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2. 05 금요일.
줌만남이 있는 금요일이다.
일찍 눈을 떠서 그림책 [돼지 이야기](유미 글그림, 이야기꽃) PPT를 만들었다.
사실 이 책을 읽어줘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 읽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쌓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반려견의 행복한 관계를 그린 [메리]를 읽어줄까 했지만 때가 왔을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9시 10분이 되자 은이와 빈이 그리고 규가 줌방에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30분이 되자 13명 친구가 접속해서 안부를 묻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눈이 와서 눈썰매 탔어요. 빈이랑 규랑 찬이랑 찬이형 그리고 1반에 승이도 같이."
"샘, 저 눈싸움 하다 미끄러져서 멍들었어요."
"집에만 있었어요. 고양이 하루랑 놀면서."
"동생이랑 햇쨍가서 놀았는데 영이 만났어요. 파자마 입고 나와서 웃겼음."
"드디어 현질했어요. 12,000원. 아이템 사서 이제 거지예요. 샘~"
"좋겠다. 나도 그거 사고 싶었는데."
"샘, 할머니 오셔서 점심에 컵라면 못 먹어요. 에이~"
"학원 다니는데 수학은 쉬운데 영어는 어려워요. 레벨 테스트할 때 떨려."
아이들의 고만고만한 이야기에 화면 가득 웃음과 아쉬움, 기대와 설렘 가득한 표정이 어우러진다.
"샘은 뭐했어요?'
"하루 한 시간 걷고 공부해요. 걷기 하는데 사람만큼 반려견들을 많이 만난답니다."
"무슨 공부요?"
"음, 기후 위기에 대한 책과 강의를 듣거나 동물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 읽을 그림책도 동물권리에 대한 책입니다. 표지 먼저 볼까요?"
유리 작가의 [돼지 이야기]는 흰색과 검은 색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단 한 장면만 제외하고.
"표지 돼지가 눈을 맞고 있네요. 눈을 감고 있는데 귀가 이상해요."
어두운 화면과 흰 글씨. 우선 아무 말없이 그림을 보았고 두 번째로 글을 읽었다.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우리나라를 휩쓴 ‘구제역사태’는 돼지 약 332만 마리, 소 약 15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것은 가축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비극이었다. 이 책은 어미 돼지의 마음결을 따라가면서 그 아픈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책장을 열면 ‘평범한’ 축사가 보인다. 그 안에 칸칸이 나뉜 분만사, 거기 갓 새끼를 낳은 어미 돼지가 아기 돼지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다. 그러나 몸을 옥죄는 분만 틀에 갇힌 어미는 새끼들을 핥아 줄 수도, 안아 줄 수도 없다.
그나마 3주 뒤 어미는 새끼들과 헤어져 좁디좁은 사육 틀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뒤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사람들은 몽둥이와 전기 막대로 돼지들을 어디론가 몰아간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외출의 끝은 커다란 구덩이. 돼지들은 굴삭기에 떠밀려 산 채로 파묻히는데, 절박한 가운데도 어미는 헤어진 새끼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읽는 중간중간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 엄마 돼지 참 안 됐다."
"사슴도 구제역에 걸린다니!"
"가축전염병예방법 처음 들어봐요."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 한참동안 말이 없는 아이들. 잠시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정빈 : 돼지들이 사실상 평상 시에 흙을 못 밟다가 살처분할 때 처음 밟을 때 흙을 무서워하는 것이 불쌍하다.
- 태영 : 이야기를 듣고 돼지가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다.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맛있게 먹었는데 이제 돼지를 먹을 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먹어야겠다.
- 광규 : 돼지가 깔끔한 걸 좋아하는 지 몰랐어요.
- 서영 : 그림책의 그림이 어둡고 이상하고 슬펐어요.
- 지은 : 돼지들이 (엄마 돼지와 새끼 돼지) 흙을 밟으러 나갈때 인상적이었어요. 환한 장면
- 찬우 : 어미돼지가 젖을 먹이고 3주 만에 아이들이랑 헤어진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 승환 : 불쌍했어요. 엄마 돼지가 분만틀에서 새끼를 안고 있는 모습(핥아줄 수 없어서)
- 경모 : 불쌍했는데.. 331만 마리가 살처분 당한 것이 불쌍하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으면 안 되나요?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나는 삼겹살 좋아하는데."
