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방울 방울 쌍방울 쌍방울. 방울 방울 방울 쌍방울 쌍방울. 빅토리 빅토리 야!” 1990년대 전주구장에는 쌍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프로야구 최초로 미아가 된 8번째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
1989년 2월 9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는 “제8구단은 1990년에 창단해서 1991년 출범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제8구단 창단은 당시 프로야구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제7구단 빙그레(현 한화)가 1986년부터 참가하면서 홀수 팀이 되어 경기 일정이 들쭉날쭉했기 때문이다. 선수 수급과 경기의 질적 저하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1989년 제8구단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KBO 이사회가 열린 지 한 달 후인 3월 8일 구단주회의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며 신생 구단 창단은 급물살을 탔다.
구단주회의에서 제시된 신생 구단 가이드라인은 1) 연간 매출액이 5천억 원 이상인 기업, 2) 3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 신축, 3) 가입금은 50억 원 이상이었다.
3월 20일 전북 지역 상공인들이 창단을 희망하는 건의서를 제출한 데 이어 22일에는 경남 마산을 연고지로 한 한일그룹이 창단 신청서를 냈다. 지역 안배를 내세운 전북과 야구 흥행에 이점을 가진 경남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4월 11일 미원과 쌍방울이 공동 명의로 창단 신청서를 내자 한일합섬은 물러날 뜻을 나타내며 제8구단 연고지는 사실상 전북으로 결정됐다. 7월 8일 임시 구단주총회에서 표결에 부친 결과 전북 6표, 경남 1표, 기권 1표로 전북에 구단 창설권이 주어졌다.
쌍방울은 신생 구단 자격 조건에서 연간 매출액이 모자라 미원과 공동 출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로 구단 가입권을 얻자 단독으로 구단을 창설했고 8월 31일에는 구단 이름을 쌍방울 레이더스로 확정했다. 시즌이 끝난 11월 14일 김인식 초대 감독과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 3월 31일 창단식을 열었다. 각 팀에서 지명 트레이드한 9명과 2년에 걸쳐 특별 우선 지명한 20명 등으로 선수단을 구성한 쌍방울은 2군 리그에서 35승 19패 8무로 우승을 차지하며 1군 무대를 향한 마지막 점검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천덕꾸러기 막냇동생 쌍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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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5일 쌍방울은 역사적인 첫 경기를 가졌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작은 형님’격인 제7구단 빙그레였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후 새롭게 가입한 처지는 같았지만 팀 전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빙그레는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1989년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고 1990년에도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11-0, 쌍방울의 완승이었다. 선발 등판한 신인 조규제가 빙그레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6회까지 단 1안타로 봉쇄했으며 7회 마운드에 오른 박진석이 경기를 매조졌다. 타선도 홈런 2개를 포함해 장단 17안타로 독수리 마운드를 두들겼다.
첫 단추를 잘 낀 쌍방울은 기대 이상으로 선전을 펼친 끝에 52승 71패 3무(승률 0.425)를 기록하며 LG와 공동 6위에 올랐다. 1986년 신생팀 빙그레가 31승 1무 76패(승률 0.290)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이변을 일으켰다고 해도 틀림없다. 쌍방울이 2군 우승에 이어 1군 무대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뛰어난 지도력과 함께 팀 이름 그대로 투타에 쌍방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막전 호투를 펼친 조규제는 9승 7패 27세이브를 거두며 세이브왕과 신인왕이 됐다. 타석에서는 김기태가 신인 최다 홈런과 좌타자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동시에 경신하는 27홈런에 92타점을 올렸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1991년 9월 17일 OB(현 두산)전을 앞두고 임신근 수석코치가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1990년에는 대형 교통사고로 운전기사가 숨지고 최태곤, 신대형 등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돌이켜보면 창단 후 잇따른 비보는 쌍방울의 가까운 미래를 나타낸 징조였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