원사를 죽원사로 개칭하였다고 하며 수도사찰로 성장케 하였다고 한다.
원오국사가 대원사를 중건한 후 어느 시기까지 계속 대원사가 그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동국여지승람』에 대원사는 중봉산에 있으며 원오국사의 부도와 황희영당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16세기에도 존속하였다. 이어서 17세기에는 「선문념송집(禪門拈頌集)」과「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등이 목각판으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간행된『범우고』에는‘대원사재중봉산금폐(大元寺在中鳳山今廢)’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원사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한때 어느 시기에 폐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다시 18세기 중엽에 중창을 맞이한다.
1731년 봉갑사의 전임주지인 탁오선사(卓悟禪師)가 대법당, 성재암, 문수전 등의 건물을 짓고 미타삼성상(彌陀三聖像)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후 1767년에 대법당과 시왕전을 비롯하여 요사체 등이 중창되고 단청을 하였다. 한편 대원사의 사명은『신증동국여지승람』과『범우고』에는 大元寺로 표기 되었고 17세기 목각판과 18세기 후반기 사서부터 大原寺로 표기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大元寺로 표기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대원사는 6ㆍ25전까지만 하여도 극락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내원, 상원암, 호적암, 남암 등이 있어 대가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거의 모두가 불타버리고 현재는 극락전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1990년부터 중창사업이 전개되면서 선원, 요사채, 일주문, 묘길선전, 주지실, 화장실 등의 건물이 대원사 경내로 새롭게 들어서 있다.
자진원오국사 천영
속성은 양(梁), 호는 충경(冲鏡), 시호 자진원오(慈眞圓悟), 탑호 정조(靜照). 1230년(고종 17) 복구(復丘) 밑에서 승려가 되고 1236년 승과(僧科)에 급제했으며, 몽여(夢如)·진명(眞明) 등에게 참학(參學), 1246년 삼중대사(三重大師), 1248년 선사(禪師)가 되어 단속사(斷俗寺)의 주지로 있었다. 1250년 왕명으로 선원사(禪源社)의 법주(法主)가 되고, 1256년 조계종(曹溪宗)의 종사(宗師)로서 대선사(大禪師)에 올랐다. 국사(國師)에 추증되었다.
아도화상
아도(阿道, ? ~ ?)
원오자진국사 부도
대원사 극락전 옆 평평한 대지위에 조성되어 있는 부도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편평석 11매로 방형의 구획을 하고 그 안에 이중의 방형 지대석위에 팔각원당형부도를 세웠다. 지태석 하단은 4매의 장방형 석재로 결구하고 상단은 1매의 판석을 놓았다. 기단의 하대는 측면과 상면을 구분하였는데 측면은 8각으로 한 변에 장방형의 안상 2개씩을 조각하고 상면은 크고 작은 16판의 복련을 조식하였다.
탑신은 세장한 8각형으로 전면에「慈眞圓悟國師浮照之塔」이란 명문이 음각되어 있고, 후면에 3자의 범자가 양각되어 있다. 각 면의 모서리에는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명문있는 면을 제외한 6면에는 신장상들이 양각되었다.
옥개석은 낙수면이 기왓골로 처리되었고 이중 부연이며 전각에는 귀꽃등의 장식이 없다. 상륜은 조식없는 원형석 3개를 올려놓아 소박한 편이다. 이 부도의 주인공인 자진원오국사는 송광사 제5세 국사로서 1286년(충렬왕 12) 72세로 입적한다. 그러므로 조성연대는 그가 입적한 후인 고려시대 말경으로 추정된다.
가람배치
절 입구에는 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 그리고 애련정과 연못의 연꽃 등이 보인다. 절에 들어선 이들을 제일 먼저 맞는 것은 군데군데 서있는 돌무지이다. 돌무지 봉우리에는 동자지장이 앉아있다.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건넌다. 문 양쪽 주련에는 '이 세상은 한송이 꽃', '모든 생명 나의 가족' 이라 씌어 있다.
일주문을 넘으면 조그만 돌다리를 만난다. 곳곳에 피어있는 연꽃들을 감상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최근에 지은 화장실을 볼 수 있고, 좀 더 가면 요사채를 만난다. 요사채 맞은 편 쪽으로 부모공덕불과 귀자모신이 있다. 부모공덕불을 지나면 연지문(蓮池門) 아래 닿는다. 연못가 나뭇가지에는 걸리버국의 염주처럼 보통의 염주보다 몇 배는 큰 염주들이 걸려있고 또 그렇게 큰 목탁이 걸려 있다. 돌방석에 넉넉하게 앉아있는 포대화상도 만날 수 있다. 포대화상은 중국 명나라때 스님이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포대에서 꺼내주었다 해서 후세 사람들이 미륵불의 화현으로 받들었다. 극락전이 둥그렇게 보이는 연지문을 지나면 징검돌을 건너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발(佛足)이 보인다. 연지문을 지나면 정면에 극락전이 보이고 향좌측으로 요사채가 있다. 향우측으로는 넓은 경내를 가로질러 천봉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옛모습을 간직한 극락전 안에는 달마도와 수월관음도가 남아있다.
극락전 왼쪽 옆에는 이 절을 중창한 자진원오국사 부도가 있다. 8각원당형 탑신에는 '자진원오국사지탑'이란 명문이 있으며 각 면에 보살과 사천왕 등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그 뒤로 아도 영각이 있고, 아도 영각과 극락전 뒤편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다. 자진원오국사의 향좌측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반가사유상이 있고, 반가사유상을 지나쳐 산길을 5분정도 오르면 성모각을 만나게 된다. 성모각은 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는데, 성모각을 지나 내려가면 수관정에 다다르게 된다. 수관정 주변으로는 연못과 정자가 있고, 여기를 지나 대숲을 내려가면 황희영각과, 마애삼존불, 김지장각을 만날 수 있다. 김지장각을 지나쳐 옥불전과 묘길상전을 보고 계속 아랫길로 내려오면 천봉선원에 다다른다. 천봉선원에서 아래로 내려와 담장 옆으로 들어서면 극락전이 보인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경내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되어 있다.