"돼지가 좀 행복하게 지내도록 그 철장 같은 거 말고 마지막 장면처럼 키우면 되잖아요."
"규가 한 말처럼 지금 하는 공장식 축산을 버리고 '동물 복지 축산'을 하는 농가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해요."
"우리 엄마도 동물복지 닭이랑 계란 사는데 좀 비싸다고 해요."
"이 책의 유리 작가님은 어릴 때 경기도 여주에서 자연 속 농장에서 동물들과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돼지에 대해 잘 알고 잘 그렸네요."
"샘, 정빈이네 닭도 동물 복지로 키우고 있어요. 엄청 쫓아다녀요."
"닭을 키우고 있는데.. 지금 닭장에서 크는데, 할아버지께서 밭 옆에 지어 주셔서 달걀을 매일 낳았요. 어제는 3개를 나아서 먹었어요."
"정빈아, 어디서 닭을 키워? 닭장은 어디에 있어?"
"수암봉 산책길 아래 그 2층집 있거든. 거기 밭이 있고 그 옆에 닭장이 있어. 수탉은 엄청 힘도 쎄. 빈이 푸사에 사진이 낳은 달걀이잖아. 우리도 매일 가는데 올래?"
동물에 관심이 많은 유림이가 질문을 한다. 빈이네 닭장에 매일 놀러간다는 규가 빈이보다 더 신나서 대답을 했다.
"나도 가 보고 싶다."
"나도."
"샘, 그럼 제가 찍어 볼까요? 동영상이 좋아요? 사진이 나을까요?"
"둘 다 좋아. 그리고 유림이가 동물에 관심이 많으니까 정빈이네 닭을 보고 행복한 정빈이네 닭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들어 주면 어때?"
"네. 좋아요."
수업을 마칠 때쯤 영이가 말했다.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이예요."
나는 영이에게 애써서 답을 말해 주지 못했다. 다만 사람도 동물이라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다른 생명을 길러 먹이로 삼는 능력이 생활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은, 다른 생명을 어떻게 대해애 옳은지 생각할 수 있는 힘 또한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나누고 뭔가 같이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만이 수업과 배움의 전부일까'
'영이처럼 먹는 것에 대한 슬픔 혹은 예의를 지키는 일은 지금까지 미뤄둔 일은 아닐까?'
' 이 일조차 아이들에게 미루는 건 아닌가?'
묻게 되고 마음도 무거워진다.
나의 무거운 마음을 날려 준 건 아이들의 약속이다.
다음 주는 설날이라 줌으로 만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은 세뱃돈 받기 대작전이 필요하다고. 설날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며 안녕~하며 나갔다.
나는 오늘 한 일들을 클래스팅에 올리고 이렇게 메세지를 보냈다.
[그림책을 찾아보니 수암도서관은 없고 근처 상록어린이도서관 등에 있었습니다. 개학하면 학교 도서관에도 있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3월이 되면 빈이네 닭장앞에서 만나기로 해요!]
첫댓글 아이들 말을 생생하게 들으니 참 좋아요.^^ 수암봉이 학교 뒷산이군요! 그 닭 기운이 참 셀만하네요!
원래 저희 학교에도 동물들 우리가 있었는데 수암봉 사는 삵이 내려와 숱한 병아리와 토끼를 잡아 먹는 바람에 그곳에 텃밭을 만들었답니다. "그놈들은 환한 대낮에도 내려와 닭들을 물어가대. 그래서 아예 없애버렸어요." 학교지킴이 샘이 전해 준 이야기예요. 전설의 고향 수암봉편 두둥!!!^^
채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건 어려울 것 같고 고기 먹는 횟수를 최소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채식 요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성장기 때 고기를 한 달에 한 번은 커녕 명절, 제사, 직업군인이 된 큰오빠의 휴가 같을 때나 고기를 먹을 수 있었어도 키만 쑥쑥 크고 건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일 년에 고기 먹은 횟수가 열번에서 한참 모자랐지만.
그러시군요. 저도 어제 오늘 설 명절 준비하며 장을 보았는데 여전히 고기를 샀습니다. 산적과 탕은 늘 하는 제사음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