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의사·변호사·소설가까지 인공지능이 다 한다는데…
“일과 놀이 구분없이 자유롭게 키워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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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균 기자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알파고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쇼크'였다. 경우의 수가 10의 170제곱이 넘는 저 복잡하고 심오한 바둑에서 사람의 두뇌가 AI를 못 이기는데, 미래 AI와 함께 살아가야 할 내 아이의 생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이면 현재 있는 일자리의 700만개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새롭게 생긴다고 전망했다. AI와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의 영향으로 향후 5년 내 500만개의 일자리가 순감(純減)한다.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갈 때쯤이면 현존하는 직업의 65%는 사라진다. 이름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 100여 년 전 미국에서 포드가 대량생산 방식을 통해 자동차를 만들고 있을 때, 세상 바뀌는 줄 모르고 자식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치는 식의 우(愚)를 범할지도 모른다.
'더 테이블'은 국내외 뇌과학·전자공학·심리학·철학·교육학 분야 전문가 27명에게 'AI시대, 내 아이라면 어떻게 키울 것인가?' 물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대학 입시를 향해 스무 살 되기까지 거의 전(全) 생애를 주입·암기식 공부에 투자하고, 대학에서도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매진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질문 많은 아이로 키워라
미국 스탠퍼드대학은 전 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질문이야말로 AI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던지는 천진난만한 질문 속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빅 퀘스천(Big Question)'이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왜 질문이 중요한가
"문제를 정확히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엉뚱해도 남다른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AI는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상상력을 이용해 질문을 던지고 AI에게 답을 찾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따라서 정답을 빨리 맞히는 교육보다 근원적 질문을 하는 연습을 통해 아이들 상상의 폭과 사고의 깊이를 넓혀줘야 한다. 부모가 귀찮다고 해서 '몰라도 돼'라고 하면 안 된다."
―'빅 퀘스천'을 좀 더 설명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질문이다. 뉴턴의 '사과는 왜 떨어질까' 같은 질문, 혹은 '오늘 날씨가 어떨까?'가 아니라 '우리나라 미세 먼지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묻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세상의 변화는 구글이 답해줄 수 없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바꾼 천재들 중에는 어린 시절의 화두(話頭)를 계속 발전시킨 사람이 많다."
외우는 수학은 毒
인공지능(AI)과 살아가려면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은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한다. 시험 공부용 지식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영·수 중심의 학습은 산업자본주의 이래 이어져온 교육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패러다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수학·독서(독해력)·컴퓨터 활용능력을 인간 지능의 기초 체력으로 언급했다.
―공식 달달 외우는 수능 대비용 수학으로 과연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을까.
"수학은 원리 학습이 되어야 한다. 같은 문제를 반복해 푸는 입시 수학은 독(毒)이다. 암기와 반복 학습이야말로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답을 빨리 찾는 법을 가르치는 '메모리 의존'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글 통번역기가 나오면 영어나 제2외국어 공부를 악착같이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전 세계 유용한 데이터의 대부분은 영어 형태로 존재한다. 무수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보물을 찾고 싶다면 외국어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쳐야 하나?
"데이터를 다루고 의미를 추출하고, 이를 조합해 필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코딩이다. 컴퓨터의 발전속도에 맞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자율주행차도 따지고 보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무지하면 변화가 두려울 것이다."
―우리도 2018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코딩교육이 실시된다.
"솔직히 코딩을 암기 과목처럼 가르칠까봐 걱정된다. 벌써부터 '코딩 사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암기 과목 되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 아이들은 새로운 도구와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암기 과목은 공부할 필요가 없나.
"창의력도 재료가 필요하다.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생각은 나오지 않는다. 역사나 사회, 컴퓨터 등에 대한 기본 지식은 암기해야 한다. 그러나 암기한 내용을 평가의 척도로 삼을 순 없다."
잘 노는 '알파 백수'가 세상 바꾼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도 궁금하다. 전문가들은 노는 것, 느끼는 것 등 AI가 할 수 없는 능력이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내다봤다.
―AI와의 싸움에선 인간이 불리한 것 아닌가.
"AI 는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수만 장의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아기라도 한번만 보면 개와 고양이를 구분한다. 게다가 AI는 개와 고양이가 예쁜지 모른다. 이것이 사람의 영역이다. AI에겐 인간의 우뇌에서 관장하는 감성과 공감의 영역이 없다."
―AI가 웬만한 영역을 다 장악하면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넣어 AI가 갈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아이들은 재미를 느낄 때 몰입한다.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 '알파 백수'들이 많아져야 한다. 알파고 만든 데미스 하사비스를 보라. 그야말로 제대로 놀았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다가 갑자기 창업했다가 박사를 땄다. 그야말로 알파 백수였다."
―하사비스 따라 하다가 게임 중독에 빠지진 않을까.
"게임은 예일 뿐이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경험을 쌓는다. 게임을 하면서도 서사 구조를 연구하고, 게임 시나리오도 만들어보는 식이다. 생산 과정에서 AI와 로봇이 맡는 역할이 많아지면 인간의 노동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하루 12시간 일하던 2교대 근무에서 하루 8시간 3교대 근무로 바뀐 역사도 짧다. AI와 로봇은 소비를 못한다. 노동 시간이 줄어야 인간이 소비할 시간이 늘어난다. 경제는 그렇게 돌아간다. 결국 이쪽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다. 잘 '놀아본' 것이 자산이 될 것이다."
―미래의 일자리,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전문 마부(馬夫)들이 사라진 것처럼 콜센터나 택시 기사는 AI와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자취를 감출 것이다. 변리사, 회계사도 필요 없어진다. 반면 종교인이나 심리치료사, 판사, 정치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도 한물간 것 아닐까?
"영상의학처럼 자료를 판독하고 진단하는 분야는 AI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신약이나 새로운 진단법을 개발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다. 법조인도 AI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대량의 판례를 섭렵하고 분석·처리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예술가는 어떤가? 일본에선 AI가 문학상 공모전에서 1차 예선을 통과했고, 렘브란트 비슷한 그림도 척척 그려낸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새로운 에피소드도 AI가 만들어냈다던데.
"입력된 자료를 가지고 AI가 짜깁기한 것뿐이다. 엄격히 말해 그건 창작이 아니다. 작가들은 오히려 AI를 활용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을 빠른 시간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AI 시대 자녀 교육 10계명
―구글이 답할 수 없는 질문 능력을 키워라.
―‘Why not?’(안될 게 뭐야?) ‘What if?’(만약에…)를 아이 마음 속에 심어라.
―잘 놀고 감성 풍부한 ‘알파 백수’로 키워라. 기계는 놀 줄 모른다.
―AI 는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미적 감성을 키워라.
―영어 필요없다고? ‘데이터의 바다’를 헤엄치려면 언어 능력은 필수!
―커뮤니케이션 능력 키워라.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인간이 한수 위.
―급변하는 컴퓨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키워라. 코딩도 한 방법이다.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전달하고, 융합하는 능력이 곧 리더십
―다양한 독서 경험은 창의력의 밑거름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이 어떤 곳인지 끊임없이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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