극락전 오른쪽 옆으로는 태안지장보살이 서있다. 천봉산 자락의 대원사는 지세로 보아 여성의 자궁에 해당된다 하는데 바로 그 중심에 지장보살상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저승의 어머니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보살이 머리에 보관이나 화관을 쓰고 있는 것과 달리 지장보살은 그저 스님같은 민머리이다. 태안지장보살은 그중에서도 태아의 영혼을 고통과 원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비의 어머니이다. 태아령이란 부모와의 인연은 맺어졌지만 이 세상의 햇볕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영혼을 말한다.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은 낙태아 등 어린 영혼들을 천도하고 부모의 죄업을 씻고자 지난 93년부터 태안지장보살상을 봉안하고 태아령 천도 백일기도를 1년에 2차례씩 봉행하고 있다
창건설화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天鳳山)은 해발 609m 로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원사는 503년(백제 무녕왕 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하룻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말하였다.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아도!”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개 짓 하는 것을 보았다.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메다가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고 기뻐 춤추며 산 이름을 천봉산이라 부르고 대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성보문화재
달마벽화와 마주한 벽에 그려진 것은 해변가 바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고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 반가좌에 측면관을 취한 관음의 곁에 목유를 꽃은 수병을 배치하고 뒤에는 묘사하여 전통적인 수월관음의 도상을 따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흔히 화면하단 구석에 작게 묘사되는 선재동자가 여기서는 관음의 뒤쪽에서 비교적 뚜렷이 그려졌고, 보통 관음의 두광밖의 위쪽에서 날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던 청조(靑鳥)를 선재동자가 두 손으로 잡게 한 점도 특이하다. 관음보살의 이목구비나 보관의 모습 등에서는 고창 선운사(高敞 禪雲寺) 아미타후불벽화의 관음과 강한 친연성을 엿보인다. 천의는 역시 백의로 표현되었는데 팔을 감아 내려간 둔중한 흐름과 가슴의 양쪽에 묶여 내린 진홍의 띠매듭은 수면위에서 매우 유치하고 기이한 형상을 구불거리고 있다. 그것을 따르는 몇 가닥의 평행 의습선은 극도로 도식화된 모습이며 반원형을 반복해 그은 여러 줄의 물결 또한 그러하다. 상체에 비해 반가한 하체는 매우 작아서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수월관음벽화는 두부(頭部)의 묘사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격을 갖추고 있으나 신체의 불균형, 지나치게 형식화된 묘법(描法), 유치한 색채 등에서 기법과 격이 떨어진 작품으로 보여 19세기를 넘어선 때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극락전 내에 전해지는 현판의 내용을 보면 1833년(도광12)에 극락전을 중수한 내용이 보여 아마 이쯤에 이 달마와 수월관음벽화가 그려졌다고 추정되며 벽화의 양식으로 보아도 그 이전으로 올려보기는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대원사(大源寺): 극락전 달마도(極樂殿 達磨圖)
극락전 불단(極樂殿 佛壇)
극락전 신중탱(極樂殿 神衆幀)
극락전의 향좌측에 모셔진 것으로, 붉은바탕에 금니(金泥)로 선묘(線描)하여 얼굴만 밝게 채색한 신중탱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이라 한다.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신중탱은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극락전 앞 불족(極樂殿 前 佛足)
극락전 지장보살상
극락전칠성탱
대원사극락전
정면 3칸, 측면 3칸에 다포계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본 사찰의 주불전이다. 극락전은 6단의 계단을 중앙에 둔 다소 높은 축대형식의 기단위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 위에 배흘림이 약한 두리기둥(圓柱)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두꺼운 창방을 걸치고 평방을 그 위에 다시 얹은 다음 주간에 2구씩의 공간포를 두었다. 외진(外陣)의 낮은 평주위에 얹어진 평방은 단일부재로 전면의 3간 전체를 지탱하고 있어 참으로 희귀한 예이다. 이 평방 위에는 주두를 얹고 다시 외4출목, 내4출목의 다포식 공포를 놓았다. 공포를 이루는 소로와 첨차가 다소 커 강직한 느낌을 준다. 특히 첨차는 교두형으로 공안이 없고 살미첨차의 외부는 경사 급한 3기의 앙설(仰舌)위에 수설(垂舌) 1기가 놓여있다.
대원사 김지장전
대원사귀자모신
부처님 당시“하리티”라는 야차귀신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의 아기를 유괴해서 잡아먹으므로 사람들이 부처님께 와서 호소하였다. 부처님은“하리티”의 500명 자식 중 막내인“빈가라”를 신통력으로 발우 속에 감추었다. 7일 동안 미친듯 제자식을 찾아 헤매던 야차귀신이 부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였다.“너는 500명의 자식을 두고도 마음이 아픈데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생각해 봤느나?”하면서 사람의 아기를 잡아먹고 사는 야차귀신을 깨우쳐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불제자가 되게 하였다. 그후“하리티”는 어린 유아들을 보호하고 산모들의 출산을 돕는 사랑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유아양육과 해산의 신“귀자모신”을 참배하면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미와 양초, 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대원사 극락전의 향좌측에 있는 보살좌상으로 보관은 화려하며 중앙에 정병이 있다. 얼굴은 장방형에 가까우며 세부양식은 주불과 거의 흡사하다. 법의의 표현 역시 같은 양식이며, 수인은 합장을 하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
대원사 극락전의 향우측에 있는 보살좌상으로 보관은 화려하며 중앙에 화불이 있다. 얼굴은 장방형에 가까우며 세부양식은 주불과 거의 흡사하다.
목조아미타불좌상(三聖閣)
대원사 극락전의 주불로 봉안된 목조불상이다. 장방형에 가까운 상호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고 나발의 정상부에는 조그마한 육계가 올려져 있으며 이마와 가깝게 작은 계주가 있다. 이마는 넓은 편이며 양미간 사이에 조그마한 백호가 있다. 눈은 반개하여 아주 가늘게 거의 일직선으로 표현하였고 코는 두툼하게 만들었으나 콧볼이 약해 어색하다. 인중이 표현되어 있고 입은 작으며 굳게 다물고 있다. 양볼은 밑으로 처져 있으며 턱밑에 1조선의 음각선을 희미하게 넣어 턱의 양감을 돋보이게 하였다. 귀는 두텁고 긴 편이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대원사 부모공덕불
"집안에 부처님이 계시니 바로 부모님입니다"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에 이 부모공덕불을 만든 의미가 깃들어있다.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부모님이라는 것. 나무한테 뿌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듯 사람의 뿌리를 부모님과 조상으로 보는 것이다.
대원사성모각
수관정
극락전 뒤의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숲속에 연못이 있고, 그 위쪽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수관정이 있다. 죽음을 관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내에는 죽음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관이 놓여있고, 입관하는 절차가 벽에 붙어 있어 체험해 볼 수 있다. 수관정 주위로는 짙은 녹음이 펼쳐지고, 정자와 연못이 있어 아름답다.
수미광명탑
큰 염주와 목탁
태안 지장보살상
낙태된 어린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1993년 6월에 조성된 석조지장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이 조성되어 있는 위치는 조선 중기때 있었던 지장전(地藏殿)의 자리였다고 한다. 또한, 이 자리는 주위 산세로 보아 여성의 자궁에 해당하며 그 중심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은 깍은 머리에 스님 모습으로 한 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을 잡고 한 팔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 서 있다. 앞에는 동자상의 지장보살상이 108분을 모시고 있어 야외 지장전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벳박물관
대원사 입구의 티벳박물관에는 티벳불교의 예술세계와 정신문화를 느낄 수 있는 1000여점의 티벳미술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습니다.
대원사 범종은 종장을 불러 종틀을 만들고 쇳물을 녹여 대원사에서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4년 당시 대원사 주지가 고물상 주인에게 2만원의 빛을 갚지못하자 쇠톱으로 36토막을 내어 고물로 가져갔다 그동안 깨어진 조각들은 송광사 사자루 지하에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포대화상상
포대화상은 중국 명나라때 스님이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포대에서 꺼내주었다 해서 후세 사람들이 미륵불의 화현으로 받들었다. "나에게 한자루의 포대가 있는데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가 함께 하네"
황희정승 영각
황희선생은 조선 세종 때 의정부 영의정을 역임하고 청사에 빛나는 위업과 송공이 지대해 역사적 인물로 추앙받는 분이다. 대원사와 선생의 인연은 1419년 남원에서 유배되어 근신하시며 경서와 시운을 탐구하던 중 보성 대원사를 참배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황희정승의 넷째 아들인 직신공이 보성땅에 내려와 살면서 황희정승의 영당을 대원사에 건립하게 되었다. 유교를 받들고 불교가 배척받던 조선시대에 사찰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경내에 황희영각을 건립하고 진영을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에 여순사건으로 대원사가 불타면서 영각마저 소실되자 전라남도의 후원과 황씨 광주 보성 종친회의 협조로 2002년 황희영각을 건립하고 선생의 영정을 모사하여 다시 봉안하였다.
제1장 떠도는 어린 넋들을 위하여
현재의 우리나라는 물질위주의 전도된 가치관과 인명 경시풍조 속에 부끄러운 세계 제일을, 그것
도 여러가지를 자랑하고 있다.
첫째는 교통사고 사망율이 세계 제일이다.
