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공자 석전대제는 이렇게...탄생 2567주기 추계석전 봉행9월 2일, 39명의 성현에 향과 술을 올려...
전국 향교에서도 오전 10시 동시에
한철수기자
[문화=경기인터넷뉴스] 공부자(공자) 탄생 2567주기 석전대제가 성균관 문묘인 대성전에서 지난 9월2일(음 8월2일. 정해일) 오전 10부터 거행 됐다.
문묘(文廟)는 동아시아 대학은 고대로부터 모두 문묘를 설치하여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스승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위폐를 두고 제(祭)를 올리는 묘학일체(廟學一體) 사상을 도입했으며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 역시 1398년 현 위치에 설립되면서 전묘후학(前廟後學) 즉 문묘(대성전)를 앞에 두고 성균관(학교)을 뒤에 두는 구조로, 현존하는 234개의 향교 역시 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성균관의 문묘는 대성전(大成殿)으로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다섯 명의 성인과 공문10철, 송조6현, 아국 18위 등 39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석전(釋奠)은 원래 산천이나 사당, 그리고 학교에서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드리던 제사의식을 말한다. 산천이나 사당에서 드리는 제사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학교에서 드리는 것은 석전 유일하다. 점차 학교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정의됐다.
석전대제라고도 하며, 봄과 가을 즉 음력 2월과 8월 첫 번째 정(丁)일에 국왕이 성균관에 향을 내리고 직접 또는 관원을 파견하여 성현들의 공덕을 기리기 때문에 정제(丁祭), 또는 상정제(上丁祭)라는 별칭도 있다.또한 예(禮), 악(樂), 무(舞)가 함께하는 의례이다. 삭망제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지낸다.
석전의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원형을 보존하고 전승하고 있어 198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며, 올해(2016년)공자탄생 2567주기를 맞아 가을 석전은 어떤 방식으로 지냈는지 알아본다.(글쓴이 주)
-성균관 대성전에 봉안한 39위는 누구인가
성균관 대성전에는 대성지성 문선왕인 공부자(공자)를 중앙에 두고 2소(昭) 2목(穆)의 형식에 따라 동쪽(2소)에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 안자(顔子)와 기국술성(沂國述聖公) 자사(子思)를, 서쪽(2목)에 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 증자(曾子),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 맹자(孟子)를 두고 5성위(五聖位)라 부른다. 안자와 자사자는 공자의 수제자이고, 증자와 맹자는 공자의 종통을 이은 대학자다.
이는 신위봉안 방식이며 공자 1세, 안자 2세, 증자 3세, 자사 4세, 맹자 5세로 여겼으며 동쪽(2소)에는 1,3세를 서쪽(2목)에는 2,4세를 두는 방식이다.
공문10철(孔門十哲)은 공자가 일생을 통해 배출한 학자가 3천 2명 중 뛰어난 제자 10명을 일컫는다. 비공 민손(費公 閔損), 운공 염경(鄆公 冉耕), 설공 염옹(薛公 冉雍, 제공 재여(齊公 宰予), 여공 단목사(黎公 端木賜), 서공 염구(徐公 冉求), 위공 중유( 衛公 仲由), 오공 언언(吳公 言偃), 위공 복상(魏公 卜商), 영천후 전손사(潁川侯 颛孫師) 등이다.
송조6현(宋朝六賢)은 유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 시킨 송나라를 대표하는 학자이다.도국공 주돈이(道國公 周惇頤), 예국공 정호(豫國公 程顥), 낙국공 정이(洛國公 程頤), 신안백 소옹(新安伯 邵雍), 미백 장재(郿伯 張載), 휘국공 주희(徽國公 朱熹) 6명의 학자를 말한다.
아국(我國) 18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자를 말한다. 신라2현 빙월당 설총, 고운 최치원. 고려2현 회헌 안향,포은 정몽주. 조선14현 문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중봉 조헌,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송준길, 현석 박세채 등을 배향하고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정전인 대성전에 5성위, 공문10철,송조6현 등 21위를 모셨고, 대성전 앞 좌우에 동무와 서무에 아국(조선)112위 등 총 133명의 성현의 위패를 봉안했었으나 오늘날에는 39위에게만 제를 올린다. 공자의 신위를 정위, 4성위는 배위 나머지 34위는 종향위라 한다.
