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기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 2000년 7월 9일 ~ 19일 )
북유럽 여행기 1 ( 러시아 편 )
9시 30분 공항 집결.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마음이 바쁜데,
아들이 작은 가방을 지하철 선반에 놓고 내린 걸 문이 닫히는 순간 깨닫고,
곧장 다음 차로 방화역 종점에 찾으러 갔지만 허탕치고 돌아왔다.
여행하는데 꼭 필요한 안경, 시계, 전자사전, 필기도구, 소지품 등이 들어 있어 속상하다.
30분이나 늦어 정신없이 수속 마치고, 할 수없이 면세점에서 다시 대충 사고,
헐레벌떡 러시아 비행기에 오르니 이유도 알려 주지 않고 출발시간 지연이다.
시작부터 여행 기분 망치지 않으려고
애써 마음을 밝고 즐겁게 돌리며 창 밖을 보니, 온통 구름세상이다.
뭉게구름, 양털구름, 새털구름, 때론 먹구름까지...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고비사막은 구름의 그림자에 덮여
그나마 황량함을 조금은 벗어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오아시스인지 간간이 보이는 초록빛 풀과 나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느다란 길. 강. 그리고 인가. 마을들...
그 나름의 질서대로 그렇게 놓여있다!
세상은 저기 저 아래 그대로...,
지루한 줄 모르고 지상을 관망하다보니 모스코바 도착.
비록 미소 없이 무뚝뚝한 모습에,
영어마저 서툰 러시아 승무원들이지만,
종일 서서 묵묵히 서비스하는 게 안쓰러워지고,
화장실 앞, 흡연으로 숨쉬기 곤란한 맨 뒷좌석에 앉아 왔어도
새로운 이국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마음이 되어 비행기에서 내린다.
유난히 느리고 까다로운 러시아 출입국 수속도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고,
공항을 나와서 전용버스에 올라 모스코바 시내를 달린다.
넓은 도로. 울창한 자작나무 숲, 엄청 큰 건물들.
대국의 풍모를 한 눈에 느끼며.....
곧바로 세계 최고라는 러시아 써커스 관람.
늦은 시간에 피곤한데도 내일은 휴관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바꿔 본 거다.
인형 같은 러시아 미녀들의 예쁜 몸매에 감탄하며
줄타기. 부메랑, 훌라후프 등의 아슬아슬 난이도 높은 묘기를 보는데
엄청 혹독하였을 훈련 과정이 짐작되어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무리로 나와서 갖은 재롱을 떠는 잘 훈련된 개와
지시대로 움직이는 풀죽은 호랑이의 처량함에 가슴이 아픈데,
그 또한 박수로서 달래줄 뿐이다.
10시쯤, 밖에 나오니 아직도 환한 밤. 백야다.
11시 넘어서야 저녁을 먹고 스탈린 시대에 세워진,
지붕이 뾰족뾰족한 중세 건축양식으로 웅장하고 멋있는
우크라이나 호텔에 여정을 푸는데, 세상에,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오래되었어도 그런 대로 좋은 시설에 기분이 좋아진다.
피로한 몸을 잠으로 풀기 위해 침대에 누었으나 12시 넘도록 어둡지 않은 밤에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드는 모스코바에서의 첫 날.
모스코바 시내 관광일. 먼저 원불교 교당 방문.
7년 만에 건물을 구입하여 개조 공사가 한창이다.
제법 넓은 터에 3층 건물. 잘 손질하면 좋을 듯싶다.
여러 가지 시설도 마련 중이라는데, 아직은 넓은 마당에 잡초들이 우거져 있다.
러시아 인부 여럿이 흙먼지 뒤집어쓰고 초라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는데,
무표정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이 순박하다.
높다란 붉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클레물린궁.
황금으로 반짝이는 돔 지붕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궁에 들어가 사원을 살펴보는데, 황제처럼 막강한 권력을 누린 사제들의
커다란 보석이 박힌 화려한 장신구와 엄청난 집기들이 대단하여 압도당한다.
붉은 광장에서 만난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 레닌의
네모난 묘는 휴관일이라 못 들어가고.
앞에 펼쳐진 드넓은 광장을 거닐며
추락한 공산주의의 비애를 잠시 느낀다.
모스코바 관광 사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양파모양, 사탕모양의 지붕이 멋진 바실리 사원을
배경 삼아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데,
끈질기게 매달리는 집시들의 구걸이 딱하다.
