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
최 화 웅
더위가 몰려오는 소서(小暑)와 초복(初伏)의 절기(2019년 7월 10일). 남쪽 바다로부터 다시 올라온 장마전선이 해무를 앞세우고 하늘 아래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부전역에는 멀리 가덕에서 달려온 창대를 비롯한 우일, 종두, 태용, 영호, 무광 등 죽마고우 일곱이 모였다. 11시 반 동대구행 1780열차 무궁화호가 기적을 울렸다. 동해남부선 열차는 우리가 초등학생 때 불국사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추억의 철길이다. 바다기슭에서 상륙한 해무가 갯마을을 질펀하게 뒤덮고 차창을 스치는 빗줄기가 차츰 굵어졌다. 오랜만에 영호가 얼굴을 보였다. 열차는 도심을 벗어나 해운대와 송정을 느릿느릿 지나면서 자주 제동을 거는 바람에 딸꾹질을 해댔다. 30분 만에 일광, 기장을 지나 물 맑은 동해와 녹음이 푸르른 산기슭을 자르며 어느 새 싱그러운 갯마을 좌천, 월래, 남창, 덕하를 차례로 지났다. 오늘은 무광이가 장생포 나들이의 호스트를 맡았다.
하늘은 온통 흐리고 내린 비가 나들이를 정감에 젖게 했다. 동무들의 표정이 헤맑고 환해졌다. 정확하게 한 시간 13분 만에 목적지 울산 태화강역에 닿았다. 비가 내려 오늘 나들이는 장생포원조 고래 맛 집에서 점심과 이야기를 나눈 뒤 부산으로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옛 할매집은 원조 고래 맛집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초라했다. 젊은 날 가족과 직장 동료와 함께 자주 찾았던 곳이 왠지 낯설었다. 올해로 한 세기를 넘긴 장생포우체국 옆 원조 고래 맛집을 지키던 정겨운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 앞에 묶어둔 채 녹 쓸어가던 포경선도 보이지 않고 길 건너편 나지막한 언덕 위의 송전탑만이 옛날을 지키는 풍경으로 한 폭 프레임이 되어 기억을 되살린다. 고래 육회 맛은 여전히 혀를 감치고 아가미살과 뱃살, 꼬리살 또한 옛 맛 그대로였다. 점심때가 지나 텅빈 식당에서 마음 놓고 근황을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주고 받았다.
울산의 장생포와 거제의 장승포는 지명이 비슷하다. 장생포와 장승포는 고래가 찾아드는 포구로 일찍이 우편제도가 도입된 갯마을이다. 장생포는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으로 울산만 서쪽 해안에 자리 잡았다. 1962년 울산센터가 기공한 이후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와 울산국가산업단지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공업단지의 면모를 갖추었다. 장생포는 예부터 귀신고래의 회유지로 포경업이 성했고 지금도 고래문화마을과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가 터를 잡고 있다. 지난 1906년 장생포우편소가 개소하여 우체국으로 113년째 이르고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동쪽의 아름다운 포구로 옥포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제2의 조선공업단지로 발돋움했다. 지난 1989년 장승포읍이 장승포시로 거제군과 분리되었다가 지방자치제 부활을 앞두고 1995년 거제시로 통합되었다. 이 지역에 행정구역이 설치된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아담한 포구 장승포는 1966년 개항장이 되어 1971년 거제대교이 개통하고 1981년 장승포읍에 옥포조선소가 들어서면서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곳이다. 1989년 장승포읍이 시로 승격하여 거제군으로부터 분리되었다가 1995년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장승포시와 거제군이 통합되어 거제시가 되었다. 울산의 장생포와 거제의 장승포는 다 같이 갯가 어항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출발하여 공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는 동안 몰라보게 달라진 곳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경기가 옛날 같이 않다고 지역 주민들은 오늘을 한탄하며 지난날을 그리워한다. 우리나라 우정제도를 선도한 장승포 우체국은 장생포 우체국보다 문을 연지 30년이나 빠르고 부산항이 개항한 1876년과 같은 해다. 정호승 시인은 시 ‘장승포 우체국’에서 바다가 보이는 앞마당에 키 큰 해송 한 그루가 배고파 운다고 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를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연애편지의 씨가 말라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시인의 귀에는 뱃고동로 메아리쳤나 보다.
울산의 귀신고래는 세계 80여 종의 고래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래다. 귀신고래는 해안가 가까운 암초에 살면서 숨을 쉴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북태평양 캘리포니아 연안과 베링해를 거쳐 우리나라 동해안을 따라 울산 장생포까지 머나먼 바닷길을 회유하는 귀신고래는 겨울이면 이곳에서 살다 여름이면 먹이를 찾아 오츠크해 북단으로 이동한다. 고래의 회유로는 3,000년 전 울주군 언양읍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가 한 편의 대서사시로 남았다. 지난 봄 친구들 중에서 나는 가장 먼저 자동차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했다. 40년 만에 운전대로부터 해방된 자신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하다.칠순 중반을 넘긴 초딩 동기들의 장생포 나들이는 장마로 촉촉이 젖어들었다. 장생포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진화론자 다윈에게 그 옛날 “고래는 왜 뭍을 버리고 바다로 떠났을까?”를 물어보았다.
첫댓글 국장님 오랜 친구분들과 정담 깊은 여행을 다녀오셨네요.
반구대는 저희 외가댁이어서 생전에 어머님 모시고 가면서 들러서 봤던 암각화 생각이 떠 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다음은 '고래가 바다로 간 이유'와 '고래는 왜 뭍을 버리고 바다로 떠났을까'를 생각해보는
나름의 에세이를 쓰려고 합니다. 장마비가 다시 내리나 봅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