-이번 석전은 어떻게 준비했나
석전은 국가에서 주관하던 중요한 의식으로 이날 봉무를 맞은 제관들은 4박 5일관 성균관에 머물러 제의를 공부했으며, 제수를 진설했다.
조선시대에는 예차헌관(預差獻官)이라 하여 석전즉후 회의를 통해 다음 석전의 제관을 정했는데,이를 제관분정(祭官分定)이라 한다. 제관이 되었음을 알리못하는 불문율(不文律)이 있다. 부득이한 경우 사유를 갖춘 사단(辭單.사유서)을 교중에 제출하여야 한다.
제수는 12변 12두를 기본으로 하고 보와 궤라는 그릇에 담아 진설한다. 변은 대나무로 만든 그릇으로 밤 ,대추, 녹포 등 마른제수를, 변은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으로 녹해, 청저 등 물기가 있는 제수를 담는다. 희생(犧牲. 동물)으로는 소,양, 돼지를 각을 내어 올린다. 사각에 안이 둥근 보에는 수수니 보리쌀을 담고, 쌀과 찹살을 담는 궤도 있다.
제주는 소의 모습을 한 희준(犧樽)에 맑은 술인 예재(醴齋)를, 코끼리 형상인 상준(象樽)에는 중간정도 익은 술인 앙재(盎齋) , 산뢰라는 술단지에는 익은 술인 청주(淸酒)를 각각 준비했으며, 희준은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초헌례에 상준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에, 산뢰는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에 각각 사용한다.
석전은 예를 바탕으로 음악과 춤이 어울려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석전 제례악은 국립국악원(지도 정재국), 일무는 사단법인 아악일무보존회(이사장 김영숙)가 맡았다.
-이번 석전 어떻게 진행했나
석전은 조선시대 국립대학인 성균관에서 유일게 지내는 제의로 국가의 이념과 유생을 포함한 선비와 백성의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직과 종묘의 예제에 버금가는 제례이다.
주요 제의절차를 살피면, 5성위에 향을 사르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 초헌관이 첫잔을 올리고 축을 올리는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관이 술을 올리는 분헌례, 제수를 거두는 철변두, 망례례, 초헌관 음복 순으로 진행된다. 모든 제관은 당상집례의 홀기에 따라 움직이고 제의를 진행한다. 2016년 가을석전을 당상집례의 홀기에 따라 구성해본다.
-'모이시오' 시보격보와 예묘소...명륜당에서 대성전으로
4박5일간 습의를 마친 헌관과 제관이 학당(學堂)인 명륜당에 모여 마지막 점검을 하고, 초헌관이 대축에게 축과 향이 든 향궤를 을 전달하고, 동재에 걸린 북을 세 번씩 세 번 치면서 ‘모이시오’라 외치는 시보격고(時報擊鼓)에 따라 명륜당을 나와 문묘인 대성전으로 이동한다.
시보격고에 앞서 찬자의 인도에 따라 집례, 전사관, 묘사, 알자, 찬인 등이 절을 하는 자리인 배위에서 국궁사배를 한 후 관세위에서 손을 씻고 동계로 올라가 정해진 자리로 간다.
대성전에 제관들이 도착하면,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생과 춤을 주는 일무단이 들어와 정해진 위치에 자리하면, 대축과 제관들은 동쪽에 서서 서쪽을 향해 4배를 하고, 관세위로 나가 손을 씻고 봉무(奉務) 할 자리로 가 촛불을 켜고, 위패를 담은 상자인 주독(主櫝)을 열고 제기의 뚜껑을 연다. 3헌관을 제외한 나머지 제위자(諸位者)는 신위전을 향해 4번 절을 한다. 본격적으로 제의가 시작된다.
-흰 모시를 선물하는 전폐례
월대인 당상에서는 등가가 문묘제례악 중 명안지악이 연주되고, 악장이 가창된다. 월대 아래 뜰인 당하에서는 8일무를 춘다.
초헌관이 알자의 안내로 관세위로 나아가 손을 씻고, 동쪽 문으로 들어가 공자 신위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향을 세 번 올리는 삼상향을 하고, 폐비 즉 대나무 상자에 넣은 흰 모시를 올리는데[폐백(幣帛)] 이를 전폐례(奠幣禮)라 한다.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에 따라 공자, 안자, 자사자, 증자, 맹자 순으로 삼상향과 폐백을 올린다.
전폐례를 마치면 연주와 춤은 잠시 멈춘다. 이때 초헌관을 제외한 제관은 서문으로 나와 제자리로 간다.