붉은 광장 옆에 있는 국립백화점 ‘굼’은
100년이 넘은 오래된 시설인 데도
여러 건물이 연결되어 아주 넓고,
고풍스러워서 진열된 물건들도 더 좋아 보인다.
가까이 있는 무명용사의 묘를 찾아가 쉬면서.
위병 교대식의 재미있는 뻗쩡다리 걸음을 흉내 내보며,
그네들의 늘씬하고 반듯한 다리 비결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하늘 높이 치솟은 탑이 눈에 띄는
넓은 전승기념관을 다리 아프도록 걸으며
아무튼 엄청 크고, 넓은 대국의 힘을 또 다시 느낀다.
모스코바 대학은 울창한 숲 속 여기저기에 웅장한 자태로 서있는 건물들이
강의실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대학 교정이 돋보인다.
드넓은 공원 같다. 러시아 최고의 대학이라는 게 실감난다.
모스코바 전경을 조망하기 위해 레닌 언덕에 섰는데,
이 곳이 산이 없는 모스코바에선 그 중 높은 곳이라는데도 그리 높지는 않고,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뾰족뾰족한 건물과 정교회 사원들의 황금 지붕이 많이 보인다.
밤에 호텔을 나와서 관광 코스가 아닌,
일반 러시아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서,
일행 몇명과 꽤 비싼 영업용차 대신, 불법 영업하는 자가용 승용차를 잡아타고
번화가인 아르바트 거리에 나가서 지하철을 타 본다.
땅속 깊숙이, 끝이 안 보이게 밑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무척 인상적이다.
1930년대에 방공호 겸해서 만들었다는데 시설이 대단히 훌륭하다.
궁전처럼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한 지하철역을 출발하자
멋진 동굴 모양의 다음 역이 반겨 주고,
또 다른 역은 총을 든 혁명군의 조각이 “꼼짝 마” 하며 노려본다.
하지만 특색있고 아름다운 역에 비해 낡은 지하철은 별로다.
자유분방한 구 아르바트 뒷골목을 걸으며 러시아 젊은이와 호흡을 나눈다.
거리의 악사, 화가, 기예를 부리며 푼돈을 구걸하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다.
몇 가지 초라한 물건을 펼쳐 놓은 노점상도 한 몫하고,
노상카페에서 맥주, 보드카를 마시며 얼큰해진 기분에 듣는,
그런 대로 훌륭한, 길거리 연주에 흥을 돋우고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피곤해도 즐겁다.
참, 러시아 아가씨들은 어쩜 하나같이 모두가 늘씬 날씬 어찌나 예쁜지,
더구나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몸매를 다 드러내 놓은 대담한 매무새라니...
여자인 나도 절로 눈길이 가고, 고개가 돌아가고... 발길이 멈춰지고.....
그리고 부러운 마음이 든다.
성 페테르부르크는 1713년~1917년까지 제정러시아의 수도다.
모스코바와는 꽤 멀리 떨어져 있어 기차로는 8시간정도 걸려서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피터왕이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차지한 바닷가 늪지대에
유럽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고자 세운 로마노프왕조의 서울로
휘황찬란한 유적과 유물이 고스란히 잘 보관되어 자리 잡고 있다.
넓은 예화강가에 고풍스런 건물과 수십 개의 멋진 다리들이
백야의 석양 속에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겨 준다.
그리고 발틱해를 사이로 핀란드와 마주하며 지어진 큰 호텔이
시설도 좋지만 창문너머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어 더욱 환상적이다.
자정이 넘도록 환하게!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보니 아직도 뿌연 하늘 백야!
늦은 잠자리에 피곤한 몸을 잠깐의 수면으로 다시 일으켜 식당에 가니
드넓은 홀 안에 온갖 종류의 사람이 가득하다.
특히 늙고 뚱뚱한 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뛴다.
매일 아침. 뷔페식 호텔 식사가 조금은 질려서 대충 먹고 일어서는데
식당 종업원들이 호박이며 조각품을 몰래 숨겨 가지고 다니며 사달라고 한다.
자존심 강한 대국의 인민들도 돈의 위력에 비굴해진 것 같아 처량해 보인다.
먼저 페테르부르크에서 30km 떨어져 있는 여름 궁전을 찾았다.
발틱 해변에 여름별장용으로 세워 풍광이 아름답고
황금으로 장식된 조각들이 눈부시게 화려하다.
당시엔 155개의 크고 작은 멋진 분수를 세우고
화려한 대 궁전을 지었는데 2차 대전 때 많이 파괴되어
지금은 규모나 숫적으로 축소되었다지만 아직도 대단하다.