둘째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율이 세계 제일이며,
셋째는 임신중절로 인한 태아 사망율이 세계 제일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40대 남성 사망율과 간암 사망율이 세계 제일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친자 살
인에 해당되는 임신중절이 1년에 1백 6십만명을 넘어선다고 하니 참으로 몸서리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땅의 산하는 온통 눈감지 못한 한맺힌 어린 영혼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차 있다. 구만리
장천을 중음신으로 떠도는 어리고 어린 영혼들의 슬픈 몸부림으로 가득차 있다.
2. 구원과 해탈의 가르침
이 시대가 안락하고 살아있는 백성들이 태평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정치와 경제보다
중요시 되어야 할 생명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저 무한한 허공계를 외경하고 중음신으로 떠도는 넋
들을 달래주는 일이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젖을 먹이고 보살펴 주듯이, 한 생명이 이 세상을 하직하면 내생의
몸을 받기까지 어두움에서 헤매이지 않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여기 이 세상과 인연은 맺어졌지
만 이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 어린 영혼들을 해탈로 인도하는 가르침이
있다. 여기 자식을 죽인 죄업에 몸부림치는 부모의 고통을 해탈로 전환시키는 자비의 가르침이 있
다. 낙태의 죄악과 구원을 설한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이 그것이
다.
경전은 말씀하신다.
“사람들에게 병이 많고 단명(短命)한 이유와 그런 사람이 병을 없애고 제명대로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고 문수보살이 말세 중생을 대신해서 부처님께 여쭙는다.
부처님은 말씀하시길 “사람에게 병이 많고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까닭은 유산(流産)이 그 근본 원
인이니라.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업 가운데 아무리 뉘우쳐도 씻기 어려운 다섯가지가 있으니
첫째 아버지를 죽인 죄,
둘째 어머니를 죽인 죄,
셋째 태아를 죽인 죄,
넷째 부처 몸에 피를 낸 죄,
다섯째 대중의 화합을깨뜨린 죄이니라.”
경전은 다시 “태아를 죽인 큰 죄를 지었더라도 부처님과 불법을 통해 지성으로 참회하고 태아의
영혼을 위해 지성으로 천도 공양하면 죄업이 소멸되고 이고득락(離苦得樂)한다.”고 하였다.
지난 해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천주교 공원묘지내에 ‘낙태아를 위한
무덤’을 만들고 있으나 이 무덤은 허묘의 역할 뿐이다.그러나 그것은 160만명으로 추산되는 낙태
수술과 관련, 낙태한 부모가 태아에게 범한 돌이킬 수 없는 범죄행위를 속죄할 수 있는 기도장소로
제공하기 위함이다.
일본의 경우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마치면 태아의 시체를 작은 용기에 담아 태아의 시신만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용역회사에 넘겨준다. 용역회사에서는 정중하게 화장한 후 그 유해를 지정 사
원에 봉안하여 태아령(胎兒靈)의 천도불공을 봉행한다.
일본전역에 중절아의 영혼천도를 봉행하는 절이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점차 태아의 시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쪽으로 병원측
과 종교계에서 더욱 마음 써야 할 것이다.
3. 태안지장의 슬픈 설화
죄악을 죄악으로 알지 못하고 날로 혼란이 깊어가는 이 시대의 업보를 조금이나마 정화하고자 염
불선도량 대원사에서는 지난 93년 6월 4일 높이 9척의 태안지장보살(胎安地藏菩薩)을 봉안하고 태
아령(胎兒靈)의 천도를 위한 백일지장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양수에서 성장하는 태아의 영을 태아령이라고 부르며 태아령의 천도를 위한 지장보살님을 태안지
장이라고 부른다. 오른손에는 아미타불을 모신 석장을 짚고 왼손으로는 동자를 안고 있는 태안지
장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불교설화에서 유래한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삼도(三途)의 강(江)이 흐른다. 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자식의 인연이 두텁
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탑을 쌓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삼도의 강을 건너려 고사리 손을 모아 돌 하나를 들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합
장하고, 다시 하나의 돌을 들어 아버지를 생각하며 탑을 쌓는다.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갈때
쯤이면 저승의 도깨비들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쇠방망이로 탑을 부숴버린다. 애써 쌓아올린 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서럽게 울다 지쳐서 잠이 들어 버린다.
그 때 지장보살님이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서 옷자락으로 어린 영혼을 감싸안으면서, 오늘부터는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라.” 하면서 삼도의 강을 건네준다고 한다.
가슴을 에이고 뼈를 깍는 듯한 슬픈 이야기이다.
저승의 어머니 지장보살을 의탁하여 부모의 죄업을 씻고 어린영혼을 천도하는 의례는 이로부터 시
작된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스러져간 어린 넋들의 천도를 발원하고 우리들의 죄업을 참회하기 위해서는 간
곡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저 대지가 모든 오물과 쓰레기를 모두 용해시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듯 지장보살은 어떠한 죄
인이라도 모두 받아들여 용서하고 새로운 생명을 꽃피워 주기 때문이다.
4. 태아령 천도공양법
우리의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정신기운이 형성되는 49일 동안 삿된 기운이 범치 못하도록 출
입을 통제하는 금줄을 쳤다.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염려하여 7·7일 동안 포수는 사냥을 하지
않고 근신하였으며 집안에서도 살생을 삼가하고 남을 속이거나 악담을 삼가하였다.
이승의 삶을 마치고 영혼의 여행길에 나선 영가에게도 49일 간의 정성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여
행할 때에도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 헤매이지 않듯이 7·7일 동안 영가를 위한 기도는 저승길을 밝혀
주는 한줄기 빛이다.
5. 참회와 발원
① 태아령을 천도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목욕재계하고 정성스런 공양물을 준비해 지장보살 전에 올린다.
② 지장보살 전에 몸과 마음을 기울여 108배의 큰 절을 올린다.
③ 절 한번 할 때마다 지장보살 멸정업진언 ‘옴 바라 마니 다니 사바하’를 일곱번씩 염송한다.
④ 예배가 끝나면 고요히 앉아 지장보살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며 지장보살 명호를 천 번 이상 부른다.
⑤ 마지막으로 지장보살 십선계를 낭송하여 이기적 삶의 태도를 반성하고 대승보살의 삶을 발원한다.
6. 사경(寫經)과 사불(寫佛)
태아령의 천도를 위한 기도는‘반야심경’ 사경과 ‘지장보살’ 사불을 권한다.(태아령 천도에 대한 더
욱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분은 간경도감 발행,>>석묘각 스님 지음 ‘아가야 용서해 다오’를 구
입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절실한 참회의 마음과 진실한 천도의 마음을 내어 사경과 사불의 기도를 49일 동안 행하는 것이 가
장 이상적이다.
사경신앙의 근본은 1자 1불(一字一佛)의 신앙이다.경전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로 한 부처님이라
는 가장 공경스러운 믿음으로 한 점 한 획에 불상을 조성하는 정성으로 서사하여야 한다.한편의 사
경과 사불이 끝나면 경문 옆에 ‘태아령 왕생정토발원’이라 쓰고 사경일자와 본인의 이름을 쓴다.
오늘날 우리는 뒤집혀진 가치관 아래 온갖 죄악과 삿된 소견이 가득찬 오탁악세의 시대에 살고 있
다.지장보살은 바로 죄업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죄업중생들의 자애로운 어머니로 존재하신다.
아, 애욕과 죄악에는 빠지기 쉽고 공덕과 해탈은 이루기 어려운 덧없는 인간의 삶.
아, 지장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인간의 한평생이란 당신의 이름만을 부르기에도 너무나 짧은 것
을……지극한 마음으로 ‘반야심경’ 한편을 사경할 때 지옥의 고통이 멈추고, 지극한 정성으로 지장
보살님 한 분 그릴 때 지옥중생 한 명이 해탈하게 된다.