백성이 생겨난 이래 누가 그 번성함에 이르랴
문선왕의 신명함은 옛 성인보다 탁월 하시도다
제물과 폐백을 다 갖추어지고, 예의 용모가 맞았도다
음식은 향기롭지 않으나, 오로지 신께서 흠향하소서
-전폐악장...폐백을 드릴 때 부르는 악장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술단지는 희준, 술은 얘재(가장 맑은 술)
폐백을 마친 초헌관은 공자에게 술을 올리기 위해 술단지와 술잔이 있는 준소(樽所)로 나아가 서쪽에 서서 술 따르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때 등가에서는 ‘성안지악’이 연주되고, 8일무는 문무 중‘열문지무’를 춘다.
준소도 2곳에 두는데 공자의 것은 정위준소, 안자 등 4성의 것은 배위준소, 기타 성현은 종향위라 한다. 술을 따르는 제관은 사준이고, 첫 잔을 올리는 술단지는 소의 형상인 희준(犧樽)이고, 술은 명수라는 가장 맑은 술로 예재(醴齋)라 하며, 석전에 사용하는 술잔은 작(勺), 받침은 점(占)이라 한다.
4성위에 잔을 올린 초헌관은 공자의 신위전에 무릎을 꿇고, 이때 제위자 모두 무릎을 꿇는다. 음악과 춤은 멈추고, 대축이 축을 읽는다. 독축을 마치면 모두 평신(平身. 바로 일어섬)한다. 초헌관은 서문으로 나와 제자리로 간다.
위대하신 성왕이시여 진실로 하늘이 내신 밝은 덕이로다
음악을 연주하여 숭모하고 때맞추어 제사 지내도다
맑은 술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희생은 더 없이 크도다
제물을 신께 드리오니 부디 임하시길 비옵나이다
-초헌악장...초헌관이 예를 올릴 때 부르는 악장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와 종현례 그리고 분헌례
초헌례가 끝나면 8일부는 무무인 소무로 바뀌고, 월대 아래에 위치한 헌가에서는 ‘성안지악’이 연주된다. 알자의 인도를 받은 아헌관이 신위전 들어와 준소에 서면 사준은 코끼리 형상을 한 상준(象樽)의 뚜껑인 멱을 열고 국자로 중간 쯤 익은 술인 앙재(盎齋)를 따른다. 이후 제의는 초헌례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백왕의 종사이시며 백성들의 법이 되시도다
바라보매 의기넘치는 듯 신께서 편안하시도다
금 술잔에 술을 따르니 깨끗하고 감미롭도다.
두 번째 잔을 올리어 즐겁게 예의를 이루었도다
-아헌악장...아헌관이 예를 올릴 때의 악장
종헌례 역시 아헌례와 같은 방식이나 종헌관과 받은 분헌관이 함께 입묘한다. 이때 알자는 종헌관을 찬인은 분헌관을 안내한다.
제주는 잘 익은 맑은 술인 현주(청주)를 산뢰라는 술단지에 담아 따르며, 5성위는 물론 공문10철, 송조6현, 아국 18현 등 34위 모두에 잔을 올린다.
-음복례와 철변두 그리고 망례례...시간은 1시간 30분을 넘겨
종헌례와 분헌례를 마치면 초헌관은 동문 앞에 준비된 자리로 가 서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는다. 대축이 초헌관의 왼쪽에 앉아 북쪽을 바라보고 술잔을 넘긴다. 초헌관은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야 한다.
이어 대축은 도마(제기) 위의 고기를 초헌관에 내보이면 쓰다듬듯 살피고, 전작은 고기를 받아 동계로 내려가고 초헌관도 뒤를 따른다. 이를 음복수조례라고 한다. 음복을 마치면 헌관의 역할도 마친다.
3헌관은 절할 자리(배위)에서 사배를 한다. 대성전 안에서는 대축이 제물을 거두는 철변두를 마치면 3헌관을 제외한 제위자는 모두 4배를 한다.
이어 초헌관은 망례위로 가서 복쪽을 바라보고 서고, 대축은 신위전에 두었던 축과 폐백을 대바구니에 넣어 서계로 내려온다. 초헌관에게 확인을 받고, 미리 파놓은 예감이라는 구덩이에 이들을 넣는다.