궁전과 성당을 들러 저녁에는 발레 공연을 본다기에
모처럼 우아한 하늘색 원피스를 차려입었는데 비가 오락가락하여
비에 젖고 흙탕물에 튀긴 옷차림이 신경 쓰였지만,
부지런히 맨 앞에 쫓아다니며 열심히 설명 듣고 자세히 살펴보는데,
아무래도 너무 극성스러워 보일려나....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성이삭 성당를 찾는다.
1819~59년 불란서 건축가 몬조란을 초청하여 세운 러시아 정교회로써
14,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데, 아무튼 엄청 높고, 넓어서,
러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단다.
내부를 장식한 뛰어난 성화와 조각들이,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지게 아름답다.
외부는 2차 대전의 상흔으로 총탄구멍이 여기 저기 나있고
세월의 이끼가 끼어 칙칙하게 변하고,
혁명 후, 종교활동을 금지하고
창고로 박물관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어도
성이삭 성당은 인간의 솜씨와 노력의 한계가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엄청 큰 예술작품으로,
이 또한 인류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점심은 모처럼 특별 주문한 현지식을 먹게 되어 예상외로 훌륭한 식사다.
왕자의 궁을 개조하여 만들어, 화려한 궁궐 장식이 돋보이는 넓은 실내에서
많은 종업원의 정중한 써빙을 받아가며, 팔자에 없는 러시아 귀족이 되어서!
격조있는 음식을 포도주와 함께 마시니 기분이 더욱 좋다.
그리고 식사 후 쇼핑으로
호박 장신구 셋트와 목각장식을 몇 개 구입했는데
특별할인 받아 조금 더 신이 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러시아 예술가의 무덤을 찾는다.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음악가, 토스토예프스키 등의 문학가... 가,
그리고 우리가 알고, 또한 모르는 수많은 무용가, 화가, 배우들이...
서로 이웃에 모여서, 아름다운 조각 동상이 되어서 불멸의 삶을 살고 있다.
예술가에 대한 대접이 남다른 러시아가 그래도 다행스럽다.
피의 구원의 성당의 경건한 교회 의식에 따라
어둠속에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신도들의 엄숙함과
울림이 많은 성가대 음악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구경꾼은 장엄한 분위기에 눌려
숨소리를 죽이고 발걸음마저 아껴서 저절로 왜소해진 인간이 된다.
페테르부르크 역사는 피터폴 요새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이는 스웨덴과의 전쟁을 위해 조성했지만
쉽게 승리하여 방어용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안에 큰 사원을 세워 왕과 왕족의 화려한 무덤이 가득 차 있다,
앞으로도 그 후손들이 원하면 더 묻힐 수 있다 한다.
저녁엔 발레 ‘지젤’ 관람.
외국인은 입장료가 비싸서 희망자만 예약하여 보았다.
왕궁극장이라 규모는 아주 작은데 붉은 비로도 휘장이며
황금빛으로 도금한 천장과 벽장식이 휘황찬란하다.
그 자리에 앉아 본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울 정도고,
발레는 귀족과 평민과의 애틋한 사랑 얘기로 비극이다.
주인공 백작을 한국인이 맡아해서 더욱 감명 깊다.
인형 같은 발레리라들! 출중한 외모라서 더 빛이 나는 발레가 된다.
카잔 성당. 스몰리 성당, 또 이름 모를 성당과 궁전들. 박물관...
러시아를 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훌륭한 건축물에 압도당했는데,
마지막 코스인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진짜 하이라이트다.
여러 개의 왕궁과 미술관 박물관을 이어서 만든
로마로프 왕조의 종합예술품이라고나 할까?
이 곳에서만 1달을 관광해야 할 만큼 많은 예술품이 즐비하다.
온갖 솜씨를 발휘한 막강 대 러시아 제국의 보석 장신구,
신기라 할 솜씨의 사치품, 엄청난 규모의 미술품...,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모아다 놓은 약탈품에 기증품까지.....
감탄을 하며 보다가 나중엔 화가 다 난다.
특히 램브란트의 수많은 성화는 엄청 큰 규모와 물량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유럽의 유명화가의 작품은 그저 이름 한 번 부르며 스쳐 지나고
이름도 한번 확인 못한 조각품, 장식품은 언제 또 볼 수 있을런지......
그래, 혁명은 필연이었다.
수 없는 인민의 피와 땀으로 이룩되었을 사치의 극에서
핍박받은 인민의 분노는 폭발하고 새로운 역사가 씌여 질 수밖에!!!