제2장 태아령(胎兒靈) 천도에 대하여
1. 오탁악세와 인간의 삶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번뇌와 불안 또한 커져가고 있다.지구상에는 가뭄과 홍수, 천재지변과 대형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재산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가 하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도 자주 생겨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온갖 테러가 발생하여 원한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 살상하고 많은 사람들은 원인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이러한 말세적인 현상을 불법(佛法)에서는 오탁악세(五濁惡世)로 표현한다. 말세가 되면 다섯가지가 오염되어 범죄와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겁탁(劫濁 : kalpa - kasaya)이니 시대와 환경이 오염되어 천재지변과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하고 전쟁과 질병, 흉년으로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이 많아진다.
둘째는 견탁(見濁 : drsti - kasaya)이니 사람들이 진리의 삶에서 멀어지고 이해관계에 얽매어 온갖 삿된 소견이 난무하게 된다.
셋째는 번뇌탁(煩惱濁 : klesa - kasaya)이니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몰라도 될 소식과 부정적인 뉴스의 범람으로 인간의 생각 자체가 거칠어져 갖가지 탐욕과 원한의 감정이 커져간다.
넷째는 중생탁(衆生濁 : sattva - kasaya)이니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과 편리한 환경에 익숙해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인내심이 적어지고 경박해져 인간의 근기와 자질이 저하된다.
다섯째는 명탁(命濁 : ayus - kasaya)이니 인간의 삶 자체가 불안하여 항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현대문명의 병폐를 오탁악세라는 한 마디에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간의 인정과 친절은 점점 메말라 가고 사회혼란은커져간다. 사회학자들은 이 시대의 문제를 여러가지 원인을 들어 설명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두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원망과 분노의 파장을 이 세상에 방사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말하였다.
“지구의 자원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부족함이 없지만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간은 삶을 통하여 분수를 지켜 절제된 생활을 해야 되고 인연 영가(靈駕)들을 천도해탈시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닦아야 한다.
대원사에서는 주말수련회를 베풀어 출가수도생활을 체험하여 다스려진 마음의 행복을 맛보게 하고 백일기도를 통하여 태아령(胎兒靈)의 천도재를 봉행하고 있다.태아령이란 낙태유산아의 영혼을 지칭하는 말이다.
2. 어린 영혼들의 울부짖음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태어나는 어린이가 65만명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햇빛도 보지 못하고 가장 안전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생명이 160만이 된다.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는 중절수술까지 생각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대형사고 뒤에는 죽은 가족과 자식의 보상을 받기 위한 협상이 이뤄진다. 그러나 뱃속에 든 자식은 병원에 돈을 바쳐가면서 지워(죽여)달라고 부모가 부탁을 한다. 안 죽을려고 발버둥치는 아기의 절규를 외면한 채 날카로운 수술기구에 의해 찢기고 잘리운 채 쓰레기 처럼 내던져지는 아기들의 영혼은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구천(九天)을 떠돌게 된다.
우리 주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은 90%이상이 낙태아의 영혼과 관계된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어린 영혼의 피맺힌 울부짖음이다.또한 낙태아의 영혼은 해가 지날수록 그 힘이 커지면서 불임을 조장하고 기형아, 정박아를 낳게하며 부부간의 불화를 조성하고 교통사고나 회사를 도산시키기도 한다.
낙태아의 영혼과 관련된 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 중 몇가지만 소개한다.
서울의 고3 조모양이 유서도 없이 자살하였다. 대학입시의 강박관념 때문에 자살했으리라 여겼던 가족들은 죽은 딸의 일기에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자살하기 2주 전부터 써놓은 일기에는 매일밤 꿈에 한쪽 팔이 잘리고 머리가 부숴진 갓난 아기가 “언니”하고 부르며 조양의 목을 누르기도 하고 다리를 잡아 당기기도 한다고 쓰여 있었다.
때론 그 아기에게 쫓겨 물에 빠져 피 같은 것을 마시기도 하고 자기 목을 누르며 즐거워 하는 아기 때문에 잠자는 것이 무섭고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이것은 낙태아의 영혼이 딸에게 나타난 경우이다.
대원사의 태아령 천도기도에 동참한 광주의 한 보살님은 기도 접수한 날 밤에 꿈을 꾸었다.
대원사 극락전에 와서 기도를 모시는데 법당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보니 꾀죄죄한 아이들이 수 없이 몰려 들어서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때 묻은 손으로 불전에 올려진 과일과 떡을 가리키고 자기들 입을 가리키며 먹을걸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위패만 올리고 제물을 차려 주지 못한 것을 깨닫고 몇 사람이 떡과 우유, 과일 등을 준비해 와 관욕[영가목욕]부터 시작하여 천도재를 정성스럽게 베풀어 주었다.
이튿날 새벽예불을 모시는데 깨끗하고 말쑥해진 아기들이 한줄로 서서 법당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기도중에 보였다. 그 신도가 애들을 보며 “웬 애들이 들어오지.”하고 말하니 애들이 돌아 보며 손가락질 하면서 “우리 보고 애들이래, 자기들도 애들이면서……”하고는 영단 위패로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부산의 한 보살님은 6번 중절수술을 하고 난 뒤 늘 기운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대원사에서 태아령 천도기도가 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전화로 기도접수를 하였다.
그날 밤 꿈속에 아기를 낳아 품에 안았는데 아기의 눈이 아닌 어른의 눈이 자기를 원망의 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젖을 꺼내어 먹으라고 했더니 갓난아기가 입을 열어 또렷한 발음으로 “업장이 많은 여자의 젖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식은 땀이 흐르고 계속 그 원망스런 눈빛이 자기를 지켜보는 것 같아 절에 와서 3일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자는데 꿈속에 본 아기가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 손을 덥석 잡으며 “여기 있었구나. 어서 집으로 가자.”하고 말하니 아기가 엄마손을 뿌리치며 “나는 법당에 가서 스님 법문 들어야 돼요.”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법당으로 향하더란다. 그리고는 몸이 놀랍게 가벼워졌다고 지장보살 전에 눈물의 기도를 하고 돌아갔다.
3. 태아령의 일곱가지 현상
집안에 인공유산된 영혼이 있을 경우 유산된 영혼의 영향으로 형제 중 누군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중 일곱가지 공통현상을 여기에 소개한다.
첫째, 소중한 시기에 무기력해진다. 한창 공부할 시기의 자녀가 등교거부를 한다거나 죽고 싶어하는 현상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날려고 할 때 갑자기 살해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낙태당한 영혼의 슬픈 모습이다.
둘째, 어두운 곳을 좋아하게 된다. 그것은 낙태된 영혼이 어두운 곳에 방황하고 있는 슬픈 모습이다.
셋째, 어린이나 유아가 좋아하는 과자와 우유를 마구 먹으려 한다.
그것은 저 세상에서 배고파하는 낙태된 영혼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넷째, 손과 발이 차가워 진다. 그것은 알몸으로 버려진 낙태된 영혼의 비참한 모습이다.
다섯째, 부모에게 대들고 반항하게 된다. 그것은 자기를 죽인 것에 대한 반항으로 부모를 미워하거나 부모를 죽이고 싶은 낙태된 영혼의 분노한 모습이다.
여섯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부모형제들과 함께 있어도 자신은 고독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부모로 부터 버림받고 세상으로 부터 외면당한 낙태된 영혼의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일곱째, 돈을 마구 써 버린다. 그것은 자기가 성장할 때까지 필요한 금액을 물 쓰듯이 써버리고 싶어하는 낙태된 영혼의 당돌한 모습이다.
필자가 태아령 천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첫번째는 10년 전 서울 ‘마리아수녀회’에서 보급하는 ‘침묵의 절규’라는 비디오를 보고나서이다.비디오의 내용은 병원에서 인공유산 시키는 장면을 초음파영상으로 촬영한 것이었다.
