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딸들이 사위와 함께 성탄 휴가를 보내러 우리 집으로 왔다. 큰딸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어 남편과 단둘이 살던 집이 갑자기 늘어난 여덟 명의 식구로 북적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아이들 장난감과 옷가지로 어질러진 집안은 크게 틀어 놓은 티브이 소리, 아이들의 울었다 웃었다 비명 지르는 소리 등으로 가득 찼다. 세 살짜리 손자는 자신의 놀라운 경험을 우리 모두에게 알려 주느라 끝없이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 형을 따라다니며 온몸으로 말하는 한 살짜리 손자. 첫날이 채 가기도 전에 혼자 보내던 시간이 그립기도 했지만, 왁자지껄한 명절이 따뜻하고 흐뭇했다.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쌓여 있는 선물에 온통 관심이 가 있는 큰 손자는 그 선물을 풀 수 있는 성탄절 아침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치가 와서 선물을 가져가면 어떻게 하나? 자기가 할머니 집에 와 있는 것을 산타가 모르고 선물을 이곳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걱정을 다 쏟아 놓았다. 큰딸은 그런 아들의 상상력을 돕느라 그린치가 선물을 가져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손자는 과자를 만들어 선물 옆에 놓고, 선물을 가져가지 말고 과자를 먹으라는 편지를 써 놓자고 했다. 그 말에 큰딸은 과자를 만들기 위해 일어섰다. 아들의 손을 빌려 밀가루를 반죽하고 초콜릿을 섞어 오븐에 과자를 구웠다. 편지는 누가 쓸 것이냐고 물으니, 글을 모르는 손자는 이모한테 써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딸은 손자가 부르는 그대로 받아 적은 편지를 손자가 가르키는 장소에 붙여 놓았다.
손자는 지엄마와 이모의 도움을 받아 상상의 세계 속으로 마음껏 날아다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두 딸은 서로에게 어린 시절 기억나는 이런 종류의 추억이 있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딸들에게 어린 시절의 풍부한 상상력에 별 도움을 주지 않았음을 기억해 냈다. 미국에 와서 교회에 다니면서 핼러윈 문화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기독교와 모순된다고 배웠다. 핼러윈은 마법사나 이교도에 그 기원이 있다고 그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했고, 산타 이야기는 성탄의 깊은 의미를 희석하니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배웠다. 그때는 그 말이 맞는 듯하여 핼러윈에 아이들 손을 잡고 이웃으로 캔디 받으러 다니지도 않았고, 산타는 진짜가 아니고 부모님들이 선물을 사서 트리 밑에 놓는 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한 규율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가둔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고지식하고 답답한 것이 아님을 아이들이 어렸을때는 몰랐다.
핼러윈의 기원이 어디서 왔건,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복장을 하고 이웃집으로 사탕 받으러 가는 신나는 행사일 뿐이다. 바구니 가득 받아온 초콜릿과 사탕을 한 아름 쏟아 놓고 마구 먹어도 부모로부터 제지를 당하지 않는 특별한 명절이다.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어린아이가 되려고 노력하며,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갈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잠자리에 드는 그 시절의 추억은, 나중에 그 산타가 진짜가 아닌 것을 알아버린 어른이 된 가슴도 여전히 두근거리게 하는 소중한 순간인 것이다.
성탄절 아침에 일어난 손자는 빈 과자 그릇을 보고 그린치가 과자를 다 먹었다고 소리쳤다. 자기가 붙여 놓은 편지를 읽고 과자만 먹고 선물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우리 모두에게 그 놀라움과 반가움을 전했다. 그 아이의 세상 속으로 우리 어른들도 모두 들어가 앉아 산타가 놓고 간 선물을 풀었다. 뜯어진 포장지, 열어 젖혀진 상자들 사이로 그동안 고심해서 준비한 우리들의 사랑이 서로에게 전해지며 우리를 하나로 따뜻하게 품고 있었다.
첫댓글 손자가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했을까요. 아이의 기쁨과 행복 속에 함께 빠집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두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저희 집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혼자의 시간을 즐기면서도 뛰어 놀던 손자들이 벌써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