구덩이에는 미리 피어 둔 숯불이 있고, 축과 폐백을 어느 정도 불사르고 구덩이를 덮는 의식으로 이를 망례례라 한다. 망례례를 마치면 알자가 초헌관에게 예필을 고하자, 2016년 공자탄생 2567년 가을 석전은 끝이 난다.
-제관은 누가 봉무했나
이번 석전의 30여명의 제관은 전국 향교에서 추천한 유림과 석전대제 이수자, 여성유도회중앙회 회원 등이 소임을 맡았다.
초헌관은 대한민국국회 정세균 의장으로 내정됐으나 국회 사정으로 불참을 해 성균관 어윤경 관장이 대신 봉무했으며, 아헌관은 금곡문화재단 하연순 이사장, 종헌관은 성균관 성기문 부관장이 헌작을 했다.
오성위 동서에 위치한 성현에 향과 잔을 올리는 분헌관은 박승석(동) · 김연택(동) · 최종철(서) · 신사범(서) 이, 대성전 월대에서 한문 홀기를 읽는 당상집례는 김병인, 월대 아래서 홀기와 제관의 동선을 해설하는 당하집례는 김옥란, 축을 읽는 대축은 심동섭이 소임을 다했다.
제수를 준비하고 제상을 차리는 전사관에 황의욱, 대성위 묘사는 서정택(동) · 김경선(서) · 양재환, 초헌관을 이끄는 알자는 김동목, 분헌관과 대축을 안내하는 찬인에 김진수(분헌관) · 안도섭(대축), 제관의 손을 씻는 일을 돕는 사세에 유원종(헌관) · 안영순(집사), 향합을 받드는 오성위 봉향에 허종철, 향로를 드는 오성위 봉로는 박종염, 술잔을 받고 헌관에 전달하는 오성위 봉작은 임만수, 술잔을 제상에 올리는 오성위 준작에 김동윤, 공자의 술잔을 따르는 정위 사준에 권영필, 공자를 제외한 성현의 잔을 따르는 배위 사준은 정희자가 수고했다.
동종향 봉향은 여직현 · 최응렬, 동종향 봉작에 김순화 · 허덕회, 동종향 봉로와 준작은 강상조 · 김진하, 동종향 사준에 배경숙, 서종향 봉향은 고하영 · 조진필, 서종향 봉작에 이승헌 · 김철영 · 문성호, 서존향 봉로와 준작은 박혁진 · 김종찬 · 신한섭, 서종향 사준에 김정희, 감찰은 김광수 · 박광영, 찬자 이욱 등 40 각각 맡아 석전을 이끌었다.
이날 석전은 성균관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성균관대학교에서 후원했다. 그리고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재)성균관, 여성유도회중앙회, 청년유도회중앙회, 유도회서울시본부, 성균관모성회, 성균관원로회, (사)석전보존회, 성균관석전교육원, 유교신문사, 유교방송국, 유교교육원동문회, 석전대제이수자회, 성균관대유학대학원(지)총동문회, 성균관석전교육원총동문회가 참여했다.
-글을 마치며
공자의 사상이 동양 특히 한국과 중국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두 국기에서는 이미 중국은 신해혁명 이후에 왕조 혹은 황조를 부정했고, 그나마 한국에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잇는 동안 성균관의 공자(공부자)를 모시는 석전(釋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자는 동한(東漢. 우리에게는 후한)시절 선사(先師)라고 불렀고, 나중에 선성(先聖)으로 부르며, 중국의 역대 왕조가 2천년 넘도록 높이 받드는 제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태학(太學. 372년), 신라의 국학(國學. 682년),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992년)이 조선에 영향을 미쳤으며, 결국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이라는 학문기관으로 변했다. 비록 일제에 1910년 강탈을 당했을 때 경학원으로 강등 된 적은 있으나 광복 후 다시 성균관으로 복원 됐다.
성균관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유교와 유학의 총본산으로 공자의 인(仁)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학습과 예로서 스승을 모시는 묘학일체(廟學一體)를 실현하고 있다.
유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 중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하늘적 가치로서 상생을 지키는 종교이자 학문이다. 석전을 통해 물질만능시대에 인본을 되찾는, 불신이 빚은 전쟁, 테러 등으로부터 인성을 지탱하는 주체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추계석전을 가까이에서 보고 촬영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배려한 성균관과 유교방송국 관계자에 감사를 드린다.
[사고] 본고는 본지의 한철수 보도위원이 운영하는 구지옛생활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탑재했습니다. 글을 인용할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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