3개월된 태아가 양수에서 놀고 있다가 날카로운 수술기구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 자궁벽으로 피해 달아난다. 달아나는 태아의 머리를 겸자로 잡아 부숴버리는 화면을 보는 순간 나는 졸도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 전생에 나도 그와 같은 죽음을 당했을 것 같다. 그 이후 ‘너희들의 불쌍한 영혼은 내가 구해주마’하는 씨앗이 마음속에 싹튼 것 같다.
두번째는 7년 전 일본불교를 견학하면서 경내에 빨간 턱수건을 하고 있는 특이한 동자상들을 보았다. 그것이 낙태유산아의 영혼을 천도시키기 위한 태안지장(胎安地藏)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번째는 4년 전 대원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태안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장수멸죄경(長壽滅罪經)을 발행하면서이다.장수멸죄경에는 낙태의 죄업과 그 죄업으로부터 벗어나는 부처님의 설법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와 지장보살의 원력에 의지하여 씻을 수 없는 부모의 죄업을 참회하고 태아영가의 해탈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장보살”을 염불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죄업중생의 어머니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이시여 한 방울의 눈물로써 모진 죄업 씻어주고 한 방울의 눈물속에 아픈 상처 스러지네.
지장보살 멸정업진언
옴 바라 마리다니 사바하
제3장 천도예문(薦度禮文)
(1)정토다라니
*나무 아미 다바야 다타가다야 다디야타 아미리 도바비 아미리다 싯담바비 아미리다 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가란다 가미니 가가나 깃다가례 사바하』
(위 진언은 마음속의 나쁜 번뇌와 전생의 죄업을 없애주는 아미타불의 가피력이 깃든 진언입니다. 자신의 어두운 업을 맑히고 인연영가들의 해탈을 원하면 정토다라니를 10만번 독송 하십시오.)진언의 공덕
① 전생의 원한 맺힌 영혼이나 태아영혼들을 죽음의 길에서 정토세계로 이끌어 준다.
② 금생의 죄업과 전생의 업장을 가볍게 해 준다.
③ 원수를 다시 만들지 않고 현세의 안락한 삶을 얻게 된다.
④ 임종시에 정념을 잃지 않고 염불왕생을 성취하게 된다.
⑤ 아미타 부처님께서 염불행자의 이마 위에 머물면서 모든 삿된 기운을 막아준다.
⑥ 정토다라니를 마음속에 간직하면 깨끗하고 착하고, 아름답고 성스러운 부처님의 마음자리가 깨어나게 된다.
(2)정토다라니 수행법
① 마음속에 간직하기
쓸데없는 걱정과 잡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염불이나 진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심장에는 투명한 수정으로 이루어진 염주가 있어서 진언을 오래하면 심장속에 잠든 염주가 자동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성염불이 될때까지 정성스럽게 꾸준히 염불진언에 힘쓰면 신통과 예지에 빛나는 마음의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
②숨결을 이용하기
좌선의 자세로 앉은 다음 큰 숨을 세번 내쉰다. 내 쉬는 숨길에 맞추어 정토다라니를 한숨에 염한다. 숨을 다시 들이마신 후 반복한다.
③ 보름달을 이용하기
둥글고 밖은 보름달을 생각하고 보름달 가운데 아미타불의 종자 “슈릿” 범자(梵字) 쭛를 생각한다. 자신의 몸이 빛으로 분해되어 슈릿 범자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보름달 주변을 정토다라니가 눈부신 빛을 내면서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음을 느끼면서 진언을 염송한다.
④ 내 몸이 빛으로 변하는 것을 명상하기
나의 이마 숨골 위에 연꽃줄기가 솟아나(30㎝) 그 위에 붉은 연꽃이 피어 나는 것을 생각한다. 연꽃 위에 금빛나는 아미타부처님이 미소짓고 온누리에 자비의 빛을 비추는 것을 생각한다.
나의 척추에 빛의 기둥이 생겨 연꽃줄기를 타고 올라가 부처님과 하나가 됨을 생각한다. 나의 몸이 원소로 분해되어 진언의 글자로 바뀌어 부처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⑤ 108배절과 함께 하기
먼저 불전을 향해 합장하고 큰 숨을 세번 내쉰다. 세번 내 쉬는 숨은 내 안에 깃든 욕심과 질투와 번뇌를 모두 내 보낸다고 생각해야 한다.
큰절을 올리면서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고 숨을 멈춘다. 숨을 멈춘 상태에서 정토다라니를 한번 염송한다. 가장 느린 동작으로 예배할 때 큰 가피와 공덕을 얻을 수 있다.정토다라니 예배 염송법을 통하여 깨끗하고 착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자신의 마음 자리가 깨어나게 됨을 느낀다.
예배를 마치면 다음의 기도문을 읽는다.아미타불 뛰어난 공덕 중생중생 인연 있으라 나 죽어서 이몸 떠날 때 빛살되어 정토에 나리
나·무·아·미·타·불
제4장 대원사 조석기도문
1.삼보의 빛속으로 가리 - 우리말 예불문 -
깨끗한 삶, 고요한 삶, 지혜의 삶, 자비의 삶
삶의 향기 연꽃으로 온누리에 피어나니
세상에서 가장귀한 삼보님께 올립니다.
‘옴 바아라 도비야 훔’ (3번)
지심귀명례 진리의길 밝혀주신 우리스승 석가모니불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금빛바다 항상계신 자비부처님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금빛바다 항상계신 지혜가르침
지심귀명례 지혜의빛 문수보살 행원의길 보현보살 자비의끝 관음보살 지옥중생 건져주는 지장보살 마하살
지심귀명례 영산회상 님을뵙고 깨달으신 십대제자 십육성자 오백성자 번뇌다한 아라한들
지심귀명례 불법진리 깨달아서 등불등불 이어오신 밤하늘의 별빛같은 한량없는 선지식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금빛바다 항상계신 청정승보님
자비깊은 삼보시여 묘한가피 내리소서
보살의길 이루어서 함께성불 하오리다
나 무 아 미 타 불
3. 정토발원문
자비광명 베푸시어 염불중생 제도하는우리스승 아미타불 찬탄하고 찬탄하리밀려오는 무량자비 인연중생 해탈얻네대자대비 아미타불 찬탄하고 찬탄합니다.(반절)
이와같은 염불공덕 극락가는 양식되어온갖은혜 두루갚고 모든죄업 다없애리내모습을 보는이는 염불발심 모두내어 중생의몸 마치올제 극락세계 함께나리 연꽃나라 서방정토 나의부모 구품연화 송이송이 필적마다 아미타불 바로 뵙고 바른진리 문득깨쳐 보살들의 벗이되니 욕심변해 자비되고 번뇌변해 지혜되네 시방삼세 부처님네 셀수없이 많다해도 으뜸일세 아미타불 중생제도 연꽃나라 삼독죄업 참회하고 귀의하리 귀의하리 크고작은 선행공덕 극락세계 빛이되라
원합니다 나와함께 염불하온 벗님네들 지난죄업 참회하고 왕생발원 하옵소서
서쪽향해 합장하고 아미타불 염불하면 임종할때 아미타불 손내밀어 반겨주리
연꽃속에 몸을받아 극락정토 함께나면 아미타불 미소속에 나고죽음 사라지리
번뇌바다 영영끊고 법문바다 다배우고 부처님을 이루어서 중생바다 건지리라
허공계가 다하여도 끝없어라 이내소원 중생계가 다하여도 끝없어라 이내소원
南 無 阿 彌 陀 佛
4. 의상조사 법성게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이사명연무분별 십불보현대인경 능인해인삼매중 번출여의부사의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시고행자환본제 파식망상필부득 무연선교착여의 귀가수분득자량 이다라니무진보 장엄법계실보전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5.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세번)
6. 왕생회향게
원왕생 원왕생 원생극락견미타 획몽마정수기별
원왕생 원왕생 원재미타회중좌 수집향화상공양
원왕생 원왕생 원생화장연화계 자타일시성불도
나 무 아 미 타 불
극락가기 원합니다. 왕생하기 원합니다.
극락가서 미타뵙고 수기받기 원합니다.
극락가기 원합니다. 왕생하기 원합니다.
극락가서 꽃향으로 공양하기 원합니다.
극락가기 원합니다. 왕생하기 원합니다.
극락가서 연꽃속에 성불하기 원합니다
7. 참회와 발원(108배)
1.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고자 하는 불자는 불전에 나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성스러운 극락의 연못, 연지(蓮池)를 관상한다. 갖가지 연꽃의 색깔과 형태, 향기를 함께 관상한다.
2. 연못 한가운데서 한 줄기 붉은 연꽃이 솟아 올라 연화좌를 만들고 그위에 금빛광명으로 존재하시는 아미타부처님의 형상을 분명하게 관상한다.
3. 나의 왼쪽으로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척들이 계시는 것을 관상한다.
4. 나의 오른쪽으로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척들이 계시는 것을 관상한다.
5. 나의 뒷편으로는 내가 구제해야 될 지옥·아귀·축생의 중생세계를 관상한다.
6. 예배하는 나의 앞에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멀고, 가까운 이웃들의 존재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고통을 안겨준 용서하지 못하는 한 사람을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7. 내가 우주만다라의 중심에서 부모형제와 일체 중생을 부처님께 인도하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8. 나의 기원, 나의 염불, 나의 동작을 이 모든 존재들이 그대로 보고 따라하는 것을 알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회와 발원의 108배를 올린다.
9. 예배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문을 낭송한다. “제가 시작도 없는 옛적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은 죄업을 모두 참회합니다. 원컨데 부처님의 법신과 부처님의 정법과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도록 하여지이다.”
10. 두 무릎과 두 어깨와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한 후 두 손을 받들어 올리며 모든 중생이 정토법문을 받들어 함께 불도 이루기를 서원한다.
동생정토(同生淨土)
개공성불(皆功成佛)
8. 좌 선
1. 상품상생(上品上生), 미타정인(彌陀定印)의 가부좌 자세를 한다.
2. 숨을 고룬 다음 내쉬는 숨을 길게 하면서 한숨에 ‘아미타불’을 열 번 한다.
3. 숨을 멈춘 상태에서 아미타불의 미소를 관상한다.
4. 숨을 들이쉰 다음 다시 내쉬면서 ‘아미타불’을 열번씩 반복한다.
(들어오는 숨이 정수리 숨골을 통해 밝은 빛으로 들어온다고 느낀다.)
9. 자비축원문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기운달이 차서 둥근달이 되듯
이와 같은 수행의 공덕으로 나의 가족과 나의 도반들이
슬픔과 고통 불안에서 벗어나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기운달이 차서 둥근달이 되듯
이와 같은 수행의 공덕으로 저 허공계의 모든 영가들이
원한과 고통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10. ‘옴 아미데와 슈릿’이란?
아미타 부처님의 큰 자비와 큰 원력에 의지하여 중생들의 행복과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자비만트라입니다.아미타불의 원력을 믿고 위 만트라를 노래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비심에 깊어집니다.
1. 정해진 리듬에 따라 노래합니다.
2. 아미타불의 상징 슈릿 범자를 관상하며 노래합니다.
3. 소리의 진동을 타고 부처님께 나아가는 심정으로 노래합니다
낙태아 흉사
태아와 수자령
수자(水子)는 다른 말로 치자(稚子)라고도 한다.
출산 직후의 아기, 혹은 태아라는 뜻이다. 수(水) 즉 ‘미즈’라는 말은 일본의 고어로, 사산아(사산아)·유산아(유산아(유산아)의 의미로 사용된다.
사산아·유산아를 ‘수자’로 부르는 것은 출산 직후 사망한 영아를 바다나 강물에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어머니 뱃속의 양수를 따서 ‘수자’ 라고도 했는데, 여기에는 부모나 세상을 볼 수 없는 아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강물에 버려진 수자는 강가 모래밭에 모여 삼도천을 건너야 불계(불계)에 이르는데, 이 때 영가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부른다고 믿어졌다.
일본에서는 ‘화찬’이라는 불교노래가 민중들 사이에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일본어로‘아이노가와라지 죠우와산’이라는 이 노래는 ‘추운 강가 모래밭의 자장가요’라는 뜻이다. 노래 내용을 보면 지장보살이 ‘수자 지장’으로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지장보살은 서민의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지금도 마을 입구에 모셔져 오가는 사람들이 참배한다고 한다.
수자(태아)를 위해 탑과 동자상 등으로 꾸민 ‘수자 공원’을 조성, 사람 몸 받아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수자령들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 윤회와 수태, 그리고 태아
《구사론》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 새로운 업을 짓게 되고, 업은 다음 생의 결과를 초래하는 능동적인 원인이 된다. 금생에 비록 부자로 태어나서 잘 살았다 하더라도 악한 행동을 많이 한 사람은 다음 생에 가난과 고통의 삶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업력에 의해 태어나고 이 업에 따라 육도 윤회하는 것이 불법의 진리이다.
육도 윤회하는 가운데 인연 맺어진 어머니 태에서 태어남이 결정되는 순간, 현생(현생)에서의 부모·자녀 관계가 이루어진다. 불법의 진리에서 바라보면 태아도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윤회하는 것이다. 이것은 ‘4유설(사유설)’로 설명된다.
· 4유·
생유(생유:인간이 태어나는 찰나) : 전생의 영혼이 금생에 부모를 만나 태안에서 출생한다.
·본유(본유:이 세상에 출생하여 살아있는 동안) : 태아가 어머니의 태안에서 출생하는 찰나. 인간의 형체로 살고 있는 생명체.
·사유(사유:죽는 순간)
·중유(중유:사후 내생(내생)에 태어나는 순간까지의 기간) : 중생이 사망한 후 그 업력에 따라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주체. 중음 또는 영혼이라고도 한다.《잡아함경》은 “중음 중생이 모태에 든다”하여, 중유가 수태의 주체임을 말하고 있다.
《대보적경》도 “만일 어떤 중생이 태(태)에 들고자 할 때에는 인연이 두루 갖추어야 몸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만일 두루 갖추지 못하면 몸을 받지 못하느니라.
부모가 될 이가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중유가 그 앞에 나타나 자기가 날 것을 구하는 것인데 이때 부모가 인연이 도리 시기가 어울릴 때에 혹은 먼저이거나 혹은 나중이어서 때가 맞지 못하면, 몸속에서 각각 여러 가지 질병이 있게 되며 태안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연을 맺지 못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17주기 때 재앙 가장 심해· 태아 영가로 인한 흉사태아 영가로 인한 휴사는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이 태아 영가를 중요시 하는 이유 역시 태아 영가로 인한 많은 흉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7번의 윤회전생을 한 후 겨우 인간의 몸을 받는다. 인간의 몸을 받으려는 순간 본의 아니게 태중에서 낙태된 태아령은 원망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태아 영혼은 이름도 없고 장례식도 없이 단지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예전에는 강가에 띄워졌다. 때문에 태아의 영혼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삼도천(삼도천)을 건너 불계(불계)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모의 공양 없이는 갈 수 없으므로 공양해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더욱 쌓여 간다.
13년, 17년, 23년…. 공양을 올리지 않거나 천도재를 지내지 않으면 세월이 지나도 태아 영가는 중음신으로 떠돌게 된다.
태아영혼을 방치하면 그 때부터 태아령은 기족을 괴롭힌다. 태아령은 제일 먼저 어머니 몸을 악화시키고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가 난 태아령은 스스로 부모를 불러, 하루라도 빨리 삼도천을 부모와 함께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 가정에 흉사를 안겨주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태아가 낙태된 지 3주기, 7주기, 13주기, 17 주기 되는 해에 재앙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13주기, 17주기에 재앙이 심하다고 한다. 이 중 제일 심한 해가 17주기. 우리로 말하면 중학생 초기, 고등학생 초기에 해당한다. 이때에 부모는 기도와 참회로서 태아령을 위로해 주는 것이 좋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병들었을 경우, 자녀의 입학시험·결혼·신축·사업 시기 등에 태아령을 위안하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6, 7개월 된 태아를 낙태할 경우 흉악령이 되지 않도록 반드시 공양을 한다.
경전에 나타난 유산
“타태하면 백 천년 동안 고통받는다” 《타태경》“태아 유산을 한역 경전에는 '타태(타태)' 또는 ‘낙태(港船)' 로 번역한다. 《잡아함경》 가운데《타태경》에 '천생에 타태를 행함으로 인해 백 천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는" 모습을 묘사, 임신 중절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고 있다. 《장수멸제 호제동다라니경》 등은 보광정견 여래의 입을 빌어 소멸하기 어려운 죄 가운데 하나가 '태아를 살해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낙태를 하면 "현세에는 중병을 앓다 수명이 짧아지고, 죽은 뒤에는 지옥에서 여러 고통을 받으며, 내세의 여러 겁 동안 괴로움에 시달린다'며 과보가 대단히 무겁다고 설명한다.
경전에 이런 일화가 있다. 옛적에 한 부인이 있었다. 남편의 첩이 임신했음을 알고 이를 질투해 몰래 독약을 구해 첩에게 먹였다. 첩은 곧 낙태하고 말았다. 그런데 부인은 죽어 아귀가 돼 하루에 오백 명을 출산하는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심하게 운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으면 유산이 된다. 나아가 과거에 죄업이 있어도 유산이 된다. 유산이 된 태아를 끄집어내는 내용도 경전에는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그 때에 어떤 여인이나 의원이 어린 아이를 잘 기르는 법과 해산하는 법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있으면, 소유(蘇油)를 따뜻하게 하고 섬말리(소독약의 일종인 듯)의 즙을 손에 바르며 조그많고 날카로운 칼을 자궁 속에 넣는데, 그 속은 몹시 냄새나고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 찼으며 어두컴컴한 것이 깃들은 곳이요 한랑 없는 수천의 벌레가 의지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나쁜 물어 흘러나오므로 항상 씻고 닦아야 하며 정수와 피의 때가 묻고 썩어서 냄새나고 미끄러우며 깨끗한 것이 흘러넘치므로 그 더러움을 볼 수가 없는데 뚫어지고 새어나오는 얇은 피부로 그 위를 덮었다.
전생에 업이 이끄는 바이기에 몸의 부스럼 같은 구멍 안에서 태아의 지절을 분해하여서 끄집어낸다. 그러나 이 태아는 전생의 업으로 말미암아 순후업(현세에 지은 행업으로 삼생 이후에 받는 과보를 말한다)을 받아 나게 되는데 그것을 알기도 어렵다.”
김지장전
위대한 한국인은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땅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신라왕자 김교각스님일 것입니다.
김교각스님은 중국 안에서 일고 있는 한국열풍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는 김교각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난 1999년 9월 9일, 99m의 동상 건립 기공식을 갖고 현재 공사를 완공하여 참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김교각스님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1500년 되는 696년에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스물네 살에 출가하여 지장(地藏)이라는 법명을 받은 뒤에 스님은 신라에서 선청(또는 지체라고도 함)이라는 흰 삽살개 한 마리와 오차송이라는 소나무 종자, 황립도라는 볍씨와 금지차라는 신라차를 가지고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갔습니다.
구화산에 이르러 초인적인 고행과 뛰어난 법력으로 그곳 사람들을 교화하다가 99세 되는 794년 음력 7월 30일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내가 열반한 뒤 내 몸을 화장하지 말고 돌함에 넣어 두었다가 세 해가 지난 뒤 열어 보아라.만일 그때까지 썩지 않으면 그대로 개금하여라."
신라왕자 지장스님의 육신성도(肉身成道)를 통해 중국사람들은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게 되었고, 이로부터 중국불교에 육신보살의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지장스님이 열반하신 음력 7월 30일에는 중국에서 가장 성대한 종교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중국 당시집(唐詩集)에는 김교각스님의 차시(茶詩)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호랑이한테서 구해 준 고아 아이가 절에서 살다 적막함을 못 이기자 시 한 수를 지어 마을로 돌려 보내니, 이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을 내려가는가
고요한 절 한나절 하도 길 때면 먼산 바라고 옛집 그리더니
함께 머물던 흰구름 떠나 산을 내려가는가
난간에 뛰어올라 죽마 타던 아이야
이곳은 황금땅 부처님 나라, 금모래 모으는 일도 이제 싫으냐
칠병 속 시냇물엔 밝은 달 찾아올 일 없겠고
차 달인 단지에는 향긋한 꽃 필 일 없겠네
부처님 그리는 이는 자주 울 일 없나니
노승은 노을의 벗 노을은 노승의 벗
신라왕자 김지장스님은 한국, 중국, 일본등 세 나라에서 함께 받드는 위대한 스승입니다.대원사의 김지장 기념관 건립과 김지장 삼존상 봉안식을 기념하여 한·중·일 삼국의 다인들이 모여 헌공다례의식을 올렸습니다.
送童子下山 (송동자하산)
空門寂寞汝思家 禮別雲房下九華 (공문적막여사가 예별운방하구화)
愛向竹欄騎竹馬 懶於金地聚金沙 (애향죽난기죽마 나어금지취금사)
漆甁澗底休招月 烹茗遼中罷弄花 (칠병간저유초월 팽명구중파농화)
好玄不須頻下淚 老僧相伴有煙霞 (호현불수빈하루 노승상반유연하)
<한·중 수교 10년, 김지장 성도절 기념 국제 학술대회>
世界一花, 萬生一家신라왕자 김지장 스님의 탄생 1308주년과 열반 1209주년을 맞이하여 지장성지 구화산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을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저는 1500년 역사를 간직한 한국의 대원사에 살고 있습니다. 금년 사월 초파일에 김지장 삼존불을 모신 기념관 -신라대각 김지장전- 낙성식을 갖고 한·중·일 삼국의 다인들이 모여 헌공다례를 올렸습니다.
한·중·일 동양 삼국은 각각 특성 있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불교문화와 차문화의 전통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지켜온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중·일 삼국의 불교인들과 다인들이 공통적으로 존경하고 받드는 역사인물을 꼽는다면 김지장스님이 첫 번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장스님의 게송 중에
衆生度盡 (중생을 모두 제도하는 것이) 方證菩提 (깨달음의 완성이니)
地獄未空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誓不成佛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
중생들은 이기심과 욕망 때문에 끝없는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으로 지구환경은 파괴되고 자연의 재앙은 해마다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장스님은 지옥중생의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고 지구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이가 나의 제자라고 했습니다.
지장스님의 원력과 사상을 배우고 그 뜻을 널리 펴는 일은 전쟁과 파멸의 길을 가는 모든 인류가 공존의 지혜를 깨닫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 구화산 불교문화 연구회”에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장성지 구화산이 중심이 돼서 지장신앙과 지장사상으로 위기에 빠진 지구생명을 구원하는 메시지를 온 세계에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世界一花 (이 세상은 한 송이 꽃이며)
萬生一家 (모든 생명은 나의 가족입니다.)
爲他爲己 (남을 위한 일이 자기를 위한 일이니)
自他不二 (나와 남은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상량문
천봉산 대원사 지장전 상량문(上梁文)
천봉산은 무등산의 어머니이니 보리수 위에 푸른 하늘이 열리고
대원사는 아도(阿道)의 가람이니 옛바람이 일천구름을 이끌고 오는도다.
라대(羅代)의 열반화(涅槃華)여, 발우마다 둥근달이 떠오르고 려조(麗朝)의 자진사(慈眞師)여,
푸른 산에 핀 무봉탑(無峰塔)이로다
오호라, 문수봉 금빛 바람은 밑없는 허공에 숨고 주암호 은물결은 향기로운 구름을 일으키니 때여, 신사년辛巳年 춘삼월 이십오일이로다
문수봉 산자락 맑은 기운 오르는 터에 구화九華의 육신보살을 우러르는 지장전을 세움에
오늘 대들보 올려 어기영차 상량 올리니 사부대중 천룡팔부, 비구름 바람 초목, 어화 벗님네야
우리 손잡고 육위六偉의 노래 불러 보세 대들보를 동으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금까마귀 솟구친다 하늘 가득 붉은 옥빛깊은 꿈 깨고 보니 우리 집 본디 여기로세
대들보를 서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서쪽 바다로 해가 지고 달이 뜬다 동쪽 하늘에 달이 뜬다 천년 학 돌아오니 옥수玉樹로고 금화金花로다
대들보를 남으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만길에 쪽빛 샘물 감로향이 서리고 푸른 이끼 돌길마다 약초로세 무생초無生草로세 대들보를 북으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미륵의 발밑이로고 밑없는 향기바다로고 백천의 북두 별빛이 빈 가슴을 채우는구나
대들보를 위로 올리세 나무아미타불
둥근달 떠오르니 법계가 맑고 마음 속 부처 웃으니 일만 인연들 자취 비우네
대들보를 아래로 내리세 나무아미타불
옛바람 거문고에 이니 삼생三生이여 꿈이 아닌가
신선은 옷자락에 산빛을 물들이네
바라옵나니 산중의 영가는 해탈하고 귀신은 어둠을 벗어나지이다.
흰 호랑이는 계수나무를 안고 졸고 까치는 아침을 물고 오며 하늘엔 해, 달, 별의 기운 맑게 영글고
땅에는 다섯 가지 복이 흘러 넘쳐지이다
거듭 바라옵나니 이 산중에 습득拾得의 땔나무 마르지 아니하고
한산寒山의 시詩 날로 향기로워 걸음걸음 지장보살을 여의지 않으며
빛깔 빛깔 맑은 눈을 속이지 않게 해지이다
다시 바라옵나니 이 산중을 찾는 이의 육근六根이 청정해지고
가는 이 옷섶마다 밝은 달 품어가지이다
세존 응화 2545년 음력 3월 25일(서기 2001년 양력 4월 18일)
천봉산 대원사 주지 현장玄藏
祖室 梵日 普城 / 住持 玄藏 / 都監 頂輪 / 侍者 阿道 / 誦主 然重
역사적 의의
보성 대원사에 김지장 전각이 건립되었다
이번 김지장 전각 건립은 그 의의가 상당히 크다.
우선 신라의 왕자였던 지장스님이 옛 백제의 땅(보성 대원사)에 모셔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장스님의 초인적인 고행과 법력이 유구한 세월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만인의 가슴에 불심으로 재림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난 곳인 신라에서 멀리 중국 구루산까지 자비의 불심을 전파했던 지장스님. 이제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나라였던 옛 백제의 땅에 스님의 법력이 이어진 것이다.
지장스님의 구화산이 중국 불교의 사대성지 중 하나가 되었듯이 김지장전으로 지장스님을 모신 현세의 이 땅 또한 자비와 평화의 도량으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다.
일부에서의 '김지장왕보살'에 대한 여러 의심과 왜곡을 일축시킨다는 관점에서도 김지장전은 그 의의가 크다. 최근 선문화사가 지장이성금인을 극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지장스님의 실존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자료를 뒷받침해 지장스님과 관련된 무수한 논란들을 일축시킨 상태에서 실제로 세상을 살다 가신 지장스님의 전각 건립은 실존했던 역사적 성인의 깨달음을 기린다는 측면에서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차문화사 전반에 있어서도 김지장전 건립은 중요한 일이다.
중국 『구화산 화성사기』에 "신라의 김교각이 차(쏜)종자를 가져와 구화산에 심었는데 이를 금지차(金地茶)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것보다 132년 앞선 것이다. 또한 중국『당시집』에는 김지장스님이 남긴 소중한 차시 한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차문화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지장스님과 만나게 된다.
지장스님은 우리 차문화의 오랜 정통성과 우수함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에 김지장전은 우리 차문화계에 있어 하나의 역사적 근원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지장전 건립으로 인해 살아서 지장보살로 추앙받던 스님의 고결한 가르침이 우리 곁으로 한결 가까이 다가오길
세우게된 동기
김지장전을 세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신라 왕자 김지장스님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에서 함께 받들고 있는 위대한 성인입니다.대원사의 김지장전 건립과 김지장삼존상 봉안식은 우리의 스승을 우리가 받든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그가 태어난 고찰보다는 오히려 중국에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장전의 건립은 상징적 의미가 큽니까? 위대한 한국인은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신라 왕자 김교각입니다. 김교각스님은 중국 안에서 일고 있는 한국열풍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한·중·일 삼국 차문화 교류전을 연 까닭은 무엇입니까?
한·중·일 삼국 차문화 교류전을 연 까닭은 김지장스님의 차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최하게 되었는데 대원사 주변에 구화산록에 자생하는 차씨를 뿌려 영원히 지장의 자취를 새기고자 합니다.이번에 증국 정부가 지장이성금인의 공개로 지장신앙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때를 맞 춰서 김지장 전각이 건립되었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평소에 김지장 사상을 헌창해 왔는데 이번에 신문을 보고 지장이성금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 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천년이 넘게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지 중국인들의 정신에 감복했습니다 지장이성금인을 보면 뿔이 튀어나왔는데 이것이 기록과 일치합니다. 이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처음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대원사 김지장전에는 지장스님이 타고있는 흰 삽살개 선청의 머리 부분에 뿔이 튀어 나왔는데 지장이성금인과 흡사한 모습을 보고 당시 지장상이 매우 유행했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지장신앙을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입니까?
우선 중국 구화산에 자생하고 있는 금지차씨를 가져와 대원사 주변에 뿌리고 지장전각 옆에 다정을 세우고 김지장 선사 행적비와 선청 등을 세워 지장신앙을 널리 펼쳐 나갈 계획입니다.
지장신앙은 동양 삼국의 공통분모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장신앙을 크게 발전시킬 계획으로 티벳박물관 내에 지장스님의 체험실을 만들어 스스로 지장신앙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 계획입니다.
한·중·일 삼국에 전승되는 고유의 차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통해 지장신앙을 고취시키고자 합니다.동양 삼국의 뿌리인 지장신앙 그 사상의 물줄기가 현장스님을 통해 대원사에서 되살아난다.
지장보살의 현지 구화산은 매년 100만 명의 참배객이 찾아온다고 하니 새로 건립된 대원사의 김지장 또한 구화사 못지 않은 지장성지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고 현장스님은 말한다.지장왕보살로 추앙 받아온 김교각스님이 신라 청년으로 중국에 들어가 도를 성취하고 중국 당나라숙종황제로부터 지장이성금인을 하사 받을 정도로 살아서 지장보살이 되었다.그리하여 중국에서 지장왕보살로 거듭남으로써 지장신앙은 동양 삼국에 우뚝 선 봉우리가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